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화된 감독체계 아래서는 감독 정책과 집행 간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 결과적으로 사후 개선이 잘 안 되고, 금융감독의 비효율과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2020년 12월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남긴 말이다. 당시 그는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대형 금융범죄로 휘청이는 시장 한가운데 있었다. 수많은 금융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었고, 감독 시스템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윤 전 원장은 재임 기간 내내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주장했지만 정부와 금융위원회의 반대로 추진 동력을 얻지 못했다. 논의는 금감원과 금융위 간 기싸움으로 번지며 개편은 흐지부지됐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의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체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돼 17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그 사이 금융환경은 급변했고, 금융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저축은행 부실, DLF·라임·옵티머스 사태, 사모펀드 환매 중단 등 사건이 반복됐지만 감독 시스템은 번번이 뒷북을 쳤다. 그럼에도 체제 개편은 정권 초의 구호에 머무르기 일쑤였고, 시간이 흐르며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곤 했다.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이재명 정부가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핵심 의제로 꺼냈고, 새 정부의 금융당국 수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은경 한국외대 교수가 구체적인 개편 방향을 공개적으로 제시하면서 논의가 현실성을 띠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현 금융감독체계는 기형적이며 반드시 개편돼야 한다"며 금융위원회의 해체와 금감원•금융소비자보호원의 기능 재편을 주장했다. 특히 그는 “금융위가 산업정책과 감독을 동시에 수행한 구조 탓에 사모펀드, 동양사태 같은 대형 금융사고가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주장은 단순한 이론적 비판이 아니다. 김 교수는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으로 재직하며 감독권한이 없는 상황에서도 헤리티지펀드 사태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섰다. 당시 헤리티지펀드가 독일 펀드인 점을 고려해 해외 관련 기관의 자료를 직접 확인하는 등 문제 해결에 힘썼다. 그 과정에서 윗선의 개입과 압박도 겪었으며, 금융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음에도 실질적인 조치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를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금융위 출신 인사들의 민간 금융사 이직을 제한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 역시, 산업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이 한 조직에 섞여 있는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짚은 것이다.
현재 논의 중인 개편안은 금융위원회의 금융산업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금감원 내부 조직인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독립시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립하는 방안이 중심이다.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감독과 정책 기능을 명확히 분리하고 기관별 역할과 권한을 재정립하려는 구상이다. 지금처럼 금융위가 금감원에 대한 지휘권을 쥔 상태에서는 누구도 실질적인 감독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 결과, 감독은 무뎌졌고 금융의 공공성은 약해졌다.
감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권한 부여뿐 아니라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와 신속한 대응 체계 마련도 필수적이다. 금융시장이 급변하고 복잡해지는 현실에서, 모호한 책임구조와 권한 집중은 또 다른 금융 사고의 씨앗이 될 뿐이다. 금융산업의 건전한 성장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신뢰받는 감독기구가 필요하며, 이는 제도적 틀부터 바로 세우는 데서 출발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함께 경제 운영의 큰 방향을 설정하고, 전방위적 구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역시 이 흐름 속에서 강한 실행력으로 추진돼야 한다. 기능은 나누고, 권한은 조정하며, 책임은 분명히 하는 것. 그럴 때에야 비로소 금융감독은 작동하고 신뢰는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