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지정학] “저유가 시대는 끝”…전쟁 끝나면 에너지 안보 청구서 날아온다

[에너지 지정학] “저유가 시대는 끝”…전쟁 끝나면 에너지 안보 청구서 날아온다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향후 원유 등 에너지 가격에 안보 비용이 더해지며 비용상승 장기 고착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미국은 안보 비용 청구를 공식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변화가 단순한 공급망 재편을 넘어, 에너지와 안보가 결합된 새로운 질서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동안 미국 주도로 유지돼 온 '저유가 기반의 안정적 에너지 공급 구조를 기반으로 한 자유무역 시대'가 끝나고 '안보 거래' 시대가 됐다는 분석이다. 박진표 법무법인 태..

[이슈&인사이트] 나프타(Naphtha, 납사) 수급, 무엇이 문제인가?

온라인에 “기름값이 올라서 비닐봉지도 못 만든다."라는 소문이 돌면서, 평소 10장들이 한 묶음을 사던 시민들이 1년 치 물량을 한꺼번에 사는 투매가 번지고 있다. 중동발 나프타 수급 비상이 촉발한 쓰레기 종량제 봉투 대란이 생필품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나프타는 '산업의 쌀'이라고 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원료다. 원유를 증류하면 비점이 높은 순서로 LPG(액화석유가스), 나프타, 등유, 경유, 중유, 잔사유가 나오는 데, 나프타는 35°C~220°C 사이의 끓는점에서 분리되는 탄소 수 5~9개의 액체 탄화수소 혼합물이다. 개질하면 휘발유가 되기 때문에 조 휘발유라고도 한다. 요소 비료,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밀도에 따라 경질 나프타와 중질 나프타로 나눈다. 경질 나프타는 끓는 점이 100도 이하로, 탄소 수 5 ~ 6의 주로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만드는 데 쓰인다. 중질 나프타는 끓는 점이 100도 이상으로, 탄소 수 7 ~ 9의 주로 방향족 제품(벤젠, 톨루엔, 자일렌) 이나 고옥탄가 휘발유를 만드는 데 쓰인다. 나프타는 NCC(나프타 분해 설비) 에서 분해되어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같은 '기초 유분'이 만들어진다. 이들 기초 유분을 중합, 가공하면 폴리에스터, 나일론 등 합성 섬유의 원료, 페트병, 화장품 용기, 비닐봉지, 배달 용기와 같은 포장 용품, 스마트폰 케이스, 장난감, 가전제품의 플라스틱 외장재와 같은 생활용품, 타이어, 차량용 내외장재, 건축용 단열재 및 파이프 등의 플라스틱 제품을 만든다. 나프타는 석유화학산업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2025년 한국의 나프타 수급을 보면 전체 소비량은 6천만 톤으로 국내에서 3,300만 톤을 생산하고, 나머지 2,700만 톤을 수입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생산량의 약 12%인 390만 톤을 수출한다. 이유는 한국에서 생산하는 나프타는 경질은 부족하고 중질은 남기 때문에 중질 나프타는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남아에 수출한다. 수입 나프타의 54%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국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입된다. 최근 나프타 수입가가 톤당 1000달러를 돌파하여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올랐다. 특히 중소기업 나프타의 중동 의존도는 83%에 달한다. 한국의 민관 합동 나프타 비축량은 30일~45일분에 불과하기에 현 상태가 1개월 이상 진행되면 비상사태가 예견된다. 정부는 급기야 나프타 수출을 금지하고 내수로 전환하는 긴급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산 나프타 2만 7천 톤이 긴급 도입되었다. 나프타 품귀로 여천과 대산의 NCC 가동률이 급감했고, 생활용품의 품귀로 사재기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프타는 단순히 석유 제품 중 하나가 아니라, 거의 모든 생활용품의 시발점이다. 종량제 봉투는 시작에 불과하다. 나프타 가격 상승이 불러올 '도미노 현상'에 유의해야 한다. 수급 불안정이 장기화할 경우, 플라스틱 포장재를 사용하는 식품 및 생필품 가격이 줄줄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 현재 한국의 나프타 비축량은 공장을 비상으로 돌리기에는 부족하지 않으나, 유통망의 심리적 공황이 품절 사태를 만든다. 수출 금지와 비축유 반출 등 정부의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다. 아무리 비축량이 많아도 전국적인 사재기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유통 재고는 없다.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것보다, 정부의 수급 안정화 대책을 믿고 아나바다(아껴 쓰기. 나눠 쓰기, 바꿔 쓰기, 다시 쓰기) 의 지혜가 필요하다. 정부의 장기 과제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나프타 수요를 억제하는 선진국의 순환 경제 고도화 전략이 있다. 한국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25% 미만이다. 이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를 정착시킨 독일의 50%와 큰 격차가 있다. 독일은 페트병의 보증금을 쉽게 반환하는 판트(phand) 시스템을 통해서 재활용률 98%를 달성했다. 나프타 물량 확보 등 단기적인 대안을 넘어서, 대표적인 고탄소 배출 산업인 나프타 중심 플라스틱 산업을 친환경으로 재편해야 한다. 나프타 없이 미생물을 활용해 만드는 '대체 플라스틱'의 대안도 있다. LPG 화학을 포함한 나프타 경제의 국가적 총량 집결이 필요하다. 윤덕균

[EE칼럼] 핵추진잠수함 도입, 신속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

집 지을 때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은 벽돌 크기나 철근 두께가 아니다. 그 집에 몇 명이 살고, 어디에 지을까를 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사항이 정해지지 않으면, 설계사는 도면에 첫 선조차 긋지 못한다. 핵추진잠수함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책적 결단이다.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한 핵연료 공급을 요청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승인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양국이 발표한 공동 설명자료에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핵연료 조달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군의 30년 숙원이 현실의 궤도에 올라선 것이다. 국방부 전력정책국에 핵추진잠수함 획득추진팀이 신설되고, 10개 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협의체가 출범했으며, 외교부에도 핵추진잠수함 협상팀이 설치됐다. 추진 체계가 빠르게 갖춰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엔지니어에게 전달할 '첫 번째 주문'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핵추진잠수함 같은 거대 복합 시스템의 설계는 '최상위 요건'부터 출발한다. 이 잠수함을 어디서, 무엇을 위해 운용할 것인가. 동해와 서해에서의 대북 억제에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에너지 수송로 보호 등 원양 작전까지 염두에 둘 것인가. 작전 해역이 달라지면 수온과 수압 조건이 바뀌고, 잠수함 선체 설계와 원자로 냉각 체계 등이 달라진다. 건조 방식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완제품 직구매, 원자로 패키지 도입 후 국내 건조, 독자 설계 등 여러 옵션이 있다. 전략적 용도와 건조 방식은 국가 최고위 정책결정자가 확정해야 한다. 이는 엔지니어의 영역을 넘어선 결단의 문제다. 이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 기본 설계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다. 도입 규모도 시급히 결정해야 한다. 도입 척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국내 원전 산업과 조선 산업 생태계의 명운을 결정짓는 분수령이다. 3척을 도입하면, 상시 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잠수함은 1척에 불과하다. 1척이 장기 정비에 들어가면 전력 공백이 생긴다. 산업적으로도 연간 0.1척꼴의 건조 물량으로는 전문 인력과 생산라인의 유지가 불가능하다. 사실상 '기술 실증 프로그램'에 머무르는 셈이다. 반면, 6척 이상을 확보하면 상시 2척 작전 체제가 가능해지고, 연간 건조 물량도 늘어 생산라인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궁극적 지향점인 9척 이상 규모에서는 잠수함 원자로 정비 산업, 핵연료 주기 산업, 특수 기자재 산업이라는 거대 밸류체인이 국내에 형성된다. 이러한 역량은 나아가 미국 해군 잠수함의 인도·태평양 정비 허브로 발전할 기반이 될 수 있다. 도입 규모의 조기 확정은 '표준설계 연속 건조'라는 결정적 이점도 가져다준다. 1~2척씩 주문을 쪼개 불연속적으로 발주하면 매번 설계 변경과 부품 공급망 재구축, 숙련도 초기화가 발생해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한다. 반면, 처음부터 표준설계로 확정해 연속 건조 체제로 돌입하면, 학습효과가 작동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5,000톤급 이상 핵추진잠수함 1척 건조에 3조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4~6척이면 건조비만 12~18조 원이다. 개발비를 합하면 20조 원을 상회해, 창군 이래 최대 무기 사업이 될 것이다. 이 천문학적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규모와 설계를 조기에 확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정책결정자들은 다음 세 가지를 신속히 확정해야 한다. 첫째, 전략적 용도와 작전 범위다. 한반도 근해 억제인가, 원양 작전까지 포함하는가. 이것이 선체와 원자로, 무장 설계의 출발점이다. 둘째, 건조 방식과 핵연료 옵션이다. 이는 미국과의 협상 전략 및 국내 산업 육성 경로와 직결된다. 셋째, 6척에서 9척으로 향하는 장기 도입 로드맵과 표준설계 채택 여부다. 산업 생태계 형성과 비용 절감은 규모와 연속성에서 비롯된다. 정치의 시간표가 지연되면, 엔지니어링의 시간표도 멈춘다. 북한은 핵탑재 전략핵잠수함 건조를 가속화하고 있고, 중국은 핵잠수함을 양산하고 있으며, 일본도 해군력 증강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의 건조 승인이라는 전례 없는 기회의 창이 열린 지금,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신속한 정책 결정이 핵추진잠수함 성공의 첫 번째 열쇠다. ekn@ekn.kr

[에너지 절약 이렇게] 차 연료·가정전력 10% 줄이면 CO₂ 연간 1450만톤 감축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이 격화하고,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 유가는 장기적으로도 배럴당 100달러 안팎의 고유가 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직접적인 충격을 받고 있고, 정부는 공공기관과 산업계 등에 에너지 절약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분위기다. 고유가 시대에 에너지 절약은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순기능은 있다. 자동차 연료와 전력 사용을 줄이면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고,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 봉쇄와 이동 제한으로 에너지 소비가 급감하자 대기질은 즉각적으로 개선됐다. 중국에서는 질소산화물(NO₂)이 약 30~50%, 초미세먼지(PM2.5)는 최대 30% 이상 감소했고, 한국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PM2.5 농도가 전년 대비 약 40% 이상 줄어드는 등 뚜렷한 개선이 나타났다. 이는 교통과 산업, 발전 부문의 에너지 사용 감소가 곧바로 대기오염 저감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실증 사례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고유가 시대에 자동차 연료와 가정 전력을 각 10%씩 줄인다면, 1년 동안 거둘 수 있는 환경개선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본지는 국내외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했다. ◇차 연료 10% 줄이면 CO₂ 1000만톤 이상 감축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자동차 누적등록대수가 2651만5000대에 이른다. 이 가운데 휘발유 차량이 1239만7000대, 경유 차량이 860만4000대, LPG 차량이 184만대, 하이브리드 차량 255만 대, 전기차 89만9000대 등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024년 한해 휘발유 소비량은 9504만 배럴, 경유 소비량은 1억5507만 배럴, 차량용 LPG는 2800만 배럴이다. 이를 리터(L)로 환산하면 휘발유는 약 150억 L, 경유 약 250억 L, LPG는 45억 L에 해당한다. 이같은 휘발유와 경유, LPG 소비를 △대중교통 이용 △5부제 참여 △급출발, 급제동 않기 △카풀 활성화 등을 통해 10% 절약한다고 하면, 휘발유는 15억 L, 경유는 25억 L, LPG는 4억5000만 L를 절약하는 셈이다. 연료별로 1L를 줄였을 때 감축할 수 있는 CO₂의 양은 온실가스 배출계수를 적용하면 구할 수 있는데, 휘발유가 2.3kg, 경유가 2.6kg, LPG가 1.6kg이다. 이를 바탕으로, 휘발유 사용을 10% 줄이면 약 350만 톤 CO₂를 감축하는 셈이다. 경유 10% 감축은 약 650만 톤의 CO₂가 줄어든다. LPG 10% 감축도 CO₂ 배출량을 약 75만톤 정도 줄일 수 있다. 결국, 자동차 연료 10%를 줄이면 연간 1075만톤의 CO₂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아울러 대기오염 개선 효과도 크다. 특히, 경유 사용 절감은 개선 효과가 크다.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이나 미세먼지(PM) 배출량 감축 규모는 수백~수천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여름철 오존 오염도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도심 공기질이 직접 개선되고,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조기 사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가정에서 전력 소비를 10% 줄인다면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전력공사가 판매한 전력의 양은 550 TWh(테라와트시, 1TWh=10억 kWh)이고, 이중 가정용은 84 TWh에 해당한다. 가정부문이 전체 전력 소비의 약 15% 정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전력 소비 1kWh를 절약할 때 줄어드는 CO₂는 국내 전력 에너지 믹스와 배출계수 등을 고려하면 0.45 kg정도 된다. 이에 따라 △빈 방 조명 끄기 △대기전력 줄이기 △냉장고 여닫는 횟수 줄이기 △엘리베이트 닫힘 버튼 누르지 않기 △빨래 모아서 세탁하기 등을 통해 가정용 전력의 10%인 8.4 TWh를 절약한다면, 378만톤의 CO₂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평균 배출계수를 적용한 값으로, 석탄 발전이 먼저 줄어들 경우 감축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 다만, 이번 사태는 중동 석유 수급이 원인이어서 석탄 발전을 줄이는 게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수 있다. 다만 LNG 발전량과 석탄 발전량이 줄어들 경우 대기오염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SO₂와 NOx 배출량이 감소하고, 결국 미세먼지 오염과 오존 오염이 줄어들 수 있다. ◇국내 산림 면적의 25%에 해당하는 정화 역할 자동차 연료 사용 10% 절감과 가정용 전력 10% 절전으로 줄일 수 있는 CO₂는 모두 1453만톤 수준이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30년 생 소나무 숲 1㏊가 1년에 흡수할 수 있는 CO₂가 10.77톤이므로, 1453만톤을 줄인다는 얘기는 30년 생 소나무 숲 135만㏊가 하는 일과 맞먹는다. 숲 135만㏊는 1만3500㎢로 서울시 면적(약 605㎢)의 약 22배 규모이고, 전체 국내 산림면적 630만㏊의 21%에 해당한다. 이같은 계산 결과는 고유가 시대의 에너지 절약이 대기오염·건강·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해결하는 정책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동차를 덜 타면 도심의 공기질이 개선되고, 가정 등에서 절전하면 LNG와 석탄 발전 감소로 수입 의존도 완화는 물론 대기오염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시작된 지정학적 위기는 한국 사회에 에너지 절약을 요구하고 있다. 당장 에너지 절약은 불편이 따르지만, 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분명한 효과가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케이엔알시스템즈, 로봇 부품 시험인프라 시장 진출…“신뢰성 검증 수요 대응”

로봇 전문기업 케이엔알시스템즈가 로봇 핵심부품의 성능과 신뢰성을 검증하는 시험인프라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케이엔알시스템즈는 6일 로봇 부품 전용 평가솔루션을 신성장사업으로 선정하고 시험장비 사업 확대에 나선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 로봇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액추에이터, 모터, 감속기 등 핵심 부품의 신뢰성 확보가 산업 전반의 주요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로봇 성능을 뒷받침할 시험·검증 인프라 수요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케이엔알시스템즈는 26년간 축적해온 고난도 시험장비 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로봇 부품 시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회사는 최근 국내 주요 부품 제조사와 '로봇 액추에이터용 모터 성능 평가 시험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장비는 로봇 구동의 핵심인 액추에이터 모터의 토크, 속도, 효율 등을 실제 운용 환경과 동일한 온도 조건에서 정밀 측정하는 고난도 시험설비다. 회사는 2026년 8월 납품 및 시운전 완료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케이엔알시스템즈는 이미 관련 시장에서 초기 경쟁력을 확보해왔다. 2020년 이후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LG전자 등에 로봇 액추에이터 성능 분석기와 협동로봇 모듈 통합검사 장비를 공급하며 시험인프라 분야 경험을 축적했다. 현재 국내 로봇 부품 시험인프라 시장은 민간 전문기업이 부재한 초기 단계로, 일부 부품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시험·검증 기능을 수행하거나 공공 주도의 인프라 구축이 진행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전문 시험장비 기업의 시장 진입 여지가 크다는 평가다. 시장 성장성도 뚜렷하다. 한국의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명당 1012대로 세계 평균(162대)의 6배 이상에 달하며, 연간 신규 설치 대수도 약 3만대로 세계 4위권 수준이다. 로봇 보급 확대는 자연스럽게 부품 신뢰성 검증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케이엔알시스템즈는 향후 국내외 부품 제조사뿐 아니라 국제 표준 기반 인증기관까지 공급처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명한 케이엔알시스템즈 대표는 “로봇 부품 시험인프라는 산업의 질적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 기반"이라며 “시험장비 기술력과 로봇 개발 역량을 결합해 글로벌 수준의 시험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케이엔알시스템즈는 'K-휴머노이드연합' 참여기업이자 AI팩토리 전문기업으로, 심해 작업 로봇과 제철소 용광로 관리 로봇 등 다양한 산업용 로봇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해왔다. 최근에는 기존 대비 성능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린 다목적 유압 로봇팔과 소형 서보밸브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전동모터와 유압 액추에이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액추에이터 라인업도 구축했다. 이와 함께 원전 해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중수로 방사화 구조물 절단 플랫폼 제작 계약을 체결했으며, 최대 가반하중 600kg급 이족보행 로봇 '슈퍼휴머노이드'를 2026년 말 선보일 계획이다. 지난 2월에는 아마존로보틱스와 로봇용 액추에이터 성능 검증 시스템 개발을 위한 기술 협력에도 착수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한화솔루션, 유증 해명에도 개미들 ‘부글부글’…액트 2.7% 결집

한화솔루션의 2조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발표로 주가가 폭락하자 소액 주주들이 들고 일어섰다. 유상증자 발표가 기습적으로 이뤄졌고, 증자로 확보한 자금의 63%가 빚 상환에 쓰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현금 확보를 위해 노력을 했지만 유증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해명하지만, 주주들은 경영진이 책임을 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에서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열고 유상증자 발표로 인한 주가 하락 및 논란에 대해 해명에 나섰다. 앞서 회사는 지난 3월 26일 2조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1조5000억원은 채무상환에 사용하고, 9000억원은 차기 태양전지 기술인 텐덤셀 생산라인 구축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틀 전 열린 24일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유상증자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다. 다만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을 통해 '발행예정주식 총수 변경의 건' 안건이 상정돼 의결됐다. 이것이 유상증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한화솔루션 측은 “3월 26일 이사회 의결 전 유상증자 관련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기 어려웠던 것은 공정공시 의무와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우려 등 관련 제도상 제약에 따른 것"이라며 “유상증자를 비롯한 주요 정보는 증권신고서 공시를 통해 모든 투자자에게 동일하게 제공돼야 하는 만큼, 사전 제공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또한 주총에서 신규로 선임된 이사에게 사전에 유상증자에 대한 충분히 설명이 부족한거 아닌가라는 논란에 대해서는 “3월 10일 이사회 구성원과 신임 사외이사 후보자에게 유상증자 관련 설명회(3월 20일)와 임시 이사회(3월 26일) 개최 계획을 안내했다"며 “모든 이사가 사전설명회를 포함해 이사회 승인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해 충분한 검토와 토론을 거쳤고, 유상증자의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답했다. 주주들은 차기 태양전지인 텐덤셀 생산라인 구축을 위한 유상증자에는 동의하지만, 빚 상환을 위한 증자에는 동의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경영진이 빚 감축을 위해 노력을 했는가라고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지난 2년간 자산 매각과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 실행 가능한 모든 자구책을 추진해 왔으며, 이에 따라 추가적인 자구 여력은 제한적"이라며 “1조570억원 규모의 계열회사 지분과 한화저축은행 지분(1785억원), 울산 사택부지(1602억원), 신재생에너지 개발자산(1600억원), 여수산단 내 유휴부지(360억원), 전기차 충전사업(250억원) 등을 매각해 약 1조6000억원을 마련했다. 또한 자본시장에서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발행해 7000억원을 조달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주들은 여전히 한화솔루션의 기습 유상증자에 분노를 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미-이란 전쟁 장기화로 증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유상증자 발표로 이틀간 23%나 추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발표 전 주당 4만5000원이던 주가는 발푯날 3만6800원, 이튿날 3만5650원까지 떨어졌다가 4월 3일 현재에는 3만9050원으로 회복했다. 주주행동 플랫폼인 액트에는 소액주주 2.7%가 결집한 상태다. 3% 넘으면 임시주총 소집청구, 주주제안, 이사해임, 감사해임, 회계장부열람권, 집중투표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한화솔루션은 잇따라 기업설명회 및 자료 등을 통해 주주 분노 식히기에 노력하고 있다. 회사 측은 △2030년까지 추가 유상증자 없음 △영업활동으로 창출한 현금으로 재무구조 개선 및 주주환원 정책 확대 중장기 로드맵 발표 △올해 1분기 태양광 모듈 판매 사업 중심으로 흑자 전환 기대 △3분기 카터스빌 셀 공장 양산에 돌입하면 하반기부터 실적 턴어라운드 및 기업가치 제고 기대 등을 발표했다. 한편 한화솔루션은 3일 기업설명회 과정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유상증자 발표 전에 금융감독원하고 사전에 교감을 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와 관련해 사전 협의나 승인이 없었음을 알려드린다"며 “증권신고서 심사는 엄격한 법적 절차에 따라 증권신고서 제출 후에 이뤄지는 것으로 사전에 내용을 조율하거나 승인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금감원은 한화솔루션의 대규모 유상증자와 관련한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한화솔루션의 증권신고서를 면밀히 심사하고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화솔루션은 “간담회에서 회사 관계자가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사전에 구두로 알린 사실을 설명하면서 표현을 잘못해, 마치 유상증자 계획을 금융감독원과 사전에 상의하고 양해를 구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이는 개인의 실수이지 회사의 입장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에너지 절약 이렇게] 에너지도 아끼고 아파트 관리비 줄이는 법

“관리비가 올라서 내 집인데 월세 사는 기분이에요." 지난 2월말, 인천 송도에 사는 A씨는 난방비 25만원에 전기세 26만원이 청구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파트 전용면적 84㎡에 거실은 난방도 안틀고 안방ㆍ아이방 모두 21도로 설정했음에도 관리비가 61만원이 나오니 당분간 외식과 문화생활은 포기하겠다고도 했다. 세대별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과 아파트 공용전기료를 절감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세대별로 에너지를 절약하면 전기료, 수도료, 가스비 절감으로 관리비 절감이 가능하다. 이는 대기전력 절감, 냉난방비 절약, 가스비 절약을 통해 가능하다. 계속 켜 놓을 필요가 없는 가전제품의 대기전력을 줄이는 것이 가장 쉽고 효과적이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모두 일정량의 전력이 항상 소비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경우 플러그를 뽑아두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서 대기전력 차단 콘센트를 사용해 모든 기기의 전력을 한번에 차단하거나 절전형 멀티탭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냉난방에 쓰이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도 많다. 여름철 에어컨을 사용할 때 실내온도를 1도만 높이더라도 약 7% 정도 전기료를 아낄 수 있다. 정부가 권장하는 여름철 적정 실내 온도는 26~28도다. 냉방으로 차가워진 냉기는 약 1시간 정도 유지된다. 외출 전에 미리 에어컨을 꺼두는 습관이 에너지 절약에 도움이 된다. 선풍기는 미풍으로만 트는 것이 강풍으로 트는 것보다 전기료를 30% 줄일 수 있다. 겨울철 외출시에 보일러를 완전히 끄지 않고 실내온도를 2~3도 낮게 해 놓는 것이 오히려 에너지를 아끼는 길이다. 전기히터 같은 보조난방기를 사용할 때에는 냉기가 들어오는 곳을 등지고 난방기를 설치해야한다. 실내에서 수면양말을 신는 사소한 습관도 에너지 절약 방법이다. 도시가스나 급탕비를 아끼기 위해서는 샤워는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 급탕비는 온수 사용량에 대한 비용이다. 온수ㆍ냉수가 함께 나오는 수도꼭지는 온도 조절 버튼을 냉수 위치에 두면 보일러 가동 횟수를 줄일 수 있다. 온수 흐름을 조절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주방용 가스를 절약하는 방법도 있다. 요리를 할 때 밑바닥이 넓은 조리 기구를 사용하여 기구의 열 흡수율을 높이는 것도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이 된다. 식사를 할 때 따로따로 먹지 않고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하는 것도 의외의 에너지 절약 방법이다. 서울시에 거주한다면 '에코 마일리지'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에코 마일리지는 아파트 주민이 각 세대의 전기나 수도, 도시가스, 지역난방 같은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면 친환경 제품 증정 같은 혜택을 주는 제도다. 시는 2009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해왔다. 카드사와 제휴해 회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친환경 제품을 구입할 때 추가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는 에코 마일리지 카드를 2011년에 도입하기도 했다. 마일리지 사용처 중 원하는 상품을 신청할 수 있고 마일리지의 유효기간은 지급일로부터 5년이다. 마일리지 사용처는 △서울시ETAX △온누리상품권 △아파트관리비납부 △가스앱캐시전환 △코원에너지서비스 △서울사랑상품권 △기부다. 공용 전기료 절감을 위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저층은 가급적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파트 외관 조명도 공동전기료로 나간다. 오래 사용할수록 조명의 전기사용량도 늘어나기 때문에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점등과 소등시간을 조정하는 것도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이 된다. 매 시간 켜져있는 지하주차장 조명을 LED로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LED조명의 경제성은 계속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18W LED조명은 개당 57000원이었으나 요즘 판매가는 20000원 정도다.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300개의 32W 형광등을 18W LED 조명으로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은 600만원.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300개의 형광등을 켜면 월 전기요금이 약 144만이다. 18W LED 조명으로 교체 후 월 전기요금은 약 86만원으로 떨어진다. LED 조명 교체에 드는 비용은 약 10개월이면 회수할 수 있게 됐다. 자동으로 조도 낮추는 '지능형 디밍 시스템'을 주차장에 도입하는 것도 효과적인 에너지 절감 방법이다. 조명에 내장된 동작감지센서가 사람이나 자동차의 이동을 실시간 감지해 대기조도와 최고조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주차시 절전을 위해서 대기조도를 유지하다가, 운전자의 이동 동선을 파악하여 필요한 구간에서만 조명을 점등하는 방식이다. 아파트 옥상에 공용 태양광 발전기 설치하는 것도 에너지 절약의 한 방법이다. 국토교통부는 작년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공동주택 내 태양광 설비의 설치·철거 등과 관련한 입주자 동의 요건을 기존 '3분의 2 이상'에서 '과반'으로 완화했다. 공용부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공용 전기요금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시 관악구·동대문구 등 다수 기초지자체에서는 태양광 설치비 일부를 무상 지원하기도 한다. 녹색건축물 인증 시 취득세 감면이나 환경개선부담금 경감 등 인센티브도 있다. 단지 상황에 맞게 전기 계약 방식을 변경하는 것도 공용 전기료를 절감하는 방법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전기사용 계약방식은 저압수전과 고압수전으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고압전기를 공급받는데, 고압전기를 공급받는 것이 전기료를 절감하는 첫째 요소다. 고압일수록 송전시 전력손실이 적고 주택용 저압전기보다 낮은 요금으로 계약이 가능하다. 전기요금 단가는 계절별로 차이가 있지만 고압이 저압보다 10% 정도 저렴하다. 고압수전은 단일계약방식과 종합계약방식으로 구분된다. 어떤 방식을 따르는지에 따라 KW당 전기요금 단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별로 유리하게 계약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 공용시설이 많은 아파트는 종합계약이 유리하다. 종합계약은 주택용 전기 단가는 높고 공용부에 적용하는 전기 단가는 낮기 때문이다. 공용시설이 적은 경우 단일계약이 낫다. 단일계약은 공용부와 주택용 단가가 똑같은데, 단가가 종합계약의 주택용 단가보다 낮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발간한 '아파트 관리비 내리기 길라잡이'에 따르면 고용시설 비율이 30% 미만일 경우 단일 계약이 유리하며 30% 이상일 경우 종합계약이 유리했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기후 신호등] 호르무즈 해협 만들고 엄청난 석유 저장한 5억년 역사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한 달을 넘기고도 끝날 줄을 모른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군쇄적으로 봉쇄하고, 선박을 선별적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통행료를 걷겠다고도 한다. 여기에 예맨의 후티 반군까지 이란 편에서 서서 참전하겠다고 나서면서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잇는 항로마저 위협받고 있다. 치솟는 석유 가격에 전 세계는 조바심을 내며 중동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아라비아 반도를 둘러싼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는 단순한 해상 통로를 넘어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목줄'을 쥔 공간이 됐다. 그렇다면 좁은 항로를 가진 아라비아반도 주변에 유독 원유가 집중적으로 매장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곳은 지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지질학적 사건들이 중첩된 공간이고, 그 사건들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집중적으로 매장됐다. 그런 지질학적 '특이점'이 지금과 같은 지형을 형성하게 한 원인이다. 국내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아라비아 반도 주변 지역에 지질학적 역사를 살펴본다. ◇테티스해(海): 모든 것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중동 지역의 석유 이야기는 고대 해양 '테티스해(Tethys Sea)'에서 시작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크리스토퍼 G. 켄달 교수 등이 2014년 편집한 '미국석유지질학회 연구총서(AAPG Memoir)' 106호 내용에 따르면, 아라비아 판(板, plate)과 북아프리카는 고생대부터 중생대까지(약 5억 4100만년 전부터 6500만년 전 사이) 테티스 해의 연안 환경을 공유하면서 유사한 퇴적과 석유 시스템을 형성했다. 이 바다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 따뜻하고 얕으며, 생물이 폭발적으로 번성하는 생산성이 매우 높은 해양 생태계였다. 온도가 높고 햇빛이 풍부한 이 환경에서 식물플랑크톤인 조류(algae)와 남세균(cyanobacteria)은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면서 대량으로 성장했고, 죽은 뒤에는 해저에 쌓였다. 중요한 점은 당시 해저가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플랑크톤 유기물이 완전히 분해되지 않고 보존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탄화수소의 원천이 되는 근원암(source rock)으로 변화했다. 근원암은 석유가 생성될 수 있는 모암으로, 주로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을 말한다. 이렇게 해서 석유 시스템의 첫 단계, 즉 '석유를 만드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과정이 일어났다. ◇실루리아기 '핫 셰일': 에너지의 원천이 된 지층 이 지역 석유 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실루리아기(4억 4380만 년 전~ 4억 1600만 년 전)의 '핫 셰일(hot shale)'이다. 혈암(頁岩)이라고도 불리는 셰일은 주로 작은 자갈이 퇴적돼 오랜 세월 동안 쌓이면서 단단하게 굳어져 형성된 퇴적암이다. 아랍에미리트 대학의 압둘라만 S. 알샤르한 교수와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켄달 교수는 2021년 '미국석유지질학회 회보(AAPG Bulletin)'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핫 셰일'이 아라비아 판 전역의 주요 탄화수소 공급원임을 강조한다. 이 셰일층은 유기물이 매우 풍부하고 높은 방사선(감마선) 수치를 보이기 때문에 '핫 셰일'이라 불린다. 핫 셰일은 유기물 함량이 매우 높고,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에 침수되는 시기에 형성되는데, 넓은 지역에 걸쳐 균일하게 분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실루리아기를 포함한 고생대(5억4100만년 전부터 2억5190만년 전 사이)퇴적층이 해수면 변동(eustatic sea-level change)과 빙하기, 그리고 조산운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조산 운동(造山運動)은 지구 표면을 덮은 약 10장의 강한 판이 서로 부딪치거나 다른 판 밑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을 말한다. 조산 운동을 통해 알프스나 히말라야 같은 대산맥이 생겨나기도 한다. 아라비아판은 단순히 유기물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 해수면 상승으로 유기물이 축적되고, 해수면이 하강하면서 침식과 구조가 형성되는 단계가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석유 생성과 저장에 최적화된 지층 구조가 만들어졌다. 핫 셰일은 바로 이 복합적인 환경에서 형성된 '지질학적 엔진'인 셈이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이 동력의 근원이듯 유기물이 고온·고압을 받아 중동 고생대 석유 시스템 전체에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를 밀어 넣어주는 에너지 생산의 본체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아라비아 판: 이동하는 대륙이 만든 구조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땅속 석유는 어떻게 모였을까. 그 답은 판 구조론(plate tectonics)에 있다. 아라비아 판은 원래 남반구의 곤드와나(Gondwana)대륙에 속해 있었으나, 수억 년에 걸쳐 북쪽으로 이동했다. 곤드와나 대륙은 고생대 후기부터 중생대에 걸쳐 남반구에 분포했다고 생각되는 거대한 대륙의 이름이다. 현재의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극대륙 이외에 마다가스카르, 인도대륙까지 하나의 대륙, 즉 곤드와나 대륙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라비아 판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핵심 사건이 발생한다. 첫째는 판의 분리와 홍해의 탄생이다. 아라비아 판이 아프리카 판과 갈라지면서 형성된 것이 바로 홍해다. 홍해는 지금도 진행 중인 리프트(rift) 구조다. 거대한 지각판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겨지면서 지각이 찢어지고 벌어지는 지질학적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란 의미다. 두번째는 판이 충돌하면서 자그로스 산맥과 페르시아만이 형성됐다. 아프리카 판과 갈라진 아라비아 판은 이제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유라시아 판과 충돌하게 된다. 충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우주환 연구원과 이철우 교수가 2021년 한국지구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충돌은 튀르키예에서 호르무즈까지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이 약 2000㎞에 이르는 자그로스 습곡대를 형성했다. 습곡대는 지각 변동으로 지층이 주름이 진 형태가 된 곳을 말한다. 이 충돌은 단순한 산맥 형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층이 휘어짐(습곡 형성)과 단층 형성, 복잡한 지하 구조 형성 등을 통해 석유를 땅속에 가두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세번째 사건은 아라비아 판의 시계 반대 방향 회전이다. 알샤르한 교수와 켄달 교수의 2021년 논문은 아라비아 판이 아프리카 판에 대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약 6~7도 회전하며 이동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회전 운동은 아라비아 반도 주변의 지각 경계선을 재설정하고, 서쪽의 사해(Dead Sea) 변환 단층과 같은 복잡한 단층 체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세 가지 역동적인 사건이 결합해 현재 아라비아 반도의 지형과 세계 최대의 에너지 매장지를 동시에 탄생시켰다. ◇배사구조: 석유를 모으는 자연의 저장고 석유는 가벼운 물질이기 때문에 생성되면 위로 이동한다. 문제는 이를 '잡아둘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배사구조(背斜構造, anticline)다. 옆으로부터의 압력으로 인해 지층이 산봉우리처럼 볼록하게 올라간 습곡 구조를 말한다. 최근에 쌓인 지층은 위로 휘어져 올라가고, 중심부에는 오래된 지층이 위치하게 된다. 배사구조는 지층이 위로 휘어지면서 가장 아래쪽에 있던 오래된 지층이 습곡의 중심부(핵)에 위치하게 된다. 즉, 지표면에서 중심부로 갈수록 더 오래된 암석이 나타나는 구조다. 배사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가두는 '트랩(trap)'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보다 가벼운 원유와 가스는 지층 사이를 따라 위로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배사구조의 볼록한 꼭대기 부분에 도달하면 더 이상 위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형 유전이 형성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철우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란의 자그로스 습곡대 전면부에는 이러한 배사구조가 대규모로 발달해 있어 이곳에만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8%가 집중돼 있다. 여기에 저류암(reservoir rock)의 역할도 중요하다. 저류암은 근원암에서 생성된 석유와 가스가 이동해와 실제로 저장되는 암석층이다. 탄산염암처럼 암석 내부에 미세한 구멍(공극)이 많아 석유를 품을 수 있는 '스펀지' 같은 역할을 한다. 중동 지역의 석유 시스템에서 배사구조와 저류암의 관계는 '그릇'와 '그릇에 담긴 내용물'의 관계와 같다. 저류암이라는 우수한 저장 물질이 배사구조라는 효율적인 저장 구조를 만났기 때문에 중동 지역에 세계적인 규모의 유전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 두 요소가 결합해 거대한 천연 석유 저장고인 트랩(trap)을 형성하게 된다. ◇소금 돔: 석유를 지켜주는 '완벽한 밀봉' 그러나 배사구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석유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밀봉층(sealing layer), 또는 덮개암(cap rock)이다. 밀봉층은 지층 속에서 생성된 석유나 천연가스가 지표면으로 새 나가지 못하도록 그 위를 단단히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치밀한 암석층을 말한다. 중동 지역에서는 과거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형성된 증발암(Evaporite)이 이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증발암의 주성분인 소금(암염)이나 무수석고(Anhydrite)는 입자가 매우 치밀해 액체나 기체를 거의 통과시키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하부 저류층에 모인 석유와 가스는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수백만 년 동안 지층 속에 고여 있을 수 있다. 페름기 후기(약 2억 5000만 년 전)에는 광범위한 해수면 상승 이후 대규모의 탄산염-증발암 퇴적 현상이 나타났고, 이것이 현재의 주요 밀봉층이 됐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는 이러한 두꺼운 소금층이 지각 운동의 압력을 받아 위로 솟구치며 소금 돔(salt dome) 구조를 형성했다. 소금 돔은 지하에 층상으로 넓게 깔려 있던 증발암(특히 소금층)이 지각 운동이나 밀도 차이에 의한 압력을 받아 위로 볼록하게 밀려 올라오며 형성된 기둥이나 돔 모양의 구조를 말한다. 이 구조는 석유를 특정 구역에 더욱 효과적으로 모아두는 일종의 '거대한 천연 저장 탱크' 역할을 한다. 덕분에 석유는 수백만 년 동안 그 안에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고, 이 지역이 세계 최고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결과적으로, 소금 돔은 석유 시스템에서 '보존'과 '집적'을 동시에 담당하는 핵심 요소인 셈이다. ◇'완전한 석유 시스템'이 에너지 저장소로 만들어 이런 과정을 거쳐서 중동 지역은 △근원암 (핫 셰일) △저류암 (탄산염암, 사암) △트랩 (배사구조) △밀봉층 (증발암, 소금 돔) 등 네 요소가 완벽하게 결합된 '완전한 석유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이 네 요소는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판의 이동과 해수면 변화라는 하나의 지질학적 흐름 속에서 동시에 형성됐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다. 그 본질은 수억 년에 걸쳐 형성된 지질학적 자산, 즉 에너지를 둘러싼 경쟁이다. 아라비아 판의 이동, 테티스해의 퇴적, 빙하기와 해수면 변화, 판의 분리와 충돌. 이 모든 과정이 겹겹이 쌓여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에너지 저장소를 만들어냈다. 이같은 지질학의 역사는 중동 일부 국가와 세력이 병목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형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 지형은 오늘날 세계 정치와 경제를 좌우하는 '중동'이라는 지정학을 낳은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에너지 지정학] “저유가 시대는 끝”…전쟁 끝나면 에너지 안보 청구서 날아온다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향후 원유 등 에너지 가격에 안보 비용이 더해지며 비용상승 장기 고착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미국은 안보 비용 청구를 공식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변화가 단순한 공급망 재편을 넘어, 에너지와 안보가 결합된 새로운 질서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동안 미국 주도로 유지돼 온 '저유가 기반의 안정적 에너지 공급 구조를 기반으로 한 자유무역 시대'가 끝나고 '안보 거래' 시대가 됐다는 분석이다.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2일 본지와 통화에서 “미국과 이란은 에너지를 얻으려면 대놓고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더 이상 전 세계에 균등하게 안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에너지 확보 각자도생의 시대가 불가피하다"며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 공급망 밖에서 갈등이 심화될수록 에너지 지배력이 강화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미국은 자국 중심 공급망 내 에너지 거래를 유도하면서, 안보 비용을 가격이나 정책 조건으로 반영하는 방식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란 사태 이전까지 국제유가는 1년 이상 배럴당 60달러 안팎의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해왔다. 이를 토대로 한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들은 정부 주도 지원금, 증시부양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하지만 이번 중동 충돌 이후 유가는 한 달 사이 두 배 가까이 상승하며 급격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단순한 일시적 급등이 아니라, 향후 유가 구조 자체가 '고유가·고비용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에는 직격탄이다. 특히 미국의 해군력 철수와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에 따른 보험료 상승, 운송 리스크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이전과 같은 저유가 환경으로 복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비용 증가를 넘어 전기요금, 물가, 산업 경쟁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원유 수입량(연간 약 9억 배럴)을 기준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상승할 경우 약 9조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하며, LNG 가격 상승까지 반영하면 총 부담은 10조원 중반대로 확대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만약 유가가 20~30달러 상승하거나 이란이 요구할 호르무즈 해협 통행 비용이 반영될 경우 연간 부담은 3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번 사태의 영향으로 하반기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179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전쟁 전 평균 6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던 것과 비교하면 최대 3배 가까운 폭등이다. 100조에 가까운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한 에너지 비용 증가분을 가구 단위로 환산할 경우 부담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국내 가구 수(약 2200만 가구)를 기준으로 보면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연간 12~15조원 수준일 경우 가구당 약 50만~70만원의 부담이 발생한다. 유가 상승폭이 확대돼 총 부담이 30조원을 넘어설 경우에는 가구당 연간 130만원 이상, 최대 180만원에 가까운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전기요금뿐 아니라 교통비, 물가 전반에 반영되는 간접 부담까지 포함된 수치로, 에너지 가격 변동이 가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미국의 태도 변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때문에 항공유를 확보하지 못하는 국가들은 미국에서 구매하거나 직접 확보하라"며 “미국은 더 이상 당신들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발언을 넘어, 미국이 더 이상 글로벌 에너지 수송의 '안보 제공자' 역할을 전면적으로 수행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유지돼 온 '미국 주도의 해양 에너지 안보 체제'가 사실상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같은 변화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기존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에너지를 확보하는 구조가 흔들릴 경우, 에너지 비용 상승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동 의존도가 높은 수입 구조를 유지한 채 글로벌 에너지 질서가 '블록화'될 경우, 공급망 리스크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 역시 그동안 저유가 환경을 전제로 제조업은 물론 에너지 정책이 설계돼 왔다는 점에서 이번 변화의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탄소중립 기조 아래 석탄발전 퇴출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LNG 발전 비중 확대가 사실상 기본 전제로 작동해왔다. 저유가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스 가격 환경이 이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구조적으로 확대될 경우, 한국의 에너지전환 전략 역시 근본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저유가 환경을 전제로 설계된 에너지 전환 정책이 흔들릴 경우, 전력 믹스와 수급 전략 전반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에너지 전환서 찬밥 신세된 ‘수소’…일반수소발전 입찰 사라질듯

수소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찬밥 신세를 받고 있다. 수소를 판매하는 전력시장이 대폭 축소되거나 사라질 수 있어서다. 정부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수소는 인정하지 않고 오직 청정수소를 이용한 설비만 인정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 4일 수소업계에 따르면 올해부터 수소발전 시장 중 일반수소 입찰시장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수소발전 시장은 일반수소는 지난 2023년 6월, 청정수소는 2024년 5월 각각 개설됐다. 일반수소 시장은 개설 3년 만에 폐지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수소발전 시장은 사용 연료에 따라 청정수소 발전과 일반수소 발전으로 구분된다. 청정수소 시장에는 국내 청정수소 인증기준인 수소 1㎏당 온실가스 배출량 4㎏ 이하를 충족한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경우에만 참여할 수 있다. 지난해 청정수소 시장은 연간 3000기가와트시(GWh), 일반수소 시장은 1300GWh 규모로 열렸다. 이는 설비용량 1GW 원자력발전소를 각각 3000시간, 1300시간 가동했을 때 생산되는 전력량이다.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 출범과 같은 해 10월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 이후 수소 시장 크게 바뀔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져 왔다. 특히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의원 시절부터 액화천연가스(LNG) 기반 '그레이 수소'로 발전하는 수소연료전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김 장관이 의원 당시 대표 발의한 신재생에너지법 개편안도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연료전지를 신재생에너지에서 제외하기 위해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분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기후부 출범 직후 수소시장에 제동이 걸렸다. 청정수소 시장은 지난해 10월까지 입찰자 선정 과정에 있었으나, 기후부 출범 직후인 같은 해 10월17일 전격 취소됐다. 석탄발전소에서 수소를 변환한 에너지인 암모니아를 15년간 혼소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점이 문제가 됐다. 기후부는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폐쇄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해당 입찰이 석탄발전 폐쇄 목표 시점을 넘어선다는 이유를 들었다. 반면 일반수소 시장은 기후부 신설 이전인 지난해 8월, 에너지 정책이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던 시기에 입찰자가 선정돼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일반수소 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일반수소에서 청정수소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입장이다. 아직 연료전지 산업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만큼 일반수소 시장을 아직 더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국내 연료전지 누적 보급량은 약 1.3GW 수준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이를 2038년까지 3.6GW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일반수소 시장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업계에 팽배하다"며 “일반수소 시장을 주로 활용해온 수소연료전지 사업자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후부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며 “늦어도 다음 달 안에는 고시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초 일반수소 시장은 청정수소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 마련된 것"이라며 “다만 허용 기간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정부는 축소 방향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에너지 절약 이렇게] 차량운행 줄이고 점심시간 사무실 불끄고…대기업·경제단체 ‘고유가 비용절감’ 앞장

미국과 이란 간 전쟁에 따른 에너지 공급망 차단으로 전세계 경제에 '고유가 쇼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주요 제조기업도 에너지 절감을 통한 비용 감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울러 정부 차원의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도 동참해 산업계의 에너지 위기 돌파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국내 산업계의 에너지 절약 실천은 대부분 임직원 개인차량 및 영업용 차량의 운행 제한을 비롯해 사무실 및 공장 내 불필요한 전력 사용 축소, 전력 소모를 필요로 하는 기업 네트워크의 운용 효율화를 통한 사용량 절감 등 형태로 전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차량 5·10부제 도입은 기본…카풀 권고, 저층부 엘리베티어 사용 제한도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LG·한화·GS·HD현대 등 주요 그룹과 경제단체들이 차량 5·10부제를 도입하는 등 정부의 에너지 절약 대책에 동참하고 있다. 차량 10부제는 자동차 번호 끝자리와 날짜 끝자리가 같은 날에 차량 운행을 제한하는 방식이며, 차량 5부제는 요일별로 운행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재계에서는 HD현대가 지난달 23일 가장 선제적으로 차량 10부제를 도입했다. 사업장 내 에너지 사용량 감축을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복도나 주차장 등 비업무 공간 조명의 조도를 낮추거나 소등하는가 하면, SK그룹은 아예 점심시간에 사무실 전등을 끄는 것을 의무화했다. 저층부의 엘리베이터 사용 제한도 일반적인 방식으로, HD현대의 경우 임직원들에게 사무용품·비닐·플라스틱 등 석유화학 파생상품의 절약도 요청했다. 포스코그룹은 오는 6일부터 에너지 절약을 조직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사내 캠페인 '세이브(S.A.V.E.) 챌린지'를 진행한다. 세이브 챌린지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Step Up) △출퇴근 시 대중교통·도보 이용(Active Transit) △출퇴근 시 카풀 활용(Vehicle Share) △전원 차단 등 에너지 절감(Energy Off) 등으로 구성된다. 임직원 전용 모바일 플랫폼 '챌린지(CHAlleNGE) 앱'으로 참여해 인증 실적에 따라 기프티콘으로 교환 가능한 포인트를 한명 당 최대 5만원 상당 지급한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 74개 지역 상공회의소는 차량 5부제 시행과 함께 소등, 대기전력 차단 등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추진하고 회원사의 자율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도 '에너지 절감 캠페인'을 시행하고 회원사에 참여를 요청했다. 한국무역협회 본부와 13개 국내지역본부는 차량 5부제를 의무 시행하고 업무용 차량 운행을 제한한다. 또 점심시간에 전 층을 소등하는 한편 층간 이동 시 계단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과 도심공항터미널 등 무역센터 권역의 전력 관리도 강화했다. ◇ '전기 먹는 하마' 통신 인프라 전력 소모량 최소화…재생에너지 비중도 늘려 통신업계도 이런 흐름에 맞춰 에너지 저감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은 전력 소모량이 많은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 영역 안에서 전력 소모량을 줄이는 데 신경 쓰는 모습이다. SK텔레콤의 '페타서스 AI 클라우드'는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운영을 위한 고성능·고효율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전력 소모를 절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AI 데이터센터 발열과 전력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액체 냉각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시범 적용하고 있다. KT는 통합관제센터를 통해 전국 사옥과 통신 설비의 에너지 사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공조·조명 설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적정 온도와 기지국 전파 출력, 전력 소모량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방식이다. LG유플러스는 에너지 절감을 위해 네트워크 영역 내 저전력 고효율 장비 사용 확대, 현장 점검 차량 이동 시 정속 주행, 퇴근 시 자동 소등 및 PC 끄기 등 에너지 절감을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또 LG유플러스는 대전 R&D센터 내에 1000㎾급 자가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가동하는 등 통신 인프라 구축 및 데이터센터 운영에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늘리고 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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