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인공 지능(AI) 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타고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인 SK하이닉스에서 직군을 초월한 거대 '통합 노동조합'이 공식 출범 절차에 돌입했다. 사상 초유의 호실적 속에서도 그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내부 구성원 간의 파열음이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사측이 역대급 흑자에 따른 천문학적인 성과급 현금 유출을 막고자 '자사주 지급 의무화' 등 보상 체계 개편을 시도하자 반발한 근로자들이 파편화된 기존 노조를 이탈해 세력 결집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전방위적 성과급 규제 압박과 소액 주주들의 경영진 배임 고발까지 겹치면서 이번 사태는 다차원적인 복합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사 간의 임금 협상이 기업의 초과 이익 분배를 둘러싸고 각계의 이해 관계로 커져 정면 충돌하는 중대 국면을 맞이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구성원들이 주도한 '통합 노조 설립 준비 모임'은 지난 8일 관할 행정관청에 노동조합 설립 신청서를 정식 제출했다. 이르면 다음 주 중 합법적인 단일 노조로 출범할 전망이다. 양대 노총으로 흩어져 있던 기존의 틀을 깨고 사내 익명 커뮤니티 등을 통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은 결과다. 현장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지난 5일 모임 개설 이후 불과 사흘 만에 약 3만5000명에 이르는 전체 임직원의 10%에 달하는 3500명 이상이 가입 의사를 밝혔다.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통합 노조에 합류하겠다는 이탈 선언도 줄을 잇고 있다. 사측의 일방적인 개편안 제시와 지지부진한 기존 노조의 늦장 대응에 실망한 현장의 불만이 그만큼 임계점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민주노총 산하 기술사무직 지회와 한국노총 소속 전임직(생산직) 노조가 별도로 단체 교섭을 진행하는 복수 노조 체제다. 사측의 파격적인 성과급 개편 공세와 5차 본교섭까지 이어진 지지부진한 협상에 한계를 느낀 직원들이 거대 단일 노조 결성으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7만6000여 명을 결집해 사측으로부터 특별 경영 성과급을 이끌어낸 '초기업노조'의 성공 사례도 기폭제가 됐다. 동종 업계 경쟁사의 노동 권력 통합 성공은 SK하이닉스 직원들에게 '뭉쳐야 교섭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교훈을 안겼다. 통합 노조 임시 위원장은 공지를 통해 “최우선 출범 목적은 지난해 합의된 성과급 지급 약속의 완벽한 이행"이라며 “사측이 제안한 성과급 협상안을 전면 철회시키고 향후 10년간 임금 단체 협상에서 성과급 안건을 완벽히 분리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회사의 단기적인 유동성 위기 논리를 수용하지 않고 근로자의 정당한 몫을 강경하게 사수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노사 갈등의 핵심은 '초과 이익 분배금(PS)'으로 불리는 성과급 체계다. 앞서 2025년 단체 교섭에서 노사는 '영업이익의 10%'를 상한선 없이 전액 현금(당해 80%·이연 20%)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향후 10년간 유지하기로 상호 확약했다. 반도체 사이클마다 반복되던 소모적인 산정 기준 논란을 종식시키고자 도출한 획기적인 합의였다. 문제는 유례없는 반도체 호황에 있다. 증권가 컨센서스대로 2026년 연간 영업이익이 최대 250조 원에 달할 경우 산식에 따른 PS 재원만 25조 원에 육박한다. 임직원 1인당 평균 세전 7억 원 상당의 성과급이 현금으로 지급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단일 기업의 성과 보상 규모로는 전무후무한 수치로, 회사 재무 라인의 위기감이 극도로 고조된 원인이 됐다. 총 54조 원을 투입할 예정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등 글로벌 기술 초격차 유지를 위해 막대한 자본 지출(CAPEX) 재원을 보존해야 하는 사측은 당장 비상이 걸렸다. 이에 4·5차 본교섭에서 PS 총액의 50% 이상 자사주 의무 지급(일정 기간 매도 제한)과 적자 발생 시 임금 한시적 조정(삭감)이라는 파격적인 수정안을 들이밀며 사실상 1년 전 합의를 번복했다. 현금 유출을 방어하고 직원들의 이익을 회사의 장기적 가치와 일치시키겠다는 재무적 고육지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노사 관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노조는 “미래의 주가 하락 리스크를 오롯이 근로자에게 전가하고 임금 안정성을 파괴하는 개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극심한 경기 순환을 겪는 메모리 산업의 특성상 성과급을 주식으로 받았다가 주가가 곤두박질치면 실질적인 보상 규모가 쪼그라든다는 불안감이 저변에 깔려 있다. 한편 새롭게 출범하는 통합 노조가 당면한 외부 환경은 첩첩산중이다. 거대 기술 기업의 잉여 자본 유출에 제동을 걸기 위해 자본시장과 정부 핵심 부처가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사측과 맞서야 하지만 외부적으로는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관계 당국과 자본의 견제까지 이겨내야 하는 삼면초가의 상황이다. 주주 행동주의 단체인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는 최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에 전격 고발했다. 성과급은 상법상 주주총회를 거쳐야 할 '이익의 처분'에 해당함에도 경영진이 노조와 임의로 타협해 회사 자산을 유출하려 한다는 논리다. 과거 노사 간의 문제로만 치부되던 성과급 협상이 이제는 자본시장 전체의 주주 권리 침해 논란으로 확산되며 법정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주주들은 사상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최근 회사가 보통주 1주당 375원이라는 저조한 현금 배당을 결정한 것에 대해 격앙된 상태다. 무엇보다 글로벌 기술주 조정 등의 여파로 한때 역대 최고점까지 치솟았던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최근 최고점 대비 대폭 하락하며 막대한 손실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가 배당률 0.02%에 불과한 '쥐꼬리 배당금'은 주주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직원들에게는 1인당 수억 원대 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 정작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에게는 푼돈 수준의 배당만 돌아간다는 분통이 배임 고발 등 강경한 실력 행사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사측이 3분기 중 추가 주주 환원 방안을 확정해 발표하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성난 여론을 달래기엔 역부족인 모양새다. 시장에서는 회사가 실적 잔치를 벌이는 동안 그 과실을 투자자들과 공정하게 나누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며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정부 역시 강경한 기조다. 산업통상부는 “기업의 초과 이익은 미래 인프라에 재투자돼야 한다"며 대규모 성과급 지급 시 주총 승인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을 시사했다. 고용노동부 또한 이달 중 “영업이익 N% 연동 성과급 요구는 합법적 파업 대상이 아니다"라는 행정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노동계의 투쟁 동력이 크게 꺾일 전망이다. 국가의 핵심 전략 산업인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기업의 재투자 여력이 내부 성과급으로 소진되는 것을 행정력으로라도 막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풀이된다. 설상가상으로 통합 노조가 폭발적으로 세를 불렸음에도 당장 올해 임단협 테이블에 합법적인 당사자로 앉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행 노동조합법상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의 기한 제한으로 이미 기존 노조와 5차 본교섭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신설 노조가 중간에 개입할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SK하이닉스의 이번 보상 체계 갈등은 노사의 평행선뿐만 아니라 주주들의 거센 반발과 정부의 규제망, 그리고 신설 노조의 합법적 교섭권 부재라는 난관들이 복잡하게 뒤엉키면서 연내 타결을 장담하기 어려운 장기 교착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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