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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고질병

최근 김포공항 근처의 한 아파트가 고도제한을 초과해 사용승인이 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아파트는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에 총 8동, 399가구 규모로 들어서는 김포 고촌 양우내안애 아파트다. 2020년 착공돼 지난 12일 입주 개시를 앞두고 있었다. 이 아파트는 당초 김포공항과 직선거리로 약 4㎞ 떨어져 있다. 공항시설법에 따라 해발고도 57.86m 이내로 지어져야 했다. 그러나 최종 점검에서 7개 동이 이 기준보다 63~69cm 더 높이 지어져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사용허가를 받지 못했다. 시공사는는 재시공을 포함한 몇 가지 보상안을 내놨지만 과연 입주 예정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는 미지수다. 이같은 ‘어이없는’ 부실시공 사례는 세종시에서도 발견됐다. 세종시 산울동 ‘세종 리첸시아 파밀리에’가 최근 사전 점검에서 각종 하자가 속출하고 인분이 발견됐다. 시공사 측은 하자가 모든 세대에 있는 것은 아니고 입주 전까지 미흡한 부분이 없도록 완공하겠다고 해명했지만 입주자들은 공분하고 있다. 시민들은 부실시공은 건설업계의 고질병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 건설업계가 ‘순살자이’, ‘통뼈캐슬’ 등 부실시공으로 곤욕을 겪었지만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부실시공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후분양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후분양제는 통상 건축 공정률이 60~80% 이상 진행되면 분양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정 수준 완공된 건축물을 보고 분양계약 여부를 결정한다. 건물을 어느 정도 지은 후 분양하기 때문에 주택품질이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 최근 건설시장에선 일부 건설사들이 후분양 단지임을 강조하며 품질 보장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견본주택만 살펴보고 계약 여부를 결정해 고질적인 부실 시공 논란을 일으키는 선분양제와는 대비된다. 다만 후분양제는 주택가격 상승 가능성, 건설사 재무 부담 증가, 중소규모 건설사의 어려움 등 문제점으로 당장 전면적으로 시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먼저 공공을 중심으로 후분양제를 도입하고 민간으로 점차 확대하는 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다. 일반 거래시장에서는 실물을 보고 제품을 구매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주택시장에서도 당연히 이를 기대할 수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안전하고 튼튼한 주택을 위해 후분양제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EE칼럼] 기준 따로,현실 따로인 청정수소인증제

지난 12월18일 제6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청정수소인증제 운영방안’이 의결·확정됐다. 이어 같은 달 28일에는 청정수소인증제를 운영하기 위한 인증운영기관과 인증시험평가기관도 선정됐다. 올해부터 개시되는 청정수소 발전입찰 시장과 연계해 운영될 예정이라 올해를 사실상 청정수소인증제의 ‘원년(元年)’으로 봐도 무방하다.정보경제학적으로 ‘청정수소 인증’ 은 ‘신호 보내기(signaling)’ 수단의 일종이다. 사실 수소는 청정하게 만들든, 회색 빛 나게 만들든 물리·화학적 성질이 동일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분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생산비용이 높은 청정수소 생산자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수소의 청정성을 알릴 수 있는 라벨이나 마크 등 신호 보내기 수단이 요구된다. 이러한 필요성을 일찍이 감지한 유럽연합(EU)의 수소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CertifHy’란 이름으로 2014년부터 준비해 처음 청정수소인증제가 마련됐다. 청정수소인증제는 이후 수소경제를 추진하는 국가들에 빠르게 확산됐다. 청정수소인증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의 간략한 언급과 함께, 인증된 수소의 생산비용을 수소발전 정산을 통해 지원하자는 필자의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아직 청정수소인증제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던 터라 관가·업계 모두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왜 이런 제도가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다 2021년부터 청정수소인증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신재생에너지법에 따라 발전용 연료전지가 태양광 발전 등과 함께 신재생공급의무화제도(RPS)를 통해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의견들이 국회 일부에서 제기됐다. 이에 따라 수소발전을 따로 수소경제법으로 의율 하는 청정수소 발전의무화제도(CHPS)가 도입되고, ‘청정수소’가 무엇인지 법적으로 ‘획정(劃定)’하는 청정수소인증제도 함께 법제화됐다. 2022년에는 청정수소인증제에 또 하나의 변곡점이 형성됐다. 당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나 유럽의 H2Global 프로그램 등에 청정수소인증제의 청정수소 등급을 보조금과 연계시키는 방침이 발표됐다. 이에 국내 청정수소인증제도 발 빠르게 이를 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그 자체만으로 국내 관련 업계의 기대감을 부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실 국내 청정수소 생산 비용은 상당히 비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연계 수전해 수소의 생산단가는 대략 kg당 1만원이 훌쩍 넘고, 블루수소의 경우에도 인증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본투자가 수반된다. 이로 인해 청정수소인증제 연계 정부 보조금을 수익모델로 하는 사업기획들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졌고, 보조금을 얼마나 어떻게 줄 것인가가 한 때 업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나 천연가스, 탄소포집 및 저장(CCS) 등을 자급자족이 가능한 미국·유럽에서는 보조금이 생산을 지원하는 수준이라면, 그렇지 못한 우리는 사실상의 수익모델이라 국민 세금인 재원도 걱정이지만, 이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하는지 자체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에 확정된 청정수소인증제에서 결국 ‘보조금’이 제외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보조금이 제외되면서 인증에 대한 수요는 기대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행 청정수소인증제가 청정수소 발전 입찰에 필요한 발전용 수소의 청정성을 확인하는 절차 정도가 되면서 한동안 규모는 큰데 건수는 적은 외국산 청정수소 기반 암모니아가 주된 인증 대상일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인증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자칫 인증 수수료에 기반 한 인증기관의 운영비를 걱정해야 할 수 있다. 수수료를 인증 수소의 양에 비례해 책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인증 등급이 높을수록 생산비용이 높아 발전단가를 중심으로 한 청정수소 발전 입찰에서 보다 청정한 수소가 불리할 수 있다. 인증 등급별로 입찰 시장을 세분화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행 ‘수소 1kg당 온실가스 4kg 배출’이라는 인증기준의 현실성도 고민거리다. 물론 이러한 인증기준이 미국·유럽·일본 등이 채택한 일종의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이 기준이 국내 현실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가령 현행 청정수소인증제는 친환경 추진선박이 없어 외국산 도입 시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한시적으로 빼고 산정한다. 현실의 외국산 청정수소 배출량보다 인증기준이 낮아 인위적으로 실제 선박 온실가스 배출을 눈감아 주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비판 받기보다 차라리 보다 국내 현실에 맞는 인증기준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고민을 제안한다.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슈&인사이트] 한류상품 유럽 공략 고삐 조여야

중소기업 수출의 외형적 성장세는 우리나라 전체수출 증가와 궤를 같이 한다. 즉, 우리나라 전체수출 규모와 중소기업 수출 규모는 동반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2023년 들어 수출이 감소하며 지난해 3분기까지 중소기업 누적 수출액은 831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868억달러)에 못 미쳤다. 중소기업 수출 10대 국가 집중도는 67.6%로 우리나라 총 수출 10대 국가 집중도 70.4%보다 낮다. 또 단일 국가에만 수출하는 기업 비중은 55.5%, 2개국 이상 수출하는 ‘수출국 다변화’ 기업 비중은 44.5%로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다. 단일국가 수출 중소기업의 경우 주요 수출국은 중국, 일본, 미국 순이다. 2022년 중소기업 수출은 2년 연속 증가했으나 세계 경기침체 등으로 하반기부터 수출은 감소세로 돌아섰고, 지난해에도 어려운 여건이 지속됐다. 2024년 새해 전망도 밝지 않다. 우리나라 10대 수출시장 중 중국, 홍콩, 러시아로의 수출은 미중 신 냉전시대 돌입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제재 등으로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홍콩을 포함한 중국과 러시아의 세계경제 비중은 약 20%로 유럽 전체와 비슷하다. 이처럼 중국을 능가하는 시장을 가진 유럽에 대한 한국중소기업의 수출은 미미하다. 따라서 특히 부가가치가 높은 품목 위주로 유럽시장을 중심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것이 수출 목표 달성은 물론 수출채산성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한류 기반 소비재 수출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한국문화와 음식에 대한 열풍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 한류 열풍은 일시적 유행을 넘어서 사회전반적인 문화현상으로 퍼지고 있으며, 한국어를 배우려는 유럽인들도 늘어나 한국정부가 지원하는 한국어학당인 세종학당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세종학당 수강생들의 연령분포가 10대와 20대를 넘어서 전 연령대로 골고루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람이 많아지는 유럽에서 한국 상품에 대한 선호도 높아지는 이때 부가가치가 높은 소비재 중심으로 중소기업 수출기회가 무르익고 있다. K-pop, K-drama가 주도하는 한류는 한국 제품의 인지도와 수용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 라면과 스낵의 K-푸드, 스킨케어의 K-뷰티 제품 등을 중심으로 점차 시장에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최근 한류 붐은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어 유럽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들에게 기회로 작용한다. 다만 유럽 시장은 뚜렷한 문화적 선호와 소비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중소기업들은 유럽인들의 취향과 트렌드에 맞추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언어 장벽은 역시 의사소통과 마케팅 노력에 어려움을 줄 수 있으며, 효과적인 번역과 현지화는 매우 중요하다. 유럽의 규정과 표준을 충족하는 것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며, 사전경험이나 현지 인맥이 없는 중소기업은 유럽 내 유통망 구축 및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어려움을 한국에 소재한 중소기업이 극복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기존 정부지원은 유럽수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수출중소기업의 반응이다. 현재 주로 지원이 집중되어 있는 무역박람회 및 전시회 참가지원이나, 공용 온라인 플랫폼 제공 등의 원격적인 지원보다는 현지인을 활용하는 수출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예를 들어, 유럽 각국에 퍼져 있는 세종학당과 대학의 한국학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류 상품 마케터를 선발하거나, 한류상품 유통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세종학당과 한국학과가 다수 개설돼 있는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중기부에서 시행하는 글로벌 창업지원사업을 현지인을 대상으로 추진한다면 한류상품이 현지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동시에 현지에 한류상품에 대한 홍보효과도 동시에 올릴 수 있다. 현지 마케터를 창업지원 사업으로 발굴해 볼 것을 제안한다.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기자의 눈] 中

[에너지경제신문 윤소진 기자] 리니지M이 왕좌에서 내려왔다. 장기간 국내 모바일 게임시장 매출 1위를 지켜오던 ‘리니지M’을 2위로 끌어내린 건 다름 아닌 중국산 방치형 게임 ‘버섯커키우기’다. 게임은 출시 직후부터 빠르게 매출 순위가 상승하더니 21일 결국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원스토어까지 모든 앱 마켓서 매출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 실은 이 게임이 국내 대형 다중역할수행게임(MMORPG)들을 제치고 상위 5위 게임 내에 들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자 리뷰 기사를 작성해 보자는 마음에 플레이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실패다. 첫날 2시간가량 플레이를 한 후 작성하지 못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너무나도 단순한 조작 방식과 익숙한 게임시스템 그리고 더 익숙한 비즈니스모델(BM)까지 특별히 독자들에게 소개해야 할 부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슬롯머신 게임이다. 하단 중앙에 위치한 램프를 계속 클릭해 장비를 얻어 전투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이다. 이 게임은 지난해 방치형 역할수행게임(RPG) ‘개판오분전’을 출시했던 조이넷게임즈가 서비스하고 있는데, 개판오분전은 당시 ‘1000뽑’이라는 제목으로 이용자를 유인하는 마케팅 방식을 이용해 구글플레이 매출 10위까지 올랐다. 버섯커키우기 역시 ‘3000뽑’이라는 문구가 제목에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국내 게임사들에게 만리장성의 벽은 여전히 높다. 고품질의 국산 게임들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대로 확률형BM 위주의 중국산 방치형 게임들은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을 잠식하고 있지만 대응책은 미비하다. 당장 오는 3월부터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지만 중국 등 해외 게임에 대한 규제책은 아직 부족하다. 이에 업계에선 기존 국내 게임사들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던 자율규제가 해외 게임에선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어났던 역차별이 법 시행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당시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게임사 절대다수는 해외 게임사였다. 정부는 앱마켓 협조, 대리인 지정 등을 통해 해소하겠다고 밝혔지만 관련 법안은 아직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게임이용자를 보호하고, 공정한 게임 이용환경을 확립이라는 본래 취지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와 유관기관이 보여주기식 제재 보단 형평성 있는 규제 방안 마련에 보다 집중해주길 바란다. sojin@ekn.kr반명함 윤소진 산업부 기자.

[데스크 칼럼] AI 혁명시대와 반도체, 그리고 원전

인공지능(AI) 혁명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AI는 산업경쟁력 강화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진보하는 AI는 인류의 삶의 질을 한 차원 더 높여 줄 것이 분명하다. 미래 첨단산업의 핵심이 AI라면 AI의 기술력을 좌우하는 것은 반도체라 할 수 있다. 반도체 생산 라인이 안정적으로 가동되기 위한 전력 공급 역시 중요하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 볼 때 AI시대는 대한민국에 기회임에 틀림이 없다.윤석열 정부는 최근 AI 시대를 주도할 반도체 초격차 기술력 확보를 위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비전을 발표했다. 평택 화성 용인 이천 수원 판교 등을 잇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 기업들은 2047년까지 62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곳에 앞으로 반도체 생산공장 13곳, 연구시설 3곳이 새롭게 들어선다. 2012만㎡ 규모의 클러스터에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와 2nm 이하 공정기반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될 예정이다. 또한 월 기준(2030년) 웨이퍼 770만장이 생산된다.현재 AI 반도체 부문에서는 미국의 엔비디아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앞세워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GPU는 전력 소모량이 많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 약점이 대한민국이 도전해 볼 만한 근거다. 한국은 고성능 GPU 대비 전력 소모는 10분의 1로 줄이고, AI 학습능력은 2배로 확장할 수 있는 극저전력 지능형 반도체(PIM) 개발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잘하고 있는 메모리부문을 적극 활용하면 AI 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를 노려 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윤 정부는 국산 AI 반도체 특화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K-클라우드 기술 개발에 1조원 가량을 투자하고, 기업의 반도체 인력 수요 해소를 위해 특성화 대학을 18개교로, 반도체 대학원도 6개교로 늘릴 계획이다. 또 눈여겨 볼 것이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는데 중요한 인프라가 안정적이 전력 공급망 구축이다.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라인 1개 가동하는 데 약 1.3GW의 전기가 필요하다. 한국형 원전 APR1400 1기가 필요한 셈이다. 그렇다면 10GW가 필요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APR1400 원전이 7∼8기 필요하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는 한계가 분명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발전단가가 비싼 LNG 발전소를 짓는 것도 경제성 측면에서 보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윤 대통령도 "기흥 삼성전자 생산라인 7개에 전략망 체계를 만드는데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고 지적하면서 "고품질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서는 원전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을 내세운 에너지정책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7000억원을 투입해 개보수를 끝내고 가동을 더 할 수 있었던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에 폐쇄하고, 건설중이던 신고리 5·6호기는 공사가 중단됐다가 재개되면서 완공시기가 늦어졌고, 착공 전이던 신한울 3·4호기는 공사를 중단시켰다. 또 앞으로 지어질 원전부지 경북 영덕의 천지 1·2호기와 강원 삼척 대진 원전 사업추진을 백지화 시켰다. 탈원전 중시 에너지정책은 미래 첨단산업 발전에 부담으로 작용되고 있다. 그나마 윤석열 정부 들어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어 다행이다. 국제적으로도 AI 시대 도래에 따른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연 대안 에너지원으로 원전이 재부상하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기가 더욱 중요해졌다"면서 원전 8기 추가 건설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영국도 원전 비중을 15%에서 25%로 다시 확대할 방침이다. AI시대·반도체·원전은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 대한민국은 잘 할 수 있고, 모범 국가가 될 수 있다.송영택 산업부장/부국장

[EE칼럼] 미국 전기차 충전 시장 공략 방법은

미국의 전기차 등록대수가 2030년에 2700만 대, 2040년에는 92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덩달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은 2023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29.1%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즉, 미국의 전기차 충전기 수가 2023년 현재 약 400만 대에서 2030년에 3500만대, 2040년에는 1억대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를 매출액으로 계산하면 2023년 현재 70억 달러에서 2040년 1000억 달러로 연평균 15%씩 성장하는 셈이다. 전기차 충전기 시장 가운데서도 충전기 제조, 전기차 충전소 운영, 전기차 충전소 운영 플랫폼 그리고 전기차 충전기 설치 등 네 가지 시장은 고속성장이 예상된다. 미국의 전기차 충전기 제조 시장은 미국회사, 유럽회사, 중국 회사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한국 기업으로는 SK Signet이 이미 시장에서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그 뒤를 대기업과 중소 기업들이 잇따라 진출을 하고 있다. 대기업으로는 LG, 롯데, 현대자동차 등이 전기차 충전기 제조 계열사들을 통해 미국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여기에 대영 채비, Solu-M, EVAR, 웰바이오텍, 모던텍 등 중견·중소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 밀고 있다. 최근 한국 기업들 중에서 기존에 전기차 충전기만 가지고 미국 시장에 진입한 기업들과 달리 전기차 충전소 운영 플랫폼을 전기차 충전기와 함께 병합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형태로 미국 시장을 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의 전기차 충전기 시장은 크게 AC 충전기와 DC충전기로 나뉜다. 미국 충전기 시장에서 AC충전기가 전체의 65~85%를 차지한다. DC충전기 시장 점유율은 15~35% 이다. 특히 미국은 공동주택보다는 단독주택이 상대적으로 많아 AC충전기 시장에서 단독주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AC충전기 시장은 다시 11kW 미만과 11∼22kW까지 AC충전기 시장으로 세분화된다. DC 충전기 시장은 25∼150kW 미만, 150W~400kW 미만, 400kW이상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150kW이상 시장은 다시 NEVI와 NON-NEVI 시장으로 나뉜다. 그래서 미국 시장을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이처럼 세분화된 미국 충전기 시장에서 해당 기업이 가장 강점이 있는 분야를 선정해 집중 공략해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전기차 충전기 설치 시장은 각 주 별로 요구하는 전기 사업자 면허증이 있어야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 기업이 미국에 들어 와서 이 전기차 설치 시장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해당 시장에 진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존 전기 사업자 면허증을 가지고 전기차 충전기 설치 사업을 하고 있는 현지 기업을 인수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전기차 충전기 설치 시장도 크게 AC 충전기 설치 시장과 DC 충전기 설치 시장으로 나뉜다. 최근 들어 전기차 충전기 설치 회사들이 미국내 공용 전기 충전소의 가장 큰 문제인 충전기 결함 및 유지 보수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 맞추어서 유지 보수 업무도 담당하는 형태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한국의 전기차 충전기 제조 회사들이 변화하는 미국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서 경쟁력을 더 강화하려면 미국 내 전기차 충전기 설치 회사 중에서 설치 협력 회사들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전기차 충전소 운영 사업 부문은 현재로서는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한국의 전기차 충전소 운영 사업자는 한국의 전기차 보급률 대비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상태다. 환경부, 한국전력, 지방자치단체, 완성차업 체 등이 자체 충전소를 운영하며 파워큐브, KT, 지엔텔,에버온 등 주요 민간 기업들이 운영하고 있는 전기차 충전소 시장에 10대 그룹 중에서 6개 기업이 진출을 하고 있다. 자칫 공급 과잉으로 인한 출혈 경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 시장을 벗어나 미국 시장 진출과 같은 선진 시장 개척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미국의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서 전기차 충전소 운영 사업의 비중이 해가 갈수록 높아져서 2040년에는 전체 전기차 충전기 시장의 65%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전기차 충전소 운영 사업의 초고속 성장이 기대된다. 미국에서 전기차 충전소 운영 전문 기업으로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에너리지 회사의 민선애 사장은 " 미국 시장에서도 상대적으로 막대한 지원금과 세제 혜택이 크고 운영 수익에서 충전 운영 수익 외에 Carbon credit trading수익까지 있는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서부 시장에 최우선적으로 진출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고 했다. 이처럼 2024년 새해부터 한국의 전기차 충전소 운영 사업자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기차 시장에 진입하려고 계획하는 한국 기업들의 미국 전기차 충전 운영 사업에 보다 많이 진출해 새로운 기회를 얻었으면 한다.조셉 김 한미에너지협회 이사장

[기자의 눈] 중기부장관 현장행보

[에너지경제신문 김유승 기자]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취임과 동시에 기업 및 소상공인 현장방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여느 경제부처 장관들이 취임하면 초반에 산업계 현장을 돌면서 인사 겸 업계 애로를 수렴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에 해당하지만, 오 장관의 현장 발걸음은 남다른 배경을 깔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2024년 새해 업무 시작일인 이달 2일 공식 일정에 들어간 오 장관은 지난 1988년 외무고시로 공직을 시작해 35년간 외교관을 지낸 정통관료이다. 이런 경력 때문에 지난해 대통령실이 오 장관 후보를 발표하자 야당과 현장을 중심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 관련 정책 사항을 총괄하는 중기부 장관에 걸맞는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냐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장관 임명 뒤 오 장관은 이같은 비판적 외부 지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누구보다 소관업무의 이해당사자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을 것이다.실제로 현장 행보때마다 오 장관은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 △노란우산 공제 확대 △전통시장 디지털화 △납품대금 연동제 안착 △스타트업 코리아 실현 △민간 중심 벤처펀드 조성 같은 중기부의 주요 정책 추진과제를 강조하며,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전달했다.취임 하루 전인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방문을 시작으로 9일 서울 용산구 용문시장과 반려동물용품 업체를 만났고, 지난 16일 ‘제1차 소상공인 우문현답정책협의회’를 갖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그러나, 항상 정부부처 기관장들의 현장 방문에서 보듯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그 실효성을 두고는 항상 설왕설래 평가가 다르다.이번 오 장관의 현장 행보에서 드러난 아쉬움은 비록 취임 직후 이뤄진 일정이란 점에서 준비 기간이 짧음을 감안하더라도 현장에서 밝힌 중기부의 정책 추진 내용들이 기존의 내용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기자가 현장 동행취재했던 용산 반려동물용품 업체 방문 자리에서 신임 장관으로서 중소기업의 현장을 면밀하게 살펴보기보다는 제품이 전시된 회의실에서 간단한 사업 소개를 듣고 사업주의 애로점을 물어보는 여느 장관의 ‘루틴 행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지난 16일 열린 소상공인 정책협의회에서도 올해 바뀐 중기부의 정책 중심으로 상호소통하는 자리임에도 행사는 사실상 소상공인이 요구하는 민원성 내용을 듣는 성격으로 흘러 앞으로 정책협의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까라는 의구심마저 들었다.국가경제의 풀뿌리인 중소벤처기업 및 소상공인을 성장시키고 보호해야 하는 중기부의 수장직을 맡은 오 장관이 현장과 보다 진정성 있는 소통을 펼쳐 일각의 자질 부족 논란을 말끔하게 떨쳐버리기를 바란다.김유승 유통중기부 기자

[이슈&인사이트] 과잉입법, 입법영향 분석으로 견제해야

현 정부의 경제분야 국정 목표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다. 시장경제의 원리에 입각해 기업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줌으로써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전개되고 있는 대내외적인 여건은 이러한 경제정책방향의 정상적 추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출범 초부터 미국 금리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주요국의 경기가 위축되고, 전 세계적인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전개되면서 기업 투자여건이 크게 악화됐다. 국내 경기 역시 생산과 소비가 동반침체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등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의 필요성은 오히려 커졌다. 특히 가계 및 자영업자 부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지난 수년간 유례 없이 확대된 부채는 금리인상과 맞물려 현재 한국경제에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제지원과 규제 완화로 민간의 활력을 북돋고, 이를 통해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정부가 선정한 규제개혁 혁신법안 146개 중 단 6개만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하는 등 관련 법안들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제대로 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오히려 국회에서는 의원입법의 형태로 새로운 규제들이 양산되면서 민간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이어질 경우 이번 정부의 실제 경제정책의 모습은 여전히 ‘정부만 미는 경제’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얼마 전 국회입법조사처에서는 입법영향분석 보고서 발간을 기념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입법영향분석은 법률안이나 현행 법률이 국가와 사회,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그 동안 국회에서 의원주도로 발의되는 입법안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질적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로 인해 이미 19대 국회에서부터 입법영향분석의 제도화 논의가 진행돼왔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고유권한인 입법권 침해논란으로 제도 도입을 위한 국회법 개정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제도 도입을 위한 법안이 제출돼 있지만 임기 종료로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해외에서는 국회의원이 제안한 의원안에 대해 별도의 분석절차가 제도화돼 있지는 않다. 대신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OECD 국가들 대부분이 내각이 입법을 주도하는 의원내각제 국가여서, 법률안은 주로 정부안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정부안에 대해서는 통상 사전영향분석과 같은 절차가 마련돼 있어 입법내용에 대한 통제기제가 작동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법안의 대부분이 의원입법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별도의 통제장치가 없다. 정부 역시 장관 중점 관심사항 등에 대해서 신속한 처리를 위해 의원입법을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각종 이익단체들이 의원입법을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로비창구로 활용하면서 법들이 누더기로 변질되고, 그 과정에서 직·간접적 규제들이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있다. 이한 점을 고려할 때 의원입법에 대한 합리적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할 당위성은 차고도 넘친다. 이런 상황에서 입법영향분석 도입에 대한 논의가 이전에 비해 좀더 구체화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얼마 전 한국무역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스타트업 4곳 중 1곳은 규제를 피해 해외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결국 규제로 점철된 지금이 산업환경을 고치지 않으면,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정부가 끌고가야만 하는 지금의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규제의 양산 창구가 된 국회의 입법기능을 정상화·합리화하는 것이 돼야 한다. 물론 입법영향분석이 도입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입법과 그 속에 포함된 규제로 인한 사회경제적 영향에 대한 예측은 기계적인 분석기법이나 절차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관련 분야에 대한 오랜 경험과 관찰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는 분야별 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들이 장기간 해당 분야에서 재직하면서 입법과 정책동향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또 지금의 입법영향분석은 법안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관련 법률들과의 내용 및 체계 측면에서의 비정합성이나 위헌가능성 등에 대한 검토를 통해 불필요한 법률의 생산을 양적 측면에서 제어하는 수단으로는 충분치 않다. 입법영향분석의 도입에 더해 지금의 과잉입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거나 입법영향분석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경제의 활력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가 직면한 저출산·고령화와 그에 따른 지역소멸, 가계부채, 청년실업 등 중요한 어려움과 모두 맥이 닿아있고, 서로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그 동안 무분별하게 양산한 법과 규제들이 놓여 있다. 입법영향분석이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겠지만 개선을 위한 첫 걸음으로서의 의미는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뒷받침하기 위한 여야의 과감한 결단을 기대해 본다.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E칼럼] 중동발 공급망 위기, 철저히 대비해야

세계 물류와 에너지 교역의 핵심 지역인 중동 아라비아반도 일대에서 미국, 영국 등 서방과 이란을 필두로 한 이슬람 세력이 잇따라 충돌하며 확전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수년간 코로나19 팬데믹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다 이제 간신히 회복하려는 세계 경제에 중동발 공급망 위기라는 돌발 악재가 터지면서 세계 경제가 다시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중동지역의 충돌이 전쟁 수준으로 번질 경우 2년 가까이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어 세계 경제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거리 항로인 수에즈 운하와 이어진 홍해는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30%를 차지하는 주요 교역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역 물동량의 약 16%가 홍해를 지난다. 이 지역의 분쟁 확산으로 해로가 막혀 공급망이 망가지면 유가와 물류비 등이 상승해 간신히 잡히기 시작한 인플레이션이 악화할 위험이 있다. 무역 의존도가 약 75%에 달하는 우리 경제의 핵심 공급망 길목 두 곳에서 전례 없이 동시에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서 산업계는 물론 정부도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특히 교역의 99%를 해운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연간 교역 물동량의 약 26%(2억6000만톤)가 이 지역 항로를 지난다. 공급망 대란의 전운은 최근 살아나고 있는 우리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 자동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 타격이 우려 된다. 지난해 대(對)유럽연합(EU) 수출액은 683억달러(약 89조6000억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우리나라 연간 수출액 6327억달러(약830조원)의 10.8%를 차지했다. 주요 수출 품목은 자동차, 기계와 배터리 소재 등으로 대부분 해운에 의존한다. 만약 이번 사태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국내 수입의 약 70%를 차지하는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며, 유럽으로 가는 반도체, 배터리 제품 등의 수출 가격 경쟁에 심한 타격이 생기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우디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인 네옴시티 효과로 확대된 기계. 철강 수출 등 늘어난 중동 수출에 악재로도 작용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 지중해를 향하는 홍해 항로는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30%를 책임지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천연가스의 3분의 1, 석유의 6분의 1이 지나는 에너지 동맥이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이번 사태로 당분간 독일 베를린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원유 가격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세계 주요국들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중동 산유국 수입 비중을 늘려 왔다. 석유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 닷컴은 현재 배럴당 80달러를 밑도는 국제 유가가 오는 3월 말에는 110달러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정부의 대책이 중요한데 나름대로 발 빠른 대책을 갖추고 있어 다행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수출 비상 대책반을 열어 수출 물품 선적 동향과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도입 현황을 점검했는데 아직은 큰 영향을 받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중동 지역 불확실성 심화로 향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유관 부처. 기관 간 협력 체계를 바탕으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동시에 그 동안 쌓아온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 등 중동 국가와의 협력 라인을 잘 관리하면서 원유 등 에너지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외교적 노력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한 정부가 발표한 공급망 10대 과제를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 글로벌 가치사슬로 연결되는 모든 국가와 공급-소비 관계를 강화해 무기화의 유인을 떨어뜨릴 수 있는 국제적 공조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특히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된 공급망 기본법을 토대로 빠른 시일 내 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해야 한다. 경제안보와 공급망 안정을 위해 정부와 기업의 협력을 주문하며, 이번 중동 사태를 우리 경제의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강천구 인하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

[기자의 눈] 한미약품-OCI 통합서 드러난

[에너지경제신문 김철훈 기자]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최근 미국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장남 서진석 셀트리온 대표에게 메인 발표를 맡기며 자신의 후계자임을 국제무대에 알렸다. 그러나, 정작 서 회장은 그동안 서 대표를 포함한 자녀들에게 주식증여 등 승계작업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셀트리온그룹 합병 발표에서 서 회장은 "(수조원대 상속세 때문에) 내가 떠나면 셀트리온은 국영기업이 될 것"이라며 되레 기자들에게 앞으로 상속·증여세 제도 개편 전망을 물어보는 등 승계 문제에 답답한 속내를 내비쳤다. 서 회장의 가업승계 걱정은 최근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에서 한낱 기우가 아닌 ‘현실’로 나타났다. 한미약품그룹 송영숙 회장과 2남1녀 세 자녀는 창업자인 선대회장으로부터 1조원 규모의 지분을 물려받고 5400억원의 상속세를 부과받았다. 송 회장과 자녀들은 주식담보대출로도 부족해 지난해 사모펀드 운용사에 3200억원 규모의 지분을 팔아 상속세를 마련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로 무산되면서 송 회장측은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도 우려했다고 한다. 한미약품그룹이 OCI그룹과 통합을 결정한 데에는 신약개발을 위한 재원 확보 등 경영 차원의 포석도 있었겠지만, ‘상속세 문제’가 없었다면 과연 OCI그룹과 통합을 결정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정부는 중소·중견기업의 기업(가업)승계를 돕기 위해 올해부터 △상속·증여세 공제한도 확대 △연부연납기간 확대 △납부유예제도 신설 등을 담은 과세특례제도를 도입했다. 다만, 이 특례제도는 자산 총액 5000억원 미만 중소기업과 연매출 5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을 수혜대상으로 한정하고 있다. 최근 상속세 이슈가 불거졌던 삼성그룹과 넥슨은 말할 것 없고 연매출 1조원을 넘긴 셀트리온·한미약품 모두 수혜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상속·증여세는 일종의 불로소득인 상속·증여재산에 가해지는 과세로, 부의 세습과 편중을 완화하고 부의 재분배·사회순환을 촉진하는 긍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특정 조세제도가 기업의 경영구조에까지 예기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면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개편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상속세 납부자 상위 10%가 전체 상속세의 80%를 내는 등 대기업·고소득자의 조세납부 비중이 크다. 단지 실적이 많은 기업이라는 이유로 가업승계 보호 울타리에서 제외시켜 기업의 연속성이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빈대(세수 확보) 잡으려다 초가삼간(산업기반)을 태우는’ 우(愚)를 범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싶다. kch0054@ekn.kr김철훈 유통중기부 기자 김철훈 유통중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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