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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뉴삼성 컨트롤타워 재건 더 늦출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리더십을 짓눌러 왔던 '사법리스크'가 해소됐다. 지난 5일 3년 5개월을 끌어온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 됐다. 이재용 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 당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던 '미전실'이 무죄를 받은 것이다. '미전실'은 삼성그룹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미래 먹거리 발굴과 투자기획, 각 계열사의 사업 조정과 굵직한 인수합병 조율, 감사, 법무 등 그룹 전반의 현안문제와 미래전략을 조율했다. 여기에 각 계열사 사장단과 임원에 대한 인사권까지 가지고 실질적인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비판의 여론이 거세지자 미전실은 2017년 이 회장의 지시로 해체됐다. 하지만 재계와 경영학회 등에서는 대내외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삼성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 해줄 새로운 '컨트롤타워'의 재건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꾸준하게 내놓았다. 이러한 여론이 있다는 걸 삼성도 알고 있지만 해체 지시 당사자인 이재용 회장의 결단이 없으면 조직 재건에 나설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스스로 해체를 선언했는데 다시 만들려면 명분이 넘쳐나야 하기때문이다. 그러나 1심 무죄 선고 이후 이재용 회장이 찾은 현장과 메시지에서 '컨트롤타워' 재건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회장은 지난 9일 말레이시아 삼성SDI 생산법인 현장을 찾은데 이어 지난 16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찾았다. 두 현장에서 이 회장은 “어렵다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투자해야 한다.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를 주도하자"고 주문했다. 또 “현재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 과감하게 도전하자.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미래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삼성SDI의 전기차용 배터리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시밀러는 2010년 이건희 선대회장이 '미전실'을 통해서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낙점하고 투자를 단행한 사업이다. 이 회장은 두 곳에서 투자·도전·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또 앞서 지난해 연말 단행한 인사개편과 조직신설에서도 '컨트롤타워' 재건의 의지를 엿볼수 있다. 삼성전자는 10년 후 삼성의 미래 먹거리 아이템 발굴에 집중하는 조직인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했다. 이 조직은 부회장급 전담조직으로 첫 단장에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를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키우는데 기여한 전영현 삼성SDI 이사회 의장이 선임됐다. '미래사업기획단' 역시 이건희 선대회장이 2007년 삼성의 컨트롤타워였던 전략기획실에 주문해서 탄생한 '신수종사업발굴 태스크포스팀(2009년 신사업추진단)'과 유사하다. 당시 신사업추진단은 '미전실' 수장 김순택 부회장이 이끌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2010년 경영에 복귀하면서 태양광·LED·배터리·바이오·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사업에 23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검찰의 항소로 삼성전자 등기이사와 컨트롤타워 재건 추진에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이재용 회장은 이제 당당하게 삼성그룹을 이끌어갈 총수로서 여러 난관에 정면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16개 상장계열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800만여명의 주주와 관계사, 그리고 국민적 기대와 정부의 기대에 부응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삼성그룹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기업"을 지향한다면 지금이라도 지체없이 미래전략에 대한 수립과 강력한 추진력을 담보할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재건해야 한다. 송영택 기자 ytsong77@ekn.kr

[김상호 칼럼] 하남시민 소환하라, 국회의원 선서문

새해부터 무거운 마음으로 대한민국 정치 뉴스를 마주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배현진 국민의힘 국회의원에 대한 테러는 민주주의 위기, 사회적 비극 사건입니다. 정치인은 갈등 한복판에 있으며, 대중과 함께하기 때문에 '정치인에 대한 폭력은 있을 수 있다'고 우리 상황을 위로하기에는 '혐오 및 증오 정치'가 임계점을 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재명 대표 테러사건에 대해 “특정한 어떤 집단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자신이 일정의 그런 행위를 한 것은 순교자로서 어떤 행동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혐오정치, 증오정치의 숙주는 정치 양극화입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는 고장 난 대한민국 정치 때문입니다. 팬덤 정치에 휘둘리는 정치환경 때문입니다. 얼마 전 MBC 스트레이트가 방송한 '유트브와 팬덤정치' 편에 의하면 진보채널과 보수채널을 유튜브에서 모두 시청하는 비율은 5%에 불과합니다. 일종의 유사 정당 역할을 하는 유튜브 채널이 혐오정치 배양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가장 큰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민주주의 후퇴 지수 통계가 이를 방증합니다.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기관(V-DEM)에서 조사한 민주주의 지수가 2022년 17위에서 2023년 28위로 하락했습니다. 숙의민주주의 지수는 14위에서 45위로 하락했습니다. 대화가 사라졌습니다. 야당 대표를 만나는 대통령 책임과 의무를 방기합니다. 윤석열정부는 임기 1년8개월 만에 9개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해 박정희 대통령 이후 최다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분노를 키우는 양극화 정치의 토양을 만들어줍니다. 민주당 역시 거대 야당으로서 유능함을 바탕으로 국민적 지지를 확장하는 통합정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선공약인 현행 준연동형 선거제도 약속을 지킨 것은 다행입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한 정치혁신이 제도로서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 같은 역할이 필요합니다. 세계인들 박수 속에 퇴임한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포용-협치 정치로 세계에서 독일을 위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대통령과 정당 지도자들 국정운영, 정당운영 혁신이 제1 과제입니다. 또한 고장 난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 정치지도자와 정치제도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개인의 자질 향상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총선 출마 후보자들의 철학과 정책이 중요합니다. 양극화 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 혁신 구상은 무엇입니까? IMF 이후 경제 양극화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분 대안은 무엇입니까? 고조되는 한반도 전쟁 위기, 남북 간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안보관, 평화관은 무엇입니까? 하남시 지역위원회 운영 민주화와 화합의 정치를 위한 공약은 무엇입니까? 시민 여러분이 묻고 공약을 확인해야 합니다. 프랑스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습니다. 주권자로서 함께 책임지고 실천하는 국민 역할이 필요합니다. 특히 투표에 앞서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서문을 기억해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출마자들이 선서문대로 할 것을 요구하고, 그 기준에 따라 평가하면 됩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양극화로 고장 난 정치를 복원하는 길의 해답은 정치지도자 국정운영과 정당운영 혁신, 국회의원 자질 향상에 있습니다. 민주주의 후퇴를 막는 유권자의 투표 기준에 있습니다. 김상호 전 하남시장 kkjoo0912@ekn.kr

[기자의 눈] 누구를 위한 ‘단통법 폐지’인가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유통법·단통법)이 1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정부는 이동통신 시장 경쟁 촉진을 위해 단통법 폐지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강조하지만 정작 업계나 소비자 반응은 시큰둥하다. 단통법은 첫 시행 때 취지가 무색할 만큼 그간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른바 휴대폰 성지는 전국 곳곳에서 성행해왔고, 정보 불균형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차별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단통법 시행 이후 소비자들이 유통 대리점 간 가격비교를 할 수 없게 되면서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는 성지 정보와 암호 가득한 시세표를 입수한 소수의 소비자들만 더 큰 혜택을 보는 형국이었다. 문제는 단통법이 사라진다고 해도 단말기 구매 가격이 큰 폭으로 줄어들진 미지수라는 점이다. 이미 10년 전 이동통신 3사가 점유율 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보조금 경쟁에 나선 것과 달리 포화 상태인 현 시장 환경에선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경쟁에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통법 폐지는 정부가 그간 통신과점 해소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알뜰폰 활성화 정책과도 대척점에 있다. 정부 요구로 이동통신 요금제는 더 저렴해지고 세분화하는 가운데 유통대리점의 추가 지원금까지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은 고사 위기에 처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전날 방송통신위원회는 단통법 폐지 전 시행령 개정부터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전면 폐지에 상당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우선 시행령 개정을 통해 빠르게 지원금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정보 불균형으로 인한 역차별 해소 방안은 아직 전무하다. 혼란한 틈을 타 '공짜폰', '갤럭시 대란' 등 자극적인 단어를 담은 허위광고도 쏟아지는 모양새다. 일부 정치권에선 단통법 폐지가 '총선용 포플리즘'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과거 호갱 없애자고 만든 단통법이 또 다른 호갱을 양산한 것처럼 빠른 법 폐지에 집중하기보단 소비자와 시장 보호를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소진 기자 sojin@ekn.kr

[EE칼럼] 글로벌 공급망 위기, 기회로 삼아야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과 핵심광물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올해도 격화될 분위기다. 지난해 말 미국이 첨단 반도체에 이어 범용 반도체의 대 중국 수출 제재에 나서자 중국은 곧바로 희토류 수출 제한을 확대하며 맞불을 놓았다. 미·중 갈등이 불러온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우리 경제에서 미국과 중국을 빼 놓고선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지난 20년간 최대 수출 시장 자리를 지킨 중국이 올해도 계속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올해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중국 때리기가 더 강해지면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로 우리 수출에 악재가 될 수 있다. 또한 공급망 재편을 발판으로 미국이 다시 우리의 제1수출 시장으로 떠오를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한국 의존도는 감소한 반면 한국의 중국 의존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핵심 수출산업인 반도체, 이차전지 제품 산업에서 대중국 수입 의존도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 EU(유럽연합), 중국은 전략적 산업과 통상정책을 통해 경제안보를 위한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구체적인 법안을 도입하거나 시행 중으로 공급망의 다변화 현상이 점차 가시화 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세계 공급망 교란과 우려국의 비시장 조치 남용에 대응하기 위한 공공투자의 필요성을 밝혔고,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등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와 함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 및 과학법 등을 도입했다. EU는 통상 및 산업전략 등에서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목표로 전기차 및 배터리, 반도체 등 주요 전략산업에서 공급망 역내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후중립산업법(NZIA), 핵심원자재법(CRMA), 한시적 보조금규제완화(TCTF), 역외보조금 규제(FRS), 반도체법 등이 EU의 정책적 방향성을 보여주는 법안들 이다. 중국은 2020년 10월 발표한 14차 5개년 계획을 통해 공급망 상단의 과학기술 혁신을 핵심 국가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중국 수출 비중 감소와 수입 비중 증가로 전체 무역의 60% 이상을 중국산 중간재가 차지하고 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간재의 대중국 의존도가 가장 높은 산업은 전자제품, 컴퓨터, 통신장비 제조업(204억 달러 25.7%), 의약품을 제외한 화학제품(192억 달러 24,1%), 전기장비(118억 달러 14.9%) 순으로 주로 우리의 주력 수출산업이다. 여기에댜 최근에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의 원자재 및 중간재 수입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격이 저렴하고 기술 수준이 높지 않은 아날로그 반도체 등의 상당 비중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이차전지 또한 원료가공과 4대 소재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원료가공 중국 의존도는 지난해 기준 수산화리튬 87.9%, 수산화니켈 99.5%, 황산코발트 100% 등이다. 전구체는 금속 수산화물 98.6%, 기타 금속산화물 99.9%이며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산화물 100%, NCM(니켈,코발트,망간)수산화물 92.6%이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주요국이 추진하거나 도입하는 공급망 관련 정책과 규제는 우리 기업의 부담과 비용을 가중 시키고 있다. 따라서 몇가지 주문한다. 첫째, 미국 등 동맹국 및 파트너국과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내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구체적 전략 수립과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지난해 구축한 한·미·일 정상회담을 기반으로 3국 간 정책 공조를 강화하고 실현 가능한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한·중 간 공급망 안정성 확보와 투자 및 신규 이슈 등을 포함한 통상정책 대화를 정례화해야 한다. 넷째, 국내외 자원개발에 나서야 한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의 자원탐사, 연구개발부문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이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은 세계 제조업의 중심이고 우리나라 수출의 22%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교역국이다. 따라서 경쟁력 우위의 첨단제품을 집중 발굴하고 중국 내수 시장을 더 전략적으로 분석해서 접근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기업과 정부가 합심해서 기회로 삼아야 한다. 강천구

[이슈&인사이트] 북한의 ‘적대적 두국가’ 선언과 한국의 대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남노선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제시하고,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라고 하면서,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란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속조치로 조평통,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통일추진기구를 폐지했고,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범민련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등 남북 민간교류에 관여해 온 단체들을 정리했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조국통일 3대 헌장기념탑도 철거했다. 북한의 '통일'과 '동족'을 지우려는 모습은 동독이 '독일 단일민족론'을 부정하며 서독과 단절해 분단을 고착화하려 했던 시도와 흡사하며, 김일성 정권 이래 견지해 온 '민족자주' 통일노선을 파기하게 셈이 된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두 투 코리아(Two Korea)' 정책을 선언한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 체제를 유지하고 흡수 통일을 막기 위한 방어적 성격이다. 남북관계를 독립된 주권국가 관계로 하는 것이 후계구도의 제도화를 위한 정치체제 전환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 간 치열한 체제경쟁의 결과, 한국은 선진적 중견국이 되었으나, 북한은 만성적인 경제위기·식량위기를 겪고 있는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한류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탈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과 정치적·국제법적으로 완전히 단절해 흡수 통일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이다. 둘째, 남한을 향한 핵사용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공격적 성격이다. 북한은 2022년 4월 5일 김여정 담화를 통해 전쟁 초기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의 무력화를 위해 핵 사용을 밝힘으로써 사실상 한국이 대상임을 천명했다. 이제 김정은이 '적대적 국가 간 관계' 선언을 통해 한국을 동족관계가 아닌 독립된 주체이자 타자로 정체성을 규정하여 핵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다 분명히 했다. 셋째, 긴장을 조성해 4월 한국 총선에 영향을 미치고 11월 미 대선 이후 미국과의 담판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위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넷째, 외교 전략 공간을 확대하려는 심산이다.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북러 밀착, 나아가 북·중·러 북방 3각 연대 가능성 등 현 국제정세가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과 보다 가까워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입장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정상화 및 미국과의 수교 교섭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두 개의 국가' 선언은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경계해야 한다.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로 존재함을 인정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통일 추진의 당위성이 약화된다.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주변 4강 등에 대한 통일 외교 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중국 등 국제사회의 협조를 요청하는 데 있어서 제약이 생겨 북핵문제 해결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남북한 특수한 관계' 원칙 아래 처리해 온 탈북자 문제에 있어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헌법 개정 문제 대두가 대두되고 이념 갈등이 증폭될 것이다. 북한내 급변사태 발생시 한국의 개입 명분이 없어지게 되는데, 한국은 통일을 지향하는 분단국가로서 북한 문제에 개입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2국 체제'에서는 개입이 어렵다. 한편으로 김정은의 '두 개 국가' 선언은 북한의 형제국이라 할 수 있는 쿠바에게 부담을 덜어줘 한국과의 재수교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에 대한 불만으로 외교단 소식을 전할 때 쿠바를 언급하지 않았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북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북일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내비쳐 한-쿠바 재수교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두 개 국가' 주장에 대해 통일부는 “북한의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노선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정부로서는 역대 남북 합의가 유효하다는 입장을 확고히 견지해 나가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위기관리에 주력하되, 주변 4강에 대한 외교 전략을 치밀하게 가다듬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북한 주민들이 대내외 실상을 보다 더 많이 알게해 체제붕괴 등 내부 변화가 생기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이강국

[김상호 칼럼] 지킬 수 있는 약속으로 ‘하남 총선’ 치르자!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일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으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You can fool all the people some of the time and some of the people all the time, but you can not fool all the people all the time)" 이 말은 미국 대통령 애브리엄 링컨 명언으로 세계시민에게 알려졌지만 그보다 100여년 이상 앞선 프랑스 작가 자크 아바디가 말했다고도 합니다. 누가 최초이든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명언이자 잠언이란 사실은 분명합니다. 또 선거철이 다가왔습니다. 선거문화가 '연속 게임'이라기보다는 단발성으로 그치다 보니, 후보들도 사전검증이 부족한 공약을 선심성으로 쏟아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위 명언은 선출직에 나서는 사람은 물론 유권자도 책임감을 갖고 다시금 새겨봐야 하겠습니다. 이번 4월 총선에서도 각 정당과 각 후보들은 하남시 발전을 위한 다양한 구상을 내놓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구상들에 대해 제대로 검증할 수 있을까요? 지역 사정을 상대적으로 비교적 잘 안다는 지역 언론도 후보들 공약을 평면적으로 비교할 뿐이지 시시비비를 가려 평가하거나 사회적으로 검증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김영래 전 아주대학교 교수가 2007년부터 시작한 매니페스토 정책이 선거제도 일환으로써 임기과정과 사후적 평가는 나름 제도화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이번 총선에서 하남시 서울시 편입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남시도 이 논란에 있습니다. 각 당과 후보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약속할까요? 이번 사안을 정리해 보면,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는 (가칭)'김포 등 서울시 편입, 서울 메가시티'를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5호선 예타 면제 후 신속 착공, 9호선 연결 검토(및 부울경, 호남권 충청권 메가시티를 통한 지방거점도시 문제 해결/서울 국제경쟁력 제고)를 제시합니다. 사안이 더 커진 것은 국민의힘에서 서울 편입을 원하는 도시들 입장을 반영하겠다고 나서면서입니다. 하남시 미사-위례-감일 등 신도시 아파트연합회 회장단은 “서울 편입 찬성, 그러나 선심성 공약은 우려"라는 입장을 이미 밝혔습니다. '선심성 공약' 언급은 편입 공약에 대한 전체 국민 지지도(2023년 11월1일 리얼미터 조사 결과, 서울 인근 도시 편입 반대 58.6% VS 찬성 31%)가 낮고, 절차 불확실성으로 과연 국민의힘이 추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유정복 국민의힘 인천시장, 김태흠 충남지사, 서병수 국회의원(전 부산시장) 등이 소속당의 공약을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일부 출마자들이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코앞에 닥친 선거에서 하남시 유권자들이 깨어있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유권자들이 흔들리면 정치권과 선거꾼들은 부화뇌동합니다. 부디 지킬 수 있는 약속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일찌감치 찬성 입장을 표명하신 대표단 분들도 주민 의견을 민주적으로 반영하기를 기대합니다. 이 사안은 무조건 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 진리의 길 같은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분석과 검토가 필요하고, 전체 하남시 구성원인 원도심 주민들도 이 사안 중요성에 대해 정보를 공유해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하남시도 서울 편입을 추진할 경우 장단점에 대해 주민들께 소상히 알려주고 여론을 다각도로 취합해야 할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하남시 가치 상승 등 미래적인 부분을 포함해 현재 하남시 세수와 재원 상황이 향후 어떻게 변동되는지 등 구체적 수치들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계획하고 진행해온 도시계획들은 어떻게 추진되는지, 서울로 편입될 경우 향후 도시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기업환경 변화, 교산 신도시 2차 친환경기초시설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요구됩니다. 우리 하남시가 광주군에서 하남시로 독립한지 34년이 지나갑니다. 도시는 구성원들 합의와 협력으로 발전합니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에게, 또 미래 아이들에게 올바른 선택이 될는지 다양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 시민들 집단지성이 필요합니다. 총선을 앞두고 지킬 수 있는, 지켜야 하는 약속들로 심도 있게 토론해가는 정치문화를 기대합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후보자들 어깨가 무거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남시민 통합을 위한 노력을 부탁드립니다. 지역 언론인들께도 부탁드립니다. 사전에 출마자 공약을 검증해주십시오. 이번 4월 총선에서 하남시 정치문화를 혁신하는데 언론인들 역할을 걸기대합니다. 김상호 전 하남시장 kkjoo0912@ekn.kr

세종대 동문, 모교에 장학금 1억 기부

세종대학교(총장 배덕효)는 20일 최금자 동문이 장학금 1억원을 기부했다고 21일 밝혔다. 최 동문은 지난 1961년 세종대 전신인 수도여자사범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강원도 강릉에서 40여 년간 교직 생활을 수행하면서 많은 인재들을 양성했다. 최 동문은 총장실에서 열린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해 외조모 '김양숙'의 이름으로 1억 원 기부를 약정한 뒤 학교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이날 행사에는 최 동문과 배덕효 총장을 비롯해 최성호 총동문회장, 김경원 부총장 등이 참석했다. 최 동문은 “김양숙 외조모께서 제가 오롯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도움을 주셨기에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외조모의 이름로 우수한 학생들이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지원하고 싶었다"고 기부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최 동문은 “학생들이 긍지를 가지고 사회 각계에서 주역이 돼,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사명감을 바탕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가길 바란다“며 "적은 돈이지만 꿈을 키워가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감도 밝혔다. 배덕효 총장은 “학생들을 위해 거액을 기부해 주신 기부자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학업에 최선을 다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원을 약속하겠다"며 “미래 인재 배출을 위한 나눔에 힘써주시는 최금자 동문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세종대는 기부자 의사를 존중해 올해부터 향후 4년 동안 매학기 우수학생 5명 등 총 40명에게 250만 원씩 장학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기자의 눈] ‘제약 세계화’ 막는 AI 데이터 규제 개선해야

제약 분야의 인공지능(AI) 연구자는 최근 국내 AI 기반 신약개발 현주소를 물은 기자에게 “아직 초기단계라 국가별 경쟁력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면서도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면서도 AI 신약개발에서 뒤쳐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AI 기술 자체는 세계 최상위권임에도 신약개발 상용화를 뒷받침할 법 제도 등 인프라 부족으로 자칫 초기부터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실제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우리나라의 'AI 기반 신약개발 알고리즘 기술수준'은 미국·유럽·중국에 이어 세계 4위이나 관련 특허의 질적 수준, 관련분야 논문 1건당 피인용 평균수치 등은 세계 10위권 밖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AI를 활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료'인 빅데이터 활용도에서 경쟁국에 한참 뒤쳐진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신약개발을 위한 빅데이터는 환자의 유전체 등 '생물학 데이터', 신약 후보물질인 각종 '화합물 데이터', 약물의 실제 인체 투여 반응을 보여주는 각종 '임상 데이터' 및 '약리학 데이터'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약 선진국인 미국·유럽과 비교해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수 자체가 적고, 표준화가 미흡해 통합 및 호환이 어려우며, 비공개 데이터가 많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유전체 등 생물학 데이터는 개인정보 보호에, 약리학 데이터는 기업 지식재산에 해당돼 공개 수준이 더욱 낮다.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보유기관과 협의 또는 허락받는 데에만 수개월 이상 걸린다고 한다. 정부는 2021년 '데이터 3법'을 개정해 개인정보 익명화 후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나, 익명화가 오히려 데이터의 품질과 호환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 차원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이나 데이터 유출 없이 AI가 솔루션을 도출하는 연합학습 기반의 신약개발 플랫폼 'K-멜로디' 사업 등도 추진 중이지만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대웅제약이 지난 40여년 간 신약연구 과정에서 축적해 온 총 8억개의 화합물 데이터를 자체 구축해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매우 고무적이다. 국내 제약사는 글로벌 빅파마와 연구개발(R&D) 격차가 커 AI 기반 신약개발은 R&D 격차를 줄일 절호의 기회로 여겨진다. 모처럼 찾아온 글로벌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데이터 사용절차 간소화 △익명화 데이터 통합운영 △연합학습 기술개발 가속화 등 정부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아트경영’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 메세나협회 이끈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제12대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지난 1994년 출범한 한국메세나협회는 경제와 문화예술의 균형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기업과 예술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문화예술후원기관이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한국메세나협회는 20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서울에서 2024년 정기총회를 열고 제12대 회장으로 윤 회장을 선출했다. 2012년부터 협회 부회장을 맡아온 윤 회장은 올해부터 3년 간 한국메세나협회를 이끈다. 윤 회장은 취임식에서 “고객 없는 기업은 없고, 모든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문화예술지원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며 “문화예술이 융성해야 고객이 더욱 행복하고 기업도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기업에게 알리고 동행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문화예술을 기업경영 전략의 한 축으로 삼는 '아트경영'을 처음으로 주창하고 실천한 기업인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기업의 수익을 국악·조각·시 분야를 집중 지원해 오고 있다. 특히, 전통국악의 발전과 조각예술 분야의 저변 확대에 각별히 애정을 쏟아 왔다. 민간기업 최초로 크라운해태가 2007년 국악관현악단 '락음국악단'을 창단한데 이어 국악영재 발굴·육성을 위해 '영재한음(국악)회'를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일반대중에 국악의 문화자산 가치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2004년부터 국내 최대 국악공연 '창신제'를, 2008년부터 최정상급 국악 명인들이 출연하는 '대보름명인전' 등을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조각 분야에서도 경기도 양주에 골프장 대신 약 330만㎡(100만평) 면적의 복합문화공간 '아트밸리'를 조성하고, 주변의 숙박시설을 매입해 지역미술가들을 후원하는 '크라운해태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등 아트경영 면모를 과시했다. 이밖에 세계최대 야외 조각전시회 '한강 조각 프로젝트'를 2021년부터 매년 개최해 한국조각의 세계화에 기여했고, 크라운해태 과자제품의 버려지는 포장상자를 모아 조형물로 업사이클링하는 '오예스 장미 프로젝트'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E칼럼] 산유국이 주도하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의 아이러니

EU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는 기후변화와 엘리뇨로 인해 2023년 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1년 동안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2도 높았다고 발표했다. 파리협정에서 목표로 한 1.5도를 넘는 수치다. 파리협정은 수십 년에 걸친 지구 평균기온을 언급하는 것이므로 이미 목표를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1.5도 목표가 더 이상 현실적으로 달성될 수 없다며, 각국 정부가 더 빨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기후변화 문제를 논의할 올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는 11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최된다. 대륙별 순회 원칙에 따라 동유럽의 순서가 됐다. 동유럽 국가들이 만장일치로 개최국을 정해야 하는데, 러시아는 동유럽의 EU 국가에서 개최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최종적으로 개최에 필요한 자금과 시설이 갖춰진 아제르바이잔이 선정됐다. 지난해 당사국총회가 개최된 두바이에서 북쪽으로 1770km 떨어진 곳으로, 비행기로는 약 3시간 거리다. 아제르바이잔은 불이라는 뜻을 가진 페르시아어 '아자르'와 나라라는 뜻을 가진 아랍어 '바이잔'에서 유래했다. '불의 나라'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땅 위로 새어나온 천연가스가 불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 지역은 불을 숭배해 배화교라고 불리는 조로아스터교의 본산이었다. 기원전 6세기경 페르시아의 예언자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가 창시했다. 이슬람 국가인 이 나라의 아테시카 사원은 조로아스터교의 성지 중 하나다. 바쿠의 석유에 대한 기록은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도 나온다. 그는 “한 샘에서는 100척의 배에 한꺼번에 실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기름이 뿜어져 나오지만 식용으로는 좋지 않다. 그러나 불이 잘 붙고, 가려움병이나 옴이 붙은 낙타에게 발라주면 좋다"고 썼다. 국내 여행 유튜버 1위인 빠니보틀이 석유 목욕을 한 곳이기도 하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세계 최대의 유전지대로 이름을 날렸다. 초창기에 해외 자본에도 유전 개발을 허용했는데, 노벨 가문이 여기에 뛰어들었다.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의 두 형인 로베르트와 루드비그는 바쿠 유전의 개척자다. 이들은 1877년 노벨 브러더스 석유회사를 설립해 원유수송용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유조열차도 만들었다. 1878년엔 세계 최초의 유조선 조로아스터호를 건조하기도 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석유의 중요성을 절실히 체감한 독일은 바쿠 유전을 차지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특히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독일은 극심한 석유 부족에 시달리자 1942년 바쿠 유전을 점령할 계획을 시도했다. 에델바이스 작전으로 명명된 이 계획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무산됐다. 자국 내에 풍부한 석탄으로 인공석유를 만들며 버티던 독일은 연합군이 인공석유 공장에 집중적인 폭격을 가하면서 결국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 바쿠는 카스피해 최대의 항구 도시이다. 카스피해는 러시아, 이란, 아제르바이잔 등 5개국으로 둘러싸인 세계 최대의 내륙해다. 면적이 한반도의 17배나 된다. 육지로 둘러싸여 있어 호수로 보기도 하고, 크기가 워낙 커서 바다라고도 하며 논란이 있었다. 구소련 시절에는 소련과 이란이 카스피해에 대한 권한을 나누어 가졌으나,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3개국이 새로 독립하면서 러시아와 이란은 호수, 신생 3개국은 바다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채굴기술을 이용해 카스피해에서 유전을 본격 개발하면서 연안국들 간에 첨예한 이슈가 되었다. 오랫동안의 논란 끝에 2018년 이들 5개국은 카스피해를 바다로 정의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인구 1000만 명의 아제르바이잔은 지금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청에 따르면 2022년 이 나라의 석유와 가스 생산량은 GDP의 절반, 수출의 92.5% 이상을 차지했다. 바쿠 유전은 150여년을 채굴하면서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BP통계에 의하면 아제르바이잔의 하루 원유생산량은 2011년 93만2000배럴에서 2021년 72만2000배럴로 줄었다. 파리협정이 체결된 지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올해 당사국총회는 국제 탄소시장의 근간인 파리협정 6조의 세부 이행규칙을 본격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 회의의 의장으로 국영 석유기업인 소카르(SOCAR)의 부사장 출신인 무크타르 바바예프 환경자원부 장관이 임명됐다. 지난해 UAE에서 열린 'COP28'에서는 국영 석유기업인 애드녹(ADNOC)의 최고경영자인 술탄 알 자베르가 의장을 맡았다. 2년 연속 화석연료 업계의 고위직이 당사국총회를 주도하게 됐다. 아제르바이잔은 당초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35% 줄인다는 목표를 발표했으나, 2023년에 새로 제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서는 2050년까지 40% 줄이는 것으로 목표를 후퇴시켰다. 산유국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기후변화 완화를 위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회의에 임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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