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꾼 에너지안보의 기준](http://www.ekn.kr/mnt/thum/202601/news-p.v1.20240321.6ca4afd8aac54bca9fc807e60a5d18b0_T1.jpg)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시작해 2026년 1월 현재까지 길어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공격 방식도 달라졌다. 전선의 이동과 별개로 전력·난방 같은 '생활 인프라'를 반복해서 때리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한 번 파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복구할 만하면 다시 공격한다. 복구 자원을 계속 소모시키고, 전력 공급의 불확실성을 일상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실제로 겨울철에는 정전이 난방·상수도까지 흔들어 시민 고통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응의 초점을 “완전 정상화"가 아니라 “최소 기능 유지"로 옮겼다. 1월 14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너지 부문 '비상사태' 선포 방침을 공식화했다. 수도 키이우에 상설 조정본부를 두고, 전력·설비를 가능한 한 빨리 수입하라고 지시했다. 응급복구, 수요관리(순환정전), 필수시설 우선공급 같은 운영 조정도 함께 돌렸다. 핵심은 하나다. 정전의 '규모'를 줄이는 것만큼, 정전의 '길이'를 줄이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에너지안보의 기준이 바뀐다. 우리는 흔히 에너지안보를 “연료를 얼마나 확보했나?"로 설명한다. 석유·가스 비축이 충분한가, 수입선을 다변화했는가 같은 질문이다. 그러나 전쟁처럼 전력망 자체가 표적이 되는 상황에서는 이 질문만으로 부족하다. 연료가 창고에 있어도 송전망·변전소가 손상되면 전기는 못 보낸다. 특히 송전·변전 설비는 대체가 쉽지 않고, 부품 조달에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복구 지연'이 곧 '안보 손실'이 된다. 결국 논점은 물량이 아니라 '복원력(resilience)'으로 옮겨간다. 복원력이란 충격을 받았을 때도 핵심 기능을 유지하고, 손상 지점을 우회하거나 빠르게 복구해 공급 중단 시간을 줄이는 능력이다. 단단하게 버티는 힘(견고성)만이 아니다. 고장 나도 돌아갈 길을 여러 개 만들어 두는 중복성, 인력·장비·자원을 동원하는 능력, 그리고 복구 속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또 중요한 전제가 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원래대로 만드는 '정상화'가 아니라, 의료·통신·상수도·전력 같은 필수 서비스부터 최소 수준으로 먼저 살리는 '단계적 복원'이 현실적인 목표가 된다. 이 문제의식은 국제 의제에서도 커지고 있다. 영국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4월 런던의 '미래 에너지안보 정상회의'에서 전통적 공급안보(다변화·비축)와 함께 '회복탄력성(복원력)'을 별도의 과제로 끌어올렸다. 배경은 단순하다. 위협이 지정학·연료 수급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극한기상은 송전망을 직접 흔들고, 디지털화·연결성 확대는 사이버 위험을 키운다. 즉 “연료가 있느냐"를 넘어 “전력망이 제대로 기능하느냐"가 에너지안보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 흐름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 에너지안보는 평시의 수급과 가격 안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는 가격 충격뿐 아니라, 공급 중단과 복구 지연처럼 '시간의 충격'이 핵심 피해로 나타날 수 있다. 더구나 전력망이 촘촘히 얽힌 수도권에 수요가 집중된 구조에서는 특정 구간의 장애가 광범위한 기능 저하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 전력·통신·상수도·데이터가 서로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하나가 멈추면 연쇄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정책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연료 비축이 충분한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충격이 발생했을 때 언제까지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복원할 수 있는가"가 목표로 명시돼야 한다. 의료·통신·상수도와 함께 에너지 같은 핵심 서비스는 복구 목표 시간을 분명히 제시하고, 그 시간표를 기준으로 운영·투자 우선순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용량·비축의 규모가 중요하듯, 피해가 지속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도 필수다. 안보의 언어를 물량에서 시간과 기능으로 옮겨야 한다. 결국 복원력은 구호가 아니다. '복구 목표시간'과 '최소 서비스 수준'을 기준으로 예비자원, 조달체계, 훈련을 숫자와 절차로 관리하는 국가 역량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 에너지안보의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김재경 외부기고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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