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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경제에도 춘하추동이 있다

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경제에도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다. 호황엔 불황을 대비하고 불황엔 호황을 준비하라. 일이 잘되어 나갈 때는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하라. 기쁨 뒤에는 반드시 슬픔이 따르게 마련, 오늘의 행복에 도취되지 말고 지난날 불행을 거울삼으라."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삼성경영에서 지켜온 금과옥조다. 그것이 가장 빛을 발한 것이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의 “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그 선언에는 1993년 6월7일이라는 시기의 적절성이 있다. 1993년은 한국의 국격을 한 단계 높인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의 5년 후이면서 한국의 국격을 한 단계 추락시킨 IMF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7년의 5년 전이다. 호암의 춘하추동 이론에 의하면 1988년이 호황인 여름이라면 1997년은 불황인 겨울이고 1993년은 호황에서 불황으로 넘어가는 가을에 속하는 환절기이다. 다른 기업들이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의 환상에 취해 있을 때 삼성만이 홀로 다가올 IMF 사태의 위험성에 대비했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삼성의 임원진과 해외 주재원 등 200여 명을 모아놓고 '신경영'을 선언했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류나 삼류가 될 것"이라며 뼈를 깎는 수준의 혁신을 주문했다. 1993년 당시 현대, 대우에 이어 3위에 머물렀던 삼성은 다른 기업에 비해서 발 빠른 개혁을 계기로 5년 후에 다가올 IMF 외환위기 사태에 선제 대응함으로써 지금은 다른 그룹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계 1위를 굳히게 되었다. 선언 이후 30년 만에 삼성전자의 자산규모와 매출은 약 10배의 양적 성장과 더불어 품질경영과 혁신의 DNA는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하여 반도체, 스마트폰, 대형 TV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였다. 호암의 춘하추동 이론은 호암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고 경제에서 경기 순환의 한국형 버전이다. 유사 개념으로 'S자 곡선'이 있다. 제품의 수명 사이클을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 등 4기로 구분한다. 경기 순환은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는 회복기, 가장 좋은 호경기, 경제 활동이 위축되는 후퇴기, 경제 활동이 침체하는 불경기의 4기로 나눈다. 호암은 경제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회복기를 춘(봄), 호경기를 하(여름), 후퇴기를 추(가을), 불경기를 동(겨울)으로 표현했다. 계절 개념을 가지고 선제 대응하라는 것이다. 스노타이어는 여름에 준비하고, 밀짚모자는 겨울에 사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스노타이어를 눈 오는 날 산다고 북새통을 이룬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석유화학산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울산 석유화학 단지가 완성된 1972년 다음 해에 1차 석유 파동, 여천 단지가 완성된 1980년에 2차 오일 쇼크가 왔다. 결과적으로 1980년대 초반에 과잉투자로 석유화학업계는 고전했고, 석유화학 투자를 전면 중단했다. 그런데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0년 석유화학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자 재벌들이 무차별 석유화학에 올인 했다. 공장들이 완성될 즈음인 1997년 IMF 사태를 맞았다. 석유화학은 설비 산업으로 기획에서 준공까지 5년의 시차가 있다. 호황기에 공장을 기획하면 5년 후 불황기에 준공되고, 불황기에 투자를 중단하면 호황기에 팔 게 없는 엇박자가 난다. 그래서 최소한 5년의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인공지능 등 현재 무차별적인 투자가 일어나고 있는 한국 기업은 호암의 춘하추동 이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반도체는 미국, 일본, 중국뿐 아니라 베트남, 인도도 참여하는 세계대전 상태다. 전기차와 이차전지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인공지능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규제 대상이다. 기업의 도산 원인이 운영· 관리의 실패보다는 투자 판단의 오류에 기인함에 유의할 일이다. 윤덕균

[이슈&인사이트] 전공의 파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

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제22대 총선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이슈 중 하나가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싼 전공의 파업으로 시작된 의료대란이다. 이미 6주를 넘어선 전공의 파업으로 대형병원들은 최소 기능만 운영하고 있고, 수술이 미뤄지고 응급환자들을 받지 못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방에서는 진료 자체를 받기 어렵고 수술을 받으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공공의료기관들은 의사를 구하지 못해 개점휴업 상태가 되기 일쑤고, 환자들은 서울이나 지방 대도시의 거점병원으로 몰려들었다. 덩달아 환자 가족들도 병원 근처에 머물며 환자들 돌보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불합리한 건강보험 수가체계로 인해 필수 의료분야를 전공한 의사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없으니 점차 필수분야 전공자의 수도 줄어들어 수술 의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오랫동안 묶여있던 의대정원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반겼고, 필자 주변의 의사 친구들도 증원이 필요하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론조사에서도 70% 정도가 의대정원 확대에 지지한다는 결과가 꾸준히 나왔다. 문제는 증원 규모와 방법,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품질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의대 정원을 10년 동안 연 2000명씩 늘리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었다. 정책은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을 상정하고 현재를 바꾸어 가는 일이다. 오랫동안 나름대로 이해관계의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가 정책을 통해 깨지게 되니 이해관계자의 반발은 당연하다. 변화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원하지만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그동안 누려오던 이익을 빼앗기게 되는 사람들의 반대의 강도가 새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보다 훨씬 크다는데 있다. 또 의대 증원의 편익은 국민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는데 반해 손해는 의사 집단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의사들, 그 중에서도 이제 막 의료인으로 출발해 평생을 의사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과 예비 의료인들, 즉 의과대학생들의 반발이 훨씬 더 큰 것이다. 지난 1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있기 전까지 대다수 국민은 왜 하필 꼭 2000명이어야 하는지에 의문이 있었다. 의대 증원의 핵심은 증원 규모, 즉 숫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에 의사들이 가도록 만들 수 있느냐였다. 의사들이 지방에 가지 않는 이유는 도시에서 일하는 것보다 경제적 보상이 적고 자식을 기르고 문화생활을 하는데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필수분야에서 겪어야 할 고생에 비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거기에 의료수요가 급증하는데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문제니 결국 의료개혁은 의대 증원보다 현재의 건강보험 수가체계를 개선하고 전공의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앞세웠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다른 요소들은 거의 잊혀지고 의대 증원만 전면에 나타났고, 이해당사자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반발이 커진 것이다. 정부의 정책추진 과정이 어설펐다고 그 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더욱이 1일 대통령 담화를 통해 알려진 것을 보면 정부가 실제로는 부단히 의견을 요청했지만 의료계가 이를 외면해 왔다. 대통령 담화 이후에도 의사협회는 '입장이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는 오만함을 보였고, 전공의들도 의대 증원 백지화 전에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한다.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밥그릇만 챙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만천하에 선포한 것이다. 이제 국민도 알게 되었다. 정부의 정책추진 과정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대국민 소통과정이 미흡해 정부가 일해 온 과정이 잘 알려지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의료인들의 고집스런 태도가 국민과 상관없이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서 비롯되었고, 오로지 의대정원을 현 상태로 묶어두거나 지금보다 더 줄여야 한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6주간 전공의 파업에도 병상을 지킨 의료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도 지금 오로지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부 의사들과 전공의, 예비 의료인들에게 강력히 경고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의사가 되어도 결코 그 인생이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도 숫자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데 가장 좋은 대안인가를 확인하고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국민과 함께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유념해 의사에게 부여된 '신성한 의무인가'를 다시 헤아려보기를 바란다. 국민을 떠나 자신의 돈벌이만 생각하는 의사들에게 내 몸을 맡기고 목숨을 구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홍성걸

[EE칼럼] 글로벌 비전 실종된 기후변화 총선 공약

정서용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CSDLAP 소장 4·10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에서 주요 정당들과 각 후보들은 다양한 정책 공약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기후변화는 유권자 세 명 중 한 명이 투표할 후보를 선정하는데 중요하게 생각할 정도로 각 당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는 물론 올해 선거를 치르는 EU를 비롯한 70여개 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후변화 공약은 기후대응기금을 획기적으로 증액하겠다는 기후금융, 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에너지전환, 기후변화 전담 부서의 신설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슈가 되었던 재생에너지 100%를 실현하고자 하는 소위 RE100 이슈도 여야 간에 중요한 쟁점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역구 유권자의 관심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기후변화 대응 이슈의 부각은 중요하고 또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좀 더 체계적으로 국제적 안목과 비전을 담은 기후변화 공약의 제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 면적에, 많은 인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의 기후변화 대응만으로는 하나의 글로벌 기후체계 속에서 발생하는 기후변화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들이 생산하는 IT 제품,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제품 등 어느 것이든 국내에서 소비되는 양보다 국외에서 소비되는 양이 절대적으로 많다. 따라서 기후변화 공약들은 우리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국내 차원을 넘어서 국제사회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고, 이를 통하여 유권자들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요 공장이 위치한 지역이 기업의 선도적인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을 통하여 새로운 탄소중립, 기후위기 대응 신시장을 개척하고 이를 통해 창출되는 다양한 혜택이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는 정책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기업들은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으로 새로운 탄소 통상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이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과 해외 투자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반도체 관련 기업이 많은 지역은 반도체 벨트라고 불리면서 각 당의 후보들이 다양한 기업 관련 정책을 통하여 지역구 표심을 끌어오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어느 당에서도 반도체 기업의 수출 증진을 위한 탄소 통상장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지 않다. RE100에 대해서도 서로 입장을 내 놓고 있지만, 해외에 대규모 공장을 두고 있는 우리 기업이 석탄에 의존하는 현지 국가의 전력 생산 정책으로 인해서 현지 생산 제품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 가능성이 심각한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내 석탄발전소 저감 정책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기업의 해외 공장이 위치한 국가의 석탄발전소 문제도 똑같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기업이 많이 진출한 개도국의 경우에는 ODA와 국제 정책 공조 등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개도국 탄소중립 전력체계 구축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공약이 중요한데 찾아볼 수가 없다. 지역구 구민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에 대한 정책 비전도 아쉽다. 해외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국외감축결과를 국가 온실가스 감촉목표 달성에 활용하는 온실가스 국외감축 정책은 새로운 해외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개도국의 경우 파리협정에 따른 기후변화 대응 역량이 없거나 필요한 기술과 재원이 부족해서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ODA 정책과 연계된 다양한 해외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이를 통해 창출되는 해외 일자리는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은 물론 경험이 많은 중장년층의 해외 진출을 도와주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이지만 여야 각 당은 글로벌 안목과 비전을 담은 기후변화 공약을 제시함으로써 지역구에서의 승리는 물론 총선 후 제22대 국회에서 기후변화 논의가 국내적 차원의 논의를 넘어 국제적 안목과 비전에 바탕을 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서용

[기자의 눈] 주총이 끝나고 난 뒤

열기를 띠었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마무리됐다. 어떤 주총은 큰 문제 없이 원만히 끝나는가 하면, 어떤 주총은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의 주총장에는 무수한 이들이 남기고 간 희망 혹은 절망이 정적과 함께 남아있었다. 수 개의 주총 취재를 마치고 나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제도적 장치를 통한 소액 주주들의 주주권 보호 필요성이었다. 아주 간단하고도 합당한 제도 개선을 몇 가지만 거치면 일부 주총장에서 나타났던 부정적 감정의 총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텐데 하는 감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주명부 및 회계장부 열람·등사 신청을 했을 때를 들 수 있다. 해당 자료는 워낙 데이터양이 방대해 전자문서로 제공하는 것이 필수인데, 주주연대 측과 분쟁을 겪고 있는 대유 등 몇몇 상장사들은 이를 굳이 두꺼운 프린트물로 배부해 사실상 주주권 행사를 방해하는 일을 저질렀다. 법령상으로는 허용된 행위여서 법률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는 허점을 이용한 것으로, 발전된 사회상을 법이 따라오지 못한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여전히 감사 선임과 관련한 '꼼수'도 많이 관찰됐고 주총 파행을 위한 의도적 전자위임장 거부, 질서유지라는 명목하에 회사 직원들이 주총장을 채우고 주주 발언마다 질문을 원천 차단하는 등 만행도 다수 발견됐다. 문제는 주주 측에서 이를 방어할 만한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가처분 및 본안 소송이라는 법률적 방어 수단이 있기는 하나, 시간과 자금이 많이 드는 관계로 생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주주들이 사실상 감당하기 어렵다. 이미 옆 나라 일본은 '밸류업 프로그램' 전에도 주총과 관련한 문제점 등을 직간접적 규제로 해결하고 위법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써 회사-주주가 윈윈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일부 상장사에서는 의장뿐 아니라 각 사업부 대표 임원까지 나와 주주들의 질문에 정성스레 답변하는 사례도 나타날 정도로 주총 문화에 많은 개선을 이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에 이 주주권 강화를 위한 공약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큰 실망으로 다가온다. 공약으로는 내지 않더라도 4월 10일 이후 새로 구성될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논의해 가급적 내년 정기 주총 시즌 전에는 보다 환경이 개선됐으면 한다. 성우창 기자 suc@ekn.kr

[이슈&인사이트] 의학·의료계 ‘인공지능 쓰나미’와 의대 증원

인공지능(AI)은 사람의 학습력, 추론력, 지각력을 인공적으로 구현시키는 컴퓨터과학의 한 분야로 최근 몇 년간 급속한 발달을 보이며 '쓰나미'같이 무서운 속도록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특히 '챗(Chat) GPT'라고 불리는 생성형 인공지능은 우리가 물어보는 질문을 친구와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답하는 내용도 상당히 정확하다. 백과사전같이 방대하게 수록하고 있는 지식을 바로바로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외과 의사로서 이런 인공지능의 발전을 지켜보고 있으면 향후 10년, 20년 혹은 미래에 펼쳐질 세계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두렵기까지 하다. 최근 이러한 인공지능의 발전이 의학에도 미치고 있다. 엑스선, CT나 MRI 등으로 촬영한 영상물을 빠르고 정교하게 판독하여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깜짝 놀랄 정도이고, 이런 정밀한 진단은 판독이 어려운 병리 진단에도 사용되고 있다. 향후 인공지능은 환자의 병력 청취, 환자 맞춤형 진단, 최선의 치료방법 선택 등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외상(外傷)으로 인하여 뇌출혈이 생기거나 대량 출혈이 발생하면 빠른 수술로 출혈부위를 지혈시키는 것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 이때 현재처럼 CT나 MRI 등의 영상 촬영을 하고 판독하여 진단을 하다 보면 자칫 '골든 타임'을 놓칠 수가 있다. 그러나, AI시스템을 이용해 바로 진단하고 신속히 수술하게 된다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차원에서 나아가 후유증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까지 가능해진다. 이러한 AI를 이용한 의학분야의 발전으로 점점 더 의학의 수준이 높아지고 '맞춤형 치료'의 범위와 적응증도 넓어지고 많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에 반해 AI의 발전으로 인한 반작용도 있을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수백만에서 수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전망이다. 의학과 의료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거의 모든 미래예측 자료를 보면 인공지능 시대에 사라지거나 축소될 직업으로 의사가 아주 높은 순위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네이처(Nature) 저널에서도 전문가들이 'AI가 의사들을 상당히 대체할 것'이라는 의견을 많이 제시했다. 앞으로 AI가 의사들의 수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다. 정말 AI가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보는 의견들은 소수이지만, 대부분은 의사들의 수요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즉 확실한 것은 'AI가 의사의 일을 많이 덜어줄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의대정원 증원 문제로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가 끝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인구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향후에 의료수요가 많아져서 올해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한다. 의료계는 단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으로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앞으로 수년 후에 AI시대, 즉 인공지능 시대가 정착한다면 의사가 하던 환자병력 청취, 복잡한 진단 과정, 치료계획의 확립 등의 일들은 분명 줄어들 것이다. 의사는 AI와 함께 정확하고 또 신속한 맞춤형 진단 치료를 할 것이다. 이때 의사 수가 정말로 많이 필요한 지는 정부와 의료계가 합심해 과학적으로 산출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쓰나미 초기에는 바닷물이 빠져나가서 오히려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게 할 수도 있다. 다시 무서운 속도로 밀려오는 'AI 쓰나미'를 우리는 지금부터 잘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박효순 기자 anytoc@ekn.kr

[EE칼럼] 에너지 거버넌스 혁신 서둘러야

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정부의 권한과 규제를 경계하는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굳이 동서양의 금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과도한 정책개입과 촘촘한 규제의 폐해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GDP나 교역규모가 세계 10위권인데 비해 규제 순위는 100위권 정도라니 '규제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경제 원칙에 개입하거나 제재를 의미하는 '경제적 규제'는 기업의 독과점이나 가격담합과 같은 불공정경쟁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에서 비롯되었다. 즉,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시장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목적이다. 미국에서는 1890년 셔먼법으로 불리는 반독점법을 통해 독점기업의 폐해를 방지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스탠다드 오일, AT&T,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최근에는 애플 등 빅테크기업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정부의 권한이 큰 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작은 정부를 주장하지만 정부조직과 공공기관은 날로 비대해지는 추세다. 국회 또한 권한과 기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민의 반영, 갈등 해소, 새로운 서비스와 역할을 빌미로 공적 기능의 확대가 지속되고 있다. 인구는 제자리 걸음인데 공공분야 종사자수나 기관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에너지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2000년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경쟁체제 도입을 시작한 이후 전력산업에 대한 정부개입은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과거 주관부처와 해당 공기업이 주도적으로 담당하던 정책기능마저도 이제 찾기보기 어렵다. 어디서 누가 결정하는지도 모를 엉뚱하고 선동적인 정책목표와 시행계획이 예고도 없이 떨어진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고 환경을 개선을 하는데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정책목표에서 한발만 들어가면 에너지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진다. 어제는 재생에너지, 오늘은 원전으로 정책목표도 수시로 바뀐다. 이러한 갈등의 근원은 에너지에 대한 과도한 정책개입과 불합리한 거버넌스에서 비롯된다. 가격, 거래, 경쟁과 같은 시장기능은 제한되고 요금, 규제, 보조금과 같은 시장외적 힘이 크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에너지산업에 대한 거버넌스는 대체로 규제기능과 정책기능이 엄격히 분리돼 있다. 특히, 규제기능은 독립적 규제기관에 의해 이루어지고있다. 미국은 연방 에너지규제위원회(FERC)와 주별 공익규제위원회(PUC)가 병존하지만 통상적인 에너지 규제기능은 대부분 주 PUC에서 수행한다.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등도 규제의 범위나 권한의 차이는 있되 기능과 운영방식은 비슷하다. 이에 반해 정부의 해당 부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미국 에너지부(DOE)의 중요한 기능은 대부분 기술개발을 위해 방대한 국책연구기관을 운영한다. 이와 아울러 독립적이고 공정한 에너지 정보를 수집, 분석해 제공하는 에너지정보청(EIA)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합리적인 정책, 효율적인 시장, 에너지 경제 환경 간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고자 한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도 에너지 거버넌스 변화에 관한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강고한 관료주의와 정치권의 개입으로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에너지문제가 사회적, 정치적 이슈화되면서부터 이런 흐름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하루빨리 에너지 규제에 따른 부작용과 사회적 갈등, 경제적 비효율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에너지분야 규제기능 분리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진흥과 규제는 양립하기 어렵다. 정책은 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역할이 주기능인데 반해 규제는 산업이나 독점적 기업에 대한 통제를 통해 시장실패를 방지하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고자 한다. 이 두가지 기능을 같은 부처에서 수행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전력산업의 시장기능 회복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 전력산업은 도매시장이라는 '무늬'는 가지고 있지만되, 실상은 계획과 규제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 특히, 소매요금을 정치적 이유로 과도하게 통제하다 보니 국제유가에 따라 흑자와 적자가 되풀이되고 있다. 천수답 마냥 유가가 내리면 흑자, 오르면 적자에 빠진다. 적자가 지속되면 결국은 요금을 올리겠지만 이미 상황이 끝나 사후약방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후진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거버넌스의 독립성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엉뚱한 외부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에너지시스템, 전기요금, 전력시장의 현안과 해법에 대한 합리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쟁적 산업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은 아직도 진행중인 미완의 정책이다. 이제라도 발전부분 경쟁확대와 판매부분 분할과 경쟁이 필요하다. 견고하게 속박된 발전부문의 경쟁을 확대하고, 지역기반의 공급체제로 전환한다면 전력시장 또한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분산에너지특별법에도 담겨있다. 에너지산업의 발전과 기술변화에 맞추어 산업구조를 바꾸면 에너지 거버넌스 또한 이에 맞는 구조로 자연스럽게 전환될 것이다. 에너지산업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거버넌스 재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가 에너지 거버넌스의 재구축을 통해 시장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높인다면 시장참여자의 갈등 해소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창호

[이슈&인사이트] ‘디지털’ 선도하는 에스토니아 vs. 한국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1990년대 들어 우루과이라운드(UR)와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으로 국제사회의 경제와 산업 분야는 밀접하게 연결됐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새로운 생산기지를 만들고 분업식 생산방식을 채택했다. 한국도 이러한 도전의 중심에서 더 이상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생산방식은 적합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돋보이던 생산시설은 저렴한 노동력과 적은 규제를 찾아 다른 국가로 이전했고 결국 금융위기로 최악의 상황을 맞으며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비슷한 시기에 구소련의 붕괴로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로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곧바로 EU와 NATO에 가입하며 탈러시아화와 친유럽화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적 노력이 이 작은 국가의 독립을 완전히 담보하지는 못한다. 아시아의 한국과 유럽의 에스토니아가 선택한 방법은 과감하게 경제와 산업의 국제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양국은 이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경제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했다. 그것은 바로 '디지털 경제'다. 양국은 인터넷과 컴퓨터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를 빠르게 준비했고, 그것이 소프트웨어와 컨텐츠 중심의 산업성장의 바탕이 됐다. 이웃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국토와 적은 인구를 가진 아시아와 유럽의 이 두 국가는, 국내시장의 한계를 파악하고 국제시장을 향한 디지털 산업 지원 정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한국은 1999년 IMF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융자금을 빠르게 상환하고 국민소득을 2만 달러 이상으로 성장시켰다. 에스토니아도 비슷한 시기에 6000달러에서 10년 만에 2만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에스토니아는 EU 회원국으로서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 스스로 혁신적이며 적극적인 디지털화 노력을 수행했다.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국가화 프로젝트는 전자주민증과 전자영주권 제도, 전자투표 시스템, 빅데이터의 공유화 등으로 구현됐다. 에스토니아가 유럽 내 최고 수준의 1인당 창업 수를 자랑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디지털화를 실행하고 관련 사업 아이템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는 창업기업의 성장 지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금지원과 교육, 컨설팅 지원 등 연계 프로그램을 꾸준히 보강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으로 해외자금으로 에스토니아에서 창업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에스토니아 출신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2003년 인터넷 통한 무료 음성통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Skype라는 기업을 설립했는 데 이 서비스의 2010년 가입자 수가 6억6300만 명을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러한 기업 모델은 에스토니아 경제의 활성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의 '디지털화'는 2007년에는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으로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가 전체의 마비를 경험한 에스토니아 정부는 사이버 보안 전문가를 양성하고 교육을 강화하며, 기관 사이의 사이버 보안에 관한 협력을 추진했다. 한편으로 에스토니아는 NATO의 사이버 방어 훈련과 안보 프로그램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NATO의 사이버안보센터(CCDCOE)를 유치하기도 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디지털 산업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문화산업의 '디지털 경제의 성공'을 거두는 동안, 에스토니아도 '디지털 유럽'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 결과는 상당히 긍정적이며, 정부와 사회의 관련 노력이 경제 활성화와 사회적 발전으로 이어지며 유럽 내에서도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EU가 회원국의 디지털 정책을 강화하며 유럽의 디지털화를 꿈꾸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스토니아는 여러 면에서 EU 디지털 정책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에스토니아의 이러한 노력이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힌 침략에 대한 불안감을 스스로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이 한국과는 닮은 꼴이다. 김봉철

[기자의 눈] 미분양 해소에 세금 투입은 ‘고육지책’

'악성' 준공 후 미분양이 급증하자 정부가 결국 '세금'을 투입하겠다고 나섰다. 개인이 소유한 민간 기업의 부채를 세금을 들여 해결한다는 점에서 형평성·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할 경우 줄도산에 따른 일자리 감소, 주택 공급 부족 등 사회적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건설경기 회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역경매 방식 토지 매입과 기업구조조정리츠(CR리츠)를 통한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게 뼈대다. 토지는 LH가 최저가로 매입한다거나 안 팔리면 LH가 사준다는 매입확약 등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구제한다. 이미 지어진 주택의 미분양 해소는 민간자금을 모으는 CR리츠에게 맡겨 해결토록 했다. CR리츠는 민간이 자금을 모아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고, 이를 임대로 사업을 유지하면서 시장이 좋아지면 분양이나 매각을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로 운영된다. 2009년 당시 약 3000여가구를 매입한 9개 리츠사가 LH의 매입확약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일반에 매입해 큰 수익을 낸 바 있다. 집값이 우상향이라는 기본 전제 하에 취득세와 종부세, 양도세를 확 줄여주면 안 팔리는 주택도 팔릴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가 건설사들도 30%는 손실 볼 것을 10% 안쪽으로 손해봤으니 가히 기업을 살리기 위한 적절한 상품이었다는 평가다. 다만 LH는 국민을 위한 공공기관이며, CR리츠는 취득세 및 종합부동산세 등 세제를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또 '세금'으로 해결한다는 질타를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같은 대책을 내놓은 것은 그만큼 건설업 부문의 상황이 심각하며, 그대로 방치해다가는 국민 경제 전체에 줄 수 있는 타격이 더 커질 수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실제 이대로 사태를 방관했다가 하도급사의 대금 미지불과 근로자의 임금체불 등이 본격화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될 수 있다. 주택 공급·사회 인프라 구축을 담당한 건설업계가 위축되면 국민들에 대한 안정적 주거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하고 사회 발전의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 CR리츠의 임대주택은 세입자에게 저렴한 월세를 제공할 수 있고, 향후 이 임대주택이 분양에도 성공하면 부족했던 세수를 취득세 등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업계 주장도 일리는 있다. 국토부는 또 PF사업장 정상화를 위한 리츠 방식 활용 방안도 곧 내놓을 예정이다. 정부는 건설업계 활성화에 세금이 투입되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LH가 건설사의 토지를 매입하거나 건설사와 매입확약을 체결하는 방식이 주택공급 지연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CR리츠로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물론이다. 김준현 기자 kjh123@ekn.kr

[EE칼럼] 재생에너지 경매제도, 요술방망이 아니다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일정규모 이상의 발전설비를 보유한 사업자에게 총 전기 발전량의 일정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토록 의무화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이하 RPS· Renewable Portfolio Standard)는 2012년부터 보조금 위주의 기존 제도를 대신해 도입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정 기조였던 녹색성장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고, 이후정부에서도 재생에너지 공급에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물론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 잠재력이란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국제사회에 공표된 온실가스 감축목표 등을 감안해 재생에너지의 공급 기조는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하지만 최근 RPS제도 폐지가 기정 사실화되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핵심 이유는 재생에너지 구매 단가를 낮추자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구매 단가는 한국전력의 판매금액에 포함되어 4인 가족 기준 한달에 2000~3000원 정도 부과된다. 여기에다 사실상 정부의 관리하에 있어 비용이 많이 수반되고 경쟁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도 발전사업자 간 자유 가격 경쟁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제기되어 온 것이 재생에너지에 대한 경매제도이다. 문제는 경매제도가 기존의 RPS 제도 아래서 산재한 문제를 해결할 마법의 요술방망이가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근본 원인은 RPS 제도의 미시적인 속성 자체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량이기 때문이다. 근본 원인을 두고 제도만 바꿔봐야 내용물은 여전히 그대로인 포장갈이에 불과하다. 또 다른 오해는 경매제도를 통한 낙찰가는 현행 재생에너지 구매 정산단가보다 낮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다. 경매제도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어떠한 관변 연구원 혹은 학자들도 통합 경매제도가 어떻게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란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산단가를 못 낮추는 제도변화의 득은 무엇인가? 사실 실질적인 경매는 이미 이뤄지고 있다. 개별 발전사별, 혹은 소규모 발전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에너지공단의 입찰은 RPS 제도 내에서 이미 수년간 이뤄져 왔다. 그동안 '입찰'이란 단어를 무수히 써 왔음에도, 갑자기 '경매제도'가 마치 새로운 것인 양 소개되는데 정말 의아할 뿐이다. 필자의 생각으론 RPS 폐지의 목적은 재생에너지 실적을 거래하는 현물시장을 걷어내는 것이라 본다. 그동안 가격 상승에 베팅해온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의 영향력 억제가 타깃이다. 하지만 어차피 국가 차원에서의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량이란 게 존재하면, 즉 양적 목표가 존재한다면 신규진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매시장에서도 똑같은 상방으로의 가격 배팅현상이 없을 리 없다. 물론 현행 에너지공단에서 운영하는 소규모 사업자 대상 입찰제처럼, 가격상한제 같은 가격부문에 칼날을 댈 수는 있다. 그렇다면 더욱이나 현행 RPS와 또 비슷해져 제도 변화 자체가 무의미하다. 또 하나의 경매제 도입 명분은 태양광,해상풍력 등등 발전원별 사업자 간 자유 가격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매제라고 해서 이들의 자유가격 경쟁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당초에 이미 엄청난 사업비 차이가 나는데 이들이 모두 동일 선상에서 경쟁가능할까? 가능하지도 유익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상풍력 등을 분리해서 별도 경매시장을 제공하는 등 어드밴티지를 주면, RPS의 가중치 제도를 통해 간접적인 원별 경쟁을 허용하는 현 체제보다 오히려 명분에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론적으로 RPS 제도 폐지만으로는 이미 제기된 재생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즉, 어떤 구매방식을 선택하든지 이는 재생에너지 구매비용 증가 부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국면전환도 안되면서 희생양도 되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현 상황을 도망치듯 혹은 은폐하듯 관뚜껑을 닫는다면,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수년안에 새로운 관짝이 필요할 것이다. 유종민

[이슈&인사이트] 불황의 시대 ‘소비자 창조’가 관건이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산업학과 교수 소비자들의 니즈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기업, 생산자, 마케팅 종사자들은 물론 소비자 자신, 소비자단체, 정부 등 경제 주체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다. 공급 경쟁의 시장 환경에서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나아가 잠재적 니즈를 발견하는 것은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마케팅의 대가인 필립 코틀러(Phillip Kotler)는 “소비자 니즈의 이해는 마케팅의 출발점으로, 경영에서 이것이 없으면 마치 장님과 같다"고 설파했다. 그런데 소비자들의 의식, 가치관, 취향, 개성, 생활양식이 변화하면서 소비자 니즈도 변화하고 변덕스러워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소자들의 심리나 니즈를 파악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실제로 말로 표현 되는 니즈는 실제의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소비자들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심리를 알아내야 한다. 그렇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속내를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고, 속내를 드러내더라도 그게 진심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에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소비자들의 니즈나 행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소비자들의 선택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보다는 정서적 동기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즐거움, 환타지와 같은 쾌락적, 경험적 느낌을 찾고자 한다. 소비자들이 제품의 물리적 속성이나 성능보다 제품이 주는 긍지, 지위, 기쁨 등을 사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많은 소비자들은 샤넬 No.5 가 아름다운 향 때문이 아니라 자아 이미지 강화 때문에 구매하는 것이다. 표면에 들어나는 것 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무의식적 니즈와 인지된 니즈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억양, 눈맞춤, 몸짓, 주시 동작 등의 준언어적 측면도 포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소비자들이 윤리적 측면, 사회적 인식 등을 감안해서 자신의 니즈나 욕구에 대해 의식·무의식적으로 거짓 대답할 가능성이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비즈니스는 소비자들과의 심리전이다. 소비자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먼저 알아내고, 그 것을 먼저 제공하는 기업이 승리한다. '소비가 너무 안 되서 큰 일이다. 소비자가 점점 까다로워진다'는 얘기가 많다. 그러나 불황에도 히트 상품은 있게 마련이고, 성장하는 기업들도 있다. 성공한 기업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경쟁사에 비해 더 빠르고 능동적으로 소비자들의 니즈 변화에 대응했기에 불황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자신의 니즈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스스로 알지 못 했던 욕구(니즈)가 마케팅 자극 또는 기업에 의해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소비자 니즈 추종 전략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비자 니즈 선도가 필요한 이유다. 요즘 휴대폰의 카메라가 큰 인기지만, 휴대폰이 개발되기 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니즈를 표현한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지 못한 소비자들은 현재 제품에 대해 점진적 개선사항 위주로 자신의 니즈를 표현한다. 그러나 완전히 차원이 다른,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측면의 소비자 니즈를 발굴하는 '소비자 창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일본의 소니가 워크맨을 개발할 당시 움직이면서 음악을 듣는 문화가 생소해 소비자, 판매망, 사내 임직원 모두가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CEO가 의지를 갖고 상품화를 강행해 결국 성공신화를 썼다. 소비자 니즈 파악은 일상 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부부관계 개선, 부모자녀관계 개선 등 일상생활에도 상대방의 니즈 파악은 기본적인 사항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청소년 아들에게'너는 요즘 불만이 무엇이니?,'뭐가 문제인 거니?, 도체 불만이 무엇이니?'같은 질문을 한다면 아들의 니즈를 파악 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많은 아들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밖으로 표현하지 못 한다. 혹은 아들 자신도 자신의 생각이나 니즈를 잘 알지 못하기도 한다. 청소년 아들의 니즈를 알아내기 위해선 아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세심한 관찰을 통해 통찰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통찰을 통해 공감과 동감을 얻어야 한다. '음, 그래 그럴 수도 있어!''아니! 저거는 내 어릴적 얘기를 하는 것 아니야?' 과거 인기 폭발이던 광고 카피를 생각해 보자. '선영아 사랑해!', '김대리님! 부자되세요!','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광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소비자들의 공감과 동감을 얻은 결과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창업을 하기 위해, 자녀나 배우자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정책을 잘 펼치기 위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상대방의 숨겨진 니즈, 드러내기 싫은 니즈, 복잡하고 논리적이지 못한 심지어는 수시로 변화하는 변덕스런 니즈를 어떻게 알아 낼 것인지 고민해 볼 때이다. 허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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