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이 절세 수단됐다. 아무도 믿지 않는 주가, 법으로 바로잡을 수 있겠나”…김민국 VIP운용 대표

“상장이 절세 수단됐다. 아무도 믿지 않는 주가, 법으로 바로잡을 수 있겠나”…김민국 VIP운용 대표

시가총액 4000억원짜리 회사가 있다. 이 회사가 깔고 앉은 땅값만 5000억원이 넘고, 현금성 자산도 5500억원에 이른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비중도 적지 않다. 이 회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8배다. 회사를 통째로 청산해 자산을 다 팔아도 시가총액의 두 배 넘는 돈이 남는다는 뜻이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이 회사를 두고 이렇게 묻는다. “이 가격에 사시겠어요? 안 사시겠죠. 그런데 상장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도로 저평가받는 겁니다. 이게 맞는 걸까요?" 이런 회사가 한둘이 아니다. 최근 1년간 코스피..

[기자의 눈] 카드업계, 언제까지 자영업자 고충 ‘독박’ 써야하나

금융당국이 또다시 영세·중소가맹점 수수료율을 내렸다. 신용카드가맹점 323만5000곳 중 309만4000곳(95.7%)에 달하는 사업장이 연매출 구간별로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방식이다. 하위 70%, 90%를 넘어 96%라는 수치가 나온 것이다. 이번에도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포용금융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SNS를 통해 “소상공인분들에게 카드수수료는 매출이 발생할 때마다 함께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라며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포용금융 정책을 통해 소상공인·자영업자분들의 힘이 되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카드사들은 또다시 울상이다. 우선 본업에 해당하는 사업부문의 수익성이 저하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실적을 끌어올린 기업들을 보면 장기카드대출(카드론)·연회비 수익 확대 또는 대손충당금 감소가 주를 이룬다. 가맹수수료 수익 확대가 IR 자료에서 언급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금융당국의 주장이 현실과 맞는지도 의문이다. 연매출 3억원 이하인 영세가맹점은 카드수수료 부담이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에 따르면 이들 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0.4~1.45%, 체크카드는 0.15~1.15%다. 개인사업자가 신용카드 또는 현금영수증으로 매출을 올리면 국세청이 결제액의 1.3%를 감면하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익이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수수료율을 내리는 실익이 없다는 의미다. 가맹수수료가 내려가는 동안 △최저임금 △임대료 △전기/가스요금 등 경영난을 심화시키는 요인들은 커졌다.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700원으로 올해 대비 3.7% 오른다. 여기에 주휴수당을 더하면 1만2840원이다. 소상공인과 정치권에서 주휴수당 폐지론이 불거진 까닭이다. 이 과정에서 카드사가 입은 피해 일부는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됐다. 2024년과 지난해 단종된 신용카드는 1120종으로 집계됐다. 특히 생활비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일명 '알짜카드'가 많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돌고 있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또 어떤 알짜카드가 단종될지 전전긍긍하며 카드 사용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사실상 카드사가 뒤집어쓰는 일을 멈춰야 한다. 나아가 포용금융이라는 포장지로 누군가의 희생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산다는 상생 본연의 의미가 되살아나길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이슈&인사이트] 여한구 ‘직권면직’, 홍명보가 손흥민 뺀 것 연상시켜

미국의 통상 압박이 다시 거세지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대미 통상협상의 실무 사령탑인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15일 0시를 기해 '직권면직'했다. 여 전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정통 통상 관료 출신이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같은 자리에 다시 기용됐다는 점에서 실무 역량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특히 지난해 6월부터는 통상·산업·에너지 분야를 아우르는 대미협상 태스크포스 단장까지 겸임하면서 한미 관세협상을 실질적으로 총괄해 왔다. 미국무역대표부를 카운터파트로 하여 농산물을 비롯한 비관세 장벽 협상도 총괄했으며, 글로벌 통상 규범 대응과 공급망 안보 역시 그의 업무였다. 이재명 정부의 통상 분야에서 대체 불가한 핵심 인사이자, 심지어 산업부의 천재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왜 갑자기 여 본부장을 경질했는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다. 홍명보 감독과 비슷하다. 홍 감독은 북중미 월드컵 남아공전에서 월드스타이자 우리나라 팀의 핵심인 손흥민 선수를 선발에서 제외하여 결과적으로 패배를 자초했고 32강 진출에 실패하였는데, 손 선수를 뺀 이유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통상외교의 최전방 공격수인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같은 중요한 인사를 '직권면직'하였다면 설명이 있어야 하나, 이 대통령은 '입꾹닫'하고 있다. 급하게 '직권면직'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여한구 본부장은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본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였고, 또 청와대는 14일 관계부처 관계자들을 소집해 별도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의 안건은 대미투자 이행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미국 측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지였다고 한다. 대응 회의가 열린 바로 그 날 갑작스러운 면직 통보가 이루어졌으며, 15일 0시 면직이라는 형식이 눈에 띈다. 고위 공직자는 실질적인 해임의 경우에도 '사의 수용'의 형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직권면직' 자체가 이례적이다. 13일 이후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었거나 임면권자의 신뢰를 훼손할 정도의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측 압박에 대한 대응 방침을 두고 대통령이나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을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다. 문제는 여한구 본부장 '직권면직' 미스터리가 한미 통상전쟁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한미 통상 현안이 산적해 있는 시점이라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은 이미 지난 7월 무역법 301조를 이용해 강제노동 상품 수입 금지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한국을 12.5% 관세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고, 한국을 포함한 16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구조적 과잉생산 문제에 관한 별도의 301조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추가적인 무역조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셈이며, 여기에 대미 투자 문제까지 다시 불거졌다. 미국 상무부가 한국 정부에 한미 합의에 따른 2000억달러 규모의 전략적 대미 투자 사업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현재 15% 수준인 관세를 다시 높일 수 있다는 취지의 압박을 가했다고 보도되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미국 측과 직접 협상해온 통상교섭본부장이 설명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야당에서는 “국가의 통상 사령탑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린 '묻지마 경질'이자 전례 없는 인사 참사"라고 강력 비판하고 있다. 레버리지 ETF 도입을 주도하는 등 경질 사유가 쌓인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계속 자리에 놔두고 애먼 통상교섭본부장을 잘랐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유를 밝히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으나, 청와대는 “인사 사안이라 확인이 어렵다" 하고, 산업부는 “임면권자의 권한과 정무적 판단" 이라고 하면서 회피하고 있다. 감독에게 선수교체 권한이 있는 것이 맞는 것처럼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는 것도 맞다. 그러나 권한이 있다고 마구 잘라도 되는 것은 아니고 설명해야 할 의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계속 '입꾹닫'하면 이 대통령은 홍명보와 다를 게 없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bienns@ekn.kr

[EE칼럼] 미래 세대에게 무거운 부담으로 돌아갈 태양광・풍력 설비

수명을 다한 태양광・풍력 설비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기후부에 따르면 작년 태양광 패페널 발생량은 2547톤으로 산업통상자원부가 2023년에 예상했던 발생량 1223톤의 2배가 넘었다. 자연재해로 인한 파손과 조기 교체 등의 변수가 겹치면서 생기는 일이라고 한다. 2040년에는 폐패널의 양이 6만 넘어설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풍력 설비의 노후화도 걱정이다. 올해 풍력 설비 80기의 퇴출을 시작으로 2045년까지 총 800기가 넘는 풍력 설비가 수명을 마치게 된다. 정부는 느긋하다. 특히 태양광 패널은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개정된 전자제품등자원순환법에 따라 2023년부터는 폐패널의 80% 이상을 재활용해야 하는 생산자책임활용제도(EPR)를 시행하고 있다. 재활용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제조사・수입사는 킬로램당 727원의 부과금을 내야 한다. 정부가 법만 준비한 것도 아니다. 2021년에는 충북 진천에 188억 원을 투자해서 연간 최대 3600톤을 처리하는 재활용센터의 문을 열었다. 환경 당국에 따르면 전국 재활용업체의 연간 처리 능력이 2만3000톤에 이른다. 태양광 패널의 재활용 기술에 대한 기대도 장밋빛이다. 정부는 태양광 패널의 85% 이상이 재활용 가능하다고 밝힌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2016년 보고서를 강조한다. 우리 재활용 업계도 폐패널에 들어있는 유리, 알루미늄, 구리는 99% 이상 회수할 수 있고, 은(銀)도 95% 이상 회수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다. 특히 패널 무게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유리는 비교적 쉽게 분리해서 재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딴판이다. 정작 태양광 발전사업자는 재활용보다 부과금 납부에 더 관심이 있다. 20년 전에 패널을 공급해 주었던 제조사・수입사를 찾아내서 생산자책임을 요구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폐패널의 해체・운송・처리에 필요한 비용은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길을 잃어버린 발전사업자는 폐패널을 발전소 한쪽에 쌓아둘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재활용센터도 울상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마련한 설비의 가동률이 1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는 뜻이다. 국내 재활용센터가 경제성이 보장된 기술을 확보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재활용이 부품을 물리적으로 분해하는 저부가가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무늬만의 재활용센터를 잔뜩 만들어놓은 셈이다. 재활용에 대한 화려한 언론 보도도 무작정 믿을 것은 아니다. 태양광 패널 무게의 20%를 차지하는 알루미늄 프레임을 뺀 패널의 나머지는 사실상 값싼 소재인 유리가 전부다. 쉽게 재활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유리병이나 판유리와 달리 태양광 패널의 유리에는 실제 전기를 생산하는 검은색의 광전지(실리콘 웨이퍼)와 백시트가 초강력 접착제로 붙여져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해체는 불가능하고, 화학적으로 녹여내는 수밖에 없다. 상당한 오염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언론에서 강조하는 구리・은과 같은 소위 '유가(有價)금속'은 패널 전체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99% 회수율에 신경을 쓸 일이 아닌 셈이다. 생산 단계에서 가장 비싼 비용을 치른 실리콘 웨이퍼는 사실상 재활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퇴역한 풍력 설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철제 타워와 발전 설비를 재활용하는 것이 고작이다.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제작한 거대한 블레이드는 재활용은커녕 절단・운송・폐기조차 쉽지 않다. 강화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기술은 초보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더욱이 풍력 설비의 해체・폐기를 관리하는 법과 제도도 전무(全無)한 상황이다. 자연에서 공짜로 무한정 쏟아지는 햇빛과 바람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 햇빛과 바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햇빛과 바람이 공짜라고 해서 태양광・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도 공짜이고, 친환경인 것은 아니다. 이제는 태양광 패널과 풍력 블레이드의 제작은 물론 폐기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고, 환경 오염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수명을 다한 태양광 패널과 풍력 블레이드는 수백 년이 지나도 자연에서 절대 썪거나 분해되지 않는다. 공짜・친환경의 환상에 빠져서 우후죽순으로 세워놓은 태양광・풍력이 우리 자손에게는 무거운 부담으로 남겨진다. 무엇이나 차면 넘치는 법이고,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정부의 정책 철학, 딜레마 빠질 때마다 피해는 국민의 몫

정부가 지난 13일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을 꺼냈다. 주택 공급과 실수요 위주로 나타난 대출 절벽현상을 완화하고, 투기성 자금은 더 조이는 방식으로 규제를 재설계한 게 골자다. 그러나 시장 불안감은 완전히 잠재워지지 않았다. 정부의 대출총량 두 배 확대와 대출 여력의 집단대출 우선 공급 약속에도 은행권은 구체적인 총량 배분 기준이 확정되지 않아 관망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당장 내달 입주인 3000세대 대단지 디에이치방배만해도 5개 은행에 배정된 총한도 5000억원 가량이 여전히 부족한 액수란 관측이다. 잔금대출 선착순 대란 뿐만이 아니다. 2금융권을 기웃거리는 고소득자의 여건이나 주담대 오픈런 현상이 완전히 잦아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대출을 풀었다지만 차주는 그래도 빌리지 못하고, 은행은 어디에 얼마나 빌려줄지 몰라 주저하는 모양새다. 정부의 정책 철학과 금융 정책의 특성이 부딪히며 당국이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국민들은 각종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특히 시장 피해와 반발이 거세지면 그때마다 완화된 정책을 내놓는 '땜질식 행정'이란 비판은 현 정부의 금융정책 내내 따라붙은 꼬리표다. 지난해 6·27 이후 9·7, 10·15 대책때도 강력한 대출 규제 먼저 도입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자 예외를 만드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정책 신뢰도가 매번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들어선 기조마저 번복되고 있다. 이번 대책에선 주택공급을 위한 금융을 확대하면서 '부동산과 금융을 절연한다'던 기조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부동산과 금융의 절연이 여전히 옳다면 다시금 금융과 연결하는 선택은 이전 흐름과 배치될 수 있다. 반대로 이번 대책이 보다 나은 방향이라면 이전까지의 정책은 다소 과했다는 것의 방증이 된다. 비거주 1주택자의 전세대출 예외 기준에 '거주 이력이 하루'인 점 또한 투기를 잡아야 한다며 만든 잣대가 너무 강한 나머지 수많은 사례의 주거 형태를 '하루'라는 기준으로 나누게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커다란 변화를 위해 과감한 결단과 강경한 대응은 응당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일관되고 강력한 추진 뒤에 서민 자금을 끊는다는 비판이나 '난수표 규제'란 별칭이 더이상 이어져선 안된다. 부동산을 좌우하는 금융정책인 만큼 섬세한 계획과 유연한 속도감은 반드시 가져야할 요소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김병헌의 체인지] 김민석의 시간…국민은 성과를 본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당선 일성으로 내놓은 말은 '통합'과 '일하는 민주당'이었다. 지금 민주당에 가장 필요한 말이다. 그래서 첫 임무는 분명하다. 당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국민은 민주당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이른바 '명청 갈등'을 둘러싸고 노정됐던 균열부터 정리해야 한다. 승리한 쪽이 자리를 독점하고 다른 목소리를 밀어내는 것은 통합이 아니다. 주요 당직과 정책 결정에 계파가 아니라 능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사람을 써야 한다. 하나의 당은 구호가 아니라 인사와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대통령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거리를 두거나 무조건 맞추는 것이 아닌 집권여당 대표다운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정부가 옳은 방향으로 갈 때는 강하게 밀어주고 민심과 어긋날 때는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 역시 여당을 정책 전달 창구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대통령실과 정부, 민주당이 충분히 토론하되 결정된 정책에서는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개헌 논쟁도 있겠지만 지금은 헌법보다 민생의 시간이 먼저이다. 김민석 지도부가 당장 책상 위에 올려야 할 것도 반도체와 AI, 부동산 안정,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와 민생 회복​이다. 특히 반도체는 시간이 곧 경쟁력이다. 서남권 반도체 산업 육성이든 기존 클러스터의 경쟁력 강화든 지역 배분의 정치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투자할 전력과 용수, 부지와 교통망을 확보하고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지방정부가 인허가를 풀며 국회가 예산과 법률로 뒷받침해야 한다. AI도 마찬가지다. 'AI 강국'이라는 구호만으로 기업과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GPU와 컴퓨팅 인프라, 연구인력과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 지역 대학과 산업단지, 연구기관까지 연결한다면 침체된 지역경제를 다시 뛰게 할 성장축이 된다고 믿는다. 여기서 집권 여당의 역할은 정책의 속도를 높이는 일이다. 부처마다 말이 다르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책임을 떠넘기며 규제 하나를 푸는 데 몇 년씩 걸린다면 세계의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김민석 지도부가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은 실행 일정표다. 핵심 사업마다 책임자를 정하고 3개월, 6개월, 1년 단위의 결과로 평가받게 해야 한다. 미국 반도체 산업정책의 예를 봐도 중앙정부 지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연방정부와 주·지방정부, 기업과 대학이 인프라와 인력 양성을 함께 추진할 때 투자가 공장과 일자리로 연결된다. 우리 정치권도 '어느 지역에 무엇을 주느냐'보다 누가 더 빨리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내느냐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부동산은 더욱 절박하다. 집값은 국민의 삶이다. 필요한 곳에는 공급을 늘리고 실수요자의 주거 사다리는 지키되 투기적 수요에는 일관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청년과 신혼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을 늘리고 재건축·재개발과 공공주택 역시 이념보다 실제 공급 효과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지역경제도 대형 개발계획 몇 개로 살아나지 않는다. 지방에 기업이 가려면 사람이 함께 내려가 살 수 있어야 한다. 일자리뿐 아니라 주택과 학교, 병원, 교통과 문화시설이 갖춰져야 젊은 인재가 머문다. 서남권 반도체 구상 역시 산업·주거·교육·교통을 묶는 종합적인 지역발전 전략으로 추진해야 한다.이 역시 여당이 선도적으로 정부를 이끌고 힘을 모아야 속도가 붙는다. 야당과의 협치도 빼놓을 수 없다. 반도체·AI·전력망·지역균형발전은 한 정권의 임기만 보고 추진할 사업이 아니다. 김 대표가 먼저 야당 대표를 만나고, 야당의 합리적인 제안이라면 정부 정책에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협치는 약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을 오래 가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제 민주당은 남 탓할 여유가 없다. 대통령도 민주당이고 국회 다수당도 민주당이며 새 지도부까지 출범했다.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전당대회 승자의 환호가 아니다.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되고 집 걱정이 줄며, 지역에 기업이 들어오고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가 생기는 변화다. 이제 실행의 시간이다. 김민석 체제와 이재명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결국 민생의 성과로 결정될 것이다.

[이슈&인사이트] ‘나쁜 뉴스’의 역설, 그리고 시장 금리의 현실

2주 전 미국 8월 비농업 고용보고서는 신규 고용이 14만 2천 명 증가에 그치며 시장 예상치(약16만 명)를 23,000명 하회했다. 실업률도 4.3%에서 4.4%로 상승하면서 고용 시장의 냉각이 뚜렷해졌다. 그러나 월가는 이 '나쁜 뉴스'를 반기는 중이다. 약한 고용이 연준의 추가 긴축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주식 시장은 오히려 상승했다. 이른바 '나쁜 뉴스=좋은 뉴스' 공식이 다시 작동한 것이다. 시장의 논리는 고용 둔화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물가 압력을 낮춰 연준이 금리 동결에 더 쉽게 동의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지난 주 인플레이션 지표도 시장의 기대를 확인해 주었다. 8월 CPI는 전월 대비 0.1% 상승에 그쳐 예상치(0.2%)를 밑돌았고, PPI 역시 전월 대비 0.0%로 예상치(0.2%)를 크게 하회하며 물가 상승 압력이 전방위적으로 둔화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여기에 어제 발표된 8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6%로 예상치(+0.1%)를 훌쩍 벗어난 부진을 기록했다. 미국 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라는 미국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까지 흔들리는 신호였지만, 시장은 또다시 '나쁜 뉴스'를 반기며 금리 동결 가능성에 더욱 무게를 싣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여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아이러니가 있다. 같은 날 발표된 미시간대 9월 소비자심리지수 예비치는 67.2로 전월(70.3)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런데 이 지표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향후 1년간 기대 인플레이션율'이다. 소비 심리는 나빠졌지만, 소비자들은 오히려 향후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거다. 시장은 '경기가 나쁘니 금리가 동결될 것'이라는 논리에 열광하는 반면, 실제 소비자들은 '물가는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지갑을 닫고 있으며 여전히 K자 성장으로 소비의 괴리가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장의 금리 동결 낙관론이 시중 장기 금리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4.6% 중반대를 유지하며 좀처럼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단기 금리 선물 시장이 9월과 11월 금리 동결을 확실시하는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장기 금리는 시장의 기대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일본의 사례와 매우 흡사하다. 일본은 최근 몇 달간 '금리 인상을 검토 중'이라는 신호를 던지며 엔화 약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시장은 말뿐인 일본의 행동에 쉽게 납득하지 않았다. 결국 미·일 재무당국이 공동 환율 개입이라는 강수를 두며 엔화 가치를 방어했지만 효과는 일시적이었고, 시장은 일본은행이 실제 금리 인상이라는 행동으로 나서기 전까지는 다시 엔화 약세와 금리 상승 압력이 재현될 것이라고 경계하고 있다. 미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시장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것처럼 공포 마케팅을 하지만, 막상 행동으로 나서지 않는 '워시'의 모호한 커뮤니케이션에 점점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워시 의장이 이번 달 말 잭슨홀 미팅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관건이다. 전임 파월 의장이 '데이터 의존적'이라는 원론적 발언에 그쳤던 것과 달리, 워시 의장은 시장의 기대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만큼, 그의 행보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결국 시장이 진정한 안심을 얻기 위해서는 연준의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 금리 동결이라는 기대가 현실로 확인되기 전까지, 그리고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기 전까지, 장기 금리의 높은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달 말 잭슨홀에서 위시의 발언이 중요하고 궁금한 이유다. bienns@ekn.kr

[EE칼럼] 타당성이 아니라 시급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미국-이란 전쟁이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다니고 탱크가 부서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온실가스가 얼마나 나올지?' 또는 '드론의 에너지 효율등급은 얼마일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전투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에너지 시장에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에너지 수요에 비해서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가 적었다. 민영화된 시장에서 민간 발전사업자는 설비를 늘이기 보다는 이미 보유한 설비의 이용률을 높이는 쪽이 유리했다. 전력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그들이 생산하는 전력은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었다. 국가적으로 적절한 에너지 믹스를 고려하기 보다는 제 살 깎아먹기가 되더라도 보조금을 잔뜩 받을 수 있는 발전원을 마구잡이로 지어서 배를 불리는 것이 권장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ChatGPT의 등장이 갑자기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수요를 예고하였다. 또 대규모 전력을 요구하는 하이퍼스케일 컴퍼니가 여기저기서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샘 올트만에 따르면 대형 AI 데이터센터는 5 GW(기가와트) 즉 원전 5기분의 전력을 요구한다. 삼성전자의 제2공장도 10-15 GW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 이런 막대한 전기를 갑자기 필요로 한다면 전력회사가 이를 공급할 수 있을까? 그래서 BYONG(Bring Your Own New Generators)이라는 표현이 탄생했다. 대규모 전력을 요구하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발전기를 구하라는 얘기다. 즉 자구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의 기업이 소형모듈형원자로(SMR)에 투자하고 완성되지도 않은 SMR에 대해 개발사와 PPA(전력구매계약)을 통해 선투자를 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삼성전자가 반도체에 얇은 선을 그리기 위해서는 덴마크 ASML사의 노광장비를 사용한다. 이는 그야말로 최첨단이기 때문에 얇은 선을 그릴 수 있지만 에너지 효율이 높지는 않다. 그 자체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이를 냉각하기 위해 에너지가 또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노광장비는 시간이 지나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발전할까 아니면 에너지를 지금보다 더 사용하더라도 더 얇은 선을 그을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까? 당연히 후자이다. 지금 첨단산업은 전시상황이나 다름이 없다. 어느 회사가 얼마나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성공하느냐에 사활이 달린 것이다. 더 얇은 선을 그을 수만 있다면 이들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전력설비는 가속적으로 늘어나야 할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든든한 한국전력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과연 200조원의 부채를 가진 한국전력이 신규발전소를 건설하고 송배전망을 확충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량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또한 호남 반도체 등 메가 프로젝트의 성패는 전력설비가 공장보다 더 먼저 준공되어야 하는 시간의 문제도 가지고 있기 떄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력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위기의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제때에 용수문제와 전력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발전설비를 줄이는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발전소가 가스발전소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이 더 높은 것 같지도 않다. 가스발전소의 간접배출분을 포함하여 비교한다면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또한 이란전쟁으로 인하여 가스공급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는 석탄이 에너지 안보에 기여하고 있는 것도 잊고 있었던 긍정적 측면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월성1호기의 경제적 타당성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감사원 보고서는 이미 알려진 바가 있다. 이후 이의 유효성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원점 근처에서 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타당성이 중요한가 시급성이 중요한가? 미국도 경제성이 없어서 폐쇄되었던 TMI-1호기와 Palisade 원전을 보수하여 재가동하기로 결정하고 있지 않은가? 탄소중립계획에 따라서 폐기하기로 하였던 석탄발전소를 폐기해야 할까?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기하기로 결정했던 월성1호기도 폐기해야 할까? 이것은 혹시 전쟁터에서 '친환경 탱크'가 아니면 타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은 아닐까? 컨트롤 타워가 없는 상태에서 같은 문제를 제각각 다른 차원으로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네이버가 두나무 품을 때 생긴 ‘예외’…참 절묘한 우연

시험 감독관을 미리 9명이나 자기 학원 강사로 데려다 놓은 학원이 있다면, 이걸 실력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시험 대비를 참 잘했다고 봐야 할까. 네이버가 지금 인수하려는 두나무가 딱 이런 학원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이 두나무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는 딜을 추진 중이다. 이 결합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심사와 함께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인허가가 걸려 있다. 때마침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 개정안이 그 문턱을 낮춰줬다. 원래는 “위반 이력이 있으면 경중과 관계없이 불수리"였던 조항이, 이제는 “위반 정도가 경미하다고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인정하면 예외적으로 수리 가능"으로 바뀌었다. 네이버가 지난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1심 벌금형을 받아 대주주 자격에 빨간불이 켜졌던 바로 그 지점에, 딱 맞춰 비상구가 하나 열린 것이다. 절묘한 우연이다. 업계는 곧바로 “네이버-두나무 기업결합에 숨통이 트였다"고 반겼다. 채점 기준을 손보는 일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무조건 감점하고 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다만 이 이 '경미함'을 누가 판단하느냐다. 개정안은 그 재량을 금융정보분석원장 한 사람에게 맡겼다. 그런데 이 재량이 처음 적용될 회사로 유력한 두나무는, 공교롭게도 이 재량을 쥔 기관과 이미 깊은 인연이 있다. 최근 5년간(2021~올해 6월) 인사혁신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현황에서 취업 예정기관이 '두나무㈜'인 사례를 추려보면 총 19건이다. 이 가운데 금융감독원 출신이 9건으로 가장 많다. 2021년 고객보호실장을 시작으로, 2022년 사내변호사, 2024~2025년에는 매해 실장·팀장급이 실원부터 준법감시팀장, 거래지원심의위원회 위원까지 자리를 잡았다. 감독하던 기관 사람들이 감독받던 회사의 감독 대응 부서로 옮겨가는 흐름이, 지난 5년간 거의 매년 이어진 셈이다. 당국은 이번 완화 조치를 두고 “위반 경중을 따지지 않는 건 규제 목적에 비해 과도한 제한"이라고 설명한다. 발언 자체는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경중'을 가늠할 기관 바로 옆에는 이미 그 기관 출신 인사 9명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 절묘하다. 이런 인맥을 갖춘 학원이 하필 이 채점 기준 완화의 수혜 사례가 된다는 점을, 순수한 우연으로만 봐도 될까. 우연이라면 그것참 부지런한 우연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이슈&인사이트] 원화 강세는 진짜인가: SK하이닉스 착시와 재정의 그림자

8월 들어 외환시장의 공기가 바뀌었다. 7월 1일 장중 1560원 부근까지 치솟던 원/달러 환율은 한 달여 만에 1410원 안팎으로 내려앉았다. 7월 한 달 원화 절상률은 약 8.8%로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연준과 달러스왑을 체결한 직후 환윤이 안정되기 시작했던 2009년 3월 이후 최대치 였다. 시장에서는 이미 “1300원대 진입" 전망까지 나온다. 불과 두 달 전 환율 1600원 대를 걱정하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그러나 이 강세를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원화 강세는 상당 부분 한시적 요인이 만든 것이며, 환율을 1560원까지 밀어 올렸던 구조는 해체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 있을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8월 강세를 떠받친 힘의 성격을 뜯어보자. 가장 큰 공급원은 SK하이닉스의 미국 ADR 상장 대금, 약 265억 달러(40조원)의 환전이었다. 이는 반복되지 않는 일회성 유입에 불과하다. 여기에 수출업체들이 고점 인식에서 내놓은 네고 물량과 법인세 중간예납을 위한 계절적 환전 수요가 겹쳤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2.50%에서 2.75%)이 내외금리차를 좁혔으며, 미국 고용지표 부진과 미·일 외환당국 개입이 달러를 강세를 누르는 구조였다. 이들은 일회성이거나, 계절적이거나, 경기순환적이다. 어느 것도 원화약세의 구조적 원인에 해당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할 역설이 있다. 한국은 지금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다. 6월 경상수지는 497억 달러로 두 달 연속 역대 1위를 경신했고, 흑자는 38개월째 이어지고 있으며, 수출은 처음으로 월 1000억 달러를 넘었다. 물론 반도체 호황에 원인이 있다. 우리가 아는 상식대로라면 세계 최상위권의 대외 흑자를 내는 나라의 통화는 당연히 강세를 지속해야 한다. 그런데 원화 환율은 지속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며 불과 몇 주 전 1560원을 넘봤다. 이 퍼즐은 자본수지에서 풀 수 있다. 반도체로 벌어들인 달러가 나라 안에 머물지 않고 있는 것이다. 6월만 해도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316억 달러어치 줄여 역대 최대 순감소를 기록했고, 내국인은 해외 주식으로 돈을 계속 실어 날랐다. 경상수지가 환율의 양동이를 채우는 동안, 자본수지가 그보다 빠르게 물을 퍼내고 있다. 원화 약세는 애초에 무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 유출의 이야기라는 것이 이 퍼즐의 핵심이다. 환율이 강세와 약세를 줄타기하는 균형 위로 우리 정부의 재정이 한 발 딛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번 정권들어 확고한 확장재정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2026년 예산은 사상 처음 700조를 넘긴 728조 원으로 전년보다 약 8.1% 늘었고, 두 차례 추경과 국채 발행으로 국가채무는 GDP 대비 49%대로 올라섰다. 일부 추산은 채무비율이 비기축통화국이 경계하는 60%대에 근접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재정의 그림자가 희미해 보이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가 강력한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완충재는 반도체에 집중되어있으며, AI시장의 성장을 감안하더라도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경기순환적이다. 이 사이클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아니면 지속될 수 있을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반도체 사이클이 하락으로 접어들면 경상수지 완충재가 얇아진다. 바로 그 시점에 재정적자가 여전히 커지고 있고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계속된다면, 원화는 경상과 자본 양쪽에서 동시에 방어막을 잃는다. 이는 국제경제학에서 가장 경계하는 쌍둥이 적자 문제가 된다. 특히 우리와 같은 에너지 수입국에게는 바로 이 상품수지의 수입 쪽에도 급소가 있다. 호르무즈가 다시 조여 유가가 급등하면, 우리가 의존하는 흑자 규모도 얇아진다. 원화 강세는 한시적일 수 있다. 8월의 되돌림은 지나쳤던 약세를 교정한 것이고, 금리 인상과 달러 약세라는 원인도 작용했다. 그러나 가장 눈에 두드러진 원인은 일회성 ADR 환전과 계절적 세수였고 중장기적 구조의 전환이 아니었다. 환율를 1,560원까지 밀어 올렸던 구조는 아직 여전히 남아있다. 중장기적으로 1,400원이 지켜질지, 1,300원이 올지, 아니면 1,500원이 돌아올지는 단기적 달러 수급이 아니라 세 가지 변수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반도체 사이클 지속 여부, 자본 유출, 그리고 재정 건전성이다. 환율 숫자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경상수지와 재정수지를 함께 읽어야 한다. 1,410원은 승리의 세리머니가 아니라 일시정지일 수도 있으며, 바닥의 그림자는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다. bienns@ekn.kr

[EE칼럼] 두 마리 토끼 잡는 양수발전을 다시 본다

최근 역대급 폭염이었다. 기상관측이 시작된지 122년 만에 양산은 42.5도를 기록하였다. 폭염 중대경보가 전국 곳곳에서 발령되기도 했다. 앞으로도 몇 십년 동안은 이 같은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텐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전력과 물 공급의 안전성이라고 본다. 매년 전력 수요가 피크를 기록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가뭄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8월 1일 기준 전국 48개 시·군에서 가뭄이 발생했는데 전국 농업용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53.2%로 평년(69.9%)의 76.1% 수준이다. 특히 남부 지역은 평년의 54∼76% 수준이다. 낙동강과 섬진강 유역 다목적댐 11곳과 용수댐 10곳은 저수량이 예년보다 아래다. 운문댐은 '심각', 밀양댐과 섬진강댐은 '경계' 단계다. 국립 기상 과학원은 '비가 오는 날은 줄지만, 집중호우는 늘어나서 강수의 시간적 집중과 간헐성이 심해진다'고 했다. 즉 강수량은 늘지만, 가뭄도 더 늘어나는 기인한 현상이 나타난다. 전력과 물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은 있다. 양수발전이다. 양수발전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총 4,700 메가와트(MW) 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2038년까지 양수발전 설비를 1만 400MW까지 확대하려 한다. 양수발전은 전력이 남으면 하부 저수지 물을 상부로 끌어올려 에너지를 저장하고 전력이 부족하면 물을 떨어뜨려 전력을 만드는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다. '물 배터리'인 것이다. 과거에는 이용율이 낮아서 경제성 문제가 있었지만 재생에너지 보급이 늘면서 이용율이 대폭 증가하여 경제성도 개선되고 있다. 양수발전은 우선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지만, 재생에너지 취약점인 출력 변동을 보완한다. 탄소 저감에 기여하는 효과도 있다. 한국 환경연구원의 성경인 박사는 2026년 수자원학회지에 게재한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을 위한 수력 및 양수발전의 탄소배출량 저감 기여 분석"에 서 현재 운영 체계 기준으로 연간 약 3백만 톤의 탄소저감 효과가 있으며 충전 전력이 재생에너지로 공급된다고 가정하면 총 17백만 톤(전력부문 탄소배출량의 약 7%) 감축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는 발전소 고장이나 전력 계통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전력 기반 시설이다. 세번 째는 화재 위험이 있는 ESS와 달리 안전하고 설비 수명도 길다. 네 번째는 산불이 났을 경우 진화용 취수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문제도 있다. 생태계 파괴를 한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는 주민 수용성 문제이다. 홍천 풍천리에 건설하려던 발전소가 수년째 중지된 것도 주민 수용성 문제다. 국내 최대 잣 생산지로서 1,800ha 지역에 수목 100년 이상 된 잣나무 숲과 수많은 멸종위기종과 야생 생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경제성 문제인데 약 1조 7000억원 예산이 투입되지만 효율성이 낮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법적인 문제도 있다. 2025년 4월 법제처는 외부 전력으로 끌어올린 물은 자연 상태의 에너지가 아님으로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ㆍ이용ㆍ보급 촉진법'상 수력발전이 아니라고 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피할수 있는 방안이 저수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국내에는 관리가 잘 안되는 저수지가 많다. 그 이유는 수십 년이 되어 제방이 누수되거나 붕괴 위험이 높은 곳이 많다. 두 번째는 지자체 관리가 거의 80% 수준인데 재정 자립도가 낮아서 인력이나 유지관리가 문제다. 결국 수질이 나빠서 용수로 사용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마지막으로는 가뭄 시 농업용수를 공급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런 기존 농업용 저수지를 양수발전의 하부댐으로 활용하자. 이미 지자체와 발전 공기업이 유휴 농촌 저수지를 활용한 수자원 에너지화 협약을 맺고 있다. 전북 장수군과 한국동서발전의 '동화저수지 양수발전' 예다. 그럼으로 좀 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농어촌 공사, 지자체, 한수원, 발전사와 민간 기업 등이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효과는 다양하다. 농촌 경제 활성화의 개선과 준설이나 둑 높이 보강으로 물 저장량이 증대하고, 농업 인프라가 개선이 되며, 송전망 부담도 개선될 것이다. 전력과 물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주민 삶의 터전 확보와 생테계 파괴를 막는 노후 저수지의 현명한 이용이 절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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