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코인 시장이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발생한 초대형 보안 사고에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수조원대 가상자산이 유출된 것으로 추산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도 커졌다. 북한 해킹 조직이 공격을 주도했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가상자산 업계 전반의 보안 역량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30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해킹 사고로 약 63억달러(약 8조4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거래소는 긴급 보안 조치에 착수해 입출금을 일시 중단했으며, 피해를 입은 고객 자산은 회사가 전액 보상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번 공격의 배후로는 북한 해킹 조직이 지목됐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TRM랩스는 북한과 연계된 해킹 그룹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가 이번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TRM랩스는 이번 사건을 가상자산 업계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탈취 사례로 평가했다. 트레이더트레이터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지난해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비트에서 발생한 15억달러 규모의 자산 탈취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해킹 활동을 지칭할 때 사용한 명칭이다. 북한 연계 조직이 대형 거래소를 겨냥한 공격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경계심도 높아지고 있다. 바이낸스가 공개한 초기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격자는 개발·운영(DevOps) 엔지니어의 노트북을 먼저 침해한 뒤 거래소 서비스 컨테이너에 접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정상적인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출금 명령을 실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TRM랩스는 고객 출금과 같은 거래 처리를 위해 인터넷에 연결된 핫월렛의 거래 서명 시스템이 공격받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온라인 환경에 노출된 지갑의 인증·승인 체계가 뚫렸다면 거래소 내부 시스템의 보안 관리에도 허점이 있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바이낸스는 사고 직후 업계 파트너들과 공조해 유출 자산 추적과 동결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까지 온체인상에서 동결한 자산은 약 30억달러 규모라고 밝혔다. 거래소는 “모든 손실은 보험기금(SAUF)과 회사 자금으로 보전할 예정이며 사용자 자금은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보안 점검을 마칠 때까지 입출금을 제한하고 공격에 노출된 주소의 접근 권한도 폐쇄했다. 테더와 서클 등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도 대응에 나섰다. 파올로 아르도이노 테더 최고경영자(CEO)는 엑스(X)를 통해 15억달러가 넘는 테더를 동결했다고 공개했다. 제러미 올래어 서클 CEO 역시 바이낸스 취약점 악용과 관련한 보고를 접수한 뒤 8억달러 상당의 코인을 동결했다고 밝혔다. 다만 자산을 동결하는 것과 피해 금액을 실제로 회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글래스노드는 이번 공격으로 빠져나간 자산이 약 53억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 가운데 테더가 16억6000만달러로 가장 많았고, 비트코인 1만7985개(약 14억5000만달러), 서클의 USDC 7억6300만달러 등이 포함됐다. 바이낸스가 밝힌 피해 추정액과 분석업체들의 집계에는 차이가 있지만, 어느 쪽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단일 해킹 사건으로는 이례적인 규모다. 특히 비트코인처럼 중앙 발행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자산은 거래소나 발행사가 임의로 거래를 차단하거나 자산을 회수하기 어렵다. 가상자산 하드웨어 지갑 업체 발렛크립토 창업자 바비 리는 바이낸스가 상당한 규모의 자산을 동결했더라도 이를 곧바로 회수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탈취된 비트코인은 네트워크 차원에서 특정 주소를 강제로 차단할 수 없기 때문에 동결 조치의 실효성에도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비트코인은 사고 여파 속에 약 4% 하락하며 7만8516달러까지 밀렸다. 최근 한 달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젠슨 세이파트는 핫월렛 해킹 자체가 새로운 유형의 사고는 아니지만, 세계 최대 거래소에서 이 정도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시장 불안을 키우는 외부 변수도 겹쳐 있다. 30일 예정된 110억달러 규모의 옵션 만기를 앞두고 있는 데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규제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규모 해킹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과 정책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단기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다. 가상자산 헤지펀드 서드아이의 티안 젱 CEO는 블룸버그에 잇따른 해킹 사고가 업계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보안 취약점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산업 전반에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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