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3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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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대만 강진은 반도체 허브 육성의 기회다

지난 3일 대만 동쪽 해저에서 발생한 규모 7.2도의 지진으로 인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의 일부 반도체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TSMC 측은 3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첨단공정 시설의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도 8∼15시간 가동이 멈췄다고 밝혔다. EUV 노광장비 등 주요 기계는 손상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공장의 정상 가동에 수일이 소요된다. 특히, 반도체는 정밀하게 만들어져 있어 작은 충격에도 취약한 특성을 가진다. 때문에 생산시설의 복구에 대한 우려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TSMC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한다. 인공지능(AI)·전기차 등에 필요한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90% 이상을 점유한다.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주요 고객사로 뒀다. 강진이 최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이 집중된 대만을 강타하면서 TSMC 공장이 멈춰서자 전 세계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는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일찍부터 제기돼왔다.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이 문제가 거론됐다. 특히 2022년 8월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할 무렵 중국이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한 뒤 그 문제 제기는 더욱 빈번해졌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핵심은 기술패권 경쟁이고 그 핵심은 반도체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제어를 위해 기술과 장비 수출 통제 고삐를 조이고 있다. 그렇지만 만일 중국이 대만을 통제하게 되면 최첨단 장비와 고급 기술 인력을 한꺼번에 확보하게 돼 일약 반도체 산업 강자로 도약하게 된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국이 TSMC를 폭파하고 반도체 인력을 분산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더해 강진이 발생하면서 대만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의 허브로서 적합한 지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TSMC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2차 공급처로 꼽히는 삼성전자가 주목을 받고 있다. TSMC의 고객사들이 삼성전자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1위 TSMC와의 큰 격차를 보이지만 시장 점유율 14%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지진에 안전하고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용수 확보도 대만에 비해 쉽다. 그만큼 입지 조건이 좋은 편이다. 공교롭게도 TSMC는 생산 다변화 차원에서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했다. 그런데 일본 역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한국이 반도체 산업의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 마침 정부가 2023년 3월 용인시 남사면 710만㎡(215만 평)에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를 구축하고, 국내외의 우수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팹리스 등 최대 150개를 유치한다고 발표했다. 국회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기업이 설비투자를 할 경우 세액 공제 비율을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또 올해 1월 622조원의 민간 투자를 통해 2047년까지 경기 평택·화성·용인·이천·안성·성남·판교·수원 일대에 반도체 생산 공장 13개, 연구시설 3개를 신설한다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계획'도 내놓았다. 대만에서 강진이 발생한 직후인 지난 9일엔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를 열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동향 및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추진현황'을 논의했는데, 그 자리에서 '첨단산업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법 개정은 전력, 용수 등 기반시설 설치에 협조하는 인근 지방자치단체에 재정적 지원을 추진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인근 지역의 반대로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자 국가 총력전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이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반도체 공장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경쟁국들의 투자 유치 정책에 대응해 보다 과감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특히, 우수한 반도체 전문인력 확보에 전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업계는 인력 부족에 대한 우려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2031년에 5만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설상가상으로 '인재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학 정시모집에서 서울 주요대학 반도체 학과에 합격한 학생들의 상당수가 등록을 포기하고 의대를 선택한다고 한다. 우수한 인력은 한정돼 있다. 저출산 상황도 심각해지는 추세다. 때문에 적절한 인력 배분이 매우 중요하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의대생 증원 추진의 경우에도 마땅히 이러한 점을 고려했으면 한다. 인력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면 아무리 단지를 조성하고 인센티브를 준다 해도 반도체 산업 허브 국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강국

[이슈&인사이트] 은행의 상생금융에 대한 새로운 접근

최근 은행의 상생금융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다. 이는 지속되는 고금리 기조하에서 역대급 이자이익을 거둔 은행 사회공헌에 대한 기대감이 여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로 은행권의 사회공헌 행태는 은행별로 큰 차이는 거의 없는 편이다. 서민과 소상공인에 대한 이자 환급, 저금리 대환상품 제공, 사회공헌 기금 출연 등으로 은행별 차별성은 크지 않다. 더욱이, 서민금융, 지역사회 기여, 학술·교육, 환경 등의 사회공헌을 강조하는 ESG 평가로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더욱 유사해지고 있다. 최근 은행권의 사회공헌 활동 총액은 1조원을 상회하는 등 지난 20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했다. 그럼에도 은행에 대한 사회 여론이 그리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더욱이, 최근 은행에서 판매된 홍콩 ELS의 대규모 손실로 막대한 배상 책임을 떠안게 되어, 올해 1분기 은행 순이익도 급감할 전망이다. 막대한 규모의 사회공헌에도 불구하고, 실적부진과 함께 호의적 사회여론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 국내 은행의 현주소이다. 대체로, 사회공헌이라는 것에 대한 국내 은행의 개념 정립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상생(相生)이란 은행과 금융소비자가 함께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일종의 Win-Win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어야 한다. 은행별로 수익을 창출하는 주력 사업이 다르기 때문에, 은행은 수익창출에 기여하는 금융소비자 대상으로 잠재적 금융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금융 수요를 이끌어 내야 향후에도 꾸준한 영업이익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은행의 사회공헌은 상생금융이란 이름으로 진행중임에도 은행별로 대동소이하며,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강하다. 세계적 금융전문지인 유로머니(Euromoney)는 최근 2023년 지역별 우수은행을 발표한 바 있다. 유로머니가 선정한 주요 은행들의 특징은 주력 사업과 연관된 소비자 대상 사회공헌 활동을 특색있게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로머니가 선정한 북미권의 대표적 우수은행인 토론토 도미니온(TD) 은행은 소수인종에 대한 금융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 중이다.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둔 TD 은행은 은행거래 이력이 많지 않은 'Thin Filer'에 대한 사업확대 차원에서 흑인 차주 대상 대출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흑인 기업 및 가계의 금융지원을 위해 자선단체에 후원하고, 흑인 기업가의 사업 성공을 위한 각종 금융컨설팅도 제공한다. 특히, 흑인 기업가를 위한 맞춤형 대출프로그램인 BECAP(Black Entrepreneur Credit Access Program)을 운영한다. BECAP을 통해 이자감면, 대출설정 수수료 면제, 대출심사에서 탈락한 흑인 차주에 대한 2차 검토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TD 은행은 흑인 차주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를 토대로 잠재적 금융 수요 창출, 영업실적 개선, 사회적 평판 획득이 가능하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다. 실제로 TD 은행의 상생금융 영업전략은 우수한 재무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2023년 대출성장률이 약 10% 늘어나며, 영업수익(revenue)이 전년대비 약 56%나 증가했다. 시장경쟁이 치열한 북미권 은행 시장에서 거둔 우수한 재무성과는 최근까지 꾸준한 주가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TD 은행은 세계적 마케팅 정보서비스 회사인 J.D. Power의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2019년 1위, 2023년 3위를 기록하는 등 사회적 평판 측면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시현중이다. 2000년 미국에 진출한 TD 은행이 미국의 3대 상업은행들인 BOA, Wells Fargo, J.P Morgan Chase를 제치고, 우수한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TD 은행만의 흑인차주 대상 독특한 상생금융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지용

[이슈&인사이트] 부동산PF위기와 부동산정책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부동산PF위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연초부터 일부 중견 건설사들의 부도가 현실화되면서 하도급업자들과 건설근로자, 수분양자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4월 총선 이후 건설사들이 대거 법정관리로 들어가면서 부동산PF로 인한 건설업계의 위기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위기설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의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진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만큼 위기감이 커 사태 수습에 우선순위가 놓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의 복잡성 때문에 어쩌면 매우 단순할 수도 있는 원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위기의 본질은 갚을 여력이 없는 과도한 PF 부채의 문제고, 갚을 여력의 부족은 그 동안 추진돼 온 사업들의 사업성 감소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왜 사업성이 갑자기 감소했는가 하는 것이다. 사업성이 없었다면 애초에 사업이 추진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위기를 시장의 실패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지금의 위기를 촉발시킨 사업성 감소가 단순히 금리나 공사비 상승에 의해 벌어진 것일 때에만 타당성을 가진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개발사업들이 좌초돼 시행사와 건설사,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는 것은 당연하고, 공공부문에서 어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 필요성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국내 부동산시장과 관련 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의사결정구조와 그로부터 주기적으로 발생해 온 정책실패의 문제를 간과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부동산가격 급등기 도입됐던 수많은 부동산규제와 그에 따른 시장에서의 혼란을 기억한다. 그런데 이러한 규제들은 최근에 도입된 것들이 아니다. 과거 고도 경제성장기에 나타난 급격한 도시화와 부동산가격의 주기적 폭등과정 속에서 지금의 규제장치들이 이미 1980년대까지 거의 대부분 마련됐고,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는 시점이면 정부는 어김없이 이러한 규제장치들을 동원해 왔다. 그런데 과거 시장과 정책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패턴이 있다. 경험적으로 부동산가격을 촉발시킨 것은 거의 언제나 경기침체기에 정부 재정확대로 인한 시중자금의 팽창이었고, 가격상승은 다시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를 자극해 가격 상승폭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상적 산업활동을 옥죄는 각종 규제로 인해 경제성장세가 둔화되고 소비자들의 실질구매력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정책금융을 통해 가계부채를 확대시키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부족한 구매력을 지원해 왔다. 이는 다시 시중자금 확대와 부동산가격의 폭발적 상승 그리고 눈에 보이는 개발이익을 쫓은 개발사와 건설사, 금융사들의 개발시장 참여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도입된 부동산규제다. 부동산경기 호황기에 개발사업에 뛰어드는 경제주체들은 계획수립 당시 예상되는 이익을 보고 사업에 참여하지만, 준공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 와중에 도입되는 수요와 공급 두 가지 측면에서 전방위적으로 도입되는 규제들은 개발사업들의 수익구조를 완전히 왜곡시켜버린다. 특히 (적정 가격수준이 어떠한 것인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함에도) 부동산가격 안정화라는 모호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입되는 분양가상한제 등 가격규제는 개발사업의 수익성을 급감시켜 참여자들 사이에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업추진을 지연시킨다. 이는 결과적으로 개발사업들이 외부환경 변화에 극히 취약해지게 만들고, 실제로 인플레이션 억제 등을 위한 금리 인상 등 외생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개발사업들의 동시다발적인 부실위험에 노출된다. 실제 이것이 우리의 부동산개발산업과 금융산업이 동시에 직면해 있는 지금 위기의 촉발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고 나면 무엇이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경기활성화 목적으로 이뤄지는 과도한 재정지출과 정책금융지원, 이후 벌어지는 부동산가격 상승에 대응한 가격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전방위적 규제가 현재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위기를 촉발시킨 원인이다. 그 이면에는 다시 기업의 정당한 수익 추구 활동에 대해 상당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시각, 부동산가격 상승에 따른 자본이익으로부터 소외되는 적지 않은 국민들의 불편한 마음, 그리고 그를 이용하는 강력한 정치적 의사결정구조가 존재한다. 결국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앞으로 보다 큰 위기가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위기를 촉발시킨 이러한 원인들에 대한 진단과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과거의 정책실패가 초래한 사회적 비용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토대로 '경기활성화'와 '가격안정화'라는 기존의 실패한 부동산정책의 목표를 '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 활성화'로 전환시켜 나가야 한다. 시장에의 개입방식 역시 인위적 경기부양과 과도한 규제 대신, 민간 자율로 시장가격 변화에 따라 공급과 수요가 탄력적으로 조정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 돼야 한다. 주기적으로 반복돼 온 정책실패와 그에 따른 지금과 같은 혼란을 앞으로도 계속 경험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김정주

[이슈&인사이트] 전기차 초격차 기술 확보한 벤처기업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김필수자동차연구소소장 이륜차는 구조적으로 일반 자동차보다 매우 단순하다. 크기나 구조가 단순하다보니 적은 비용으로 새로운 장치를 쉽게 적용할 수 있다. 나아가 실제 운용측면에서 작은 크기로 인한 비용 절감과 함께 이산화탄소 배출 등 친환경 요소 측면에서도 일반 자동차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주차공간 등 유지비용도 훨씬 적게든다. 내연기관차를 대신하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서 이륜차의 전기차 전환도 예외가 아니다. 전기차 전환을 이륜차가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은 비용으로 보다 쉽게 관련 기술을 적용해 성능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륜차를 많이 이용하는 인구대국인 인도나 중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는 수십억대가 돌아다닐 정도로 전기 이륜차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륜차도 전기차로의 대세 전환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작은 몸체 탓에 장착할 수 있는 배터리용량이 적다는 점이다. 전기이륜차에는 일반적으로 3Kwh 정도 배터리가 기본 용량으로 장착되는 데 이 배터리 용량으로 운행할 수 있는 거리는 50~60Km로 일반 이륜차(150km)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전기이륜차의 배터리 용량을 늘리려면 전체 비용 대비 배터리 비용 부담이 훨씬 커져 경쟁력이 떨어진다. 여기에 전기차의 특성상 고속으로 운행하다보면 모터가 과열돼 주행이 자동 정지되기도 한다. 이륜차는 일반 자동차와 같은 냉각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처음 출발할 때 급가속으로 인한 안전사고 사고발생 우려가 크고 노출되는 공간이 적은 만큼 탑재 공간도 없다. 그만큼 전기이륜차는 일반 전기차와 달리 주어진 조건이 까다롭다. 문재인정부에서 공약으로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전기이륜차들도 실제 운영에 이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전기 이륜차를 가장 잘 만든다는 중국과 대만의 전기이륜차도 주행거리가 50~60km에 불과해 택배용으로는 거의 사용이 불가능하다. 판매되는 연간 2만~3만대의 전기이륜차가 높은 보조금을 받으면서 실제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만의 글로벌 이륜차 제작사인 고고로가 국내에 전기이륜차의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동시에 배터리 교환형 시스템도 함께 보급한다고 한다. 물론 배터리 교환 시스템은 같은 전기이륜차를 사용하여 용량이나 형태 등이 같은 배터리를 사용해야 가능하다는 한계성이 있다. 이런 형태는 규모의 경제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많이 활용하는 방법이다. 중국의 경우 규모의 경제적 장점을 활용하여 단일 전기이륜차에 배터리 교환시스템을 함께 보급하여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법이다. 앞선 언급과 같은 경우 하루에 두 번 정도 충전된 배터리를 사용하면 주행거리가 약 150Km 정도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다양한 여러 전기이륜차가 시장을 누비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분명히 한계가 크다는 것이다. 즉 인도나 동남아시아 등 전기이륜차가 당장 발등의 불이 된 상황에서 분명한 해결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유일한 방법은 전기이륜차용 자동변속기의 도입이다. 현재 전기이륜차에 사용하는 변속기는 대만산 전기이륜차로 3년 전 판매가 시작된 2단 변속기가 유일한 양산형 기종으로 효율은 향상됐지만 아직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이런 한계점을 극복해 11년 전부터 미래형 전기차용 변속기를 개발한 국내 벤처기업이 있다. 현재 양산형 전기이륜차용 7단 자동변속기를 개발한 상태로 하반기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간다. 앞서 이 자동변속기는 지난 1년간 인도네시아의 여러 제작사에서 시험을 통해 3Kwh의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이륜차에 이 변속기를 탑재해 주행거리가 약 100Km에 이르고 등판능력은 획기적으로 상승하면서도 모터의 온도는 약 60도 정도에 머물러 아예 냉각장치가 필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벤처기업은 초격차 기술로 해외 여러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 기술은 더 나아가 일반 전기차에 적용가능하다는 것이다. 전기차에 적용하는 방법도 이미 고안돼 여러 제작사와 접촉 중이다. 미래 전기이륜차는 물론 전기차의 미래를 결정짓는 게임체인저 기술이라는 뜻이다. 이미 일반 전기차에도 포르쉐 타이칸과 아우디 E트론에 2단 변속기가 양산형으로 판매되고 있다. 물론 이 정도 적용에도 적지 않은 효율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대용량 변속기 회사인 '이튼'의 경우도 2022년 전기버스에 개발한 4~6단 변속기를 탑재할 예정이다. 국내 벤처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유일무이한 초격차 기술의 7단 변속기 개발과 양산형 진행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우리 기술로서의 발전을 기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여러 해외 기업에서 접촉 중인 만큼 우리 기술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우리 목을 겨누는 과오를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한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기술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전기이륜차의 한계 극복은 물론 미래 전기차를 책임지는 전기차용 변속기가 더욱 빛을 발해 미래 모빌리티의 주도권을 확실이 잡기를 바란다. 김필수

[주원 칼럼]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캐즘 뿐일까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이사대우 '캐즘(chasm)'이란 신제품이 시장에 크게 상용화 되기 직전에 발생하는 산업의 침체기를 의미한다. 지질학에서는 '아주 깊은 구멍'이라는 뜻을 가진다. 1991년 실리콘 밸리의 제프리 무어 박사가 기업의 성장 과정을 연구하면서 신기술·신산업이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다소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캐즘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마 기술 개발에서 사업화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벤처기업들이 실패한다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는 용어와 같은 의미라고 판단된다. 최근 전기차와 그 핵심 부품인 2차전지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는 모습에서, 이를 캐즘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러한 해석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멀리 보면 전기차 시장은 대세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전기차 시장은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이 이제 막 기술을 선보이고 사업화 단계로 넘어가는 초기 시장이 아니다. 이미 글로벌 신차등록 기준으로 15% 내외 정도로 높아진 전기차 시장을 캐즘이나 죽음의 계곡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기차 시장의 성장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서 힘을 얻고 있다. 우선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유지비가 싸다. 연비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소모품 교체 주기나 비용에 있어서 내연기관차에 비해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동급의 내연기관차에 비해 출고 가격 자체가 많이 높다. 이 부분에 대해 그동안은 구매보조금으로 일정 부분 커버되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을 통해 가격경쟁력이 유지되었던 바가 크다. 또 하나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환경주의(環境主義, Environmentalism)의 정치화가 상당수 국가에서 받아들여지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내연기관차의 퇴출을 공언한 바의 영향도 크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이 두 가지 추진력이 약화되는 움직임이 있다. 우선 전기차 구매 시 지원되던 주요국의 보조금이 폐지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재원 부족이 그 원인이다. 또한 전기차 시장 성장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동력도 약화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환경 이슈에 대한 피로감과 반작용이 나타나면서 전기차에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6월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와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아직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장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정치권력이 이동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크게 축소하는 상황이다. 특히 애플은 전기차 시장으로의 진출을 포기했다. 반면 우리 전기자동차와 이차전지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계속 진행하면서 오히려 전기차로의 전환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기업들의 시장 전략은 우수한 내부 인력들이 집단지성을 통해 많은 검토가 이루어진 최선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우리 자동차 기업들과 이차전지 기업들의 공격적인 전략을 존중한다. 다른 경쟁국들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기술력과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들은 미시적이고 재무적인 분석에는 뛰어나지만, 거시 경제 여건과 정치·제도적 환경 여건에 대한 분석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시대 변화에 둔감한 경우가 종종 있다. 만에 하나 유럽의회가 우경화되고 전기차 산업에 대해 지극히 적대적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전기차 시장은 캠즈가 아니라 최소 5년 동안의 장기 불황 국면에 빠지게 된다. 어느 산업이든지 시장이 그러한 장기 불황에 빠지면 잘나가는 그 어느 기업도 버틸 재간이 없다. 기업의 성장과 도약도 중요하지만, 작은 가능성이라도 기업의 생존이 위협받을 여지는 없는지 우리 주력 산업의 전략을 세심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원

[이슈&인사이트] 로스쿨 제도 근본적 재검토할 때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교육에 의한 법조인 양성'을 목표로 2009년 미국식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지 15년이 지났다. 일본에선 우리보다 5년 빠른 2004년 도입됐는데, 제도경쟁력 면에서 한국은 일본에 완패했다. 한국 로스쿨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시점이 왔다고 본다. 현행 한국 로스쿨 제도의 가장 큰 병폐는, 이 제도가 70년 역사의 법과대학 교육 인프라를 일거에 무너뜨려 법학교육의 황폐화를 가져온 것이다. 국가적 재앙이라 할 만한 손실이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전에는 매년 1만3400명의 법학도가 대학에 입학했다. 현재는 전국 25개 로스쿨에 2000명만이 입학하고 있고, 법학과는 소멸 중이다. 일본에선 기존 약 3만여 명의 법학과 학생을 그대로 두고 로스쿨에 매년 5000명 이상이 입학해 법학의 저변이 확대됐다. 한국에서 매년 2000명 정도의 학생만이 로스쿨에 입학하는 동안, 법학생 수의 급감, 법학연구자의 급격한 축소로 법학 후속세대의 양성이 불가능하게 됐으며,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붕괴됐다. 법학 교과서는 희귀하게 됐고, 수험가의 얄팍한 요약서가 범람한다. 공무원 시험과목에서 법학과목 퇴출이 심화됐고, 법학개론이나 생활법률 과목이 대학 교양과목에서 사라졌다.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법 경시 풍조가 가속화되고, 법치주의가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망국적 현상이 진행 중이다. 궤변을 일삼는 법기술자가 여럿 출현했고, 특히 정치인이 된 법기술자들의 죄의식 저하가 극심하다. 로스쿨들은 학교마다 특성화를 실시하고 소크라테스(Socrates)의 문답식 교육방식을 채택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특성화는 완전 실종이고, 문답식 교육은 온데간데 없다. 학생들은 변호사시험 대비 판례암기 공부로 로스쿨 3년을 보낸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실력의 양극화도 극심해져, 변호사시험 합격자 실력의 균질성이 사법시험 합격자에 비해 추락했다고 법조계에서는 말이 많다. 일본 학생들은 대학 입학으로부터 빠르면 5년(법과대학 3년 조기졸업 + 로스쿨 2년), 정상적이면 6년(법과대학 4년 졸업 + 로스쿨 2년) 후 사법시험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선 7년(대학 4년 + 로스쿨 3년) 이내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대학 조기 졸업 외에는 없다. 일본에선 로스쿨 재학 중에도 사법시험을 볼 수 있으나, 한국은 반드시 로스쿨 3년 수료자만이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선 로스쿨을 다니지 않더라도 '예비시험제도'에 합격하면 바로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2023년 사법시험에서 명문 도쿄대학 로스쿨 졸업자의 68%, 교토대학 졸업 응시자의 59%, 히토쯔바시대학 졸업 응시자의 67%가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예비시험에 합격한 후 응시한 자의 92%가 합격하여, 예비시험 합격자가 로스쿨 졸업생보다 월등하게 높은 합격률을 보였다. 다만, 예비시험 합격률은 겨우 3~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양만식 교수 제공 자료). 한국은 장기ㆍ고비용ㆍ저효율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경로인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변호사시험을 볼 자격이 생긴다. 이는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매우 나쁜 제도라고 할 것이다. 일본처럼 예비시험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로스쿨의 독점적 지위가 무너지고 이는 로스쿨의 기득권을 뺏는 것이므로 전국 로스쿨 교수들과 재학생들이 저항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처음부터 들어왔어야 했는데 실기했다. 장차 이를 도입하려면 5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진행해야 한다. 다만, 필자는 로스쿨 졸업도, 예비시험도 필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대학 법학과에서 50학점 정도 최소한의 필수과목 학점만 이수하면 바로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사면허시험과는 달리 변호사시험은 독학으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로로 법조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국민이 행복해진다. 누구든 어떤 방법으로든 열심히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최준선

[이슈&인사이트] 경제에도 춘하추동이 있다

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경제에도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다. 호황엔 불황을 대비하고 불황엔 호황을 준비하라. 일이 잘되어 나갈 때는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하라. 기쁨 뒤에는 반드시 슬픔이 따르게 마련, 오늘의 행복에 도취되지 말고 지난날 불행을 거울삼으라."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삼성경영에서 지켜온 금과옥조다. 그것이 가장 빛을 발한 것이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의 “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그 선언에는 1993년 6월7일이라는 시기의 적절성이 있다. 1993년은 한국의 국격을 한 단계 높인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의 5년 후이면서 한국의 국격을 한 단계 추락시킨 IMF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7년의 5년 전이다. 호암의 춘하추동 이론에 의하면 1988년이 호황인 여름이라면 1997년은 불황인 겨울이고 1993년은 호황에서 불황으로 넘어가는 가을에 속하는 환절기이다. 다른 기업들이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의 환상에 취해 있을 때 삼성만이 홀로 다가올 IMF 사태의 위험성에 대비했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삼성의 임원진과 해외 주재원 등 200여 명을 모아놓고 '신경영'을 선언했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류나 삼류가 될 것"이라며 뼈를 깎는 수준의 혁신을 주문했다. 1993년 당시 현대, 대우에 이어 3위에 머물렀던 삼성은 다른 기업에 비해서 발 빠른 개혁을 계기로 5년 후에 다가올 IMF 외환위기 사태에 선제 대응함으로써 지금은 다른 그룹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계 1위를 굳히게 되었다. 선언 이후 30년 만에 삼성전자의 자산규모와 매출은 약 10배의 양적 성장과 더불어 품질경영과 혁신의 DNA는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하여 반도체, 스마트폰, 대형 TV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였다. 호암의 춘하추동 이론은 호암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고 경제에서 경기 순환의 한국형 버전이다. 유사 개념으로 'S자 곡선'이 있다. 제품의 수명 사이클을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 등 4기로 구분한다. 경기 순환은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는 회복기, 가장 좋은 호경기, 경제 활동이 위축되는 후퇴기, 경제 활동이 침체하는 불경기의 4기로 나눈다. 호암은 경제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회복기를 춘(봄), 호경기를 하(여름), 후퇴기를 추(가을), 불경기를 동(겨울)으로 표현했다. 계절 개념을 가지고 선제 대응하라는 것이다. 스노타이어는 여름에 준비하고, 밀짚모자는 겨울에 사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스노타이어를 눈 오는 날 산다고 북새통을 이룬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석유화학산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울산 석유화학 단지가 완성된 1972년 다음 해에 1차 석유 파동, 여천 단지가 완성된 1980년에 2차 오일 쇼크가 왔다. 결과적으로 1980년대 초반에 과잉투자로 석유화학업계는 고전했고, 석유화학 투자를 전면 중단했다. 그런데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0년 석유화학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자 재벌들이 무차별 석유화학에 올인 했다. 공장들이 완성될 즈음인 1997년 IMF 사태를 맞았다. 석유화학은 설비 산업으로 기획에서 준공까지 5년의 시차가 있다. 호황기에 공장을 기획하면 5년 후 불황기에 준공되고, 불황기에 투자를 중단하면 호황기에 팔 게 없는 엇박자가 난다. 그래서 최소한 5년의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인공지능 등 현재 무차별적인 투자가 일어나고 있는 한국 기업은 호암의 춘하추동 이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반도체는 미국, 일본, 중국뿐 아니라 베트남, 인도도 참여하는 세계대전 상태다. 전기차와 이차전지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인공지능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규제 대상이다. 기업의 도산 원인이 운영· 관리의 실패보다는 투자 판단의 오류에 기인함에 유의할 일이다. 윤덕균

[이슈&인사이트] 전공의 파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

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제22대 총선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이슈 중 하나가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싼 전공의 파업으로 시작된 의료대란이다. 이미 6주를 넘어선 전공의 파업으로 대형병원들은 최소 기능만 운영하고 있고, 수술이 미뤄지고 응급환자들을 받지 못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방에서는 진료 자체를 받기 어렵고 수술을 받으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공공의료기관들은 의사를 구하지 못해 개점휴업 상태가 되기 일쑤고, 환자들은 서울이나 지방 대도시의 거점병원으로 몰려들었다. 덩달아 환자 가족들도 병원 근처에 머물며 환자들 돌보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불합리한 건강보험 수가체계로 인해 필수 의료분야를 전공한 의사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없으니 점차 필수분야 전공자의 수도 줄어들어 수술 의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오랫동안 묶여있던 의대정원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반겼고, 필자 주변의 의사 친구들도 증원이 필요하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론조사에서도 70% 정도가 의대정원 확대에 지지한다는 결과가 꾸준히 나왔다. 문제는 증원 규모와 방법,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품질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의대 정원을 10년 동안 연 2000명씩 늘리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었다. 정책은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을 상정하고 현재를 바꾸어 가는 일이다. 오랫동안 나름대로 이해관계의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가 정책을 통해 깨지게 되니 이해관계자의 반발은 당연하다. 변화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원하지만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그동안 누려오던 이익을 빼앗기게 되는 사람들의 반대의 강도가 새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보다 훨씬 크다는데 있다. 또 의대 증원의 편익은 국민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는데 반해 손해는 의사 집단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의사들, 그 중에서도 이제 막 의료인으로 출발해 평생을 의사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과 예비 의료인들, 즉 의과대학생들의 반발이 훨씬 더 큰 것이다. 지난 1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있기 전까지 대다수 국민은 왜 하필 꼭 2000명이어야 하는지에 의문이 있었다. 의대 증원의 핵심은 증원 규모, 즉 숫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에 의사들이 가도록 만들 수 있느냐였다. 의사들이 지방에 가지 않는 이유는 도시에서 일하는 것보다 경제적 보상이 적고 자식을 기르고 문화생활을 하는데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필수분야에서 겪어야 할 고생에 비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거기에 의료수요가 급증하는데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문제니 결국 의료개혁은 의대 증원보다 현재의 건강보험 수가체계를 개선하고 전공의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앞세웠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다른 요소들은 거의 잊혀지고 의대 증원만 전면에 나타났고, 이해당사자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반발이 커진 것이다. 정부의 정책추진 과정이 어설펐다고 그 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더욱이 1일 대통령 담화를 통해 알려진 것을 보면 정부가 실제로는 부단히 의견을 요청했지만 의료계가 이를 외면해 왔다. 대통령 담화 이후에도 의사협회는 '입장이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는 오만함을 보였고, 전공의들도 의대 증원 백지화 전에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한다.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밥그릇만 챙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만천하에 선포한 것이다. 이제 국민도 알게 되었다. 정부의 정책추진 과정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대국민 소통과정이 미흡해 정부가 일해 온 과정이 잘 알려지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의료인들의 고집스런 태도가 국민과 상관없이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서 비롯되었고, 오로지 의대정원을 현 상태로 묶어두거나 지금보다 더 줄여야 한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6주간 전공의 파업에도 병상을 지킨 의료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도 지금 오로지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부 의사들과 전공의, 예비 의료인들에게 강력히 경고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의사가 되어도 결코 그 인생이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도 숫자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데 가장 좋은 대안인가를 확인하고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국민과 함께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유념해 의사에게 부여된 '신성한 의무인가'를 다시 헤아려보기를 바란다. 국민을 떠나 자신의 돈벌이만 생각하는 의사들에게 내 몸을 맡기고 목숨을 구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홍성걸

[이슈&인사이트] 의학·의료계 ‘인공지능 쓰나미’와 의대 증원

인공지능(AI)은 사람의 학습력, 추론력, 지각력을 인공적으로 구현시키는 컴퓨터과학의 한 분야로 최근 몇 년간 급속한 발달을 보이며 '쓰나미'같이 무서운 속도록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특히 '챗(Chat) GPT'라고 불리는 생성형 인공지능은 우리가 물어보는 질문을 친구와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답하는 내용도 상당히 정확하다. 백과사전같이 방대하게 수록하고 있는 지식을 바로바로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외과 의사로서 이런 인공지능의 발전을 지켜보고 있으면 향후 10년, 20년 혹은 미래에 펼쳐질 세계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두렵기까지 하다. 최근 이러한 인공지능의 발전이 의학에도 미치고 있다. 엑스선, CT나 MRI 등으로 촬영한 영상물을 빠르고 정교하게 판독하여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깜짝 놀랄 정도이고, 이런 정밀한 진단은 판독이 어려운 병리 진단에도 사용되고 있다. 향후 인공지능은 환자의 병력 청취, 환자 맞춤형 진단, 최선의 치료방법 선택 등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외상(外傷)으로 인하여 뇌출혈이 생기거나 대량 출혈이 발생하면 빠른 수술로 출혈부위를 지혈시키는 것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 이때 현재처럼 CT나 MRI 등의 영상 촬영을 하고 판독하여 진단을 하다 보면 자칫 '골든 타임'을 놓칠 수가 있다. 그러나, AI시스템을 이용해 바로 진단하고 신속히 수술하게 된다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차원에서 나아가 후유증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까지 가능해진다. 이러한 AI를 이용한 의학분야의 발전으로 점점 더 의학의 수준이 높아지고 '맞춤형 치료'의 범위와 적응증도 넓어지고 많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에 반해 AI의 발전으로 인한 반작용도 있을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수백만에서 수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전망이다. 의학과 의료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거의 모든 미래예측 자료를 보면 인공지능 시대에 사라지거나 축소될 직업으로 의사가 아주 높은 순위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네이처(Nature) 저널에서도 전문가들이 'AI가 의사들을 상당히 대체할 것'이라는 의견을 많이 제시했다. 앞으로 AI가 의사들의 수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다. 정말 AI가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보는 의견들은 소수이지만, 대부분은 의사들의 수요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즉 확실한 것은 'AI가 의사의 일을 많이 덜어줄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의대정원 증원 문제로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가 끝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인구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향후에 의료수요가 많아져서 올해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한다. 의료계는 단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으로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앞으로 수년 후에 AI시대, 즉 인공지능 시대가 정착한다면 의사가 하던 환자병력 청취, 복잡한 진단 과정, 치료계획의 확립 등의 일들은 분명 줄어들 것이다. 의사는 AI와 함께 정확하고 또 신속한 맞춤형 진단 치료를 할 것이다. 이때 의사 수가 정말로 많이 필요한 지는 정부와 의료계가 합심해 과학적으로 산출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쓰나미 초기에는 바닷물이 빠져나가서 오히려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게 할 수도 있다. 다시 무서운 속도로 밀려오는 'AI 쓰나미'를 우리는 지금부터 잘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박효순 기자 anytoc@ekn.kr

[이슈&인사이트] ‘디지털’ 선도하는 에스토니아 vs. 한국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1990년대 들어 우루과이라운드(UR)와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으로 국제사회의 경제와 산업 분야는 밀접하게 연결됐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새로운 생산기지를 만들고 분업식 생산방식을 채택했다. 한국도 이러한 도전의 중심에서 더 이상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생산방식은 적합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돋보이던 생산시설은 저렴한 노동력과 적은 규제를 찾아 다른 국가로 이전했고 결국 금융위기로 최악의 상황을 맞으며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비슷한 시기에 구소련의 붕괴로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로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곧바로 EU와 NATO에 가입하며 탈러시아화와 친유럽화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적 노력이 이 작은 국가의 독립을 완전히 담보하지는 못한다. 아시아의 한국과 유럽의 에스토니아가 선택한 방법은 과감하게 경제와 산업의 국제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양국은 이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경제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했다. 그것은 바로 '디지털 경제'다. 양국은 인터넷과 컴퓨터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를 빠르게 준비했고, 그것이 소프트웨어와 컨텐츠 중심의 산업성장의 바탕이 됐다. 이웃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국토와 적은 인구를 가진 아시아와 유럽의 이 두 국가는, 국내시장의 한계를 파악하고 국제시장을 향한 디지털 산업 지원 정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한국은 1999년 IMF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융자금을 빠르게 상환하고 국민소득을 2만 달러 이상으로 성장시켰다. 에스토니아도 비슷한 시기에 6000달러에서 10년 만에 2만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에스토니아는 EU 회원국으로서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 스스로 혁신적이며 적극적인 디지털화 노력을 수행했다.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국가화 프로젝트는 전자주민증과 전자영주권 제도, 전자투표 시스템, 빅데이터의 공유화 등으로 구현됐다. 에스토니아가 유럽 내 최고 수준의 1인당 창업 수를 자랑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디지털화를 실행하고 관련 사업 아이템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는 창업기업의 성장 지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금지원과 교육, 컨설팅 지원 등 연계 프로그램을 꾸준히 보강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으로 해외자금으로 에스토니아에서 창업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에스토니아 출신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2003년 인터넷 통한 무료 음성통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Skype라는 기업을 설립했는 데 이 서비스의 2010년 가입자 수가 6억6300만 명을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러한 기업 모델은 에스토니아 경제의 활성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의 '디지털화'는 2007년에는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으로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가 전체의 마비를 경험한 에스토니아 정부는 사이버 보안 전문가를 양성하고 교육을 강화하며, 기관 사이의 사이버 보안에 관한 협력을 추진했다. 한편으로 에스토니아는 NATO의 사이버 방어 훈련과 안보 프로그램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NATO의 사이버안보센터(CCDCOE)를 유치하기도 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디지털 산업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문화산업의 '디지털 경제의 성공'을 거두는 동안, 에스토니아도 '디지털 유럽'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 결과는 상당히 긍정적이며, 정부와 사회의 관련 노력이 경제 활성화와 사회적 발전으로 이어지며 유럽 내에서도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EU가 회원국의 디지털 정책을 강화하며 유럽의 디지털화를 꿈꾸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스토니아는 여러 면에서 EU 디지털 정책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에스토니아의 이러한 노력이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힌 침략에 대한 불안감을 스스로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이 한국과는 닮은 꼴이다. 김봉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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