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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지속가능한 에너지 미래 위해 수요자원시장 활성화 필요

신선식품 유통업체에서 냉장고를 몇 시간 동안 꺼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고, 대형 공장이 10분 정도 멈춰도 제품 생산에 지장이 없다면? 상상 속의 일이 아니다. IT 기술을 바탕으로 한 원격 제어시스템이 실제로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여 전력 사용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에너지전환 하면 우리는 항상 태양광, 풍력, 원자력 같은 무탄소 전원을 떠올리고 무엇이 더 나은 대안인지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자원들은 전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전력 시스템에서 공급이 한쪽이라면, 수요가 반대편에 있다. 수요 측에도 중요한 역할이 있다. 가정, 공장, 쇼핑센터, 건물이 전기를 덜 사용하면 그만큼 전기를 덜 생산해도 된다. 그래서 이런 수요 자원을 'First Fuel'이라고 부른다. 이는 생산 이전에 덜 사용하고, 사용하는 시간대를 조정하면 발전소를 덜 지어도 되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연료라는 뜻이다. 수요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수요자원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DR(Demand Response) 제도로, 신뢰성DR, 경제성DR, FastDR, 플러스DR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대부분은 전력계통에서 예비력이 부족할 때, 또는 대규모 발전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전력계통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발동된다. 계통에 문제가 생기면 이 제도에 참여를 약속한 공장이나 건물의 전력을 차단하여 대응한다. 태양광, 풍력처럼 전력수요에 맞춰 생산이 어려운 발전기가 많아질수록 DR의 중요성은 높아진다. 무더운 장마철에 전력수요는 폭발하는데 태양광 발전이 멈출 때를 대비해 가스나 석탄발전소를 예비적으로 운영하고 가뜩이나 확충이 어려운 송전선로를 추가적으로 건설하는 일 같은 것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전력계통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또한 피크 때 가장 비싼 가스발전기가 가동되는 것을 막아 소비자는 비싼 전기를 쓰지 않아도 되고 한전은 전력 구입비를 낮출 수가 있어 가격 편익도 높다. 대부분 피크 때는 가스발전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화석연료 발전을 줄여 온실가스도 감축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DR이 계통 신뢰도가 위협받는 경우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발전기처럼 활용되면 전력시장이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전력소비자는 빨래하는 시간을 옮기고, 소등하며, 전기차로 충방전을 해 전력시장에서 소득을 얻을 수 있다. 기업은 DR에 참여해 수익을 올리고 배출권도 확보할 수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발전소와 송배전망 건설 수요를 줄이고,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는 WattCarbon이라는 플랫폼이 DR 프로그램을 통해 줄인 전력 사용량을 탄소배출권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를 통해 DR 참여 기업들은 그들의 탄소 감축 효과를 탄소배출권 형태로 인정받을 수 있다.​ 덴마크와 독일 같은 국가들은 풍력 및 태양광 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수요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전력망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DR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발생한 탄소 감축 효과를 인정하고 이를 배출권 형태로 보상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DR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술, 경제적 보상, 제도 개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미 기술은 준비되어 있고, 시장에서도 지난 6월 주식시장에 상장된 그리드위즈와 같은 기업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경제적 보상을 강화하고, 수요 자원을 일차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다. 이를 통해 일반 전력 소비자와 기업들이 DR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이는 전력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특히, DR과 탄소 배출권의 연계를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환경적 책임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환경 구축이 시급한 과제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 지속 가능한 에너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윤희

[기자의 눈] 과방위, 산업 현안 말고 ‘뭣이 중헌디’

대전 중구 은행동 중앙시장 길목을 지키고 있는 제과점 성심당은 가성비와 고퀄리티를 내세워 '빵지순례(빵+성지순례)'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지역에 잠시 머무르던 시절 근처를 지나다 들르면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으니 그 인기를 대강 어림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 성심당이 지난달 뜬금없이 국회에 소환됐다. 그것도 매장 특성과는 거리가 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테이블에 올랐다. 최근 논란이 된 대전역점 입점 수수료 때문이 아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대전MBC 사장 재직 시절 이곳에서 법인카드로 약 100만원 이상의 금액을 결제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과방위는 이 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사상 최초로 사흘에 걸쳐 진행했다. 후보자 역량 검증을 위해 열린 자리였지만 여야는 그 사흘 내내 이 위원장의 법인카드 불법사용 여부를 놓고 공방전을 펼쳤다. 업계 주요 현안과 정책 수행 가능성, 운영 청사진에 대한 질의는 실종됐다. 그 자리는 성심당 가맹점명인 로쏘 주식회사와 제품별 단가, 빵집 포인트가 메웠다. 사실상 청문회가 아닌 '빵문회'였다는 평가다. 이들의 입씨름은 이달 '방송장악 청문회'로 이어졌다. 여야는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과정 적법성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야당이 관련 청문회를 당초 예정된 9일에 더해 14·21일에도 열기로 단독 의결하면서 이달 내내 과방위 회의장은 공영방송으로 뒤덮일 전망이다. 그런데 왠지 이 그림이 어딘지 낯설지 않다. 여야가 지난해 이맘때쯤 열린 국정감사 당시 박민 KBS 사장 후보자 임명 제청 여부를 놓고 맞붙던 모습이 겹쳐진 탓이다. 과방위의 본 역할이 무엇인지를 상기해보면 '직무유기'가 아닌가 싶은 대목이다. 과방위는 방송통신 뿐 아니라 과학기술·정보기술(IT) 관련 현안도 함께 다루는 곳이다. 그러나 방송 관련 의제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고 휴지조각이 된 법안만 수백 건에 달한다. 여야가 줄다리기를 거듭하는 사이 글로벌 IT 시장은 기술 패권 선점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터로 떠올랐다. 그러나 과방위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둘러싼 극심한 정쟁터가 된 지 오래다. 해결이 시급한 업계 현안이 산더미다. 토종 기업이 빅테크에 밀리지 않도록 뒷받침하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무의미한 말싸움이 아닌 생산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독점에 지상파 시청률도 떨어지고 있는데 공영방송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다 죽게 생겼는데." 한 취재원이 기자에게 건넨 말을 과방위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다가오는 국정감사도 공영방송으로 채우다 빈손으로 돌아갈 셈인가. 이태민 기자 etm@ekn.kr

[이슈&인사이트]2024년 올림픽과 제22대 국회

# 대한민국의 총, 칼, 활이 파리를 휩쓸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50명을 출전시킨 이후 145명이라는 최소 규모 선수단으로 일군 성적이다. 4년 전 도쿄 올림픽에 232명을 파견시켰으니 60% 수준이다. 최약체로 꼽혔던 22개 종목의 선수단이 거두어들인 메달은 역대 최고다. 금메달의 대부분이 총, 칼, 활 종목에서 나왔다. 열대야에 지쳐 아침에 일어나면 단비와 같이 감동을 주는 메달 소식이 이어졌다.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 뒤에는 협회와 후원사의 미담이 숨어 있다. 선수 선발 과정이나 훈련은 물론 다양한 지원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 과연 그 선수의 그 협회라는 생각에 그냥 고개가 끄덕여진다. 양궁협회(현대차)와 펜싱협회(SK네트웍스)가 대표적이다. 사격협회 회장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사표를 내면서 뒷말을 남겼지만 이번에 협회가 선수 선발 과정을 획기적으로 바꾸자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반대로 배드민턴협회나 축구협회는 국민 밉상으로 전락했다. 협회가 아무런 전문성 없이 주먹구구로 운영되는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 국회는 민의의 전당은커녕 말폭탄의 전장으로 전락했다. 총, 칼, 활보다 더 독한 말로 상대방을 마구 찌르고 베며 서로 어깃장을 부려서 되는 일이 없게 만드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제22대 국회가 시작된 지 2달이 넘도록 국회의원들이 한 것이라고는 탄핵 시도와 필리버스터 및 재의결 시도 밖에 없다. 대통령 탄핵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검사 탄핵에 더해 방통위원장 탄핵을 시도하느라 여야 사이 강대강 대치가 끊임없다. 채 해병 특검법을 포함해서 벌써 몇 개의 쟁점 법안이 필리버스터 끝에 표결로 통과되면 대통령은 재의요구를 해서 국회에서는 부결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사이 민생 법안은 하나도 통과되지 않았다. 국회에서 그 누구 하나 쓴소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겨우 주호영 국회 부의장이 이제 바보들의 행진을 그만하자고 한 게 처음이었을 것이다. 여론이 안 좋고 민생이 바닥을 치고 있어서인지 지난주에 드디어 양당의 정책위원회 의장, 원내 수석 부대표, 원내대표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말폭탄을 던지고 통보만 하던 사이에서 이제 여야 간에 의견 차이가 작은 민생 법안들을 골라서 먼저 통과시키자고 한단다. 이마저 안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이게 모두 국민의 눈에는 여론에 떠밀려서 억지 춘향격으로 하는 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몇 번 하다가 또 말폭탄 전쟁이 재개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민은 더 이상 거창하나 현실성 없는 협치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신 제발 숨 쉬고 살 수만 있게 해달라는 게 국회에 거는 희망의 전부다. 한국 경제가 금융위기 때나 코로나 때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7월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폐업 신고 사업자가 99만 명으로 2022년(87만 명)보다 13.7% 증가했다. 2006년 통계 집계 이후 최고 기록이다. 폐업 이후 이들은 실업자나 아예 비경제활동 인구가 되는데 이 역시 증가세다. 올 상반기 부도 건설사가 20곳인데 전년 대비 2배이다. 상반기 종합건설사 폐업 신고가 전년 대비 38.7% 늘었고 전문건설사 폐업 신고도 6% 늘었다. 악성 미분양도 계속 증가세다. 티몬과 위메프 대란으로 6만 이상의 영세업체가 줄도산 위기고 소비자 피해도 엄청나다. 국민은 국회에서 말폭탄 전쟁보다는 민생회복의 아이디어와 진정성 경쟁에서 금메달리스트들이 쏟아지기만 기다리는 중이다. # 양궁 대표들은 5개 금메달 전관왕으로 8월에 귀국했는데 이제 9월에 바로 2025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계급장을 모두 떼고 동등하게 참가한단다. 올림픽 선수단 수는 대폭 줄었는데 성적은 역대급이다. 세비만 받고 시간만 축내는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일 때가 아닌가. 그 세비 아껴서 차라리 안세영 선수 치료비로 쓰는 게 더 낫지 않나. 말폭탄 잘 쏘아대서 전투력 좋고 당대표나 대통령에게 충성 맹세하는 사람 말고 양궁 대표같이 정말 실력 있는 사람만 고르고 골라서 국회로 보내고 청와대로 보낼 방법을 궁리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국회가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에 투철하고 서로 신뢰와 존중으로 똘똘 뭉친 양궁협회같이 거듭나느냐 아니면 국민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배드민턴협회가 되느냐 갈림길에 섰다. 이준한

[EE칼럼] 에너지복지는 기후변화의 안전판

폭염 누적 사망자가 지난 주말 현재 11명에 이른다고 한다.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 7월 22일은 전 지구 평균온도가 17.15℃를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더운 하루가 되었다. 지금까지 기록은 평균 기온 17.08℃를 찍은 2023년 7월 6일이었다. 불과 1년여만의 기록 경신으로 여름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전 세계 냉방수요도 덩달아 폭증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지난달 19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올해 전 세계 전력수요가 4%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며, 주요 원인으로 인공지능과 함께 에어컨 수요 증가를 지목했다. 국내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도 2020년 89.1GW에서 2023년 93.6GW로 3년 만에 무려 4.5GW가 증가할 정도로 급증 추세다. 에너지 빈곤층에게 폭염은 어쩌면 혹한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추위는 단단히 갖춰 입고 연탄이라도 때며 버텨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루 종일 이어지는 불가마 더위는 냉방 이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 빈곤층의 대표적 거주 공간인 쪽방 주민에게 폭염은 그 자체로 위협 요인이다. 낮에 달궈진 열이 식을 겨를 없이 밤까지 이어지는 쪽방은 언제든 온열질환을 일으키는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 대개의 국민은 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값싼 전기요금 덕분에 냉방기를 빵빵 돌리며 더위를 이겨나가고 있지만, 에너지빈곤층은 폭염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사투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 빈곤은 인간의 존엄을 넘어 생존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빈곤이 이슈화된 것도 요금 미납으로 전기가 끊긴 집에서 촛불을 켜고 자던 여중생이 불이나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2005년부터다. 하지만 그 이후 에너지기본법,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등이 제정되며 에너지복지 정책의 필요성만을 선언했을 뿐, 에너지바우처와 같은 실질적 지원책은 거의 10년이 지난 2014년이 되어서야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로 시작되었다. 실질적인 에너지복지 정책을 도입한 지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동안 에너지 환경은 비할 바 없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기후변화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글로벌 핵심 이슈로 등장했으며, 10년 전에는 개념도 생소했던 탄소중립 가치가 현재 에너지정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에너지복지의 중요도는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탄소중립과 함께 날로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는 기후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화석에너지 사용을 사실상 없애는 탄소중립을 2050년까지 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탄소중립의 핵심은 석유, 석탄, 가스와 같은 화석에너지의 비중을 줄이고, 원전과 재생에너지와 같은 소위 무탄소에너지 비중은 늘리는 데 있다. 최근 재생에너지 보급이 급증하고 있는 배경이다. 최근 재생에너지 자체의 발전단가는 기술 발달과 함께 감소 추세에 있으나, 기술적으로 최종 소비자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 재생에너지 비중과 함께 확대될 수밖에 없는 에너지저장장치, 수소, 백업설비 등과 같은 보완설비로 말미암아 전체 시스템의 발전단가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인 독일의 전기가격이 인접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사실이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탄소중립은 곧 고에너지 가격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에너지빈곤층의 고통은 에너지가격 인상과 함께 날로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한편,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여도 지표면의 온도는 1.5도 정도는 상승하게 된다. 지금보다도 훨씬 더워진다는 의미다. 더욱이 탄소중립에 실패하면, 지표면 온도의 상승폭은 더욱 확대될 것은 자명하다. 탄소중립 성공에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표면 온도가 전망치보다 훨씬 높아질 경우에 대한 대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기후변화로 여름철 폭염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탄소중립으로 에너지비용은 높아질 테니, 이래저래 에너지빈곤층의 고충은 나날이 심해진다. 에너지복지는 기후변화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 에너지복지의 규모와 범위를 기후변화 적응 정책 차원에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재원은 전기가격의 정상화를 통해 마련할 수 있다.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는 생필품적 성격과 사치품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폭염과 혹한을 피할 수 있는 정도의 에너지는 모두에게 차별 없이 공급되어야 하지만, 한전의 부채를 늘려가면서까지 모든 가계에 원가 이하의 전기를 공급할 이유는 전혀 없다. 박주헌

[데스크 칼럼]호주에서 배운 수익형 부동산 해법

이번 여름휴가 동안 호주 시드니 근교 여행 기회가 있었다. 시드니는 세계 3대 미항(美港) 중 하나인데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란다. 온화한 기후, 잔잔한 파도, 충분한 수심 등 3박자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실제 시드니항의 바다는 파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고요했다. 주목한 것은 시드니가 이 아름다운 항구와 세계적 건축물 오페라하우스를 충분히 활용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객들에게 '야경(夜景)'을 제공하기 위해 시드니항 일대 빌딩들이 모두 전등을 켜놓고 퇴근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 밤에도 우뚝 선 고층 빌딩 숲에 전등이 다 켜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하는 사람은 하무도 없다. 관광객들은 빼어난 야경에 넋을 잃는다. 호주 정부·국민들이 전기요금을 걱정했다면 제 아무리 오페라하우스가 있었더라도 어두컴컴한 항구 도시에 실망했을 것이다. 시드니 내항의 재개발 역사도 들을 수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시드니항은 무역항 기능을 상실했다. 2000년대까지 재개발을 통해 낡은 항만·철도 부지를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누구나 탁 트인 바닷가의 워터프론트에서 산책과 조깅을 즐길 수 있다. 노천 카페·음식점에서 편안하게 먹고 마시며, 작은 상점에서 쇼핑을 즐기는 휴식과 상업의 공간이다. 호주 정부는 이 과정에서 기존 건물을 그대로 재활용하고 수변 공간을 사람에게 돌려주겠다는 공공성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유연성을 발휘했다고 한다. 방치됐던 낡은 창고를 완전히 개조해 깔끔한 주거용 아파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처럼 빡빡한 규제 국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유연한 시스템이다. 시원한 남반구 '겨울 나라'에서의 꿈같은 휴가에서 돌아 오니 다시 '폭염 지옥'이다.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도 '찜통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고용시장 지표 악화에 따른 R(경기침체) 공포가 시장을 뒤흔들었다. 일시적 현상이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다소 안정을 찾고 있긴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팬데믹(글로벌 대확산) 이후 재택 근무 확산으로 인한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실을 주목한다. 실제 최근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소재 빌딩이 5년전 가격의 40분의1에 매각됐다. 지난해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취약성을 드러낸 미국 금융시스템은 상업용 부동산 부실 채권 악화로 언제든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재현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부동산 시장 문제가 심각하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도 잡아야 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도 해소해야 한다. 외국에 비해 특이한 점은 지식산업센터(지산)나 생활형 숙박시설(생숙) 등 수익형 부동산 부실이 '숨은 시한폭탄'이라는 점이다. 해법으로 호주 정부가 강력하고 원칙적이면서도 유연한 정책으로 시드니항을 세계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가꾼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왜곡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규제였다. 물론 원칙과 기준을 정해 관리·감독을 하되, 수요와 공급의 주도권은 시장에 맡기는 게 좋다. 기왕 만들어 놓은 건축물을 방치하느니 활용하는 게 낫다. 막대한 사회적 자원을 투입한 지산과 생숙, 지방 신도시 상가, 구도심의 빈 건물 등을 개조해서 다양한 용도로 써먹도록 제도·규제를 개선해야 한다. 다만 기존 건축물과의 형평성을 위한 보완책은 필요할 것이다. 김봉수 기자 bskim2019@ekn.kr

[기자의 눈] 만약 벤츠 EQE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최근 발생한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기차 화재 사고에 많은 소비자들이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에 큰 실망감을 보이고 있다. 프리미엄 차량에 저가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된 것에 이어 사고 수습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이전까지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사고 차량인 EQE에 글로벌 1위 배터리 기업 CATL 배터리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조사해보니 EQE에는 CATL이 아닌 소비자들에게 매우 생소한 파라시스라는 브랜드의 제품이 탑재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황당한 점은 이 사실이 벤츠코리아가 아니라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벤츠코리아는 여전히 “제조사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며 발뺌만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벤츠코리아 측은 'CATL과 협력하고 있다'는 내용을 출시 때부터 은근히 흘려왔다. 이러한 상술에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도 당연히 CATL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믿고 있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한국 소비자들을 완전히 속인 것이다. 게다가 벤츠코리아는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라"는 고객들의 요청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한국 소비자들을 제대로 기만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인천 전기차 화재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1억짜리 EQE에 염가형 파라시스 배터리가 들어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지긴 했을까. 내 돈 주고 샀는데 내 차가 어떤 제품을 탑재했는지도 모르고 타야하는 현실은 지극히 불합리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명실상부 한국 소비자들의 '원픽' 수입차 브랜드다. 수많은 품질 논란에도 소비자들은 '그래도 벤츠는 벤츠'라며 폭발적인 수요를 매년 이어왔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이 같은 믿음에 벤츠코리아는 배신으로 화답했다. 이는 기존 오너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다. 벤츠코리아가 계속해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EQE 오너들은 자신의 차도 언제 불이 붙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가야 한다. 벤츠코리아는 신차 출시 때마다 한국은 브랜드 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요 시장이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그런데 작금의 행실대로라면 벤츠코리아는 한국을 그저 '호구 시장' 이상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는 듯 하다. 각종 참사를 겪으며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 의식 수준은 높아지는 추세인데 벤츠코리아는 요지부동이다. 벤츠코리아가 이번 화재 사고를 엄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맞다면, 한국 소비자들을 호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해 뜨거운 성원을 보내온 한국 소비자들의 실망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길 바란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안전에 관한 이해 당사자인 만큼 벤츠코리아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한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박원주 칼럼]산업정책의 역할과 기대

산업정책은 국가 안보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루스벨트 연구소의 토드 터커는 산업정책을 '투입 비용이나 산출물 가격의 변화 또는 다른 규제적 수단을 통해 유한한 자원을 하나의 섹터나 산업으로부터 다른 쪽으로 넘기는 모든 정부 정책'으로 정의했다. 이처럼 산업정책은 국가 발전을 위해 정부가 차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책이 바람직한가? 답하기 어렵다. 특정 산업에 혜택을 준다는 것은 그 범위밖의 다른 산업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과 같다. 게임의 룰을 어기는 행위인 것이다.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산업정책은 기존 거래의 판을 깨는 행위에 해당한다. 특정국이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켜서 교역조건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므로 내가 가지는 만큼 남의 것이 줄어드는 Zero Sum적인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는 교육, 연구개발, 사회문제 해결의 범위를 넘어서는 각국 정부의 인위적 시장개입을 극도로 경계해 왔다. WTO, TRIPs 등 각종 국제 조약을 얼개로 각국의 차별적, 개입적 산업정책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그래서 지난 수십여년간 산업정책은 다들 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안한 척 하는 것이었고, 상대국이 알게 되면 박 터지는 무역분쟁의 대상이 되곤 했다. 산업정책을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의도적 개입이라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그 대표적 성공 사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 정부의 집요한 산업정책이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산업정책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보통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출발점으로 본다. 그러나 산업정책의 주체를 '정부'에서 '공동체'로 완화해 준다면 조금 더 시기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21년 9월 일제 총독부가 조선산업조사위원회를 열었다. 당시 우리 기업인들은 조선인을 위한 산업정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지만 일본정부는 제국 방침에 맞추어 한반도에서는 산미 증식과 철도 건설에 주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때 동아일보가 이 조치를 '조선 경제를 일본에 완전히 예속시키려는 것'이라고 직격하면서 1920년대초부터 1930년대 말까지 물산장려운동이라는 공동체 차원의 경제자립운동이 벌어진다. 이 운동은 당시 한국인들을 대표할 정부가 없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산업정책의 본질을 그대로 담았다. 조선인의 산업적 지능을 계발, 단련하고, 조선인이 만든 상품을 애용해서 시장을 창출하며, 조선인의 경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조사, 연구, 지도활동을 수행한다는 내용은 기술개발, 인력양성, 시장창출, 조사연구, 현장 애로지원 등 지금 우리의 정책과 흡사하다. 21세기 이후 세상의 물길이 바뀌고 있다. 과거 자유무역을 선도했던 미국은 이전 트럼프 행정부를 필두로 지금의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인 미국 우선의 산업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철강, 알미늄, 세탁기, 태양광 패널 등에 고율 관세를 매기고 기업 인수합병 규제 등을 통해 중국의 기술 경쟁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반도체법, IRA 등 공세적인 보조금으로 반도체, 전기차, 2차전지 등 외국의 첨단 산업을 미국으로 가져가고 있다.이전의 반칙이 이제는 일상이 되고 있다. 일본도 다를 바 없다. 2017년 우리나라에 대한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에서 보이듯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기술 분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EU 등 세계 각국들도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전 세계가 산업정책의 본격적 재림을 목도하고 있다. 코로나 종식선언 이후 지금까지 고금리,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사태, 공급망 애로, 무역규제, 내수 위축 등 무수한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앞이 안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당장 미국 대선의 향배만으로도 환율과 이자율이 출렁거리고 있다. 각국의 거세진 압박으로 우리 아이들의 일터가 되어야 할 공장들이 남의 나라에 지어지고 있다. 과거 정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자주적인 산업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언가 준비되고 있지 않다면 100년전의 선배들 볼 낯이 없다. 물론 지금의 복합 위기는 과거 고도성장 초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젊고 근면하며 우수한 노동력, 효율적인 의사결정시스템, 기술을 공여하고 시장을 열어주던 우방국들... 모두 지나간 이야기다. 사회시스템은 경직되고, 노동시장은 갈등과 대치를 못 벗어나고 있으며, 국민들은 늙어가는 나라. 새로운 산업정책의 처방 또한 극히 복합적이어야 할 것이다. 외교, 국방, 재정, 금융, 노동, 복지, 세제, 중소기업 등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메타플랜이 아니라면 답도 없을 것 같다. “수출도 잘 되고, 부동산 경기도 회복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말보다는, 피부로 체감하는 위협과 다가올 시련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뼈를 깍는 대안과 비전을 내놓을 수 있는, 우리 정부의 통찰력과 진지함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박원주

[기자의 눈] 전삼노와 APU의 우려스러운 언론관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비위에 따라서 사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 1일 오전 10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으레 그렇듯, 현장에 찾아온 기자들은 워딩을 듣고 받아치거나 녹취한다. 그날도 그 자리에 온 기자들은 전삼노가 홈페이지에 공지한 내용을 보고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에 올라와 취재하기 바빴다. 그러나 기자회견 내용은 더운 날씨만큼이나 실망스러웠다. 이날 전삼노 관계자는 “사측이 2023·2024 임금 교섭을 병합하며 휴가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일방적으로 반려해 철회됐다"며 “성과급을 더 달라는 게 아니라 투명화 요구"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패밀리넷 포인트 200만원을 요구했다며 되팔이범으로 호도한 서울경제 기자님 오셨느냐, 이렇게 중요한 기자회견 자리에 오지도 않고 기사를 썼느냐"며 “언론사가 2년치 임금 교섭 요구를 철저하게 짓밟았다"고 주장했다. 또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놔 의사 표현을 하러 온 것인지, 특정 언론인을 상대로 조리돌림하며 겁박하러 온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필자는 질의응답 시간에 “기자회견의 취지와 목적이 임금 협상을 포함한 근로 조건 개선에 있는 건지, 무노조 경영 폐기에 방점이 찍힌 건지 궁금하다"고 했고, 이어 “전삼노를 제외한 나머지 4개 노조들과 계열사 노조들도 사측이 탄압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유튜브 스트리밍을 담당하던 전삼노 관계자는 댓글창에 공식 계정으로 “제가 현장에서 법규(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든 욕설)를 날렸어야 하는데 아쉽네요"라고 적었다. 또 뉴시스 기자가 “패밀리 포인트와 관련해 사측은 50만원, 노조는 당초 250만원을 요구했다는데 그 시점이 언제인가"라고 묻자 전삼노 측은 “그런 걸 왜 물어보느냐"며 핀잔을 주는 모습도 포착됐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기자들을 땡볕에 불러세워놓고 다소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질문을 받으니 이 무슨 무례한 행동을 한단 말인가. 철저히 언론을 자신들의 나팔수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면 오산이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APU)도 마찬가지다. APU는 벨기에 브뤼셀 소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찾아가 에어인천의 아시아나항공 화물본부 인수 적합성을 철저히 조사해달라며 당국자와 면담을 진행했다. 이들은 EC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과 직원 사이의 고용 관계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고, 필자는 업계 의견을 취합해 “EC가 의견 제시를 거절했다"는 내용을 기사에 반영했다. 그럼에도 APU 관계자는 “EC가 고용 관계는 자기들의 권한 밖임을 설명한 것"이라며 “우리가 제출할 추가 자료를 EC가 환영한다는 내용은 눈에 안 들어오느냐, 편향적으로 그 따위 기사를 쓰느냐"고 따졌다. 또 “당신 같은 사람은 기자로 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측)자료 공유를 하지 않을테니 능력껏 구해보라"며 당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선 “박규빈 기자는 대한항공으로부터 무얼 받아먹었길래 이런 기사를 쓰느냐"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APU는 그 말에 책임 질 수 있나? 필자는 취재를 통해 사건을 심층적으로 설명하거나 배경을 알려주는 '해설 기사'를 썼을 따름인데, 이 정도면 가히 언론에 대한 폭거라고 할만하다. 언론이 언더 도그마에 빠져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언제나 모든 매체가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오만한 발상이다. 거친 언사로는 가장 먼저 만나는 시민인 기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노조 관계자 제위의 성숙한 대 언론 자세를 촉구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신율의 정치 칼럼]이재명 전 대표가 한동훈 대표에게 줄 시사점

정책위 의장의 사임 문제로 국민의힘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결국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김상훈 의원이 신임 정책위 의장으로 결정됐는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런 측면은 한동훈 대표의 당내 입지가 아직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면,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전 대표가 민주당을 어떻게 장악했는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전 대표는 과거 민주당의 철저한 비주류였다. 지금이야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와 매우 가까운 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필요' 때문이지, 두 사람이 원래부터 가까운 사이였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조국 대표는 친문의 적자이지만, 이재명 전 대표는 친문의 적자이기는커녕 오히려 '박해'를 받았을 정도의, 완전한 비주류였기 때문이다. 박해받는 비주류 인사가 민주당을 장악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당 외부의 강성 친명 지지층으로부터 나왔다. 즉, 당의 주류였던 친문 세력이 힘을 잃게 된 이유는 바로 강성 친명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이재명 전 대표가 '전통적 방식'으로 당을 장악하려 했다면, 실패했을 확률이 90% 이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비주류가 당내에 확고히 뿌리를 내린 주류를 '전통적 방식'으로 공격한다고 해서, 주류가 흔들리기는 만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적 방식이란, 당내 의원들을 차곡차곡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세를 확장하고, 끝에 가서는 당을 장악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이런 방식은 주류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됐을 때나 가능하다. 이재명 전 대표는 당 내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당 외부로부터 내부에 진입하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이재명 대표의 정치력과 정치 감각이 매우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측면을 한동훈 대표는 참고할 만하다. 그런데 한 대표가 지금 처한 상황은, 과거 이재명 전 대표가 당을 장악했던 상황보다는 훨씬 낫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과거 친문이 주류를 이루었던 민주당보다는, 주류인 친윤 세력의 당 장악력이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재명 전 대표의 방식, 즉 당 외곽으로부터 내부로의 진입이 훨씬 용이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경우처럼, 매우 충성도 강한 팬덤을 가지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 팬덤을 가진 정치인은, 한동훈 대표와 박근혜 전 대통령 정도다. 팬덤이 없는 정치인은 당 외곽에서 내부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기는 힘들지만, 한 대표의 경우처럼, 팬덤을 가지면, 외곽에서 당 내부로 장악력을 확장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이미 당 지도부의 과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친윤들이 한 대표를 어떤 식으로든 흔들 가능성은 상존하기 때문에, 한 대표가 당을 장악했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 대표가 이재명 전 대표와 같이 당을 '1극 체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여론에 대한 반응성이 떨어지는 대통령실과는 달리, 여론에 적극 호응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목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 정치 전체를 놓고 볼 때, 팬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정치는 현실이기 때문에 팬덤이라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을 언급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한 대표는 팬덤을 이용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위론적 주장일 뿐 현실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동훈 체제가 어떻게 당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신율

[EE칼럼] 헤어질 결심이 필요할 때다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건 쉽지 않다. 헤어진 후 새로운 것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면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해 꼭 헤어져 할 때가 있다. 지난 7월 29일 한국원자력학회가 '한국형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 솔루션'을 발표했다. 골자는 “외국 사례는 참고하되 우리 기술을 활용해 우리 환경에 맞는 처분장을 2050년대 초까지 확보하자"이다. 학회의 발표는 그간 업계에서 당연히 여긴 몇 가지 관습과 과감히 헤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첫째, '외국 맹신주의'다. 과거 우리 원자력계는 처음 접하는 일을 만날 때마다 가장 먼저 외국 사례를 찾았다. 안전 규제도 마찬가지였다. 외국 사례가 있으면, 그것을 기준 삼아 일을 해결했다. 그간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외국과 우리나라의 지질 환경과 사회 분위기가 다르다. 문제가 다른데, 남의 답을 그대로 가져와 우리 답으로 삼을 수는 없다. 남의 답은 참고는 하되, 우리 문제에 맞는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둘째, '연구 지상주의'다. 자연 현상 규명이나 사회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연구개발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연구를 위한 연구'는 더 이상 안 된다. 사용후핵연료는 지하 500m 이상 깊은 곳에 처분한다. 그곳의 환경을 잘 알아야 처분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할 수 있다. 그래서 지하 환경 규명을 위한 연구는 꼭 필요하다. 예를 들어, 처분장에서 방사성 핵종의 매년 이동 거리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이동 거리를 소수점 이하 몇째 자리까지 확인할 필요는 없다. 처분 시스템을 구축할 때 충분한 안전마진을 두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한 해법 지향적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나만 아니면 돼 주의'다. 그동안 사용후핵연료는 뜨거운 감자였다. 누구든 자기가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불똥이 튀는 걸 꺼렸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미뤘다. 그러다 보니, 원전이 도입된 지 5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계획도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언제까지 확보할 것인지, 구체적인 연도를 밝히고 있지 않다. 처분장 부지 선정 절차 착수 후 37년 안에 확보한다고 돼 있다. 착수 시점이 불확실하니 확보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원전의 혜택을 누린 우리 세대가 확실한 목표 시한을 정하고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지금 우리 역량이라면 충분하다. 2050년을 처분장 확보 목표 시점으로 잡은 이유다. 넷째, '규제강화 = 최적이라는 오산'이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여파가 큰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의 실제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를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규제를 강화했다. 그것이 국민감정을 달래고 행정적으로 가장 편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제강화가 우리 사회 안전의 실질적 향상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강화된 규제가 사회 재원의 분배를 왜곡시키거나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 등이라면, 애초의 규제 목적과 거리가 먼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진이 날 때마다 우리 언론은 원전 안전을 걱정하는 기사를 쏟아낸다. 그러다 보니 규제가 날로 강화된다. 그런데 원전은 지구상에서 지진에 가장 잘 대비된 구조물이다. 반면 국내 건축물이 내진성능이 기준을 만족하는 비율은 2021년 8월 기준 13.2%였다. 뒤집어 보면, 나머지 건축물은 지진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非내진 설계 건물 대신 원전의 내진 보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실질적 안전 대신 심정적 위로를 위해 재원의 왜곡된 투자를 부추기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심층 처분하면, 방사성 핵종이 생태계로 빠져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온다 쳐도 현행 안전기준의 1/1000 수준에 불과하다. 심층 처분의 안전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현행 요건은 처분장 폐쇄 후 10000년간의 방사선영향 평가를 요구한다. 이 '10000년'이라는 기간 때문에, 사람들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이 매우 어렵고 처분장이 장기간 위험한 곳인 양 오해하기 십상이다. 이런 오해 확산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처분 안전성을 보여 문제 해결을 촉진하려 한 애초 의도와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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