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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기후에너지정책 관련 중앙은행 역할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최근 한국은행은 금융시스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는 기후위기에 중앙은행 차원에서 대응하기 위해 총재 직속의 '지속가능성장실'을 신설했다. 과거에 비해 적극적인 중앙은행의 역할을 예고하는 것이라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관련 조직을 크게 보강하여 운용 중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존 환경 및 에너지 관련 시장 관계자들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설득력 있는 통화당국의 역할이 보여질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어찌 보면 기후 관련 정책에 있어서, 정부 부처들 보다도 중앙은행이 가장 중립적이고 공정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입장이다. 관련 보고서나 총재의 언급에 큰 무게가 실릴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일선 부처들은 딸린 관련 예하 기관들도 많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슈에 관한 입장도 이미 정해진 경우가 많다.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지만 산하 공기업인 석탄발전소를 포기하기 힘들 것이고, 경제도 지켜야 하지만 제철소에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겨 해외 이전하라고 등 떠미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부처의 입장 및 산하기관들의 밥벌이와 예산집행권이 당장 눈앞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국익이나 큰 흐름 차원에서 머리로는 동의가 돼도 손발이 따라줄 수 없는 한계가 많다. 그러니 아무리 토론을 해봐도 윗선에서의 정무적인 결정이 없는 한 답이 정해진 약속 대련만 보게 된다. 반면 중앙은행은 그런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 포괄적인 조사분석 및 정책대안 제시가 가능하지 않은가. 물론 금융권에서 늘 하는 수박 겉핥기식 해석, 예컨데 관련 채권의 부실화 정도로 치부하는 등을 넘어서, 한국은행이 관련 이슈에 대해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말이다. 필자가 과거 말단 직원일 때 팀장께 들은 말인데,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이라는 청룡언월도(거시정책수단)만 있지, 시장주체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들여다볼 도구로서의 검사권 같은 바늘(미시정책수단)이 없어서 정책 수립에 활용할 필수적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어려움이 있단다. 중앙은행의 제대로 된 역할을 위해선 시장에 대한 선험적 정보 파악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역사적으로도 중앙은행은 실물을 가리는 금융 베일(veil)만 보고 행동하는데 익숙하다. 하지만 기후환경에너지 부문도 마찬가지지만, 내밀한 실물 시장 상황을 모르고는 현실과 동떨어진 똥 볼만 차는 중앙은행이 될 우려도 있다. 사실 많은 기후환경에너지 정책들이 거시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며 이미 진행 중이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가 모두 공약한 탄소차액계약지원제도(Carbon Contract for Difference)를 통한 막대한 보조금, 연간 2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후대응기금으로 인한 재정지출은 외국환평형기금 등 국채발행 및 상환과 마찬가지로 시장 유동성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많은 미시적인 기후 정책들은 단순히 환경 및 에너지 관련 이슈를 넘어서, 산업정책화 되고 있는 현실이다. 탄소시장에서의 부문간 할당과 거래, RE100의 달성 유무에 따라 국가 전체의 성장잠재력도 크게 영향 받는다. 무역측면에선, 탄소국경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에 의해 국제수지가 결정되며 이는 다시 산업 부문간의 고통분담과 관련된 고민을 안겨준다. 한국 내수시장도 언젠가는이러한 국제경쟁력 상실을 가져올 탄소누출 방지 차원에서의 무역장벽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학계에서도 꾸준히 기후변화 정책의 일환으로서 경제블록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사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해서도 금융권에서는 말만 떠들썩하지 실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없다. 녹색, ESG 채권 시장 등도 실제로는 관련된 실물시장이 매우 미비하여 아무것도 안 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금융권 단독으로 공시기준 강화 혹은 관련 금융상품 출시 등을 해봐야 공염불이다. 이럴 땐 금융감독당국이 벌주고 때리며 앞에서 잡아 끌고 갈게 아니라, 중앙은행이 해줄 잔소리 한마디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실물시장이 왜 미시적으로 받쳐주지 못하는지에 대해 면밀한 조사역량을 보유해야만 가능한 역할이다. 물론 아직 한국은행이 해당분야에 대한 경험 및 전문성이 부족하고, 이를 기존에 다른 일 하던 공채 인원들로는 채우기 힘들다. 아마 한국은행 직원들 사이에서 해당 부서는 한직(閑職)으로 인식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통 정책부서에 배치 받지 못해 마지못해 끌려가듯 기후변화 업무를 맡는 상황에서는, 능력 축적은 고사하고 의욕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폐쇄적인 한국은행 순혈주의 문화에선 외부인력이 들어와 일순간 전문성을 보강해줘도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를 가지기 힘들다면, 매우 빠르게 변화가 닥쳐오는 기후환경에너지 분야에서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 승진 및 파견으로 보상받는 조직문화 속에서 해당 외부수혈 인력에 의욕을 불어넣어 줄 마땅한 수단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기후변화 관련 정책에 있어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통화정책을 비롯해 앞으로 많은 거시정책들이 기후변화 및 그를 의한 각종 리스크들에 의해, 또한 정부부처들이 행하는 각종 관련 정책들에 의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은 심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은행 내의 문화를 알기에, 전담부서를 만들었다고 저절로 굴러가진 않을 것 같아 노파심에서 글을 쓴다. 유종민

[이슈&인사이트] 영수회담, 그 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간 영수회담이 끝났다. 700일이 넘도록 서로 만나지 않았던 여야 대표들이 서로 한자리에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열흘 넘게 뉴스가 됐었다. 언론은 총선에서 대패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와 어떤 합의를 이끌어낼까 관심을 보였다. 두 시간 넘는 대화에서 서로 일치를 본 것이라곤 단 한 가지, 의료개혁의 필요성뿐이었다. 그것도 원칙적 동의에 그치고 구체적 합의는 없는 반쪽짜리였다. 이재명 대표가 제기한 이슈들이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선거에 대패한 윤 대통령으로선 3년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표류하지 않게 하려면 적어도 한두 가지 정도는 수용해야 할 상황이다. 사실 영수회담에서 제기된 이슈들, 채상병 특검, 대통령 가족 특검, 이태원참사 특별법 등은 대부분 과거지향적 이슈들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지도자들이 2년 만에 만나 논의할 이슈들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소리다. 지금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더 중요한 미래 이슈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의료개혁에 의견을 같이 한다는 것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또 하나 이재명 대표가 그토록 강조한 25만 원 생활지원금 정책이 미래지향적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크다. 이 대표의 제안은 광역단체를 기준으로 각 지역에서 쓸 수 있는 지역 상품권으로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의 생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국민이 물가상승과 소득감소의 압박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쓸 돈을 주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예산 13조 원을 추경예산으로 잡자면서 자신의 제안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했다. 말이 적극 검토지 사실상 이를 수용해야 협치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지금은 전 국민 대상 지원금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고 그로 인한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이 제안은 21대 총선 직전 문재인 정부가 전 국민 대상 4인 가구 기준 100만 원의 현금을 지원한 코로나 재난지원금의 복사판이다. 당시 지원으로 인한 효과는 자영업자들의 매출액이 반짝 높아진 것이 전부였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나 소비증가 효과는 거의 없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투입 예산 대비 매출 증대 효과가 최대 36% 정도로 나타나 이른바 투자승수 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팬데믹으로 인해 자영업자들의 영업 제한으로 소비가 크게 침체되었기에 소비진작 효과가 그 정도나마 나타날 수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침체를 빠졌던 반도체가 회복되고 있고, 자동차 및 방산 수출 증대 등으로 경제가 나아지고 있는데, 오히려 물가는 급등하고 있어 정부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기준이자율을 낮추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대 수준에 이르러 지원금을 지급해도 소비가 늘어나기 어렵다. 국가부채도 GDP(국내총생산) 대비 55%에 가까워지고 법인세를 비롯한 세수 부족이 커지고 있는데, 생활지원금을 지급하자면 부채는 더욱 늘어나 후속 세대에 큰 짐이 된다. 더 심각한 것은 선거마다 반복되는 현금지원이 유권자들에게 마약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커진다는데 있다. 어려운 저소득층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원하려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보편적 지원은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재정구조가 급속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뻔히 아는 정치인들이 필요성과 효과에 의문이 있는 보편적 재정지원을 반복하자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을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뜨리는 것에 불과하다. 총선에서의 압승을 바탕으로 이재명 대표는 국민의 명령이라면서 A4 용지 10장이 넘는 요구사항을 읽었다. 선거에 이겼다고 자신과 민주당의 공약이 국민의 명령이라고 몰아치는 것은 의미 없는 힘자랑에 불과하다. 국민은 모두 싫고 불편하지만 오만한 윤석열 대통령이 조금 더 미웠기에 민주당을 선택한 것뿐이다. 과거지향적 문제만을 가지고 국민감정에 기대어 건설적 미래에 대한 준비나 논의 없이 정치적 이익만을 취하려는 정치지도자들을 가진 이 나라의 국민이 불쌍하고 안타깝다. 홍성걸

[EE칼럼] 9회 말 역전 홈런을 기대한다

어떤 일이든 일어난 시점에 따라 감흥이 다르다. 야구 경기에서 홈런도 그렇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패하기 일보 직전인 9회 말 2아웃 상황에서 터트린 역전 홈런은 다른 홈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한 기쁨을 준다. 지금 우리는 9회 말 역전 홈런을 기대한다. '사용후핵연료 특별법' 말이다. 21대 국회에서 4명의 여야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는 등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는 뜨거웠지만, 원전 정책에 대한 여야의 입장 차로 법안이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까지 한 달가량 남았다. 여야가 합심한다면, 법안 통과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우리나라 에너지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한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4.4%며, 에너지 수입금액은 미국 달러로 2164억 달러다. 이는 2022년 우리나라 총수입액의 29.6%에 해당하며, 2021년 1359억 달러 대비 57%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에너지 수입액이 크게 늘었다. 최근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에서의 분쟁이 세계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면서, 에너지 가격을 들썩이고 있다. 자칫 중동과 우리나라를 잇는 핵심 항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제품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물가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원자력은 준국산 에너지로서 우리 경제와 산업발전을 위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2023 에너지통계연보에 따르면, 원자력을 국내 생산으로 포함했을 때, 2022년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4.4%에서 82.0%로, 12.4%포인트 줄어든다. 그 이전도 비슷하다. 이처럼 원자력은 에너지 수입액을 절감해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한편, 절감된 외화를 국내 다른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 주었다. 또 원자력은 고품질 전기를 값싸게 공급해 왔다. 2022년 발전원별 정산단가는 원자력 52원, 석탄 158원, 액화천연가스(LNG) 239원, 신재생 271원이다. 이처럼 원자력은 우리 경제와 산업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기반이다. 앞으로 원자력 이용 확대는 불가피하다. 우리나라가 육성하는 인공지능,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은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한다. 그런데 심화하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최대한 줄인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에너지원별 생애 온실가스 배출계수(g/kWh)는 석탄 820, LNG 490, 태양광 27, 수력 24, 원자력 12, 풍력 11 순이다. 이처럼 원자력은 깨끗한 전기를 365일 24시간 공급할 수 있어, 환경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원자력 이용을 확대하는 데 걸림돌이 있다. 바로 사용후핵연료다. 우리나라는 5개 본부에서 25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다. 원전을 가동하면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한다. 이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시설에 저장하고 있다. 원전 가동과 함께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이 늘어나며, 저장시설의 저장 공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저장시설이 가득 차면, 해당 원전은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한빛 원전, 한울 원전, 고리 원전의 저장시설이 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2030년부터 3년 이내에 19.3기가와트(GW)의 전력 설비가 사라지는 것과 진배없다. 이런 규모의 신규 발전소는 당장 건설을 시작해도 그때까지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전의 순차적 가동정지는 결국 대규모 전력부족 사태를 초래하여, 국민과 기업은 전기 없는 고통의 시간을 수시로 체험하고, 국가 경제는 괴멸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특별법은 예견된 재앙의 도래를 막기 위한 보루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부족으로 인한 대규모 원전 정지를 막기 위해서는 각 원전 부지에 저장시설을 시급히 확충해야 한다. 그런데 원전 주변 지역주민이 그 저장시설이 나중에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시설로 둔갑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저장시설 확충에 반대하고 있다. 지역주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언제까지 영구 처분시설을 건설해 사용후핵연료를 그리로 옮기겠다는 정부의 확실한 보증이 필요하다. 특별법이 그 보증수단이다. 5개 원전 본부에 저장돼 있는 1만 8600톤을 포함해 앞으로 발생할 사용후핵연료를 더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영구 처분시설은 꼭 필요하다. 남은 한 달, 21대 국회의 마지막 기회다. 임기 내 빈약한 입법 실적으로 질타를 받은 21대 국회가 사용후핵연료 문제와 전력부족 우려를 저 멀리 날려버릴 수 있게, '특별법 통과'라는 역전 홈런을 치길 기대한다. 문주현

[데스크칼럼] 윤 대통령-李 대표 아쉬운 ‘빈손’ 영수회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실상 여야 영수회담 방식으로 29일 만났다.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자리를 함께 하며 국정 현안을 논의한 것은 윤 대통령의 대선 당선 이후 처음이다. 윤 대통령의 취임 2주년(5월 10일)을 열흘 정도 앞둔 때다. 이날 영수회담은 이재명 대표가 용산 대통령실로 직접 찾아가 만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이 영수회담 불가의 고집을 꺾고 결단한 것이고 이재명 대표가 이를 높이 평가하며 윤 대통령을 예우한 것이다. 당연히 영수회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혹시나'를 기대했던 영수회담은 '역시나'로 끝났다. 2시간 10분 가량의 만남은 '빈손'으로 마무리된 것이나 다름 없다. 국민들에게 속시원하게 내놓은 뚜렷한 결과를 찾기 어렵다. 양측이 그간 고수해온 입장 또는 주장만 되풀이 하며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의대 증원에 공감하고 앞으로도 회담을 갖기로 한 게 성과라면 성과다. 일각에선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도 나왔다. 만나기 전부터 만남의 성격을 놓고 옥신각신하더니 민주당의 영수회담 주장에도 대통령실은 '차담'으로 만남 자체의 격을 떨어뜨렸다. 윤 대통령이 이미 영수회담을 흘러간 정치의 산물이라고 언급한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두 사람은 2022년 3월 9일 20대 대선 땐 각각 승자와 패자였다. 지금은 그 두 사람의 처지가 바뀌었다. 지난 4월 10일 치러진 22대 총선 결과 집권 국민의힘은 참패, 제1야당 민주당은 압승했다. 이번엔 윤 대통령이 패자이고 이재명 대표가 승자인 셈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 1년도 안돼 대권을 거머쥔 뒤 국정 운영의 자신감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불통과 오만·독선이 늘상 지적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회가 의결한 법안들에 줄줄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부인 김건희 여사 수사 요구 등엔 '내로남불' 논란에도 귓등으로 들었다. 이는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결국 윤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야권의 '정권 심판론'이 먹히면서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를 맞았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패배 후 산 넘고 물 건너 차기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국회의원, 당대표도 패스트랙이라는 속성과정을 밟았다. 이 대표의 거침 없는 정치 행보엔 무려 7가지 사건 10가지 의혹의 본인 '사법리스크'도 걸림돌이 안됐다. 이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22대 국회의 총 의석 300석 중 170석 안팎의 절대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윤 대통령이 의전 서열 1위로 행정 권력을 쥐었다면 이 대표는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까지 낙점할 정도의 막강한 의회 권력을 장악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권력의 크기로 보면 서로 맞짱 뜰 만 한 위치에 있다. 국민의 위임을 받아 나라를 운영하는 핵심 지도자다. 국정의 양대 수레바퀴로 책임감 또한 클 수밖에 없다. 나라의 운명을 번영과 발전의 길로 안내할지, 퇴보의 길로 이끌지는 그들의 손에 달려였다. 두 사람이 협력하지 않고 갈등하고 대립하며 싸우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자명하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이번 영수회담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국민 눈 높이에서 보면 실망스럽다. 영수회담이라면 국정 주요 현안에 대한 문제해결의 자리가 돼야 한다. 뭔가 막힌 곳이 있으면 뚫고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이런 당위와 거리가 멀었다. 이재명 대표가 윤 대통령에 건의한 내용은 이미 수 없이 발표된 것들이자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등으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것들이다. 이 대표는 기세등등한 태도로 4.10 총선의 민심이라며 윤 대통령이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제시하며 윤 대통령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지지자들을 지나치게 의식한 모습이 역력했다. 윤 대통령은 “경청하겠다"는 당초 입장대로 이 대표의 주장과 제안을 그저 듣는데 그친 것으로 비춰졌다.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놓은 채 '할테면 해보라'식의 자세였다. 이날 회담은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속 마음을 가지고 자리를 함께 한 계산된 만남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결과만 놓고 보면 당초 정국 해법을 고민하기라도 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이번 만남을 통해 얽히고 설킨 정국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현재 정치권이 풀어야 할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당장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3고(高) 상황에서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다. 수출이 우리 경제를 겨우 떠받치고 있지만 내수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외교 안보상황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중동전쟁이 확전 위기에 있다. 중국과 대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700여일 만에 만나 2시간 넘게 회담하고도 이런 중차대한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합의를 못하고 헤어졌다. 아무리 만남을 계속 갖기로 했다지만 이번 회담을 두 사람의 탐색전 쯤에서 만족한다면 너무 허탈하다. 두 사람이 국민의 눈치를 보고 국민의 표와 지지로 사는 지도자들인지 되묻고 싶다. 구동본 기자 dbkoo@ekn.kr

세종대 ‘부자학, 3고시대 중소기업 생존전략’ 특강

세종대학교(총장 배덕효)는 지난 23일 서울상공회의소 영등포구상공회(회장 김동환)에서 김대종 경영학부 교수의 '부자학, 3고 시대 중소기업 생존전략' 주제특강이 열렸다고 29일 밝혔다. 이날 영등포구상공회 제19기 최고경영자 과정 특강을 맡은 김교수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이른바 '3고(高)'에 직면한 국내 중소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선 △정부 공공조달 △모바일 전략 △매월 정기소득이 발생하는 구독경제를 필수전략으로 제시했다. 김교수는 “중소기업은 9988이다. 국내 경제에서 기업 수 99%, 근로자 수 88%가 중소기업으로, 한국경제의 풀뿌리로 고용창출과 경제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소매액 650조 원 중 41%를 차지하는 온라인쇼핑이 향후 최고 65%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김교수는 “중소기업은 공유경제와 구독경제, 인공지능, 모바일 등 4차 산업혁명을 해야만 시가총액 1조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스마트 보급률과 통신인프라에서 세계 1위인 점을 언급한 뒤 우버, 에어비엔비, 타다 등 4차 산업혁명 신산업이 금지된 점을 비판하며 국회와 정부가 규제를 없애고, 신산업과 구산업 간 상생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자학 내용으로 김대종 교수는 “주가는 경기 6개월 선행지수로, 내년 9월 미국 금리인하로 세계경제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며 “한국 기준금리 3.5%는 하반기에 인하되며, 부동산은 90% 확률로 다시 상승한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아파트 등 부동산과 마이크로소프트·삼성전자 등 우량주에 주식을 투자할 것을 조언했다. 특강을 마련한 김동환 영등포구 상공회 회장은 “좋은 강의 매우 감사하다. 중소기업도 고금리로 어렵지만 위기에 잘 대응하겠다. 구독경제와 신산업 등 4차 산업혁명을 적극 활용하여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기자의 눈] 인사만사(人事萬事)

기업들의 인사 시즌이 한참 지났는데도 '국민 기업' 카카오를 둘러싼 인사 잡음은 지속되고 있다. '회전문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용산 대통령실도 국회의원 총선거 참패 이후 개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통상 인사시즌으로 여겨지는 연말이 아닌데도 '인사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이 실감되는 요즘이다. '주식 먹튀' 논란으로 비판을 받은 정규돈 카카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카카오 재직 기간 동안 카카오뱅크 주식을 처분하지 않기로 했다. 정 CTO 선임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최근 카카오가 내놓은 자구책이다. 29일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에 따르면 카카오는 최근 준신위에 △경영진 선임 테이블을 신설해 후보자 명단 구성부터 인사 검증까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평판 이슈가 제기 됐던 임원은 카카오 재직기간 동안 카카오뱅크 주식을 최대한 처분하지 않고 유지하도록 하겠다는 개선안을 제출했다. 앞서 정 CTO는 카카오뱅크 CTO 시절이던 2021년 8월 카카오뱅크 상장 직후 보유 주식을 매도해 70억원이 넘는 차익을 남긴 사실이 알려지며 구설에 올랐다. 이에 카카오 준신위는 지난달 일부 경영진 선임과 관련해 발생한 평판 리스크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앞으로 유사 평판 리스크를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안 수립을 권고한 바 있다. 정 CTO와 함께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에 대한 인사 문제도 불씨는 꺼지지 않은 듯하다. 류 대표는 앞서 분식회계 논란으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해임을 권고 받았으나 재선임 됐다.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도 카카오페이 상장 직후 스톡옵션을 대량 매도해 시세차익을 거둬 비판을 받았으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 대표 모두 회사가 처한 당면 과제를 해결하고 책임 경영에 집중하고 있으나, 쇄신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카카오의 인사를 둘러싸고 여전히 제기되는 잡음을 듣다보면, 용산 대통령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당의 총선 참패가 대통령실의 인사 실패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을 카카오도 새겨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민간 기업 카카오가 대통령실처럼 국민의 심판을 받을 일이야 있겠냐마는, 창업주 김범수 경영쇄신위원회 위원장의 꿈이 '국민기업'이라면 다른 얘기다. 재신임을 받은 임원들은 보여줘야 한다. 카카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야 정신아 대표도, 김범수 창업자도 산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이상호 칼럼] 이스라엘과 이란이 자제력을 보인 이유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200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이란의 대리 세력인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및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군벌 참전으로 점차 확전되는 상황이었다. 이미 양측의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지난 4월 1일 이스라엘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이란 영사관 폭격으로 이란 정예 쿠드스군 고위 사령관을 포함한 13명이 폭사했다.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4월 13일 이스라엘에 300여 대의 드론과 미사일을 동원한 공습을 감행했다. 그러나 미국, 영국, 프랑스, 요르단 등 국가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공격 드론과 미사일 99%를 요격하는 데 성공하여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이에 이스라엘은 4월 19일 다수의 드론과 미사일을 동원해 이란의 핵시설 인근 지역을 목표로 재보복을 단행했다. 이란은 방공 시스템인 S-300 대공미사일 등을 잃었지만, 큰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이번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보복 공격은 여러 면에서 의아한 부분이 있다. 우선 공격 규모에 비해 양측의 피해가 가볍다는 사실이다. 탄도미사일 등 300여 대가 동원된 이란의 공격은 전례 없던 수준으로 기습적으로 이뤄졌다면 엄청난 피해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란은 이스라엘 공격 하루 전 미국에 계획을 통보하고 심지어 공격 루트까지 사전에 흘렸다는 루머가 있다. 복수를 위해 최대한 공포와 피해를 강요하는 보복 기습 공격의 군사적 성과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재보복 공격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스라엘은 탄도미사일, 스텔스 전투기 등 첨단 무기체계를 동원해 이란의 방공망을 무력화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미사일로 이란의 대공미사일 시스템을 기습 제거한 후 같은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던 나머지 미사일들을 공중 자폭시켰다. 이미 제거한 목표를 추가로 타격할 필요가 없어서겠지만, 이는 이스라엘이 이란에 더 공격할 수 있지만 이 정도만 하고 봐준다며 희롱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스라엘은 언제라도 이란 전역을 마음대로 유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번 이스라엘과 이란의 보복 공격을 보면 사전에 연습 된 연극 공연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명분과 여론 때문에 서로 보복 공격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지역과 국제 환경을 감안해 서로 원하는 수준의 보복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아마 최근 국제정세만 아니었다면 양국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동중국해 지역에서 긴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전면전 발발을 원치 않은 미국 등 서방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두 나라는 체면은 지키면서 피해는 최소화한 합리적인 대응을 선택했다. 최근 국제정세를 혼탁하게 하는 4대 세력인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의 연대가 심상치 않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축소 또는 지연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패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승리하고 서진(西進) 한다면 미국과 나토는 유럽에서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중동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중국이 대만 침공을 감행하며 북한이 한반도에서 무력도발을 한다면 미국은 4개 다른 지역에서 전쟁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는 아무리 미국이라도 절대 감당이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이 전쟁에는 미국의 동맹국과 연합국들도 참전하게 되어 결국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 체면치레하는 수준에서 보복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이런 불안한 타협이 계속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 우선 이스라엘이나 이란 모두 정권 위기 타개와 국내 정치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려야 하는 처지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권은 부정부패 및 권력남용 등 문제로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고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는 계속되는 시위, 내부 분열, 주변 이슬람 국가들과의 갈등 속에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계속 공격하고 레바논 남부에서 이란의 하수인인 헤즈볼라와 본격적인 교전에 들어가면 결국 두 나라는 충돌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코로나로 전례 없던 어려움을 겪은 국제사회는 이제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끝내 유럽 전체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 중동에서의 전면전 불씨를 꺼트리며 중국의 대만 점령 의지와 북한의 호전성을 잠재워야 한다. 하지만 과연 이게 실현할 수 있는 목표인지 확실치 않다. 이들 국가는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평화보다는 갈등을 초래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하고 서로 연대를 통해 각자의 목표 달성을 지원한다. 아직 국제사회는 이런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의 연대를 깰만한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이스라엘과 이란의 체면치레 보복 공격 사례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미국과 서방이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성과를 달성한 긍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를 교훈 삼아 향후 국제사회가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단합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이상호

[EE칼럼] 국제감축사업,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이 핵심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서 경제, 사회, 그리고 정치적 차원에서 긴박한 도전 과제로 자리매김했다. 기후변화 저지를 위해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파리협정은 지구 온난화를 산업화 이전 대비 가능한 한 1.5도 섭씨 이하로 유지하려는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다. 전신인 교토의정서에 비해 파리협정은 개도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다양한 지원 메커니즘과 감축의 투명성과 도전성을 높이는 여러 장치들을 배치했다. 그런데 협정 출범 9년이 지난 지금도 구체적인 이행방안이 합의되지 않는 조항이 있으니, 바로 파리협정 제6조이다. 제6조는 국제협력에 의한 감축에 관한 규정이다. 그만큼 당사국 간 이견이 크다는 뜻일 거다. 교토의정서에서 국제감축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청정개발체제(CDM)이었다. 온실가스 감축 비용이 낮은 지역에서 감축활동을 벌이고 감축량을 이전해서 사용하거나 거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발전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개도국도 편익을 얻을 수 있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나 탄소 삼림 프로젝트에는 자금 지원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CDM은 저비용의 감축사업만을 선호한다"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아울러 CDM 프로젝트의 혜택이 일부 국가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분석 결과와 함께 파리협정 체제에서는 저개발국가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량 및 탄소 상쇄를 통한 제거(removal)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측정 도구의 불확실성, CDM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량이 추가적이며 영구적인지에 관한 의문, CDM 프로젝트 재원이 부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추가적인 온실가스 배출을 야기한 경우 등 실제 감축 효과가 과대평가되었다는 등 여러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비판을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 파리협정 제6조 체제이다. 6.2조는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해 감축을 추진하고, 6.4조는 다자 메커니즘을 구축해서 민간이 배출권을 국제적으로 이전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국내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많은 제약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외 감축분을 포함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설정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2023년에는 NDC의 부문 간 목표 조정을 하면서 국외감축분을 3350만톤에서 3750만톤으로 늘려 잡았다. 이는 산업부문의 목표 2307만톤 보다 더 많은 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외감축의 달성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국외감축 사업은 대부분 개도국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CDM의 경험에서 개도국은 국제감축 협력사업이 그다지 자국에 도움이 안 된다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필자의 연구팀이 8개국의 CDM 프로젝트 승인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조사에서는 기존 프로젝트들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다양한 사례가 제시되었다. 또한 국제 감축사업에 대한 파리협정의 룰이 교토의정서 보다 훨씬 엄격해지기도 했다. 국제감축 사업이 배출권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추가성의 원칙이라는 것을 지켜야 하는데 이것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특정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감축이 기존의 법률이나 규제, 다른 정책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하고, 파리협정 6조 메커니즘에 따른 지원 없이는 재정적으로 실행 불가능한 프로젝트여야 하며, 기존의 기술이나 관행을 뛰어넘는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이 도입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파리협정 6.4조의 새로운 방법론은 배출권 발급량을 실제 감축량보다 낮게 설정함으로써 감축된 배출량의 일부는 개도국이 직접 활용할 수 있게 하고, 기술 수명보다 짧은 크레딧 발급 기간을 설정해 후반기 이익이 개도국에 귀속되도록 하는 등 개도국이 장기적인 이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파리협정 하의 국제감축사업은 지속가능발전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외에도 A 국가에서 발생한 감축량이 우리나라로 이전될 경우, 상응조정에 따라 A 국가는 해당 감축량을 자신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추가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감축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엄격한 투명성 원칙 등이 요구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은 탄소 규제가 느슨한 지역에서 강한 지역으로 탄소가 이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화되고 있는 탄소무역규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적용 확대 등으로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도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감축수단이 제한적인 많은 기업들이 국제감축사업과 자발적 탄소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정부 또한 NDC 달성을 위해 국제협력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조건들을 보면 국제감축이 국내에서의 감축보다 더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교토의정서 때와 달리 개도국 또한 감축 의무를 지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국제감축의 가능성은 감축사업이 개도국의 지속가능발전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파리협정 6.4조는 지속가능발전메카니즘이라 불리기도 한다. 과거 CDM 프로젝트에서 지속가능성 평가보고서는 형식적 서류에 불과했지만, 파리협정에서는 지속가능성이 프로젝트 승인과 검증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국제감축 프로젝트를 설계할 때 우리 입장에서 얼마나 저렴하게 감축을 달성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을 지원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는 토지, 산림, 수질, 대기오염 방지 등의 환경 개선과 재생에너지의 확산, 교육과 기술 훈련 프로그램 등을 통한 지역 사회 역량 강화와 이를 통한 소득 증대 등을 위한 계획도 진정성 있게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대형 에너지개발사업에서 인허가와 설비건설 만큼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이 주민수용성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한다. 국제감축사업도 사업대상 국가와 프로젝트 실행지역 주민의 마음을 얻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막연히 국내감축보다 국외감축이 더 쉽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파리협정에서 국제감축의 타당성평가 및 검증에 지속가능발전 평가 의무화와 상응조정 등의 강화된 조건이 추가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국제감축이 우리에게 NDC 달성의 대안이 되려면 발상의 대전환과 철저한 준비가 절실하다. 하윤희

[기자의 눈] 기업 밸류업을 향한 일말의 기대

정부가 기업 밸류업 공시 가이드라인을 다음 달 2일 공개하기로 했다. 밸류업 공시 가이드라인은 지난 2월 발표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의 일환으로 상장사가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자율공시하는 게 주요 골자다. 향후에는 자율공시 우수기업을 중심으로 지수와 상장지수펀드(ETF)를 구성해 운영할 전망이다. 연초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드디어 사업 시행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데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자율공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고 이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상황이다. 자율공시는 말 그대로 기업 스스로 노력하고 자율적으로 공시를 작성해서 주주와의 소통을 확대해라는 의미인데 과연 기업들이 당국의 기대만큼 움직이겠냐는 것이다. 밸류업 지원 방안의 세부 내용을 보면 자율공시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작성해 공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방침이다. 회사의 판단에 따라 공시 여부나 횟수, 내용 등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자율공시이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을 거치지 않아 금감원의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공시 계획을 변경하거나 공시하지 않더라도 규정 위반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 처벌도 없다. 정부는 관련 패널티가 없는 대신 기업들에 밸류업 표창을 수여하고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 참여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프로그램 운영 초기에는 참여율이 저조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다음 달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에도 당장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에서는 “기업들이 주주환원을 해야 하는 것은 맞는 방향이지만 주주환원에 적극 나서는 기업은 많지 않다", “자율에 맡겨서 얼마나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당국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기업 참여율이 예상보다 높을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기점으로 기업들의 주주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어서다. 올해 정기 주총에서는 소액주주들이 제안한 배당 확대, 사외이사 선임 등의 안건이 승인되는 등 주주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성과를 이뤄냈다. 일반주주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업 입장에서 주주환원이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된 것이다. 또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행되면 주주들 입장에서 자율공시 여부를 놓고 기업을 압박할 명분도 생긴 셈이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밸류업 프로그램을 제대로 추진해주길 기대해본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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