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윤병효

chyybh@ekn.kr

윤병효기자 기사모음




한국에 ‘원유’ 선물 주는 UAE…그 속에 숨은 은밀한 전략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3.19 06:05

강훈식 비서실장 “UAE, 총 2400만배럴 원유 공급 약속”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사우디 수출 차단, 반면 UAE는 우회 수출
UAE, 공급 충분한 머반유를 아시아 대표 유종으로 육성 전략
한국 정제능력 및 수출량 세계 5위로 최적의 전략 파트너
아시아 석유시장 왕좌 차지하려는 UAE, 해협 봉쇄기간이 관건

UAE 특사방문 브리핑하는 강훈식 비서실장

▲이재명 대통령 전략경제협력 특사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하고 귀국한 강훈식 비서실장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특사 활동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UAE)가 한국에 그야말로 단비를 준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중동산 석유 수급이 막힌 와중에 원유 총 2400만배럴을 주기로 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국내 소비량 기준으로 약 9일치이다.


여기에는 UAE의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협 봉쇄로 공급력이 현저히 떨어진 사우디아라비아를 밀어내고 아시아의 대표 석유제품 수출국인 한국시장을 사로잡는 동시에 UAE의 대표 유종인 머반유를 글로벌 벤츠마크 유종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18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아랍에미리트(UAE)는 한국에 가장 우선적으로 원유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다"며 “언제든 UAE를 통해 원유를 긴급 구매하도록 합의했다"고 전했다. 조만간 양국 간 원유수급 대체 공급경로 모색 등의 내용이 담긴 '원유 공급망 협력 양해각서(MOU)'도 체결할 예정이다. 강 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전략경제협력 특사로 UAE를 다녀 온 후 이 같은 발표를 했다.




앞으로 한국은 UAE로부터 총 1800만배럴의 원유를 공급 받는다. UAE 국적선 3척으로 600만배럴, 한국 국적선 6척으로 1200만배럴을 받는다. 앞서도 UAE로부터 600만배럴을 받은 바 있다. 이를 모두 합치면 한국은 전쟁 중에 UAE로부터 총 2400만배럴을 긴급 수혈받는 것이다.


한국은 중동산 원유 수입비중이 70%이다. 이번 중동 사태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서 심각한 원유 수급 차질을 빚고 있다. 이 와중에 UAE의 2400만배럴 공급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다. 2400만배럴은 지난해 국내 석유 소비량 255만배럴의 약 9.4일치이다.


이번 UAE의 한국 석유 공급은 바라카 원전 건설 등 양국의 전략적 협력 차원일 수도 있지만, UAE의 은밀한 시장 전략도 숨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IRAN-CRISIS/USA-CHINA-WHITE HOUSE

▲지난 11일 중동 호르무즈 해협 인근인 페르시아만을 유조선들이 항해하고 있다. 사진=연합외신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봉쇄됐다. 하지만 UAE는 해협을 우회하며 석유 수출을 이어가고 있다. 해협을 벗어난 곳에 있는 UAE의 푸자이라 수출항구와 아예 해협과 한참 떨어진 오만으로 송유관을 연결해 제한적이지만 수출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 세계 1위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수출이 대부분 차단됐고, 이외에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등도 모두 차단됐다.




UAE는 사우디가 없는 아시아 석유시장에서 왕좌를 노리고 있다. UAE의 대표 유종인 머반유(Murban Crude)를 글로벌 벤츠마크 유종으로 육성하려는 전략이다.


벤츠마크 유종이란 각 대륙을 대표하는 거래가 가장 활발한 유종을 말한다. 미주에는 미국의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유럽에는 브렌트유(Brent), 아시아에는 두바이유(Dubai)가 있다.


두바이유는 고유황의 중(重)질유로, UAE 두바이지역 유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유전의 물량은 거의 고갈되고 없으며, 비슷한 성상의 원유로 현물거래만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사우디가 두바이유 가격을 활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머반유는 저유황의 경(輕)질유로, 하루 160만배럴을 생산하는 아부다비 국영회사인 ADNOC의 생산 유전을 기반으로 한다. 물량이 풍부해 선물거래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이번 중동 전쟁에서 머반유의 장점이 확실히 드러났다. 생산이 거의 중단된 두바이유는 배럴당 150달러가 넘어 벤츠마크 기능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은 반면, 머반유는 110달러 초반대를 형성해 반대 평가를 받고 있다.


UAE로서는 사우디 물량을 대체하고, 머반유를 벤츠마크 유종으로 키우는 전략에 있어서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없다. 또한 한국은 이를 실행하는데 더 없이 좋은 석유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 기준 하루 336만배럴의 세계 5위 정제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2025년 석유제품 수출량은 4억8500만배럴로 호주, 싱가포르, 일본, 미국에 이어 5위이다.


특히 정제시설은 원유 특성에 맞춰 설정을 하기 때문에 한번 설정을 맞춰 놓으면 이를 다시 바꾸기는 힘들다. 즉, UAE 원유를 사용하기 시작한 정제시설은 당분간 UAE 원유를 계속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ADNOC은 2021년 세계 최대 거래소인 ICE와 함께 아부다비 선물거래소(IFAD)를 출범시키고 머반유 선물거래를 론칭했다. GS칼텍스는 국내 정유사 중 유일하게 IFAD와 제휴를 맺고 물량을 도입하고 있다.


석유업계 한 관계자는 “머반유를 아시아 대표 유종으로 키우려는 UAE한테는 사우디 물량이 차단된 지금이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며 “호르무즈해협 봉쇄 기간이 얼마나 길어지느냐에 따라 아시아 대표 유종이 바뀔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