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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 칼럼]혁신 없는 보수, 국민은 이미 버렸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먼저 자신을 변화시켜라"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처럼 스스로의 변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정말 끝이다. 길 잃은 배가 암초를 향해 돌진하듯, 국민의힘은 총선·대선 패배의 교훈도 잊고 여전히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다. 여론은 벌써 등을 돌렸고 TK조차 더 이상 보수의 성지가 아니다. 정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지난10일 한 기관에서는 10%대가 나왔다. 안철수 의원의 사퇴이후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이 지난 9일 혁신위원장으로 등장했다. 네 번째 혁신위원장이다. 윤 위원장은 “당원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겠다"고 했다. 공천권을 쥐고 흔들던 중앙의 권력을 내려놓겠다는 의미지만 여론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안철수 의원이 인적 청산을 요구하며 물러난 지 이틀 만이다. 윤 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도 권력에 줄 선 정치의 폐해를 지적하며 사과한 바 있다. 10일 혁신위원회 첫회의를 연뒤 '국민과 당원에게 드리는 사죄문'을 냈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저지른 과오와 단절하는 것을 당헌·당규에 명시하는 방안을 전 당원 투표를 거쳐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사죄문에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 계엄과 탄핵 △특정 계파 중심의 당 운영 △대선후보 강제 단일화 △이준석 전 대표 강제 퇴출 등 당 안팎에서 제기된 문제들도 담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비슷한 말은 많았지만 실행은 없었다.이번에도 과오에 대한 당사자 사과와 관련자 인적청산에 대한 애기마저 없다보니 여론은 '양치기 소년' 취급이다. 중앙당의 권력구조, 공천 장사, 지역 기득권 보호, 이런 것들이 남아 있는 한 보수의 쇄신은 없다. 미국 공화당, 영국 보수당, 일본 자민당이 몰락의 위기에서 살아난 것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과 당원의 선택에 맡겼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은 지역구별 프라이머리를 통해 후보를 뽑는다. 영국 보수당은 당원과 지역 조직이 후보를 추천한다. 일본 자민당도 2009년 대패 후 젊은 리더십을 키우고 지역 기반을 재건해 다시 집권했다. 이들은 중앙 권력을 축소하고, 지역과 국민에게 권한을 이양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해보인다. 먼저 중앙당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중앙에서 후보를 낙점하고, 공천 장사하던 구조를 끝내야 한다. 정당은 지역과 유권자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공천도 프라이머리로 바꿔야 한다. 지역 당원, 국민이 직접 후보를 고르게 해야 한다. 이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정치 개혁이다. 다선 의원의 엄격한 공천 제한도 실행되야 한다. 정치인은 영원히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미국·영국·일본도 대부분 3선 이상은 예외적이다.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그만두는 것이 정치인의 본분이다. TK 지역의 '공천=당선' 구조는 국민의힘의 가장 큰 독소다. 이를 깨지 못하면 TK는 보수의 근거지가 아니라 보수의 무덤이 될 수있다. 실질적 세대 교체가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6070 중심에서 3040이 중심이 되도록 세력 교체를 단행해야 한다. 수도권과 청년층이 외면하는 정당은 더 이상 전국 정당이 아니다. 국민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수도권 민심을 되찾을 수 없다. 법과 질서, 공정과 상식이라는 보수의 가치를 정책으로 복원해야 한다.윤 위원장의 말처럼 “당원이 혁신의 주체"여야 한다.권력자에 줄 서는 당원이 아니라, 지역에서 민심을 듣고 목소리를 내는 진짜 당원이어야 한다. 그들의 참뜻을 따르는 게 혁신이다. 이 과정은 물론 쉽지 않다. 정치적으로 자살행위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 전환기는 늘 그런 결단에서 시작됐다. 1990년 3당 합당이 그랬다. 5공 세력을 청산하고 보수 외연을 넓혔다. 당시의 결단이 없었다면 보수는 오래전에 몰락했을 것이다.보수의 위기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시작됐다. 무능한 지도부, 탐욕스러운 지역 정치인들, 국민보다 권력을 더 사랑하는 정치공학이 보수를 죽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체와 재건이다. 진보가 존재하는 한 보수는 필요하다. 좋아서가 아니라 견제와 균형,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보수의 회생도 보수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고 국민을 위한 일이다. 지금은 시간이 없다. 보수로서는 내년 지방선거, 2년 뒤 총선이 마지막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나라에 보수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국민은 더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보수는 버려진다. 구호만 외치고 권력만 탐하고 내분만 일삼은 정당에 국민은 두 번 다시 손을 내밀지 않는다. 김병헌 기자 bienns@ekn.kr

[데스크 칼럼]‘사자’가 된 이재명에게 거는 기대

2016년 6월, 이른 더위가 아스팔트를 달구던 광화문광장에서 농성 중이던 이재명 성남시장을 인터뷰했었다. 처음에는 연설 잘하는 시민운동 출신으로 유명했다. 성남시장이 된 후에는 “행정도 좀 하네“라고 알려졌었다. 별 기대없이 천막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받았던 첫 느낌은 재주는 있지만 깊이나 덕이 부족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인상으로 치면 원숭이나 여우 쯤 된다고나 할까? 이후 그는 경기도지사를 거쳐 대권 주자로 성장했다. 2017년 대선 경선 실패, 2022년 대선 본선 패배 등 연이은 좌절을 딛고 지난달 3일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잇딴 패배나 지난해 1월 부산 피습사건과 같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성숙해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이 대통령의 인상에선 한결 편안함과 당당함이 느껴진다. 담백하고 수수하지만 꺾을 수 없을 것 같은 자신감도 베어있다. 풍진 세월을 겪은 사자나 우두머리 고릴라 같은 느낌이다. 그동안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지난 3일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 그 변화의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전략가'의 역량을 갖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들은 한계가 많았다. 다방면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말 그대로 '크게 통치하는 우두머리(大統領)'가 될만한 능력을 가진 이는 거의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평생 정치만 하던 사람이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박학다식한 개혁가였지만 행정 경험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변호사 출신 혁신가였지만 실무·경제엔 약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도 경영처럼 한 기업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내 '박정희의 큰 딸'일 뿐이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인격자였지만 결단력과 내공이 약했다. 쿠데타를 일으켜 3년 만에 쫓겨난 윤석열 대통령은 그냥 술꾼 검사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사회와 경제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지속가능성과 성장을 어떻게 동시에 확보할 것인가에 대해 식견을 갖춘 답을 내놓았다. 정치지도자인 동시에 경제적 지식을 갖춘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 관련 대책이다. 단편적 처방에서 벗어나 서울에 '돈과 사람'이 몰리는 것을 막아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종합 전략'을 제시했다. 과거처럼 '부동산' 측면만 본 단선적인 접근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 하에 복합적으로 접근해 해법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전략가' 대통령의 시작은 좋다. 해박한 지식과 행정 경험이 토대가 된 안정감, 특유의 소통 능력, 좌우를 막론한 탕평인사가 지지율을 탄탄하게 뒷받치고 있다. 취임 후 지지율이 4주 연속 상승 추세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한국 사회의 룰을 다시 셋팅하고 시스템을 혁신해 지속가능한 경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당장 내수 부진을 회복해야 하며, 멈췄던 과학기술투자를 되살려 내 미래 먹거리를 창조해야 한다. 시장 실패, 정부 실패를 모두 극복해 한국 경제의 심장에 엔트로피가 없는 영구기관을 장착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띄고 있다. 기후 위기, 에너지 고갈 시대에다 미국발 관세 전쟁 등 대외적인 변수도 심상잖다. 어느 대통령 때나 다 마찬가지지만, 이 대통령의 성공이 곧 대한민국 생존의 길이라는 게 더욱 절실한 시기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달려가면 된다. 본인의 말마따나 '크게 하나로 묶어내는 우두머리'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김봉수 기자 bskim2019@ekn.kr

[데스크 칼럼] 감독 독립성 없이 금융소비자 보호는 허상이다

“이원화된 감독체계 아래서는 감독 정책과 집행 간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 결과적으로 사후 개선이 잘 안 되고, 금융감독의 비효율과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2020년 12월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남긴 말이다. 당시 그는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대형 금융범죄로 휘청이는 시장 한가운데 있었다. 수많은 금융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었고, 감독 시스템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윤 전 원장은 재임 기간 내내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주장했지만 정부와 금융위원회의 반대로 추진 동력을 얻지 못했다. 논의는 금감원과 금융위 간 기싸움으로 번지며 개편은 흐지부지됐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의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체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돼 17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그 사이 금융환경은 급변했고, 금융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저축은행 부실, DLF·라임·옵티머스 사태, 사모펀드 환매 중단 등 사건이 반복됐지만 감독 시스템은 번번이 뒷북을 쳤다. 그럼에도 체제 개편은 정권 초의 구호에 머무르기 일쑤였고, 시간이 흐르며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곤 했다.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이재명 정부가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핵심 의제로 꺼냈고, 새 정부의 금융당국 수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은경 한국외대 교수가 구체적인 개편 방향을 공개적으로 제시하면서 논의가 현실성을 띠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현 금융감독체계는 기형적이며 반드시 개편돼야 한다"며 금융위원회의 해체와 금감원•금융소비자보호원의 기능 재편을 주장했다. 특히 그는 “금융위가 산업정책과 감독을 동시에 수행한 구조 탓에 사모펀드, 동양사태 같은 대형 금융사고가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주장은 단순한 이론적 비판이 아니다. 김 교수는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으로 재직하며 감독권한이 없는 상황에서도 헤리티지펀드 사태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섰다. 당시 헤리티지펀드가 독일 펀드인 점을 고려해 해외 관련 기관의 자료를 직접 확인하는 등 문제 해결에 힘썼다. 그 과정에서 윗선의 개입과 압박도 겪었으며, 금융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음에도 실질적인 조치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를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금융위 출신 인사들의 민간 금융사 이직을 제한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 역시, 산업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이 한 조직에 섞여 있는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짚은 것이다. 현재 논의 중인 개편안은 금융위원회의 금융산업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금감원 내부 조직인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독립시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립하는 방안이 중심이다.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감독과 정책 기능을 명확히 분리하고 기관별 역할과 권한을 재정립하려는 구상이다. 지금처럼 금융위가 금감원에 대한 지휘권을 쥔 상태에서는 누구도 실질적인 감독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 결과, 감독은 무뎌졌고 금융의 공공성은 약해졌다. 감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권한 부여뿐 아니라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와 신속한 대응 체계 마련도 필수적이다. 금융시장이 급변하고 복잡해지는 현실에서, 모호한 책임구조와 권한 집중은 또 다른 금융 사고의 씨앗이 될 뿐이다. 금융산업의 건전한 성장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신뢰받는 감독기구가 필요하며, 이는 제도적 틀부터 바로 세우는 데서 출발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함께 경제 운영의 큰 방향을 설정하고, 전방위적 구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역시 이 흐름 속에서 강한 실행력으로 추진돼야 한다. 기능은 나누고, 권한은 조정하며, 책임은 분명히 하는 것. 그럴 때에야 비로소 금융감독은 작동하고 신뢰는 돌아온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데스크 칼럼] ‘코스피 5000’ 말하지 말라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넘겼다. 종목창은 연일 붉게 반짝였다. 시장은 흥분했다. 언론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했다고 분석했다. 애널리스트는 정책수혜주라며 목표 주가를 한 뼘씩 높여 잡았다. 증권가가 즐비한 동여의도는 지금 잔칫집 분위기다. 시가총액은 물처럼 불어났다. 여러 주가가 신고점을 경신했다. 기업이 커지고 경제가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게 코스피 3000이라는 숫자가 보여준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코스피 5000을 약속했다. 경제가 좋아진다, 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여의도 전역에 만연하다. 서학개미들은 쟁여놓은 테슬라도 팔고, 앤비디아도 팔았다. 대신 국장이 불붙었다. 마치 코로나19 이후 동학 개미 운동이 재현되는 것만 같다. 코스피 지수 역대 최고는 2021년 7월 6일의 3305.21이었다. 이 숫자를 믿고 동학 개미는 2022년까지 3000선을 밀어 올리며 버텼다. 당시 증시 활황은 유동성 덕이었다. 침체된 경기를 우려한 각국 정부가 돈을 풀었다. 한국 정부도 국채를 찍어 돈을 마구 풀었다. 한국의 광의통화(M2)는 2500조 원에서 3900조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췄고, 정부는 대규모 재정을 투입했다. 코스피가 오르니 시장은 환호했다. 주가는 올랐다. 왜 오르는 지 알 필요도 없었다. 오르면 좋았다. 빚을 내서 좋다는 주식을 사들였다. 기업에 돈이 흘러 들어갈텐데, 기업은 증자나 재투자를 꺼렸다. 활황에도 공장을 더 짓지 않았다. 일자리도 늘리지 않았다. 기업도 돈놀이에 빠져있었다. 코스피는 올랐으나 시장은 썩고 있었다. 지수 3000은 모든 상장사 시가총액 합이 2500조 원을 넘었다는 뜻이다. 지수가 5000이 되려면 4166조 원은 되어야 한다. 누군가 1666조 정도 자금을 들여 코스피 상장사 주식을 사줘야 목표 지수에 닿을 수 있다. 1666조라는 '추가 자금'은 어디에 있나? 정부는 자금을 '유동성 공급'으로 해결할 모양이다. 소비 진작으로 경제 선순환 고리로 잇는 거다. 전국민 지원금으로 소비에 직결되는 자금을 공급, 돈이 회전하고 일자리가 많아지고 이익이 증가하면서 증시 투자로 돈이 흘러가고, 기업이 재투자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유동성을 공급하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국채를 발행하면 채권금리가 상승하고 그에 따라 회사채 금리도 오른다. 직접 금융이 어려워지면 기업은 증시에서 자금을 구해야 한다. 증자를 하면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섣부른 방법 중에 하나가 가상자산현물ETF다. 거대한 가상자산 시장의 자금이 증시로 유입될 수 있다. 그러나 이 ETF 자금은 코스피 숫자만 밀어올릴 뿐이다. 이 자금은 어느 기업의 투자에도 전달되지 않는다. 버블의 기반이 된다. 코스피 5000은 바라마지 않는 숫자다. 숫자만 보고 있으면 조바심이 나고, 뭔가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정부는 유동성 확대 카드부터 꺼내기 마련이다. 과거가 결과를 알려준다. 일본의 1980년대 말, 그리고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시기와 똑같다. 결과는 자산 폭락, 금융위기, 구조조정, 그리고 장기침체였다. 선거에 쓰던 '코스피 5000 달성'같은 비전은 안 써도 된다. 기업의 생산성 개선과 기술 혁신에 방해되는 규제만 치워주고 조용히 펀더멘탈만 강화시켜 주면 된다. 코스피 1만이면 뭐하나. 펀더멘탈이 부실하면 경제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데스크칼럼] 이재명의 탈석탄 vs 트럼프의 아름다운 석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대표적 실책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이다. 그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다른 선진국들보다 저렴하게 요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자력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4월 기준 원전의 발전 단가는 kWh당 80원인 반면, 가스발전 단가는 159원이다. 탈원전은 현실을 외면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서 환영받을 수 없었다. 이재명 정부는 탈원전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대선 전 “민주당이 더 이상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우파 에너지, 좌파 에너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전 세계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SMR(소형모듈원전)이라든지 MMR(10메가와트 이하 원자로), 더 나아가서 핵융합 에너지 등 미래 전략산업의 육성을 위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원전 실책으로 잃었던 민심을 만회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쩌면 이 대통령도 탈원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 탈석탄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10대 공약 중 기후 분야에서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폐쇄'를 약속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61기에 약 40GW 용량에 달하는 석탄발전이 있다. 2040년까지면 15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단순 계산하면 1년에 4기씩 석탄발전을 없애야 한다. 1기당 650MW 규모이므로 1년에 2600MW의 발전용량을 석탄에서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깝다. 이 대통령이 석탄발전을 없애겠다고 약속한 이유는 석탄의 환경오염 때문일 것이다. 석탄은 연소 과정에서 많은 배출물질을 발생시킨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천연가스의 3배이고,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그리고 먼지도 많이 발생시킨다. 우리나라 봄철마다 극심한 미세먼지가 생기는 것도 중국의 석탄발전에서 나오는 물질이 한반도로 유입되는 것이 주요 요인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석탄의 다른 면도 봐야 한다. 석탄은 에너지원으로서 아주 훌륭한 물질이다. 석탄의 열량은 석유, 천연가스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가공이 거의 필요없고, 유일한 고체물질이라서 운송도 매우 쉽고 저장도 쉽다. 무엇보다 매장량이 전 세계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고갈 걱정도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전국에 걸쳐 매장지가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8일 미국 내 석탄산업을 활성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석탄은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안전하고 강력한 에너지이다. 저렴하고 효율성이 뛰어나고 거의 파괴되지 않는다"며 “아름답고 깨끗한 석탄을 저렴한 미국 에너지로 계속 활용할 것"이라고 석탄을 치켜세웠다. 트럼프는 환경 파괴론자가 아니다. 현실주의자다. 앞으로 국가간 패권싸움은 얼마나 우수한 AI(인공지능)를 확보했느냐에서 나온다. AI는 데이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데이터센터 확보가 경쟁의 핵심이다. 데이터센터는 에너지 먹는 하마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 에너지 소비량을 감당하려면 충분한 석탄 공급이 필요하다는 게 트럼프의 의도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AI 전쟁에 뛰어들었다. 앞으로 막대한 에너지 소모가 예상된다. 그런 와중에 석탄발전을 폐쇄한다면 도대체 어떤 에너지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을까? 전국 모든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모든 산간과 해안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며,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해결하기 위해 화재 위험성이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전국에 구축해 놓으면, 과연 그것이 석탄발전을 대체한 깨끗한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신규 원전 수십 기를 추가 설치해야 하는데, 과연 어느 지역에 할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는 국가의 근간이다. 얼마나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느냐가 국가간 경쟁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석탄발전 패쇄 정책을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데스크 칼럼] 새정부 기업·노동 정책, 명분보다 실리로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정부'가 지난 4일 출범했다. 보궐선거인 탓에 당선과 함께 곧바로 국정 업무에 돌입한 국민주권정부는 임기 중 경제정책 방향으로 '대한민국의 경제강국 실현'을 제시했다. 경제강국 실현을 위한 △국익 중심 통상 △실용적 외교 △남북관계 회복 등 외교·통상 정책과 △인공지능(AI) 기반 전략산업 육성 △재생에너지 확대 △주식시장 활성화 등 산업·금융 정책이 핵심이다.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국정 과제들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제시된 이들 정책은 이해관계에서 무엇보다 정부가 얼마나 주도적으로 강한 협상력과 지원, 정책 의지를 발휘하느냐가 성패의 열쇠이다. 이와 달리, 국민주권정부가 표방하는 기업환경과 노동 관련 정책은 정부의 관철 의지 못지 않게 기업과 근로자라는 이해당사자간 사회적 합의가 수반돼야 한다는 점에서 원만한 정책 실현에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를 전망이다. 역대 정부에서 기업환경과 노동 정책은 집권세력이 진보냐 보수이냐 성격에 따라 기업이나 근로자에 힘이 더 실리면서 친기업, 친노동으로 규정지워지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친기업, 친노동의 교체를 되풀이하면서도 큰 흐름에서는 국제적 보편성을 충족시키는 정반합(正反合) 프로세스를 가동시켜 온 게 대한민국의 기업환경과 노동정책의 발전 여정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기간 중 더불어민주당을 중도보수 정당으로 선전했음에도 정치학자와 일반국민들은 국민주권정부를 '진보 정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환경과 노동 정책이 진보 개혁 기조로 진행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약속했던 통합과 실용의 국정 철학이 진보주의의 가치와 토대를 손상하지 않고 어떻게 기업과 노동의 상반된 계급적 이해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냐는 점이다. 가령, 이 대통령의 공약 중 이른바 '온라인플랫폼법', '노란봉투법' 등의 입법화는 상대적 약자인 소상공인,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이지만 기업에 과도한 규제나 경영권 보호수단 상실이라는 우려와 반발 때문에 이해당사자간 첨예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플랫폼법의 경우, 독과점 플랫폼 사전규제와 대형 플랫폼 사업자의 중소 입점업체를 대상 불공정행위 규제(갑을관계 규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와 의회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독과점 규제를 반대하고 있다. 자칫 갑을관계 규제만 적용하는 반쪽자리 입법이 될 경우 국내 플랫폼 기업의 역차별, 국내 유통혁신의 퇴행 등 역효과만 낳을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노란봉투법 역시 찬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법안은 근로계약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고,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제한하는게 골자이다. 노조는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가 헌법이 보장하는 파업권 및 노조활동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입법 정당성을, 반대로 기업은 불법파업 조장, 기업 재산권 침해 등을 들어 부당성을 서로 주장하고 있다. 민주공화정의 국체를 다시 정립한 국민주권정부는 좌고우면할 겨를 없이 '경제강국 실현'의 명분을 내걸고 매진할 것이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계층과 계급간 이해충돌의 국정과제는 정권 명분론보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 우선이라는 실리주의에 충실해야 한다. 내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국민주권정부의 대통합 추구에 부합하고, 원활한 국정수행의 지름길이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데스크칼럼] 후보자를 벗고, 대통령이 되기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지금, 아쉬운 지점이 있다. 이번 선거 과정은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책 논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선거 기간 중 재계는 AI 역량 강화와 규제 완화를 통한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했다. 시민단체들은 주거권 보장, 연금 개혁, 보건의료 확충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정책들을 절실히 요구했다. 노동계도 보편적 노동권 보장과 반노동 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 모든 요구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해법들이었다. 후보자들은 이런 정책을 두고 뜨거운 토론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후보자들의 공개적 발언과 토론은 어떠했는가. '커피 원가' 논란, '내란' 의혹, 과거 부패 및 의문사 의혹, '독재자' 수사 등 개인의 도덕성과 과거 행적을 둘러싼 공방이 토론을 지배했다. 최근의 '젓가락' 논란은 차마 글로 옮기기도 조심스러운 지경이다. 이러한 괴리는 단순히 아쉬운 수준을 넘어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선거 기간 중 상대방 공격과 과거 변명에 치중하여 당선된 정부는 구체적인 정책 개혁에 대한 명확한 국민적 위임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상충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우선순위화하고 이행하는 데 근본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도 우려다. 대립적이고 비방적인 선거 과정을 통해 집권한 행정부가 국가적 통합과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핵심적인 국가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광범위한 합의 형성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선거는 내일 치러진다. 그리고 6월 4일부터는 새로운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차기 대통령에게는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전혀 다른 자세가 요구된다. 무엇보다 역할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표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후보자'에서 모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국가 지도자'로의 완전한 변신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이해관계자들이 제시한 절실한 정책 요구에 진정성 있게 응답해야 한다. AI와 디지털 전환을 통한 미래 성장 동력 확보, 주거 안정과 사회 복지 확충을 통한 민생 안정, 사회적 대화를 통한 정의로운 사회 구현 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들이다. 또한 소통 방식의 혁신이 절실하다. 상대를 공격하고 과거를 변명하는 데 익숙해진 정치적 관성을 과감히 버리고, 국민과 직접 소통하며 정책의 필요성과 방향을 설득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통합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분열된 선거 과정을 치유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갈등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합리적 균형점을 찾는 지혜로운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차기 대통령이 진정한 국가 지도자로서 역사적 책임을 다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국민들이 진정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김병헌 칼럼] ‘백척간두(百尺竿頭)’의 경제 앞에 선 정치

“물을 건너지 않고는 바다를 알 수 없고, 산을 넘지 않고는 그 너머의 세계를 알 수 없다."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정식 시문(詩文)에서 확인되지는 않지만 그의 말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경제를 진단하는 데 있어 이 고전의 통찰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정부도, 한국은행도, 여야 정치권도 바다 건너는 배에 타지 않았다. 산 너머를 보려는 망루도 짓지 않았다. 우리 경제는 지금, 고물가, 고금리, 고부채'3고(高)'라는 질긴 덫에 빠져 있다.지난달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다시 한 번 2.75%로 동결했다. 표면적으론 인플레이션 둔화와 경기 위축, 부채 부담을 고려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안엔 방향을 향한 철학도, 구조 변화에 대한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서민에게는 숫자가 아닌 체감이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달 기준 2%대를 기록했지만,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6% 상승했다. 더구나 농축수산물 가격은 6% 이상 올라 체감 물가는 통계보다 훨씬 위협적이다. 한 끼 외식비가 1만 원을 넘는 시대다. 커피 한 잔 가격은 6천 원대를 넘본다.공자(孔子)가 편찬한 역사서인 춘추(春秋)의 대표적인 주석서 중 하나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상화이민곤(上和而民困/윗사람은 평안한데 백성은 곤궁하다"는 말이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가계부채는 1,806조 원. 국민 한 사람당 약 3,500만 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 가운데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약 70%에 달한다. 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가도, 전체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은 15조 원이 늘어난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코로나19 이후 대출로 연명하던 이들이 이제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지만, 경기는 되살아나지 않는다.앞으로 나가자니 부채가 발목을 잡고, 물러서자니 물가의 칼끝이 서민 경제를 베어낸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79%로 상승했다. 이는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월세 내고 직원 월급 주면 남는 건 마이너스"라는 말이 상식처럼 오간다. 이제는 장사를 접을지, 버틸지를 두고 줄을 서는 형국이다. 와중에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다시 가팔라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3개월 연속 상승했다.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된 자산시장의 불안한 움직임이다. 경제에서 금리는 신호다. 정책은 방향이고, 금리는 그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신호도 그 등대도 없다. 그러면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난해 4월 총선 이래 12·3 계엄사태,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지금까지 여야는 경제 회복보다 '주도권 싸움'에 몰두해왔다.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뒤늦게 유력 대선 후보들은 앞다퉈 경제회복에 외치고 있지만 공약은 하나같이 공허해 보인다. 실천 의지가 제대로 담긴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의 무망한 '경제 공백' 속에서 국민의 삶은 오늘도 무너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오는 28일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발표한다. 기존 전망치는 2.1%였지만, 1% 중후반 혹은 1% 초반까지 하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부 민간 연구기관은 무려 0.8% 전후까지 하락할 것이라고도 예측한다. 더큰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다. 우리의 성장 궤적은 수년간 점차 기울어왔다. 팬데믹의 후유증, 글로벌 금리 인상, 공급망 재편, 미·중 패권 경쟁, …이 모든 것이 구조적 요인으로 누적되어 왔다. 여기에 트럼프 관세 전쟁은 새로운 불확실성까지 가중시키고 있다.고통은 현실이고, 위기는 현재다. 아쉽게도 해답은 경제 통계 속에는 없다. 거리의 노점상, 새벽의 택시 기사, 반찬 앞에 선 주부, 빚내어 집을 산 청년의 눈빛 속에 있다. 정치란 결국, 국민을,사람을 위한 것이다. 정치는 위기 앞에 비로소 진심을 보인다고 하니 이번 대선을 통해 정치는 진심을 회복하고 다시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불씨를 살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경제는 결코 숫자가 아닌 사람의 문제라는 사실도 명심하기 바란다.

[데스크칼럼]‘이재명표 빈집털기’의 나비 효과

역대 이런 대선은 없었다. 5년의 임기를 2년이나 단축한 '친위 쿠데타'로 예정에 없었던 대선이 3년 만에 치뤄지고 있다. '내란 진압'을 명분으로 똘똘 뭉친 범진보가 강하게 응집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우향우' 행보에도 아무런 반발이 없다. '독재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에도 묵묵부답이다. “사실은 우리가 중도 보수"라면서 온갖 정책적 우클릭을 해도 그냥 넘어간다. 예전같았으면 난리가 날 일들이다. 집토끼를 지킬 필요가 없어진 이 후보는 '빈집털기'에 한창이다. 이 전술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스타크래프트 같은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RTS) 게임을 통해 익숙하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일꾼 유닛을 동원해 상대방 본진을 공격한다. 상대의 핵심 기반이 비어 있을 때, 그 틈을 기습적으로 파고들어 치명타를 입힌다. 이 후보도 선거 초반부터 '중도 보수' 선언, 우클릭 정책·공약, 보수 인재 영입, 영남 집중 유세로 상대방 본진을 공략하고 있다. 반면 범보수 진영은 와해 국면이다. 처음부터 조갑제, 정규재, 김진 같은 보수 논객들이 이탈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민주당을 '좌파'로 칭하며 싫어하고 자유시장주의 수호를 외쳐 온 사람들이다. 최근엔 김상욱, 김용남, 최삼화, 권오을, 이인기 등 보수 정치인들이 적진에 합류했다. 심지어 홍준표 전 대구시장마저 사실상 적과의 '연합전선'을 펴고 있다. 지역적 기반도 흔들린다. 부산, 경남은 이미 여론조사에서 '디비졌다'. 오차범위 내에서 이 후보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를 앞선 결과가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대구, 경북도 위험하다. 지난 대선에서 20%대에 그쳤던 이 후보 지지율이 지금 30%대를 넘었다. 한국 유권자 특유의 '싹쓸이 방지' 심리가 발동될 기미도 안 보인다. 2024년 총선 때만 해도 유시민 작가의 '200석 발언'이 계기가 돼 영남 위주로 막판 제동이 걸렸다. 지역 평균 40% 득표율에도 1석에 그친 부산이 대표적이다. 반면 이번 대선에선 유 작가가 “55% 돌파"를 언급했어도 반향은 없다.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이다. 사상 초유 '후보 강제 교체' 소동 때문에 초반부터 지리멸렬하다. 김 후보와 경쟁했던 한덕수 전 총리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고 홍 전 시장이 미국으로 떠나는 등 내분이 여전하다. 12.3 비상계엄과 내란, 국정 실패·최악의 경제난에 대한 책임론도 해소하지 못했다. 지난 1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탈당으로 겨우 반전의 계기가 마련될 지 주목되는 수준이다. 판세는 이 후보가 김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까지 승리해 '중도 좌파+보수, 호남·수도권+영남'의 거대 여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은 지역 기반도 없는 소수당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후보의 '빈집털기'가 단순 선거 전략이 아니라 이념·정치 구도를 확 바꿀 '태풍'이라는 얘기다. 기우지만 민주당은 승리하더라도 오만과 독선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국민의힘의 생로는 환골탈태 뿐이다. '기득권 연합'에서 벗어나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공당의 면모를 회복해야 한다. 김봉수 기자 bskim2019@ekn.kr

[데스크 칼럼] 잠재성장률 0% 위기, 경제구조 개혁이 열쇠다

수출은 정체되고, 소비는 위축됐다. 기업의 투자는 지연되고, 가계는 지갑을 닫았다. 경기 둔화 신호는 경제 전반에서 동시에 관측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일시적 침체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저성장 국면으로 고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1.5%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이 수치는 단기 경기의 반등 여부를 넘어, 한국 경제의 '기본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KDI는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40년대에는 잠재성장률이 0%대로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 중진국 진입의 동력이 되었던 인구 구조와 생산성 요소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의 하락은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의 하향을 의미한다. 저출생·고령화, 생산 가능 인구 감소, 노동시장 경직성, 기술 혁신 둔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급 측의 제약이 커지는 상황에서 수요 측면의 부진도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가계의 소비 여력은 떨어졌고, 기업들은 대외 불확실성에 더해 내수회복의 기대마저 낮아지면서 투자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 모두에서 성장이 막힌 것이다. 금융과 외환시장에도 경기 둔화의 흐름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원화 약세와 고환율 흐름은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며 외국인 자금의 이탈 압력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금리와 환율, 물가 등 거시 지표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 심리는 약화되고 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통화·재정정책의 실효성도 제한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2.75%로 유지하고 있지만 환율 불안정성과 높은 가계부채 부담으로 인해 금리 인하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재정정책 역시 국가채무 증가와 재정건전성 우려 속에서 과감한 확장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경제는 이제 '성장 여력의 저하'라는 구조적 문제와 '정책 여력의 한계'라는 현실적 벽에 동시에 직면해 있다. 외부 충격이 아니더라도 내부적으로 축적된 리스크가 성장 모멘텀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진단이 유효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 전환기에 어떤 정책적 선택을 할 것인가다. 노동시장 유연화, 산업전환과 같은 경제구조 개혁 과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특히 생산성 정체가 잠재성장의 핵심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노동개혁을 통한 고용시장 정상화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조정, 성과중심 임금구조로의 개편, 획일적 노동시간 규제 완화는 당장 우리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산업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한 달 뒤 들어설 차기 정부의 우선적인 과제로 반드시 자리매김해야 할 대목이다. 수치는 분명하고 방향도 뚜렷하다. KDI의 경고처럼 잠재성장률 0%대 시대는 단지 먼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정치와 정책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결국 국민의 삶으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은 진단이 아니라 실행의 시간이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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