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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우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여헌우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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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완성차 작년 안방 판매 부진 ‘워스트 10’ 어디?

국내 완성차 5개사가 지난해 국내에 판매했던 차종 가운데 실적이 가장 저조했던 모델은 11대에 그친 KG모빌리티(KGM) 코란도 EV였다. 그 뒤를 한국지엠의 쉐보레 타호(43대)와 트래버스(59대)가 따랐다. 다만, 이들 차량은 생산·수입 중단 이후 재고물량만 판매된 차종들이었다. 공식판매 중인 차량 가운데 성적이 가장 나쁜 모델은 한국지엠 쉐보레 콜로라도로 112대 판매에 불과했다. 21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코란도 EV는 KGM이 생산을 중단한 영향으로 지난해 11대 출고기록에 머물렀다. 쉐보레 타호와 트래버스 역시 한국지엠이 물량을 더 이상 들여오지 않고 있는 탓에 지난해 판매량이 직전 2024년과 비교해 나란히 69.7%, 94.3% 크게 줄었다. 판매가 이어지는 모델 중에는 쉐보레 콜로라도와 GMC 시에라(246대)가 좀처럼 인기를 끌지 못했다. 콜로라도의 출고량은 2024년(358대) 대비 69.6% 급감했고, 시에라 역시 25% 감소로 분위기가 안 좋다. 르노코리아도 마스터(351대), SM6(359대), 세닉(642대) 등 세 모델이 판매부진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일반적으로 승용차보다는 수요가 적은 상용차 모델인 마스터는 전년(349대) 대비 소폭 상승했지만 절대 판매량이 적었다. SM6는 단종된 상태이며, 세닉은 지난해 말 출시돼 판매할 시기가 짧았다. 이밖에 KGM 코란도(477대, 전년대비 -56.4%)와 렉스턴(1361대, 전년대비 -30.5%)이 실적 워스트(worst) 10위권에 포함됐다. 코란도는 단종됐고, 렉스턴은 모델 노후화로 완전 변경이 임박한 상황이다. 워스트 10위권 밖에는 △현대차 ST1(1579대) △기아 K9(1581대) △기아 EV9(1594대)이 올리고 싶지 않은 명단에 자리잡았다. ST1은 특수목적 상용차의 한계로, 기아의 플래그십 세단 K9은 노후화로 각각 수요 감소를 겪은 것으로 풀이된다. EV9은 브랜드의 플래그십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지난 2023년 6월 출시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이 부진했던 차량 대부분은 제조사가 생산·수입을 중단했는데 재고가 소진되며 판매량 집계에 잡힌 경우"라며, “나머지는 특수용도로 사용되는 상용차나 '마니아층'을 겨냥해 출시된 모델들이라는 특징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 완성차업체 5개사의 지난해 전체 내수 판매량은 135만 8842대로 집계됐다. 직전 2024년과 비교해 0.7%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베스트셀링카는 1위는 기아 쏘렌토로 총 10만2대로 인기를 끌었고, 단일차종 기준 유일하게 '10만대 클럽'에 가입했다. 아울러 2년째 베스트셀링의 영예도 꿰찼다. 현대차 아반떼(7만9335대), 기아 카니발(7만8218대), 기아 스포티지(7만4517대), 현대차 그랜저(7만1775대)도 베스트(best) 이름을 부여받았다. 지난해에 SUV 강세가 돋보였지만 아반떼·그랜저가 '신차 효과' 없이도 선전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아반떼 7세대 부분변경 모델은 2023년 3월, 그랜저 7세대 완전변경 차량은 2022년 12월 각각 나왔다. 법인차 등 수요가 탄탄한데다 하이브리드 라인업의 상품성이 입소문을 타며 일반 고객들의 선택도 많이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아, 글로벌 사회공헌활동 ‘부트캠프’ 성장 다큐멘터리 공개

기아가 '부트캠프(Bootcamp)'의 성장 다큐멘터리를 21일 공개했다. 부트캠프는 일회성 물품 지원이 아닌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지향하는 기아의 대표적 사회공헌활동이다. 글로벌 지역사회의 자립 기반 마련을 돕기 위해 미래 세대에게 정비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기아는 현장에 필요한 차량을 제공하는 것을 비롯해 내연기관뿐 아니라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 미래 자동차 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장비 및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부트캠프 1.0의 활동 성과를 공유하고 올해 추진할 부트캠프 2.0의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제작됐다. 기아는 지난해 부트캠프 1.0을 통해 멕시코, 페루, 필리핀, 모로코 등 4개국에서 총 87명의 전문 정비사를 양성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34명이 현지 딜러사에 취업했다. 모로코 교육생 50명에게도 교육 종료 후 현지 딜러사와 연계한 각종 지원을 계획 중이다. 올해 진행할 부트캠프 2.0은 이들 4개국에서 에콰도르, 남아프리카공화국, 싱가포르 등 국가를 추가 확대해 총 7개국에서 펼쳐진다. 기아 관계자는 “부트캠프는 글로벌 청년들의 잠재력이라는 깊은 우물에서 밝은 미래를 끌어올리는 매우 의미 있고 소중한 활동"이라며 “글로벌 수준의 교육 시설에서 현지 파트너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브랜드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韓 수출 기업 “환율·관세 불확실성에도 포기하지 않고 위기 돌파”

환율 변동성 확대, 보호무역주의 심화 등 글로벌 경영 관련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우리나라 수출 기업들은 '마부작침(磨斧作針)'의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마부작침은 수출기업들이 올해 경영전망으로 꼽은 사자성어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음을 이른다. 21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간한 '수출기업의 2026년 경영환경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수출기업의 38.6%는 설문조사에서 올해 경영환경이 전년과 비슷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중 31.1%는 개선될 것으로, 30.3%는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경영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이 전년도 조사(14.2%)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하며 수출기업들의 경영환경 인식이 상대적으로 호전되고 있는 양상이다. 설문은 지난해 말 1193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품목별로는 △'생활용품'(개선 응답 48.2%) △'의료·정밀·광학기기'(42.2%) △'반도체'(38.2%) 등에서 경영환경 개선 기대감이 높았다. △'석유제품'(악화 응답 45.5%)과 △'섬유·의복'(43.1%) 등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올해 매출 목표에 있어서는 수출기업의 47.1%가 전년 대비 목표를 높게 설정하며 도전적인 경영 의지를 내비쳤다. 투자 계획 역시 국내·해외투자 모두 전년 수준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겠다는 응답이 80%를 웃돌아 불확실성 속에서도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우리 기업들이 꼽은 올해 가장 큰 대외 리스크는 '환율 변동성 확대(1위)'와 '미국 관세 인상(2위)'으로 조사됐다. 특히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입원자재 가격 상승 △해외 바이어의 단가 인하 압박 △국내 물가의 전반적인 상승 등이 부담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최근 환율 상승으로 인해 해외 바이어로부터 '가격 인하 요구를 받았거나'(40.5%), '향후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37.6%)고 응답한 비중은 78.1%에 달했다. 수입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인상 등으로 수출 단가 인하 여력이 없다는 기업도 72.5%에 달했다. 중국 기업의 추격도 거셌다. 우리 수출기업이 평가한 중국 기업의 경쟁력은 3년 전 조사(95.8~97.0점) 대비 크게 상승한 99.1~99.3점(자사=100점 기준)을 기록했다. 기술 및 품질 격차가 사실상 거의 사라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중국의 '압도적인 가격경쟁력에 기반한 저가 물량 공세'(84.9%)와 '빠르게 향상된 기술 및 품질 경쟁력'(48.6%)을 최대 위협 요소로 지목했다.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최우선 정부 정책으로는 '환율 안정'(47.7%)이 압도적인 1순위를 차지했다. '주요국과 협상을 통한 통상 리스크 최소화'(27.8%)가 뒤를 이었다. 조사 대상 15개 전 품목군에서 1순위 정책으로 '환율 안정'을 꼽았다. 수출기업들은 올 한 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뼈를 깎는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뜻의 '마부작침'(27.7%)을 가장 많이 꼽았다. 본격적인 도약을 다짐하는 '도약지세'(跳躍之勢, 16.6%)와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전화위복'(轉禍為福, 16.3%)이 그 뒤를 이었다. 도원빈 무협 수석연구원은 “환율 변동성과 미국 보편관세 우려 등 대외 파고가 높지만 우리 기업들은 매출 목표를 상향하고 투자를 유지하는 등 정면 돌파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국가 간 통상 협상력을 발휘해 우리 기업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OECD 경제단체 “상반기 경기 침체 지속…기업 투자 심리 반전 전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올해 상반기 글로벌 경제에 저성장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급격한 경기하강 공포는 다소 완화되며 작년 하반기에 비해 기업투자는 확대될 것으로 봤다. 한국경제인협회는 21일 OECD 회원국 경제계의 올해 상반기 전망을 담은 'OECD 경제산업자문위원회(BIAC) 2025 경제정책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BIAC에는 한경협을 포함해 총 38개국 경제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는 그중 OECD 회원국 GDP의 93.5%를 차지하는 29개국 경제단체가 응답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경제계의 과반수(59.6%)는 올해 상반기 경제성장 전망을 '경기 침체 지속'으로 답했다. 작년 하반기 절반(49.5%)을 차지했던 '급격한 위축' 응답은 대폭 감소한 0.6%에 그쳐 가파른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잦아든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경영환경에 대해서는 다수의 응답이 여전히 '보통'(57.3%)으로 나타나며 신중한 전망을 유지했다. 이는 무역·통상 및 지정학적 충격이 단기 리스크를 넘어 중장기적 비용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결과로 해석된다. 작년 하반기 '투자 감소'(74.9%)를 우려했던 OECD 경제계의 시각이 올해 상반기 '투자 증가'(78.1%)로 돌아서며 투자심리가 극적으로 달라졌다. 특히 인공지능(AI)·클라우드·소프트웨어 분야는 대다수(94.2%)가 투자 '증가'를 예상해 전략 분야로의 투자 집중이 예상된다. 다만 회원국 경제계 과반수(51.6%)가 올해 인플레이션 상승을 예상해 비용 압력이 투자를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된다. 기업 활동 제약요인(복수응답)으로는 '지정학 리스크'(85%)에 이어 '높은 에너지 가격 및 공급 불안'(81.6%), '노동시장 경색·미스매치'(78.5%), '무역·투자장벽'(74.4%) 등이 언급됐다. 특히 에너지 수급과 노동시장 관련 응답은 직전 조사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BIAC는 이번 조사에 대해 “대외 통상·금융 여건 제약과 지정학적 리스크로 글로벌 기업활동이 위축되면서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있다"며 “각국 구조개혁 노력과 함께 무역·투자 촉진을 위한 환경 조성과 글로벌 규제 조율을 위한 OECD의 적극적 역할 수행을 기대한다"고 진단했다. 김봉만 한경협 국제본부장은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글로벌 저성장 기조 속에서도 기업투자, 특히 혁신분야에서의 투자전망이 뚜렷하게 반등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혁신 분야 투자 수요를 실제 성과로 연결하려면 과감한 규제 개선과 노동시장 수요에 맞는 인력 확충, 안정적 에너지원 확보가 관건"이라며 "한국이 국제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민관이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정부 3차 상법개정은 ‘토끼뜀질’, 재계 요구 배임죄 개선은 ‘거북걸음’

경영계가 상법 개정 논의 속도 조절과 기업 경영 '형사 리스크 완화'를 병행해 달라고 정부·국회에 촉구하고 나섰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것과 달리 배임죄 개선 같은 경영환경 전반 제도 보완은 지연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8단체는 20일 공동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이같은 의견을 정부·국회에 전달했다. 이들은 이번 개정안 입법취지가 '회사재산으로 취득한 자기주식을 특정주주에 유리하게 임의로 활용하는 행위 방지'라고 환기했다. 이에 따라 상법 제341조에 따라 배당가능이익 내에서 자발적으로 취득한 자기주식은 이에 해당되지만, 제341조의2에 따라 합병 등의 과정에서 비자발적으로 취득한 자기주식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주장했다. 입법취지와 결을 맞춘다면 소각의무를 면제해야줘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8단체는 또 비자발적 취득 자기주식은 정부가 장려한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특정 목적 취득 자기주식도 처분과정에서 악용될 우려가 있다면 처분절차 시 주총결의를 받도록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경제8단체는 이와 함께 기업이 상법 제341조의2에 의해 취득한 자기주식을 소각하는 경우에는 감자절차를 면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합병 등 특정목적 자기주식의 경우 소각 시 감자절차(채권자보호절차, 주총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는데, 채권자의 대규모 상환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주총 특별결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법위반 상태가 초래된다는 이유에서다. 국회가 지난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1차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경영판단에 대한 과도한 형사책임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배임죄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경제계는 배임죄 구성요건이 추상적이어서 합리적인 경영판단의 결과까지 사후적으로 형사처벌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특히 1차 상법 개정 이후 주주에 의한 배임죄 고소·고발 가능성이 확대되면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 등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단체들은 “배임죄 개선이 늦어지면서 기업들은 경영상 의사결정을 유보하거나 기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기업이 적극적인 투자와 혁신활동을 추진할 수 있도록 3차 상법 개정에 앞서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등 배임죄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영계는 이밖에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관련 사용자 개념을 명확히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경총 등 경제단체들이 구성한 '경영계 노조법 개정 대응 태스크포스(TF)는 지난 16일 개정 노동조합법 해석지침에 대한 경영계 입장을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 TF는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법령상 의무 이행이 곧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 징표가 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법령상 의무 이행을 넘어서 하청근로자의 안전보건에 대해 직접 지배·결정하는지 여부를 판단기준으로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계법령에서 원청은 하청근로자에 대한 산업재해예방 등 일정한 책임을 부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원청의 법령상 의무 이행을 위한 것과 법령상 의무를 넘어서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직접 지배·결정하기 위한 것이 구별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TF는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 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합병, 분할, 양도 등 기업조직 변경이나 공정라인 재배치, 설비 이전 등 생산공정 변경과 같은 사업경영상 결정 시 배치전환 등 인력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필수불가결한 배치전환을 일률적으로 단체교섭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사용자의 정당한 인사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한다고 봤다. 또 기업조직 변경이나 생산공정 변경 등 기업의 경영상 결정을 사실상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K-스타트업 성공신화의 전제조건

“스타트업이 제2의 삼성, 제3의 현대차로 도약할 수 있을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허황된 꿈처럼 들렸던 말이다. 우리나라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데다 자본·인재도 미국으로 쏠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공신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IT공룡으로 도약한 네이버·카카오나 거액에 팔려나간 우아한형제들 같은 사례가 있다. 다만 이들에게 '삼성'이라는 이름을 견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성장 방정식이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도 있었다. 새해 들어 국내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누비며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가 '국가대표 AI 프로젝트' 1차 평가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살아남은 3개 팀 중 유일한 스타트업이다. 업스테이지는 가성비 AI 플랫폼 서비스를 선보이며 '한국의 딥시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 무대에서도 낭보가 전해졌다. 크로스허브, 스튜디오랩, 둠둠주식회사, 엘비에스테크, 망고슬래브, Nation A, Deep Fusion AI, CT5 등 국내 기업들이 '최고혁신상'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3D 모션 생성, 딥러닝 기반 안전 설루션, 표절 분석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특히 우리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장착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기술을 앞세워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리벨리온, 에스투더블유(S2W), 에어스메디컬 등은 딥테크 분야를 중심으로 일정 수준 성과도 내는 중이다. '빅테크'라 불리는 구글과 아마존도 시작은 초라했다. 구글은 스탠퍼드대학교 차고에서 시작된 검색 알고리즘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해 오랫동안 적자의 늪을 헤매야 했다. 당시 미국 사회가 이들에게 보낸 것은 냉소가 아니었다. 실패를 용인하는 투자와 혁신을 향한 응원이었다. 우리 스타트업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도 이런 '성장의 시간'과 '사회적 지지'다. 기술력이 일정 수준 궤도에 올랐다면 이들이 시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규제의 빗장을 풀고 자금의 물꼬를 터주는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기업 규모가 커질 때마다 규제가 늘어나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 열정으로 뭉친 한국 스타트업들이 더 많은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길 기대한다. 이들의 성장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韓 ‘성장 페널티’ 기업규모별 규제 문제 심각···연간 GDP 111조원 손실”

기업이 성장해 고용을 늘릴수록 혜택은 끊기고 규제와 조세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국 특유의 '성장 페널티'(Growth Penalty)가 국내 경제 성장 잠재력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20일 발표한 '한국 경제의 저성장 원인 진단과 기업생태계 혁신 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50·300인 등 규제 장벽 앞에서 인위적으로 성장을 멈추거나 기업을 쪼개는 등 규제 회피를 위한 '안주 전략'(Bunching)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안주 전략은 국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저성장을 가져오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기업들이 성장을 멈추면 생산성이 높은 대기업의 채용 여력은 줄어드는 반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소기업에 인력이 몰리면서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동시장의 경직성까지 더해져 실업이 늘거나 비효율적인 부문에 한 번 배치된 인력이 고착화되며 국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보고서는 구조적 모형을 활용해 기업규모별 차등 규제로 인한 경제적 영향을 분석한 결과 기업생태계 왜곡으로 발생하는 GDP 손실은 약 4.8%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 111조원 규모다.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가 우리 경제의 신진대사인 '진입-성장-퇴출'의 선순환을 막고 기업생태계를 영세 소기업 중심으로 굳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고서는 국내 소기업이 5년 뒤에도 여전히 영세한 규모(10~49인)에 머무는 비율은 최근 60%에 육박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1990년대(40%대) 대비 급격히 상승한 수치다. 기업들이 성장을 도모하기보다는 규제 회피 등을 위해 현재 상태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음을 시사한다. 성장 사다리도 끊어졌다. 소기업이 중규모 기업으로 도약할 확률은 과거 3~4%에서 최근 2%대로 반토막 났고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확률은 0.05% 미만으로 떨어졌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조차 시장에서 나가지 않는 퇴출의 병목 현상도 심각하다. 과거 60%에 달했던 퇴출률은 최근 40% 밑으로 떨어졌다. '좀비 기업'들이 한정된 인력과 자본을 붙잡고 있어 혁신 기업으로 흘러가야 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로막는 자원 배분의 동맥경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이러한 규제 역설이 한국 기업생태계를 선진국과 정반대인 기형적 구조로 변질시켰다고 주장했다. 생산성이 높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위주로 고용을 창출하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영세 소기업에 인력이 과도하게 쏠리면서 국가 경제 전체를 저생산성 늪으로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생태계의 역동성을 회복하고 저생산성 늪에서 탈출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 △Up-or-Out 지원 체계 구축 △투자 중심 자금 조달 생태계 육성 △성장유인형 지원 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Up-or-Out(성장 아니면 탈락)'형 지원 체계는 옥석을 가리는 성격이다. 단순히 업력이 오래됐다고 지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매출·고용 증가율 등 혁신 지표를 매년 평가해야 하는 방식이다. 성과가 있는 기업에는 지원 한도를 과감히 늘려 스케일업(Scale-up)을 돕고, 혁신 의지가 없는 기업은 지원을 즉시 중단하는 성과 연동형 지원 체계이기도 하다. 투자 중심 자금 조달 생태계 육성은 담보 위주 은행 대출만으로는 혁신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점을 반영한 해결책이다. 기업주도형벤처캐피탈(CVC) 규제 완화 및 민간 모태펀드 활성화로 민간의 모험자본이 유망 기업에 직접 수혈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부채 의존적인 성장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밖에 기업 규모와 무관한 기본공제를 신설하고 투자·고용 등 국가 경제 기여도에 비례해 추가 공제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성장이 곧 혜택'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정부가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이나 관건은 현장에서의 속도감 있는 이행"이라며 “규제와 조세 제도의 과감한 재설계를 통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유인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후테크 성패, 자본조달·실증에 달렸다”

'기후테크' 산업의 성패를 가를 핵심 경쟁력이 기술 개발에서 '자본 조달 및 실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이 선언을 넘어 본격적인 실행 단계로 진입하면서다. 기후테크는 기후(Climate)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변화 적응에 기여하는 혁신 기술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을 뜻한다. 20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간한 '글로벌 기후테크 투자 트렌드 분석과 한국 투자생태계 활성화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글로벌 에너지 전환 설비·인프라 투자는 약 2조800억달러로 2015년(약 3800억달러) 대비 5배 이상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각국 탄소중립 약속이 선언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산업 현장에서 설비 구축과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지는 본격적 '이행'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보고서는 실제 프로젝트를 이행하기 위한 안정적인 자본 조달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기후테크 투자는 기술 개발 이후 설비 구축 및 양산 단계로 이어지는 성장 자본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유망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스케일업(Scale-up)의 병목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증 기회 부족도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로 꼽혔다. 기후테크는 현장에서 실제 설비를 가동하며 쌓은 운영 데이터가 있어야 기술 신뢰도를 입증할 수 있다. 현재 공공 입찰 시스템은 가격 요소를 우선시하고 있어 혁신 기술의 시장 진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보고서는 공공이 초기 위험을 선제적으로 분담해 민간 투자를 유인하는 '민관 혼합금융 확대'를 제시했다. 이는 막대한 초기 비용이 소요되는 기후테크 기업의 자금 조달 문턱을 낮추는 핵심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미국 '칼씨드(CalSEED)' 사례를 벤치마킨해 공공 연구시설을 활용한 기술 검증 및 실증 지원, 공공 조달과 연계한 초기 수요 견인 등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칼씨드는 초기 기후테크 기업의 '죽음의 계곡' 해소를 목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운영 중인 자금·멘토링·실증·보급 통합형 초기 지원 프로그램이다. 박소영 무협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아시아 제조 밸류체인의 허브로서 배터리·철강·자동차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의 양산 기반과 풍부한 수출 경험을 보유한 것이 큰 강점"이라며 “이러한 제조 역량을 기후테크 상용화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는 공공 주도로 실증 환경을 체계적으로 확대하고 혼합금융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투자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한국 RE100 이행 장벽 가장 높아…기업 부담 낮춰야”

우리나라의 RE100 이행장벽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력구매계약(PPA) 부대비용 면제, 계약 체결 가능 고객 범위 확대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RE100 활성화 정책과제'를 20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한경협은 이번 건의를 통해 기업의 원활한 재생에너지 조달을 위해 수요 촉진과 공급 확대 등 2개 분야 20개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RE100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원을 통해 발전된 전력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자발적 글로벌 캠페인이다. 한경협이 클라이밋 그룹과 탄소공개정보프로젝트(CDP) 위원회가 발간한 'RE100 2024 연례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기업은 미국(20개사)의 3.5배인 70개사로 나타났다. 이는 2022년(39개사)에 비해 약 80% 증가한 수치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은 RE100 이행장벽이 한국과 달리 감소 또는 보합세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기간 미국은 23개에서 20개로, 일본은 44개에서 48개로 변화했다. 중국 역시 27개에서 29개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재생에너지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의 과반수(51.4%, 36개사)가 높은 비용을 재생에너지 조달의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한경협은 '재생에너지 수요 촉진과 RE100 이행 지원',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와 거버넌스 고도화' 등 2개 분야 총 20개 과제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건의했다. 우선 기업이 발전사업자로부터 전기를 직접 사오는 PPA에 대한 과도한 부대비용을 개선해 달라고 건의했다. PPA는 주로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 간 전력구매계약 형태로 이뤄진다. 현재 기업들은 PPA를 통한 재생에너지 조달 시 순수 전력 값 외에도 송배전망 이용료와 전력산업기반기금 등 발전단가의 18~27%에 달하는 추가 비용을 내고 있다. PPA 체결 기업에게 전력산업기반기금 면제, 무역보험료 인하 등 인센티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국내 재생에너지 경쟁력이 타국과 유사한 수준이 될 때까지 PPA 부대비용을 한시적으로 면제해달라고 건의했다. 한경협은 PPA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사업자의 범위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고시를 보면 직접 PPA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대상은 고압 전기사용자(300킬로와트 이상) 등으로 한정돼 있다. 통신 중계기나 건설현장 임시전력 등 소규모 전기사용자는 직접 PPA를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없는 구조다. 소규모 전기사용자도 직접 PPA 제도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한경협은 이와 함께 제도의 활용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직접 PPA에 'N:N 계약 방식' 도입을 제안했다. 현재 직접 PPA 계약은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 간에 1:1, N:1, 1:N 형태의 계약만 가능하다. 그 결과 중소·중견기업 및 소규모 발전사업자가 직접 PPA 계약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경협은 다수의 발전소와 전기사용자가 자유롭게 연대해 거래할 수 있도록 직접 PPA에 N:N 거래를 허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글로벌 신용평가 및 투자기관에서 기업의 탄소배출 저감 노력을 주요 평가 기준으로 설정하는 등 기업의 저탄소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를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과 정책 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메모리 반도체 산업구조 변한다? 삼성·SK ‘투자시계’ 속도조절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초호황기'에 접어든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설 투자 관련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공급 확대 방법을 찾아야 할 시기지만 정치·경제적 변수가 워낙 많아 속도조절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관건은 인공지능(AI) 시대 시장 특성이 얼마나 바뀔지 여부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산업 구조 자체가 기존 '사이클'에서 벗어나 '수주 중심'으로 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으로 수요가 계속 탄탄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다. 반대쪽에서는 제조 기업들이 생산 규모를 늘리면 결국 공급이 넘쳐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이클 주기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초호황 기조가 지속되기는 힘들다는 '신중론'이다. 이들은 'AI 거품론' 등을 근거로 삼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일단 예정된 투자에 속도를 내며 업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속내가 복잡한데 국내외에서 '정치 리스크'까지 부각되고 있다. 국내 정치권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호남 이전론'이 나온다. 미국 행정부는 자국에 생산 시설을 지으라고 우리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기억장치다. D램과 낸드플래시(낸드) 두 종류로 나뉜다. D램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이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을 처리하는 공간이다.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삭제된다는 특징이 있다. 용량 대비 가격이 낸드보다 높은 편이다. 낸드는 사진, 영상, 앱 등 데이터를 반영구적으로 저장하는 공간이다. 처리 속도는 D램과 비교해 느린 편이다. 최근 주목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은 일종의 '아파트형 D램'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D램을 높게 쌓아 데이터 처리 양을 크게 늘린 것이다. AI 시대 반도체들은 모두 '귀한몸'이 됐다. 초반에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들어가는 HBM이 주목받았다. SK하이닉스가 기술 리더십을 가지고 삼성전자가 뒤를 추격하는 모양새였다. HBM을 찾는 고객이 많아지자 수익성도 올라갔다. 양사는 일반 D램 라인을 HBM에 우선 배치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자 일반 D램을 만드는 라인이 감소했다. 자연스럽게 공급이 줄고, 이로 인해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낸드의 역할도 재조명받았다. AI가 학습을 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읽고 써야 하는데 HBM이나 D램의 한계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낸드가 보완하기 시작한 것이다. 엔비디아가 올 하반기 양산하는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들어가는 SSD 용량은 1152테라바이트(TB)로 기존 제품인 '블랙웰'과 비교해 열 배 이상 많다고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범용 D램 계약 가격은 전 분기 대비 55∼60% 가량 상승할 전망이다. 3개월여만에 가격이 1.5배 이상 뛴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낸드플래시 가격도 33∼38% 오를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포스는 “AI 추론 기반 인프라 개발은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들의 (메모리 반도체) 조달을 촉진하고 있다"며 “D램 공급업체 재고 소진이 임박하고 출하량 증가가 웨이퍼 생산량 증가에만 의존하게 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투자 가속화에 따라 글로벌 서버 시장은 올해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기업용 SSD의 수요를 촉진하고 있다"며 “생산 능력 제한과 공급업체의 이윤 추구 및 출하량 조절로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기업용 SSD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반가운 소식이다. D램 시장은 사실상 '삼파전' 형국이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D램 시장 매출 기준 점유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근소한 차이로 1·2위를 달리고 있다. 조사기관에 따라 수치가 다르지만 양사 모두 35% 안팎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국내 업체들이 70% 이상을 공급하는 가운데 미국 마이크론이 20% 초반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낸드 분야는 경쟁 상대가 많은 편이다. 삼성전자가 30% 수준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19%로 2위다. 키옥시아(약 16%), 샌디스크(약 13%), 마이크론(약 12%)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하위권 사업자인 샌디스크는 최근 고객사에 SSD 가격을 두 배 이상 올려 공급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장기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선불을 받고 이마저 전액 현금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같은 호황기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무작정 증설'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가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 성격을 보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전후 업황 분위기만 살펴봐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7~2018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도래했다.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서버 수요 등이 급증하며 D램과 낸드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당시에는 D램 평균가격이 전년 대비 30~40% 가량 뛰었다. 이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증설에 나서자 이듬해부터는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제조사들이 재고 평가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2022년 전후 환경도 비슷했다.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원격·재택 근무가 늘자 노트북, 서버 등 판매가 덩달아 많아졌다. 이때도 D램과 낸드 가격이 올라가며 기업들 실적이 크게 좋아졌지만 과잉 공급으로 가격은 곧바로 급전직하했다. 지난 2023년에는 삼성전자가 감산 사실을 밝혀 시장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공급 과잉 우려에도 “인위적 감산은 없다"고 버텨왔지만 그해 4월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의미 있는 수준까지 생산량을 조정 중"이라고 언급했다. 1분기 영업이익(6402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95% 급감한 시점이었다.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감산을 인정한 것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약 14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이 회사는 앞서 공급 과잉 국면에서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치킨게임'으로 경쟁 상대들을 굴복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2010년 전후로 독일 키몬다와 일본 엘피다 등을 무너뜨린 사례가 유명하다. 이런 상황에 등장한 개념이 메모리 반도체 '산업 구조 변화론'이다. 과거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앞으로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일각에서 나온다. 수요 증가→공급 과잉→가격 하락→공급 감소→가격 상승의 '사이클'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AI 붐으로 생태계가 변했다는 것이다. 현재 빅테크 등은 AI 데이터센터 등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고, 메모리 반도체 역시 많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제조사가 만든 제품을 고객들이 사가던 과거 구도를 넘어 '선주문 후생산' 방식이 안착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생산량을 늘리더라도 과거와 같은 '반도체 겨울'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반대쪽에서는 'AI 거품' 주장이 부각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 AI 인프라 투자가 수익 검증보다 앞서 있다는 이유로 'AI 거품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데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 역시 이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엔비디아는 돈을 벌고 있지만, 이 회사 GPU를 사는 고객들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는 논리다. AI 열풍에 메모리 반도체가 초호황기에 접어든 것은 맞지만 사이클의 모양만 달라졌을 뿐 산업 특성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례 없는 호황에 수익성을 더 끌어올릴 방법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평택 5공장 공사를 재개하고 증설을 가속화하고 있다. 2028년께는 이 곳에서 HBM 등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대규모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작년 말 이재명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국내 투자 규모가 당초 계획보다 늘어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당초 SK하이닉스가 2028년까지 128조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했는데 상황에 따라 용인에만 600조원 가량 돈이 들어갈 수 있다는 발언이었다. 양사 모두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한 전면적 증설보다는 AI용 메모리와 첨단 공정 중심의 선별적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HBM의 경우 미세 공정뿐 아니라 적층·패키징·후공정 기술이 결합된 복합 제품이라는 특징이 있다. 단기간에 생산 능력을 확 늘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다만 양사 모두 수요가 늘었다고 무작정 생산 시설을 확충하기에는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메모리 반도체 산업 자체가 엄청난 투자를 기반으로 돌아간다는 특수성이 있다. 삼성전자를 보면 2022년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23조8000억원 가량인데 시설투자로 48조원 가까이 썼다. 이듬해인 2023년에는 15조원 가량 적자를 내고도 48조원 이상 투자를 해야 했다. 여기에 연구개발(R&D) 비용도 별도로 들어가야 한다. 올해 100조원 이상 영업이익을 올린다 해도 무작정 투자에 나서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여기에 '정치 리스크'라는 변수까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용인에 만들려던 거대 반도체 단지를 새만금 등 전라권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가 선을 긋고 있긴 하지만 지방 정치인 등을 중심으로 여론몰이를 지속하고 있어 기업들 입장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6월 지방선거 전까지 해당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자국 내 생산 시설이 없으면 반도체 등에 최고 1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만과 관세협상을 타결하며 '반도체 선물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대만 TSMC 등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역시 추가 투자 결정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각) 뉴욕주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모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미국과 무역 협상을 통해 반도체 관세에서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은 상태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정책이 워낙 가변적이라 정부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시계' 속도는 오는 29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양사는 이날 오전 나란히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연다. 이들이 같은 날 실적 관련 설명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먼저 콘퍼런스콜 개최 계획을 공시했는데 SK하이닉스가 일정을 같은날로 잡은 것이다. SK하이닉스 측이 사업 현황과 전략을 먼저 노출하기 싫어 '기싸움'을 펼치는 형국이라고 업계는 해석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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