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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저성장의 위기

정책 분석가인 미셸 부커는 지난 2008년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를 회색코뿔소에 빗댔다(‘회색코뿔소가 온다’). 누구라도 코뿔소를 보면 덜컥 겁부터 난다. 자리에 주저앉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저건 코뿔소가 아냐"라고 애써 부인한다. 그래봤자 피할 도리는 없다. 부커는 코뿔소를 보고도 못 본 척한 결과가 전대미문의 금융위기였다고 주장한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회색코뿔소는 뭘까. 한두 마리가 아니지만 가장 덩치가 큰 코뿔소는 바로 저성장이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4%로 낮췄다. 한국은행은 1.4%를 유지하면서도 중국 부동산 부진이 이어질 경우 1.2%까지 떨어질 걸로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당초 1.5% 전망치를 1.4%로 낮췄다. 씨티, JP모건 등 대형 투자은행들은 내년에도 성장률이 1%대에 머물 것으로 본다. 한국 경제는 2%를 밑도는 저성장에 익숙하지 않다. 오일쇼크, 외환위기, 금융위기, 코로나위기 등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지난 반세기 우리 경제는 늘 위만 보고 달렸다. 그 덕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저성장은 스멀스멀 다가와 우리 옆에 섰다. 돌이켜 보면 경고음은 오래전부터 울렸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해리 덴트는 "한국의 호황과 불황, 부동산, 산업화 주기는 일본을 22년 뒤처져 따라가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 그래왔다"면서 "한국은 2018년 이후 인구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마지막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2018 인구절벽이 온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를 경신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이 번창할 리가 없다. 개인이건 나라건 온통 빚더미에 올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를 넘어섰다.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호주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미국(74%), 일본(68%)을 앞질렀다. 국가채무는 내년 1196조원으로, GDP 대비 51%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채무 비율 자체는 아직 양호한 편이지만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빚에 찌든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요즘 일본 경제를 보면 부럽다. 올 2분기(4~6월) 실질 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1.2% 증가했다. 연율로 환산하면 무려 4.8%에 이른다. 일본은 4%대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데 거꾸로 한국은 1%대 저성장의 늪으로 달려가는 꼴이다. 올해 성장률 역전이 일어나면 25년만에 처음이다. 일본 경제를 두고 잃어버린 20년이니 30년이니 하던 말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대신 한국이 바통을 이어받을 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구조개혁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작심 발언을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법으로 노동, 연금, 교육을 포함한 구조개혁을 주문했다. 문제는 ‘구조’를 바꾸는 개혁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 총재는 "이해당사자 간 사회적 타협이 어려워서 진척이 안 된다"고 탄식했다. 구체적으로 "저출산, 노인 문제를 생각하면 이민, 해외노동자 활용,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데 진척이 없다"는 것이다. 구조개혁은 뼈를 깎는 작업이다. 그러나 기득권 카르텔은 철옹성처럼 단단하다.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재임 1998~2005년)는 하르츠개혁으로 노동시스템을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정권을 잃었다. 만약 구조개혁을 접어둔 채 돈 풀고 금리 내리는 재정·통화 정책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이 총재는 말했다. 과연 우리는 구조개혁을 성사시킬 능력이 있는가? 대답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지금 여야는 상대를 헐뜯느라 여념이 없다. 의회를 지배하는 야당의 대표는 단식 농성 중이고, 대통령 스케줄엔 야당 대표를 만날 일정이 없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정쟁은 더 격화될 게 틀림없다. 타협의 정치는 장기 실종 상태다. 성장률이 1%의 늪에 빠졌지만 아무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경제가 성숙하면 성장률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보는 걸까? 그러다 큰코다친다. 남미 여러나라에서 보듯 선진국 문턱에서 미끄러진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장기 저성장은 현실이다. 위기다. 그러나 위기가 닥쳤는데도 위기인 줄 모른다. 이게 더 큰 위기다. 코뿔소한테 엉덩이를 들이받힌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려나.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기자의 눈] 증권사의 잘파세대 공략법…균형은 잃지 말아야

한때 모든 기업들이 ‘MZ’를 외쳤다. ‘MZ패션’, ‘MZ간식’, ‘MZ노조’ 등 마케팅 곳곳에 알파벳 M과 Z를 갖다 붙였던 때가 있었다. 과도한 MZ 마케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이후 기업들의 MZ 바라기 행보는 조금 주춤하는가 했더니 이번엔 더한 놈(?)이 나타났다. 잘파세대의 등장이다. 잘파세대는 Z세대와 알파(α)세대를 합쳐 부르는 말로 1996년생부터 2023년생을 말한다. 갓 태어난 0살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27살까지를 묶었다.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이 잘파세대에 해당한다. UN에 따르면 오는 2025년이면 알파세대는 전 세계 인구의 25%를 차지해 베이비붐세대를 뛰어넘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세대가 될 전망이다. 이들은 경제활동인구에 속하지 않는 10대임에도 소비활동과 금융 거래가 꽤 활발하다. 그 비중도 꽤 높다. 기업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잘파세대는 인생 학업과 시험, 교우관계에 대한 관심만큼 앱테크나 용돈 마련 등 금융 이슈에도 유사한 수준의 관심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설문조사 결과 이들이 최근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금융 분야로 ‘앱테크’가 55%, ‘주식투자’가 19.3%를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행은 물론 증권사들까지도 잘파세대 공략에 나섰다. 앱테크에 익숙한 이들을 위해 앱에 출석 이벤트를 만들어서 보상 포인트를 지급한다거나 자사 유튜브 채널에서 자체 제작 웹드라마를 게재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학교 콘셉트로 꾸민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통해 잘파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주식 투자자들은 본인이 이용해온 증권사 모바일 앱(MTS)을 갈아타기보다는 하나의 증권사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충성고객이 많기 때문에 신규 유입을 늘려야 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기존 투자자보단 미래 고객에 해당하는 잘파세대를 사로잡는 것이 중요한 셈이다. 하지만 너무 잘파세대로만 관심이 집중돼 기존 고객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뒷전이냐"는 불만도 나온다. 유입률만 늘리려다보니 MTS·HTS가 먹통되는 등 오류 피해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증권사 전산 오류는 지난 2020년에는 49건, 2021년 60건, 지난해 68건 발생해 매년 증가 추세다. 올해는 7월까지 집계된 오류만 55건에 달했다. 증권사들이 기존 방식에 갇히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young)해지는 건 바람직하다. 다만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주길 바란다.증명사진

산은 이전 서둘 일 아니다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서울에 본점을 둔 KDB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려는 계획이 착착 진행 중이다. 동시에 반발도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대선 공약이고, 인수위가 정리한 지역공약에도 들어 있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부산 이전에 힘을 쏟고 있다. 당사자인 산은은 물론 주무부서인 금융위원회, 균형발전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반면 산은 노조는 이전에 결사 반대다. 국민의힘 소속이지만 오세훈 서울시장도 반대다. 이동걸 전 산은 회장도 부정적이다. 결정적으로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미온적이다. 부산으로 옮기려면 산은법부터 바꿔야 한다. 민주당이 제동을 걸면 도리가 없다. 1954년에 설립된 산은은 지난 70년 가까이 국가 산업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 부산 이전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살펴보자.◇ 윤 대통령 수차례 약속 윤 대통령은 부산 이전을 여러번 약속했다. 작년 1월 당시 윤 후보는 "외자를 도입해 재벌 그룹이 클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던 산업은행의 기능도 많이 변화했다"며 산은을 서울 여의도에서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당시 윤 당선인은 인수위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제가 부산으로 본점을 이전시킨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그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작년 5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부산 지역 공약을 정리하면서 산은 이전을 못박았다. 이어 작년 8월 경남 창원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에서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산업은행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으로 이전해 해양도시화, 물류도시화, 첨단 과학산업 도시화로의 길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9월 강석훈 산은 회장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국가의 최고 책임자들이 정한 것을 제가 뒤집을 수 없다는 점을 (직원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푸시하는 정부·여당이전 프로그램은 올들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산은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결정했다고 고시했다. 이로써 산은은 수도권에 잔류하는 공공기관에서 빠졌다.7월엔 산은이 모든 기능과 조직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앞서 산은은 3월부터 이전 관련 외부 컨설팅을 진행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9월 7일 "사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올해 초 윤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가 있었다.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고, 용역결과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도 부산 이전을 무조건 A안으로 추진하라는 지시도 했다"고 소개했다. 부산에서 열린 ‘부산 금융경쟁력 제고 대책 마련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다. 이어 김 대표는 "모든 준비가 갖춰졌고 법 하나 고치면 되는데 그걸 안 고쳐준다. 참 기막힌 일"이라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법 하나’는 산은법 4조①항을 말한다. "한국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는 내용이다. ◇ 반대 목소리도 커졌다산은 노조는 지난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 용역까지 조작했다"며 "부산 이전 컨설팅을 전면 백지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사측이 지난 2∼7월 삼일PwC에 의뢰해 진행한 컨설팅 용역 과정에서 대통령의 외압이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지난 7월 노조는 한국재무학회에 자체 의뢰한 컨설팅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산은이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산은 기관으로는 7조원, 국가 경제적으론 15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노조는 산은 고객과 협업기관의 83.8%가 부산 이전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공개했다.민주당의 입장은 지난 3월 이수진 원내 대변인이 내놓은 서면 브리핑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원대대변인은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대통령실 이전을 밀어붙이던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산은 본점을 이전해야 한다면 그 권한은 국회에 있다"며 "대통령 한마디에 국회 동의도 없이 막무가내로 이전 추진하겠다니 깡패가 따로 없다"고 주장했다.오세훈 서울시장의 견해도 주목할 만하다. 오 시장은 작년 4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전세계 어느 나라가 한 나라에 두 개의 금융도시 정책을 구사하는 나라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몇몇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국가적인 견지에서 자해적인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오 시장은 "국토 균형발전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손해 보는 ‘제로섬 게임’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은 지난해 5월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강한 어조로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는 "산은은 국가 정책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기능이 저해되면 큰 일"이라며 "논리적 토론 없이 주장만 되풀이되고 껍데기만 얘기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두 개의 금융중심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말했다.◇ 속내 복잡한 민주당외형상 민주당은 이전에 제동을 거는 분위기다. 그러나 내부 사정은 좀 복잡하다. 부·울·경 출신의원들은 총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일 박재호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2명은 산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산은법 1조(목적)에 지역균형개발을 추가하고, 4조(본점)의 ‘서울특별시’를 ‘부산 금융중심지’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내년 봄 총선이 다가올수록 민주당 안에서도 산은 이전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누구 말이 타당한가산은 본사 이전엔 두가지 논리가 있다. 먼저 국토 균형발전이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한국거래소(부산), 국민연금공단(전주), 한국전력(나주), 한국관광공사(원주) 등 많은 공공기관이 서울을 떠나 전국 각지에 둥지를 틀었다. 올해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특히 서울 집중 현상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수도권 인구가 시나브로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선 게 그 증거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정책은 번짓수를 잘못 짚은 듯하다. ‘부산 금융중심지 육성’은 이전에 찬성하는 또다른 논리다. 2009년 정부는 서울 여의도와 함께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문현동에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들어섰고 거래소, 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캠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연달아 본사를 옮겼다. 부산을 파생상품, 선박금융 등에 특화된 금융중심지로 키운다는 전략도 마련됐다. 그러나 부산에 거점을 둔 외국계 금융사가 사실상 전무한 데서 보듯 부산 금융중심지 사업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 ‘정책금융공사’의 교훈산은 이전의 최대 변수는 내년 4·10 총선이다. 이미 국민의힘은 이전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중이다. 민주당도 부산 민심을 고려하면 완강하게 반대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지난 2021년 초 여야는 부산시장 보궐선거(4·7)를 앞두고 앞다퉈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경쟁하듯 가덕도를 찾았다. 산은 이전을 두고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여야 모두 6년만에 간판을 내린 한국정책금융공사 사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책금융공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가을에 출범했다. 산은에서 정책금융만을 떼어냈다. 정책금융 부담을 던 산은을 국가대표급 투자은행(IB)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정책금융공사를 산은에 재흡수시켰다. 보수 정부가 편 정책을 다른 보수 정부가 뒤집은 셈이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작년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책금융공사 혼선에 대해 "결론적으로 국세가 많이 낭비됐고, 정책 실패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이 총재는 "개인적으로 배운 게 있다면 산은 민영화와 같이 장기간에 걸친 구조 개혁은 여러 정부에 걸쳐서 해야 한다"면서 "당시에는 맞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추진했는데 큰 피해를 본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여러 정부에 걸쳐서 해야 한다’라는 말에 방점을 찍고 싶다. 기능 분리 또는 본점 이전은 산은의 본질을 건드린다. 그런 만큼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성급하게 다루면 정권따라 이러저리 흔들린 정책금융공사 사례가 되풀이 될 수 있다. 산은 강석훈 회장은 지난 4월 부산상공회의소가 주최한 부산경제포럼에서 "갈등 속에서 이전이 아니라 축복받는 이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축복 받는 이전’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청회를 열 번, 스무 번 하더라도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정책금융공사 실책을 반복하지 않는다. 최악은 총선을 앞두고 산은이 정략적 딜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런 일만은 없길 바란다. <경제칼럼니스트>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6월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산업은행 부산이전 당정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E칼럼] 발등의 불

에너지문제 학습의 두 가지 논리적 기초는 석유를 포함한 천연자원의 고갈성(枯渴性)이론과 기후변화(Climate Change)이론이다. 에너지 시장의 동태적 변화와 위기 도래 가능성을 점검하는 고갈성 이론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류복지 창출 주역이라는 논리적 기반을 따른다. 그러나 화석연료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의 주역이다. 이제는 기후변화 차원에서 풀어가는 경우가 많다. 기후변화 이론은 1992년 ‘지구를 건강하게, 미래를 풍요롭게’라는 명제로 열린 UN 리우정상회담이 시발점이다. 악화하는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지속 가능한 개발과 지구 동반자관계 형성을 국제규범화했다. 이보다 훨씬 오래전인 1947년 브라질에서 열린 서반구공동방위회의에서 채택하려다 미국의 소극적 대응으로 무산됐다. 이에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유럽은 독자적 전략구성 필요성에 공감했고 EC(유럽공동체·현 EU의 전신) 구성에 이르렀다. 이같은 유럽의 적극적 기후변화 방지 노력은 대기 온도를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2.5도 범위에서 유지한다는 2015년 파리협정체결의 바탕이 됐다. 우리는 기후변화대응 논리가 2차 대전 이후 미국 단극(單極) 체재를 변화시켜 현재의 다원적 세계질서 형성의 주요 요인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기후변화보다 기상(氣象)변화가 중단기 관점에서는 많은 주목 받는다. 당연히 주요 학습 논리가 된다. 이는 최근 이상기후로 인해 100년 만의 폭우,태풍 등 극한 자연재해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플로리다주에 초강력 허리케인이 강타하고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 지역에는 기습적인 극한 폭우가 내렸다. 캐나다와 미국 서부 및 하와이 등에서의 대형 산불, 유럽의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의 극한 폭우 등이 발생했다. 극한 호우와 태풍,폭염 현상은 중국, 일본 등 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사우디, 남부 아프리카 지구촌 전체에 걸쳐 확산일로다. 이런 비정상적 극한 기상은 주로 열대 태평양 지역에서 유난히 심각하게 발생한 ‘엘니뇨(El Ninos)현상 때문이란다. 남아메리카 페루 및 에콰도르의 서부 열대 해상에서 바닷물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다. 이 경우 대기 상층부 온도를 높이고, 대류현상을 증대시켜 적도 바다 기온을 비정상적으로 높인다. 지구 기상시스템의 원격 소통이 과다하여 지구계 에너지 균형을 깨는 셈이다. 기온이 평년보다 1∼ 2도만 높아도 광범위한 기상이변 발생한다. 이 결과로 남미 아마존 지역과 호주, 인도와 아프리카 남동부 지역은 고온 건조 현상이 많이 발생하며 동부 아시아, 아프리카 북동부, 남미 남동부와 북미 남부지역은 습한 기후가 지속된다. 그 후폭풍은 가혹하다. 2018∼2019년에는 호주에서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고, 2014∼2016년엔 강력한 엘니뇨 발생으로 6000만명 세계인구가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호주 대산호초도 1/3이 소멸했다. 유럽연합(EU)기후변화 통계(C3S)에 의하면 최근 몇 달은 1940년 공식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 세계 해수면 온도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지금의 기온추세는 파리협정의 준수 목표인 산업화 이전 평균보다 약 1.5도를 넘는다. 이에 따라 파리협정에 따른 기후변화 방지 노력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점쳐진다. 앞의 기상 위기들이 집적돼 부정적 파급효과를 확대하기 때문이다. 기상 위기들이 결합· 집적돼 더욱 강력한 기후 위기로 영속화된다. 엘니뇨와 같은 단기·간헐적인 기상 위기의 영향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2016년 국제통화기금(IMF)은 엘니뇨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올해 초에 발표된 스탠포드대학 연구에서는 1982∼1983년과 1997∼1998년 중의 엘니뇨는 각각 4조1000억달러와 5조70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1982∼1983년 경기 하락은 미국 연준의 이자율 상승으로 이어졌고, 1997∼1998년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이에 학계는 개발 도상국들에 대한 엘니뇨의 가혹한 폐해에 주목한다. 특히 우리나라를 포함한 지구 중위도(中緯度) 국가들에 대한 부정적 효과가 매우 크다는 데 견해가 일치한다.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결국 고갈성자원과 기후변화,기상 특성을 종합할 때 전력 중심 에너지 체계가 급속히 진전되는 지금 세계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변하는 태양광, 풍력과 같은 신재생 전력은 급속히 증가하는 데 비해 전력망 안정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원자력, 석탄, 가스 발전과 같은 기저 발전이 감소하며 새롭게 수송부문의 전력수요 급증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이런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만큼 미래 전력 계통 운영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향후 증가할 비용 요소를 식별하는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 이를 위해 신규 송배전망, 안정수급 유지 및 에너지 품질 등의 관리비용 등의 최적화를 위한 단중기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 연료가격 급등에 직면한 한국전력이 정부 규제의 영향으로 200조 원 넘는 부채가 누적된 것은 전략개선 필요의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이런 차원에서 장기 차원 기후변화 전략에 치중해온 기존 정책 기조를 탈피해 단중기 기상변화 대응책 강구가 시급하다. 지금 책임질 일 없는 이념적 기후변화정책보다 화급한 기상악화에 대응하는 민생복지 중심 에너지·환경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영혼 없는 산업안전 정책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기업의 안전문화가 조성되려면 규제기관부터 안전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안전을 제1로 여기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오래 전부터 강조해 온 말이다. 기업의 안전수준을 높이려면 정부의 인프라 조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산업안전 인프라 현실은 어떨까. 정부부터 안전에 대한 철학 부재 속에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이는 조악하고 무분별한 안전규제의 반복 재생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효성 없는 땜질식의 규제가 넘쳐나는 이유다. 안전 관련 법제가 거의 누더기 수준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한 지경이 되었다. 정부에 이론적 수원지 역할을 해야 할 안전학계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아이러니하게 우리 사회의 안전부문 중 학계의 존재감이 가장 적다. 무늬만 안전학자인 자들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안전전문가 행세를 하며 알맹이 없거나 허황된 자문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자문내용이 어떠하리라는 건 불을 보듯 훤하다. 안전인프라 조성에 되레 걸림돌이라는 비난을 들을 지경이다. 안전 관련 중요한 인프라 중 하나인 안전자격증·면허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안전자격증·면허가 실력 향상을 위한 기제로 작용하지 못하고 겉멋 부리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기본서를 학습하지 않고 기출문제 중심의 단편적 지식만 공부해도 너끈히 자격·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렇게 취득한 자격·면허는 스스로 안전전문가가 되었다고 착각하게 하거나 외부에 이들을 안전전문가로 보이게 하는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다. 시험과목을 보면 점입가경이다. 안전역량과 무관하거나 그 향상을 유도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산업안전지도사의 경우 국제적으로 메가트렌드에 해당하는 과목(안전보건경영시스템)조차 포함돼 있지 않고 안전관리에 필수적인 안전심리 과목도 빠져 있다. 그 대신 안전과 별 무관한 경영학, 산업심리와 같은 과목이 들어 있어 수험생에게 큰 혼란과 시간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문제는 자격·면허를 관장하는 당국은 왜곡된 현실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안전인력 부족사태가 발생하자 고용노동부는 안전인력을 벽돌 찍어내듯이 초단기간 속성교육으로 배출하고 있다. 시장에 안전은 별거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폐해는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가뜩이나 미흡한 안전인력의 전문성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데 정부가 앞장서는 꼴이다. 안전관련 학과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는 건 중장기적으로 심각한 후과를 낳을 수 있다. 안전의 기초지식도 없는 사람들을 교수진으로 구색만 갖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겠다는 셈이다. 학생들과 사회를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일은 고용부가 한국기술교육대학교를 통해 앞장서고 있다. 안전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정부가 안전인프라를 훼손하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우리나라에서 안전 일류기업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 기업의 잘못도 있지만 정부의 엉성한 인프라와 시스템 부재 탓이 크다. 이는 고비용 저성과의 산업안전대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도 정부는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설익은 산업안전 대책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기조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안전 일류기업이 나오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정부에 거창한 정책을 기대하지 않는다. 안전을 망가뜨리는 겉멋만 부리는 정책에서 하루빨리 탈피할 것을 바랄 뿐이다. 보여주기식 대책을 양산하고 이행과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먹튀 행정’이야말로 산업안전을 수렁에 빠뜨리는 주범이다. 전문가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가 산업안전 역사 앞에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하기를 촉구한다.정진우 서울과기대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기자의 눈] 日 뻗어가는 韓 기업 ‘성공신화’ 새로 쓰길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잃어버린’ 몇십년을 보내고 드디어 경제가 꿈틀거리고 있다. 디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사실상 벗어났다. 주가가 치솟고 기업들은 활력을 되찾고 있다. 글로벌 분업화 국면에서도 정치·경제적으로 탁월한 선택을 계속하고 있다. 엔저의 착시효과라는 평가도 있다. 대신 우리나라와 수출 시장에서 경합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 모습이다. 반대로 소비시장으로서 매력이 커 보인다. 일본 인구는 올해 기준 약 1억2300만명이다. 우리 기업들은 일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에서 미디어 행사를 열고 ‘갤럭시 Z 플립5’와 ‘갤럭시 Z 폴드5’를 출시했다. 현대차는 작년 2월 일본 시장 재진출을 선언하고 아이오닉 5 등 전기차를 판매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달 초 메이크업 브랜드 ‘헤라’를 현지에서 공식 론칭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앞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대표적인 ‘아이폰 텃밭’으로 삼성 스마트폰은 존재감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토요타 등 현지 브랜드의 기세에 눌려 14년전 ‘시장 철수’ 카드를 꺼내야 했다. 아모레퍼시픽도 2006년 일본으로 향했지만 안착하지 못하고 2014년 매장 문을 모두 닫았다. 달라진 점은 한국 기업들이 ‘최첨단’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을 지닌 폴더블폰, 전기차 등이 일본 공략의 선봉장이다. 현지 업체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확실히 뛰어난 만큼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상당하다. 전장으로 향하는 마음가짐도 다르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 중국의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과거에 안주할 수 없는 게 우리 기업들이다. 경제성장 기지개를 이제 막 다시 켜고 있는 일본에서 성과를 내야만 한다. 그동안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성장해온 게 한국 경제다. 그 중심에는 기업들의 혁신과 도전정신이 있었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일본의 수출품 규제 등을 겪으며 체력도 강해졌다. 일본으로 뻗어가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눈부신 ‘성공신화’를 써 내려가길 기대한다. yes@ekn.kr산업부 여헌우 기자 여헌우 산업부 기자

[EE칼럼] 중국발 요소 공급대란이 던진 과제

미국의 정치·국제관계학자인 마이클 벡클리와 할 브랜즈는 최근 공동으로 발간한 저서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원제 Danger Zone)’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역사상 가장 위험한 구간(Danger Zone)에 이미 진입했다고 설파했다. 그러면서 향후 10년간의 양국의 총력전 결과에 따라 완전히 다른 국제 질서가 펼쳐질 수 있으며, 특히 2020년대 중반까지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양국 간 군사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다소 도발적인 예언을 곁들였다. 마이클 벡클리와 할 브랜즈는 미국 유명 대학 정치·국제관계학 교수인 동시에 둘 다 현재 국방부 등 미국 정보·국가안보 관련 다양한 기관에 자문하는 현역 외교·안보 분야 핵심 전략가라는 점에서 미국 조야에 편만한 대중국 인식과 전략이 엿보인다. 우리에게 주는 함의도 묵직하다. 과거처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중립적 외교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중국을 포위·고립시킬 ‘맞춤형 봉쇄’ 전략을 취하는 미국이 이를 두고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국제 질서를 일반 대중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만든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 내 비료업체에 요소 수출 중단을 지시했다는 소식이 지난 7일 외신을 통해 알려진 것이다. 물론 보도 다음 날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가 공식적인 비료용 요소의 수출 통제는 하지 않으며, 비료용 요소는 수입 다변화가 이뤄져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발 요소수 파동을 몸 소 겪은 소비자들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나라의 요소수입 의존도가 큰 중국이 지난 2021년 10월 석탄 부족으로 요소 수출을 제한하자 호주와 베트남 등에서 부족분 일부를 수입했지만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일부 공장이 멈춰 서고 화물차 운행이 중단됐다. 이 ‘학습효과’로 또다시 공급 대란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재기 등이 발생하면서, 실제로 수입에 문제는 없는 데도 시장에서는 혼란이 빚어졌다. 문제는 이런 공급망 위기는 미·중 갈등과 국제 질서 재편 등 날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제정세와 맞물려 앞으로도 발생빈도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데 있다.농업용 비료나 디젤엔진의 질소 산화물 절감용 요소수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요소’는 보통 암모니아와 이산화탄소를 활용, 보쉬-마이저 요소 공정(Bosch-Meiser urea process)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요소는 암모니아를 활용하는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또 암모니아는 수소에 ‘하버-보쉬합성법’을 이용해 질소와 합성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수소화합물이다. 그래서 요소 역시 크게 보면, 수소 및 수소화합물을 아우르는 범(凡) 수소경제의 한 부분이다. 수소경제 시대를 맞아 세계는 수소, 특히 청정수소 확보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수소 자체를 장거리 파이프라인이나 액화하는 방식으로 국가 간에 이송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 성숙도나 경제성을 고려할 때 사실상의 섬나라인 우리나라나 일본 등은 암모니아를 활용한 해운운송이 보다 적합하다. 멀리는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라 2050년에는 전체 청정수소 수요(약 2800만톤)의 80%를 해외에서 들여와야 한다. 당장 청정수소 발전의무화제도에 따라 2027년부터는 청정수소로 발전해야 하는 데 이때 국내 청정수소 생산의 한계로 인해 상당 물량을 불가피하게 해외로부터 암모니아 형태로 수입해야 한다. 문제는 요소 공급 대란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청정수소·암모니아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공급 안보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중 갈등 등 불안정한 국제 질서 재편과정에서는 그 중요성은 배가 된다. 수급안정은 물론 국가 안보차원에서라도 수소의 수입선 다변화 전략과 함께 수소·암모니아 비축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나라 석유비축을 담당해 온 한국석유공사가 암모니아 등 수소화합물도 사업영역에 포함시켜 취급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석유공사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소관상임위원회를 통과해 본 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석유공사는 현재 운영 중인 석유 비축시설을 암모니아 저장시설로 전환해 저장 공간 임대나 비축사업 진출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다만 석유공사법 개정안은 석유공사가 석유·천연가스와 함께 암모니아도 취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비축시설을 바로 석유에서 암모니아로 용도를 전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입법이 필요하다.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슈&인사이트] 중국인 단체관광, 한중 교류 마중물 삼아야

지난달 중국 문화여유부(문화관광부)가 한국을 포함한 78개국에 중국인의 단체관광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2017년 3월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이 6년 5개월만에 물꼬를 터게 됐다.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이 허용되면서 그 동안 지지부진하던 관련 기업의 주가가 폭등했다. 중국의존도가 높았지만 한중 관계 악화 이후 대체 시장을 찾지 못했던 화장품, 호텔, 면세점, 여행사 등 유관 업종의 주가가 빠른 회복세를 타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첫 중국 단체관광객이 방한하면서 면세점과 명동거리 등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달 말부터 내달 초까지 이어지는 추석과 국경절 연휴를 계기로 방한 중국 단체관광이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 단체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점들은 중국어 가능 직원을 뽑기 위해 분주하다. 중국의 단체관광 허용을 계기로 관광교류는 물론이고 한중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해 정부 당국과 기업들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겪어왔듯이 중국은 공식적인 조치 외에 비공식적인 조치가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큰 나라다. 실제로 한국 단체관광 금지조치를 공식적으로 취한 것은 코로나19와 방역이 명분이지만, 사실상 불허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이후부터다. 표면적으로는 단체간광을 허용한다고 하지만 특정 상황이나 사건을 계기로 언제든지 비공식적으로 단체관광을 가로막는다. 특정국에 대해 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여론을 조성하기도 한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이 중국인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면서 일본 단체관광 취소와 중국 내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한국 단체관광을 허용한 것만으로 중국 관광객이 사드 배치 결정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는 여전히 그다지 높지 않으며, 한중 관계가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더 많은 중국인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중국 여행사들과 협력은 물론이고 수천, 수만의 직원을 해외관광 보내는 기업들과도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항공편도 늘려야 한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세계 각국이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상당한 비호감도를 가지게 됐다. 한국인 역시 한한령을 계기로 중국에 대해 비호감도가 대폭 상승했다. 방한 중국인은 적어도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한국을 찾지 않은 중국인에 대해서도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비우호적으로 대하는 국가를 방문하고 물건을 구매할 중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단체관광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남아 있는 게임, 드라마, 영화, 공연 등 한류 콘텐츠에 대한 제한을 풀도록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 한류가 한국 제품에 대한 구매 열기로 확장되도록 해 더 커진 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 한일, 한미일 안보협력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경직된 사고로 한국의 안보를 위해 스스로 밥그릇을 걷어차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와 반도체 수출 통제 등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의 주요 인사들이 중국을 방문해 극단적인 충돌을 피하고 새로운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이 지나치게 중국과 거리를 둘 경우 미중, 미일 관계가 회복된 후에도 한중 관계가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기자의 눈] 국정감사, 에너지위기 극복에 집중하길

2023년 국정감사가 한달 앞으로 다가 왔다. 여야의 대치가 극심한 데다 내년 총선까지 앞두고 있어 ‘정책 감사’ 대신 ‘정치 감사’가 될 것이란 우려가 어김없이 나오고 있다. 지난 정부 내내 탈원전 논쟁이 뜨거웠지만 정치적 이념 다툼의 연장선이었을 뿐 에너지시장과 정책의 구조적 문제 해결, 선진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안보 상황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글로벌 에너지위기로 수년째 이어진 한국전력공사의 적자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고 있다. 상승세로 돌아선 국제유가와 환율은 에너지수입국인 우리나라에 큰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연말에는 전력시장이 붕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한전 사장이 아직 공석인 상황에서 올해 남은 기간 전기요금 인상은 사실상 추진되기 어려워 보인다. 남은 카드는 연말에 한전의 채권 발행한도를 또 다시 대폭 상향하거나 정부의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현재 여야의 모습을 보면 이같은 합의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사실 이 모든 사태의 근본 원인은 에너지분야를 시장이 아닌 정부와 국회 등 정치권이 통제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정치권에서는 에너지분야를 그저 ‘시끄럽지 않게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분야’, 혹은 ‘정쟁의 도구’로만 바라봐왔다. 또 여론, 복지 등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우선순위로 삼으면서 합리적인 시장원리에 따른 가격체계의 운용, 적절한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지배구조의 설계는 나중에 챙겨도 될 일이라고 방치한 결과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됐다. 그 결과 윗 돌 빼서 아래에 고이는 식으로 급조했던 에너지 관련제도와 거버넌스가 이제는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급한 대로 임시방편으로 마련했던 제도와 가격체계가 여러 에너지원을 막론하고 이해집단과 기득권을 형성, 합리적인 에너지의 생산과 배분을 위한 제도적 개혁 산업구조 개편 가격체계 합리화를 모두 가로막고 있다. 지금은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에너지부문에서도 합리적인 자원배분과 시장원리를 통한 제도개혁과 이를 통해 에너지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 달성, 에너지원별 이해관계 논쟁이 아닌 우리나라의 에너지안보를 지키기 위한 정책을 발굴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길 기대한다. jjs@ekn.kr전지성 정치경제부 기자.

[이슈&인사이트] 플라스틱은

최근들어 범 지구적인 환경 관련 이슈로 기후위기와 함께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인류를 위협하며 가장 큰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세계적으로 연간 3억톤에 달하는 플라스틱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플라스틱은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50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폐플라스틱은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없다. 해마다 1000만t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 든다. 북태평양에는 한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폐플라스틱 섬이 생겼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플라스틱 생산량과 소비량은 줄곧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배출량도 세계 최고 수준을 다투고 있다. 이렇게 플라스틱 세상이 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값싸고 질기고 사용의 편리함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원래 지구상에는 없던 물질이다. 인간이 현대의 발달된 화학 기술로 만들어낸 고분자중합 물질이다. 플라스틱은 원유를 정제한 뒤 남은 찌꺼기인 나프타(Naphtha)를 다시 석유화학적으로 열분해크래킹 (Cracking) 해서 만든다. 플라스틱제조에는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치지만 경제성 규모(economic scale)로 생산하기 때문에 원가가 낮은 PE, PP, PS, PET 등의 봉투와 용기 형태로 사용용도에 맞춰 다양한 포장재를 양산할 수 있다. 폴리에틸렌 계열의 이 물질이 결국은 탄생한 지 채 100년도 안돼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인체에 해를 주며 지구를 병들게 하는 주범이 됐다. 문제는 버려지는 폐 플라스틱의 유해성이다. 태울 때 다이옥신과 같은 독성물질을 배출하고, 일부 물질은 환경호르몬을 만들어 면역기능을 떨어뜨린다. 분해 과정을 거치면서 지름이 1∼2㎜ 이하인 미세플라스틱으로 바뀌어 동식물에 축적돼 생태계를 교란한다. 결과적으로 인체에 해를 주고 지구를 위협한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묘안이 없는 게 현실이다. 플라스틱을 대체할 만한 값싸고 질기고 양산이 가능하며 친환경적인 새로운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제품 생산을 줄이고, 덜 쓰고 재활용해서 덜 버리는 소극적인 방법 밖에는 다른 현실적인 방안이 없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대안으로 플라스틱 재활용률 제고를 연간 수백억원씩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플라스틱 사용 자체를 줄이는 게 먼저다. 그런데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인다. 앞뒤가 안 맞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플라스틱 사용 자체를 줄이는 묘안은 없을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플라스틱 제품을 ‘일회용’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한번 쓰고 버린다’는 이런 고정 관념이 플라스틱의 부분별한 사용과 남용,폐기 등 플라스틱 공해를 조장한다. ‘일회용’이라는 근본적인 바탕에는 쉽게 구할 수 있고 값이 싸다는 점이 깔려 있다. 가령 비닐봉지 하나가 수백,수천원이라고 하면 한번 쓰고 버릴까? 분명한 것은 플라스틱은 내구성이 강하기 때문에 아무리 비닐 봉지나 스티로폼 상자라도 잘만 관리하면 여러 번 사용할 수 있고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사용량이 줄기 때문에 생산도 줄고 폐플라스틱의 배출도 줄일 수 있다.플라스틱을 두고 ‘20세기에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어차피 대체할 수 없다면 문명의 이기로 제대로 써야 한다. 그러려면 가계,기업,정부 등 모든 소비자들이 최대한 소중한 마음으로 아껴서 쓰는 습관을 갖는 게 중요하다.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현재의 소비행태로는 플라스틱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그 출발점은 ‘일회용’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류덕기 수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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