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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갑진년 아이 낳고 기르고 싶은 세상 됐으면…

2024년 갑진년 한해가 시작되었다. 필자의 유년시기였던 1980년대를 돌이켜보면 연말 연시에는 길거리 어디에서나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흘러나오고, TV 등 각종 미디어에서는 희망찬 새해에 대한 기대의 메시지가 가득찼던 것 같다. 세계 속에서 국가적인 위상이나 국민들의 생활 수준 측면에서 보자면 1980년대의 경제 지표들은 현재 대비 훨씬 열악했지만 고도 성장기에 있었던 우리나라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너무나 당연한 명제로 여기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하지만 IMF 시기 이후 우리는 불확실성이란 세기말 적 현상에 맞닥뜨렸다. 전 세계는 1999년, 새로운 ‘밀레니엄’(millennium)을 맞이하면서 세기 말 적 아노미를 겪은 현상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 뉴욕 9·11테러 사태,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그 여진이 지속되면서 요즘 우리 주변에는 희망보다는 암울한 메시지로 가득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지난한 글로벌 경기침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원자잿값 급등,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 등 지속적인 불안을 겪어왔다. 인간이란 존재적 불안이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1960년대 인구억제정책 실시로 가파르게 감소한 출산율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며 더욱 감소했고 2016년 이후 또다시 하락하면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됐다. 결국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성장보다는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를 반증하듯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으로 처음 0.70명대에 진입했고 2023년 0.72명으로 낮아진 데 이어 이제 2024년 0.70명대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같은 인구감소를 두고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유럽의 14세기 흑사병을 능가하는 인구절벽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한편 필자의 6학년 딸의 현실 인식도 가관이다. "아빠, 결혼도 안하고 애기도 안 낳는 게 좋을 것 같아.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키우는 건 정말 힘들 것 같아. 학원도 보내줘야 하고, 돈도 많이 들어가잖아." 현 초등학생을 키우는 부모와 자식 세대의 인식이 이러할 진데 우리나라의 10년, 20년 후 인구 상황이 더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약관화하다. 젊은이들, 특히 가임기 여성들이 임신·출산과 관련 사실상 개점휴업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실질 소득은 오르지않는 데 그 외 것들이 모든 게 다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특성상 출산율 하락은 출산율 하락 이외에도 주택매매가격, 전세가격 등 주거비와 사교육비가 주 원인으로 판단되고 있다.특히 국토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주택매매가격 1% 상승은 다음해 출산율을 0.00203명 감소시키는 것으로 분석되었고 전세가격 1% 상승은 다음 해 출산율을 0.00247명 감소시키는 것으로 집계됐다.무엇보다 주택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사교육비 영향은 첫째 자녀 출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둘째와 셋째 자녀에 대한 영향은 감소했다. 결론적으로 출산율 회복을 위해서는 주택매매가격, 전세가격,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에서는 출산가구를 대상으로 ‘신생아 특별공급’ 제도를 신설하고 생애 최초·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 중 20%를 출산 가구에 우선 공급키로 했는데, 임신·출산 가구에게 혜택을 부여키로 한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하지만, 특정 집단에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를 통해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언발에 오줌 누는 수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결혼을 하고 싶은 세상, 아이를 낳고 싶은 세상, 아이를 키우고 싶고, 그 아이에게 희망이 있는 세상을 정부와 정치가 만드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할 것이다.

[EE칼럼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엿보기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 기본 원칙은 연속성과 실현 가능성이다. 지난 정부에서 정한 두 개의 장단기 목표 즉, 장기 목표인 ‘2050년 탄소중립’과 단기목표인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이어 받되,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에너지믹스는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폐기하고, 원전을 적정 비중으로 활용하는 복원전 정책을 통해 탄소중립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구체화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곧 발표될 예정이다. 집권 직후 발표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 의지가 온전히 반영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늦은 감은 있으나 11차 계획이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에너지 계획으로 간주할 수 있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핵심 내용은 전력 수요 전망 상향 조정, 신규원전을 포함한 원전 비중 확대,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 조절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몇 차례의 계획은 전력 수요 증가를 최대한 낮춰 전망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력 수요 전망에 맞춰 공급 계획이 따라가는 구조다. 따라서 탄소중립과 탈원전 정책아래서 전력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 어쩔 수 없이 원전 이외의 유일한 무탄소 전원인 재생에너지를 비현실적으로 대폭 확대할 수밖에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런 모순을 피하려고 수요를 의도적으로 낮게 전망했다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전력 수요 실적치가 번번이 계획치를 넘어서는 일이 반복되면서 의심은 점차 사실화되었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2036년 전력 수요 전망치는 10차 계획보다 5GW 이상 많은 140GW대에서 결정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기화 수요와 데이터센터, 반도체 등 첨단산업 수요 등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 중심이 될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서 필요한 추가 전력만 해도 10GW에 이른다는 전망을 고려할 때, 전력 수요의 상향 조정은 여전히 부족해 보이지만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가장 큰 변화는 당연히 복원전이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석탄 발전을 줄이고, 이를 원전이나 재생에너지와 같은 무탄소 전원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석탄 발전은 거의 항상 가동되어야 하는 기저 전원이기 때문에 간헐성으로 말미암아 평균 이용률이 20% 내외밖에 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는 전원이 아니다. 석탄 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무탄소 전원은 현실적으로 원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원전 비중의 확대는 탄소중립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는 탈원전 정책을 고수한 지난 정부에게는 거의 유일한 탄소중립 달성 수단이었다. 당연히 재생에너지 몰빵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영국 글래스고에서 선언한 2030년 NDC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매년 재생에너지를 9GW 이상씩 급격히 늘려야 달성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이다. 지난 2020년 한해동안 설치된 재생에너지 5.3GW가 역대 최대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다. 더구나 최근 재생에너지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제주와 전남 지역에서 이따금 발생하는 수급 불안정에서 보듯이 에너지저장장치와 전력계통의 대규모 증설이 동반되지 않으면, 전국에 걸친 재생에너지발 수급 불안정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기존 목표 30%에서 20% 내외로 하향 조정해 실현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실현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주변 여건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바로 실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전력 수요가 예상보다 많이 증가하거나, 신규원전 부지확보가 지연되거나, 전력계통이 충분히 확충되지 않으면 바로 공급 부족, 탄소중립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리적 전력 수요를 유도하는 전기가격 결정 체계를 비롯해 신규원전 부지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 전력계통의 원활한 확충을 위한 특별법 마련과 같은 후속 조치를 통해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일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기자의 눈]

"중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플랫폼 경쟁촉진법(온플법) 제정에 반대합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정부의 ‘온플법’ 제정 추진에 지난 9일 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가 밝힌 입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주도로 추진하는 정부의 온플법이 오히려 중소상공인의 판로를 제한해 생존을 위협한다는 주장이었다. 온플법으로 플랫폼기업들의 책임이 강화되면 플랫폼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이미 검증된 일정 정도 규모를 갖춘 판매자의 상품만을 취급(입점)하게 돼 중소상공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온플법 도입 취지가 ‘소상공인 보호’임에도 정작 당사자인 플랫폼입점사업자들이 법 제정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온플법은 △멀티호밍(경쟁 플랫폼 입점) 제한 △최혜대우(유리한 거래조건) 요구 △자사 우대 △끼워팔기 등을 일삼는 독과점 플랫폼에 시정명령과 고강도 과징금을 부과해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을 입법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매출 규모, 이용자 수, 시장점유율이 일정 수준보다 높은 사업자를 사전에 정하고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연히 온라인플랫폼사업자는 달갑지 않은 ‘규제’로 규정하고 반대하지만, 보호하겠다는 소상공인들도 환영하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조차 법안을 반기지 않고 있다. 법 제정으로 플랫폼에서 누리는 소비자 혜택들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법안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플랫폼기업을 포함해 소상공인(입점사업자), 소비자 모두 ‘온플법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섣부른 규제로 기업과 소비자, 소상공인 누구 하나 크게 웃지 못한 선례가 있었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대형마트 규제’가 대표사례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의무휴업 규제로 매달 2회 문을 닫아야 하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제한된다. 따라서, 온라인 새벽배송 사업도 할 수 없다. 유통산업발전법 도입 당시 정부는 대형마트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어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규제에 나섰지만, 규제 효과가 이커머스 시장의 급성장을 초래하면서 대형마트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정작 입법 취지였던 전통시장 보호 및 활성화의 명시적 효과로 연결됐다는 객관적 증거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히려 소비자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주말 장보기에 제한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통시장 등 소상공인의 생계 보호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무조건 ‘규제의 틀(온플법)’로 시장에 개입하려는 관행을 못버리고 이해당사자인 소상공인조차 반대하는 온플법을 밀어부치려 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자유시장 논리와도 배치된다.pr9028@ekn.kr유통중기부 서예온 유통중기부 서예온 기자

[EE칼럼] 에너지 안보 위한 내부 효율성 재점검할 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급망 불안과 이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자원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자원안보특별법이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했다. 자원안보특별법은 해외에서 효율적으로 자원을 도입하는 법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수입한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내부적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지난해에 통과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이런 내부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법적 장치이다. 즉, 수요처와 분리된 에너지 생산 및 공급시설에서 나타나는 비효율을 줄이고 에너지시설을 국토에 골고루 분산시키자는 것이 그 목적이다.안덕근 신임 산업통상자원부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경제급전 원칙에 따라 발전계획을 수립·운영하는 것이 한전 적자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과 석탄발전 등 발전단가가 저렴한 발전원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에너지 안보가 가장 시급한 현시점에서 적절한 상황판단이다.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에너지 정책도 때를 잘 읽어야 한다. 여러 장기적 목표와 단기적 목표 그리고 이런저런 계획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와 순간을 넘겨야 하는 비상 상황에는 평상시의 상황(Business As Usual)을 과감히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 봐야한다.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제7차 전력수급계획 이후 지난 정부의 탈원전 및 탈석탄 정책이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에너지 쇼크에 무방비로 당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즉, 원전과 석탄발전 등 기저전원이 71.6GW에서 60.6GW로 무려 11GW가 줄어들었는데 이 기저전원이 계획대로 있었다면 2022년 LNG 도입량을 800만톤 이상 줄일 수 있었고, 비싼 현물시장에서의 구매물량을 크게 아껴 전력공급 원가를 많이 낮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현재 동해안의 기저전원을 수도권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점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현재 강릉안인, 북평화력, 삼척화력, 삼척그린, 한울, 신한울 등 동해안 지역 원전과 석탄발전 용량은 17GW이고, 이 구간의 선로용량은 22GW로 수자로는 여유 있어보인다. 하지만 송전선로 1개 루트가 고장날 때 대규모 정전 가능성을 막기 위해 절반만 사용한다고 한다. 따라서 실제 송전용량은 11.6GW에 불과하다. 어떤 전문가들은 실시간 출력제어나 수요관리로 송전용량을 상향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에너지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송전용량 상한을 산업부에 요청했으나 전력거래소와 한전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결론을 못 내는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얘기가 들린다. 그런데 이런 논란이 기술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사고 시 책임을 지기 어려워 논의 자체를 회피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에너지 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어렵게 생산한 전력을 배달수단인 송전망을 제대로 건설하지 못해 공급이 안 되는 상황은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답답하다. 그런데 이에 더하여 이 송전망의 운용이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비싼 돈을 들여 건설한 송전망의 반을 놀리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짚어야 한다. 객관성과 전문성이 더 요구된다면 해외 계통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서라도 꼭 검토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다. 책임소재와 업무분장을 따지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에너지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외에서 어렵게 구한 에너지 자원을 국내에서 제대로, 또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하느냐의 문제이다. 나아가 이를 위한 인프라를 적기에 건설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느냐의 문제이다. 인프라 문제와 함께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시장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지, 시장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산업구조와 거버넌스가 구축돼 있는지를 돌아볼 때다.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논란에 대한 단상

50인 미만 사업장(소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중대재해처벌법 찬성과 반대 측 모두 ‘재해 예방’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있고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 찬성 측은 정작 중요한 실효성은 따져보지도 않고 예정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 측은 정교한 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부담스러우니 적용을 유예하자는 식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중대재해 예방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그저 좋은 법이라는 전제하에 ‘묻지마’ 적용을 하자는 찬성 측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들의 엄벌주의 입장은 가히 종교 수준이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 북한 등 엄벌주의를 취하고 있는 나라의 산업안전 수준이 형편없는 사실에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실효성 있는 예방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고 귀를 닫는다. 소기업의 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 발생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이미 처벌되도록 돼 있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실익이 없다. 소기업은 산업안전보건법도 못 지키고 있는 만큼 산업안전보건법이라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먼저다. 이런 상태에서 소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한다면 이들 입장에선 옥상옥으로 받아들여져 혼란과 부담만 가중될 뿐 예방효과를 거두지 못할 건 명약관화하다. 그런데도 찬성 측은 이 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무지하거나 솔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찬성론자는 소기업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준수를 적은 비용으로 쉽게 준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형식적으로 준수할 때만 타당하다. 이 법의 핵심내용인 안전보건관리체계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실질적으로 이행돼야 한다. 찬성론자는 이러한 기본적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안전의 형식화를 조장하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소기업에 확대 적용되면 수사에 치우친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관행이 훨씬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가뜩이나 고용노동부의 처벌 일변도 법집행으로 일반경찰과의 차별성이 희미해지고, 산재예방기관이라는 존재이유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더욱 왜소해질 수 있다. 찬성론자의 일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 재해조사 대상 사망자가 조금이나마 줄었다며 이 법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강변한다.(한겨레 2023.12.27 세상읽기). 이런 주장에는 사망사고가 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는 기초지식과 종합적 사고가 결여돼 있다. 무엇보다 지난 5년간 산업안전감독관이 약 2.3배, 준정부기관인 안전보건공단 직원이 약 700명, 산재예방 예산이 약 2.3배나 전례 없이 증가했고, 산재예방 선진국보다도 많은 행정인원과 예산을 가지고도 법이 시행된 후에 사망사고 수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법 정책의 여건까지 고려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중대재해를 오히려 증가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2023년엔 전 산업에 걸쳐 경기가 침체되고 사망사고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공사 착공면적이 거의 반토막이 났다. 객관적으로 사망사고가 크게 줄 만한 상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중대재해 감소효과에 대해 부정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사회 전체적으로 이 법의 대응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있는데도 중대재해 예방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중대재해 예방의 ‘가성비’가 낮은 것은 처벌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예방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방증이다. 정치권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다는 점을 깨닫고 일찌감치 이 법의 문제 전반에 대해 대처했어야 했다. 대처할 시간과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이를 소홀히 한 것은 직무태만에 가깝다. 그간 변죽만 울리다가 소기업 적용 문제가 임박한 시점이 돼서야 마지못해 파편적으로 대응하는 식의 모습은 책임정치, 신뢰행정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안전관계법이 정법(正法)인지 악법인지의 바로미터는 처벌수준이 아니라 재해예방의 실효성이다. 소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여부도 바로 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진영논리, 장삿속과 감성팔이는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고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기자의 눈] BM ‘확’ 바꾸는 넥슨, 용기에 박수를

[에너지경제신문=정희순 기자] 넥슨이 ‘메이플스토리’ 내 큐브 아이템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큐브 아이템은 ‘메이플스토리’ 수익의 30~4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게임 내 핵심 비즈니스모델(BM)이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고,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역대급 과징금’을 부과 받은 데 대한 전략 수정인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이용자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는 해석이다. 앞서 공정위는 넥슨이 ‘메이플스토리’와 ‘버블파이터’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변경 사실을 누락하거나 거짓으로 알린 사실이 확인됐다며 과징금 약 116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의 이 같은 결정은 게임 소비자 권익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일견 타당한 부분이 있지만, 게임 산업적 측면을 보면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이야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정보 공개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지만, 과거에는 해당 정보가 기업의 영업기밀에 해당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더군다나 공정위에서 문제 삼은 2010~2016년은 전 세계적으로 게임 확률 공개에 대한 법적 의무가 없던 시기다. 거짓으로 확률을 고지한 것은 잘못된 행위였다 할지라도, 공지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1등 게임사에 대한 ‘보여주기식 철퇴’로 전체 게임 산업을 향해 경고장을 날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위의 ‘역대 최대 과징금’ 철퇴로 넥슨이 불명예를 떠안게 되긴 했지만, 사실 넥슨은 게임업계 중 가장 먼저 확률 정보를 공개하고 꾸준히 개선 작업을 벌여온 기업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은 오는 3월 시행될 예정인데, 넥슨이 자발적으로 확률 정보를 공개한 건 지난 2021년 3월부터다. 현재는 확률 변동을 이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 ‘넥슨 나우’도 운영 중이다. 회사 핵심 게임의 BM을 대대적으로 손질한다는 것은 회사 입장에선 상당히 어려운 의사결정이다. 이 결정이 게임의 재미나 밸런스를 해치지는 않을지, 나아가 향후 실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초강수’를 둔 넥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hsjung@ekn.kr정희순 정희순 산업부 기자

[이슈&인사이트] 이연된 경제 침체, 실력을 보여줄 때다

지난 연말부터 국가와 민간 연구기관에서 ‘2024년 경제전망’을 내놓고 있다. 모두 올해 경제전망이 어둡다는 비슷한 내용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당초 2023년으로 예상됐던 세계 경제 침체가 2024년으로 미루어졌다든지, 따라서 2023년은 그나마 세계 경제가 선방한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등은 정확한 진단이다. 이처럼 이연된 침체가 2024년 중반부터 현실화되며, 세계 경제성장률은 2023년 2.9%에서 2024년 2.4%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말하자면 경제가 작년보다 나아질 것도 없고, 고물가 역시 해소되기 어렵다. 인플레 우려 지속으로 금리를 조기에 크게 낮추기도 어렵고, 정부가 재정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기도 어렵다. 이미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위험 수준이다. 결국 2024년은 세계경제가 ‘L자형 장기 저성장’에 본격 진입하는 해가 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긍정적인 전망을 보이는 업종은 반도체, 휴대폰, 조선, 정유ㆍ화학, 에너지ㆍ유틸리티, 제약ㆍ바이오, 항공, 미디어ㆍ엔터테인먼트, 보험 등 몇 가지 뿐이다. 경제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기업인들 역시 같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글로벌 이슈 및 대응계획’ 조사에 따르면 ‘2024 글로벌 키워드’로 미ㆍ중 갈등의 지속 또는 악화로 글로벌 공급망 문제 심화, 미국 고금리 기조 장기화, 전쟁 장기화 및 지정학적 갈등 확산 등을 가장 중요한 애로 요인으로 꼽았다. 이외에도 미중 갈등으로 인한 탈 중국 필요성 증대, 보호무역주의 강화, 세계 경제 피크아웃에 따른 글로벌 수요침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따른 불확실성 심화 등이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칠 주요 글로벌 이슈로 생각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가장 중요할 것으로 봤다. 우선 글로벌 수요가 침체되는 것에 대해서는 ‘신사업 발굴 및 사업 다변화’로 대응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그 방법은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을 통한 대응이다. 신규 거래처 발굴을 통한 공급망 다변화나 주요 자원개발 투자확대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전쟁과 지정학적 갈등 확산에 대해서는 ‘대체 수출입처 물색’을 꼽았다. 그러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나, ‘생산 물량 감소 및 생산기지 축소’, ‘인건비 등 원가 절감’ 등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미 마른 수건을 쥐어짜 본들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부응해 해외시장 개척을 비롯한 신수요 창출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기업 규제 완화’를 가장 앞세웠다. 대통령이 킬러규제 폐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기업 현실에서는 규제개선 효과를 거의 체감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다음으로는 법인세 감세와 투자공제 등 세제 지원 강화, 통상영역 확대를 통한 해외 신수요 창출, 자금조달 등 금융지원 확대 등의 순이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통상영역 확대 부분에 있어서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문제는 거대 야당의 협조다. 야당은 그간 기업규제 완화는커녕 규제강화를 위한 법률들을 쏟아내 왔다. 반면 김병욱 의원이 주도해 민주당 일부 국회의원들이 "글로벌 대기업을 돕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기업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새해에는 더 확산되어 진정 기업에 도움이 되는 법률을 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다. 기업들도 긴축경영을 하되 너무 위축되지 않으면 좋겠다. 워렌 버핏은 말했다.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고. 썰물 때 실력을 보여주는 많은 기업인을 우리는 보고 싶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 교수

[EE칼럼] 미세먼지 저감 정책의 허구성

요즘 한겨울이지만 유독 화창하고 청명한 날씨를 많이 경험한다. 과거의 겨울처럼 삼한사온(三寒四溫)이 규칙적이진 않지만, 온화한 날씨도 자주 오고 있다. 그런데 날씨와 관련해서 이상한 현상이 있다. 매섭게 추운 날에는 청명해 눈이 부실정도로 햇빛이 강렬하고, 반대로 따뜻하다 싶으면 예외 없이 희뿌옇고 탁한 대기질,이른바 미세먼지를 동반한다. 이에 이의를 제기할 대한민국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겨울철 온화함은 반갑지만 미세먼지는 달갑지 않다. 미세먼지에 대한 폐해는 사망률에서 입증된다.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2만∼3만명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팬데믹 때의 사망자(8000∼9000명)에 비해 3배 가량 높다. 온실가스 처럼 미래세대를 논할 것 없이 미세먼지는 현재 세대의 수명에 영향을 주는 발등의 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의 이런 불청객 미세먼지는 누구 탓일까. 케케묵은 질문이다. 과연 우리나라의 공장의 탓일까? 우리나라 공장들이 추운 날씨에는 일 안하고 굴뚝 막고 있다가, 따뜻한 날에만 일하지는 않을 것이란 건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다. 날씨와 관계없이 연중 일정한 가동률을 가정한다면, 가장 추운 날 볼 수 있는 청명한 날씨는 어떻게 설명될까. 미세먼지는 항상 심할때 서해최북단 백령도부터 시작된다. 발전소나 산업시설도 없는 그곳이 왜 그럴까. 외부요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TV에서 보는 미세먼지 예보가 그렇게 잘 맞는지. 기류의 흐름에 따르는 구름과 같이, 미세먼지의 ‘움직임’도 기상청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피부에 와 닿는 현실과는 달리 한ㆍ중ㆍ일 장거리이동 대기오염물질 공동연구보고서(2019년 11월)에서는 2017년 기준 한국 3개 도시(서울, 대전, 부산) 연평균 농도에 대한 자체 기여율이 51%라고 돼 있다. 단 고농도 때는 국외영향이 80% 이상으로 급등한다. 좋을 때는 국내 요인과 국외,이른바 중국발 미세먼지의 요인이 반반이지만 심할 때는 중국의 영향이 대부분이란 사실로 호도하고 있다. 공기질이 좋을 때는 국내요인이 얼마가 되든 전혀 상관없다. 문제는 나쁠 때다. 이것이 팩트라 하더라도 이런식의 발표는 국민은 헷갈릴 수 밖에 없다. 그냥 우리 탓도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쁠 때는 국내 배출 규제 효과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은 ‘국내 탓’에 치중한다. 공장의 가동시간을 변경하거나 가동율 조정하고, 공사장 인근 물 청소 강화를 통해 비산먼지 발생 억제에 초점을 맞춘다. 승용차 차량부제 운영과 에너지 사용 줄이기 등 국민행동요령을 실천하고 노후 경유차 등 해당지역 차량의 운행제한과 석탄발전 가동을 중단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공짜가 아니다. 예컨데 한국전력 기후환경요금으로 사용량에 따라 세금처럼 부과되는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시행에 따른 석탄 발전 감축비용은 연간 1000억원에 달하고 이 비용은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간다.그런데도 왜 실효성도 없는 국내 긴급 조치로, 국민들이 부담을 떠안아야 하나. 더 나아가 국내조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환경 경제학자로서의 정체성이 있는 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고 하겠지만, 환경경제학자는 정책을 연구할 때도 해당 조치가 문제해결에 적합한 ‘합목적적’인지, 목적 달성이 최소한의 비용을 들어 가능한지의 ‘비용효과성’을 판단하는 전문가다. 지금은 일부의 국내 미세먼지 줄이는데 드는 비용이 그 이익보다 훨씬 더 적다. 중국을 비난하기에 앞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자. 그동안 국내 요인 탓을 과장되게 인식케 한 정책방향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해결의 방향을 모호하게 만들어 여론을 분산시키고, 우리나라 규제기관의 역할을 불필요하게 확장했다. 일단 정부조직은 목표의 적합성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임무만 주어지면, 무제한으로 인원과 권한을 확장하는 경향이 있다. 머리를 내놓지 않고 돌진하는 수영선수와 같다고 할까.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이 문제해결에 도움되는지 여부와, 투입된 공무원들의 인건비를 포함해 정책을 이행하는데 소요되는 예산과 비용, 정책으로 손해를 입는 자국 기업체와 국민들의 애로는 무시되고 만다.책임은 없는데, 권한만 주어지니 벌어지는 일이다. 자신들의 책임도 아닌데 상황 호전은 안되면, 마구잡이 권한과 예산만 팽창한다. 열심히 일하는 관련 부처와 공무원을 비난하는게 아니다. 첫째로, 현재의 비대한 권한에 어울리게 해외소재 공장들 문까지 무조건 닫고 오게 할 임무까지 주어져야 한다. 그게 안되므로 둘째로 대부분의 미세먼지가 해외발이라 부처입장에선 면책대상이라 판단되면, 책임범위에 맞게 권한도 재조정할 수 있다. 국내조치는 자학적인 수준이다. 할 수 있는게 없으니 지금처럼 허우헌날 공동연구니 컨퍼런스니 해서 중국 담당자들과 함께 사진이나 찍고 와야 하는 부처입장을 생각해보자. 얼마나 답답하겠는가.유종민 홍익대학교 교수/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학 겸임교수

[기자의 눈] 태영은 시작에 불과하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결정의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11일 채권단 협의회를 통해 워크아웃 개시 여부가 결정되는데 개시 여부와 관계없이 금융시장 전체로 퍼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는 쉽게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을 두고 이례적으로 대통령실까지 직접 나서서 "태영의 자구노력이 있어야 워크아웃을 추진할 수 있다"고 압박한 데는 이번 사태가 비단 태영건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암시한다. 최근 건설업계를 보면 ‘제2의 태영건설’이 나타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모습이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부동산PF 대출잔액 규모는 약 130조원 중반으로 이 가운데 브릿지론이 약 30조원, 본PF가 약 100조원 규모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증권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에서 취급한 PF의 만기연장비율이 브릿지론이 70%, 본PF는 50% 수준이다. 건산연은 "부동산 시장이 더디게 회복될 경우 수익성 악화를 겪는 사업장이 늘어나게 되고 향후 부실 발생 규모는 시장의 예상 밖으로 매우 클 수 있다"고 봤다. 지방 사업장을 중심으로 미분양도 늘어나고 있어 이 상황이라면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에 금융기관의 동반부실화까지도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증권사의 PF채무보증 규모는 22조8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9월 기준 증권사의 부동산PF 대출 잔액은 6조3000억원으로 연체율은 13.85%에 달한다. 시장은 불안에 휩싸였다. 증권사 보고서를 통해 일부 건설사들이 ‘제2의 태영건설’로 거론되면서 PF 부실 우려 확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제2의 태영’으로 언급된 건설사들은 "PF 우발채무 해소방안을 마련해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했다"며 일제히 해명에 나섰지만 건설업 불황 속에서 유동성 개선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태영건설의 경우만 하더라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도 지라시가 돌면서 위기감이 고조됐으나 태영건설은 워크아웃 신청 전날까지도 이를 부인했다. 시장에서는 "지라시가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시장의 불안이 커지자 정부에서도 태영건설이 진행하는 PF 사업장 60곳에 시공사 교체나 매각 등으로 추가 피해 확산을 막겠다고 나섰다. 시장의 불안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당국이 부디 현명한 대책으로 시장 안정화를 끌어주길 바란다.증명사진

[이슈&인사이트] 시늉만 낸 슈링크플레이션 대책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가 인플레이션 굴레에 갇혀있다. 수년째 이어지는 세계적인 인플레 현상에 대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가계도,기업도,정부도 고통받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원자재값과 임금 상승 등 원가상승에 직면한 가운데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소비재에 대한 가격 통제에 나서자 소비재 기업들을 중심으로 단가는 유지한 채 제품의 크기나 용량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 압박이 거세지는 만큼 수익성이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가격을 올릴 경우 인플레 압박을 받는 소비자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정부로부터도 눈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포장 모양을 바꾸거나 눈길을 끄는 더 밝고 새로운 라벨을 붙이면서 용량을 줄이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편법 가격인상 ‘꼼수’라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고 정부도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0여년 전 과자의 양을 줄이고 대신 질소를 채운 이른바 ‘질소 과자’가 문제가 됐다. 2014년 당시 "과자봉지를 뜯었는데 70%가 질소였다",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덤으로 왔다"는 등 질소 과자에 불만을 품은 대학생 2명이 국산 과자 60봉지를 엮어 만든 뗏목을 타고 한강 횡단을 하는 퍼포먼스를 펴기도 했다. 지난해 한 지역축제에서 갯고둥 한컵 5000원, 바비큐 한덩이 4만원, 빈대떡 1만5000원 등의 바가지 상혼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축제가 아니더라도 대표적인 서민간식인 치킨세트에서 떡튀김과 감자튀김이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으로 비화되며 씁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치킨 가격 오르자 치킨양을 줄이고 단가가 낮은 떡튀김이나 감자튀김의 양을 늘리는 식이다. 김치 등 무료 서비스를 없애거나 반찬수를 줄이고 음식 재료의 수준을 낮추는 방식으로 원가를 보전하려는 식당들도 늘어나고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도 비싼 국산 부품 대신 저렴한 중국 브랜드의 부품을 쓰기도 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우리나라만은 문제도 아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한 회사의 크리넥스 티슈 제품은 내용물을 최근 65장에서 60장으로 줄였고, 한 아이스크림 제조업체는 유지방 일부를 줄이고 물과 기타 우유 성분, 감미료 등의 다른 성분으로 대체했다. 인도의 빔 식기세척용 비누 한 덩이는 무게를 155g에서 135g으로 낮췄다. 호텔들도 조식,청소,용품 등에 대한 서비스를 줄이거나 유료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12월 새해부터 제조사가 가공식품 등의 용량을 줄이면 포장지에 반드시 용량 변경 사실 표기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을 발표했다.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은 제품가격 편법인상 꼼수를 막기 위한 대책이다. 그런데 포장지에다 변경 전 용량과 변경 후 용량을 써놓는다고 제품가격 편법 인상 꼼수를 막을 수 있을까. 실효성은 커녕 오히려 편법인상을 법적으로 조장하는 ‘면피용’ 구실을 주는 셈이다.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이 제 효과를 내려면 단위 표시를 의무화해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으로 가격이 얼마나 올렸는 지 알게해야 해야 알권리를 보장하면서 가격 꼼수 인상을 견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단위가격 표시를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전통시장,지역축제,농수산물시장,직거래장터 등 모든 온·오프라인 매장에도 게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생산지와 직거래때도 단위가격 표시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용량을 줄인 제품에 자발적으로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 까르푸와 제품 용량에 변화가 있을 때 해당 기업이 변경 전과 후의 용량과 변경 수치, 비율을 6개월 이상 포장에 표시해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의무화한 브라질 정부사례는 슈링크플레이션,소비자 알권리 보장의 좋은 본보기다.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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