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3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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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이연된 경제 침체, 실력을 보여줄 때다

지난 연말부터 국가와 민간 연구기관에서 ‘2024년 경제전망’을 내놓고 있다. 모두 올해 경제전망이 어둡다는 비슷한 내용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당초 2023년으로 예상됐던 세계 경제 침체가 2024년으로 미루어졌다든지, 따라서 2023년은 그나마 세계 경제가 선방한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등은 정확한 진단이다. 이처럼 이연된 침체가 2024년 중반부터 현실화되며, 세계 경제성장률은 2023년 2.9%에서 2024년 2.4%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말하자면 경제가 작년보다 나아질 것도 없고, 고물가 역시 해소되기 어렵다. 인플레 우려 지속으로 금리를 조기에 크게 낮추기도 어렵고, 정부가 재정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기도 어렵다. 이미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위험 수준이다. 결국 2024년은 세계경제가 ‘L자형 장기 저성장’에 본격 진입하는 해가 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긍정적인 전망을 보이는 업종은 반도체, 휴대폰, 조선, 정유ㆍ화학, 에너지ㆍ유틸리티, 제약ㆍ바이오, 항공, 미디어ㆍ엔터테인먼트, 보험 등 몇 가지 뿐이다. 경제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기업인들 역시 같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글로벌 이슈 및 대응계획’ 조사에 따르면 ‘2024 글로벌 키워드’로 미ㆍ중 갈등의 지속 또는 악화로 글로벌 공급망 문제 심화, 미국 고금리 기조 장기화, 전쟁 장기화 및 지정학적 갈등 확산 등을 가장 중요한 애로 요인으로 꼽았다. 이외에도 미중 갈등으로 인한 탈 중국 필요성 증대, 보호무역주의 강화, 세계 경제 피크아웃에 따른 글로벌 수요침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따른 불확실성 심화 등이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칠 주요 글로벌 이슈로 생각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가장 중요할 것으로 봤다. 우선 글로벌 수요가 침체되는 것에 대해서는 ‘신사업 발굴 및 사업 다변화’로 대응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그 방법은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을 통한 대응이다. 신규 거래처 발굴을 통한 공급망 다변화나 주요 자원개발 투자확대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전쟁과 지정학적 갈등 확산에 대해서는 ‘대체 수출입처 물색’을 꼽았다. 그러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나, ‘생산 물량 감소 및 생산기지 축소’, ‘인건비 등 원가 절감’ 등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미 마른 수건을 쥐어짜 본들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부응해 해외시장 개척을 비롯한 신수요 창출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기업 규제 완화’를 가장 앞세웠다. 대통령이 킬러규제 폐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기업 현실에서는 규제개선 효과를 거의 체감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다음으로는 법인세 감세와 투자공제 등 세제 지원 강화, 통상영역 확대를 통한 해외 신수요 창출, 자금조달 등 금융지원 확대 등의 순이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통상영역 확대 부분에 있어서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문제는 거대 야당의 협조다. 야당은 그간 기업규제 완화는커녕 규제강화를 위한 법률들을 쏟아내 왔다. 반면 김병욱 의원이 주도해 민주당 일부 국회의원들이 "글로벌 대기업을 돕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기업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새해에는 더 확산되어 진정 기업에 도움이 되는 법률을 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다. 기업들도 긴축경영을 하되 너무 위축되지 않으면 좋겠다. 워렌 버핏은 말했다.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고. 썰물 때 실력을 보여주는 많은 기업인을 우리는 보고 싶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 교수

[이슈&인사이트] 시늉만 낸 슈링크플레이션 대책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가 인플레이션 굴레에 갇혀있다. 수년째 이어지는 세계적인 인플레 현상에 대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가계도,기업도,정부도 고통받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원자재값과 임금 상승 등 원가상승에 직면한 가운데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소비재에 대한 가격 통제에 나서자 소비재 기업들을 중심으로 단가는 유지한 채 제품의 크기나 용량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 압박이 거세지는 만큼 수익성이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가격을 올릴 경우 인플레 압박을 받는 소비자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정부로부터도 눈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포장 모양을 바꾸거나 눈길을 끄는 더 밝고 새로운 라벨을 붙이면서 용량을 줄이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편법 가격인상 ‘꼼수’라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고 정부도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0여년 전 과자의 양을 줄이고 대신 질소를 채운 이른바 ‘질소 과자’가 문제가 됐다. 2014년 당시 "과자봉지를 뜯었는데 70%가 질소였다",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덤으로 왔다"는 등 질소 과자에 불만을 품은 대학생 2명이 국산 과자 60봉지를 엮어 만든 뗏목을 타고 한강 횡단을 하는 퍼포먼스를 펴기도 했다. 지난해 한 지역축제에서 갯고둥 한컵 5000원, 바비큐 한덩이 4만원, 빈대떡 1만5000원 등의 바가지 상혼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축제가 아니더라도 대표적인 서민간식인 치킨세트에서 떡튀김과 감자튀김이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으로 비화되며 씁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치킨 가격 오르자 치킨양을 줄이고 단가가 낮은 떡튀김이나 감자튀김의 양을 늘리는 식이다. 김치 등 무료 서비스를 없애거나 반찬수를 줄이고 음식 재료의 수준을 낮추는 방식으로 원가를 보전하려는 식당들도 늘어나고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도 비싼 국산 부품 대신 저렴한 중국 브랜드의 부품을 쓰기도 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우리나라만은 문제도 아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한 회사의 크리넥스 티슈 제품은 내용물을 최근 65장에서 60장으로 줄였고, 한 아이스크림 제조업체는 유지방 일부를 줄이고 물과 기타 우유 성분, 감미료 등의 다른 성분으로 대체했다. 인도의 빔 식기세척용 비누 한 덩이는 무게를 155g에서 135g으로 낮췄다. 호텔들도 조식,청소,용품 등에 대한 서비스를 줄이거나 유료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12월 새해부터 제조사가 가공식품 등의 용량을 줄이면 포장지에 반드시 용량 변경 사실 표기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을 발표했다.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은 제품가격 편법인상 꼼수를 막기 위한 대책이다. 그런데 포장지에다 변경 전 용량과 변경 후 용량을 써놓는다고 제품가격 편법 인상 꼼수를 막을 수 있을까. 실효성은 커녕 오히려 편법인상을 법적으로 조장하는 ‘면피용’ 구실을 주는 셈이다.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이 제 효과를 내려면 단위 표시를 의무화해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으로 가격이 얼마나 올렸는 지 알게해야 해야 알권리를 보장하면서 가격 꼼수 인상을 견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단위가격 표시를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전통시장,지역축제,농수산물시장,직거래장터 등 모든 온·오프라인 매장에도 게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생산지와 직거래때도 단위가격 표시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용량을 줄인 제품에 자발적으로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 까르푸와 제품 용량에 변화가 있을 때 해당 기업이 변경 전과 후의 용량과 변경 수치, 비율을 6개월 이상 포장에 표시해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의무화한 브라질 정부사례는 슈링크플레이션,소비자 알권리 보장의 좋은 본보기다.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공급망기본법

COVID-19 팬데믹에 이은 국제사회의 패권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각국의 친환경 탄소중립 정책 등으로 제품 생산을 위한 글로벌 공급망이 위기를 맞고 있다. 갑진년 새해에도 국제사회의 자국 우선주의와 원료의 무기화가 얽힌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공급망의 위기는 더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원료와 제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그것을 활용하는 산업의 생산활동에 지장을, 주고 종국적으로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큰 불편을 준다. 따라서 주요 품목에 대해 공급망 정보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해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주요 국가들은 공급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자신들의 통제 아래 내재화하거나 블록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과 유럽의 원자재법 이 대표적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력산업의 핵심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도 기업과 정부차원에서 공급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09년 희소금속 소재산업 발전 종합대책에 이어 2011년 희소금속 산업 생태계 조성 계획을 수립하며 공급망 안정을 위한 민간투자 활성화, 핵심기술의 개발 및 체계적인 산업육성 기반을 구축했다. 지난해에는 기존 ‘소재와 부품 전문기업 등의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의 명칭을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및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으로 바꾸며 공급망 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높였다. 이 법은 소재·부품·장비 분야와 관련된 산업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별도의 근거를 신설했고, 관련 기업의 공급망 안정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는 법적 장치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공급망 위기에 영향받기 쉬운 관련 산업에 대한 정부의 공급망 기본계획, 긴급수급 방안 등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포괄적인 근거를 확보한 것이다. 더 나아가 특정 산업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공급망 안정품목을 정하고, 공급망센터를 설치해 공급망 관련 국내외 정보를 관리하고자 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희소금속 전문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희소금속센터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시한 점이다.기존의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도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화에 초점을 맞춰 개정했다. 여기서는 국가첨단전략기술을 "공급망 안정화 등 국가·경제 안보에 미치는 영향 및 수출·고용 등 국민경제적 효과가 크고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현저한 기술"로 새롭게 정의했다. 국가첨단전략산업도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조치에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기존 제도의 개정만으로는 급변하는 환경변화와 국가 경제 및 산업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른바 ‘공급망 기본법’인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법은 공급망 위기 대응과 안정화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컨트롤타워인 ‘공급망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차원의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근거를 담았다. 공급망위원회가 국가와 국민경제의 안정에 필수적인 품목을 지정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한편, 정부가 공급망 안정화 선도사업자를 선정하고 시설투자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설치 근거도 마련했다. 공급망 위험을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이 도입되고, 유관부처와 기관간 협력도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국민경제에 큰 영향이 있는 185개 품목을 공급망 안정 대상 품목으로 정하고 70% 수준인 특정국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2030년까지 50% 아래로 낮추는 내용의 ‘산업 공급망 3050 전략’을 마련했다. 산업 공급망 3050 전략이 정부의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실현되면 첨단 분야의 기술개발이나 품목 관리를 중심으로 하는 공급망 관리 체계를 넘어 서비스와 물류까지 아우르는 넓은 범위의 공급망 관리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제적 노력에 대해서는 아직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어, 이미 개정된 기존의 규범들이 대부분 산업통상자원부의 소관이지만, 새롭게 제정된 공급망기본법은 기획재정부에 엄청난 예산과 권한을 부여할 여지가 있고 부처 사이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런 정부 차원의 관리와 지원이 자칫 WTO 규범이나 FTA 등 국제사회의 기준에서 금지하는 보조금 지원 등으로 취급돼 외국과의 통상 분쟁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한국은 국내 소비시장이 작고 무역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화는 경제 안보 측면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다. 이러한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화라는 ‘두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하고 명확한 법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법제 수립과정에서 기업과 사회적 갈등의 소지가 있는지, 국제사회에서의 통상 등 무역 분쟁 소지가 있는지를 보다 명확히 따져 안정적인 시행 기반을 갖춰야 한다. 공급망기본법은 말 그대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한국유럽학회 수석부회장

[이슈&인사이트] 겉도는 부동산PF 대책

국내 16위 건설사인 태영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촉발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화 우려가 새해 벽두 금융시장의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문재인정부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까지 부동산 가격이 하늘 모르게 치솟자 ‘부동산 불패론’에 편승해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개발 사업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무분별하게 건설사업에 공사비를 대 준 것이,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 시장금리 상승, 공사비용 증가로 부동산 개발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부동산 PF 연체율이 급증하고 이로 인한 도미노 충격이 빚어지면서다. 자칫하면 금융기관은 빌려준 돈을 떼이고, 대출 상환 능력이 떨어진 여러 건설회사들은 연쇄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금융기관들과 건설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과 경제 전반에 큰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부동산 PF 부실화는 먼저 신용경색으로 이어져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헤칠 수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 등에서 돈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돈의 흐름이 막히는 것이 신용경색이다. 금융시장에 공급되는 자금의 절대량이 줄어들거나 자금의 통로가 막히면 금융 기관들은 자산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자금 회수에 나서게 되고, 대출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기업활동이 위축돼 자금 부족으로 파산하는 기업이 늘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금융기관은 다시 부실채권에 대한 손실을 감당하느라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두번째는 부실한 부동산 PF의 매각이나 청산은 부동산 시장에 공급 확대효과를 불러 공급과잉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 압력을 가중시키게 된다. 이는 고금리 상황에서 부동산 물량 증가와 가격의 하락을 동시에 초래하고, 이는 부동산 업계 전체와 금융회사들, 이른바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가격이 높을 때 내집을 마련한 서민들에게도 적지않은 재정적 부담을 안긴다. 세번째로 부동산PF 부실화는 경기 침체와 불황, 고용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부동산 부실로 인한 금융 시스템의 충격은 기업들의 투자와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 둔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시장과 연계된 가계 자산의 불안정성으로 주머니가 얄팍해진 소비자들은 소비를 절제하게 되고, 가계의 소비활동이 줄어들면 불가피하게 기업들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이는 다시 기업들의 투자와 생산 활동을 위축시키므로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들의 고용이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기업과 가계의 연체율을 볼 때 우리 경제에 빨간 신호는 켜졌다.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돌이키기 어려운 악순환 고리의 재앙이 닥칠 수 있다.더 나아가 금융기관 상호 간에 보유 자산의 자산 건전성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는 시점이 되면 필자가 우려하는 시나리오가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정확한 상황 진단과 평가를 통해 기민하게 대응책을 마련하고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먼저 부동산 시장 충격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금융시장에서 스트레스 테스트는 경제분야의 여러 이벤트, 외부 충격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위기 관리 능력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얻어지는 각각의 경제 영향 시나리오를 활용해 그 여파가 어느 정도가 될지를 예측하고, 금융 위기 상황에서의 PF의 안전성을 평가, 상황에 맞는 조치를 해야 한다. 부동산 PF 부실의 충격에 금융기관들이 입을 수 있는 손실 또는 자금 과부족 등을 측정하고 자본확충계획과 같은 비상대책을 수립, 실행해야 하는 시점이다.사람의 몸에도 건강 이상 신호가 있을 때 조기에 정확한 진단과 수술이 필요하듯이 부동산 PF의 운영과 거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고 잠재적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점을 당국은 유념해야 한다.박세원 S&P글로벌 상무/ 거시경제 및 국가리스크 한국총괄

[이슈&인사이트] 새해 외교안보 분야 화두와 과제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으면서 윤석열 정부 집권 3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윤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확장억제에 관한 ‘워싱턴 선언’(Washington Declaration)을 도출하며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체제를 구축하고, 일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면서 냉담을 넘어 거의 단절에 가깝게 악화된 채 방치된 상태의 한일관계를 회복시켰다. 그리고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한미일 3국간 안보·경제를 망라한 포괄적이고 다층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윤 대통령은 나토(NATO)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 활발히 참석하며 다자외교의 외연을 확장했으며 자칭 ‘1호 영업사원’으로 공을 들인 세일즈외교 성과도 적지 않다는 평가다. 지난 1년여 동안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로 대표되는 중동 ‘빅 3’에서 거둔 체결한 계약 및 MOU 사업 성과가 792억달러(107조원)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새해에는 윤석열 정부가 직면할 도전과 리스크 또한 만만치 않다. 윤 정부는 올해 중점적으로 회자될 세 가지 화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선거 이슈이다. 올 한해 동안 미국, 영국, 인도 등 70여 국가에서 20억명이 참가하는 선거가 진행된다. 오는 13일 미중 관계와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만 총통 선거를 필두로, 3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 당사자인 러시아에서 대선이 치러지고, 6월엔 유럽의회 선거가 실시된다. 11월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미중 전략 경쟁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경쟁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다면 동맹 경시 경향이 다시 표출돼,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와의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은 크게 수정될 수 밖에 없고 한미일 협력 유인도 약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4월에 중요한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된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주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8일 김정은이 측근들에게 남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며 북한이 한국 총선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연초 군사·사이버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물샐 틈 없는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세계 공급망 문제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첨단 반도체, AI, 양자 등 하이테크 기술 분야 중심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나서자 중국은 갈륨·게르마늄,흑연 등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통제로 맞섰다. 미국은 화웨이가 시장에 5~7㎚(나노미터)급 프로세서를 내놓자 추가 반도체 제재에 착수해 주요산업분야의 ‘레거시 반도체’(legacy chips)로 불리는 범용 반도체 현황 조사에 나섰다. 이에 중국도 희토류 가공 기술 수출금지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무역의존도가 80%에 육박한다. 경제와 안보가 긴밀하게 연계돼 있는 상황에서 공급망 이슈는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민관이 협력해 갈수록 심각해지는 세계 공급망 리스크를 다각적이고 선제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셋째는 지정학적 화두다. 2022년 2월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종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중 간 긴장과 갈등의 영향으로 대만해협 파고는 높아만 가고 있다. 아울러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며 북한 핵문제 해결은 요원해지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지난해 12월 19일(현지시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도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성과가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빈손 회의’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미중간 대립과 관계 악화에 기인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형성된 신 냉전구도가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북한은 이런 정세변화에 편승해 포탄을 제공하며 러시아와 관계 강화를 도모하고, 중국과의 연대에 주력하면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기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진영 간 대결보다 미국 견제에 주력하는 중국은 러북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군사밀착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한국으로서는 한중관계 회복과 발전을 통해 문제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 마침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도 한미 동맹 못지않게 한중 관계도 중요한 관계라며 조화롭게 양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윤 정부가 한미·한일·한미일 관계 강화와 NATO 정상회의 참석 등을 통해 전통적 협력관계 복원과 강화, 외교 외연 확대에 중점을 뒀다면 올해에는 안정적 관리에 외교 역량을 모을 필요가 있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 주재 총영사

[이슈&인사이트] 새해 한국경제 화두와 과제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작년 경제성장률이 1%대의 저성장을 면치 못해 새해를 맞는 경제계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못하다. 당초 2.5%대를 예상했던 작년의 성장률이 1.4%까지 하락하게 된 것은 반도체와 중국에서의 수출 부진이 주된 원인이다. 이 두 문제는 상당 부분 미중 패권경쟁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산업의 구조와 시대변화의 방향이 상충하여 발생한 불가피한 현상이다. 2018년 미국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된 미중 갈등은 최근 5년간 기업주도의 자유무역 세계화 체제를 형해화하였다. 미국은 미중 패권경쟁 구도 하에 경제안보 개념을 도입하고 안보위협 국가에 반도체 등 첨단분야 거래를 제한하는 디리스킹(de-risking) 동맹 체제를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들도 경제안보의 명분으로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국가주의로 전환하고 있다. 올해는 국가수반을 선출하는 선거가 50건이 넘는 전례가 없는 해이다. 특히 미국, EU, 인도, 러시아, 대만 등 미중 패권경쟁에 밀접하게 연관된 국가들에서 선거가 이루어진다. 미국의 경우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선출되면 민주당에서 구축한 동맹체제를 해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미중 패권경쟁은 적어도 10여 년 이상 지속될 것이고 각국의 국가주의와 국가들간의 합종연횡은 더 심해질 것이다. 자유무역 세계화 체제에 최적화된 한국산업은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함에 따라 과도기적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수출 감소와 저성장의 쇼크를 당하면서 현실의 변화를 절감한 정부와 산업계는 올해를 새로운 변화의 원년으로 공식화하고 최적의 변화를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새해 한국경제의 화두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수출주도 패러다임의 재편을 제안한다. 먼저 미중 패권경쟁과 국가주의 패러다임에 상응한 우리나라의 산업 패러다임 전환의 방향과 과제는 무엇일까? 최우선적으로 미국의 대중 기술력 견제로 가능해진 중국과의 기술력 격차 확대 기회를 절대로 무산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과 신산업의 육성에 한국경제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 현재 정부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이 과제는 70년대의 수출진흥과 80년대의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한 것과 같은 정도의 강력한 민관협력과 정책 추진력이 요구된다. 둘째, 벤처·중소·중견기업들의 역동성과 혁신역량을 대폭 제고하여 전문기업화를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R&D 지원과 벤처캐피털의 활성화, 기업활력법에 따른 사업재편 촉진, 산업계의 도전문화 조성 등이 긴요하다. 끝으로 정부 R&D 시스템의 획기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대표적으로 현 정부에서 제안한 해외 첨단기술 기관과의 R&D 국제협력과 현재 일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경쟁형 R&D의 확대 및 성과도출, 빅데이터와 챗GPT의 R&D 사업과 관리에서의 활용방안 개발 등이 긴요하다. 세 과제를 포함하여 대중 기술력 우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기부-기재부 협력형으로 운영하는 R&D 예산시스템을 미국과 같이 대통령실로 이관하고 대통령 의제로 직접 관장하기를 건의한다. 보호주의 경향을 띠는 국가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행 수출주도 경제시스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첫째, 내수를 강화하여 수출과 내수의 병행 발전으로 전환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전체적으로 수출 증가율이 국내생산 증가율과 거의 같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만으로 고성장을 달성하기가 어려워졌으므로 산업의 안정적 성장을 보장하는 내수기반 확충에 힘써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현재 소비확대에 큰 제약요인으로 작용하는 가계부채 문제 해결이다. 이와 함께 내수산업 확충의 핵심인 서비스산업 혁신에 돌파구를 제공하는 정책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다양한 규제를 혁파해야 하는데 그동안 제안되었던 네가티브 규제시스템의 도입이나 사후규제를 이번에는 관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동반성장이나 이해관계자(stakeholder) 자본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21세기형 기업문화의 조성과 촉진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둘째, 수출방식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 국가주의가 득세하면 양자 관계에서 큰 폭의 흑자구조를 지속하기가 어렵고 소나기 수출도 제약받게 된다. 이에 따라 해외투자를 통한 현지생산과 중간재 수출을 연계하고 일부 역수입을 하는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물량 위주의 수출보다 차별화 제품 위주의 수출로 전환하는 것이 유리해진다. 수출대상국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 비용상승을 초래하므로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해 종합상사와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는 등 수출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의 외교역량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특히 개도국에서는 정상외교의 영향력이 지대하므로 중소 수출기업들의 정상외교 활용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제 수출은 정부와 기업, 공공지원기관의 합작품이 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은 중국의 도전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한국산업에 천재일우의 회생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산업의 변신을 성공시켜 올해가 한국경제가 선진국의 선두대열에 우뚝 서는 변화의 첫해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장윤종 KDI 초빙연구위원/ 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

[이슈&인사이트] 갑진년 새해의 정치 소망

갑진(甲辰)년 새해가 밝았다. 필자는 새해를 맞아 국내외 정치경제를 관통할 화두와 함께 상황을 진단하고 새해에 우리나라가 마주할 현안과 과제, 그리고 대응방안에 대해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국제정치적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비록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및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주요국의 한 축으로 부상한 우리에게 한미동맹에 따른 상당한 역할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하마스-이스라엘간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주춤하면서 전황이 장기화되면 지원 요구가 커지고 전후 복구도 그만큼 미뤄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반도체를 비롯한 경제적 이슈와 함께 대만을 둘러싼 긴장을 높이고 있고,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한 상황에서의 식량이나 경제문제의 악화는 외부적 도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안보적 상황은 세계 경제의 회복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엇보다 시장의 공급망 붕괴가 통상과 산업발전의 기회를 제한할 것이다. 강대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어우러져 러시아와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 기회가 제한되었고, 경제 악화로 세계 각국의 구매력마저 떨어지며 이래저래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에게는 치명적이다. 현대차가 장부가격 2873억원인 연산 20만대 규모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단돈 1만루블(약 14만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이같은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국내 상황도 녹록치가 않다. 지난해 상반기 법인세 납부액을 보면, 글로벌 호황이었던 K-팝의 영향으로 엔터테인먼트와 게임 등 콘텐츠 분야와 제조업 중에는 자동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IT분야의 불황으로 상위 10대 기업의 법인세 납부액은 지난해 7000억원으로 2022년(7조3000억원)의 10분의 1토막으로 줄었다. 법인세 세수가 줄었다는 것은 기업의 수입이 줄었고 경기가 그만큼 나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물가상승률은 고공행진을 거듭해 국민의 체감경기는 최악을 치닫고 있다. 특히 전세 사기로 청년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11월까지 국토교통부에 접수된 전세 사기 피해 1만2433건 중 67%가 수도권에서 발생했고, 피해자 중 70%가 30대 이하 청년층에 집중됐다. 가계부채도 1876조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가구당 약 1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셈이다. 고금리 기조의 장기화에 따라 이자부담률도 역대급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초에 발표된 통계청의 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의 비소비지출(평균 1280만원) 중 이자비용이 247만원으로 전년대비 18.3% 증가하며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국내 이슈 중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합계출산율 0.73이 상징하는 저출산이다. 이는 세계 최저 수준임은 물론, 외신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중세 유럽의 흑사병보다 더 빠른 인구소멸을 의미한다. 이젠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새해는 저출산을 극복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는 결국 정치인데, 새해 대한민국 정치의 시계는 4월10일에 있을 제22대 총선에 맞춰져 있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를 구성해 떠난 민심 붙잡기에 나섰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분당의 위험 속에서 헤매고 있다. 두 정당 모두 서로의 약점에 기댄 반사이익을 기대할 뿐 아직 우리 앞에 놓인 위기를 극복할 만한 뾰족한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87년 체제 이후 철 지난 운동권의 이념에 파묻혀 정치권을 점령해 각종 특권과 이익을 누리며 국민 위에 군림해온 x86 세대의 퇴출이 가시화됐다는 점이다. 73년생 한동훈의 등장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그와 띠동갑인 85년생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가 되었을 때 시동 걸린 세대교체가 정치 자체의 개혁으로 바뀔 가능성이 보인다. 이번 기회에 지금까지 구태를 보여온 정치인을 모두 퇴출시키고 도덕성과 품격, 나라와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선도할 사람들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구성된 제22대 국회에서는 개인의 정치적 이익이나 출세, 당리당략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국회의원과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패거리 정치의 보스를 위해 희생하고 기여한 정도가 아니라 마을과 지역사회에서부터 국민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해 온 청년들이 정치를 통해 국가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4년의 정치에서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는 정치인들을 보고 싶다. 큰 차를 타고 비서를 대동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대중교통 타고 팔을 걷어붙이고 밤새워 토론하며 정책을 만들어 가는 실무형 국회의원을 보고 싶다. 22대 국회의 첫 회기에서 국회의원의 특권을 모두 없애는 법을 발의하고 제일 먼저 통과시키는 헌신적인 정치인들을 보고 싶다.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최근 인지능력이 제한적이고,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해 학령기 학교 부적응으로 학교폭력과 따돌림 피해 본 사람들이 학령기 이후에도 지역사회에서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일상 및 사회생활과 직업활동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환경에 따라 적절한 교육과 지원의 부재로 사회적 배제와 단절을 겪는 사람을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일컫는다. 이들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학대와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연루돼 사회의 주변인으로 맴돈다. 이들을 위한 뚜렷한 사회적 지원 정책이 부족한 주된 이유는 경계선 지능인을 독립된 정책대상자로 인정해야 할지, 발달장애의 범주에 포함시켜 유사 정책대상자로 지원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12일에 사회보장위원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제3차 사회보장 기본계획’과 ‘제1차 사회서비스 기본계획’에 새롭게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대한 내용이 반영됐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 실효성 있는 지원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경계성 지능인’ 용어에 대한 정의부터 정립해야 한다. 2008년부터 국가차원 학업성취도 평가가 실시되면서 학교 교육은 경쟁체제로 변화됐다. 기준 이하의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보충 지도의 대상이 돼 집중적인 학습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계속된 학습의 실패 경험들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opelessness)’을 초래했고, 그 결과 학업의 포기 뿐 아니라 또래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학령기에 이런 경험을 한 아동들에게 ‘경계선급 정신지체’, ‘느린 학습자’, ‘애매한 아동’, ‘경계선급 지능 아동’ 또는 ‘경계선 지적 기능 아동’이라는 용어들을 사용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요구를 지닌 아동 혹은 다양한 학습자’라고 일컫는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 5’에 따르면 지적장애인으로 진단받기 위해서는 개념, 사회, 실행 영역에서 지적 기능의 제한성(IQ 70 이하)과 다양한 환경(가정, 학교, 일터, 공동체)에서 한 가지 이상의 일상생활(의사소통, 사회참여, 독립적 생활) 기능에 제한성이 발달기(18세 이전)에 시작돼야 한다. 그런데 2020년 10월 제정된 서울시의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에서는 경계선 지능인을 ‘지적장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평균 지능에 도달하지 못한 인지능력(IQ 71∼84)으로 소속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지역사회에서의 부적응은 낮은 지능이 원인일 것이라는 추측에서 비롯된 결과다.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직업생활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지 낮은 지능 때문일까? 지능은 경계선에 속하지만 적응 행동 기능에는 어려움이 없는 이들도 있다. ‘일상생활과 직업활동의 곤란함’이 지적 기능의 제한성 때문인지, 적응 행동 기능의 어려움 때문인지, 사회적 환경의 부재 때문인지를 면밀히 파악한 후 신중하게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 뚜렷한 원인 진단 없이는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없다. 둘째, 경계성 지능인에 대한 구체적인 특성과 지원요구를 파악해 그에 맞는 개별적 지원을 해야 한다. 현재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정책은 발달장애인과 매우 유사하다. 지능 제한성 유형(IQ 70∼84, 85∼99)과 적응행동 제한성의 유형(개념적·실제적·사회적 적응행동의 어려움)에 맞춰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경계성 지능인과 그 가족의 삶이 더욱 개선된다. 셋째, 무엇보다 경계성 지능아동에 대한 교육당국의 관심이 중요하다. 경계선지능을 가진 학생들은 전국적으로 80만명으로 한 학급당 2∼3명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들은 특수교육서비스와 일반교육사이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학교에서 소외받는 경계성 지능아동 중 소수만이 지역사회의 종합사회복지관이나 장애인복지관에서 단기간 프로그램 참여하는 정도다. 특수교육 담당 부서나 학습부진 담당 부서에서 지역사회와 연계해 이들에 위한 교육지원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경계성 지능인은 학령기에 적절한 교육을 못받으면 ‘학습의 무기력’과 ‘낮은 자존감’ 그리고 ‘대인관계의 단절’이 성인이 돼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김경열 영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ChatGPT를 통해 본 새해 경제전망

"예측하건데, 2024년 새해는 AI(인공지능)가 만개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2007년 아이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활짝 시대가 열린 것 처럼 말이다." 꼭 1년 전에 필자가 에너지경제신문에 기고한 ‘AI시대, 누구도 뒤처지지 않게’라는 제목의 글 일부 내용이다. 그리고 2023년은 어김없이 GenAI(생성 인공지능)가 부상했다. 필자의 전망이 맞았다라는 안도가 아니라 그만큼 GenAI가 갖는 잠재적 변화의 힘이 막강하고 분명했기 때문일 것이다.2023년이 몇일 남지 않은 현재, 거꾸로 ChatGPT에게 새해 경제전망을 물어봤다. ChatGPT는 "시의적절한 주제"라면서 주저 없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선 세계 경제의 역동적인 특성을 고려해 내년 경제에 영향을 주는 10가지 핵심 요인을 꼽았다. 글로벌 경제동향, AI와 같은 미래첨단 기술발전, 각국의 통화정책,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 신흥시장 동향, 노동시장 역학 변화, 무역관계와 공급망, 소비자행동과 소매 트렌드, 부동산 및 주택시장 동향, 의료부문의 발전 등이다. ChatGPT는 이를 토대로 새해 전망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2024년 세계 경제는 도전과 기회로 가득한 복잡한 미로를 계속 헤쳐나갈 것으로 봤다. 기술 발전부터 지정학적 역학 관계의 변화까지,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며, 개인적·직업적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파악할 수 있는 4가지 주요 트렌드를 제시했다. 첫째, AI 혁명과 고용시장의 역학 관계다. 급성장하는 AI 산업은 단순한 기술 현상에 그치지 않고 AI가 다양한 산업분야에 통합됨에 따라 전 세계 고용 시장을 재편할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AI가 업계에 가져올 변화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 또는 AI가 주도하는 고용시장의 변화에 대응해 기술을 향상시키거나 재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둘째는 기후 변화 이니셔티브 및 비즈니스 전략이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친환경 경제에 적응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는데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 나아가 친환경 관행을 향한 전 세계적인 움직임에서 어떤 기회가 발생하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세번째는 진화하는 이커머스의 세계와 소비자 습관이다. 소매업의 디지털 혁신은 소비자 행동을 계속 진화시키고 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쇼핑 습관은 어떻게 변화했으며, 이는 소비자 행동의 광범위한 트렌드에 대해 무엇을 시사하는지, 그리고 비즈니스 소유자의 경우, 이렇게 변화하는 소비자 선호도에 맞춰 전략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헬스케어의 미래다. 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급속한 변화를 예상하면서 헬스케어 기술의 발전이 개인의 건강 관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헬스케어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채택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2024년을 ‘적응과 성장’의 한 해로 규정하면서 개인은 물론 기업 모두가 이러한 도전을 어떻게 성장과 혁신의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최신 정보를 파악하고 민첩하게 대응할 것으로 주문했다.‘ChatGPT가 본 새해 경제전망’은 인공지능이 갖는 잠재적 능력을 확인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매 번 물어 볼 때마다 말을 달리하는 GenAI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정하고 가이드 하는 일이 중요하다. 즉, GenAI가 경제전망이라는 나름의 전문분야를 답하지만 이런 답을 이끌어 내는 데는 질문의 주제를 기획하고 질문 내용을 정제하는, 다소 복잡한 프롬프트의 과정을 거친다. 2024년에는 우리가 GenAI와 더 가까이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GenAI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가능하도록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GenAI가 생성하는 결과를 어디에 활용할 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아는 만큼 물어보고 GenAI는 물어본 만큼 대답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GenAI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김한성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고문

[이상호 칼럼] 드론 대량 운용으로 대북방어력 높여야

지금 세계는 화재가 발생한 화약고가 터지기 직전과 같은 상황이다. 이 화약고가 임계점을 넘어 폭발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위기는 현재 세계 여러 곳에서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초래했고, 한반도의 위기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방은 사면초가다.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심리전, 국내에서 암약하는 친북세력의 전방위적인 국방 무력화 책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등을 핑계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군의 전력과 준비 태세는 눈에 띄게 부실해졌다. 더군다나 갈 수록 심화되는 출산율 저하로 병력 확충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2036년 병력 자원은 18만 명으로 줄어 제대로 된 군 전력 유지가 어려워진다. 최근에는 징집 자원이 부족해 심지어 우울증 등 정신 질환자까지 ‘묻지마 징병’을 하는 실정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군은 현 상황 개선을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다. 병력 자원 부족에 시달리는 육군은 최근 ‘아미타이거(Army Tiger)’ 프로그램 등을 추진해 장비로 병력을 대신하면서 전투력을 유지 또는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기계화 또는 차량화 장비 보급을 통해 기존의 전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고 더 넓은 지역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 대신 장비’가 한국군의 전력 개선의 ‘키워드’다. 급변하는 국제 환경과 커지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군의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북한의 장사정포와 핵, 미사일 등을 조기에 제거하는 한국형 ‘3축 체계’ 확충 등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전력 개선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북한의 위협을 신속하게 감지해 대응,보복하면 군과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북한의 도발을 조기에 응징할 수 있다. 최신 과학기술과 첨단 무기는 부족한 병력을 대신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고도의 방어체계 구축과 유지에는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하지만 정부가 북한 공격이 확실시되더라도 정치권의 갈등 등으로 북한을 선제타격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 선제타격을 못한다면 ‘3축 체계’는 ‘돈만 먹는 하마’가 된다. 따라서 군은 ‘3축 체계’ 같이 즉각 사용 여부가 불확실한 고가의 장비를 보완하기 위해 저렴하고 신속하게 개발·배치할 수 있고 위기 시 적은 인원으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대안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정치 바람을 타지 않으면서 북한 공격을 조기에 저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 대표적인 대안이 드론과 무인 전투장비다. 드론이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된 건 최근이다. 드론은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활약한 후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대규모로 활용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한 달에 1만 대 정도의 드론을 소모할 정도로 크게 의존하고 있다. 드론 공격을 받은 병사나 장비는 즉시 무력화된다. 우크라이나에게 드론은 ‘가성비 전투’를 가능하게 하는 천사 같은 존재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스라엘 드론의 공중 지배로 하마스 전력이 전방위로 타격당하자, 하마스는 휴전 협상 우선 조건으로 이스라엘 드론 사용 중지를 내세운 바 있다. 현대전에서 일선 병력에게 드론은 공포와 전율의 저승사자이다. 드론을 피해 숨을 곳도 없고, 드론 공격을 피할 방법도 없다. 우크라이나는 가격이 매우 저렴한 소형 상용 드론을 주로 사용한다.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오픈마켓에서는 카메라가 장착된 체공시간 15~20분, 비행 거리 20km 정도의 드론을 3만원 정도면 구할 수 있다. 미국의 대형 정찰 드론인 ‘글로벌호크’ 가격이 대당 8000억 원, 155㎜ 곡사포탄이 1발이 300만 원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싸다. 곡사포탄 1발 값으로 소형 드론 100대를 구입할 수 있는 셈이다. 국산 드론은 중국제 싸구려 드론보다는 비싸겠지만 인공지능(AI)을 탑재해 활용한다면 드론 조종사 없이도 장사정포는 물론 전진 배치된 북한군과 공격 자산과 무기 등 군사시설을 광범위하게 타격할 수 있다. 군은 지난 6월 드론사령부를 창설했으며 최근 ‘10만 드론 비축론’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수도 서울이 휴전선 접경에 가까이 있는 만큼 군은 유사시 방어 개념을 개전 초기 민간인과 군인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초점을 맞춰야 하고 이것이 군 전력 개선의 핵심이 돼야 한다. 개전 시 즉시 사용이 어려울 수 있는 ‘3축 체계’ 등 전략 자산을 보완하기 위해 드론 10만대가 아니라 100만 대를 비축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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