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 융합적 사고로 미래전략 ‘담금질’…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엑시트 없는’ 승부사

[이달의 인물] 융합적 사고로 미래전략 ‘담금질’…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엑시트 없는’ 승부사

고려아연은 지난해 8월 한미 정상회담 기간 중 세계 최대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핵심광물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첨단 무기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에 대해 중국 의존도를 극단적으로 낮추려는 미국 정부의 '탈 중국 기조'에 완벽하게 올라탄 맞춤형 행보다. 특히 올해 2월의 쾌거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내무부와 테네시주 정부가 대규모 인프라 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등 연방 인허가 일정을 대폭 단축해 주는 'FAST-41' 제도 도입 업무협약(MOU)을 전격 체결하면서 고려아연의 '크루서블 프로젝트(Cru..

[이슈&인사이트] 양도세 중과가 아니라 정상화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다주택과 증시가 단연 중심 이슈다. 오는 5월로 예고된 다주택자 양도세 정상화를 두고 야당이나 보수층은 '정치적 증세'라거나 사회주의적 정책이라며 공격하고 있다. 심지어 '가난은 나라도 못구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팩트부터 정리하자. 증세가 아니라 세금부과를 연기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공격은 언급할 가지초자 없는 선동이다. '가난은 나라도 못구한다'고? 물정 모르는 말이다. 나라가 부자는 못 만들어도 가난은 구한다, 구해야 한다. 그게 근대 국가다. 가난은 '그저 조금 불편'한 게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거나, 지갑 사정 헤아려보다 뭔가를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다. 가난은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한다. 그 불안은 영혼을 좀먹는다. 그러다 결국 황폐해진다. 형편없는 시간 당 임금은 자존감을 치명적으로 떨어뜨린다. 벗어날 수 없는 나락감에, 그 절망감에 무기력해지는 거다. 그러다 종내는 대인기피증 같은 것을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사회가 가난을 가난한 사람의 무능과 못난 탓으로 돌리며 부끄러워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제 무능을 탓하며 안으로 안으로만 숨어든다. 남루를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본능적 정서다. 모든 이는 위아래가 따로 없이 한결같이 존귀하며,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천부의 인권을 가졌다는 말은, 잠시 접어두시라. 가난 앞에서는 사치이거나 허탈한 공왈맹왈이다. 해질 녘 리어카에 자기 몸집의 두어 배는 될 라면박스와 파지를 잔뜩 실은 채 언덕배기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놔두고서 '선진'을 말하는 건 사치를 넘어 죄악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왜 세금을 걷는가. 세금 안내면 왜 빨간 딱지 붙이고 집달리들이 찾아오는가. 세금받는 대신 생존의 기본 조건을 마련해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영위토록 하기 위해서다. 그게 국가가 정부를 통해 납세자인 국민과 한 '계약'이다. 납세자들은 그 계약을 믿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모든 납세자(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영위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와 내가 같은 공동체 안에서 같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 자체가 미안스러워지는 삶이 주변에 널려있다. 그래서 '복지'라는 개념이 생겼다. 학자들에 따라 견해는 엇갈리지만, 목불인견의 처참한 생존을 그대로 놔두면 인간성이 상실되는 층이 생기고 체제 유지가 위태로울 정도로 사회가 붕괴될 수도 있다. 빈부 격차를 방치하다가 체제 자체가 붕괴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재정(조세)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방법이야 어떻건 간에 복지정책이 성공하려면 이 점 하나만은 확립되어야 한다. 가진 자가 베푸는 방식이어선 진정한 복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건 적선이다. 적선의 밑바탕에는 기복적 희구가 자리잡고 있다. 선을 베품으로써 좋은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동양적 정서가 깔려있다. 그러므로 적선은 기본적으로 일과성이고, 시혜다. 적선 그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구조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개인적 행위라는 것이다. 가난은 개인적 시혜나 기부로 추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들의 권한을 위임받아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게 정부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정부를 통해 행해지는 정책은 그러기에 구조화와 정합성이 필수다.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는 근대 국가의 기본이자 복지의 출발점이고, 공정을 향한 첫 이정표다. 입이 아프지만 다시 명토박아 말한다. 가난은 나라가 구하는 게 맞다. 국민주권정부는 실용적 정책들로 이 해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죽음으로 몰고가는 극빈이나 생활고 참상을 영구 퇴출시켜야 할 시대적 의무가 있다. bienns@ekn.co.kr

[EE칼럼] 지정학적 위기, 에너지 안보를 다시 묻다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달 18일 일본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5,500억 달러(약 800조 원) 규모 대미 투자 가운데 첫 3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오하이오주 가스 화력, 조지아주 인공 다이아몬드, 텍사스주 석유·가스 수출 항만 정비 등 에너지와 산업 인프라가 핵심이다. 일본의 이런 행보는 이미 합의된 대미 투자를 단순한 자본 이전에 그치지 않고, 자국의 에너지 안보 및 경제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 효용성을 끌어올리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자국의 에너지 및 자원 부문이 가진 한계를 동맹 영토 내에서 관련 산업의 거점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보완하려는 것이다. 이는 에너지 안보와 경제 안보를 동맹의 구조 속에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행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중동 정세가 급변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이 출렁이고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마저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27%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에너지 무역의 병목지점이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한국과 일본처럼 중동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직접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가 상승은 곧 물가와 제조업 비용 상승으로 연결되고, 이는 수출 경쟁력에는 물론 국민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나 일본 에너지 수송의 취약성은 호르무즈 해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만 유사 사태 혹은 대만 주요 항구를 봉쇄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거나, 남중국해·동중국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동북아 해상 교통로 역시 위험에 노출된다. 동북아시아 시장에로의 에너지 수송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로 이어지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해상 수송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요컨대 중동과 동북아는 에너지 수송 네트워크로 연결된 하나의 해상 전략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일본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 결정과 최근 중동 정세를 통해 우리가 다시금 상기해야 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와 지정학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현실이다. 일본은 동맹의 내부에서 에너지 안보 및 경제 안보와 관련된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한국 역시 단기적인 대응보다는 중장기적인 구조 설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 안보와 해상 안보를 분리하지 않는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이 연장선에서 해상 교통로 안정과 시장 불안 완화를 위한 정책 공조, 위기 상황에 대비한 정보 공유 체계를 한미 동맹의 틀과 연계하고, 나아가 이를 한·미·일 협력의 틀에서 추진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또한 미국산 원유·LNG 도입 확대를 포함해 공급 구조의 분산 역시 필요하다. 특정 지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반복적으로 동일한 취약성을 노출시킨다. 이런 점에서 동맹이자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으로부터의 에너지 수입 확대는 에너지 안보 및 해상 안보 차원에서도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에너지 안보를 동맹과 연계시킴으로써 상호 보완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아울러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수입 화석연료 의존 자체를 지속해서 낮추려는 노력 역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수입산 화석연료 비중을 줄이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일 뿐 아니라 지정학 리스크 완화 전략이기도 하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수가 된 시대에, 에너지 안보는 더 이상 수급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중심 의제다. 위기에 대한 단기적 대응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를 다각도에서 바라보며 입체적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한다. 임은정

[기자의 눈] 이재명 정부의 리스크 ‘대정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코스피가 6000선을 돌파하며 신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 상승과 함께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60%에는 못 미치지만 57.1%(리얼미터 2월 4주차 조사)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아직 정권 초반이다. 지지율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그 흐름에 찬물을 끼얹을 리스크는 '대정전'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몇 시간 불이 꺼지는 정전을 말하는 게 아니다. '2011년 9·15 정전사태' 그 이상의 대정전을 말한다. 광역도 단위의 대정전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국가 핵심시설, 국민 안전, 산업 생산을 동시에 위협한다.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 다수가 AI, 데이터센터, 반도체처럼 전력을 대량 소비하는 산업군이다. 대정전은 시장에도 큰 리스크다. 이란 공습 등으로 중동발 에너지 안보 불확실성까지 커진 상황에서 충격은 배가 될 수 있다. 최근 전력당국의 태도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보수적이고 신중하던 관계자들이 공개 세미나에서 전망 차원이 아니라 직접 대정전 위험성을 언급하고 있다. 매년이 고비라는 말이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라면 현장의 긴장감은 상당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배경에는 급증한 태양광 설비가 있다. 태양광은 5년 전인 2021년 3월 15.7기가와트(GW)에서 이달 31.4GW로 두 배로 확대됐다. 매년 원전 3~4기 규모가 늘어난 셈이다. 설날 연휴인 지난달 17일 오후 1시 태양광 발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4%까지 치솟았지만 일주일 뒤 비가 내리자 같은 시간 2.5%로 급락했다. 며칠 사이 비중이 2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급격한 출력 변화는 전력망을 뒤흔든다. 지난해 4월 스페인 대정전 사례처럼 순간 과출력이 통제되지 못하면 국가 단위 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호남·영남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전력망이 과부하로 끊길 경우 충청권을 포함한 수도권 전역에 대정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햇빛소득마을'을 중심으로 태양광 확대 정책을 강조해왔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위기 대응의 한축이지만 보완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대정전은 이란 공습 같은 대외 변수와 달리 정부가 더 주도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위험이다. 태양광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이 지난달 27일 이례적으로 전력거래소를 직접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 실시간 가격 신호를 반영하는 전력시장 개편, 전력망 안정화 투자 등 대책이 더욱 동력을 얻어야 한다는 소리다. 대정전은 단 하루의 방심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그 날이 오지 않도록 이제는 개혁을 더 미룰 수 없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고령운전자 시대, 제도 정비 서둘러야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년층 운전자의 안전 문제가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운전자가 일으킨 사고가 꾸준히 발생하면서 도로 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으며, 심지어 세대간 갈등으로 깊어지는 양상이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운전사고율이 높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최근 통계와 사례를 종합해 보면 고령층의 사고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건수는 2020년 3만1072건에서 2024년 4만2369건으로 36.4%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에 전체 교통사고 수치는 20만 9654건에서 19만 6349건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게다가 고령세대에서 신차 등록대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60대와 70대의 신차 등록대수는 각각 20만4294대, 5만861대로, 전체 판매대수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각각 18.5%, 4.6%로 집계됐다. 60대의 신차 등록 점유율은 10년 전인 2016년 9.6%에 불과했지만 매년 꾸준히 증가하다 지난해에는 2배 가까운 18.5%까지 뛰어올랐다. 2016년 2.8%였던 70대의 신차 등록 점유율도 매년 증가해 작년에는 4%대 중반을 기록했다. 이처럼 고령운전자 수와 운행 차량이 동시에 늘면서 사고 관련 우려와 사회적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정 나이가 되면 운전면허를 의무적으로 반납하도록 하자는 주장도 거론되고 있지만 고령층의 이동권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기본권 침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고령자 운전사고를 줄일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고령운전자들의 사고 발생빈도가 높은 주요 원인으로 신체능력 저하에 따른 순발력 감소와 시야 축소, 인지능력 저하 등을 꼽는다. 하지만 고령자 운전사고는 지금의 젊은세대도 미래에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해당한다. 또한, 고령운전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사안도 아니다. 고령운전자 증가를 막을 수 없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제도적·기술적 장치를 마련해 위험성을 줄여야 한다. 면허 갱신 주기 단축, 적성검사 강화, 운전 능력 평가의 실효성 제고,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의무화 등 보다 촘촘한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고령 운전자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안전을 전제로 이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 세대 갈등을 키우기보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할 때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윤석헌 시평] 디지털금융 전환과 국내은행의 혁신

은행의 혁신이 관심사다. 지난 정부에선 과점수익이 비난의 대상이었다면, 새 정부에선 생산적 금융, 포용금융 요구로 공격 방향이 바뀌었다. 특별한 위험부담이나 역할수행 없이 고수익을 벌어드리는 소위 '천수답 경영'이 비판의 핵심이다. 선진경제 문턱에 오른 한국경제가 필요로 하는 중개서비스를 저비용 자금과 유능한 인재를 갖춘 은행이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디지털금융은 IT기술 발전을 배경으로 지급결제의 신속함과 편리함을 크게 개선했다. 이어서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자금을 이체하고 은행 등 중개기관 도움 없이 대출, 투자, 트레이딩을 추진하는 탈중앙화금융(DeFi, 디파이)으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은행의 독과점적 영향력을 우회하려는 노력이 기술발전을 배경으로 전통금융의 울타리 밖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 등 중개기관 도움을 배제하는 디파이는 유동성 불일치, 상호연계성, 과다한 레버리지, 충격흡수장치 부재 등 온갖 위험 노출로 곧바로 안정성에 문제가 생겼다. 테라루나 사태가 비근한 예다. 결국 중앙화 거버넌스 요구가 다시 생겨나는데, 국제결제은행(BIS)은 이를 '탈중앙화 환상'이라 불렀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금융은 지급결제, 신용창출, 규제감독, 예금보험 등 제도적 발전을 이룩했으나, 시장의 불확실성과 탐욕은 금융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위기를 초래했다. 이제 온라인 상에서 한 번의 클릭으로 거액의 자금이 빛의 속도로 이전하는 상황에서 시스템 위험이 다시 증가하면서 금융에 대한 신뢰를 뒤흔들고 있다. 현재 국내에선 전통금융과 디지털금융을 연결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법제화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해외에선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와 더불어 토큰화예금(TD) 및 예금토큰(DT) 등 다양한 선택지가 논의되고 있다. 여기서 디지털화폐의 선택은 국내금융이 전통금융을 토대로 디지털금융으로 지속가능 발전하여 금융혁신을 이루는 경로이고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두 가지가 핵심으로 보인다. 첫째는 안정성 확보다. 스테이블코인은 명칭과 달리 담보자산 내용물에 따라 가치변동이 발생한다. 게다가 혁신 추구를 위해 발행 자격을 확대 허용하면, 금산분리 원칙의 훼손이 가능하고 해외 투자자 참가 시에는 통화주권 상실도 우려된다. 둘째는 혁신을 담보하는 중개기능 확충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원화, CBDC, 자산 등을 100% 예비하므로 런(run)의 우려는 없지만 그만큼 중개기능(신용창출)이 제약된다. 반면, 토큰화예금(TD)이나 예금토큰(DT)은 은행의 안정성을 토대로 부분지급준비방식을 사용하므로 신용창출 제약을 완화하는 장점이 있다. 어떤 선택이 바람직할까? 금융은 안정이 핵심이며, 중개역할 확충 또한 한국경제 현실에서 소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은행이 주도하는 TD나 DT 발행이 바람직해 보이는데, 다만 이러한 선택은 은행의 독과점 구조를 강화하여 국내은행의 중개서비스 혁신 요구에 배치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은 탈출구는 은행이 스스로 혁신하거나 또는 금융당국이 관련 제도 개혁을 이끄는 것이 아닐까. 만약 이런 탈출구를 피한다면 은행 주도 디지털화폐 및 국내금융 혁신에 대한 기대는 오래 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은행의 혁신과 개혁 방안을 살펴본다. 첫째, 은행은 고객에 대한 중개서비스 제공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국내은행은 비이자이익이 미미한데, 이마저도 고객서비스와 무관한 유가증권 매매익과 평가익이 주다. 비용과 노력이 들더라도 고객에 대한 금융서비스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둘째, 생산적 금융 촉진 과정에서 금융위원회는 은행의 BIS비율 산정시 위험자산에 적용하는 위험가중치 조정 방안을 제시했다. 부동산대출은 하한을 높였고 주식보유는 가중치를 낮추었다. 그런데 방향은 맞지만 은행의 행태가 바뀔지 의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이후 늘어난 은행의 책임회피용 행정업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셋째, 은행권의 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다시 강화하여 은행의 주담대 시장 점유율을 낮추고, 파킹통장 활성화로 비은행 주담대 시장 경쟁력 제고에 나서야 한다. 디지털금융 안정성 확보를 위해 전통금융 하부구조 이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은행의 혁신과 개혁은 국내금융산업 혁신의 지름길로 보인다. 윤석헌

[박영범의 세무칼럼] 28만 영세 체납자, ‘부활의 사다리’ 놓이나

고금리와 고물가, 내수 부진의 삼중고 속에서 결국 '폐업'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한 영세 사업자들. 이들에게 가장 가혹한 것은 '과거의 세금'이다. 국세청이 역대급 규모의 구제책을 가동한다. 이번달부터 시민 500명으로 구성된 '국세 체납관리단'이 전국 각지의 체납 현장을 누비며 옥석 가리기에 나선다. 이번 조치는 체납 세금 독촉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징수 능력이 없는 이들의 세금을 면제하여 경제활동 현장으로 복귀시키는 '생계형 체납자 납부 의무 소멸 특례제도'의 성공적인 시행이 자리 잡고 있다. 국세청은 이달부터 활동할 일반 시민 500명을 '전화·방문 실태 확인원'으로 신규 채용했다. 이들은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며, 2024년 말 기준 국세 체납자 133만 명 전원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다. 이들의 주 목적은 징수독려와 '실태 파악'이다. 확인원들은 체납자의 거주지와 사업장을 직접 찾아가 실제 거주 여부, 가족관계, 생활 수준 등을 면밀히 파악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영세 체납자 납부 의무 소멸 대상자 실태조사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조사서는 향후 국세 체납 탕감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자료로 활용된다. 1인당 최대 5,000만 원까지 세금 납부 의무를 소멸시켜 준다. 다만 법에서 정한 요건이 구체적이므로,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첫째 대상 세목은 종합소득세(농어촌특별세 포함)와 부가가치세, 그리고 이에 부수된 가산세와 강제징수비에 한정된다. 또한 해당 체납액은 2025년 1월 1일 이전에 발생한 것이어야 하며, 소멸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금액이어야 한다. 둘째 폐업 및 소득 요건은 실태조사일 이전에 모든 사업을 폐업한 상태여야 한다. 최종 폐업일이 속한 과세 연도를 포함해 직전 3개년의 평균 사업 수입금액(매출액)이 15억 원 미만인 영세사업자가 대상이다. 셋째 처벌 이력이다. 최근 5년 이내에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처벌받은 사실이 없어야 하며, 현재 범칙 사건 조사가 진행 중이어도 안 된다. 특히 과거(2018~2019년)에 시행됐던 영세 개인사업자 체납액 소멸 특례를 적용받았던 사람은 이번 혜택에서 제외된다.올해부터 시행하는 제도로 약 28만 명이 3조 4천억 원 규모의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된다. 1인당 평균 약 1,200만 원의 '세금 족쇄'를 푸는 셈이다. 대상 영세 체납자는 1단계로 현장 조사 협조이다. 이달부터 체납관리단이 연락하거나 방문할 경우 피하지 말아야 한다. 문을 걸어 잠그거나 연락을 끊으면 '은닉 재산이 있다'는 의심을 사 정밀 추적조사의 타깃이 될 수 있다. 2단계는 경제적 빈곤을 증명해야한다. 본인이 가진 재산이 강제징수비(체납 처분비)에도 못 미친다는 점이나, 현재 수입이 최저생계비 수준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신청 시기 준수이다. 소멸 신청 기간은 2026년 1월 1일부터 2028년 12월 31일까지다. 신청서를 내면 국세청은 국세체납정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6개월 이내에 탕감 여부를 통지한다. 이번 특례 제도는 '성실 납세'라는 조세 원칙과 '영세 납세자 경제 재기'라는 복지적 가치 사이에서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고육지책이자 결단이다. 실패를 겪은 이들이 신용을 회복하고 다시 창업이나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훗날 건실한 납세자로 돌아오게 만드는 '선순환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차액가맹금 분쟁, 프랜차이즈산업 성장 자양분 되길

프랜차이즈 산업의 수익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초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한국피자헛의 차액가맹금 반환 소송 여파다. 대법원은 지난 1월 가맹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차액가맹금은 부당이득에 해당한다며 한국피자헛에 215억원을 반환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결 이후 많은 로펌들이 가맹점 집단소송 전담팀을 꾸리면서, 업계에서는 줄소송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가맹 본사와 점주 간 갈등이 큰 시국이지만, 놀랍게도(?) 프랜차이즈(franchise)의 어원은 '자유'와 '특권'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특정 구역 안에서 본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 정도가 될 것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프랜차이즈의 본질은 '규모의 경제'에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대량구매를 통해 원자재 매입 단가를 낮추고, 가맹점주에게 원자재를 시중가보다 싸게 공급할 수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만약 가맹점에 시중가보다 비싸게 공급해서 차액가맹금을 많이 수취한다면 이는 프랜차이즈의 본질인 '규모의 경제'에 역행하는 것이다. 가맹점에 납품하는 상품, 원부재료 등에 마진을 추가로 얹는 차액가맹금 논쟁이 답답하기만 한 이유다. 본사만 탓하는 것은 아니다. 본사의 정책이 점주 본인 마음에 안 든다며 재료를 마음대로 사입해 쓰거나, 이익을 좀 더 내보겠다고 본사가 제시한 매뉴얼을 지키지 않는 것은 명백히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다. 그런 일탈 행위는 다른 점주들에게도 해가 된다. 맥도날드는 맥도날드 형제가 창업했지만 맥도날드의 세계화를 이끈 것은 프랜차이즈 권리를 사들인 레이 크록(Ray Kroc)이었다. 그는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에서 영감을 얻은 '햄버거 생산 라인'과 함께 어느 지점에서도 반드시 정확하게 똑같은 음식을 정확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제공하는 '표준화 정책'을 도입했다. 이는 통상 한 끼를 위해 드는 금액의 절반 가격에 맥도날드 햄버거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본사와 점주가 상생할 때 소비자도 그 과실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의 프랜차이즈가 하나의 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에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한국프랜차이즈협회가 발족한 것도 1998년의 일이다. 지금 업계에 위기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오히려 이 시기가 산업을 더 견고하게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이슈&인사이트] AI는 협력자인가, 파괴자인가?

앤트로픽이 기업용 AI 도구인 '클로드 코워크'를 출시했다. 이 도구는 법률 검토, 계약 분석, 영업, 마케팅, 재무 데이터 분석 등 복잡한 업무를 AI가 자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해주는 AI 에이전트다. 이 도구가 나오자 시장은 소프트웨어 및 IT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위협할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인건비 기반으로 수익을 내는 IT 아웃소싱 기업들과 사용자 수에 따라 요금을 받는(SaaS) 기업들의 매출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공포(SaaSpocalypse)에 소프트웨어 및 IT 서비스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이 충격파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시장은 AI 충격에 취약한 소프트웨어 기업들에 자금을 대출해준 민간 신용 펀드들의 리스크가 커졌다고 판단하였고, 민간 신용 시장의 대표 주자인 Blue Owl의 주가가 10% 이상 급락하였다. 즉, AI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붕괴시켜 그 산업에 자금을 댄 민간 신용 회사까지 연쇄적으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을 휘감은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미국 시장의 화두는 AI disruption(파괴)가 되었다. Citrini Research의 '2028 글로벌 인텔리전스 위기'같은 소설에 가까운 보고서 마저 나오고 있어 AI disruption은 앞으로 AI가 기존 B2B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지난 23일에는 앤트로픽이 COBOL 기반 레거시 시스템을 자동으로 분석·업데이트하는 Claude Code 도구를 발표한 직후 IBM 주가가 하루에 13% 이상 급락, 닷컴 버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COBOL은 여전히 미국 ATM 거래의 90% 이상, 사회보장·금융 백엔드에서 핵심 언어이고 이 시장에서 IBM 메인프레임·서비스가 핵심 공급자라는 인식이 강한 상태다. COBOL 기반 영업은 “고난도·고마진·장기 컨설팅·서비스"였는데, AI 도구가 이를 저비용·자동화해 버리게 된다면 IBM이 누리던 서비스 마진이 줄어든다는 공포가 나타났다. 다행히 앤트로픽이 이런 우려를 인식한 듯 주요 소프트웨어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그간 투매에 휩쓸렸던 기업들의 주가는 반등했다. AI에 대체되기보다는 공존으로 살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은 자사 클로드 코워크를 세일즈포스와 같은 다양한 기업용 앱에 통합하는 기능을 선보였다. 웨드 부시 증권 보고서에는 “앤트로픽의 이번 발표는 AI가 촉발한 소프트웨어 경쟁력 위험이 과장되었고 소프트웨어 인프라에 깊숙이 자리 잡은 워크플로를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AI 파괴 또는 AI 협력, 어떤 세상이 도래할지 모른다. 다만 최악의 시나리오는 AI 기업들이 기업용 자동화 툴을 빠르게 상용화하고 동시에 고금리가 오래 지속되어 레버리지 많은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현금흐름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기존 SaaS 비즈니스의 매출이 생각보다 빨리 줄고 프라이빗 크레딧에서 소프트웨어 익스포저가 높은 포트폴리오의 부실률이 UBS가 말한 10%+ 구간으로 치솟게 되어 구조조정을 겪는 것일 거다. 베스트 시나리오는 IBM 같은 회사들이 클라우드와 AI 회사의 도구를 적절히 엮어 “레거시 + AI 현대화 파트너"라는 포지션을 곤고하게 이룩하는 것일 거다. 거시적으로 AI 디스럽션은 소프트웨어 수익·고용 악화, 더 나아가서는 자본시장 붕괴 순서로 번질 수 있는 새로운 충격 경로로 빠질 수 있기에 2026~27년은 “AI가 생산성을 얼마나 올리는가" 못지않게 “AI가 기존 자산·부채 구조를 어디까지 흔드는가"를 봐야 하는 시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bienns@ekn.kr

[EE칼럼] “100% 확신은 없다: 확률예보가 필요한 이유”

강수를 중심으로 확률예보에 대해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 기상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기상기관은 왜 '강수확률 30%'와 같은 수치로 내일의 날씨를 설명할까. 우리는 “서울 지역의 내일 강수확률은 50%입니다"라는 예보를 들을 때, 그 의미를 과연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까. 혹시 이를 '비가 올 가능성과 오지 않을 가능성이 각각 절반'이라는 단순한 통계적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더 나아가, 본질적으로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대기 현상을 예측하면서 '확률'이라는 개념을 덧붙이는 일이 예보의 책임을 완화하기 위한 방패막이 장치는 아닌지 의문을 품어본 적은 없는가. 확률예보는 모호함을 감추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이를 의사결정 가능한 정보로 전환하려는 과학적 진보의 산물이다. 과거 예보가 예보관의 경험과 직관에 크게 의존하던 주관적 예보의 시대를 지나, 오늘날에는 슈퍼컴퓨터 기반의 수치예보모델에 의존하는 객관적 예보 시대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대기는 수많은 변수가 상호작용하는 초복잡계이자 비선형 시스템이기에, 모든 과정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 결과로 등장한 대안이 바로 확률예보다. 확률예보는 전통적 통계 기법과 앙상블 예측 등 복합적인 과학적 과정을 통해 산출된다. 함축적으로 강수확률 30%란, 과거 유사한 기압계와 기상 조건에서 해당 지역에 10번 중 3번 비가 내렸음을 의미한다. 강수확률 50% 역시 같은 맥락에서 10번 중 5번 비가 왔다는 뜻으로, 과학적으로 정당한 결과물이다. 이는 불확실성을 회피한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정량화해 제시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확률예보는 단정적인 결정론적 예보보다 더 많은 데이터와 계산, 그리고 검증을 거쳐 생산되는 고차원의 정보라 할 수 있다. 확률예보의 가치는 산업 현장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업 경영에서 기상 단순한 참고 자료를 넘어 리스크 관리의 핵심 수단이다.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 개념이 '비용-손실 모델(Cost–Loss Model)'이다. 대응 비용(C)과 대비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손실(L)을 비교해 임계확률 Pc=C/L을 산출하고, 예보 확률이 이를 초과할 경우 행동에 나서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농업 분야에서 농약 살포 비용이 100만원이고, 비로 인해 재살포와 작물 피해로 500만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면 임계확률은 20%다. 즉 강수확률이 20%만 되어도 살포를 연기하는 편이 통계적으로 합리적이다.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비용이 500만원이고, 우천 시 재시공 손실이 5,000만원이라면 임계확률은 10%에 불과하다. 낮은 확률이라도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경영상 안전한 선택이 된다. 물류·유통 산업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강수확률이 예보되면 인력을 선제적으로 배치해 배송 지연과 고객 이탈이라는 더 큰 손실을 예방할 수 있다. 이처럼 확률예보는 의사결정을 정교화하고, 장기적으로 막대한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가능하게 한다. 국가적 재난 관리에서도 원리는 같다. 태풍이나 집중호우의 발생 확률이 일정 임계치를 넘는 순간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방재의 골든타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100% 확신'을 기다리는 태도는 곧 위험을 방치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확률에 기반해 움직이는 것만이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현대 과학기술로도 100% 완전한 예보는 불가능하다. 이는 예보관의 역량 부족이나 슈퍼컴퓨터 성능의 한계 때문이라기보다는, 대기 운동 자체가 지닌 근본적 불확실성 때문이다. 특히 기후위기로 인해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극한 기상현상이 빈번해지는 오늘날, 단정적 결정론에 머무는 태도는 기상·기후 정보의 가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사고방식일 수 있다. 인공지능 기반 예보가 발전하더라도,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제 우리는 확률예보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수급 예측 역시 기상 변수의 확률 정보를 반영한 전략 수립이 필수적이다. 장기 기후예측에서도 단일 수치를 제시하는 방식보다 확률예보에 기반한 정보가 정책과 산업 현장에서 훨씬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한다. 확률예보는 우리에게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부여한다. 20%의 가능성에도 대비할 것인지, 80%의 가능성에 기대어 모험을 감수할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이다. 예보를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전략적 의사결정 도구로 인식할 때, 우리는 자연재해의 위협을 보다 현명하게 관리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 확률예보를 통한 '슬기로운 예보 생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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