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2025년 한반도는 폭염과 가뭄, 산불과 물폭탄, 끓는 바다와 무너지는 생태계가 동시에 겹치는 '복합 기후위기'의 한복판에 놓였다. 과거에는 “이례적"이라 불리던 현상들이 반복되며, 재난은 특정 계절이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위험으로 전환되고 있다. 기후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재난의 빈도만이 아니라 성격 자체를 바꾸고 있다"며 “한국 사회의 재난 관리·산업·에너지·복지 체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한다. 2025년 한반도를 특징 짓는 10대 기후 뉴스를 짚어본다. ① 역대 최고 여름 기온, 세계 평균의 두 배로 뜨거워진 바다 지난 여름 전국 평균기온은 25.7℃로 가장 더웠던 지난해(25.6℃)보다 0.1℃ 높아 1973년 이래 역대 최고 1위를 경신했고, 평년보다 2.0℃ 높았다. 6월 말부터 이른 더위가 나타나 8월 하순까지 지속됐다. 6월은 평균 22.9℃로 1위, 7월은 27.1℃로 2위, 8월은 27.1℃도 2위를 기록했다. 남성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확장한) 티베트 고기압과 (동쪽에서 서쪽으로 확장한)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강력하게 유지되면서 한반도의 대기 상층과 하층을 뒤덮은 이중 고기압 구조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7년간 전 지구 평균 해수면 온도는 약 0.74℃ 상승했지만, 한국 해역은 1.58℃ 상승했다. 특히 동해의 상승 폭이 두드러진다. 최근 14년간 고수온으로 인한 양식업 피해액은 누적 3000억 원을 넘어섰고, 고수온 특보 발령 기간도 역대 최장을 기록했다. 명태 등 한류성 어종은 자취를 감춘 반면, 참다랑어·방어 같은 난류성 어종이 주종으로 자리 잡으며 어장 지도가 급변하고 있다. 따뜻해진 바다는 대기 중 수증기 공급을 늘려 극한호우와 강력한 태풍을 키우는 '연료' 역할도 한다. ② 폭염형 돌발가뭄의 상시화… “가뭄은 이제 순식간에 온다" 올해 한반도 곳곳에서는 '돌발가뭄(Flash Drought)'이 새로운 재난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수개월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던 전통적 가뭄과 달리, 극심한 폭염 속에서 수 주(週) 만에 토양 수분이 급격히 고갈되는 현상이다. 기온 상승으로 증발산량이 폭증하면서 강수량이 평년 수준이더라도 농업·생활·공업용수 피해가 동시에 발생한다. 강원도 강릉시 오봉저수지는 불과 한 달 사이 저수율이 약 50%포인트 급감하며 바닥을 드러냈다. 강릉시는 수도 계량기를 일부 잠그는 방식으로 제한급수를 실시했다. 강릉 단오제 보존회는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祈雨祭)까지 지냈다. 전국에서 달려온 소방차가 하천수를 정수장과 오봉저수지로 날랐고, 강릉에서 남서쪽으로 16㎞ 떨어진 도암댐의 물을 활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극심한 더위를 동반하는 '복합 폭염 돌발 가뭄'의 경우 가뭄 피해는 더 커진다. 기상청과 학계 분석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폭염일수 증가와 함께 폭염형 돌발가뭄의 발생 빈도와 지속 기간이 뚜렷하게 늘어났다. 그러나 현재의 월 단위 가뭄 예·경보 체계로는 주 단위로 급변하는 돌발가뭄을 포착하기 어렵다. 가뭄의 정의, 통계 방식, 대응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③ 영남을 덮친 '괴물 산불'… 기후변화가 키운 화마 3월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기후변화형 산불'의 전형을 보여줬다. 산불 발생 전 해당 지역의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약 20%에 불과했고, 기온은 초여름 수준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순간 최대 초속 25m를 넘는 강풍이 겹치며 불길은 통제 불능 상태로 확산됐다. 활엽수 대신에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위주로 숲을 조성한 탓에 산불 피해가 컸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의성 산불은 시간당 최대 8.2㎞라는 기록적인 속도로 번지며 산림 약 10만 ㏊를 태웠고, 30명 이상의 인명 피해를 남겼다. 전문가들은 해수면 온도 상승이 대기 순환을 교란해 건조하고 강한 바람을 유도하면서, 산불이 특정 계절의 재난이 아니라 연중 상시 위험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산불 대응 전략 역시 '진화 중심'에서 '사전 예방과 연중 관리'로의 전환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④ '200년 빈도' 극한호우의 일상화… 시간당 100㎜가 흔해졌다 충남 서산, 전북 무안 등지에서는 시간당 100㎜를 넘는 기록적 폭우가 반복됐다. 1년 치 강수량이 1시간에 퍼붓는 식이다. 폭우와 더불어 산사태도 발생했다. 7월 경남 산청군에서는 집중호우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해 4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 피해도 컸다. 최근 10년간 시간당 80㎜ 이상 극한호우의 발생 빈도는 과거에 비해 약 4배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하루 누적 강수량이 통계적으로 '2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을 넘어서는 사례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는 대기 온도 상승으로 공기 중 수증기 보유량이 증가한 데다, 정체전선이 좁은 지역에 오래 머무는 기압 배치가 잦아진 결과다. 문제는 도심 하수관로와 배수펌프장이 여전히 과거 강우 기준으로 설계돼 있어 단시간 집중호우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기후학계에서는 극한호우를 한반도 여름 기후의 '뉴노멀'로 받아들이고, 치수·도시계획 기준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⑤ 사라진 장마, 커진 가을 우기… 무너지는 계절의 경계 지난 9월 1일부터 10월 13일까지 서울 지역에 내린 강수량은 모두 530㎜로 평년 같은 기간의 165.5㎜의 3배가 넘었다. 올여름 중부지방 장마기간(6월 19일~7월 20일) 32일 동안 서울에 내린 비는 모두 357.1㎜인데 비해 9월 12~10월 13일 사이 32일 동안의 강수량은 430㎜였다. 장마철보다 더 많이 내렸다. 전통적인 여름 장마는 약화되는 반면, 9~10월에 강수량이 집중되는 '가을 우기'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1998년 이후 초가을 누적 강수량은 과거 평균 대비 약 42%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북태평양고기압이 가을까지 세력을 유지하며 고온다습한 공기를 지속적으로 한반도로 밀어 넣은 결과다. 가을 우기는 수확기를 맞은 농작물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배추 무름병 확산, 벼 쓰러짐 피해가 대표적이다. 계절 구분을 전제로 설계된 농업·치수·재난 대응 체계 전반의 재점검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⑥ 한반도 이산화탄소 농도 430.7ppm… 수치로 확인된 위기 2024년 충남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소에서 측정된 이산화탄소(CO₂) 배경농도는 430.7ppm으로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해 전 지구 평균(422.8ppm)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메탄(CH₄)과 아산화질소(N₂O) 역시 안면도·고산·울릉도 관측소 모두에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한반도 상공에서 온실가스가 빠르게 축적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폭염·폭우·산불 등 극한 기상 현상의 물리적 배경으로 작용한다. 이 수치는 향후 기후 정책과 감축 목표 설정의 기준선이자 경고등으로 해석되고 있다. ⑦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 컨트롤타워의 시험대 정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신설하고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환경·에너지·탄소중립 정책을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뿐 아니라 이미 현실화된 폭염·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기후 적응' 기능이 강화됐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믹스 결정권과 예산 조정권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경우, 한국의 기후 정책이 선언적 단계에서 실행 단계로 전환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것이냐, 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를 어떤 속도로 줄여나갈 것이냐, 원자력발전을 확대할 것이냐, 재생에너지 확대과정에서 자연생태계 보존에 얼마나 무게를 둘 것이냐 등을 놓고 고민에 빠지게 된 측면도 있다. ⑧ AI 실시간 홍수 경고 전국 확대… 기술이 생명을 지킨다 2025년 여름부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실시간 홍수 위험 경고 시스템이 전국 993개 하천 지점으로 확대 적용됐다. 하천 수위가 계획홍수위에 근접하면 인근 차량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 앱을 통해 즉각 경고가 전송된다. 기존 대하천 중심 예보에서 지류·지천까지 관리 범위를 넓혀 재난 사각지대를 줄였다는 평가다. AI를 활용한 CCTV가 사람과 차량을 자동 인식해 위험 지역 진입을 차단하는 기능도 도입됐다. 예측 불가능한 극한호우 시대에 정보통신 기술 기반의 대응 체계는 핵심 안전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 ⑨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확정… 논쟁에서 실행으로 정부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했다. 단일 수치가 아닌 범위로 제시된 이번 목표는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수용성을 동시에 고려한 결과다. 산업계와 시민사회 간의 치열한 논쟁 끝에 도출된 수치로, 하한선인 53%는 헌법재판소의 기후소송 불합치 결정 취지를 반영한 최소 기준으로 평가된다. 이제 관건은 목표 설정이 아니라 실행력이다. ⑩ 아열대화되는 생태계… 바뀌는 숲과 밥상 기온 상승으로 농작물 재배 한계선은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과거 대구 일대가 주산지였던 사과는 강원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 적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2090년대에는 한반도에서 사과 재배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남부 지방에서는 레몬·애플망고·바나나 등 아열대 과일 재배가 빠르게 확산 중이다. 산림에서는 한라산 구상나무 등 고산 침엽수가 집단 고사하며 멸종 위기에 처했고, 외래 해충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한반도 생태계 전반이 새로운 기후 체제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 뉴스가 아니라 생존 뉴스다" 2025년 한반도의 10대 기후 뉴스는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된다. 기후위기는 이미 현재형이며, 재난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9월 환경부와 기상청이 발간한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는 이런 상황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온실가스를 지금처럼 계속 내뿜는다면 2100년 무렵 한반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워지고, 기상 재해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보고서는 온실기체를 지금처럼 계속 내뿜는 '고배출'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2100년까지 한반도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최대 7℃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온이 7℃까지 상승한다면, 폭염 일수는 현재보다 9배, 열대야는 21배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고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반의 전환"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후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향후 한국 사회의 안전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