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한 달을 넘기고도 끝날 줄을 모른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군쇄적으로 봉쇄하고, 선박을 선별적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통행료를 걷겠다고도 한다. 여기에 예맨의 후티 반군까지 이란 편에서 서서 참전하겠다고 나서면서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잇는 항로마저 위협받고 있다. 치솟는 석유 가격에 전 세계는 조바심을 내며 중동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아라비아 반도를 둘러싼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는 단순한 해상 통로를 넘어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목줄'을 쥔 공간이 됐다. 그렇다면 좁은 항로를 가진 아라비아반도 주변에 유독 원유가 집중적으로 매장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곳은 지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지질학적 사건들이 중첩된 공간이고, 그 사건들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집중적으로 매장됐다. 그런 지질학적 '특이점'이 지금과 같은 지형을 형성하게 한 원인이다. 국내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아라비아 반도 주변 지역에 지질학적 역사를 살펴본다. ◇테티스해(海): 모든 것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중동 지역의 석유 이야기는 고대 해양 '테티스해(Tethys Sea)'에서 시작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크리스토퍼 G. 켄달 교수 등이 2014년 편집한 '미국석유지질학회 연구총서(AAPG Memoir)' 106호 내용에 따르면, 아라비아 판(板, plate)과 북아프리카는 고생대부터 중생대까지(약 5억 4100만년 전부터 6500만년 전 사이) 테티스 해의 연안 환경을 공유하면서 유사한 퇴적과 석유 시스템을 형성했다. 이 바다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 따뜻하고 얕으며, 생물이 폭발적으로 번성하는 생산성이 매우 높은 해양 생태계였다. 온도가 높고 햇빛이 풍부한 이 환경에서 식물플랑크톤인 조류(algae)와 남세균(cyanobacteria)은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면서 대량으로 성장했고, 죽은 뒤에는 해저에 쌓였다. 중요한 점은 당시 해저가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플랑크톤 유기물이 완전히 분해되지 않고 보존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탄화수소의 원천이 되는 근원암(source rock)으로 변화했다. 근원암은 석유가 생성될 수 있는 모암으로, 주로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을 말한다. 이렇게 해서 석유 시스템의 첫 단계, 즉 '석유를 만드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과정이 일어났다. ◇실루리아기 '핫 셰일': 에너지의 원천이 된 지층 이 지역 석유 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실루리아기(4억 4380만 년 전~ 4억 1600만 년 전)의 '핫 셰일(hot shale)'이다. 혈암(頁岩)이라고도 불리는 셰일은 주로 작은 자갈이 퇴적돼 오랜 세월 동안 쌓이면서 단단하게 굳어져 형성된 퇴적암이다. 아랍에미리트 대학의 압둘라만 S. 알샤르한 교수와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켄달 교수는 2021년 '미국석유지질학회 회보(AAPG Bulletin)'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핫 셰일'이 아라비아 판 전역의 주요 탄화수소 공급원임을 강조한다. 이 셰일층은 유기물이 매우 풍부하고 높은 방사선(감마선) 수치를 보이기 때문에 '핫 셰일'이라 불린다. 핫 셰일은 유기물 함량이 매우 높고,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에 침수되는 시기에 형성되는데, 넓은 지역에 걸쳐 균일하게 분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실루리아기를 포함한 고생대(5억4100만년 전부터 2억5190만년 전 사이)퇴적층이 해수면 변동(eustatic sea-level change)과 빙하기, 그리고 조산운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조산 운동(造山運動)은 지구 표면을 덮은 약 10장의 강한 판이 서로 부딪치거나 다른 판 밑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을 말한다. 조산 운동을 통해 알프스나 히말라야 같은 대산맥이 생겨나기도 한다. 아라비아판은 단순히 유기물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 해수면 상승으로 유기물이 축적되고, 해수면이 하강하면서 침식과 구조가 형성되는 단계가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석유 생성과 저장에 최적화된 지층 구조가 만들어졌다. 핫 셰일은 바로 이 복합적인 환경에서 형성된 '지질학적 엔진'인 셈이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이 동력의 근원이듯 유기물이 고온·고압을 받아 중동 고생대 석유 시스템 전체에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를 밀어 넣어주는 에너지 생산의 본체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아라비아 판: 이동하는 대륙이 만든 구조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땅속 석유는 어떻게 모였을까. 그 답은 판 구조론(plate tectonics)에 있다. 아라비아 판은 원래 남반구의 곤드와나(Gondwana)대륙에 속해 있었으나, 수억 년에 걸쳐 북쪽으로 이동했다. 곤드와나 대륙은 고생대 후기부터 중생대에 걸쳐 남반구에 분포했다고 생각되는 거대한 대륙의 이름이다. 현재의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극대륙 이외에 마다가스카르, 인도대륙까지 하나의 대륙, 즉 곤드와나 대륙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라비아 판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핵심 사건이 발생한다. 첫째는 판의 분리와 홍해의 탄생이다. 아라비아 판이 아프리카 판과 갈라지면서 형성된 것이 바로 홍해다. 홍해는 지금도 진행 중인 리프트(rift) 구조다. 거대한 지각판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겨지면서 지각이 찢어지고 벌어지는 지질학적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란 의미다. 두번째는 판이 충돌하면서 자그로스 산맥과 페르시아만이 형성됐다. 아프리카 판과 갈라진 아라비아 판은 이제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유라시아 판과 충돌하게 된다. 충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우주환 연구원과 이철우 교수가 2021년 한국지구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충돌은 튀르키예에서 호르무즈까지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이 약 2000㎞에 이르는 자그로스 습곡대를 형성했다. 습곡대는 지각 변동으로 지층이 주름이 진 형태가 된 곳을 말한다. 이 충돌은 단순한 산맥 형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층이 휘어짐(습곡 형성)과 단층 형성, 복잡한 지하 구조 형성 등을 통해 석유를 땅속에 가두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세번째 사건은 아라비아 판의 시계 반대 방향 회전이다. 알샤르한 교수와 켄달 교수의 2021년 논문은 아라비아 판이 아프리카 판에 대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약 6~7도 회전하며 이동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회전 운동은 아라비아 반도 주변의 지각 경계선을 재설정하고, 서쪽의 사해(Dead Sea) 변환 단층과 같은 복잡한 단층 체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세 가지 역동적인 사건이 결합해 현재 아라비아 반도의 지형과 세계 최대의 에너지 매장지를 동시에 탄생시켰다. ◇배사구조: 석유를 모으는 자연의 저장고 석유는 가벼운 물질이기 때문에 생성되면 위로 이동한다. 문제는 이를 '잡아둘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배사구조(背斜構造, anticline)다. 옆으로부터의 압력으로 인해 지층이 산봉우리처럼 볼록하게 올라간 습곡 구조를 말한다. 최근에 쌓인 지층은 위로 휘어져 올라가고, 중심부에는 오래된 지층이 위치하게 된다. 배사구조는 지층이 위로 휘어지면서 가장 아래쪽에 있던 오래된 지층이 습곡의 중심부(핵)에 위치하게 된다. 즉, 지표면에서 중심부로 갈수록 더 오래된 암석이 나타나는 구조다. 배사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가두는 '트랩(trap)'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보다 가벼운 원유와 가스는 지층 사이를 따라 위로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배사구조의 볼록한 꼭대기 부분에 도달하면 더 이상 위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형 유전이 형성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철우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란의 자그로스 습곡대 전면부에는 이러한 배사구조가 대규모로 발달해 있어 이곳에만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8%가 집중돼 있다. 여기에 저류암(reservoir rock)의 역할도 중요하다. 저류암은 근원암에서 생성된 석유와 가스가 이동해와 실제로 저장되는 암석층이다. 탄산염암처럼 암석 내부에 미세한 구멍(공극)이 많아 석유를 품을 수 있는 '스펀지' 같은 역할을 한다. 중동 지역의 석유 시스템에서 배사구조와 저류암의 관계는 '그릇'와 '그릇에 담긴 내용물'의 관계와 같다. 저류암이라는 우수한 저장 물질이 배사구조라는 효율적인 저장 구조를 만났기 때문에 중동 지역에 세계적인 규모의 유전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 두 요소가 결합해 거대한 천연 석유 저장고인 트랩(trap)을 형성하게 된다. ◇소금 돔: 석유를 지켜주는 '완벽한 밀봉' 그러나 배사구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석유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밀봉층(sealing layer), 또는 덮개암(cap rock)이다. 밀봉층은 지층 속에서 생성된 석유나 천연가스가 지표면으로 새 나가지 못하도록 그 위를 단단히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치밀한 암석층을 말한다. 중동 지역에서는 과거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형성된 증발암(Evaporite)이 이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증발암의 주성분인 소금(암염)이나 무수석고(Anhydrite)는 입자가 매우 치밀해 액체나 기체를 거의 통과시키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하부 저류층에 모인 석유와 가스는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수백만 년 동안 지층 속에 고여 있을 수 있다. 페름기 후기(약 2억 5000만 년 전)에는 광범위한 해수면 상승 이후 대규모의 탄산염-증발암 퇴적 현상이 나타났고, 이것이 현재의 주요 밀봉층이 됐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는 이러한 두꺼운 소금층이 지각 운동의 압력을 받아 위로 솟구치며 소금 돔(salt dome) 구조를 형성했다. 소금 돔은 지하에 층상으로 넓게 깔려 있던 증발암(특히 소금층)이 지각 운동이나 밀도 차이에 의한 압력을 받아 위로 볼록하게 밀려 올라오며 형성된 기둥이나 돔 모양의 구조를 말한다. 이 구조는 석유를 특정 구역에 더욱 효과적으로 모아두는 일종의 '거대한 천연 저장 탱크' 역할을 한다. 덕분에 석유는 수백만 년 동안 그 안에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고, 이 지역이 세계 최고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결과적으로, 소금 돔은 석유 시스템에서 '보존'과 '집적'을 동시에 담당하는 핵심 요소인 셈이다. ◇'완전한 석유 시스템'이 에너지 저장소로 만들어 이런 과정을 거쳐서 중동 지역은 △근원암 (핫 셰일) △저류암 (탄산염암, 사암) △트랩 (배사구조) △밀봉층 (증발암, 소금 돔) 등 네 요소가 완벽하게 결합된 '완전한 석유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이 네 요소는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판의 이동과 해수면 변화라는 하나의 지질학적 흐름 속에서 동시에 형성됐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다. 그 본질은 수억 년에 걸쳐 형성된 지질학적 자산, 즉 에너지를 둘러싼 경쟁이다. 아라비아 판의 이동, 테티스해의 퇴적, 빙하기와 해수면 변화, 판의 분리와 충돌. 이 모든 과정이 겹겹이 쌓여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에너지 저장소를 만들어냈다. 이같은 지질학의 역사는 중동 일부 국가와 세력이 병목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형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 지형은 오늘날 세계 정치와 경제를 좌우하는 '중동'이라는 지정학을 낳은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