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형 원전 수출 전략을 직접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에 나선다. 이에 따라 정부는 그동안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등 개별 공기업 중심으로 운영되던 원전 수출 체계를 정부 주도형으로 전면 개편하고, 양 기관 간 분산돼 있던 기능도 사실상 '원팀 체제'로 재편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서울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김정관 장관 주재로 '2026년 제1차 원전수출전략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원전 수출체계 효율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정부 주도의 '원전수출기획위원회' 신설이다. 산업부는 기존 원전수출전략협의회 산하에 민관 합동 기획위원회를 설치하고, 정부·공기업·법률·회계·국제관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수출 전략 수립과 리스크 분석, 경제성 평가 등을 총괄하도록 할 계획이다. 사실상 정부가 국가별 협상 전략과 가이드라인을 설계하고, 공기업은 그 틀 안에서 실무 협상을 수행하는 구조다. 산업부는 원전 수출이 단순 기업 간 계약이 아닌 국가 전략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창희 산업부 원전전략기획관은 “최근 글로벌 원전 수출은 대부분 정부 간 협정(IGA) 또는 국가 차원의 수의계약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정부가 협상의 큰 틀을 짜고 민관이 함께 리스크를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개편의 또 다른 핵심은 한전과 한수원 간 이원화됐던 원전 수출 구조를 사실상 통합하는 것이다. 정부는 2016년 공공기관 기능조정 당시 한국형 원전 수출을 한전과 한수원으로 나눠 운영했다. 이에 따라 UAE 바라카 원전은 한전이, 체코 두코바니 원전은 한수원이 각각 주도해왔다. 하지만 바라카 원전 건설 과정에서 시공에 참여한 한수원이 추가 공사비 약 1조4000억원을 한전에 요구했지만, 한전은 UAE측 정산을 이유로 미루자, 결국 한수원이 국제중재소에 한전을 상대로 분쟁 조정을 신청했다. 양측의 변호비용만 300억원이 넘는데다, 국내 민감 정보가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정부는 양 기관을 설득해 중재소를 국내로 옮겼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정부가 수출을 주도하는 원전수출기획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해외 원전 사업을 양 기관이 공동 개발·관리하도록 하고, 기능별 역할을 재정립하기로 했다. 대외 협상과 브랜드 관리 등은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한전이 맡고, 실제 건설·운영은 기술 경험이 풍부한 한수원이 담당하는 방식이다. 지분 투자와 금융 조달은 자금력이 있는 한전이 주도한다. 다만 체코·필리핀 대형 원전 사업과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 사업은 기존처럼 한수원이 총괄 수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바라카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향후 모든 해외 원전 사업을 조인트벤처(JV) 또는 컨소시엄 기반 독립 법인 형태로 추진하기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물리적 통합이 아니라 공동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화학적 결합' 개념"이라며 “바라카 원전 갈등의 교훈을 반영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연내 '원전수출진흥법(가칭)' 제정도 추진한다. 해당 법안에는 원전 수출 공공기관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해 정부와 사전 협의를 의무화하는 감독 권한 신설 방안이 포함될 예정이다. 또 사업 개발부터 타당성 조사, 협상, 입찰, 계약까지 총괄하는 '원전수출 총괄기관'의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다만 총괄기관을 한전·한수원 중 어디로 할지, 혹은 별도 통합기관을 만들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번 개편이 단순 조직 정비를 넘어 한국 원전 수출 구조 자체를 정부 주도형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재편하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최근 AI 산업 확대와 에너지 안보 위기를 원전 수출 확대의 핵심 기회로 보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미국·체코·베트남 등 주요 원전 수출 현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K-원전 원팀 체계를 정비하겠다"며 “AI 확산과 글로벌 에너지 안보 변화 속에서 원전 르네상스 기회를 선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지성 기자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