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국민의힘, 계엄 결별·정책 정당 거듭나야…與野 협치 복원하자”

김용태 “국민의힘, 계엄 결별·정책 정당 거듭나야…與野 협치 복원하자”

“12·3 비상계엄과 분명히 선을 긋고 정책정당으로 재탄생해야 내년 지방선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김용태(35·사진) 국민의힘 의원의 냉철한 진단이다. 초선이지만 지난 5~6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차세대 정치 지도자 반열에 오른 김 의원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만나 강조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단순히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에만 의지하지 말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명확한 정책 비전을 제시해야 보수 정당으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

[기자의 눈] 산업부가 자초한 ‘톡신 카르텔’ 논란, 깜깜이 행정 불신만 키워

보툴리눔톡신(톡신) 국가핵심기술 논란에 '행정카르텔 의혹'이 공식 추가됐다. 올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를 통해서다. 주로 산업계 일각에서 주장했던 논란이 이번 국감을 계기로 정치권까지 확산한 것이다.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이 산자위 국감에서 제기한 행정카르텔 의혹은 산업통상부 산하 '전문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이 특정 이해관계와 결탁해 톡신 균주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한데 이어, 업계의 지정 해제 요구를 반복 무산시키고 있다는 의심이다. 톡신, 특히 미생물인 균주를 국가핵심기술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은 지정년도인 2016년 이후 약 10년간 꾸준히 지속됐다. “균주 상용화는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국가핵심기술이므로 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우리 업계의 글로벌 진출을 가로막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작용하기에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 모두 타당성이 있다. 공개 연구와 공청회, 토론회를 거쳐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점을 도출하면 된다. 정책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문제는 규제기관 역할을 맡은 산업부와 전문위원회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가핵심기술 지정 유지 일변도인 전문위원회의 공정성과 결정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국회측이 제기한 질의에 산업부는 '비밀유지'를 근거로 사실상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나 올해 국감에선 일부 내용이 공개됐는데, 지정 해제·유지 결정의 키를 쥔 전문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등 2인이 균주 국가핵심기술 지정 당시인 2016년부터 올해까지 5회(회당 2년)에 걸쳐 유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임한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문위원회에서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를 지속적으로 강하게 반대해온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귀띔했다. 일방적 주장인데다 산업부가 관련 내용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구체적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산업부의 깜깜이 행정으로 업계 내 행정 불신이 깊어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난 9월 국회에서 열린 톡신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 관련 토론회에선 산업부의 장관 축사 철회 요청 논란도 있었다. 업계 내 의견 대립이 첨예한 사안으로 공정성과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장관 축사 철회를 요청했다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 공개된 김정관 산업부장관의 축사는 “균형있는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골자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확언한 김정관 장관과 산업부는 빠른 시일 내에 사안을 살피고 경과를 공개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전문위원회 임기가 이달 만료되는 탓이다. 깜깜이 행정은 불신만 키울 뿐이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이슈&인사이트] 최민희와 캄보디아

국정감사 기간에 딸 결혼식을 열어 피감기관으로부터 축의금을 받아 논란을 일으킨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여론은 APEC 정상회담이후에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조용히 버티다 보면 여론이 바뀌고 사건 사고가 많은 나라이니 이 사건 또한 잊히기를 최 의원이나 더불어민주당이 기대하고 있다면 “1년 지나면 또 찍어주더라"라는 윤상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생각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큰 뉴스가 많았던 APEC 정상회담 기간에도 정부의 캄보디아 국제 범죄 대응 노력이 계속 이어졌다. 강원경찰청은 3일 전국 총 560건의 사기 사건을 수사해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형법상 사기, 범죄단체 가입과 활동 등 혐의로 캄보디아를 비롯한 국내외 조직원 114명을 붙잡아 구속했다. 이들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콜센터를 운영하며 대통령 경호처 등으로 신분을 사칭하여 노쇼 사기 등으로 소상공인을 울렸다. 같은 날 국세청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 브리핑에서 “최근 캄보디아 스캠(사기) 범죄의 배후로 알려진 법인 관련 국내 업체에 대해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했다"고 밝혔다. 세무조사 대상은 캄보디아 범죄 조직과 관련된 외국법인 국내 영업소다. 최근 서울 명동에 부동산 관련 영업소를 연 것으로 알려진 캄보디아 프린스그룹도 세무조사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이틀 전인 1일엔 캄보디아 사태가 APEC 정상회담 의제로 올랐다. 한국 경찰청과 중국 공안은 이날 경주에서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 '보이스피싱ㆍ온라인 사기범죄 대응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다이빙 주한중국대사는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참석한 자리에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최민희'와 '캄보디아'는 서로 무관한 사건으로 보이지만, 구조는 동일하다. 먼저 '캄보디아'. 주변에서 자주 들은 얘기 중엔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피해자라고 지칭하며 “구출했다"고 말하는 김병주 의원 등의 주장이 가당하냐는 게 있다. 김 의원뿐 아니라 박찬대 의원 등 민주당 입장이 대체로 그러한 듯하다. 가해자이지만 피해자라는 논리. 반대로 국민의 힘에선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여서 자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범죄자를 감싸고 도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한다. 둘 다 맞는 얘기로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미궁을 헤맨다. 답이 없는 건 아니다. 답을 못 찾은 건 애초에 범주 구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이 범죄자인지, 피해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유일한 고려 사항은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타국에서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는 사태를 그들이 비록 범죄자라 해도 국가는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 국민의 범죄는 대한민국 법에 따라 더도 덜도 말고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외국법에 저축되면 그 또한 국제법에 따라 대한민국 법절차에 따라 처벌받게 하면 그만이다. 이 문제는 그들의 정체성이 아니라 국가의 역할이 쟁점이다. 국가의 수준 및 자존심과 직결되기도 하고. 이제 '최민희'. 더 간단하다.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상임위가 열리는 동안 국회에서 자녀 결혼식을 올린 건 윤리적 흠결이라 치자.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상임위와 이모저모 관련된 기관이나 인사로부터는 축의금을 받은 건 선출직 공직자로서 사실상 범죄 행위이다. 여론이 질타하듯 사적인 행사를 공적인 관계망에 연결 지은 것 자체가 사리분별을 잊은 태도였다. “Leave no one behind"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구호이다. '캄보디아'에 적용해야 할 이 구호를 반대로 최 의원이 자신의 딸 결혼식에 적용하였다. 간단한 범주마저 구분하지 못하는 국회의원이 너무 많아 국민이 걱정이다. 안치용

[EE칼럼] 전력시장 자율규제기관 독립화 담론, 개혁인가 성역 강화인가

오랜 동안 전력시장을 정부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의결·인사·예산 독립성을 확보하여 정치적 영향을 차단하고, 원칙에 따라 요금을 산정하며 시장을 감독할 수 있는 독립적 결정기구, 예컨데 새로운 형태의 '전기위원회'나 '전력감독원'을 설립해 시장의 합리적 운영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비교하기도 한다. 독립규제기관 논의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정치와 정부 개입을 배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물가 안정과 정치적 통제 필요성 등이 우선시 되면서 제도화되지 못했다. 최근 이 논의가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정부조직법 개편이 있다. 산업부가 쥐고 있던 권한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독립 위원회 모델이 대안으로 다시 부상한 것이다. 초대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또한 이러한 전력부문 자율기구의 설립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실제로 급물살을 타는 듯하다. 하지만 명분에 앞서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장의 성숙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율기구를 도입하는 것이 마치, 아이에게 칼을 쥐여주는 일처럼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 역시 자율적인 전력 규제기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단골로 주장된다. 그러나 성숙한 전력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자율기구가 먼저 등장한 사례가 과연 있었는가? 혹은 시장 자체가 부재한 상태에서 자율기구가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 주도적으로 그럴듯한 시장을 만들어낸 경우가 있었는가? 예컨데 한국은행 금통위의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가능했던 배경에는 탄탄한 민간 은행업권과 금융시장이 존재했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그 뒤에는 이를 수용·반영하는 상업은행, 자본시장, 민간 금융업자가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민간 은행 연합의 이해관계 속에서 태동했으며, 한국은행 역시 은행권과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닌다. 이런 구조 덕분에 금통위는 정부의 정책적 수요와 민간 금융시장의 기능 사이에서 균형자이자 심판자로 작동하며, 독립성이 실질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 전력시장은 시장 참여자라 할 민간 기반이 부족하다. 규모 있는 발전사 대부분이 한전 자회사 계열이고, 소매 전력시장은 아예 독점적 구조로 한전이 사실상 단일 판매자다. 민간 발전사가 일부 존재하긴 하지만, SMP(System Marginal Price)는 CBP(Cost-Based Pool) 체제에서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제출된 원가 자료를 기반으로 산정될 뿐이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비용 부담 역시 사후 정산 구조로 운영되며, 전가되는 과정도 시장의 경쟁을 통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시장 가격 형성 메커니즘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따라서 전력 가격은 온전히 시장이 만들어낸 결과와는 거리가 멀다. 바로 이러한 제도적 특성 때문에 전기요금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라기보다 준조세적 성격을 띠며, 민간 이해관계자가 제도적으로 대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즉 이런 현실 때문에 전기위를 금통위 혹은 여타 선진국들의 자율규제기구와 비교하는데 현실적 배경적 간극이 크게 존재한다. 금통위 독립성은 정부와 민간 금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제도로 설계된 반면, 현재 전기위 독립성 논의는 정부 내 권한 조정과 소수의 폐쇄적 이해관계자들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레토릭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독립성이 명실상부하게 작동하려면 단순히 제도만 가져올 것이 아니라, 민간 전력시장 개방과 소매 다변화 같은 구조적 개혁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금통위 모델을 껍데기만 흉내 내는 결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 실은 한국 전력시장의 구조를 고려할 때, 전력부문 자율규제기구 독립화는 제도적 명분은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독점자에 의한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 즉 독점자에 의해 자율규제기구가 좌지우지될 위험을 키울 수 있다. 금통위는 은행권 등 민간 금융 주체가 존재하고, 그 이해관계가 제도적으로 반영되는 구조 속에서 정부와 민간 사이의 균형자로 기능한다. 그러나 전력시장은 소매 부문이 부재하고 발전 분야 역시 대부분 한전 자회사로 채워져 있어, 독립위원회가 설립되더라도 견제와 균형을 뒷받침할 민간 기반이 부족하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새로운 자율규제기구 설립이 시장의 기대와는 다르게 일부 극소수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자리 만들기 식 위인설관(爲人設官)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규제 포획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 전기요금 산정에 필요한 핵심 비용·수급 정보는 한전이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어, 위원회는 이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 풀 역시 간택된 호위무사들이 주축을 이루어, 독립성보다는 기존 구조를 재생산할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요금 인상 등 책임을 위원회에 전가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시장 독점자는 로비와 정보 제공을 통해 제도를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과정은 오히려 전력시장 관리에 있어 현행 제도와 비교해 민주적 통제 가능성만 훼손시킬 수 있다. 전기요금은 국민 생활비와 직결되는 준조세적 성격을 지녀 왔으며, 이러한 특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국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적어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짙다. 그러나 독립위원회 체제에서는 정치 개입을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오히려 국민 통제력이 줄어들고, 주식시장에 상장된 준상업 기관으로서의 ㈜한국전력과 폐쇄된 일부 네트워크의 영향력만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요컨대 전력 도·소매 시장이 성숙하기 전 현 시점에서 전기위원회 독립화는 제도적 상징성은 있을지 몰라도 의도했던 실질적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전의 독점력이 강화되는 역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자율규제기구라는 배를 띄우기에 앞서 소매시장 개방, 민간 경쟁 촉진, 정보 공개 강화 등 시장 기반을 다지는 넓은 바다부터 조성해야 한다. 우리는 그 필요조건 하나하나조차 충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지 않던가? 선행조건도 충족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그것은 정부의 민주적 통제가 약화되는 동시에 기존의 독점자만 간접적으로 강화되는 부작용만 남길 것이다. 정권과 무관한 자생력을 독점에 선물하면서 독립이라 부르는 순간, 속칭 개혁이 양두구육(羊頭狗肉)으로 전락할까 걱정된다. 유종민

[기자의 눈] 적자 기업만 떠본 예비입찰…홈플러스, 농협만 바라보는 신세

청산 위기에 몰렸던 홈플러스가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다. 매각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다는 시장 평가에도 지난달 31일 마감한 공개입찰에서 복수의 원매자가 홈플러스 인수의향서를 제출해서다. 당장 급한 불을 끄면서 홈플러스 매각전이 새 전환점을 맞은 한편, 경영 정상화를 위한 정부 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거세다. 홈플러스와 매각 주관사는 비밀 유지를 이유로 입찰 참여 업체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AI) 전문 업체 '하렉스인포텍', 부동산 개발회사 '스노마드' 2곳으로 알려졌다. 다만, 인수 의향을 드러낸 후보 업체들의 자금 조달 능력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인수 주체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비상장주식 거래플랫폼 서울거래 비상장에 따르면, 하렉스인포텍은 지난해 33억원의 영업손실을 거둔 데다, 매출도 3억원 수준인 중소기업이다. 해당 기간 부채도 28억원으로 자산(10억원)보다 큰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이 회사는 미국 아나리 캐피털로부터 약 2조8500억원을 조달해 홈플러스를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스노마드의 재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스노마드는 매출 116억원, 영업이익 25억원을 거뒀지만 7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채무 합계 금액이 1375억원임에도 자본총계가 222억원으로 부채비율만 약 619%에 이른다. 두 회사 모두 재무안정성이 낮은 상황에서 4조원(청산가치 3조6816억원)에 가까운 홈플러스 몸값을 감당하기에 무리라는 해석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트 노동자들의 반응도 회의적이다. 홈플러스 공동대책위원회 측은 지난 달 31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름이나 알려보자고 뛰어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홈플러스를 인수할 능력도 없고 경영할 의지도 없는 자들임은 너무나 분명하다"면서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홈플러스는 청산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국민의 일자리 청산이자 지역경제의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간 노조 측은 홈플러스 사태의 원인으로 MBK파트너스의 차입매수(LBO) 방식 인수·장기투자 없는 부동산 매각·구조조정 등을 짚었다. 이 같은 투기자본의 횡포를 정부가 방치한 폐해가 홈플러스 사태라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홈플러스가 매수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정치권에서는 공익적 책임 관점을 이유로 농협이 인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 왔다. 다만, 농협은 하나로유통·농협유통이 각각 연간 400억원의 적자를 보는 터라 재무상태가 열악하다. 앞서 공개 예비입찰에서 농협은 불참한 가운데, 오는 26일 본입찰이 남아있는 만큼 참여 가능성도 제기된다. 홈플러스가 매수자 찾기에 난항을 빚는 이유로는 어려운 대형마트 실태와도 무관치 않다. 이커머스에 밀려 성장세가 과거만치 못한 데다, 의무휴업·영업시간·신규 출점 제한 등 해묵은 과제로 인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M&A 거래 당사자들의 충분한 협의와 조율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유통망 붕괴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요구되는 때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E칼럼] 덴마크, 시민들이 만든 행복한 재생에너지 강국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 아마 많은 국민들이 미국이 우리나라의 군사적, 경제적 동맹국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덴마크가 우리나라와 '녹색성장' 동맹국이라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다. 약 14년 전인 2011년 5월, MB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하에 덴마크와 전략적인 동맹 관계를 맺었다. 이후 2025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녹색성장을 위한 긴밀한 협력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 북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가 왜 녹색성장의 협력국이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덴마크는 독일보다 약 10년이나 앞선 '에너지 전환'의 선도 국가였다는 점이 중요했다. 덴마크는 우리나라에 비해 인구가 10분의 1 수준이지만 세계 1위 풍력 기업인 '베스타스'가 시작된 곳이고, 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산업이 국가 GDP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재생에너지 강국이다. '풍력 산업을 제2의 조선업으로, 태양광 산업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우고 싶었던 한국 정부의 협력 대상으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었던 것이다. 덴마크의 성공 비결이 궁금했다. 재생에너지 최강국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그리고 지난 30~40년간 수많은 정권의 변화에도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첫번째 비결은 그들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덴마크인들은 19세기 후반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많은 영토를 잃었고 척박한 농업 환경으로 인해 공동체 의식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웠다. 덴마크인들은 강한 협동 정신과 수평적인 평등 의식이 뼛속까지 각인되어 있다. 두번째는 덴마크도 자원 빈국으로서 에너지 자립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전 세계 에너지 안보에 경종을 울렸지만, 특히 지하자원이 전혀 없는 덴마크에서는 그 피해가 더 심각했다. 그들은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한국처럼 핵발전 시스템을 도입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회가 될지 모르는 풍력과 바이오 에너지를 도입할 것인가. 덴마크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후자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핵발전 같은 중앙집중형 시스템에 비해 더 유연하고 회복 탄력성이 높은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을 완성했고, 재생에너지의 최강국으로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변화를 시민들이 상향식으로 주도했다는 점이다. 시민 엔지니어들이 직접 풍력발전기 개발에 참여하고 풍력과 바이오매스 마을법인을 결성하여 사업 주체가 되었다. 기술과 정책 결정의 주도권이 시민과 공동체에 있었다. 2009년엔 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민들이 최소 2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는 '지역공동소유권'을 법제화하였다. 또한 사업의 수익금을 지역의 공동기금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 펀드 등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도입하여, 국민 개개인이 에너지 전환의 경제적 과실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덴마크의 사례는 에너지 전환의 성공이 기술이나 자원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자본과 거버넌스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국민들과 소통과 합의를 통해 국가적 에너지 전환의 방향을 정했다. 그리고 시민들이 각 사업의 소유권을 갖게 하고, 더 나아가 커뮤니티 펀드로 국민들이 투자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전 국민이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는 탄탄한 기반이 마련되자, 정치인들은 좌우 없이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법 제도를 발의했고, 정부는 예측가능한 정책을 실행했다. 이에 기업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과 인재육성에 과감한 투자를 했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기업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전 국민의 1~2% 이상이 재생에너지 산업에 종사하고, 재생에너지 산업이 국가 GDP의 1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실의 최대 수혜자는 다시 국민이 되어 경제, 환경, 사회적 선순환을 만들었다. 덴마크의 사례는 한국에도 큰 교훈을 준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대전환을 앞둔 새 정부에선, 국민 개개인이 체감할 수 있는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의 가장 중요한 양분은 사회적 자본과 거버넌스다. 한국에서도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에너지 전환이 만들어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윤태환

[김병헌의 체인지] APEC, 한국의 외교적 주도권과 실질 성과

무대 위의 조명이 한곳에 모였다. 순간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경주, 그 낯익은 도시가 세계의 중심이 된 밤이었다. APEC 정상회의가 막이 오르자 시선은 곧 하나의 장면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마주 앉은 그 순간이었다. 짧은 악수 뒤, 회담은 단숨에 본론으로 치달았다. 곧이어 발표된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 숫자만 봐도 숨이 막히는 금액이지만, 의미는 따로 있었다. 연간 200억 달러 이하로 분할 투자한다는 방식이었다. 단기적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 파트너십의 신호였다. 한국을 '일시적 거래상대'가 아니라 '미래의 시장이자 기술 동맹'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상징이었다. 한국은 미국에 “우리는 당신의 시장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고, 미국은 “그렇다면 당신은 신뢰할 만한 동맹이다"라고 답한 것이다. 한 문장의 교환이 이번 회담의 핵심이었다. 한미 협상의 진짜 성과였다. 이어진 안보 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의 숙원 사업인 '핵연료 추진 잠수함' 개발을 사실상 승인했다.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단순한 무기체계의 확보가 아니라, 미국이 핵심 군사기술을 공유하는 협력선에 한국을 올려놓았다는 의미였다. 이제 한국은 공조의 중심으로 이동한 것이다. '따라가는 안보'에서 '주도하는 안보'로의 변환점, 이번 승인에 담긴 진짜 의미였다. 거대 투자와 핵잠 승인은 APEC의 본회의보다 훨씬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세계가 주목한 건 회담장안 공동선언문이 아니고 회담장 밖에서 이어진 한국과 미·중·일의 연쇄 회담이었다. 실질적 약속, 구체적 행동, 한국이 그 중심에 있었다. 과거 APEC이나 ASEAN 회의가 열릴 때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늘 미국과 중국, 혹은 일본의 움직임에 쏠렸다. 의장국은 진행자에 머물렀고, 회담의 무게중심은 늘 '외부'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경주는 외교의 지리적 무대가 아니라 외교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한국이 의장국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질적 조정자이자 협상가로 무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드물다. ASEAN이나 G20에서도 의장국이 일정한 존재감을 드러내긴 하지만, 양자·삼자 회담을 동시에 주재하며 경제와 안보의 양축을 모두 흔든 경우는 손에 꼽힌다. 그러나 한국은 이번에 전례 없는 방식을 만들어 다자와 양자를 동시에 이끄는 '무대의 연출자'로 바뀐 것이다. 물론 남은 과제가 없진않다. 먼저 이번에 발표된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이 단순한 선언에 머물지 않게 하는 일이다. 한국 정부는 거대한 합의를 구체적 산업 전략으로 연결해야 하고, 기업들은 이를 실행 가능한 사업계획으로 세분화해야 한다. 이번 협상은 단순한 유치 실적이 아니라, 향후 10년 한국 산업의 지형을 다시 그릴 '구조적 약속'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제 투자라는 숫자가 아니라 내용의 시간이 필요하다. 반도체, 인공지능, 방산, 청정에너지 같은 전략산업에 어떤 방식으로 그 자금이 흘러들지, 어떤 기업이 주도하고 어떤 지역이 중심이 될지가 중요하다. 외교가 현실경제로 연결될 때, 그것이 비로소 '국익'이 된다. 핵연료 추진 잠수함 사업도 그렇다. 미국의 승인 선언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성과는 기술협력과 연료공급, 그리고 제작역량 확보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한국이 자주적 안보 역량을 갖추려면, 단순한 첨단 무기 도입을 넘어 자체 제작 체계를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내 방위산업 생태계를 새로 짜고, 연구·인력·제조 라인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동시에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한 투명성 확보도 필수적이다. 핵 관련 기술은 언제나 국제 규범과 감시의 대상이다. 한국은 '평화적 이용'이라는 원칙 위에서 신뢰를 증명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은 투명성 위에서만 단단해진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 성과들을 APEC 틀 안에서 제도화하는 일이다. 지금의 외교적 존재감이 일회성 이벤트로 소모된다면, 어떤 성과도 오래가지 못한다. 미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핵심국을 하나의 협력 구조로 묶어내는 경제·안보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외교의 무게중심은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에 있을 때 유지된다. 외교는 말보다 결과로 평가된다. 이번 회담은 '말'이 아니라 '실행'을 예고한 자리였다. 이제 남은 일은 분명하다. 합의를 현실로, 약속을 구조로 바꾸는 일이다. 그것이 한국에게 남긴 진짜 과제이자, 앞으로의 도전이다.

[기자의 눈] 신뢰 사라진 코스닥 시장

1996년 '제2의 나스닥'을 표방하며 코스닥 시장이 문을 열었다. 기준 지수는 1000이었다. 11월 3일 현재 코스닥 지수는 910대를 오간다. 코스닥 시장이 문을 연 지 29년 됐지만 기준점에도 못 미친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코스피 시장을 보면, 최근 코스닥 시장의 침체가 분명히 드러난다. 연초 코스피는 2398에서 3일 4200을 돌파했다. 74% 상승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코스닥은 32% 올랐다. 코스닥이 이렇게 된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시장 수급을 보면, 연기금, ETF, 기관 자금 대부분이 코스피 중심으로 운용된다. 코스닥은 개인 위주 단타 시장으로 전락했다. 코스닥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코스닥 시장의 개인 투자자 비중은 65%에 달한다. 연평균 회전율은 430%를 웃돈다. 코스닥에서 한 종목이 1년에 4번 이상 사고 팔린다는 뜻이다. 기관이나 외국인이 코스닥을 꺼리는 이유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업이 기술특례로 상장했지만, 상당수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코스닥 상장사 중 절반 가까이 올해 상반기 적자를 냈다. 매출보다 홍보비가 많은 기업, 연구개발비보다 전환사채 발행이 잦은 기업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부실이 구조적으로 방치된다는 점이다. 코스닥은 '혁신기업 지원'을 명분으로 상장 문턱을 낮췄지만, 이른바 '좀비기업'을 내보내는 과정은 더디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코스닥의 한계기업 비중은 23.7%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으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회사를 뜻한다. 코스닥이 다시 살아나려면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는 개혁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코스닥 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져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한국거래소는 코스닥 시장에서 부실기업을 신속히 퇴출하는 제도를 개선했다. 결국 내 돈을 선뜻 투자하고 싶은 기업이 있어야 한다. 기업의 질을 높이고 신뢰를 바로 세워야 시장이 제자리를 찾는다. 상장 이후 성과 검증과 퇴출 절차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혁신은 실패를 전제로 하지만, 실패에 책임이 뒤따르지 않으면 혁신은 왜곡된다. 1996년 코스닥은 '한국형 혁신시장'의 출발선이었다. 현재 900대에 머무는 코스닥 지수는 그 약속이 얼마나 빛바랬는지 보여준다. 코스닥이 다시 혁신의 실험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이슈&인사이트] 정보시스템의 재난 방지를 위한 중복 설계의 중요성

국가정보자원관리원(NIRS) 대전 본원의 2025년 9월 29일 화재로 G 드라이브 서버와 백업 실이 전소되었다. G 드라이브에는 공무원 약 12만 5천 명이 사용 중이었으며, 74개 정부 부처와 19만 1,000여 명의 업무자료가 저장되어 있었다. 소실된 데이터는 858테라바이트에 달한다. 전산망에 대한 복구 작업이 인력·장비 총동원 '안간힘'에도 화재로 영향을 받은 709개 시스템의 복구율은 한 달이 지난 현재 70%가 채 안 된다. 연내 정상 가동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장에는 공무원 약 220명과 관련 사업자 상주 인원 570명, 기술 지원 및 분진 제거 전문 인력 약 30명 등 모두 800여 명의 인원이 투입돼 작업을 펴고 있다. 전문 인력에는 삼성 SDS, LG CNS를 비롯해 정보통신 분야 국책기관인 KISTI, ETRI 소속 연구원들까지 동원되었음에도 작업에 속도가 낮은 요인은 시스템 중복 설계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중복 설계의 오류는 2001년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WTC)의 금융기관들이 초토화된 상황에서도 며칠 만에 영업을 개시할 수 있었던 배경과 대비된다. 25년 전인 9·11테러 당시에 이미 미국의 대형 증권사들은 재해복구 개념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뉴저지, 코네티컷 등 외곽 지역에 데이터 백업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캔터 피저랄드 사는 9·11 테러로 전 직원의 2/3인 658명이 사망하였음에도 뉴저지에 실시간 백업 서버를 두고 있어 8일 만에 온라인 거래를 재개하였다. 모건스탠리는 철저한 대피 훈련 덕으로 전 직원 2천7백 명 중 피해를 극소화했고 테러 발생 2주 만에 타임스 스퀘어로 임시 이전 업무를 정상화하여 위기관리 및 위기 대응 모범 사례로 전 세계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NIRS 대전 본원의 정부 전산망 설계는 600년 전의 조선왕조실록의 중복 설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현재보다 어려운 여건하에서 원본 포함 백업 수를 여러 개 만들어 보관했다. 조선조 초기에 전란으로 인한 소실을 대비해 4부를 작성하여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사고에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중에 전주 사고본만 남고 모두 소실되자 다시 5부를 작성하여 이번에는 인간들의 거주지가 아닌 태백산, 묘향산, 마니산, 오대산의 산속과 춘추관에 분산 배치하여 화재 등 재난에 대비하였다. 그런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은 조선시대만도 못한 후진적이다. NIRS 대전 본원 G 드라이브는 외부 백업이 전혀 없이, 원본과 백업 데이터가 모두 같은 건물 내에 보관되어 있어, 화재 등 재난 시 복구 불가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 인사혁신처 등 일부 부처는 모든 업무자료를 해킹 방지 차원에서 G 드라이브에만 저장하도록 해 피해가 컸다. NIRS의 G 드라이브와 같은 귀중한 데이터를 보관하는 시스템의 재난 방지를 위해서는 신뢰성 특유 설계 기법이 있다. ① Fool Proof 설계 방식이다. 사용자가 잘못된 조작을 하더라도 고장이나 사고가 없도록 하는 설계다. 예를 들어 카메라에 찍힌 필름을 돌리지 않고는 셔터가 작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등이다. ② Fail Safe 설계 방식이다. 특정 기기가 고장 났을 때 타 기기로 파급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③ Safe Life 설계 방식이다. 절대 고장 나지 않는 완벽한 안전 구조 설계 방식이다. 특히 보전이 곤란하고 고신뢰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항공기 엔진, 원자로 등이 있다. ④ 리던던시에 의한 신뢰성 향상 기법이 있다. 한 부품이 고장을 일으키더라도 전체는 작동되도록 여분의 회로나 구성품을 갖추어 놓는 중복 방식이다. 클라우드는 편리하다. 하지만 재난에 대한 대비가 없다면 한 번에 모두를 잃는다. 정부, 기업, 개인의 재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의 중복 설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윤덕균

[EE칼럼] 동떨어진 한국의 에너지 ‘패스트 트랙’

정부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를 열고 99개 송전선로와 변전소 구축 사업을 국가기간 전력망으로 지정하는 '패스트 트랙'을 지정했다. 송전망은 전력공급을 위한 필수 인프라지만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기피시설로 분류되면서 건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런 송전망 건설 지연이 탄소중립 목표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전력망 특별법을 제정하고 지난 9월 26일 시행했다. 전력망 특별법이 시행되면 국무총리 주재 전력망위원회가 지정한 전력망에 대해선 정부가 직접 지역주민과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자체별로 받아야 하는 각종 인·허가를 일괄 처리하게 된다. 이는 재생에너지 송전망을 늘리기 위해 바이든 정부에서도 고려했던 방식이다. 그러나 민주당 셸던 화이트하우스 상원의원과 일리노이주의 마이크 퀴글리 하원의원은 아예 주요 송전선로 경로 승인 권한을 FERC라는 단일 연방기관에 부여하는 법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는 주와 지방정부 의사결정권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그만큼 송전설 건설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아예 정부가 미리 송전선 건설 위치를 파악하고 승인 절차부터 시작하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미국 트럼프 2기 정부는 발전소와 송전망 건설 속도를 높이기 위한 패스트 트랙인 '스피드 투 파워'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지만 잘 살펴보면 한국과는 다른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에너지부가 7월 발표한 '전력망 신뢰성과 보안 평가'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전력 공급원을 계속 폐쇄하고 추가 기저 용량(firm capacity)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2030년까지 광역 정전사고가 100배 이상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미국 제조업 회복과 AI 경쟁은 24시간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석탄과 가스 같은 기저부하 폐쇄를 강요했던 과거 행정부의 위험한 에너지 감축 정책을 계속하면 안 된다고 기술했다. 또한 에너지부가 원자력규제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첨단 원자로 분야 시범 프로젝트를 승인하는 절차로 10년 이상 걸리는 원전 분야 일정 단축을 위해 '3년 이내 임계 도달'을 목표로 하는 '패스트 트랙'을 실행하고 있다. 캐나다의 변신은 좀 더 극적이다. 마크 카니 총리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키티맷 소재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 확장 승인을 패스트 트랙에 올려놓았다. 카니는 이 프로젝트가 캐나다를 에너지 초강대국으로 만드는데 직접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 선언했다. 사실 그는 유엔 기후 특사로 활동하며 은행·투자자·보험사 연합체인 '글래스고 탄소중립 금융연합(GFANZ)'을 공동 설립했던 넷제로 전사였다. 하지만 캐나다 총리 취임 후 전임 트뤼도가 실시했던 탄소세, 전기화 의무 정책을 폐지했고 산하단체 넷제로뱅킹얼라이언스는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탈퇴한 후 10월 공식 운영을 중단했다. 또한 SMR, 핵심 광물을 위한 광산개발도 패스트 트랙에 올려놓았다. 영국 보수당은 정권 재탈환 시 기후변화법 폐기를 선언했는데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법적 구속력 있는 목표로 설정했던 당으로서는 극적인 변화다. 케미 바데녹 보수당 대표는 탄소중립 정책이 경제를 파산시키고 있으며 제조업과 수많은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독일 메르츠 총리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5월 공급망법 폐기를 요구했으며 폰데어라이엔이 소속되어있는 정당 그룹 유럽 국민당 대표 만프레드 베버 또한 내연기관차 금지 폐지를 비롯해 탄소중립 정책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는 모두 에너지 위기 후 급등한 에너지 비용과 제조업 경쟁력 상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현재 넷제로 폐기를 선언한 극우 정당이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갈수록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필자는 지난해 '에너지 위기 이후 EU, 미국 탄소중립 동향과 향후 전망'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탄소중립 백래시 현상이 확산될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한국과 서구 주요 국가의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은 다소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이 차이가 어떤 결론으로 흘러갈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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