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승계지도] 신동빈 ‘뉴롯데’ 꿈, 지배구조 정리가 첫걸음

롯데그룹은 지난 10여년간 지배구조 투명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뉴롯데' 비전을 내걸고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들을 과감히 해소했다. 지주사 역할을 하는 롯데지주를 출범시키며 승계를 위한 중장기 밑그림도 그렸다. 아직 갈 길은 멀다. 한국과 일본 롯데 사이 '소유권 분리'가 급선무다. 호텔롯데를 중심으로 지분 관계를 재정비하는 작업이 첫걸음이다. 본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일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소유와 경영을 아우르는 '신동빈 체제'가 완성된 이후에는 3세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에게 시선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소유권에 대한 승계 고민은 지배구조가 정리된 이후 시작될 전망이다. 경영권 측면에서는 신유열 부사장이 그룹 차원의 신성장 동력을 성공적으로 발굴할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 韓日 넘나드는 롯데그룹 지배구조…형제간 분쟁 발단 롯데그룹 지배구조는 지난 2015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베일에 싸여 있었다. 신동빈 회장이 2017년 '뉴롯데' 비전을 선포하며 투명화 작업에 돌입했지만 아직 정리가 끝나지는 않은 상태다. 한국 롯데그룹의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롯데지주다. 2017년 10월 공식 출범하며 지주회사 전환 신고를 마쳤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 등도 매각했다. 롯데지주는 현재 실질적으로 그룹의 인사, 전략, 미래 먹거리를 결정하는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롯데지주 최대주주는 신동빈 회장(13.04%)이다(이하 11일 기준, 비상장사 지난해 기업집단현황공시 기준). 호텔롯데가 11.1%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있다. 특수관계인을 합산하면 총수 일가 지분율이 43.44%가 된다. 국민연금공단 지분(6.02%)과 자사주(27.51%)도 있다. 자사주 비중이 높은 것은 롯데지주가 출범 당시 계열사들 물량을 대부분 떠안았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4개사를 각각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쪼개는 인적분할을 단행한 뒤 투자회사를 합치는 식으로 지주사를 만들었다. 해당 물량들은 상법 개정 기조와 맞물려 대부분 없어질 예정이다. 롯데지주는 전체 자사주 2885만8476주 중 5% 가량인 520여만주를 이달 31일 소각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문제는 한국 롯데그룹 지배구조에서 호텔롯데가 '옥상옥' 구조에 자리했다는 점이다. 호텔롯데는 롯데지주 외에도 롯데면세점제주(100%), 롯데건설(43.3%), 롯데알미늄(38.23%), 롯데물산(32.83%), 롯데상사(32.57%), 롯데캐피탈(32.59%), 대홍기획(20.02%), 롯데GRS(18.77%), 롯데글로벌로지스(15.05%), 롯데자산개발(10.62%), 롯데쇼핑(8.86%), 한국후지필름(8%), 롯데웰푸드(0.01%) 등 주식을 보유 중이다. 매각을 추진 중인 롯데렌탈(38.14%)과 금융 계열사 롯데벤처스(39.97%) 등에서는 최대주주 자리를 꿰차고 있다. 호텔롯데는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을 이어주는 일종의 다리 역할도 한다. 호텔롯데 지분 대부분을 일본 롯데홀딩스 및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하고 있어서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호텔롯데 지분 19.07%를 들고 있다. 호텔롯데 주요 주주는 이밖에 L제1투자회사(8.60%), L제2투자회사(3.32%), L제4투자회사(15.63%), L제5투자회사(3.60%), L제6투자회사(3.97%), L제7투자회사(9.40%), L제8투자회사(5.76%), L제9투자회사(10.41%), L제10투자회사(4.44%), L제11투자회사(3.32%), L제12투자회사(4.20%) 등이 있다. 이 중 제1·7·8·9·10·11·12 회사는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의 100% 자회사다. 롯데홀딩스는 제2투자회사를 100% 거느리고, 제2투자회사는 또 제3·4·5·6투자회사 지분을 전량 들고 있다. 호텔롯데에는 광윤사(5.45%)와 패밀리(2.11%) 몫도 있다. 일본 자본이 호텔롯데 지분 99%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롯데홀딩스와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는 순환출자 구조로 서로 지분을 나눠가졌다. 롯데홀딩스가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 지분을 30.98% 들었고,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는 롯데홀딩스 주식 10.65%를 보유했다. 이 위에는 광윤사라는 회사가 있다. 광윤사는 롯데홀딩스 지분 28.14%,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 주식 1.70%를 소유했다. 광윤사 주식은 총수일가 특수관계인들이 99.83%를 가졌다. 거칠게 요약하면 총수일가→광윤사→롯데홀딩스 및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호텔롯데→롯데지주→한국 내 주요 계열사 순으로 체계가 형성된 것이다. 양국을 넘나드는 복잡한 지배구조는 2015년 '형제의 난'이 일어난 발단이 됐다.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지만, 지분 측면에서는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신동주 회장은 롯데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광윤사의 최대주주(50.28%)다. 신동빈 회장 지분율은 37.85%다.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두 번째 부인이자 신동빈 회장의 친어머니인 시게미츠 하츠코씨도 지분 10%를 가졌다. 최근 별세한 故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의 지분 0.28%는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포함한 1남3녀에게 상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동주 회장과 신동빈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각각 1.77%, 2.69% 가지고 있다. 오히려 故 신영자 의장 지분율이 3.15%에 달한다.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의 경우 신동주 회장이 5.12%, 신동빈 회장이 4.61%를 보유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롯데홀딩스 지분 구도다. 롯데홀딩스 주주 구성을 보면 총수 일가 지분율이 낮은 편이다. 미도리상사(5.23%), 패밀리(4.61%), 롯데그린서비스(4.10%), KYUNG YU PTE LTD(3.21%) 등 일본 내 다른 회사들이 주식을 나눠 가졌다. 이 회사들은 롯데홀딩스의 자회사이자 주주라 또 다른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한다. KYUNG YU PTE LTD의 경우 'CHINA RISE ENTERPRISE LIMITED'가 지분 100%를 들고 있다. 이 상단에는 故 신격호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였던 서미경씨(50%)와 그 딸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50%)이 있다. 일각에서는 해당 지분들이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광윤사(28.14%)를 지배한다 해도 쉽게 과반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롯데홀딩스 주주 명단에는 여기에 임원지주회(5.96%)와 기타(28.81%)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종업원지주회가 들어있다. 종업원지주회는 단일 법인이 아니라 이 회사 직원들의 결사체다. 의결권 행사 시 이사장이 한 번에 표를 던지는 특징이 있다. 광윤사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 조직·단체들은 신동빈 회장을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 겸 회장으로 인정하고 있다. 경영 능력이 입증됐다는 이유에서다. ◇ 신동빈 '뉴롯데' 韓-日 고리 끊기는 선택 아닌 필수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 창립 50주년에 '뉴롯데' 비전을 선포하면서 지배구조 투명화를 전면에 내세웠던 배경이다.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는 한국과 일본 간 고리를 확실히 끊어내 정돈된 지배 체계를 완성할 경우 경영권 분쟁 발생 여지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각 계열사 간 시너지나 영업 활동 개선 측면에서도 구조 개편을 해야 한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야심차게 롯데지주를 출범했지만 호텔롯데 위치를 재조정하는 '숙제'를 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초 롯데그룹이 추진한 방법은 호텔롯데를 상장하는 것이다. 신주를 대거 발행하는 방식으로 일본 롯데홀딩스 및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 지배력을 확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측 지분율을 과반 이하로 낮추면 한국 계열사들이 경영권 분쟁 여지가 사라진다. 롯데지주가 호텔롯데 지분을 취득해 지주사 체제를 깔끔하게 완성하는 안도 한때 시장에서 거론됐다. 이른 시일 내 상장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면세점 사업이 '미운오리 새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호텔롯데의 해당 사업은 코로나19 팬데믹 직격탄을 맞은 이후 좀처럼 회복국면에 접어들지 못하고 있다. 시장 환경이 변하며 이익도 예전처럼 창출하기 힘들어졌다. 호텔롯데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2022년 6조4950억원, 2023년 4조7540억원, 2024년 5조691억원 등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22년과 2024년에는 각각 799억3858만원, 455억9123만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상장 자체가 힘들 뿐 아니라 제값을 받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뜻이다. 신동주 회장과의 끊임없는 갈등 역시 상장 심사 시 '질적 요건'을 감점시키는 요인이다. 롯데홀딩스와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 또한 호텔롯데의 상장 추진에 비협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롯데는 자본 흐름 면에서도 비상등을 켠 처지다. 롯데렌탈 매각 불발, 롯데건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등이 맞물린 결과다. 호텔롯데는 보유하고 있던 롯데렌탈 지분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 팔아 약 1조원의 현금을 확보하려고 했다. 공정위가 최근 이를 불허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부동산 침체 등 여파로 어려움을 겪은 롯데건설에는 2조원에 육박하는 현금을 붓거나 지원하기로 약정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 상장이 미뤄지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2017년 재무적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 작년 4월까지 상장하지 못하면 롯데 측이 지분을 다시 사준다는 풋옵션 계약을 맺었다. 그룹 차원에서 사활을 걸고 유가증권시장 문을 두드렸지만 수요예측 부진으로 잠정 중단 상태다. 투자자들의 물량은 일단 호텔롯데가 떠안았다. 롯데지주는 주가수익스와프(PRS) 같은 복잡한 금융 기법을 동원해 급한 불을 끄고 있다. 올해 상장에 성공할 경우 그룹 뿐 아니라 호텔롯데의 자금난도 일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롯데그룹이 한국-일본간 지배구조 고리를 끊어내는 게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진단이 나온다. 롯데그룹은 최근 10여년간 유독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지난 2015년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다. 2017년에는 '사드 보복' 직격탄을 맞아 휘청였고, 2019년에는 '노 재팬'(No Japan) 불똥까지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주력인 유통·면세 사업의 숨통을 조였다. 이후에는 석유화학 업황 부진과 재무 리스크라는 악재를 만났다. 이 중 경영권 분쟁과 노 재팬에 따른 타격은 그 궤를 같이한다.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롯데=일본기업'이라는 인식이 번지며 이미지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두 시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롯데그룹 계열사 전반을 아우르는 가짜뉴스들이 공통적으로 번졌다. 롯데칠성(당시 롯데주류)은 억울한 심정을 호소하며 '처음처럼은 한국 소주입니다'라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기도 했다. 신동빈 회장이 지배구조를 성공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롯데그룹 승계지도를 그리는 첫걸음이라는 평가가 재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 韓사업 정상궤도 올려야…신유열 행보에도 관심 롯데그룹 개인·법인들은 지배구조 정리 과정에서 롯데지주 지분도 소폭 팔거나 양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소소하게 엮여있는 계열사 간 출자도 손볼 가능성이 높다. 현재 롯데지주 주주에는 신동빈 회장(13.04%)과 호텔롯데(11.10%) 외에 롯데알미늄(5.06%), 롯데물산(5.00%), 롯데장학재단(3.24%), 부산롯데호텔(0.94%)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본 측에서도 롯데홀딩스(2.49%), L제2투자회사(1.48%), L제12투자회사(0.79%) 등이 엮여있다. 신유열 부사장은 0.03% 가량만 지분을 확보했다.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25.31%), 롯데쇼핑(40.00%), 롯데웰푸드(48.13%), 롯데칠성(45.00%), 롯데이노베이트(66.10%), 롯데바이오로직스(80%), 롯데글로벌로지스(46.04%), 코리아세븐(92.47%), 롯데GRS(54.44%) 등 지분을 보유 중이다. 주요 갈래는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이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46.94%)와 롯데정밀화학(43.50%) 등 화학 계열사의 최대주주다.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을 그룹의 핵심 축으로 세워 지배구조 복잡함을 해소하려는 시도도 한 적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구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등 공격적인 움직임을 가져갔지만 롯데건설에 대한 지원과 업황 부진에 이같은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황이다. 롯데케미칼 주식을 가진 주주는 롯데지주 외에도 롯데물산(20.00%), 일본 롯데홀딩스(9.19%) 등이 있다. 롯데쇼핑은 롯데지주 외에도 신동빈 회장(10.00%)과 호텔롯데(8.86%) 등을 위에 두고 있다. 아래로는 롯데하이마트(65.25%)가 있다. 롯데알미늄과 롯데물산이 계열사 주식을 많이 소유했다는 사실도 포인트다. 롯데알미늄은 롯데지주(5.06%), 롯데칠성(7.64%), 롯데웰푸드(6.91%), 롯데건설(9.51%) 등 주요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다. 롯데물산은 롯데지주(5.00%)와 롯데케미칼(20.00%) 지분율이 높다. 롯데물산에는 다시 일본계 자본이 들어온다. 일본 롯데홀딩스(60.10%)와 L제3투자회사(5.25%)가 롯데물산 상단에 있다. 이밖에 호텔롯데(32.83%)와 신동빈 회장(1.82%) 지분도 있다. 롯데알미늄도 마찬가지다. 호텔롯데(38.23%)가 최대주주로 있고 L제2투자회사(34.91%)와 광윤사(22.84%)가 주요 주주다. 롯데그룹은 결국 일본 자본과 연결 고리를 끊어내는 투명화 작업을 통해 '신동빈 체제'를 굳히는 방법을 고민할 것으로 관측된다. 호텔롯데 상장이 최우선 과제지만 실현이 어려워질 경우 롯데지주와 호텔롯데의 합병 등 방법도 거론된다. 호텔롯데 주주는 사실상 일본 롯데홀딩스 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론적으로는 반대쪽인 롯데지주 주주들의 마음을 잡으면 된다는 얘기다.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는 위험부담이 큰 '도박'이다. 면세점 사업 부진 등 여파로 기업 가치가 낮게 측정된 상황에서 어설프게 합병을 추진할 경우 롯데홀딩스에서 신동빈 회장의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도 있어서다. 재계가 예상하는 시나리오는 △호텔롯데를 성공적으로 상장해 일본 지분을 희석한 뒤 △호텔롯데를 투자·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한 다음 △주력사 지분을 보유한 투자부문을 롯데지주와 합병하는 방법이다. 그룹 양대 축인 유통과 화학 업종이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 몸값이 낮게 책정돼 그룹 체계 개편 작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소유와 경영의 균형점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속 또는 증여를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 '뉴롯데' 비전 실현에 짧게는 수년 많게는 1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그룹에서 경영권은 완전히 인정받았지만 소유는 불완전한 상태라는 점을 감안한 전망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될 경우 신유열 부사장은 소유보다 경영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지분을 완전히 장악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신동빈 회장과 마찬가지로 롯데홀딩스 종업원지주회 등과 동행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게 현명하다는 분석이다. 신유열 부사장은 2020년을 기점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일본 롯데홀딩스에 부장으로 입사하면서다. 2022년 롯데케미칼 상무보로 한국 땅을 밟았다. 이듬해에는 전무로 초고속승진을 하며 그룹 미래성장실장 역할을 맡았다. 바이오, 헬스케어, 인공지능(AI), 에너지 등 미래 신사업 발굴과 개발을 총괄하는 게 임무다. 2024년 부사장 직함을 달았고 작년부터는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 대표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신유열 부사장이 상무보에서 부사장으로 올라서는 데 걸린 시간은 2년6개월에 불과하다. 여기에 일본 롯데홀딩스 사내이사 역할도 맡고 있어 '신유열 체제' 준비 작업에는 속도가 나는 중이다. 업계 이목은 바이오에 쏠린다. 신유열 부사장이 처음으로 국내 계열사 대표를 맡으며 실질적인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기 때문이다. 그룹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 이밖에 다른 새 먹거리를 확보하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소유 측면에서 신유열 부사장은 일본 롯데그룹 쪽에서 주로 자금을 수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의 경우 롯데지주에서는 아직 미등기임원이라 보수 내역이 확인되지 않는다. 등기이사로 있는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 기업이 아니다. 롯데지주 지분은 2024년부터 조금씩 매집하고 있다. 아직 지분율은 0.03%에 불과하다. 증권가에서는 신유열 부사장이 롯데지주 주식을 모은다는 사실은 롯데그룹이 이 회사를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싣는 요소라고 해석한다. 신동빈 회장의 '뉴롯데' 실현은 3세 지분·경영권 승계 관점에서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주총시즌 ‘개정상법 전초전’…재계, 경영권 방어 ‘기선잡기’

국내 주요 기업들이 이번주부터 '주총 시즌을 맞는다. 무엇보다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지난해 두 차례 걸친 상법 개정에 따른 '주주권리 강화'를 놓고 기업과 일반투자자 간 '정면대결'이 어떻게 귀결되느냐 여부다. 일단 주요 기업들은 주총을 준비하면서 개정 상법이 새로 규정한 '3% 룰',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소액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들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16일 재계와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7일 현대모비스를 기점으로 18일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 계열사들, 19일 한화오션, 20일 기아와 LG에너지솔루션 등이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이어 23일 LG전자, 25일 SK하이닉스, 26일 현대자동차 등 다음주까지 총회가 집중적으로 열린다. ◇ 주총 앞두고 기업들 개정상법 대비 '안전장치' 마련 기업들 입장에서 올해 주총 키워드는 단연 '상법 개정'이다. 지난해 국회 문턱을 넘은 주요 법안들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주주 등 총수 일가의 힘은 빼고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는 키워주는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3% 룰'이 오는 7월 23일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법이다. 이로 인해 총수 일가 등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감사를 마음대로 뽑기 어려워졌다. 오는 9월 10일부터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규정도 도입된다. 그동안 이사진을 먼저 뽑은 뒤 그 중 감사를 골랐지만, 앞으로는 처음부터 감사위원이 될 이사 1명을 따로 투표한다는 의미다. 집중투표제도 의무화된다. 이사를 여러 명 뽑을 때 주주에게 '뽑는 이사 수' 만큼 표를 주는 게 핵심이다. 대주주가 반대하는 후보도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받으면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이사 임기 늘리고 인원 수 줄이는 등 '사전 방어선' 구축 기업들은 만일에 대비해 다양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주총에서 정관 제25조의 이사 임기 규정을 수정하는 안건을 올렸다. 기존에는 '이사의 임기는 3년으로 한다'고 고정했지만 이를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로 유연화하는 게 골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사 임기를 1~2년으로 설정해 '시차 임기제'를 운영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주총에서 뽑는 이사 수 자체를 줄여 집중투표제의 '몰아주기' 효과를 줄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이유에서다. 한화그룹 계열사들은 이사 임기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책을 찾았다. 한화오션은 이번 주총 2-6호 의안으로 이사의 임기를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상정했다. 지주사인 ㈜한화를 비롯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투자증권, 한화손해보험, 한화생명 등도 같은 안건을 올렸다. 한화갤러리아의 경우 이사 정원 자체를 기존 '13명 이내'에서 '7명 이내'로 축소하기로 했다. 이밖에 LS일렉트릭도 이사 수를 기존 9명에서 5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임기 관련 문구도 '3년으로 한다'에서 '3년으로 하되 이사별로 달리할 수 있다'고 바꾼다. 셀트리온은 '3인 이상 15인'에서 '3인 이상 9인'으로 변화를 시도한다. 효성 역시 '3인 이상 16인 이내'에서 '3인 이상 9인 이하'로 정관을 변경하기로 했다. ◇ 소액주주측 기업 선제대응에 반발…외국계 펀드, 주주제안 공세 소액주주 입장을 대표하는 단체들은 이같은 재계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한화그룹 상장회사의 이사 수·임기 관련 정관변경안에 대한 논평'을 내고 “개정 상법에도 불구하고 시차임기제로 집중투표제 도입 효과 반감이 우려된다"며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는 한화 계열사의 정관변경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주제안 및 경영권 분쟁 측면에서도 올해 주총 시즌은 눈길을 잡는다. 영국계 헤지펀드 팰리서캐피탈은 LG화학 측에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 자기주식 매입 및 소각, 선임독립이사 선임 등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서를 보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코웨이에 독립이사 선임을 주문했다. 트러스트자산운용은 KCC에 삼성물산 지분을 유동화하자고 요청했다. 액트는 DB하이텍에 특별감사인을 선출해 내부거래 진상을 규명하자고 주장했다.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고려아연에서는 영풍 측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공세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이사회와 경영을 분리하자고 제안하며 현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에서는 최대주주 롯데쇼핑이 단독으로 이사회 구성을 변경하면서 2대 주주 태광 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에서는 박철완 전 상무가 자사주를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어 앞으로 변화 양상이 주목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삼성전자 ‘특허 방패’ 단단해진다…글로벌 특허 28만건 돌파

삼성전자가 글로벌 소송전에 대응해 '특허 방패'를 계속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넷리스트 등 특허관리기업(NPE)들의 표적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중국 업체들의 기술 추격을 따돌릴 방법을 지적재산권에서 찾는 모습이다. 12일 이 회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작년 말 기준 전세계 시장에 총 28만1857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분쟁이 자주 일어나는 미국에서만 10만5471건을 확보했다. 한국(6만4982건), 유럽(5만2327건), 중국(3만1230건), 일본(7986건) 등 주요 시장에서도 수천건 이상 지녔다. 2024년 말 기준 삼성전자가 전세계에 등록한 특허는 총 26만5410건이었다. 1년 사이 1만6447개를 추가한 것이다. 연도별로 보면 2024년에는 한국에서 7805건, 미국에서 9226건의 특허를 냈다. 작년에는 이보다 각각 36.3%, 12.2% 늘어난 1만639건, 1만347건을 확보했다. 해당 지적재산권은 대부분 스마트폰, 스마트 TV, 메모리 반도체 등에 집중돼 있다. 선제적인 특허 등록은 사업 보호 역할뿐 아니라 유사 기술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경쟁사 견제의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구글(2014년), 퀄컴(2022년), 화웨이(2022년), 노키아(2023년) 등과 특허 라이선스도 체결한 상태다. 모바일, 반도체 등 주력사업 및 신사업 분야에서 광범위한 보호망을 가동하는 차원이다. 삼성전자는 전세계에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탓에 분쟁에 휘말린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 정보 제공업체 유나이티드 페이턴츠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에서만 404건 이상의 특허 침해 소송을 당했다. 특히 미국계 NPE 넷리스트는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다양한 제품군을 겨냥해 '묻지마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처음 특허를 낸 것은 1984년이다. 지적재산화 확보에 본격적으로 총력을 기울인 것은 2012년 이후다. 삼성전자는 당시 애플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받아 수천억원대 배상금을 지급했다. 최근에는 특허 분석 자료 등 내부 정보를 유출한 삼성전자 전 직원과 이러한 정보를 앞세워 이익을 취한 NPE 등이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구개발(R&D) 분야에 총 37조7404억원을 투입했다. 기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던 2024년(약 35조200억원) 보다 7.8% 증가한 수치다. 인공지능(AI) 시장 확대에 따라 HBM 및 고용량 DDR5 등 차세대 제품 개발에 화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LG엔솔, 임직원 ‘연봉 1억원’·‘워라밸’ 두 토끼 잡았다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이 경쟁사 대비 임직원들의 급여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잘 챙겨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속 연수가 평균 8년임에도 연봉은 1억원을 넘긴 것으로 파악됐다. 시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제도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12일 이 회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LG엔솔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1억1200만원으로 집계됐다. 등기임원은 제외한 수치다. 총 직원 수는 남성 1만507명, 여성 2415명 등 1만2922명이다. 기간제 근로자 225명을 포함한 숫자다. 근속 연수는 평균 8년2개월이다. 삼성SDI와 비교해 우위에 있는 근무조건이라는 분석이다. 같은 기간 삼성SDI 임직원의 연봉은 등기임원 제외 9500만원이었다. 직원 수는 1만2826명(기간제 251명 포함)으로 비슷하다. 근속 연수는 12.6년으로 LG엔솔보다 4년 이상 길었다. 미등기 임원 보수에서도 차이가 났다. LG엔솔은 지난해 114명을 위해 527억원을 썼다. 1인 평균으로 계산하면 4억6200만원 수준이다. 같은 기간 삼성SDI는 93명의 미등기임원에게 318억원을 지불했다. 1인당 연봉은 3억8900만원이다. 근무 여건 측면에서는 선택근무제가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전체 시간을 준수할 경우 주 단위에서 출퇴근 및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제도다. 작년 기준 LG엔솔 직원 중 선택근무제를 이용한 직원은 9836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 9261명, 2024년 9582명에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같은 시기 재택근무를 포함한 원격근무제도 이용자는 2023년 8341명, 2024년 7623명, 지난해 5448명 등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SDI의 경우 지난해 총 9081명의 직원이 선택근무제를 활용했다. 원격근무제도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LG엔솔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직원은 지난해 168명이었다. 육아휴직사용률은 20.2%였다. 지난해 자녀를 출산한 인원 대비 같은해 육아휴직을 개시한 인원 중 자녀가 1세 미만인 직원의 비율이다. LG엔솔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23조6718억원, 영업이익 1조3461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삼성SDI는 매출액 13조2667억원을 냈지만 1조722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 근무환경 변화…‘원격근무’ 자취 감추고 男 육아휴직↑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의 근무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행했던 '원격근무'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근로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선택근무제'는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남성 직원들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11일 각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등은 모두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포함한 원격근무제 이용자 수는 전반적으로 줄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 제도 활용 인원은 2023년 3080명, 2024년 2064명, 지난해 830명으로 감소했다. 2년 사이 사용자가 4분의 1토막난 셈이다. 재택 근무·교육 등 연간 원격근무제도 활용 건수를 총 평일 수로 나눠 산출한 숫자다. IT 기반 기업인 삼성SDS 상황도 비슷하다. 1년 사이 원격근무제를 1번이라도 이용한 직원 수가 2023년 1만174명, 2024년 8755명, 지난해 7848명으로 줄었다. 삼성SDI와 삼성전기의 경우 해당 내용을 처음 공시한 2022년부터 공식적인 원격근무제 이용자가 없었다. 선택근무제 사용은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근무의 시작·종료 시각 및 1일 근무 시간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게 배려한 제도다. 삼성전자 선택근무제 사용 직원은 2023년 10만958명, 2024년 10만5419명, 지난해 10만5038명으로 큰 변동이 없었다. 삼성전기도 같은 시기 이용자 수가 7762명, 7779명, 7694명으로 비슷했다. 삼성SDS 역시 1만1270명, 1만1193명, 1만999명이었다. 삼성SDI는 7420명, 8457명, 9081명 등으로 이용률이 꾸준히 증가했다.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들은 1개월 이내 정산기간을 평균해 1주 간 근로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선택근무제 사용을 허용한다. 남성 직원들의 육아휴직 사용 횟수는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삼성전자를 보면 2023년 1303명, 2024년 1510명, 지난해 2022명으로 순증했다.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도 12.2%, 13.6%, 14.4%로 상승했다. 여성 직원들의 육아휴직률 사용률은 95%를 웃돌고 있다. 같은 시기 삼성SDI에서는 141명, 131명, 192명의 남성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작년 기준 사용률은 14%다. 삼성전기는 140명, 175명, 187명으로, 삼성SDS는 74명, 118명, 125명으로 남성 육아휴직 사용 건수가 계속 많아졌다. 일과 육아에 대한 인식 변화는 배우자 출산휴가 사용자 수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삼성전자에서 당해 연도 배우자 출산휴가 사용 이력이 있는 직원 수는 2023년 2841명에서 지난해 3809명으로 34% 뛰었다. 같은 기간 삼성SDI는 203명에서 281명으로, 삼성전기는 276명에서 338명으로 해당 휴가 이용 건수가 상승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노란봉투법 내일 정식시행…산업계 ‘하청 쟁의’ 긴장

10일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산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 법에 근거한 새로운 교섭·쟁의 양상을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하청 노조의 '원청 교섭' 요구가 빗발치고 있어서다. 경영계는 불법행위를 자제해달라고 노동계에 호소하고 있다. 정부·노동위원회에는 엄정한 판단 체계를 확립해 달라고 당부했다. 9일 재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의 핵심 쟁점은 사용자 범위를 재정의했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교섭 대상이 기존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에서 '실질·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바뀐다. 이에 따라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사례가 급증할 전망이다. 기업들은 이미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주요 대기업 대부분이 수많은 협력사들과 대화 테이블에 앉아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청 노조가 '선전포고'를 한 사례도 많다. 삼성전자 협력사 이앤에스 노조는 작년 6월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이 통상임금 문제 등을 해결해달라고 요구했다. 현대제철 하청 업체 소속 근로자 일부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뭉쳐 단체 행동을 벌였다. 지난해에는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여론전을 펼쳤고, 최근에는 합법적으로 파업할 권리를 획득하기도 했다. 한화오션 협력사 직원 상당수도 금속노조를 통해 목소리를 내며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중지 결정을 받아낸 이력이 있다. 한국지엠은 세종물류센터 하청노동자들을 해고하려 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우진물류 직원들이 노란봉투법을 앞세워 사측에 고용을 승계하라고 압박했고, 한국지엠이 이를 수용하며 갈등이 일단락됐다. 네이버 산하 6개 자회사 노조는 지난해 노란봉투법 통과 직후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IT기업 NHN 노조는 고용안정을 촉구하며 사측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자회사 NHN에듀 등을 대상으로 '깜깜이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며 모회사가 전환 배치 등을 실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회원들은 지난 4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간접고용노동자 원청교섭 요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로 농협 자회사, 택배업 종사자, 공공기관 콜센터 근무자, 대형마트 판매 및 배송 담당자 등이 단체행동에 나섰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자회사 노조들은 노란봉투법 시행에 맞춰 10일 오전 원청에 대화를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하청 업체의 요구를 회피하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강경한 투쟁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를 미리 염두에 두고 7월15일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노노 갈등' 분위기도 감지된다. 인천공항공사와 한전KPS 등 노조들은 앞서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산업계는 노란봉투법이 노동쟁의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올해 임금협상을 두고 벌써부터 갈등을 빚고 있는 삼성전자나 해외투자·로봇도입 등으로 기싸움을 벌이는 현대자동차 등은 노조의 투쟁 강도가 평소보다 더 높아지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경영계는 법 시행 이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정한 판단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8일 입장문을 내고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사용자 범위와 교섭 의제를 두고 노사간 분쟁이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경총은 “노동계는 원청 기업과 단체교섭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된 범위 외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거나 이를 관철하기 위한 불법행위는 자제해야 하며 교섭절차를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노동위원회는 원청의 사용자성 여부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매뉴얼에서 벗어나는 노동계의 교섭요구나 쟁의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력을 집중하고 엄정한 판단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미-이란 전쟁 ‘안갯속’…국내산업 파장은 ‘온도차’

지정학적 비극은 경제적 비대칭성을 동반한다. 누군가에게 생존이 걸린 처참한 전쟁이 국경 너머에서는 '로또'가 되는 게 국제 정치·경제의 냉혹한 질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효과로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패전국 일본이 전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베트남 전쟁 당시 흘린 피를 바탕으로 국가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무력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미·이스라엘의 공세가 압도적이지만, 이란의 항전 의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전면적인 지상전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중동 상황을 우리나라 산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종별 기상도는 크게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전쟁으로 '낙뢰'가 떨어진 대표적인 분야는 석유화학 업종이다. 업황 부진이 이어지는 와중에 유가가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중국산 저가 공세가 이어지다보니 원가가 뛰어도 이를 가격에 반영하기 힘든 실정이다. 특히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원재료인 나프타 대부분을 중동 지역에서 수급하고 있다. 아직 전쟁 양상을 점치기 힘들지만 일부 기업들은 벌써부터 비상등을 켰다. 여천NCC는 최근 주요 고객사에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곳은 국내 최대 나프타분해시설을 운영하는 곳이다. 항공·여행 업계도 날씨가 좋지 않다. 중동 노선이 여객·화물 비중에서 절대적인 위치는 아니지만 유럽 등 일부 노선은 우회 운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행 심리 자체가 위축돼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도 걱정할 수 있다. 제일 큰 고민거리는 유가 변동성 확대다. 국제유가가 빠르게 오르면 항공사들 유류비 지출액도 늘어난다. 유류할증료 제도를 통해 이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긴 하지만 이 역시 여행 심리 위축에 부채질을 한다.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서 비행기 리스료 등에 대한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건설사들도 흐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중동 지역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장 공정 지연은 대표적으로 건설사의 수익성을 깎아먹는 요인이다. 가전·스마트폰 업계도 중동 전쟁 소식이 반갑지 않다. 고가 IT기기는 항공 물류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늘길이 막히고 비용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는 고민을 하는 와중이라 물류비 상승에 대한 압박이 더 크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국제 유가 향방을 살피고 있다. 통상 유가가 크게 오르면 전기차 등 친환경차 수요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주요국 판매 전략을 다시 짜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동 수출길 확대에 공을 들여온 업체들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큰 악재다. 전반적으로 물류 비용이 증가한다는 점도 자동차 업계는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향후 중동 사태 진행 방향에 따라 날씨가 달라질 수 있는 업종도 있다. 조선 업계의 경우 고유가 기조가 고착화되면 에너지 자립을 위한 액화천연가스(LNG) 및 원유 운반선 발주가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이는 동시에 철강을 비롯한 원자재 값 상승 우려도 동반하고 있어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한다. 해운사들도 계약 구조나 선종에 따라 다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원유 운반이나 장기운송계약이 많을 경우 리스크가 더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해운사들은 주로 컨테이너선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정유 업계는 당장 재고 이익 극대화라는 화창한 날씨를 맞았다. 기존에 쌓아둔 원유 재고에 대한 가치가 높아져 단기적으로 영업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장기적으로 원자재 조달에 대한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방산 업계는 또 한 번 기회를 맞았다. 중동 전역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성능이 검증된 한국산 무기 체계에 대한 발주가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 중거리 요격체 등 수주 경험이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추가 도입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 시장에는 구름이 잔뜩 껴 있다. 큰 비가 내릴지 소나기에 그칠지는 향후 물가 변동 양상을 살펴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월과 같은 2.0%를 기록했다. 6개월 연속 2%대다. 다만 이는 중동 사태에 따른 휘발유·경유 상승 같은 지표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6일 경제주평 보고서를 통해 “국제 유가가 연평균 배럴당 80달러 내외 수준으로 유지돼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0.4% 포인트(p) 증가시킬 것"이라며 “국제 유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가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1%p 올라가고 150달러면 2.9%p 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국제 유가 급등은 경기 침체와 고물가로 서민들의 실질구매력을 약화시켜 내수 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재벌승계지도] LG그룹 ‘장자 우선 원칙’ 구광모 체제서 분기점 맞나

LG그룹 승계지도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그려볼 수 있다. 지배구조는 투명하다. 지주사 체제를 일찍부터 확립했고 총수 일가 지분율도 높은 편이다. 다음 세대로 증여·상속을 해도 소유권이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외에도 26명이 지주사 주식을 들고 있어 '가족 소유' 성격이 강하다. 경영권 측면에서는 50년 넘게 이어온 '장자 승계' 원칙이 기로에 선 상황이다. 4세인 구광모 회장 체제 이후 소송전이 벌어지는 등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LG그룹 지배구조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인 ㈜LG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LG 최대주주(이하 3일 기준)는 구광모 회장(16.27%)이다. 특수관계인을 모두 합치면 ㈜LG 지분율은 42.54%가 된다. 국민연금공단이 6.87%를 가지고 있어 이를 합산하면 과반에 육박한다. 영국에 본사를 둔 자산운용사 '실체스터 인터내셔널 인베스터즈 엘엘피'(Silchester International Inv)가 ㈜LG 지분 7.17%를 들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잡는다. 주요 계열사들은 ㈜LG 영향력 아래에 있다. LG전자(35.27%), LG화학(34.95%), LG유플러스(38.25%), LG생활건강(34.74%), LG CNS(44.95%) 등이다. LG전자는 LG이노텍(40.79%), LG디스플레이(36.72%), 엘지마그나이파워트레인(51%) 등을 아래에 두고 있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지분 79.38%를 지니고 있다. LG유플러스는 LG헬로비전 주식을 58.61% 보유 중이다. 이밖에 손자 또는 그 아래에 있는 회사들도 각 계열사들이 지분을 충분히 확보한 편이다. LG전자의 100% 자회사로는 하이프라자, 하이엠솔루텍, 하이케어솔루션, 하이텔레서비스, 에이스냉동공조 등이 있다. 씨에스리더, 아인텔레서비스, 씨에스원파트너, 위드유, 유플러스홈서비스 등은 LG유플러스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LG생활건강 아래로는 코카콜라음료(지분율 90%)와 해태에이치비(100%) 등이 있다. LG화학은 100% 자회사로 팜한농을 두고 있다. ㈜LG 지분을 확보하면 계열사 전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조가 완성된 셈이다. 첫 번째 변수는 실체스터의 행보다. 이 회사는 주로 저평가된 우량주에 장기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2023년 ㈜LG의 5% 이상 지분 보유 주주로 이름을 올린 뒤 지난해까지 꾸준히 주식을 사들였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최대주주와 경영 보폭을 맞추고 있다. 5% 확보 이후 공시가 나왔을 때만 해도 시장에서는 LG그룹에 '외국계 감시자'가 생겼다는 얘기가 나왔다. 주주가치 제고 기대에 지주사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기대와 달리 현재까지는 ㈜LG 이사회 측이 제안하는 주주 환원 정책에 우군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실체스터가 일반적인 행동주의 펀드와는 분명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이달 ㈜LG 정기주주총회 역시 이변 없이 넘어갈 전망이다. ㈜LG는 이번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 전자주총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 상향 등 대대적인 정관 변경에 나선다. 더 큰 관전 포인트는 ㈜LG 지분 소유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LG그룹 경영은 '구광모 체제'가 사실상 완성된 상태다.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이 탄탄한데다 다양한 방식으로 성과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이후 '선택과 집중'을 화두로 던지며 비주력사업에서 손을 떼고 신성장동력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왔다. 스마트폰·태양광 패널 등 사업에서 철수하는 대신 전장, 이차전지,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역량을 쌓는데 집중했다. 이같은 결정은 LG그룹 사업 포트폴리오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소유 관련 지도는 쉽게 그리기 힘든 상황이다. LG그룹은 55년여간 맏아들이 그룹 지배권을 물려받고, 경영에 참여했던 나머지 형제들은 독립한다는 기조를 지켜왔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떠나자 동생인 구철회 회장은 LIG그룹을 차려 나왔다. 구태회·구평회·구두회 세 형제는 힘을 모아 LS그룹을 만들었다. 구인회 회장(1969년 별세)의 장남인 구자경 회장(2019년 별세)은 1995년부터 LG그룹 2세대를 이끌었다. 구자경 회장의 동생들은 아워홈(구자학), LF(구자승), LB인베스트먼트(구자두) 등을 맡았다. 2018년 취임한 3대 구본무 회장의 형제들도 경영을 돕다 세대교체가 일어나면 약속대로 LG그룹 경영에서 물러났다. LX그룹(구본준), 희성그룹(구본능) 등이다. 현재는 구광모 회장 체제다. 구광모 회장은 구자경 회장의 차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장남인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양자로 입적했다.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이 합의를 이룬 결과다. 총수 일가들은 혈통보다 상징성을 지키기 위해 법적 절차까지 밟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LG그룹이 보수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은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형제간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의 성격이 짙다"고 설명했다. LG그룹은 4대에 걸쳐 상속을 이어온 탓에 지주사 지분을 지닌 가족 수도 크게 늘었다. 구광모 회장과 엮여 있는 ㈜LG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42.54%다. △LG연암학원(2.17%) △LG연암문화재단(1.14%) △LG상록재단(0.49%) △LG복지재단(0.23%)을 제외하면 모두 개인이다. 구본무 회장의 막내동생이자 LT그룹을 가지고 독립한 구본식 회장이 아직 ㈜LG 지분 4.57%를 가지고 있다. 구광모 회장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지분율도 3.11%에 달한다. 구본무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 여사(4.29%)를 포함해 △구본무 회장의 장녀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2.97%) △구본무 회장의 차녀인 구연수씨(0.73%) △구형모 LX엠디아이 사장(1.64%) △구본준 LX그룹 회장(1.06%) 등도 의미 있는 수준의 ㈜LG 주식을 보유 중이다. 이밖에 구광모 회장의 고모인 구미정씨(0.69%)를 포함한 18명의 친척 및 방계 구성원들이 ㈜LG 지분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게 '세 모녀의 난'으로 불리는 가족간 상속분쟁이다. 고(故) 구본무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인 구연경 대표, 구연수씨는 지난 2023년 2월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해야 한다'며 소송에 나섰다. 고인이 남긴 재산은 ㈜LG 주식 11.28%를 골자로 한 2조원가량이다. 구광모 회장은 해당 지분 11.28% 중 8.76%를 물려받았다. 구연경 대표는 2.01%, 구연수씨는 0.51%를 각각 상속받았다. 세 모녀는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지 4년이 지나 '가족간 합의가 없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구광모 회장이 주식을 모두 상속받는다는 유언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앞선 합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구광모 회장 손을 들어줬다. 세 모녀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낸 상속회복 청구 소송을 지난달 원고 패소로 판결한 것이다. 법원은 원고 측이 재산분할과 관련해 주장한 핵심 쟁점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할 협의서는 유효하게 작성됐고, 선대 회장이 남긴 유지에 따라 협의서 작성 과정에서 기망 행위는 없었다고 봤다. 앞으로 진행될 항소심 결과보다 소송전 자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이목을 끈다. LG그룹이 50년 넘게 지켜온 '장자 승계' 원칙에 커다란 균열이 생긴 사례라는 이유에서다. 일단 세 모녀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더라도 '구광모 체제'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세 모녀가 승소해 법정 상속비율로 지분을 재분배해도 합산 지분은 15% 안팎일 것으로 예상된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능 회장 힘까지 모아 14%가량 지분 확보가 가능해 보인다. 특수관계인에 그룹 내 공인재단들이 있는데다 다른 가족들도 '원칙을 깬' 세 모녀 쪽보다는 구광모 회장 측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만 5세 경영체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구광모 회장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친척들이 지분을 조금씩 쪼개 '가족경영'을 펼치는 와중에 16.27%는 충분한 지분율이 아니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LG그룹과 비교해 훨씬 복잡하고 불완전한 지배구조를 갖춘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은 특정인에게 경영권과 지분을 모두 몰아주며 '소유와 경영'의 균형점을 찾고 있다. LG그룹의 평화로운 세대 교체를 가능하게 했던 '장자 승계' 원칙이 계속 지켜질지 여부에 재계 시선이 쏠리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LG그룹의 '가족 소유' 전통은 이어져도 '1인 경영' 체제가 지속될지 여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가족경영이 한국적 특수성 안에서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글로벌 스탠다드 관점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환경에서 주주들이 '장남에게만 경영권을 물려주겠다'는 LG가 전통을 계속 받아들일 수 있을 지가 쟁점이다. LG가 '인화(人和)'를 강조하며 가족 간 합의로 일을 처리해온 전통에도 금이 갔다. 가족 사이에서 '유언장이 없었다'는 식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이는 LG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힘을 보태주는 요소다. ESG 경영이 중요해진 시대에 '불투명한 거버넌스(G)'는 기업 가치를 깎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으로 관전 포인트는 구광모 회장이 LG그룹 '퀀텀점프'를 이끌 수 있을지다. 지금까지는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5세 체제를 감안한다면 보다 눈에 띄는 도약이 필요해 보인다. 구광모 회장 입장에서는 자신이 과거와 같은 구본무 회장을 뛰어넘는 LG그룹의 전성기를 열고, 자녀는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받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소유 측면에서는 상속·증여세 재원 마련에 대한 그림을 아직 그리기 힘든 단계다. 구광모 회장은 약 70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5년간 6회에 걸쳐 모두 납부했다. 지금부터는 ㈜LG 등 배당 확대나 보수가 주요 수입원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상반기 ㈜LG에서만 47억14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구광모 회장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탓에 ㈜LG 외 주요 계열사 주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LG CNS는 미래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97만2600주(지분율 1%)를 아직 들고 있다. LG CNS의 시가총액은 3일 종가 기준 약 7조2000억원이다. LX그룹 독립이 LG 승계 역사의 마지막 '전통적 이별'일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경영에 참여 중인 동생들이 없는데다 이제 떼어낼 수 있는 '적당한' 사업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LX그룹 분할 당시에도 판토스 등 알짜자산 배분을 두고 가족간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결론적으로 LG그룹의 승계지도는 앞으로 경영권보다 소유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과거 LG의 계열 분리가 현장에 있던 삼촌들에게 사업체를 떼어주는 방식이었다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4세 이후 친척들간 갈등은 지분 분할 과정에서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LG그룹이 고수해온 '장자 승계' 원칙은 재산권 행사라는 개인의 정당한 권리 주장과 충돌하며 시험대에 올라선 모습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구광모 LG그룹 회장 ‘인본주의 기술’ 설파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4일 LG AI대학원 개원식에 참석해 “기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사람들의 미소'를 설계하는 따뜻한 도구여야 한다. 이는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 AI대학원은 국내 최초의 정부 인가 기업 AI대학원이다. 올해 1기 석·박사 과정에 들어간다. 이날 개원식은 서울 마곡 K스퀘어에서 열렸다. 구 회장은 축사에서 임직원 중 선발된 대학원 신입생들에게 “밤낮으로 흘릴 땀방울 하나하나가 우리가 마주한 난제를 해결하고 훗날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희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어 “실패는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혁신으로 향하는 가장 정직한 과정"이라며 “실패에 굴하지 않고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여기서 만들어질 기술이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겠다"며 그룹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LG AI대학원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코딩 테스트, 인공지능(AI) 모델링 평가, 심층면접 등 선발 전형을 거쳐 석사 과정 11명, 박사 과정 6명의 신입생을 선발했다. LG전자 소속 8명을 비롯해 LG에너지솔루션 3명, LG이노텍 2명, LG디스플레이 2명, LG화학 2명이 1기 과정에 입학했다. LG AI대학원 과정은 석사 1년, 박사 3년 이상으로 정했다. 사측이 학비 전액을 지원한다. 박사 과정은 SCI(E)급 논문 게재를 졸업 필수 요건으로 정한다. 졸업생은 인공지능학 학위를 받게 된다. 교수진은 LG AI연구원의 다양한 분야의 연구실에서 산업특화 연구를 전문으로 수행해 온 겸임교원 24명과 AI 전문지식을 보유한 전임교원 1명으로 구성됐다. 교육과정은 LG AI연구원의 연구 인프라와 산업 현장 데이터를 활용한다. 학문적 성과를 넘어 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불러오고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실전형 코스로 설계됐다. 구 회장은 2020년 그룹의 AI 싱크탱크인 LG AI연구원을 설립하면서 “LG AI연구원이 최고의 인재와 파트너들이 모여 세상의 난제에 마음껏 도전하면서 글로벌 AI 생태계의 중심으로 발전하도록 응원하고 힘을 보태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날 개원식에는 구 회장을 포함해 이홍락 초대 LG AI대학원장(LG AI연구원 공동연구원장), 이해숙 교육부 고등평생정책실장, 박동일 산업통상부 산업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韓 대기업 중동 해외법인 140곳···“사태 장기화 대비해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에서 군사작전을 감행하며 '중동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수출 영향은 제한적이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오일쇼크'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둬야 하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에 자리 잡은 우리 대기업의 해외법인만 140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4일 한국CXO연구소가 발표한 '92개 국내 대기업 집단이 중동 국가에 세운 해외법인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중동 지역 16개국에 해외 계열사를 둔 국내 대기업은 30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중동에 만든 해외법인은 140개(10개국)였다. 작년 기준 그룹 전체 해외법인(6362개)의 2.2% 수준이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아랍에미리트(UAE)에 56개가 몰려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우리 대기업들이 38개의 법인을 세웠다. 오만(12개), 이집트(11개), 이스라엘(8개) 등에서도 주요 기업 해외법인이 운영 중이다. 전쟁 당사국인 이란에는 SK, 현대차, 중흥건설, KT&G 등이 1개씩 법인을 두고 있다. 기업별로 분류하면 삼성이 28개로 가장 많은 법인을 중동 지역에 배치했다. UAE에서만 10개, 사우디아라비아에 6개를 두고 있다. 현대차·LG·GS그룹도 각각 14개의 해외법인을 해당 지역에 만들었다. CJ그룹(8개), 한화그룹(7개), SK·KCC그룹(5개), 중흥건설그룹(4개) 등도 복수의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2023년 해당 지역 해외법인이 8개였지만 최근 들어 6개가 추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업종별로는 건설이 26개로 가장 많았다. 전자·IT(22개), 물류·운송(12개), 자동차(8개), 전기(6개)가 뒤를 이었다. 경제계는 당장 이번 사태가 우리 수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중동사태 발발 직후인 지난달 28일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국제유가가 10% 상승 시 수출액 감소 폭은 0.39%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선제공격과 관련 단기적으로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무협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오를 경우 우리나라 수출단가는 2.09% 상승한다. 대신 수출물량이 2.48% 감소해 전체 수출액은 0.39%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유가 상승이 수출 제품 가격에는 일부 반영되지만 글로벌 수요 둔화로 인한 수출 물량 감소 폭이 더 크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이스라엘(0.3%)과 이란(0.02%)으로 향하는 물량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대신 한국은 원유의 70.7%, 액화천연가스(LNG)의 20.4%를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다. 연구기관들은 우리 기업들이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3일 보고서를 통해 “과거 사례를 보면 중동 지역에 대규모 전쟁이 발생할 경우 글로벌 성장을 둔화시키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여 에너지 공급과 시장수요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흔히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이전과 달리 원유 해상 물동량의 대체 우회 수송 경로가 존재하고, 국내 원유 도입에서 미국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 앞서 오일쇼크와 같은 대규모의 경제적 충격 가능성을 높게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비관적 시나리오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어설 경우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 최소 0.3%포인트(p) 하락, 소비자물가 1.1%p 상승, 경상수지 260억달러 감소 등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오일쇼크 시나리오인 배럴당 150달러를 기록하게 되면 경제성장률 최소 0.8%p 하락, 소비자물가 2.9%p 상승, 경상수지 767억달러 감소의 영향이 예측된다"며 “이는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이 최대치로 잡아도 지난해(1.0%)와 비슷한 수준에 그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우리 기업들이 수익성 악화를 대비한 비상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원자재 가격 변동 리스크 축소를 위한 구매 효율성 확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과도한 원유의존도를 개선하기 위한 경제·산업 구조의 재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중동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원유 수급 차질이 현실화되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과 물류비 부담 확대가 불가피해진다"며 “시장 불확실성 확대에 대비한 선제적 유동성 관리와 상황에 맞는 리스크 대응 체계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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