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확대를 반영해 중장기 전력수요 전망치를 대폭 상향한 것을 두고, 국내에 추진 중인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계획의 상당수가 실제 수요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비영리 기후·에너지 정책 싱크탱크 사단법인 넥스트는 2일 이슈브리프 '냉정과 열정 사이: AI 데이터센터 수요 불확실성에 대하여'를 발간하고, 현재 발표된 국내 AI 데이터센터 계획 규모와 실제 확인 가능한 수요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메가프로젝트를 포함해 국내에서 추진되는 AI 데이터센터 용량은 2030년 약 14.8기가와트(GW), 2035년 약 20GW에 달한다. 그러나 핵심 고객 계약이 체결됐거나 실수요처가 확인된 프로젝트는 2030년 2.3GW, 2035년 2.5GW로 전체 계획의 10%대 수준에 머물렀다. 넥스트는 국내 AI 연산 수요가 단기간에 GW급 상업 수요로 급증하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마이크로소프트 AI 이코노미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한국의 생성형 AI 사용률은 37.1%로 세계 평균(17.8%)의 두 배를 웃돈다. 그러나 대화형 AI 서비스는 네트워크 지연시간에 덜 민감해 해외 거점으로도 원활히 대응할 수 있다. 기업 수요 역시 제조업의 AI 전환(AX)이나 피지컬 AI의 경우 현장 및 온디바이스 연산 비중이 높다. 자체 모델을 개발하는 주요 빅테크들도 사내 구축형이나 그룹사 전용 데이터센터를 선호해 상업용 서비스형 GPU(GPUaaS)로의 수요 전환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해외 대규모 클라우드 기업을 유치해 '아시아 AI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구상 역시 입지 경쟁력 측면에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의 '2026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 비교 리포트'에서 수도권을 포함한 서울은 상위 시장군 중 10위, 부산은 하위 시장군 중 7위에 그쳤다. 존스랑라살(JLL)의 올해 리포트에서도 서울은 인도 뭄바이, 호주 시드니 대비 평균 계통 연계 대기 기간과 건설비 측면에서 열위를 보였다. 현재 오픈AI 등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약도 구속력 없는 업무협약(MOU) 단계에 머물러 있다. 보고서는 한국이 미국과 전략적 협력을 맺고 아랍에미리트(UAE) 수준의 대규모 해외 연산 수요를 끌어오는 낙관적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실제 수요는 2030년 7.3GW, 2035년 12.5GW에 그쳐 발표된 20GW 계획에는 크게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석은 최근 정부가 전력수요 전망치를 대폭 끌어올린 상황과 맞물려 파장이 예상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총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공개한 전력수요 재전망 잠정안에 따르면, 정부는 용인·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권역별 GW급 AI 데이터센터 조성 계획 등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반영해 2040년 최대전력 목표수요를 기존 상향안(138.2GW) 대비 26.8GW 높인 165.0GW로 제시했다. 특히 데이터센터 부문의 최대전력 추가수요는 당초 4.0GW에서 11.9GW로 3배 가까이 확대됐다. 총 2단계로 추진되는 데이터센터 메가프로젝트의 구체화 수준을 고려해, 이번 안에는 1단계 목표만 우선 반영했음에도 대규모 전력 증설이 예정된 셈이다. 이에 따라 실수요가 검증되지 않은 계획 용량에 맞춰 전력망과 발전설비 등 공공 인프라를 무리하게 선제 구축할 경우 막대한 투자금이 매몰 비용으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수강 넥스트 선임연구원은 “임차 계약이나 자금 조달이 확정되지 않은 용량이 계통 접속, 부지, 발전설비를 선점한 뒤 사업이 좌초되면 선행 투자된 인프라 비용은 회수하기 어렵다"며 전남 해남 솔라시도 AI 슈퍼클러스터 등을 사례로 들었다. 이어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의 실수요와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사전에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며 “수요의 구체성에 따라 공공 지원 범위와 단계별 집행 조건을 설정하고, 사업 중단 시 비용 부담 및 시설 활용 원칙에 대한 명확한 정책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진 기자 vrai.jin@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