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주주의 권익을 공평하게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업의 자금 운용에 있어 대주주의 사적 재량이 줄고, 합리적인 설명 책임이 요구되는 구조로 전환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한국 증시의 구조적 문제로 지적돼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지난 3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상법 개정안은 현재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 개정안은 지난 3월에도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한덕수 전 총리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도 국무회의와 대통령 재가가 남아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이 대선 전부터 적극 추진해 온 입법 과제인 만큼, 공포까지 무난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의 시행 시점은 조항별로 다르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한 조항은 공포와 동시에 즉시 시행된다.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고,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의무선임 비율을 기존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확대하는 규정, 감사위원 선·해임 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이른바 '합산 3% 룰'은 공포 후 1년 뒤부터 적용된다. 전자주주총회 관련 조항은 오는 2027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번 상법 개정안의 적용 대상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다. 개정안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상장회사'로 명시한 내용은 모두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 도입 가능성이 있는 집중투표제 역시 유사한 기준이 적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개정안의 핵심은 '소수주주가 기업 의사결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기업의 자금이 실질적으로 기업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감시할 수 있는 눈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연루된 투자나 내부거래와 지급보증 등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주주의 견제 기능이 작동하게 된다. 특히 최대주주나 사주일가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기업과의 거래가 주요 감시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국내에서는 특수관계자와의 내부거래가 절세나 탈세, 편법 증여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내부거래 자체는 위법이 아니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활용한 편법 승계나 이익 몰아주기 등으로 신뢰를 저해하는 일들이 반복돼 왔다. 실제로 이러한 거래는 국세청의 세무조사 단골 대상으로도 꼽힌다. 피해가 기업 내부에서 끝나지 않고 외부 투자자에게까지 확대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상장폐지 위기에 직면한 디스플레이·반도체 장비업체 DMS가 거론된다. DMS는 대주주의 자녀가 운영하는 기업과의 거래로 인해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회사는 정상적인 거래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회계법인은 정상적인 거래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의견거절' 의견을 냈다. 이로 인해 DMS 주식은 거래가 정지됐다. 시장에선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박용석 회장이 자녀 승계를 위해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활용했고, 이로 인한 피해가 일반 주주에게까지 번졌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정상적인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경영상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사주일가 자녀 회사와의 내부거래는 편법 증여나 탈세와 연결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단순한 내부거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산을 넘기거나 이익을 몰아주는 경우도 빈번하다"며 “이는 시장질서 왜곡도 문제지만 일반 투자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덧붙였다. 상법 개정으로 소수주주의 권한이 확대되고 이사회와 감사위원의 자기 역할이 분명해지는 만큼, 고질적인 문제였던 거버넌스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상법 개정 같은 제도 개선을 통해 이러한 리스크가 완화될 경우, 코리아 디스카운트 역시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이란 기대다. 미래에셋증권은 상법 개정이 거버넌스 리스크 완화로 이어질 경우, 우선 자기자본비용(COE)의 하락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만약 COE가 하락하고 이에 따라 자기자본이익률(ROE)도 개선된다면,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약 10% 개선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미래에셋증권 투자전략팀은 “한국 증시는 오랜 기간 낮은 PBR 수준을 지속해 왔으며, 이는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과 높은 거버넌스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근 상승한 거버넌스 리스크에 대한 시장 민감도를 반영할 시 PBR은 20%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거버넌스 리스크 해소는 단순히 COE를 낮추는 효과에 그치지 않고 이사회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경영 전반의 체질 개선을 유도할 수 있다"며 “이런 변화는 중장기적인 성장 기반 강화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ROE 개선이라는 또 다른 가치 상승 요인을 창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