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수현 자본시장부 기자
정권이 바뀌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 조용히 숨죽이던 주식시장이 어느덧 코스피 3200선을 넘겼고 한동안 잊혔던 '코스피 5000'이라는 숫자가 다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실현된 정책은 많지 않지만 대선 당시 쏟아졌던 공약들이 투자자들 사이에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오랜 침체 속에 눌려 있던 심리가 방향만 틀어도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한 셈이다.
이번 랠리의 한가운데에는 상법 개정이 있다. 그동안 기업의 권한이 대주주에게만 집중돼 있었다면, 이제는 소액주주에게도 실질적인 권리와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방향이다. 이런 흐름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을 다시 불러모았고, 부동산에만 몰리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흐를 수 있다는 희망도 커졌다.
기대가 커질수록 중요한 건 균형이다. 소액주주 보호가 너무 강조되면 기업 입장에선 오히려 장기적 투자를 꺼리게 된다. 실적과 주가, 단기 성과에만 매달리는 구조가 되기 쉽다. 자칫하면 기업의 자율성과 유연성이 사라지고, 결국 글로벌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 방향이 아무리 좋아도 속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성장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세금이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최대 60%에 달한다. OECD 평균보다 4배나 높은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기업 오너들은 회사를 키우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세금을 줄이는 데 에너지를 쏟게 된다. 중요한 경영 판단이 왜곡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주주 중심 경영을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현실에 맞는 세제 개편이 따라와야 한다.
최근 발표된 세제 개편안은 오히려 시장에 혼란을 줬다. 주식시장을 '자산 형성의 기회'로 보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증세 수단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책은 결국 일관성이 핵심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면, 시장은 그 진심을 금세 알아채고 반응한다. 주가보다 먼저 무너지는 건 신뢰다.
'코스피 5000'은 제도 하나 바꿨다고 정책 몇 개 발표했다고 닿을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단기적인 부양책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중요한 건 경제 체질의 변화다. 인공지능, 자동화 같은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받아들이고, 산업 구조를 유연하게 바꾸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그 성장을 뒷받침할 건강한 자본시장 환경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