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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써니항공 비행 일지 조작 사태, 도덕적 해이 넘어선 범죄 행위다

“모든 비행 규정은 피로 쓰였다.(All aviation regulations are written in blood.)" 1903년 12월 17일, 윌버·오빌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기를 제작해 사람이 하늘을 날기 시작한 이래로 지난 121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때마다 각종 안전 규제가 만들어졌고, 전세계 항공 안전 기관의 표상과도 같은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희생된 이들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며 이 같은 자기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FAA의 규정을 준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안전 불감증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 써니항공에서 일부 군 출신 조종사 훈련생들이 사업용 육상 다발(MEL) 조종 자격 증명을 위한 비행 시간 등 훈련 기록을 담은 비행 기록 일지(로그북, Logbook)를 조작한 사실이 항공 안전 감독(ASI)을 통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이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항공 전문 교육 기관에서 10시간 넘는 비행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써니항공은 4주 간 비행 교육 12시간·비행 훈련 장치(FTD) 3시간을 명시하고 있다. 해당 훈련생들은 비행 실습 교육을 불과 1~2시간만 듣는 등 정상 범위에서 한참 벗어났음에도 교육 과정을 다 마친 것처럼 서류를 허위로 꾸몄다. 이에 따라 관리·감독 기관인 부산지방항공청이 관련 사건에 대해 본격 조사에 착수했다. 로그북은 조종사 자격 취득과 경력 관리의 핵심 자료로, 실제 비행 또는 시뮬레이터 훈련 시간을 기록해 항공사 입사·승급·자격 유지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로그북 조작은 항공 교통 안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 도덕적 해이를 넘어 중대한 범죄 행위다. 아무리 오토 파일럿 시대라지만 항공 안전은 여전히 조종사의 숙련도와 경험에 크게 의존한다. 허위 경력으로 미숙한 조종사가 양성될 경우 사실상 미필적 고의에 의한 대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무고한 수백 명의 승객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실제로 비행 사고의 대부분이 인적 오류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현재 국토부는 항공 전문 교육 기관 운영 승인·지정·관리 감독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급 기관인 한국교통안전공단(TS)은 국토부가 인가한 써니항공이 발급한 경력 증명서를 믿고 면장을 내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또 신규 기재 도입 계획에 따라 일부 저비용 항공사(LCC)들은 거짓 경력을 써낸 이들을 부기장으로 채용해 제트 엔진 한정 자격 증명 교육을 진행 중이다. 이 자체로 업무 방해죄에 해당하는데, 차후 해당 부기장들에 대한 자격 박탈 조치가 뒤따르면 유형의 손실을 떠안는다. 현행 항공안전법 제43조는 '항공 종사자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자격 증명이나 항공 신체 검사 증명 등을 받은 경우 국토부 장관은 취소 또는 1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효력 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돼있다. 그러잖아도 최근 국내에선 대형 항공 사고들이 연달아 터져 전 국민적 불안감이 고조돼있는 상태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관계 당국의 훈련 기관·항공사·관련자 전반에 대한 철저한 전수 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 처벌이 시급하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E칼럼] 인공지능으로 설계하는 새로운 대한민국

작년 말 충격적인 비상계엄 선포 후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는 짙은 불확실성의 안개 속을 헤쳐 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고, 세계의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혼란한 시기에 출마한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인공지능(AI) 관련 공약은 향후 대한민국호의 진로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기존 대선에서 주로 부동산 정책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인공지능 관련 정책을 내세우기 바쁘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현재의 인터넷 이상으로 인간 문명의 근본적 기반이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기에 이러한 열성이 당연하다 여겨지기도 하나, 공약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실행의 현실성에 있어서는 차분한 복기가 필요해 보인다. 인공지능 관련 산업의 현 주소를 보면 아직도 수익이 주로 발생하는 분야는 인공지능 모델 개발과 개발된 모델로 서비스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와 설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하드웨어 분야이다. 물론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는 미국의 엔비디아지만 기존부터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도 반도체 부품을 공급하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하드웨어 분야에 대한 지원 역시 국가 경쟁력 유지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영세한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지원과 구분되지 않으면 오히려 인공지능 산업의 보다 본질적인 요소인 소프트웨어 몫까지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더구나 현재 공약으로 제시된 GPU나 AI데이터센터 확보와 같이 단순한 자금 지원만으로 가능한 방법으로는 인공지능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엔비디아가 오늘날 인공지능 업계 정상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GPU만 제조한 것이 아니라 '쿠다(CUDA)'라는 GPU를 활용할 수 있는 개발 툴로 AI 개발 생태계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반 전환(AX, AI Transfomation) 역시 AI 모델을 바탕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지, 인공지능 칩이나 데이터센터 확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버린 AI 구축이냐 해외 인공지능 모델 기반 서비스 활성화냐 논쟁도 결국 국내 인공지능 기반 산업 생태계가 존재해야 의미가 있다. 또한, 인공지능 산업 생태계의 본격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인공지능 개발과 활용의 가장 핵심이 되는 데이터에 대한 규제 명확화 및 자율 규제 확대가 필요하다. 공공 영역에 쌓여 있다고 홍보가 많이 되는 의료데이터는 품질 문제나 개인정보 보호 등 가공의 어려움으로 활용에 많은 난관이 있다. 의료데이터를 활용해 개인형 맞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국민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필수적인데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생명윤리법 등 각 부처별로 관할 법령에서 따로 규제를 하고 있어 하나의 장애물을 넘어도 다른 장애물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자동차를 포함하는 모빌리티 산업은 자율주행을 핵심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함으로써 향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국이자 아시아 최초로 자율주행자동차법을 선도적으로 제정한 우리는 수년간 시범운행지구에서 제한된 방식의 운행만 허용한 결과 자율주행자동차 업계의 기술력이 중국, 미국 등 세계 수준과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자국에서 이미 충분한 운행 데이터를 확보한 중국의 자율주행 업체가 최근 국내에서 로보택시 운행을 위한 임시운행 허가를 신청한 반면 국내 업체들은 자율주행 사업에서 철수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데이터에 대한 규제 방식과 정책 방향 차이가 이러한 결과를 야기한 것이다. 데이터 보호기관이자 동시에 데이터 활용 규제의 중심축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최근 전 분야 마이데이터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데이터 활용을 장려하는 정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인공지능 산업은 데이터를 원료로 발전하기에 양질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데이터 활용을 위해서는 활용 범위와 방법에 대한 규제가 명확해야 한다. 또한 이제 초창기에 들어선 인공지능 산업에 규제 만능주의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업계의 자율규제에 맡길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도 원인제공자에게 명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후보들이 대선을 위한 공약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인공지능으로 대한민국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가지길 빈다. 양희철

[김병헌 칼럼] ‘백척간두(百尺竿頭)’의 경제 앞에 선 정치

“물을 건너지 않고는 바다를 알 수 없고, 산을 넘지 않고는 그 너머의 세계를 알 수 없다."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정식 시문(詩文)에서 확인되지는 않지만 그의 말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경제를 진단하는 데 있어 이 고전의 통찰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정부도, 한국은행도, 여야 정치권도 바다 건너는 배에 타지 않았다. 산 너머를 보려는 망루도 짓지 않았다. 우리 경제는 지금, 고물가, 고금리, 고부채'3고(高)'라는 질긴 덫에 빠져 있다.지난달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다시 한 번 2.75%로 동결했다. 표면적으론 인플레이션 둔화와 경기 위축, 부채 부담을 고려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안엔 방향을 향한 철학도, 구조 변화에 대한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서민에게는 숫자가 아닌 체감이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달 기준 2%대를 기록했지만,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6% 상승했다. 더구나 농축수산물 가격은 6% 이상 올라 체감 물가는 통계보다 훨씬 위협적이다. 한 끼 외식비가 1만 원을 넘는 시대다. 커피 한 잔 가격은 6천 원대를 넘본다.공자(孔子)가 편찬한 역사서인 춘추(春秋)의 대표적인 주석서 중 하나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상화이민곤(上和而民困/윗사람은 평안한데 백성은 곤궁하다"는 말이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가계부채는 1,806조 원. 국민 한 사람당 약 3,500만 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 가운데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약 70%에 달한다. 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가도, 전체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은 15조 원이 늘어난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코로나19 이후 대출로 연명하던 이들이 이제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지만, 경기는 되살아나지 않는다.앞으로 나가자니 부채가 발목을 잡고, 물러서자니 물가의 칼끝이 서민 경제를 베어낸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79%로 상승했다. 이는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월세 내고 직원 월급 주면 남는 건 마이너스"라는 말이 상식처럼 오간다. 이제는 장사를 접을지, 버틸지를 두고 줄을 서는 형국이다. 와중에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다시 가팔라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3개월 연속 상승했다.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된 자산시장의 불안한 움직임이다. 경제에서 금리는 신호다. 정책은 방향이고, 금리는 그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신호도 그 등대도 없다. 그러면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난해 4월 총선 이래 12·3 계엄사태,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지금까지 여야는 경제 회복보다 '주도권 싸움'에 몰두해왔다.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뒤늦게 유력 대선 후보들은 앞다퉈 경제회복에 외치고 있지만 공약은 하나같이 공허해 보인다. 실천 의지가 제대로 담긴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의 무망한 '경제 공백' 속에서 국민의 삶은 오늘도 무너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오는 28일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발표한다. 기존 전망치는 2.1%였지만, 1% 중후반 혹은 1% 초반까지 하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부 민간 연구기관은 무려 0.8% 전후까지 하락할 것이라고도 예측한다. 더큰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다. 우리의 성장 궤적은 수년간 점차 기울어왔다. 팬데믹의 후유증, 글로벌 금리 인상, 공급망 재편, 미·중 패권 경쟁, …이 모든 것이 구조적 요인으로 누적되어 왔다. 여기에 트럼프 관세 전쟁은 새로운 불확실성까지 가중시키고 있다.고통은 현실이고, 위기는 현재다. 아쉽게도 해답은 경제 통계 속에는 없다. 거리의 노점상, 새벽의 택시 기사, 반찬 앞에 선 주부, 빚내어 집을 산 청년의 눈빛 속에 있다. 정치란 결국, 국민을,사람을 위한 것이다. 정치는 위기 앞에 비로소 진심을 보인다고 하니 이번 대선을 통해 정치는 진심을 회복하고 다시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불씨를 살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경제는 결코 숫자가 아닌 사람의 문제라는 사실도 명심하기 바란다.

[기자의 눈] 또 ‘인명 사고’, 또 ‘SPC’

또 SPC그룹이다. 잊을만 하면 발생한 계열사 사업장의 산업재해로 논란의 도마에 올랐던 식품그룹 SPC에서 다시 인명사고가 터졌다. 과거 허영인 회장의 대국민사과와 함께 사업장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던 약속을 무색하게 만들며 다시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19일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상반신이 끼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한 당일 SPC삼립은 김범수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하고, 공장 가동 중단 등 뒷수습에 나섰지만 재발되는 인명 사고 탓에 SPC를 바라보는 여론은 차갑기 그지없다. 산재 발생과 인명 피해, 기업의 사과와 안전대책 약속이 반복되면서 SPC의 '안전 불감증'이 다시 도진 게 아니냐는 시선이다. 2022년 10월 경기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어 사망한 사고를 시작으로 최근 3년 간 SPC 계열사에서 총 3건의 사망, 5건의 부상 사고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첫 사고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허영인 회장이 1000억 원을 투자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안전경영을 펼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이번 인명사고로 '사실상 공염불'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SPC는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안전경영 레터'를 통해 그동안 안전설비 확충·장비 안전성 강화·고강도·위험작업 자동화·작업환경 개선 등을 수행하며, 2022년 4분기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예산(1000억원)의 약 84%인 835억원을 집행했다고 홍보했다. 이같은 SPC 산재예방 노력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진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이번 시화공장 인명사고로 그 진의가 의심받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당장에 일각에선 소비자 불매 움직임이 있어 SPC그룹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사고가 난 시화공장이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킨 '크보(KBO)빵'의 주요 생산공장이어서 판매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안전사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더라도 산재, 그것도 인명 피해가 반복된다면 그 기업은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SPC는 뼈를 깎는 노력에도 유사한 사고가 반복된다면 내부 안전경영 전면 재검토, 작업장 안전시설 개편, 작업현장 종사자 안전의식 개선 등 사운을 건 전사적 캠페인으로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기자의 눈]언제쯤 대선 공약집에 금융산업 발전 방안 담길까

6.3 조기 대선이 2주도 남지 않았다. 대권을 노리는 주자들은 전국을 돌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등 주요 후보들의 공약집에서 금융 관련 공약이 소상공인 지원·대출 부담 완화를 비롯한 정책금융에 국한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인공지능(AI)·방위산업·에너지 등의 분야에 각종 공약이 집중된 반면 금융 분야는 별다른 고민이 없어 보인다. 요식업을 비롯한 소비업종을 중심으로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고 취약 차주가 늘어나는 상황을 고려해도 '기브 앤 테이크' 방식이 결여된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재명 후보의 중도상환수수료 단계적 감면, 김문수 후보의 신용카드 캐시백 제공 등은 금융사의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하다. 앞서 민주당이 주장했던 횡재세 이슈가 금융권 안팎의 비판을 받고 수그러들었으나, 상생금융을 비롯한 다른 형태로 녹아드는 셈이다. 높은 은행 의존도와 가맹수수료율 인하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금융사들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규제 대상 은행을 확대하고 자본요건을 강화하는 '바젤3 엔드게임' 대폭 수정 또는 폐지 △인수합병(M&A) 심사 기준 완화 △금융소비자보호국(CFPB)의 수수료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는 것과 대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시절에도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완화를 천명한 바 있다. 문제는 이같은 흐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9대 대선에서도 금융 분야는 소외됐었다. 당시 안보 분야에서 진보·보수 후보간 입장이 명확히 갈라지면서 공방이 벌어졌지만, 금융 부문의 경우 금융사고 방지와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정책이 언급됐을 뿐 큰 쟁점이나 이슈가 된 정책·공약은 없었다. 20대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자영업자 손실보상 프로그램(50조원 규모) 및 소액채무 원금 감면폭 대폭 확대, 이재명 후보는 전국민 대상 기본소득과 최대 1000만원 장기·저리 기본대출을 비롯한 공약을 내놓았다. 두 후보 모두 여의도와 전북을 중심으로 금융산업을 발전시킨다고 했으나, 기존에 있던 계획과 유사하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구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 대선에도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 금융당국 구조개편이 그나마 금융산업 분야 공약으로 포함될 수 있는 정도다. 지난해 IMD가 전 세계 67개국을 대상으로 금융산업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대한민국이 20위로 나타나는 등 민·관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차기 정부와 국회가 이같은 현실을 타개하고 금융사들이 '밸류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박영범의 세무칼럼] 국세청이 신고한 종합소득세를 점검한다는데...

종합소득세 신고가 다음 달 2일까지로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데, 지난해보다 많이 나온 세금에 놀라 수입을 누락하거나 소득의 종류를 바꾸거나 여러 사적 경비를 무리하게 넣어서 세금을 줄이고 싶을 수 있다. 국세청이 이런 납세자의 무리한 절세(?) 시도에 대하여 6월 말까지 신고와 납부를 마무리하고 7월부터는 아래 사항을 중점으로 분석하여 잘못 신고한 것에 대하여 해명을 요구하거나 세무조사를 할 예정이다. 최근 대통령 탄핵과 대선 등 국내 정국 불안정과 미국 트럼프의 관세 전쟁으로 유튜브 시사 채널의 조회 수와 회원 수가 급증하고 후원금인 슈퍼챗이 쇄도하고 있고, 아프리카TV, 트위치 등에 영상을 공유하는 크리에이터, BJ, 스트리머 등도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인터넷으로 미디어 콘텐츠 제공에 따른 유상 대가 또는 무상으로 받은 자산도 모두 총수입 금액에 포함하여야 하며, '후원금', '자율구독료' '굿즈' 판매 등 금전 등을 받는 경우도 명칭에 상관없이 모두 종합소득세 신고납부 대상이다. 국세청은 이미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해외플랫폼으로부터 수취한 외화 수입금액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인터넷 화면에 노출한 후원 계좌 등도 정보 수집을 하고 있어 자칫 해외 수입이나 개인 후원금 등을 수입금액 신고 누락해 탈세액으로 추징당하면 불성실 납세자로 활동을 못 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야 한다. 국내 기업에서 파견한 수많은 해외 주재원과 해외 활동 연예인이나 야구와 축구 그리고 골프 등 해외 활동 스포츠 선수는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면 국내 소득과 현지에서 받은 소득을 합산하여 신고하여야 한다. 해외에서 소득을 받은 원천징수 자료와 보유한 현지 계좌에 대하여 매년 9월 미국은 물론 홍콩 등 100여 개국 국세청과 해외 과세 자료와 계좌 정보를 서로 교환하여 신고한 내용과 비교하여 누락한 소득을 추징하는 사례가 많으니 주의하여야 한다. 최근 국세청이 가장 많이 추징하는 사례로 소득 종류를 바꾸어 절세를 시도하는 경우로 기업에 다니던 임원이 퇴직한 후 고문으로 근무하면서 받은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신고하는 사례가 많다. 법인의 임원으로 근무하는 A 씨는 2024년 초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 후 고문으로 재취업하고 매월 고문료를 받았으며, 회사는 고문료에 대해 기타소득으로 원천징수하고 A 씨는 이듬해 종합소득세 신고할 때 소득 종류를 기타소득으로 신고하였다. 국세청은 회사에서 제출한 지급 명세서를 분석한 결과 임원 A 씨는 퇴직한 후에도 동일한 회사로부터 소득을 매월 지급받아 회사와 고용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해명을 요구했고 A 씨는 근로계약에 의해 지급받은 급여임을 시인하고 기타 소득을 근로 소득으로 변경하여 가산세와 함께 종합소득세를 냈다. 제조업을 하는 개인사업자 B 씨는 외국인이나 신용불량 있는 직원을 고용하면서, 주민등록번호가 없거나 계좌번호 노출을 꺼려 제대로 인건비를 근로소득으로 원천 징수하지 못하자, 현금으로 급여를 지급하고 종합소득세 신고할 때는 복리후생비와 여비 교통비 금액으로 나누어 경비로 신고하였다. 국세청은 제조 회사가 직원이 꼭 필요한데도 근로소득 원천징수 내역이 없는데 복리후생비 및 여비 교통비 금액은 과다하여,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필요경비는 인정하는 대신 원천 징수하지 않은 근로소득세를 가산세와 함께 추징하였다. 도매업자 C 씨는 고용 직원 없이 혼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직원이 없음에도 여비 교통비, 복리후생비 등을 많은 직원이 있는 것처럼 신고하였다.국세청은 근로소득 지급명세서 제출 내역은 없는 반면 종업원 관련 필요경비 비율이 동종 업종 대비 너무 많은 것으로 파악하여, C 씨의 장부상 계정별 원장과 금융 거래 자료 등을 대사한 결과 소모품비, 여비 교통비, 복리후생비 등 필요경비 대부분이 실제는 사업과 무관한 사적 경비를 넣어 소득을 축소한 것을 확인하여 가산세와 함께 종합소득세를 추징하였다. 100여 개국 해외 보유 금융 계좌와 과세 자료 그리고 외화 환전 자료까지 수집하여 신고 내용을 검토하여 추징하는 국세청에 대해서는 성실한 신고가 최선의 절세이다. 박영범

[EE칼럼] 미래 에너지를 찾아 우주로

인공지능(AI), 전기차 등이 늘어나면 앞으로는 기존 에너지 생산 시스템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데 한계에 달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미국은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렸다. 전 구글 CEO인 에릭 슈미트가 2021년 설립한 미국의 초당파 싱크탱크인 SCSP(Special Competitive Studies Project)는 2024년 발표한 '미국 차세대 에너지 리더십을 위한 국가 행동계획'에서 2030년까지의 기간이 미국의 미래가 걸린 시기라면서 이 기간에 미국과 중국의 에너지 신기술 패권전쟁에서 핵융합 발전과 우주 태양광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융합 발전은 태양과 같은 별들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리인 핵융합 반응을 지구상에서 인공적으로 일으켜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다. 핵융합은 핵분열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면서도 방사능은 훨씬 적게 배출하기 때문에 에너지 생산에 있어서 성배나 다름없다. 양성자 1개와 중성자 1개를 가진 중수소와 양성자 1개와 중성자 2개를 가진 삼중수소의 원자핵이 충돌하면 헬륨 원자액과 고에너지의 중성자가 생성된다. 이 때 생성된 헬륨 원자액과 중성자의 총 질량은 반응 전의 중수소와 삼중수소 원자핵의 총 질량보다 아주 약간 더 작다. 줄어든 미세한 질량이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질량-에너지 등가법칙(E=mc2)에 따라 엄청난 에너지로 변환된다. 빛의 속도(c)가 매우 크기 때문에 아주 작은 질량 변화도 막대한 에너지로 바뀐다.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어 사실상 무한한 연료로 간주된다. 반면에 삼중수소는 자연상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리튬과 중성자를 반응시켜 만든다. 이 때문에 추출 비용이 1g에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삼중수소를 헬륨-3로 대체한다면 핵융합 에너지를 낮은 단가에 확보할 수 있다. 삼중수소와 달리 헬륨-3는 핵융합 과정에서 방사선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지구에는 헬륨-3가 전체 헬륨 중 고작 0.0001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달에는 무려 100만 톤이나 존재할 것이라 추정한다. 수십억 년 동안 태양풍에 실려온 헬륨-3가 달 표면에 잔뜩 쌓여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1톤의 헬륨-3가 5천만 배럴의 석유에 상당하는 에너지를 생산할 것이라고 추산하다. 우주 태양광은 1968년 NASA의 피터 글레이저 박사가 처음 언급을 했다. 55년이 지난 2023년에 와서야 세계 최초로 캘리포니아공대의 과학자들이 우주에서 태양광 패널로 얻은 에너지를 빔의 형태로 지구에 전송했다. 태양에너지를 마이크로파로 전환하여 무선으로 전송한 것이다. 지상에 있는 수신 장비는 전송된 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했다. 중국은 우주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의 청사진을 최근 공개했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우주 태양광 발전은 2020년대 들어 재사용 발사체로 발사 비용이 대폭 떨어지고 있어 관심이 커지고 있다. 우주 태양광 발전은 낮과 밤, 날씨에 관계없이 24시간 내내 태양광 에너지를 전기로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주 태양광 발전은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크다. 우주에 있는 태양전지판이 섬이나 지나가는 배, 전쟁터 등 어디든 전력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주요 국가들은 가까운 장래에 지구 정지궤도에는 태양광 패널을, 달에는 헬륨-3 채취 작업장을 차릴 것이다. 경쟁국들이 멀리 앞서가는데 두 손 놓고 바라만 볼 수는 없다. 지구 정지궤도는 혼잡해 질 것이고, 헬륨-3는 재생가능한 자원이 아니다. 비싼 임대료를 내고 패널 설치할 자리를 얻을 수도 없고, 태양풍이 불어와 달에 헬륨-3가 다시 쌓일 때까지 10억 년을 기다릴 수도 없다. 먼저 오는 국가가 차지하는 선착순일 뿐이다. 국가 차원이 아닌 민간기업들도 우주 진출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스페이스X, 버진 갤럭틱, 블루 오리진, 중국의 아이스페이스, 러시아의 아스날과 같은 우주산업 관련 민간기업이 우주판 동인도회사 역할을 할 것이다. 재생에너지냐, 원전이냐 하는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이제는 도전과 상상력을 발휘할 때이다.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의 틀에서 벗어나, 에너지 분야의 파괴적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콘트롤+알트+딜리트 키를 동시에 누르는 행위를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강제 종료 버튼을 누르지 말아야 한다. 우주로 나가는 것이 우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박성우

[기자의 눈] ‘구별없는’ 대출 정책에…투기는 못잡고 실수요자는 발동동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7월 1일 도입을 앞두고 있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포함한 모든 가계대출에 1.5%의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하는 게 골자다. 20일 금융위원회가 밝힌 시행방안에 따르면 가장 큰 변화는 스트레스 DSR이 전 금융권에 적용되는 것이다. 대출 한도는 수도권 기준 3~5% 줄어들게 된다. 예를들어 연소득이 1억원인 대출자는 3300만원, 5000만원인 대출자는 1700만원 가량의 대출 한도가 감소하게 된다. 문제는 수도권에 '내 집 마련'을 계획 중인 차주들이다. 당국이 치솟는 집값을 안정화하겠단 의도는 알겠지만, 당장에 터져나온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당장 추가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손발이 묶이게 되기 때문이다. 소득 규모와 관계없이 주담대 한도가 수천만원씩 감소하게 되면서 주택시장 진입이 더욱 어려워졌다. 실수요자 중에서도 무주택자나 중저소득층에 대한 보호장치가 부재한데, 현재 대출 한도 축소에서 보호받는 별도의 완충책이나 예외 규정이 뚜렷하지 않아 피해를 낳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출을 옥죈 상황에서 수요가 한꺼번에 쌓이다보면 대출 경쟁은 한층 치열해진다. 오는 대선 이후 정권에 따라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튈 지 모르기에 당장 집을 마련하려는 실수요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달여 후 정책을 도입해야하는 은행권도 난감하다. 대출 수요 자체를 틀어막지 못하기 때문에 대출시장 혼란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금융권엔 규제 시행 전 대출을 받으려는 차주들로 즐비한데, 당국은 대출 총량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정책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기에 투기를 잠재우거나 집값 자체를 누르는 일도 불가능하다. 이는 결국 경기 회복이 절실한 상황에 부동산 시장을 냉각시키고 수요자들의 발목을 묶는 효과만 초래할 수 있다. 집값 상승을 막으려는 대출정책이 부동산 시장에 찬물로 작용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실수요자와 투자자 모두의 발을 묶으면서 지방 시장을 비롯한 부동산의 위축이 가속화되고, 경기 회복 지연을 부추기는 셈이다. 당국은 지방의 정책 시행은 늦춘 상태지만 상품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일괄적 규제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정부가 결혼과 출산을 요구하면서도 핀셋 조치 없이 서민과 청년층의 내집 마련 기회를 꺾으면 결국 집값도 주거문제도 잡지 못하는 참담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투기는 잡고 실수요는 돕는 정교한 정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이슈&인사이트]살아날 기미 없는 내수경기, 기다리지 말고 세계로 나가자

2025년 들어서도 내수경기의 반등 신호는 좀처럼 감지되지 않는다. 유통·관광·외식 업계를 중심으로 소비심리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고, 대형마트와 백화점, 면세점 등 전통 오프라인 유통 채널은 구조적 한계와 온라인 소비 확산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던 소비가 침체된 지금은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야 할 시점이다. 이미 우리 제품과 콘텐츠를 기다리고 있는 세계 소비자들을 향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브랜드의 본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연구들은 구매의 과정을 '이성의 문지방'을 넘은 후 '감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흐름으로 설명한다. 제품의 품질이 일정 기준 이상이 되어야 구매 고려 대상이 되며, 그 이후에는 디자인, 스토리텔링, 문화적 상징성 같은 감성 요소들이 브랜드의 힘을 결정짓는다.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명이 아니라, 소비자와의 정서적 연결고리다. 이 연결고리가 만들어질 때, 제품은 '필요'가 아닌 '욕망'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되면 가격은 원가나 기능이 아닌, 브랜드가 만들어낸 감정적 가치에 따라 매겨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품질의 관문을 넘어섰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은 기술력, 신뢰도, 완성도 면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제품들을 감성적으로 연결해줄 수 있는 브랜드 전략이다. 소비자의 정서에 깊이 스며드는 브랜드, 다시 말해 갖고 싶은 브랜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례를 확인하기 위해, 필자는 작년 여름 도쿄 오모테산도 거리를 찾았다. 이곳은 일본의 아트, 건축, 고급패션이 집약된 거리로, 세계 명품 브랜드들과 일본 토종 고급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있는 상징적 장소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놀랍게도 한국 브랜드 '젠틀몬스터' 매장이었다. 안경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인테리어, 예술 전시를 방불케 하는 공간 구성, 강렬한 스토리텔링이 젊은 세대의 감성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유럽의 명품도 아닌, 일본의 톱 브랜드도 아닌 이 한국 브랜드 앞에 줄을 선 고객들의 상당수는 일본 현지인과 중국 관광객이었다. 이는 단순한 패션이 아닌, '문화적 체험'으로서의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서 통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다. 브랜드의 성공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본이 그랬다. 1960~1980년대,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고도 경제성장의 시기를 살면서 세계적 브랜드를 다수 배출해냈고, 그 과정에서 'Made in Japan'은 품질의 대명사가 되었다. 음악, 애니메이션, 게임, 패션 등의 문화 콘텐츠도 이와 함께 성장하며 '쿨 재팬(Cool Japan)'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냈다. 세계의 젊은이들은 일본 브랜드를 단순히 기능적인 제품으로 소비한 것이 아니라, 일본 문화를 소비한 것이었다. 그 문화적 자부심과 감성은 프리미엄의 근거가 되었고, 일본은 문화 강국이자 소비 선도국으로 군림했다. 지금 한국은 그와 유사한 기점에 서 있다. 전 세계에서 K-pop, K-드라마, K-무비, K-뷰티, K-푸드에 이르기까지 'K'로 시작되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하나의 글로벌 문화 트렌드가 되었다. BTS가 전 세계의 소셜 문화를 주도하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오스카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한강 작가의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금, 한국은 더 이상 문화의 변방이 아니다. 감성의 흐름 속에서 주도권을 가진 국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제품은 품질 경쟁력을 넘어서 감성적 스토리텔링과 연계된 브랜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른바 '감성 소비 시대'에 적합한 제품과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좋은 물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브랜드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감정을 표현한다. 한국이 가진 감성과 품질, 그리고 문화적 역량은 이미 세계 수준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자산들을 전략적으로 연결해주는 촘촘한 브랜드 정책과 과감한 글로벌 진출 전략이다. 세계는 지금도 '다음 한국'을 기다리고 있다.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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