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잡겠다며 촌로 잡은 농지법…국회, ‘거래 절벽’ 알고도 눈감았다

8월 말 본격 시행된 개정 농지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국회는 심사 과정에서 현장의 부작용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고도 제대로 된 보완책 없이 법안 처리를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지방자치단체장의 농지 강제처분 명령을 '재량'에서 '의무'로 전환했다. 하지만 정작 직격탄을 맞은 것은 고령화로 직접 농사를 짓지 못해 농지를 임대해 주거나 은퇴 후 귀농을 준비하던 평범한 농민들이었다. 21일 본지가 개정 농지법의 입법 과정을 추적한 결과, 이번 사태를 낳은 처분명령 의무화 과정에는 더불어민주당 윤준병·어기구·임미애 의원의 행적이 고리로 얽혔다. 처분명령 의무화를 최초 발의하고 심사를 이끈 인물은 윤준병 의원이다. 윤 의원 등 10명은 지난 4월 3일 지자체장의 농지 처분명령을 재량행위에서 기속행위로 바꾸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후 윤 의원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을 맡아 법안 심사를 직접 주재했고, 전체회의에 결과를 보고했다. 주목할 대목은 개정안의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던 임미애 의원의 소위 내 발언이다. 임 의원은 4월 14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 “수도권과 달리 지방에서는 처분명령을 내려도 실제로 농지를 매수할 사람이 부족할 수 있다"며 현실적인 문제점을 제기했다. 처분 이후 매수자 부재와 임대차 혼란 등 농촌 현장의 우려가 심사 테이블에 명확히 올라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장의 경고는 최종 법안의 제동 장치로 작동하지 못했다. 당시 농해수위원장이었던 어기구 의원은 윤 의원안을 비롯한 9건의 농지법 개정안을 하나의 '위원회 대안'으로 통합하는 전체회의 의사 진행을 주재했다. 상임위 차원에서 지역별 거래 여건과 처분 이후 매수자 문제를 보완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심도 있는 안전장치 마련 없이 대안이 가결됐다. 법안 처리가 이토록 속도를 낸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자리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 대통령이 올해 2월 국무회의에서 “귀농 비용을 줄이려면 땅값을 떨어뜨려야 한다"며 헌법상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강조하자 여권이 일사천리로 움직인 셈이다. 결국 농해수위 대안은 5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286명 중 찬성 163명(반대 1, 기권 2)으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더불어민주당(110명)과 조국혁신당(10명)은 물론, 국민의힘(37명) 의원들까지 찬성표를 던졌다. 농지 규제 강화라는 표면적 명분에 매몰돼 법안 발의자부터 상임위, 그리고 본회의에 참석한 여야 의원 전체가 촌로들의 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강제금 폭탄에 고령농·임차농 혼란 법 시행 이후 현장의 부담은 현실화되고 있다. 농가 인구의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인 상황에서, 1년 내 처분하지 않을 경우 매년 농지 가액의 최고 25%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한다. 강제금을 피하려는 매물이 쏟아져도 매수세가 없어 가격은 하락하고, 갑작스레 땅을 돌려줘야 하는 임차농들의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윤준병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괴담처럼 농지를 강제로 빼앗거나 고액의 이행강제금을 물리기 위한 게 아니다"라며 “농지 조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전수조사는 조사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이후 기자들과 만나 “명백한 투기와 중대한 불법은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하되 농촌 현실에서 발생하는 관행적이고 경미한 위반은 정상화한다는 기본 원칙을 구체화했다"고 말했다. 당정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를 취득한 뒤 방치하거나 타인에게 몰래 경작시키는 등 투기 행위는 중대한 불법 행위로 규정했다. 투기 목적이 아닌 불법 임대차에 대해서는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 은행에 위탁하면 처분을 유예하기로 했다. 당정은 불법 전용 농지 양성화와 처분 유예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연말까지 특별조치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농지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농지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농지은행의 농지 매입 예산 증액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이슈&인사이트] 이상범죄가 없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꿈꾸며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2026년 6월 말 기준)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총 287만 4,278명이다. 그리고 2026년 외국인 방문객이 2,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외국인 방문객 및 체류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치안 강국 대한민국에 대한 이미지 때문이다. 국가별 치안 지수(Safety Index) 비교에서 대한민국이 최상위권 수준이고, 특히 범죄율 지수 항목 중 '밤에 혼자 걸을 때 느끼는 안전함' 항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런 치안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는 안타깝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얼마 전 제주에서 벌어진 여성 실종 사건으로 우리나라 경찰의 실종자 관리의 허술함이 드러났고, 지난 5월 광주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 살인 사건의 피의자 장윤기'로 인해 이상 동기 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과 대책 마련 여론이 다시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3년 서울 강북구 미아동 마트 살인, 2024년 전남 순천시 조례동 10대 여성 흉기 피습, 2023년 경기 성남시 서현역 흉기 난동 등은 대표적인 묻지마 범죄 사건들이다. 특히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이른바 '묻지마 범죄', 즉 이상 동기 범죄(무차별 범죄)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체류 외국인도 길을 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살인미수 또는 살인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부추긴다. 주요 범죄 사건만 언론 보도에 나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상 범죄는 언론에 보도되는 것 이상으로 자주 발생한다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필자는 최근 부쩍 증가하고 있는 이상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한 후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안을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중범죄자에 대한 정보를 일반 시민들에게 고지해야 한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을 선고받은 성범죄자의 정보는 '성범죄자 알림e' 웹을 통해 열람할 수 있고, 인근 주민에게 우편과 모바일로 고지하고 있다. 이는 범죄 예방 차원의 정보 제공이다. 그러나 일반 중범죄자의 경우 웹을 통한 신상정보 열람이나 인근 주민 대상 우편·모바일 고지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중범죄자는 무기를 쥐고 있을지 모르지만, 인근 주민은 그에 대한 정보가 없어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불균형으로 인한 사건·사고는 일반 시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피해자 가족의 행복추구권을 앗아가고 있다. 범죄 가해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일반 시민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의 보장은 더더욱 중요하다. 정부와 관계 당국은 이에 대한 예방책을 조속히 마련하기 바란다. 둘째, 촘촘한 사회적 예방 및 위험군 관리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상 범죄 발생 확률이 높은 클라이언트(이상 범죄 시도자, 중증 정신 건강 장애인, 치매 노인들 등)가 지역사회 복지 시스템을 통해 전문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도록 지원하고, 경찰 체계와 사회복지 체계가 연계하여 위험군을 관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사례별로 상호 정보를 교류하고 필요한 서비스와 자원을 발굴·개발하여 클라이언트가 이상 범죄자로 발전하지 않도록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노력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이를 방치하는 것은 우리 주변의 선량한 시민과 그 가족을 범죄 피해자로 전락시키는 국가 폭력이다. 셋째, 지능형 AI CCTV 및 감시망 확대가 필요하다. 각 지자체와 경찰청은 이상 동기 범죄 취약 지역(공공장소, 산책로, 상가 등)뿐만 아니라 중범죄자 거주 주변 장소에 AI 기반 이상 행동 감지 CCTV를 확충하고, 순찰 사각지대와 사각 시간대가 없도록 순찰 인력을 운영하여 이상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 사후 진압형 대처에만 급급한 경찰 행정을 지양하고, 중범죄자의 이상 징후가 지능형 AI CCTV에 포착되면 즉각 출동하여 이상 범죄를 막는 범죄예방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경찰청과 중수청 그리고 법원이 연계하여 이상 범죄 근절 TFT팀을 조속히 구성해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치안 강국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지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해 주기를 기대한다.

10차 석유 최고가격 또 ‘동결’, 6개월 넘겨 언제까지?…“일단 유지, 조정될 수도”

10차 석유 최고가격이 또 다시 동결됐다. 최근 중동 정세가 다시 악화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 달러를 넘어섰고, 물가 부담도 지속되고 있어서다. 정유사 공급가 상한은 이전 7~8차 때와 같이 리터(ℓ)당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으로 유지된다. 10차 최고가격은 19일 0시부터 4주 간 적용된다. 정부가 지난 3월부터 시행한 석유 최고가격제는 당초 계획보다 6개월을 넘어섰다. 산업통상부는 18일 “국제유가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최근 서민 물가 부담, 지난 최고가 지정 동향과 환율 하락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민생 안정에 무게를 두고 최고가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산업부에 따르면 9월 들어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다시 격화되고, 후티 반군이 홍해 지역 인근 도시 등을 점거하면서 중동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8월 배럴당 90 달러 선을 밑돌았던 국제유가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달 16일 기준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05.8 달러, 서부 텍사스산원유(WTI)는 102.4 달러를 기록하며 100 달러 선을 넘어섰다. 유가와 함께 국제 석유제품 가격도 들썩이며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석유류 물가 오름세 속에 소비자 물가는 7월 2.8%에서 8월 3.1%를 기록하며 다시 3%대로 상승했다. 다만, 환율은 최고가격을 리터당 210원 올렸던 2차 최고가격 때보다 낮아졌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지난 3월 말 2차 최고가격 시행 당시 원·달러 환율은 1505원이었지만 9월 셋째 주 기준 1358원으로, 약 10% 낮은 수준이다. 환율은 국내 원유 도입가에 직접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다. 유가가 급등했지만 환율 하락세로 도입 원가가 어느 정도 상쇄된 점을 고려, 정부가 동결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 3월 13일 1차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하면서 시행 기간을 6개월로 예상했다. 하지만 중동 정세 불안이 다시 고조되면서 최고가격제도 10차로 지속됐고, 당분간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석유 최고가격제는 중동전쟁 발발 이후 높은 국제유가 변동성으로부터 국내 민생 경제를 보호하는데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6개월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약 60~100 달러 수준, 국제 석유 제품가는 배럴당 약 90~180 달러 수준으로 큰 등락폭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로 중동전쟁 이후 3~8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 0.6%포인트(p) 내린 효과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또, 주유소 총 소매판매량으로 집계한 국민 석유 소비량은 최고가격제 시행 후인 3월 둘째주부터 8월까지 휘발유는 전년대비 2.1%, 경유는 8.4%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정부는 중동 상황이 안정될 경우 석유 최고가격제 종료를 검토하는 등 조정 가능성도 열어뒀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동 정세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석유 최고가격제를 통한 민생 안정을 도모할 것"이라며 “국제유가 변동과 국내 석유 소비 추이 등을 면밀히 살피면서 유연하고, 신중하게 최고가격제를 운영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김병헌의 체인지] 권력은 왜 민심을 늦게 듣는가

대통령이 18일 국민 앞에 섰다. 추석을 앞두고 어려운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에게 송구한 마음으로 인사한다고 했다. 472일간 나름의 최선을 다해 왔으며 지위나 권력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일할 기회와 힘을 달라고 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 실망과 걱정에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결론은 짧았다. “언제나 국민이 옳다." 정치인의 사과는 흔하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말하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처럼 판단과 추진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온 지도자라면 그렇다. 적어도 이날 회견에서는 변명보다 성찰을 앞세우려는 진정성이 읽혔다. 진정성은 말만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국정운영으로 확인될 일이지만, 민심의 경고를 공개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세를 낮춘 것은 의미가 크다. 눈에 띈 것은 연임 문제였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연임 가능성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동시에 대통령 연임제 자체를 포함한 개헌 논의는 여야와 국민의 합의에 따라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권력의 오래된 역설이 숨어 있다. 힘이 없을 때 정치인은 민심을 찾아다닌다. 시장에서 손을 잡고 골목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권력을 잡으면 보고서가 민심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여론조사 숫자가 밥상머리의 한숨을 대신하고, 참모의 정리된 보고가 거리의 거친 목소리를 걸러낸다. 국민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권력과 국민 사이에 문이 하나씩 늘어난다. 그래서 권력은 민심보다 늘 반 박자 늦기 쉽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방향이 옳다고 속도까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개혁은 자동차 경주가 아니다.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함께 도착하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다. 개혁으로 얻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손실과 두려움을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고만 부르는 순간 정책은 국민의 삶에서 멀어진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GDP가 크게 줄고 실업률이 급등하자 복지와 재정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했다. 정치적 비용이 엄청난 개혁이었다. 그런데 소수정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연금과 재정제도 같은 굵직한 개혁에 정파를 넘는 합의를 만들었다. OECD는 이런 정치적 합의가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이 쉽게 뒤집히지 않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다만 개혁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아픔과 상실감을 최소화하도록 더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했다. 이 대목이 앞으로 중요하다. 개혁을 멈추느냐 밀어붙이느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국민을 설득하면서 가느냐, 국민보다 앞서 달려가느냐의 문제다. 부동산에서는 한층 단호했다. 집값을 반드시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공급과 규제, 세제를 함께 활용하고 수도권 일극체제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손보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서울을 경제수도, 세종을 행정수도로 발전시키겠다는 방향도 그 연장선이다. 부동산은 어느 정부에나 가장 까다로운 민심의 시험대였다. 집 한 채는 통계의 숫자가 아니다. 청년에게는 결혼과 독립의 출발선이고, 중년에게는 평생 모은 자산이며, 노년에게는 노후의 버팀목이다. 집값이 흔들리면 삶의 계획도 흔들린다. 그래서 “반드시 안정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매우 무겁다. 그만큼 정책의 일관성과 결과가 뒤따라야 한다. 국민은 정부의 설명보다 자신의 전·월세 계약서와 아파트 가격표를 먼저 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다시 초심으로 귀결된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보다 시간이 흐른 뒤 더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인다. 보고서는 두꺼워지고 의전은 촘촘해진다. 대통령을 만나는 사람들은 많아지지만 역설적으로 평범한 국민의 목소리는 더 멀어질 수 있다. 권력의 비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결심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잘 듣고 있다고 믿는 순간 시작되곤 한다. 그래서 이날 “국민이 옳다"는 말보다 더 오래 기억해야 할 말은 어쩌면 '초심'일지 모른다. 연임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약속도,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다짐도 결국 그 초심 위에서 평가받을 것이다. 권력을 더 오래 갖는 것보다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와 개혁을 얼마나 빨리 끝냈느냐보다 국민이 얼마나 함께 걸었느냐가 중요하다. 민심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작은 실망이 쌓이다 어느 날 숫자로 나타날 뿐이다. 그래서 권력이 민심을 들어야 할 때는 지지율이 떨어지고 경고등이 켜진 뒤가 아니다. 일이 잘 풀리고 박수가 클수록 작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권력은 바로 그때 귀를 더 크게 열어야 한다.

[르포] “이걸 대중교통으로 타겠나”…한강버스 운항 1년, ‘출퇴근 교통혁신’ 갈 길 멀다

“취지는 좋았지만 실패작이다. 이걸 누가 대중교통으로 타겠나." 16일 오전 서울 뚝섬 선착장. 친구 4명과 한강버스에 오른 이원구(75)씨가 여의도행 배를 기다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이씨의 목적지는 마곡이었다. 오전 11시17분 뚝섬에서 배를 타고 여의도에서 내려 환승 배를 기다렸다. 마곡행 배에 오른 시간은 오후 1시12분, 마곡 선착장에 내린 시간은 오후 1시53분이었다. 뚝섬에서 마곡까지 모두 2시간36분이 걸린 셈이다. 같은 구간을 지하철로 이동하면 약 1시간8분이면 충분하다. 이씨는 “여의도에서만 40여 분을 기다렸다"며 “배차 간격이 너무 길다"고 했다. 한강버스가 9월 18일 정식 운항 1년을 맞는다. “출퇴근 교통혁신"을 내걸고 출발했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모습은 그 취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느린 속도와 긴 배차 간격, 불편한 환승, 부족한 선착장 접근성이 겹치면서 실제 이동수단으로 삼기엔 부담스럽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많았다.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등 7개 선착장을 오간다. 서울시는 한강 수상교통으로 출퇴근 혼잡을 줄이겠다는 구상을 내놨지만 실제 운항 속도는 계획에 크게 못 미친다. 도입 당시 서울시가 밝힌 목표 속도는 20노트(시속 37㎞)였다. 실제 운항 속도는 12~16노트에 그친다. 속도가 느린 만큼 소요 시간도 길다. 마곡에서 여의도까지 한강버스로 약 41분이 걸린다. 같은 구간 지하철은 17분이면 된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한강버스로 80~85분, 지하철로는 40~54분이다. 마곡에서 잠실까지 전 구간을 합치면 한강버스로 약 127분, 지하철로는 약 67분이 걸린다. 한강버스가 한 시간가량 더 걸리는 셈이다. 운행 시작 시간도 이르다고 보기 어렵다. 첫 배는 오전 11시에 뜬다. 직장인들이 몰리는 오전 9시대에는 탈 수 있는 배가 아예 없다. 배차 간격은 최소 30분에서 최대 2시간30분까지 벌어진다. 지난 3월부터는 수요가 몰리는 여의도를 기준으로 동·서부 구간을 나눠 운행하고 있다. 잠실~여의도, 마곡~여의도로 노선이 쪼개지면서 잠실에서 마곡으로 가려면 여의도에서 반드시 갈아타야 한다. 환승 대기가 만만치 않다. 16일 잠실에서 오전 11시 첫차를 탄 뒤 여의도에서 마곡행 배로 갈아타기까지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시간대에 따라 대기는 더 길어진다. 잠실에서 오후 2시 배를 타면 여의도 도착까지 약 1시간22분이 걸리고, 이후 마곡행 배를 타려면 최대 1시간30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기자가 이날 오후 12시50분쯤 여의도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도 잠실행 배를 타기까지 약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오후 1시35분 출발하는 배에야 오를 수 있었다. 서울시 수상교통사업과장은 배차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배와 인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착장까지 가는 길도 이용객들이 꼽는 불편 중 하나다. 마곡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9호선 양천향교역까지는 도보로 12~15분이 걸린다. 연계 버스인 6611번도 배차 간격이 11~15분에 달하고 정체 구간을 지난다. 이날 한강버스를 처음 이용한 안향숙(58)씨는 “관광용이 아니라 대중교통용으로는 안 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선착장에 내려서 또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야 하는 게 번거롭다"며 “선착장에서 인근 역까지 바로 연결됐으면 대중교통으로도 많이 탔을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와 운영사인 ㈜한강버스는 마곡·잠실·압구정 선착장에서 인근 지하철역을 잇는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하지만 탑승객이 적어 비용 부담만 크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달부터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 서울시 제출 자료를 보면 올해 1월 무료 셔틀 하루 평균 이용객은 10명 안팎이었다. 반면 운영에 들어간 고정비는 약 4600만원이었다. 서울시청 수상교통사업과 관계자는 “탑승 인원이 적어 실효성 문제가 제기됐고 비용 부담도 컸다"며 “당장 재개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용객 반응은 목적에 따라 크게 갈렸다. 잠실에서 배에 오른 A씨(78)는 “한강 경치는 좋지만 버스로서의 기능은 없다"며 “대중교통이 아니라 차라리 한강 유람선으로 성격을 바꾸는 게 맞다"고 했다. 선착장에서 만난 B씨(50대)는 “이미 예산이 대거 투입된 사업이라 중단하면 비판을 받을 테니 계속 끌고 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반면 한강을 보며 이동하는 경험 자체에는 만족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6세 아이와 나들이를 나온 김종희(36)씨는 “한강을 구경하려고 처음 탔다"며 “아이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3000원인 요금에 대해서도 “저렴하다. 5000원까지 올라도 탈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처음 탑승한 김주희(35)씨도 “다음에 아이랑 같이 타도 좋을 것 같다"며 “환승이 되니까 가격도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스위스에서 온 40대 여행객은 “첫 서울 여행 중에 탔다"며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탈 의향이 있다"고 했다. 동승했던 다른 이용객도 “출퇴근 시간에 이용할 수는 없겠지만 한강을 보며 이동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누적 이용객 50만 명 돌파와 만족도 97%를 앞세워 한강버스가 대중교통으로 자리 잡았다고 홍보한다. 도입 당시 지적됐던 구명조끼 비치 등 안전 문제는 개선됐다. 그러나 이용 패턴을 뜯어보면 온도차가 있다. 누적 탑승객 50만 명 중 토·일요일 이용객 비중은 49~51%에 달한다. 서울시는 저녁 야간 운항을 늘리고 주말·공휴일 요금 인상을 검토하는 등 여가 수요에 맞춰 방향을 조정하는 모습이다. 출퇴근용과 관광용 이용객 비율을 묻는 질문에 수상교통사업과장은 “내부 자료라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월10일 출입기자단 신년 간담회에서 “1년 정도 시민들이 경험한 뒤 평가를 내려야 한다"며 “1년 안에는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나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1년을 맞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늦은 첫차와 긴 배차 간격에 대해 “배와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아직 초기 단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력을 충원해 단기적으로 운항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운항 1년을 맞은 한강버스가 일상적인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운항 횟수와 환승 편의, 선착장 접근성을 얼마나 개선하느냐에 달려 있다. 출퇴근 교통 체증 해소라는 도입 명분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저가 유람선'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김연주·조채운·김가현·박선우·이용욱 인턴기자

“우리 애 만지는” 말랑이 등 촉감 장난감, 방부제가…9종 유해물질 ‘리콜명령’

아이들이 만지고 노는 말랑이, 스퀴시 등 촉감 장난감에서 생식에 영향을 주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붕소 등 유해물질이 대량 검출됐다. 어린이용으로 KC인증을 받은 제품에서도 사용금지 물질인 방부제가 검출돼 리콜명령이 내려졌다. 산업통상부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은 말랑이·스퀴시·슬라임·왁뿌볼 등 촉감 완구 76개를 조사한 결과 9개종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고 16일 밝혔다. 조사 대상은 KC인증을 받은 어린이제품 37개와 '14세 이상 사용'으로 표시돼 KC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 39개였다. 특히, 어린이 제품으로 KC인증을 받은 37개 제품 중 2개 제품에서 방부제 등이 검출돼 안전 기준에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세 이상 사용으로 표시된 39개 성인용 제품 중 7개에서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붕소 등 유해 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정자 수 감소, 불임, 조산 등 생식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이들이 접촉할 경우 눈, 피부 등에 자극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붕소도 반복 노출 시 생식·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해물질이다. 국표원은 유해물질이 검출된 제품들에 대해 수거 등 리콜명령을 내렸다. 또, 29만여개 유통매장과 연계된 위해상품판매차단시스템에 등록해 판매를 차단했다. 국표원은 현재 14세 이상 사용으로 표시된 성인용 촉감 완구 제품의 어린이 판매를 막기 위해 유통시장을 집중 점검·단속 중이다. 지난 7월부터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전국 완구업체 밀집거리를 대상으로 KC인증 미표시 제품의 판매 여부를 점검해 왔다. 또, 14세 이상 사용으로 표시된 성인용 제품은 어린이제품 판매대와 분리·판매토록 계도하고 있다. 가을학기를 맞아 지난달 24일부터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도 집중 점검 중이다. 소비자단체와 온라인 시장 모니터링도 병행하고 있다. 국표원 관계자는 “주요 온라인 플랫폼 업체에 성인용 제품을 어린이 제품 카테고리에서 판매하지 않도록 자체 모니터링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어린이 제품을 구매할 경우 KC 마크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 달라"며 “시중에 유통 중인 완구류 제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안전성 조사와 불법·불량 제품 단속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대한항공 보너스 항공권·좌석 업그레이드…10년간 탑승 ‘1대1’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통합 후에도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대한항공에서 10년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탑승 적립분은 대한항공의 스카이패스 마일리지로 1대1 전환이 가능해진다. 신용카드, 호텔 등 제휴 적립분은 1대0.82로 적용된다. 예컨대, 1만마일 마일리지가 스카이패스 8200마일로 전환된다. 소비자들의 마일리지 사용이 많은 보너스 항공권과 좌석 등급 업그레이드 혜택도 늘어난다. 양사 마일리지 통합은 이르면 올해 12월 17일 통합일부터 시작돼 오는 2035년까지 10년간 유지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통합방안을 최종 승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아시아나 마일리지는 합병일로부터 10년간 별도 사용이 가능하다. 다만, 고객이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전환 여부와 시기를 선택할 수 있다. 아시아나 마일리지로도 대한항공이 운항하는 전 노선에서 보너스 항공권과 좌석 승급, 복합결제, 쇼핑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양사의 개별 마일리지의 유효기간도 그대로 유지되고, 통합 이후 새로 적립하는 마일리지는 대한항공으로 자동 전환된다.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대한항공으로 옮길 수도 있다. 항공편 탑승 마일리지는 1대1로, 제휴 마일리지는 1대0.82 전환 비율로 쓸 수 있다. 다만, 전환 시 보유한 아시아나 마일리지 전량을 한꺼번에 바꿔야 한다. 보너스 항공권, 보너스 좌석 승급 등 마일리지로 쓸 수 있는 혜택도 늘어난다. 대한항공은 보너스 좌석 탑승실적을 2024년 기업결합 당시 양사 합산 실적 이상으로 향후 10년간 유지하도록 했다. 이중 미주·유럽·대양주 등 장거리와 인기 노선의 경우 양사의 보너스 좌석 탑승실적 중 최고치인 2023년 기준을 적용해 향후 10년간 사용 가능하다. 대한항공은 성수기 때 인기 노선 중심으로 마일리지 특별기를 투입하는 등 보너스 좌석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전성복 공정위 기업거래결합심사국장은 “대한항공이 통합 후 비수기에만 보너스 좌석을 늘리고 성수기에 축소하는 등 편법 운영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대한항공은 성수기 기간 보너스 좌석 공급 현황을 연도별로 이행감독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멸시효로 사라지는 소액 마일리지 사용도 확대된다. 신용카드와 마일리지를 함께 사용하는 복합결제의 경우 최소 100마일부터 최대 운임의 40%로 확대된다. 통합 전까지는 최소 500마일부터 최대 운임의 30%까지 쓸 수 있다. 합병 후에도 아시아나 우수회원의 등급과 혜택은 그대로 유지된다. 아시아나의 기존 5개 회원 등급에 맞게 대한항공의 회원 등급이 자동 매칭된다. 마일리지를 대한항공으로 전환할 경우 양사 실적을 합산해 등급을 다시 심사한다. 재심사 결과 기존 매칭 등급보다 높다면 승급해준다. 공정위는 앞서 2022년 5월 양사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 이후 대한항공이 제출한 마일리지 통합방안 관련 약 9개월간 수정·보완 과정을 거쳐 최종 승인했다. 양사 합병 후 대한항공이 국내 유일하게 마일리지 제도를 운영하게 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전 국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시기에 마일리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충분한 사용처를 제공할 유인이 약화될 수 있어 우려했다"며 “이번 방안을 불리하게 바꾸거나 미이행 시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일리지 전환 신청 방법은 이날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홈페이지 내 사이트와 이메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인터뷰] 이재정 “성적만큼 선수 삶도 중요”…문체위원장이 꼽은 5대 과제

이재정 국회 문화체육관광위회(이하 문체위) 위원장이 지난 월드컵 이후 열린 대한축구협회 청문회에서 들여다본 것은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만이 아니었다. 누가 결정했고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이 위원장은 엘리트 체육의 문제를 몇몇 지도자나 체육단체장의 일탈로만 접근해서는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AI와 저작권, K-콘텐츠, 지역관광과 예술인 권리에도 주목한다. AI가 새로운 창작과 산업의 가능성을 넓히면서도 기존의 창작 생태계를 약화시키지 않도록 균형점을 찾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라고 했다. K-콘텐츠에 대해서는 흥행작에 자본이 쏠리지 않도록 다양한 창작 기반을 살피고, 관광의 성과가 지역 곳곳으로 확산되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권리침해 이후의 구제뿐 아니라 계약과 보상, 노동환경과 사회안전망까지 창작의 전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없는지 살핀다는 방침이다. 이 위원장은 문화·체육·관광 현안 전반에서 제도가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보겠다고 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14일 이 위원장에게 문체위가 풀어야 할 과제를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엘리트 체육의 병폐를 근절하고 공정한 스포츠 행정 시스템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쇄신 방향은. “체육단체 자율성은 충분히 존중해야 한다. 다만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고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투명성과 책임성 역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체육단체의 이사회와 각종 위원회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임원 선임과 주요 의사결정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독립적인 감사와 견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엘리트 체육의 성과만큼 선수의 삶도 중요하게 봐야 한다. 성적을 이유로 선수의 인권이나 학습권, 은퇴 이후의 삶이 뒤로 밀리는 구조는 없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단순히 '성적을 잘 내는 시스템'이 아니라 선수와 지도자, 국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이다. 문체위도 체육단체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선수의 권익까지 함께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과제를 지속적으로 살펴보겠다." - K-콘텐츠 창작자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AI 산업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저작권법 개정 방향은. “AI 산업 발전과 창작자 권리 보호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에는 예측 가능한 이용 기준을, 창작자에게는 정당한 권리 행사 장치를 보장하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 핵심은 텍스트·데이터마이닝(TDM)의 저작권 면책 범위다. AI 개발을 위해 일정 범위 활용이 필요하다는 산업계 요구는 경청하되, 학습 결과가 상업 서비스로 이어지는 만큼 창작자 권리 보호 범위도 반드시 함께 논의해야 한다. 면책 범위 조정뿐 아니라 학습데이터 이용의 투명성, 권리행사 절차, 필요시 합리적인 보상체계까지 논의 대상이다. 법적 불확실성은 창작자와 AI 기업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 예측 가능한 기준과,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받는다는 신뢰를 함께 줘야 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와 국내외 제도 변화를 충분히 살피면서 창작자와 산업이 함께 지속가능할 수 있는 저작권 제도를 만들어가겠다." - 수도권에 편중된 방한 외국인 관광객을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체류형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 지원 방안은. “관광객을 지역으로 보내는 것만으로는 지역관광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머물며 경험하고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 관광정책 성과도 방한객 숫자 중심이 아니라 이동 경로와 체류 기간, 지역 소비까지 함께 봐야 한다. 지역에는 경쟁력 있는 자원이 많지만 개별 관광지가 하나의 여행 경험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교통·관광정보·숙박·외국어 안내·결제환경·야간 콘텐츠 중 하나만 부족해도 장벽이 된다. 인프라 개선과 함께 K-콘텐츠·음식·공연·스포츠 등 인기 콘텐츠를 지역 자원과 연결해, 여러 지역을 하나의 동선으로 묶어 체류시간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국회도 관련 예산이 실제 체류시간과 지역 소비 확대로 이어지는지 살피고, 서울 집중 수요가 지역으로 이어지도록 역할을 하겠다." - K-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장르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입법적 뒷받침이 필요한가. “K-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일부 성공작만으로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장르에서 새 창작자가 계속 등장하는 생태계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콘텐츠 정책은 영화·게임·음악·웹툰·출판 등 각 장르의 특성에 맞춰 산업의 기반을 키우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여기에 더해 제작비 상승과 투자 위축,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상력, 저작권과 정당한 보상, 인력과 근로환경처럼 여러 장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할 단계라고 본다. 독립·예술영화, 출판, 애니메이션처럼 투자 회수가 불확실한 분야도 제작·투자·유통 기반을 살펴야 한다. 세액공제나 정책금융 같은 지원제도가 현장에서 실제 활용되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성장의 성과가 창작자·종사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 다시 새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정부의 K-컬처 시장 400조원 목표도 외형 확대에 그치지 않고 장르 다양성과 창작자 권리, 지속가능한 생태계까지 함께 성장하도록 뒷받침해 나가겠다." - '예술인 권리보장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 느끼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실질적인 창작 환경을 개선할 방안은. “예술인 권리보장법으로 표현의 자유와 직업적 권리, 성희롱·성폭력 보호의 기본적인 법적 틀은 마련됐다. 이제는 법과 현실의 간극을 줄이는 일이 중요하다. 예술 현장은 프리랜서·프로젝트 계약이 많아 권리침해를 당해도 계약관계를 우려해 문제 제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신고 창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다. 신고 이후 조사·구제가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지, 시정권고·명령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지, 불이익 방지 장치가 작동하는지 살펴야 한다. 구제 못지않게 계약 단계의 분쟁 예방도 중요하다. 표준계약서가 실제 현장에서 쓰이도록 하고, 창작자가 계약조건과 수익배분을 이해하고 협상하도록 법률·노무 지원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예술인이 작품 외의 문제로 창작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책의 역할이다. 문화체육관광위원장으로서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법률 개정이 필요한 부분과 행정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구분해 실효성 있는 보완책을 마련해 나가겠다." ■ 이재정 위원장 프로필 ◇약력 △1974년 대구 출생 △경북대 법학 학사 졸업·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제45회 사법시험 합격·제35기 사법연수원 수료 △법무법인 동화 변호사 △2016∼2020년 20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0년~2024년 21대 국회의원(경기 안양 동안을) △21대 국회 후반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 △2024년~ 22대 국회의원(경기 안양 동안을) △2026년 6월 22대 국회 후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이상무 기자 rokmc@ekn.kr

주병기 공정위원장, 가맹점주단체 최소 30명 “낮추는 안 검토”…“소규모 협의 목소리도”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가맹점주 사업자 단체 등록을 위한 10% 이상, 최소 30명 가입 요건 완화를 검토한다고 밝혀 주목된다. 가맹점주들은 가맹본부와 거래조건 협의를 위한 단체 등록 문턱이 너무 높다고 주장해 왔다. 주 위원장은 11일 서울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등 가맹본부와 간담회를 열어 “소규모 가맹점주들에게 등록 요건이 가중된다는 우려가 있어 하한을 낮추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가맹본부의 성실한 협의 의무 이행을 위한 가맹점 사업자 단체 등록 요건 등을 담은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입법·행정 예고했다. 개정안은 오는 12월 31일 시행 예정이다. 개정 가맹사업법에 따라 가맹점주 단체가 등록 후 거래조건 변경 등 협의를 요청하면 가맹본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 다만, 가맹점주들이 사업자 단체로 등록하려면 전체 사업자의 10% 이상이면서 최소 30명이 가입하거나, 가입자가 1000명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가맹점주가 30명 이하인 소규모 브랜드의 경우 하한 요건에 막혀 단체 등록을 할 수 없어 목소리를 내지 못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주 위원장은 소규모 가맹점주들도 단체 등록이 가능하도록 최소 30명이 가입해야 하는 기준을 더 낮추는 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가맹본부 측은 단체 등록 비율을 최소 30%에서 40%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표성이 낮은 단체가 난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나명석 프랜차이즈산업협회장은 이날 “10%만으로 협의를 하게 하면 본사와 점주 모두 의미 없는 협의에 힘과 시간, 비용을 쏟게 될 뿐"이라며 “10%를 유지하려면 대표성 있는 비율의 동의를 받게 하거나 협의 창구를 정리하는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가맹사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 상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실적인 부작용과 대안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김병헌의 체인지] 벌써 ‘레임덕’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이유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문이 많다. 그 문을 통과하려는 사람도 많다. 칭찬을 들고 오는 사람, 좋은 숫자를 들고 오는 사람, 대통령의 생각이 옳았다는 보고서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다.정작 대통령에게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다.“대통령님, 그건 아닙니다." 이 말을 들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강한 대통령이다. 판단이 빠르고 결정하면 밀어붙인다. 디테일까지 직접 챙기는 '일잘러' 이미지도 두드러진다. 여당의 의석도 든든하고 뚜렷한 2인자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정책을 움직일 힘이 충분하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권력이 강할수록 대통령에게 “아닙니다"라고 말하기 어려워지 때문이다.처음에는 참모가 반대한다. 대통령이 듣지 않으면 다음에는 표현을 순화한다. 그래도 소용없으면 보고서에서 빼버린다. 결국 대통령 책상에는 좋은 뉴스만 올라온다. 현장에는 빨간불이 켜졌는데 대통령 보고서는 초록색이다. 지지율도 계속 빠지는 추세로 돌아선지 꽤 됐다. 권력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된다.최근 정치권 일부에서 벌써 '레임덕'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집권 초반의 대통령에게는 지나치게 빠른 표현이 분명한데도 그렇다. 더구나 대통령의 권력 자체가 약해진 것도 아닌데…. 레임덕을 단순히 권력이 빠져나가는 현상으로만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진짜 위험은 국민의 목소리가 대통령에게 도착하지 않는 순간부터이다. 인사도 그래서 중요하다. 첫 조각에서 이재명 정부는 외교·안보와 산업·과학 분야 등에 경험과 실무 능력을 갖춘 인사를 배치하며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진영보다 능력을 보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 초심이 필요하다. 최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서 청와대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야당이 왜 공격하느냐가 아니다.왜 이 사람이어야 하는가. 장관 후보라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분야에서 무엇을 해봤는가.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가. 대통령에게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충성은 능력을 대신할 수 없다. 유명세도 성과를 대신할 수 없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이 국가의 일을 맡길 자격증일 수도 없다. 특히 지금은 더욱 그렇다. 반도체가 경제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반도체의 봄이 대한민국 전체의 봄은 아니다. 서울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온도는 다르다. 청년은 일자리와 집값을 걱정하고 지방은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걱정한다.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좋은 숫자를 설명해 줄 사람이 아니다. 숫자 밖의 국민을 보여줄 사람이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그런데 왜 골목은 춥습니까"라고 물을 사람, 부동산 대책이 나왔을 때 “정책은 맞지만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사람, 대통령이 아끼는 사람이라도 자격이 부족하면 “이번 인사는 접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대통령도 달라져야 한다. 잘못된 정책을 고치는 것을 패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사를 철회하는 것도 굴복이 아니다.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체면 때문에 계속 달리는 것이 더 위험하다. 자동차가 시속 50㎞로 달릴 때는 엔진이 중요하다. 200㎞로 달릴 때는 브레이크가 더 중요하다.이재명 대통령에게 성능이 뛰어난 엔진은 이미 있다. 추진력도 있고 권력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브레이크다. 정치에서 가장 좋은 브레이크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자신과 생각이 다른 유능한 사람을 쓰고, 그 사람이 반대할 자유를 주는 것. 대통령이 말해온 '통합'도 거기서 시작될 수 있다.통합은 여야 인사 몇 명을 섞어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다.나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다.권력은 대통령에게 사람을 고를 힘을 준다. 그러나 좋은 대통령은 그 힘으로 자신에게 좋은 사람만 고르지 않는다. 나라에 필요한 사람을 고른다.그리고 그들에게 말할 자리를 내준다.“대통령님, 아닙니다." 그 한마디가 대통령의 귀에 계속 들리는 정부라면 아직 건강하다. 대통령의 귀가 열려 있는 동안 권력은 쉽게 늙지 않는다.레임덕은 권력이 약해질 때가 아니라, 대통령이 쓴소리를 듣지 않기 시작할 때 문앞에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