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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추경, 정쟁에 휘둘릴 시간이 없다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 다시 여야 정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 13일 35조원 규모의 '슈퍼추경'을 제안한 이후 정치권에서는 찬반의 목소리가 거세지며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이번 추경에서 갈등이 첨예한 대목은 '국민 1인당 25만원 소비쿠폰(지원금)' 부분이다. 민주당의 안을 들여다보면 '소비 진작 4대 패키지' 가운데 국민 1인당 25만원의 소비쿠폰을 지급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및 한부모 가족에 추가 1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위해 전체 추경의 3분의 1 가량인 13조1000억원이 투입된다. 민주당의 추경안이 발표되자마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라벨갈이 추경"이라며 몰아세웠고,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재명 대선용" “나라를 망친다" 등의 자극적인 발언까지 불사하고 있다. 이는 1인당 25만원 지원금을 현금살포의 또 다른 형태이자 조기대선의 포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탄핵 국면 이후 조기대선으로 정치적 환경이 급변할 경우 가뜩이나 불리한 선거 환경에서 민주당에 표심을 도와주는 결정은 하지 않겠다는 내심이 작용했을 법 하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추경 편성에 공감대를 이루는 듯 보였던 상황이 급반전 한 데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말 바꾸기가 한몫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전 국민 25만 원 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지만, 불과 보름 만에 이를 뒤집는 추경안을 나왔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는 등 당내 불협화음이 이어지고 있다. TK(대구·경북)를 찾은 김부겸 전 총리는 “숨넘어가는 환자 앞에서 치료방식을 두고 의료진이 싸우는 꼴"“이라며 “민주당이 통 크게 양보하자"고 호소했고,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 역시 “민생회복 소비쿠폰만 포기하면 (국민의힘이)즉각 추경을 할 수 있나"라며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진 위원당의 달라진 말이 원래의 의도라면, 이렇게 쉽게 포기할 지원금을 당대표의 말 바꾸기 논란까지 부르며 주장한 진의가 의심스러워진다. 게다가 35조로 추경의 규모가 갑자기 늘어난 것과 관련해서도 의구심은 피하기 힘들다. 국민의힘의 무조건 적인 반대를 전제로 한 민주당 일부의 수읽기가 아니였냐는 궁색함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결국 민주당이 추경에 대한 절심함이 최우선이라면, 이제는 행동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통큰 양보'가 됐건 '대의를 위한 절심함'이 됐던 민주당은 한발 물러서는 협치로 여당인 국민의힘에 공을 넘기고 압박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트럼프 2기의 관세압박과 국내 경기둔화 등이 이어지며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삶은 생존의 문제로까지 추락해있다. 민주당 추경안이 발표되던 13일, 국회 앞에서는 소상공인연합회 주최의 추경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들의 플래카드에는 “소상공인 다 죽는다"라는 호소가 적혀있었다. '살려달라'는 그들의 애원에 화답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령이 아닐까. 그리고 그 시간은 이제 몇일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20일 최상목·우원식·권영세·이재명이 참여하는 국정협의회 4자 회담이 열린다. 이날만큼은 추경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와 협의가 기다려지는 이유가 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윤석열 대통령 형사재판의 첫 공판준비 기일이자, 헌재의 탄핵심판 10차 변론 기일이다. 정치권의 탄핵 찬반 주장들과 아스팔트의 목소리가 얼마가 거세질지 두려워진다. 그 목소리에 묻혀 추경을 정쟁의 대상으로 되풀이하거나 '찻잔 속 태풍'으로 위축시키는 4자회담이 되어서는 안된다. 김현우 기자 kimhw@ekn.kr

[기자의 눈] 유가족 요구가 전문성 삼킨 제주항공 2216편 사고 조사

어제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2216편 참사 사망자 179명에 대한 49재가 열렸다. 유가족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강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해당 사고 조사를 이끌어야 할 장만희 전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이 “건설교통부·부산지방항공청장 출신이어서 셀프 조사의 우려가 있어 이해 관계가 의심된다"는 유족 측 주장을 국토교통부가 적극 받아들여 제척됐다는 점이다. 항공기계공학을 전공한 장 전 위원장은 대한항공 정비본부에서 경력을 시작해 건교부에서는 항공기 안정성·항공사 안전 감독·사고 조사 등을 담당한 바 있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항행 위원 활동 이력이 있다. 그런 만큼 일평생 항공 사고와 예방 분야에 몸 바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에서도 “국내 최고 전문가를 배척하면 조사를 어떻게 하느냐"며 말이 많았다. 항공 사고 조사는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고도의 기술적 검토가 필요한 영역이어서 △기계적 결함 △조종사 과실 △정비 문제 △기상 요인 등 다양한 변수를 종합 고려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관련 경험과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 필요한데, 논리나 합리성이 아니라 유가족의 일방적 요구가 전문가를 밀어낸 꼴이다. 국토부는 항공 산업 진흥·규제·사고 조사까지 전권을 가진 기관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는 분명 개선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토부가 모든 인력 풀을 가진 상황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단순한 출신 배경 하나로 배척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심지어 유가족은 국토부를 못 믿겠다며 사고 조사에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를 넣어달라고까지 했지만 당국이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며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항공 선진국들은 사고 조사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기하고자 전문가를 투입해 철저히 검증한다. 그 덕에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세계 최고의 항공 사고 조사 기관이라는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누가 조사하느냐를 두고 예송 논쟁이 벌어지고, 정작 중요한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일이 반복된다. 항공 사고 조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 원인 분석이 아니라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특정 집단이나 정서가 개입해 조사 과정을 좌우한다면 결과의 공정성은 물론 재발 방지 대책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전문가를 무시하는 반 지성주의적 사회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사고 조사에서 중요한 건 당국을 믿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언제 일어날지 모를 다음 번 사고에서도 같은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김한성 칼럼] AI 시대: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우리는 AI 기반 추천 알고리듬을 통해 개인화된 뉴스와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 콘텐츠 모더레이션 과정은 점차 사람에서 AI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가 정보를 접하고 비교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검색창에 질문을 입력하면 즉각 답을 내놓고, 온라인 쇼핑몰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제품을 먼저 제안해 준다. 하지만 정보가 넘쳐나는 현 상황에서 놓치고 있는 점은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세상에서,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질문이 소멸되면 사고가 정체되고 선택의 폭도 제한된다. 일부 디스토피아적 상상 속에는 사람들이 의문을 품지 못하도록 통제되거나 쾌락에 빠져들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결과 진실이 무엇인지조차 모호해지듯, 현실에서도 우리는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이 정보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같은 물음은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선택을 지키는 핵심 열쇠다. 질문이 단순한 호기심 해소에 그치지 않고 사고를 심화하는 이유는, 학습 자체가 '물음표'에서 시작해 '느낌표'로 끝난다는 통찰과 맞닿아 있다. “왜?"라는 물음을 던질 때 원인을 찾게 되고,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방법을 모색하게 되며, “그래서?"라는 의문을 통해 결과를 정리하고 행동으로 옮길 계기를 마련한다. 이렇듯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사고의 동력을 확보해 주며, 그 과정에서 창의성, 지적 호기심,그리고 비판적 사고가 함께 자라난다. 비즈니스 환경에서 AI 활용과 질문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대다수가 AI를 도입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현재, 다음과 같은 핵심 질문들이 기업의 성공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AI 도입 전 필수적인 질문으로 “이 기업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ROI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필요한 데이터 인프라는 갖춰져 있는가?" 그리고 AI 운영시 검증 질문으로 “알고리즘의 판단 기준은 투명한가?",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는가?", “지속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이다. 질문은 이제 인간만의 소통방식이 아니다. AI와의 소통도 결국 질문에서 비롯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은 AI에게 보다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 질문을 정교하게 구성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보다 “고객 만족도를 높이면서 예산을 20% 절감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제안해 달라"는 식으로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면 훨씬 더 정밀한 결과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 즉,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어떤 답을 얻느냐를 결정한다." 이는 AI 시대의 핵심이 기술자체라기 보다는 질문을 다루는 방식이며, 질문하는 능력이 AI시대의 경쟁력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AI가 점점 더 많은 영역을 자동화하더라도, 최종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기술을 올바르게 활용할 지를 결정하는 것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만약 질문 자체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기술의 편의에 휩쓸려 핵심 가치를 놓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역할은 옳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크고 작은 혁신이나 변혁은 언제나 “왜?"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기존 관행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새로운 해결책이 모색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질문은 계속해야 된다. “내가 접하는 정보는 어떻게 선택된 것인가?"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AI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편향되었는지, 특정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닌지를 살펴볼 수 있다. “AI가 내린 이 결정은 어떤 기준을 따랐는가?"라고 질문하면, AI 시스템이 활용한 데이터의 출처와 분석 방식에 대해 검토할 기회를 얻는다. 또한, “기존의 방식이 정말 최선인가?"라는 의문을 던질 때, 새로운 해결책을 찾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놀랍게도 이러한 질문들이 쌓이면서, AI 기술은 단순히 효율성을 추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춘 사회적 시스템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무비판적으로 AI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대신,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검토할 때, 우리는 데이터의 편향을 줄이고, 더 나은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며, 궁극적으로 인간 중심의 AI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AI에게는 물론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자. 이때 생겨나는 다양한 물음들은 2025년 2월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여러 색과 무늬가 어우러진 하나의 타피스트리(Tapestry)로 직조해낼 것이다. 이 타피스트리는 우리가 어떤 고민을 나누었고,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성찰하고 성장했는지를 머지않아 선명하게 기록해 줄 것이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만큼, 우리는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가치와 목적을 따르도록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김한성

[이슈&인사이트] 대내외 경제환경 초비상…국정책임자 공백상태 대응에 한계

이강윤 정치평론가 내란 충격과 사법 처리로 두 달 넘게 국정이 사실상 스톱 상태다. 그러나 국제경제환경은 격변중이다. 미국 트럼프정권 발 관세전쟁과 이차전지-에너지-자동차산업정책 전환 등 대내‧외 경제환경이 연일 초비상인데 국정 컨트롤타워 부재상태여서 대응에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경제구조는 대외의존도가 심하기 때문에 매우 엄중한 국면이다. 정치권은 사법적 판단과 결정은 일단 사법부에 맡기고, '경제 비상대응'을 선언, 여야 불문 공동 대처하는 게 절실하다. 경제는 특히나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헌재 심리는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보다 훨씬 비상한 관심을 불러모았다. 내란의 충격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헌재 심리가 녹화중계되면서 법정 장면도 국민들이 속속들이 알게 됐다. 몇몇 장면을 점검한다. 재판정 예의와 정중함 눈길…모르쇠 답변태도는 유감 먼저 김형두 헌법재판관. 부드럽고 나즈막히 그러나 또박또박 묻는 태도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예의갖춰 질문하고 치밀하게 신문했다. 핵심만 간결하게. 물론 예단은 없이. 문형배 소장대행도 맥점을 짚는 질문으로 국민들이 헌재 심리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흰 머리에 흰 눈썹이 눈에 띈 정형식 재판관은 집요함과, '칼같이 각잡힌 깐깐함' 그 자체였다. 다른 재판관들도 정중하게 극존칭으로 묻고 말했다. 증인과 참고인, 그리고 이들을 압박하거나 캐물어야 하는 양측 대리인단 변호인들도 예의갖추려 애쓰는 게 확연했다. 피소추인(윤석열)이 그렇게 공손한지, 공손할 수도 있는지 처음 알았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재판정의 이런 정중함과 격조는 헌재여서 그런 건지, 헌재만 그런 건지 긍금했다. TV 녹화중계를 의식해 예의를 차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건 일반 민‧형사 법정과는 사뭇 다른 상호 정중함이 눈길을 끌었다. 전반적으로는 이렇게 정중한 가운데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신문이 진행됐지만, 실망스러운 대목도 있었다. 내란 혐의 형사재판을 이유로 “답변이 제한됩니다"라는 비문법적 한국어를 계속 되뇌며 묵비로 일관하는 사령관들과, “계엄이 겨우 두 시간 만에 끝났고, 피해도 없었으니 내란은 더더욱 아니"라는 피소추인의 변명과 책임떠넘기기를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홍장원 증인-정형식재판관 신문 때 긴장 최고조…尹도 가세 양측 소송대리인(변호인)보다 더 치밀하고 논리적이며, 발음과 문장도 똑 부러진 홍장원(전 국정원 1차장) 증인도 시선을 모았다. 등허리를 직각으로 세워 꼿꼿하게 앉아 AI급 기억력과 빈 틈 없는 논리로 대통령측 추궁에 대응해 화제가 됐고, 피소추인(윤석열)이 직접 나서 홍장원 증언을 공박하기까지 했다. 홍장원 증인을 보고있자니, 다리미질 자국이 칼같이 서있는 제복의 바지가 연상됐다. 홍 증인이 정형식 재판관과 벌인 국어사전급 설전은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지만, 결론은 조금 김이 빠졌다. “방첩사령관의 이재명 한동훈 등 14~16인에 대한 검거 요청이 아니라 검거 지원요청인데 왜 '지원' 두 글자를 빼고 메모했느냐"는 정 재판관의 추궁은 집요했다. 그러나 번짓수가 조금 빗나간 게 아닌가 싶었다. 자구(字句) 천착이 지나쳐 활자에 매몰된 훈고학자같달까. '지원이라는 두 글자가 대통령 탄핵여부를 가를 만큼 중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의 긴장은 결국 홍장원 증인이 '네…그 말씀이 옳으십니다'라는 듯, “급박했더라도 메모를 엄밀하고 정확하게 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서야 비로소 국어논전은 끝났다. 각 당 경제대응방안이 수권능력 테스트이자 국민들 채점포인트 헌법재판소가 엄정하면서도 신속한 결론을 내려, 나라와 국민이 비상계엄내란의 충격을 “싹 다 정리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특히 경제 쪽에서 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어보이는 '국정 겨울잠' 상태가 두 달 넘게 지속중인데, 문제는 앞으로도 최소 석 달은 더 갈 것 같다는 점이다. 여야의 각성과 공동 대응을 촉구한다. 그게 수권 능력 테스트이자 국민들의 채점 포인트라는 것을 각심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걱정인 것은,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조기 대선에서 어느 정파가 승리하든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금같은 정치적 내전상태가 완화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진영 대결의 정점 구간에서 장기 교착상태이기 때문이다. 서부지법난동 등 극우 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극우 시위대의 인권위 점거 등 곳곳에 불안 사태가 지속중이다. 서울 북촌 가회동 헌법재판소 마당에는 흰 소나무, 백송(白松)이 한 그루 있다. 백송은 기상과 고절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진다. 심각하게 훼손될 뻔한 민주공화국의 정체와 기상을 다시 세우는 명징한 결정문이 헌재에서 곧 낭독되기를 기대한다. 비상계엄령 발동 이후, 나라와 국민의 일상이 신진대사를 최소화하며 겨우 생명현상만 유지하는 겨울잠과 흡사하다. 겨울잠에서 깨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곧 봄이다. 새로운 봄을 맞아야 한다. 이강윤

[신율의 정치 칼럼]또다시 국민 소환제?

지난 2월 10일 이재명 대표는 국회 대표 연설에서 '국민 소환제' 도입을 제안했다. 국민 소환제란, 국회의원을 임기 중에라도 그만두게 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주민 소환제를 실시하고 있다. 주민 소환제는 선출직 지자체 단체장을 포함해 시의원, 도의원. 군의원 등을 임기 중에 소환하는 제도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소환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소환제를 실시하는 나라를 꼽자면, 영국, 대만,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벨라루스, 키리바티, 키르기즈스탄, 나이지리아, 에디오피아, 팔라우 정도다. 국민 소환제를 실시하는 국가들 중에,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나라는 영국과 대만 정도다. 영국의 경우, 하원의원들에 대한 국민소환이 가능한데, 소환 절차를 보면, 소환 원인 발생 6주 이내에 지역 유권자의 10% 이상만 소환 청구에 서명하면 국민소환이 가능하다. 투표 절차는 필요 없다. 투표가 필요 없는 이유는, 소환 대상이 형사 문제로 기소돼 실형이 확정된 의원들이기 때문이다. 즉, 범법을 저지른 의원에 대한 실형 선고가 '확정'되면 비로소 소환 대상이 된다는 것인데, 이를 보면, 영국식 국민 소환제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원들이 범법 행위로 인해 실형이 확정되면 자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국민 소환제는 이런 영국식이 아니라, 해당 지역구 주민의 '일정 수'가 소환 청구를 하면 투표를 통해 소환을 결정하는 방식일 것이다. 이런 국민 소환제 도입 주장과 관련해 몇 가지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민주당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국민 소환제를 약속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그 실현을 담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2018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개헌안을 공개하며 국민 소환제 도입을 주장했고, 2020년 21대 총선 공약으로 국민 소환제를 내세웠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도, 민주당의 이낙연 당시 후보와 이재명 당시 후보 모두 국민 소환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놓았었다. 이런 수차례에 걸친 대국민 약속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여태 국민 소환제를 입법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았었다. 21대 국회와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들을 자주 단독으로 통과시켰는데, 왜 국민 소환제는 '예외'였는지가 궁금하다. 그러니까 실현 의지에 의구심을 갖는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할 점은, 지역구 의원은, 지역 주민들의 소환 청구로 국민 소환제를 실시할 수 있지만, 비례 대표 의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도 궁금하다는 점이다. 비례 의원들을 소환하겠다고 국민 투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국민 소환제 도입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도 병행돼야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 말고도, 현재의 정치적 양극화가 판치는 정치판 속에서 국민 소환제를 도입하면 정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달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민 소환제를 실시하면, 국민 소환제가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압도적 다수당의 국회 독주를 보면서, 국민 소환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난관이 있다는 점이 고민이었다. 국민 소환제를 위해 개헌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그런 고민 중 하나다. 이재명 대표가 국민 소환제를 약속한다면, 이런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대표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더욱 추락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허언이 아니기를 바란다. 신율

[EE칼럼] 에너지정책은 경험 삼아 해볼 도전이 아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독일 정부는 원전의 단계적 폐쇄를 결정했다. 2022년 말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려 했지만, 마지막 남은 원전 3기는 러-우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때문에, 2023년이 돼서야 중단했다. 1961년 첫 원전을 가동한 이후 62년 만이다. 대신 독일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80%까지 늘리려 했다. 올겨울 독일은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 현상을 자주 겪었다. 이 현상은 어둡고 바람이 멈춘 상태다. 바람이 잦아들고 해마저 비추지 않자,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이 동시에 급감하는 '녹색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 그 빈자리는 화력발전이 채웠다. 그 여파로 지난해 말 독일의 화력발전은 한 달 만에 79%나 늘었다. 전기요금도 급증했다. 작년 12월 12일, 해가 진 직후인 오후 5시 전력 도매가격이 MW당 936.28유로로, 재작년 평균 78.51유로의 12배까지 뛰었다. 제철소 등 일부 사업장은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조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결국 지난달 “가스 화력발전소 50개를 짓겠다"라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의 폭탄선언이 나왔다. 그는 차기 독일 총리로 유력한 인사다. 1979년 3월 TMI-2 원전 사고 후, 현장을 방문한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새 원전을 짓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 이후 30여 년간 신규원전 건설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미국 원전 공급망이 훼손되고 원전 건설 역량도 크게 약화 되었다. 2009년 건설을 시작한 보글(Vogtle) 3‧4호기의 애초 예상 가동 시기는 2016년과 2017년이었으나, 건설사 파산 등으로 건설 기간이 늘어나 2023년 7월과 2024년 4월이 돼서야 가동에 들어갔다. 건설비용도 애초 추정치보다 2배나 많은 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2조 원이 들었다. 2024년 4월 29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들 원전이 미국에서 건설되는 마지막 대형 원전이 될 것이며, 원전업체는 대형 원전 건설을 더는 추진하지 않고 소형원자로(SMR) 개발로 방향을 전환했다"라고 평가했다. 올해 1월 14일,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회사가 정부 소유 땅에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건설을 허용하고, 데이터센터에 전력공급을 위한 청정에너지 전력원을 이들 회사가 확보할 것"을 요구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 전력원에는 원자력 발전과 SMR이 포함돼 있다. 전임 정부 정책 지우기에 열심인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도 이 행정명령은 철회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안정적 전력 공급원 확보에 얼마나 진심인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도 어떻게든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력 가격은 따질 경황이 아니다. 전력 생산자와 직접 전력구매계약을 통해 장기 계약을 맺고, 죽었던 원전도 살려낸다. 지난해 9월 컨스텔레이션에너지사는 TMI-1 원전을 재가동하여 20년간 전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TMI-1 원전은 1974년 상업 운전을 시작해 2019년 영구 정지됐던 원전이다. 이런 원전을 2028년부터 재가동하려고 한다. 이게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기후위기 대응은 물론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을 위해 전력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삼성전자 제2공장은 10GW 이상, SK 하이닉스 신규공장은 7.5GW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SMR 25기 분량이다. 우리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2개 공장에서 필요한 전기만 이렇다. 다른 산업과 운송 부문까지 고려하면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대로라면, 2038년까지 원전은 4.9GW 추가되지만, 재생에너지 설비는 72GW나 추가된다. 이마저도 정치적 흥정으로 신규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리려 한다. 이 많은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섣부른 정치적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독일과 미국 사례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 이영표 해설위원의 명언이다. 에너지정책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미래를 걸고 경험 삼아 도전해 볼 일이 아니다. 증명된 원전의 확대가 꼭 필요하다. 문주현

[이슈&인사이트] 암호화폐와 달러화의 악어새와 같은 공생관계가 가능할까?

50대 이상 세대는 어린시절 어머니나 할머니가 시장에 가실 때 “쌀 팔러 가"라고 하시고는 고등어, 두부 등 저녁 찬거리만 들고 오신 것을 기억할 것이다. 쌀은 팔지도 않은채 쌀 팔러 가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오랜 기간 쌀이 우리 경제의 상품화폐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에 쌀을 들고 가면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그러니 돈을 들고 찬거리를 사러 가실 때에도 “쌀 팔러"가신다는 언어습관이 그대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당시 쌀은 자체로도 소비 가능한 상품임과 동시에 화폐로도 사용되었다. 현대 경제가 크게 성정하고 화페 및 금융시스템이 정교해짐에 따라 쌀과 같은 상품은 화폐기능을 잃게 되고, 대신 사용가치는 없지만 국가가 가치를 보증하는 명목화폐만 남게 되었다. 신뢰를 바탕으로한 명목화폐는 현대 경제시스템의 근간이다. 상품화폐야 생산된 상품이 있어야 하지만 명목화폐는 발행만 하면 바로 사용이 가능하며, 현금 외에도 전자 신호로만 존재하는 형태라도 발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명목화폐는 국가가 가치를 보증해야하고 화폐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야 가치가 보존될 수 있다. 이렇게 명목화폐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발행 당시에는 반드시 발행량에 준하는 담보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금이 담보로 활용되었으나, 금의 보유량을 늘리는 것보다 경제의 성장속도가 더욱 빠르게 되자 국가들은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화폐를 발행한 국가들은 그만큼의 국채를 발행해야하며, 이는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미국정부가 채권을 발행하여 시장에서 돈을 끌어다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 미연준에 채권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경우 새로운 화폐가 발행될 수 있다. 이에 세계의 유동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달러화도 국제금융 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어 금리와 미정부채 수요, 글로벌 정세 등이 달러화 증감에 중요한 요소가 복잡다단하게 연관되게 되었다. 글로벌 무역뿐만 아니라 원유결제, 외환결제 등이 달러화로 이루어지며 미국 외에 전세계 주요 국가들도 달러화를 미정부채 등 달러자산으로 다량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미국이라 하지만 각국의 이해가 얽혀있는 현재, 달러화에 무한한 신뢰를 보낼수만은 없을 것이다. 사실 미정부채가 수십년간 축적되고 미국의 재정적자, 무역적자가 깊어감에 따라 달러화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지 오래다. 이에 복잡한 국제정세로 일부 국가들은 미정부채 보유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달러화 위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달러를 대체한다는 금에 대해 수요가 증대되어 금 한 돈 가격이 50만원에 육박하기에 이르렀고,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어 달러화 위기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에 2008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달러화에 대한 회의론을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돈을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은 매우 큰 권력이다. 역사적으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 지도자는 화폐시스템부터 손을 봤으며, 명목화폐를 찍어내자마자 발생하는 주조차익은 국가권력을 확장하는 재원이 되었다. 흥선대원군도 기존 화폐에 대한 일당백이라는 당백전을 발행하여 경복궁을 증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화폐에 대한 신뢰를 잃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등 화폐시스템의 기반이 흔들리게 되면 결국 권력도 무너지게 되어있다. 역시 흥선대원군 이후 구한말의 상황이 이를 입증해준다. 제 아무리 슈퍼파워라는 미국도 달러화에 대한 신뢰를 잃고 달러화 기축통화 시스템이 흔들리게 되면 국제정세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지위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미국도 이를 잘 알기에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과 같이 미정부채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이벤트에 기민하게 대응해왔고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2.0 시대에는 새로운 담보를 확보한 듯하다. 트럼프 미대통령은 달러패권을 위협한다던 암호화폐를 오히려 역으로 활용하여 달러화의 지위를 견고히 하고자 한다. 이론적으로 비교적 음지에서 통용되던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스테이블 코인의 준비자산을 미정부채로 규제함으로써 가능하다. 스테이블 코인은 갖은 이슈에도 불구하고 그 편리성과 활용 가능성으로 인하여 이미 발행량이 급증하고 있으며, 국내 소규모 무역상들도 스테이블 코인으로 대금을 결제받고 있다고 한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양성화 및 제도화로 사용량이 증가할 경우 미국채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대되고 이는 미정부채 금리를 낮추는 동시에 미국 재정적자 및 달러화 신뢰도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에 들어 이제껏 달러화를 위협할 것이라는 암호화폐에 대한 시각을 긍정적으로 가져가는 데에는 달러와 암호화폐 사이에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도 미국에 움직임을 주시하고 암호화폐 시장을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금리문제를 한은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채 수요 저변을 확대하여 중장기 금리가 하락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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