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의 국회 대치 전선이 입법에서 예산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조작기소 특검법을 단독으로 처리한 데 이어 주요 쟁점 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추진하면서 국민의힘과의 충돌이 재연될 조짐이다. 여기에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까지 본격화하면서 재정 운용 방향을 둘러싼 양당의 공방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민주유공자법을 비롯한 쟁점 법안과 162조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이 핵심 충돌 지점으로 부상했다. 민주당은 입법과 미래 투자를 위한 예산 확보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법안 처리 저지와 대규모 예산 삭감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이 추진했던 조희대 대법원장 국정조사도 여전히 남아 있어 본회의를 계기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대결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종합정책질의를 마치고 부처별 예산 심사에 들어간다. 오는 16일 예산안의 증감액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가동되기 전 각 부처와 사업별 세부 예산을 검토하는 절차다. 9~10일에는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산업통상부, 국토교통부 등 경제 부처를 심사한다. 11~12일에는 법무부와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중대범죄수사청, 인사혁신처 등 비경제 부처가 대상이다. 이번 예산 정국에서는 820조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162조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정부 재정 운용의 방향과 새로운 기금의 설치·운영 방식을 놓고 여야가 뚜렷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안을 미래 성장 기반을 확충하고 민생을 뒷받침하기 위한 재정 투자로 규정하고 있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사람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 지방재정 지원, 민생경제 활성화, 안전 분야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미래대응기금 역시 미래 성장 동력을 선점하기 위한 재정 수단이라는 입장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기금 신설을 유지하면서 관련 예산을 지켜내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인 다음 달 2일까지 심사를 마무리하는 것도 민주당의 목표다. 반면 국민의힘은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를 문제 삼으며 내년도 예산안에서 27조원 이상을 삭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본사회와 빛의 위원회, 협동조합 지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청와대·중수청 특수활동비, 신고포상금 등을 불요불급한 사업으로 지목했다. 삭감 재원은 청년과 국민 안전, 민생 및 일자리 분야에 재배분해 약 11조5000억원을 증액한다는 구상이다. 무조건적인 재정 확대보다는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필요한 분야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여야 간 입장 차가 가장 선명한 대목은 미래대응기금이다. 국민의힘은 추가 세수를 재원으로 별도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에 반대하며 신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래대응기금을 이재명 대통령의 재량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재정 수단이자 2028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자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신 추가 세수는 우선 국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채무와 이자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금을 새로 만드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당 내부에서도 기금 운영 방식을 둘러싼 일부 조정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미래대응기금 적립액을 지방교부세 산정 기준에서 제외할 경우 지방재정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국회 의결 없이 주요 지출 금액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도를 설정한 부분도 조정 대상으로 거론된다. 정부안의 변경 한도인 30%를 2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 등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기금의 필요성부터 재원 활용, 운용 통제 방식까지 여야 간 이견이 겹치면서 예산안조정소위에서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입법 전선에서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오는 12일과 19일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본회의에서 민주유공자법과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한 3개 법안, 방송 관련 법안 등의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주택공급 활성화 3법은 도시정비법과 도시재정비촉진법, 용산공원법 개정안 등을 가리킨다. 민주당은 가급적 국민의힘과 협의를 통해 필리버스터 없이 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민주유공자법을 둘러싼 입장 차가 여전해 본회의 충돌 가능성이 남아 있다. 민주당은 앞서 국민의힘의 문제 제기를 반영해 법 적용 대상과 지원 범위를 상당 부분 축소했다는 입장이다. 기존 국가유공자 관련 제도와 비교해도 인정 대상과 혜택이 제한적인 만큼 법안 처리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국민의힘은 유공자 인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별도 지원기구 설치 등에 문제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유공자 지위는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방화로 경찰관이 사망한 동의대 사건과 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강도 행각까지 벌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관련자까지 유공자 심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법안의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존중하는 것과 개별 사건 및 관련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법안의 문제점을 알리는 카드뉴스를 배포하는 등 여론전에도 나서고 있다. 본회의 상정 시 필리버스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처리를 저지하겠다는 태세다. 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정조사를 다시 추진할지도 정국의 변수다. 민주당은 당초 지난 5일 국정조사 요구서를 본회의에 보고하고 1~2주 뒤 의결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최근 추가 의견 수렴을 거치기로 하면서 일정을 미뤘다. 다만 국정조사 추진 자체를 철회한 것은 아닌 만큼 민주당이 다시 관련 절차에 착수할 경우 사법부를 둘러싼 여야 갈등까지 더해질 수 있다. 예산안 심사와 쟁점 법안 처리가 맞물린 상황에서 국정조사 문제까지 수면 위로 올라오면 정국 경색이 한층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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