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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티메프 회생,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최근 유통업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코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다. 국내 이커머스업체 티몬과 위메프 2곳이 일으킨 대규모 (판매자 대금) 정산지연 사태에 정부와 금융당국이 지원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판매대금 미정산으로 피해를 입은 판매업체들은 여전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각종 지원대책의 성격이 티메프의 대금 정산을 전제(담보성)로 한 공공대출이고, 미정산에 따른 금융권 대출금에 물어야 하는 대출이자를 일정기간 유예받는 것이어서 판매업체의 불안감을 완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티메프는 지난달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고, 법원의 결정에 따라 자율구조조정 프로그램(ARS)을 밟고 있다. 회생절차협의회를 통해 자구안도 공개했다. 자구안은 티메프가 판매자 미정산 대금을 분할변제하거나 일정 비율 채권으로 일시변제 후 출자 전환하는 안을 추진하고, 미정산 판매업자 약 10만명에게 일정금액을 우선 변제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그러나, 피해 판매업체와 업계 모두 티메프 자구안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당장 소액변제만 하더라도 이를 실행할 예산이 확실치 않고, 정산지연 대금 마련을 위해선 결국 기업 정상화가 선행돼야 하는데 자구안에 뚜렷한 계획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피해 판매업체의 애간장은 타들어가고 있다. 피해 판매자 비대위에 소속된 한 관계자는 “우리는 못 받은 대금을 받고 싶다. 정부 지원도 말이 지원이지 결국 빚내라는 얘기 아니냐"고 일갈했다. 더욱이 티메프 사태를 초래한 모회사 큐텐그룹은 여전히 진정성 있는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계열사인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는 모기업을 떠나 '각자도생'하려는 분위기다. 정작 피해 판매업체에 대한 구제안을 분명하지 않은 가운데 큐텐을 비롯해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 등 사태 장본인들은 자기 살 갈에 바쁜 행보를 보이는 형국처럼 보인다. 정부와 사태유발 기업의 움직임에 '무늬만 대책'이라고 주장하며, 실제 알맹이에 해당하는 '정산지연 대금'을 당장 받을 수 없는 상황에 티메프 사태 피해 판매업체들이 절망하는 이유이다. 큐텐그룹과 계열사들의 '기업 정상화' 노력도 필요하지만 대금 미정산으로 당장 영업을 접어야 하는 중소 판매업체들의 절박한 사정을 먼저 해결하려는 의지와 대책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김성우 칼럼] 산업 탈탄소가 시급한 이유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미국 국립 해양대기국(NOAA)이 지난 17일 발간한 기후보고서에 따르면, 올해가 역대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가능성이 77%에 달한다고 한다. 지구의 지난달 지표면 기온이 관측 사상 가장 더운 7월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지난 14개월 연속 매월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이렇게 심각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세계 주요국이 탄소배출에 가격을 부과하는 등 관련 정책을 예고하고 있는데, 특히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 제품을 국가간 교역할 때 과금하는 탄소무역장벽에 주목해야 한다. 유럽연합이 올해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시작하면서 영국 등 주변국들도 유사한 정책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주요 교역국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의 탄소배출량을 미국의 제품 탄소배출량과 비교·평가하도록 규정하는 법안을, 상원에 이어 지난 7월 하원에서도 양당 의원들이 공동으로 발의했다. 수입품에 탄소가격을 부과하려면 우선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파악해야 하므로 이는 탄소무역장벽 설치의 신호탄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들의 경우 제품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산업 탈탄소를 가속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필자는 지난 1월 유럽의 싱크탱크인 몽테뉴 연구소(Montaigne Institut)가 주최한 유럽연합(EU)-아시아 정책 워크숍에 참석해 탄소가격으로 인한 기업 영향에 대해 논의했고, 지난 5월에는 동 연규소 산업 탈탄소 전문가인 조셉 델라태 박사를 한국으로 초대해 산업이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수단과 어려움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세계 산업부문 탄소 배출량의 약 3/4은 철강, 시멘트, 화학이 차지하기 때문에 이 3대 업종에 논의를 집중했다. 철강의 경우, 주요 감축 기술은 전기를 활용해 고철을 녹이는 전기아크로(Electric Arc Furnace)와 석탄 대신 수소로 철광석을 환원하는 수소직접환원(Hydrogen Direct Reduction)이 대표적인데, 문제는 청정전력 및 순수고철의 확보와 청정수소 인프라 구축이다. 시멘트의 경우, 주요 감축 기술은 산업 부산물인 슬래그(slag)나 플라이애시(fly ash)로 시멘트 원료를 대체하거나 탄소 포집·활용·저장(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로 배출된 탄소를 제거하는 방법이 있는데, 문제는 대체제의 수급과 포집된 탄소의 활용처/저장공간이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화학의 경우, 화석연료 기반의 나프타 원료를 바이오매스 기반의 바이오나프타로 대체하는 기술과, 공정연료를 재생전기나 청정수소로 대체하는 기술이 주요 수단인데, 문제는 역시 청정 원료 및 연료의 수급이다. 한마디로 수단은 있는데 장애가 많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의 산업 탈탄소 추세로는 기후 위기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산업 탈탄소 기술에 대해서는 상용화를 앞당겨야 한다. 대표적인 공통 기술이 청정수소와 탄소 포집·활용·저장인데, 최대한 빠르게 기술 가격을 하락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탄소가격을 부과하면서도 보조금을 지불해 기술가격이 경쟁력이 생길 때까지 초기 시장을 만들어 줘야 하고, 바이오매스나 폐플라스틱 등 산업 탈탄소에 필요한 청정 원료 및 연료가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줘야 한다. 또한, 모험 자본도 늘려야 한다. 불확실성이 높은 초기 시장의 투자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의 조건 없는 사회책임기금이나 다자간 은행의 양허성 자금 등 우선 손실을 감당할 모험 자본이 상업 자본의 마중물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이처럼 기술, 정책, 금융이 동시에 산업 탈탄소 공통 기술 상용화를 위해 한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산업 제품의 탈탄소를 가속화할 수 있다. 상술한 공통 기술들은 한국에게만 필요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실기하면 다른 국가나 기업이 먼저 상용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그 기술을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사와야 하고, 이는 우리 제품 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반면, 우리가 지금 공통 기술을 적극 상용화해 확보한다면 우리는 제품 수출은 물론 산업 탈탄소 기술까지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선택은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이다. 김성우

산림청 개청 이래 첫 여성 차장 임명

신임 산림청 차장에 이미라 기획조정관이 오는 24일자로 임명됐다. 신임 이미라 차장은 1998년 행정고시(41회)로 입직해 26년간 산림청에서 근무해왔으며 북부지방산림청장, 산림보호국장, 산림산업정책국장, 산림복지국장, 기획조정관 등을 거쳤다. 산림청 최초 여성 지방산림청장, 최초의 여성 국장에 이어 최초의 여성 차장으로 임명됐다. 이미라 신임 차장은 산림재난 위기관리를 위한 국장급 기구인 산림재난통제관실을 신설하고 임업직불제 법적 기반 마련하는 등 기관의 현안 해결에 앞장서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개청 이래 처음으로 주요정책, 규제혁신, 정부혁신, 정책소통 4개 평가부문에 대해 모두 '우수' 등급을 받는 성과를 창출했다. 산림청 내에서는 다정다감한 성품이지만 중요한 결정에 강단을 발휘하는 외유내강의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라 신임 산림청 차장은 “국민과 임업인 모두가 누리는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산림, 생태적으로 건강한 산림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가사도우미와 외국인근로자 최저임금

최근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여당이 저출생 시대 해법으로 해당 이슈를 끌고 나오고, 정부도 문제 인식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사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구분 적용은 이번에 처음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저출생 시대에 대한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커진 탓이다. 육아와 간병을 위한 인력은 분명 필요한데,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문제 인식이 팽배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전일제 맞벌이 부부가 하루 10시간 가사·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면 지난해 기준 월 264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 당장 오는 9월부터 돌입하는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을 통해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지급받는 금액은 월 238만원이다. 시범 사업 참여 가구의 42.6%가 왜 '강남 3구'에만 몰렸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30대 가구 중위소득이 509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가사관리사에게 지급해야하는 일반적인 맞벌이 부부에게 '필리핀 이모님'은 '그림의 떡'이라는 얘기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내·외국인을 차별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서울시가 시범시행한 필리핀 가사도우미 시범운영 사업에 '강남 쏠림' 현상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지난 21일 국민의힘 주도로 열린 '외국인 근로자 최저임금 구분적용' 세미나에서 김경선 한국공학대학교 석좌교수(전 여성가족부 차관)는 “돌봄 분야 인력난은 정말 심각하고, 최저임금은 가파르게 올라 한계점에 봉착한 상태"라며 범사회적 해결 노력을 강조했다. 맞벌이 부부에게 '좋은 이모님'의 존재는 이미 '갑 오브 갑'이다. '이모님'의 휴가 일정에 맞춰 휴가 계획을 세우고, 명절이면 '이모님' 취향에 맞는 선물을 찾는 데 공을 들인다. 갑작스런 야근이라도 생기는 날이면 '이모님' 심기가 불편할까 전전긍긍이다. 업종 별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 전체 노동자의 임금 하락을 불러올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도 이해된다. 그러나, 가사돌봄 문제로 '노동하기'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모두를 위한 합리적인 제도를 생각할 때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이슈&인사이트] 잭슨홀 미팅을 기다리며

미국 시간으로 22일부터 24일까지 미국 와이오밍에서 잭슨홀 미팅이 열린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지난 달 발표한 비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년 만에 최저치인 48.8로 발표되고 일본 BOJ가 시장의 예상과 다르게 금리를 0.1%에서 0.25%로 15bp (1bp=0.01)나 인상하자 세계 금융시장은 텐트럼을 일으켰다. 엔화가 달러당 150엔도 깨고 하락(엔화 가치상승)하기 시작하자 엔케리 투자자금의 회수(unwinding)가 일어났고 코스피가 8월5일 장중에 10% 넘게 빠지며 거래가 중지되는 서킷 브레이크까지 발동되었다. 단 3일만에 코스피는 13% 일본 니케이는 18% 그리고 미국 S&P 500과 나스닥은 각각 6%, 7.8% 하락했다. 가히 금융위기에 준하는 사태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경기를 일으켰다. 다행히 일본 중앙은행장인 우에다 총재가 10월 추가로 25bp 금리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사실상 철회하면서 엔화가 안정되자 시장은 반등을 시작했다. 그 후 발표된 미국의 ISM 서비스지수, 생산자물가지수(PPI)와 소비자물가지수(CPI) 그리고 소매판매(Retail Sales) 지수마저 좋게 나오면서 미국의 3대 주가지수는 급락했던 시점의 포인트를 넘어섰고 우리와 일본도 90% 넘게 지수가 회복한 상태다. 시장은 이제 다시 금리인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 연준(FED)이 금리인하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물가 지표인 CPI와 PCE를 중요시했지만 지금은 고용지표를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하반기로 접어들자 수면 위로 올라온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시장 참여자들을 긴장시켰고 이번 달 초 엔케리 여파로 장이 폭락하자 이를 막아 달라고 9월 연준회의(FOMC)까지 기다리지 말고 비상회의를 소집 해 50bp 이상 금리를 내리라고 아우성을 쳤다. 지난 주 엔화의 안정과 인플레를 나타내는 PPI와 CPI가 예상보다 약하게 나오면서 인플레는 안정적으로 줄어드는 게 확인됐고 미국 GDP의 70%를 구성하는 소비를 알 수 있는 Retail Sales마저 예상보다 강하게 나오면서 카드 연체가 늘고 저축율이 줄어 미국 소비가 위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한 순간에 잠재웠다.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반도체 주식들과 특히 개인들의 소비 바로미터인 월마트의 실적이 좋게 나오면서 8월 초 급락을 이겨내고 주식시장은 상승을 하였다. 이제 FED는 FOMC 회의 전까지 나오는 데이터를 가지고 금리인하 폭과 향후 금리인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의 추석 연휴 기간에 미 연준 회의가 열리고 이 때 금리가 결정된다. 대부분 사람들의 예상은 25bp 인하지만 혹시나 Big rate cut도 가능하지 않을까 추측만 하고 있는 상태다. 그 문제의 열쇠가 될 잭슨 홀 미팅이 이번 주에 열린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장, 재무장관, 경제학자 및 초청된 사람만이 참석하는 연례 행사, 참석자 중 당연히 세계는 제롬 파월의 입만 주시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금리인하의 어떤 힌트를 주지 않을까 하는 이유다. 금 값의 최고치 경신을 보면 시장은 이미 경기침체를 대비하고 있다. 시장은 50bp 인하를 기대하고 있다. 인플레 지표가 안정되어 걸림돌이 없어졌다. 하지만 금리인하의 또 다른 조건인 경기침체를 확신할 만한 지표가 나오지 않고 있어 큰 폭의 금리인하는 힘들 거라고도 생각한다. 7번 금리인하설 등 여러가지 궁금증들, 하지만 파월은 에둘러 이야기할 거다. 그래도 그가 실수라도 어떤 얘기를 하지 않을까 세계는 촉각을 세우고 있다. 우리 금리인하의 선제 조건이 미국의 금리인하이고 개인 부채와 부동산 PF 문제도 걸려있기에 이번 잭슨홀 미팅이 우리에게도 정말 중요한 행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용

[EE칼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변동대책 체계화해야

오래 종사한 에너지-자원 국제동향 파악에는 나름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 능력 부족을 의미하는 비학비재(非學非才)의 한계를 절감한다. 변화무쌍이라는 시쳇말처럼 글로벌 에너지-자원 산업변화가 심하기 때문이다. 평생 몸담아온 에너지 부문에 대한 최소한의 기여도 못 한다는 후회가 크다. 국외 전문가 그룹들은 유례없는 비상사태에 있다고 한다. 시장여건의 급변상황을 학제적 논리로 파악하여도 정치적-지정학적 여건 급변에 따라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련 학문과 전문가들의 존재 이유가 의심받을 위기상황이라고 국외 동료들이 전한다. 따라서 세계 차원 수급예측을 바탕으로 검증 가능한 시간과 국가-지역 범위를 정하고 연구방법론 설정한 후 가설제시- 검증- 사후 평가라는 전통적 시장분석과 예측의 적정성이 급변하기 마련이다. 중-장기 시장분석과 예측보다 바로 눈앞의 시장 혼란과 관련 당사자들의 손실경감을 위한 단기분석과 대응전략 제시가 시급하다. 최근의 국제 에너지 시장의 단기 관심사는 1)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 가능성 확대 2) 러시아 가스 의존도 하락과 유럽의 단기(특히 금년 겨울) 에너지 수급 안정 여부 3) 미국의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의 추가 확대 등이다. 국제유가는 8.19 일 뉴욕시장에서 WTI((서부 텍사스 중간 품질원유) 기준으로 지난 한 달간 10달러/'배럴' 수준 하락 후에 하향/안정세이다. 미국과 중국 경기회복 지연과 추후 하락 가능성에 주로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주식- 금융시장과 기타 원자재 시장에도 같은 추세로 나타난다. 따라서 올해 에너지 시장 중기 예측은 차분한 약보합세가 주된 내용이다. 수요부문의 불확실성이 공급부문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여 유가는 미국 시장과 유럽 시장에서 배럴당 70달러 후반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2년 평균 수준보다 대략 10% 낮다. 유럽 가스 가격도 2년 동안 최저 수준이다. 곡물과 기초금속도 전반적 약보합세다. '코로나' 사태 이후 2020년대 초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일시적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 추세가 기력을 다한 셈이다. 유럽 천연가스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2022년 12월 러시아 원유-에너지 수입금지조치로 유발되었다. 그 후 해상 파이프라인의 폭발 등으로 러시아 가스 수입량은 2021년 450백만M3(큐빅미터)에서 올해 150백만M3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2년 만에 1/3 수준이 된 것이다. 유럽 천연가스 수요감소는 주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우크라이나와 터키 등 남유럽 경유 가스등으로 충당되고 있다. 그러나 단기 이상 혹한 등에 비상 대비책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겨울 유럽 가스 비상대책은 수요 조정 이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것 같다. 자유 시장체재에서 원활한 물량이동과 조정이 적정시간 내에 완료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미국의 경우 수백억 '달러'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정부의 지원/허가를 통해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대규모 수력과 배터리저장 사업도 진전되고 있다. 원전의 경우 폐쇄된 원전의 수명연장을 통한 재가동이 주목된다. 예컨대 40년 가동 후 2 022년 폐쇄된 미시간 Palisade 원전이 재가동되었다. 다른 폐쇄 원전들도 재가동하여 소형 '모듈'원전(SMR) 개발 때까지 전력수요를 담당할 것이다. 기존 폐쇄 원전 재가동은 투자비 절감과 공기 단축뿐 아니라 SMR 등 미래 신에너지개발 기간 중의 인공지능(AI) 사업용 전력수요 충당을 할 것이다. 이에 미국 정부는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간주하고 '인플레 감축'법(IRA) 지원 대상으로 지원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위기의식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단기 시장 대책은 매우 부족하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의 폐기에 따른 원전부흥과 이를 위한 새로운 장기전원개발계획 수립에만 큰 관심이 쏠린다. 지금 당장 실행하여 그 책임이나 공과 회피로 오해될 수 있다. 정부나 공기업 등 공공기관, 그리고 미래 사회를 선도할 학계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많지 않다. 수많은 언론기사나 관련 전문가 의견들도 같다. 앞에서 언급한 경우들을 종합하면 우리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강조한 남북분단, 동북아 지역 긴장 고조 등에 대응한 '자유주의' 진전에 큰 장애가 우려된다. 이는 진영이나 이념의 일부 차이에도 우리나라의 필수 생존과 번영조건의 하나일 것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두 가지 근간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이다. 이 중 정치적 자유주의는 민주 진영 국가 확대와 동유럽-아프리카 자유화 진전 등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주의는 퇴보가 많다는 관련 학자들의 기존 주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실 국가나 종교와 이념, 노조 등 강력한 사회 주체들의 과도한 관여와 영향력을 행사에 따라 건전 경제성장과 배분에 장애가 발생했다. 러시아가 참여하는 OPEC+ 등 경제 '카르텔'과 공동체들의 활동도 장애가 될 수 있다. 이에 '경제적' 자유주의 한계는 지난 세기말∼이번 세기 초까지 지속 증가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 대유행 사태 이후 지난 2년 동안의 경기 둔화와 그 직후에 닫친 '인플레이션' 위기가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 닥쳤다. 1970년대 석유 위기 이후 30년 동안의 저물가 시대 지속인 셈이다. 이 결과로 기후변화 대처와 에너지전환 투자에 악영향이 불가피하였다. 물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불확실성이 새로운 시대 패러다임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금년 초 국회를 통과한 '자원안보특별법'의 보다 적극적 활용 방안 검토가 요구된다. 이 법은 석유,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수소, 핵심 광물, 신재생에너지 설비 소재·부품 등을 '핵심자원'으로 지정하고, 평상시에도 정부가 비축, 공급망 취약점 분석, 조기경보 시스템 운영 등을 운영한다. 이에 국가에너지계획, 장기전력-천연가스 수급계획, 신재생에너지 보급계획, 지구온난화방지대책 등과 한전 등 수많은 공기업 운영전략 수립과 정부승인과정에서 전략 보완과 상호 연계 강화가 요구된다. 장기 정책목표 실행과정에서 정부 실패를 당연시하고 공기업 등에 의한 시장실패를 허용하는 기존 정책체계를 '자원안보특별법'의 강력 시행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그리고 유사(類似)독과점 성격을 가진 민간기업들까지 가세한 자기들만의 관료주의 관행에 의한 시장/정부 실패 가능성을 이참에 끊자. 최기련

[기자의 눈] ‘꼼수합병’ 논란의 두산,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두산그룹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한지 한 달이 지났지만 '꼼수합병', '밸류다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두산밥캣 1주를 두산로보틱스 0.63주로 받는 1대 0.63의 합병비율이다. 영업이익 연 1조원의 두산밥캣과 적자 회사인 두산로보틱스의 합병비율이 상식상 부적절하다는 거다. 두산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보유한 주주 입장에선 손해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합병비율을 재산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두산밥캣에 투자한 한 미국계 투자사 관계자는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 관련 세미나에서 “합병 공시를 보고 솔직히 두 눈을 의심했다"며 “이번 합병의 실질 수혜자는 두산으로, 두산을 위한 합병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도 꼬집었다. 두산은 “자본시장법에 맞게 산정한 비율"이라는 이유를 들어 합병비율 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주들은 물론 금융당국과 정치권도 지탄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합병 과정에 문제가 있을 경우 횟수에 제한 없이 정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정치권에서는 박정원 두산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재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국회에서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일명 '두산밥캣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상장법인간 합병비율 산정 시 주가만이 아닌 기업의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대로라면 합병 무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함으로써 합병에 반대할 가능성이 농후해서다. 지난 2014년 이미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합병이 무산된 사례가 있다. 업계에서는 또 이번 합병이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지적한다. 주주친화, 이사충실의무 등 밸류업 정책의 핵심이 되는 내용들과 상충한다는 것. 시기상 한국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이 첫 발을 내딛은 시점이라서 금융당국으로선 쉽게 합병을 승인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두산그룹은 합병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합병 증권신고서의 효력 발생일 전날인 27일이면 금융감독원의 수용 여부가 결정된다. 수용 대신 정정 요구가 나올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두산이 합병에 성공하려면 합병비율 산정에 대한 재조정만이 답이다. 합병비율 조정 없이는 합병을 향한 기차가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을 두산이 깨닫길 바란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이슈&인사이트] 전기차 배터리에 계영배 시스템을 설계하라

계영배는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라고도 한다. 술잔의 이름은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며,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닌다.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들이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에서 유래되었다.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기'를 보았다. 의기에는 술을 어느 정도 부어도 전혀 새지 않다가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밑구멍으로 새어 나가게 되어 있었다.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자신을 스스로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 조선에는 도공 우명옥이 만든 계영배가 있다. 이 술잔을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는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전기차 배터리에 계영배 시스템을 제안하는 이유는 전기차를 안심하고 사용하기 위해선 폭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과충전을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인들에게는 '가득'이라는 단어에 대한 선호 현상이 있다. 술도 가득히 넘쳐야 상대를 배려한다고 생각하고 주유소에서도 기름을 주입할 때, '가득히(만땅)'를 선호한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전기차도 과충전한다. 벤츠를 비롯해 전기차 판매 기업 다수는 충전 상한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80% 이상 충전 시에는 충전 속도를 늦추거나, 계기판에 나타나는 충전 상태보다 실제로는 더 적게 충전되게 하는 등의 기능도 제공 중이다. 그러나 장거리 주행이 필요하거나, 자주 충전하기 어려운 운전자의 경우, 더 높은 수준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려 한다. 이때, 충전기가 배터리 잔량 정보를 확인하고 과충전을 차단하는 전력선통신(PLC) 모뎀이 해결책 중 하나다. 이것이 바로 전기차 배터리의 계영배 시스템이다. 그런데 문제는 PLC는 전체 충전기 19.4만기의 89.4%인 완속 충전기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인천 청라 풍경채 아파트 지하 주차장 벤츠 EQ 전기차 화재로 23명이 다치고 차량 140여 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린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번 화재로 인해 정전이 발생하면서 480여 세대의 전기와 물 공급이 끊겼다.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자 정부는 환경부 주관으로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소방청 등이 참여하는 관계 부처 긴급회의를 열고 내달까지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이제라도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단순히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를 진입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충전기의 지상 이전과 같은 피상적 방안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에 전기차 화재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과충전이 지목되자 아파트 등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배터리 잔량이 90% 이하인 전기차만 출입하도록 바꿔나가겠다고 한다. 이것은 누가 어떻게 90% 이상 충전된 차를 점검하고 차단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없다. 국립소방연구원이 2023년 발간한 전기차 화재 대응 가이드를 살펴보면 2022년 기준 차량 1만대 당 화재 발생 비율은 내연기관차가 1.84대, 전기차가 1.12대로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최근의 전기차 화재 사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설픈 정부 대책으로 캐즘에 포비아까지 가뜩이나 어려운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기차는 한국이 반도체 이후 국가 경제의 큰 축인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을 이끄는 미래 먹거리 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탁상공론이 아닌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윤덕균

[이슈&인사이트] 쾨니히스베르크를 아시나요?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오래전 프로이센 왕국의 동쪽 발트해의 항구도시인 쾨니히스베르크 중심부를 흐르는 프레겔강에는 두 개의 섬이 있었다. 이 섬들에 접근하기 위해서 일곱 개의 다리가 건설되었는데, 많은 사람은 '어느 지점으로부터 일곱 개의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서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방법'을 찾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른바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라고 부르는 이 한붓그리기 문제는 당시 학자들의 고민거리가 되었는데, 이 문제가 현대 수학의 새로운 분야를 창조하기까지 하였고 통신망 분석과 컴퓨터 회로 디자인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쾨니히스베르크는 당시 독일 학문의 중심지였는데, 일곱 개의 다리로 연결된 섬에는 대성당과 16세기에 설립된 대학교가 프로이센 왕족, 러시아의 고위 관료, 발트 독일인들이 선호하는 교육 기관이었다. 이 대학교는 중상주의 철학과 신학, 법학 그리고 의학과 수학 등으로 높은 명성을 가졌다.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이다. 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고 평생을 보내며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하며, 칸트가 평생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도시의 역사는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트인들이 살고 있던 이곳에 독일계 튜튼 기사단이 요새를 건설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왕의 산'이라는 의미의 쾨니히스베르크는 북방 십자군의 전진 기지 역할을 했으며, 기사단 국가의 수도가 된 이후 프로이센 공국으로 전환되는 16세기에도 국가의 수도로서 발전하였다. 프로이센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과 통합되면서 수도는 브란덴부르크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정해졌고, 쾨니히스베르크는 동프로이센의 중심도시로 남았다. 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긴 후에도 프로이센 국왕들은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대관식을 치르는 등 특별한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1806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베를린이 함락당하자, 프로이센의 국왕은 쾨니히스베르크로 수도를 옮기며 프랑스군에 저항하였다. 시간이 흘러 이곳은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진 제국 시대에도 베를린과 함께 독일 제국의 동부 거점 역할을 하였다. 이 도시는 발트해와 폴란드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요충지였고, 러시아로도 연결되는 길목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독일은 파괴된 쾨니히스베르크를 소련에 내주어야만 하였는데, 소련은 이 도시의 이름을 칼리닌그라드로 바꾸었다. 그러나 쾨니히스베르크 당시 독일이 만들었던 항구나 노면전차와 같은 여러 시설은 소련 시절을 거쳐 현재 러시아에서도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발트 3국이 소련에 편입되어 있던 시절이 끝나고 독립하면서, 지금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와 분리된 역외영토가 되었다. 이곳은 러시아에 드문 부동항이어서 해상무역에 유리하고 전략적으로도 중요하여, 러시아 해군에서 가장 오래된 발트함대의 본부가 자리하고 있는데, 최근 유럽의 안보 상황을 고려하면, 칼리닌그라드의 중요성을 크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 도시에 많은 영향을 받아온 리투아니아와 같은 일부 유럽 국가들은 최근에 '칼리닌그라드' 대신에 '쾨니히스베르크'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도시의 역사에 나타나는 사건들을 해석하는 것에 시비를 걸거나 소유권을 논의하자는 것은 아니다. 발트해의 상업적 요충지였던 이곳이 군사적 도시이자 국가의 수도나 제국의 주요 도시로 발전하였으나, 전쟁터가 되고 파괴를 경험하면서 이름조차 사라지는 불행을 겪었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도시들 역시 전쟁을 겪었던 아픔을 간직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쾨니히스베르크가 사라지고 칼리닌그라드가 되는 이야기는 한국인에게는 생소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도시의 성장과 발전이 갈등과 전쟁을 부르고 파괴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의 도시들을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해야 할 숙제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김봉철

[기자의 눈]‘내 집 마련의 꿈’ 청약 제도 손 볼 때 됐다

“아파트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작년 말 후보자 시절 첫 출근길에서 한 말이다. 인구 고령화 등 사회가 변화하면서 주택 수요 역시 다양하게 바뀔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최근 나온 '8·8 부동산 대책'에 빌라 공급 활성화 대책이 포함된 것도 해당 발언과 그 궤를 같이한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미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점이다. 전체 가구 중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수요자들도 대부분 아파트에 살기를 원한다. 건설사들의 기술력도 '더 좋은 아파트'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주택 청약 제도는 이 같은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집을 보유한 이력이 있으면 좋은 아파트에 청약하기 힘들어진다. 빌라를 사는 것은 전과자처럼 낙인이 찍히는 길이다. 자연스럽게 시장도 왜곡된다. 충분히 집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중산층이 청약 점수를 높이겠다며 전세 계약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꾸게 한다는 제도 도입 취지는 무색해진지 오래다. 자금 여력이 없으면 '로또 청약'도 기대하기 힘들다. 1977년만 해도 주택 청약은 공공 주택에만 할 수 있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규제를 풀거나 조이며 이를 다듬어왔다. 1순위 자격 기준을 꾸준히 변경했고 '0순위' 같은 말들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다만 '무주택자=서민'이라는 잘못된 공식을 아직 바꾸지 않은 탓에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별공급 요건을 무제한으로 추가하며 누더기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작 보호가 필요한 계층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가는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수는 2548만9863명으로 전월(2550만6389명) 대비 1만6526명 줄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34만7430명이나 감소하며 청약 통장 해지 열풍이 부는 모습이다. 수십억원대 전세를 살면서 부부가 동시에 수십억원짜리 아파트에 청약을 넣는 이들은 사회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아파트가 너무 비싸 빌라를 구입한 이력이 있는 사람은 불이익을 줄 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주택 청약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를 아파트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게 해줄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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