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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면세점 위기 짓누르는 ‘인천공항 임대료’

국내 면세점업계가 불황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롯데·신라·신세계·현대 등 면세점 4사는 외견상 모두 영업흑자로 전환하거나 전분기(2024년 4분기)보다 영업손실을 대폭 줄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순수 영업활동에 따른 개선이라기보다는 대부분 희망퇴직, 매장 폐점·축소 같은 '고강도 비용절감'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고환율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 백화점·쇼핑몰·균일가할인점 등 경쟁업태로 고객 이탈이 이어진 탓에 어려움을 겪는 면세점업계가 특히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은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 부담'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지난 2023년 공항면세점 임대료를 기존 '고정 임대료제'에서 '객당 임대료제'(출국여객 1인당 임대료 산정)로 전환했다. 그러나, 엔데믹 일상회복 이후 고환율·쇼핑패턴 변화로 해외여행객은 늘었음에도 1인당 면세점 구매액은 감소하는 바람에 면세점업계에 '큰 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인천공항 출국여객수는 3531만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3556만명) 수준을 거의 회복했지만, 지난해 면세업계 매출액은 14조2249억원으로 같은 기간보다 42.8%나 줄었다. 이는 여행객의 쇼핑패턴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거나 낙찰받기 위해 높은 입찰가격을 제시하는 등 면세점업체 귀책사유가 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천공항공사의 비항공수익(면세점 임대료 등)이 전체 수익의 65%로 해외 주요 공항(40~45%)에 비해 높다는 점, 한국공항공사가 김포공항 면세점 등에서 '영업요율 임대료제'(면세점 매출에 연동해 임대료 부과)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 제도 개선을 바라는 면세점업계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정부 특허사업인 면세사업은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 유통업종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시장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전에 유통 전공 한 대학교수가 기자에게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면세점 중 현재 소비침체 위기에서 가장 돌파구를 찾기 힘든 업종은 면세점"이라고 말한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면세점의 위기 돌파는 면세점사업자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아울러 인천공항공사도 면세점과 공항공사 간 지속적인 '공생관계'를 위해 면세점의 경영애로 개선에 손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선거 흐름을 잃은 국민의힘

대선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여느 대선 시즌 같으면, 이 시점에는 판세 분석이 한창일 것이다. 세대별 투표 성향을 분석하고, 이른바 스윙 보터 지역의 민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때라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 정치 전문가도 이런 분석을 내놓지 않는다. 이는 단지 이번 선거가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선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국민의힘이 만든 상황 자체가 판세 분석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 경선을 통해 선출된 김문수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자, 상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었다. 자신에 대한 후보 자격 박탈 결정 직후 김문수 후보는 “야밤에 정치 쿠데타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국민의힘은 '친위 쿠데타'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정당이다. 그런데,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출한 이 정당의 대선 후보의 입에서 '쿠데타'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이는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내란 세력' 혹은 '친위 쿠데타 세력'이라는 말이 나도는 상황에서, 해당 정당의 대선 후보가 직접 '쿠데타'라는 표현을 쓰니, 국민의힘이라는 이름은 '쿠데타'라는 단어와 분리해 생각하기 어려울 지경이 됐었다. 이런 이미지를 안고 대선을 치르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 같은 사태를 초래한 것은 물론 국민의힘, 그중에서도 친윤 세력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들이 어떤 의도로 이 같은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는 보수 유권자에 대한 명백한 배신 행위임은 분명하다. 이를 단순히 '한심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다. 문제는 이미지뿐만이 아니다. 선거는 흐름을 타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선거의 흐름을 타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을 돕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민주당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들이 발생해도 국민의힘 주류들의 행동이 그것들을 덮어주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주당은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형사 재판을 재임 기간 중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형사소송법 306조 제6항)을 신설한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 개정안에는 “다만, 피고 사건에 대하여 무죄ㆍ면소ㆍ형의 면제 또는 공소기각의 선고를 할 때는 재판을 계속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도 포함돼 있다. 이 개정안이 '신기한' 이유는, 재판 결과를 사전에 알아야만 재판의 개최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재판 결과를 미리 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공정한 재판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 관련 재판만은 공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7일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구성 요건에서 '행위'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민주당 주도로 가결시켰다. 그런데 이 법안을 가결한 바로 다음 날, 민주당은 출마를 저울질하던 한덕수 전 총리를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와 형법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자신들이 우리나라 법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완화하는 개정안을 의결해 놓고, 하루 만에 그 '지나치게 엄격한' 법 조항을 근거로 고발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의도한 대로 개정 법안이 시행되면, 정작 한 후보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고발을 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런 논리적 모순이 가득한 법안을 민주당이 남발해도, 국민의힘은 내부 갈등으로 인해 이러한 문제들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그들은 국민의힘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한편, 현재 김문수 후보로 당의 후보가 결정되었다고 해서 국민의힘 내부의 자중지란이 끝난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국민의힘의 모습을 보며, 그저 할 말을 잃게 된다. 신율

[EE칼럼] 자연생태계 균형의 중요성을 생각해보자

매년 5월 22일은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유엔이 지정한 '세계 생물다양성의 날'이다. 생물다양성이란 지구에 생존하는 모든 종의 다양성, 이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다양성, 생물이 지닌 유전자의 다양성을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침팬지 박사'로 유명한 제인 구달은 생물다양성을 거미줄에 비유했다. 거미줄의 줄이 한두 개씩 끊어지면 거미줄이 점점 약해지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서 동식물이 하나씩 없어지면 생명의 그물망이 끊겨 나가 안전망에 구멍이 생기고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생물다양성은 모든 생명의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경제활동에 중요한 생물자원을 제공한다. 곤충을 포함해서 인간 생활에 필요하거나 유용한 동식물을 생물자원이라고 한다. 의약품의 70%가 생물자원을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버드나무 껍질로부터 만들어진 아스피린은 대표적인 해열진통제로 100년이 넘도록 판매되고 있고, 주목나무 성분으로 만들어진 항암제 택솔 역시 지금까지 치료제로 이용되고 있다. 귀뚜리미가 14초 동안 우는 횟수에 40을 더하면 그 주변의 온도를 알 수 있다는 '돌베어 법칙' 역시 귀뚜라미가 주변 온도에 민감하다는 특성을 관찰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자연생태계가 균형을 유지해야만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이 공급될 수 있고, 건강한 토양으로부터 안전한 먹거리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현재 지구 생태계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변화, 환경오염, 산림 훼손,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감소하고 유용한 생물자원이 줄어드는 위험에 처해 있다. 매년 전 세계가 직면한 위험요인을 조사하고 있는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생물다양성 손실'은 2020년 이후 매년 심각한 위험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또 UN생물다양성협약 사무국이 2020년 발표한 다섯 번째 '지구생물다양성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년 사이에 전 세계 야생동물 개체군의 68%가 사라졌고, 공룡 멸종에 이어 여섯 번째 '생물종 대멸종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했다. 2022년 발표된 세계자연기금의 '지구생명보고서' 역시 5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생물종 개체 수가 1/3 수준으로 급감했음을 강조했다. 이에 따른 경제적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 “The Economic Case for Nature"에 따르면 전 세계가 생물다양성 손실과 자연자본의 손실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2030년까지 연간 2.7조 달러 규모의 손실이 예상된다. 이외에도 생물다양성이 새로운 경제 이슈로 부각되면서 기업의 생물다양성 관련 ESG 노력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 국가들 중심으로 생물다양성 관련 사항을 규제에 추가하여 기업들이 생물다양성과 관련된 내용을 공시하고 직접 관리하도록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일까? 우리나라 역시 생물다양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주요 생물서식지인 산림과 농경지 면적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정책적으로 보호 관리가 필요한 멸종위기 야생동물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다섯 번째 '국가생물다양성전략'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은 생물다양성과 생물자원의 보전과 이용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생물다양성을 보전해야 하는 주체라는 인식은 7%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특히, 기업이 생물다양성 보전의 주체라는 인식은 단 4%에 그치고 있다. 국제사회는 생물다양성 손실을 멈추기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훼손된 생태계의 30%를 복원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겠지만, 사실상 이해당사자인 시민과 기업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한 실천은 간단하다. 생물다양성 보호에 기여하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고, 동식물의 서식지를 위협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줍는 것도 작지만 울림있는 행동이다. '세계 생물다양성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가 자연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균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그 누구도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릴 자격이 없다는 점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조용성

[기자의 눈] 탄소비용 없이는 ‘허상’, 기후경제가 갖춰야할 조건

기후경제는 기후위기 대응 산업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자는 표현이다. 태양광, 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 가상발전소(VPP)를 통해 수백조원 규모로 키우자는 것이다. 하지만 기후경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후경제는 사람들에게 탄소비용을 강제로 부과하지 않으면 경제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전력은 실시간으로 소비돼야 하는 상품이다. 수요와 상관없이 날씨에 따라 전력을 생산하는 재생에너지는 시장 교란자다. 라면가게 주인이 저녁 손님이 먹을 라면까지 점심에 한꺼번에 끓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점심에 끓인 라면을 저녁까지 불지 않게 보관하는 라면저장고 개발에 돈을 쓰고 있는 가게 주인을 황당하게 여기지 경제성장에 기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돈으로 신메뉴 개발이나 가게 확장을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정부가 라면가게 주인이 점심에 만든 라면을 계속 먹지 않으면 세금을 왕창 부과한다고 하면 우리 생각은 달라진다. 저녁에도 불지 않는 라면을 제공해주는 라면저장고가 절실해질 것이다. 재생에너지도 비슷하다. 화력, 원자력으로 전력을 잘 쓰고 있는데 인공지능(AI) 개발 등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던 돈을 재생에너지를 갖추기 위해 써야 한다. 탄소비용 없이 정치적 구호만 있는 기후경제는 허상일 뿐이다. 기후위기로 우리 사회가 붕괴된다는 비용을 무한대로 가정하고 이에 맞춰 탄소에 가격을 매겨야 기후경제는 실현될 수 있다. 부동산과 주민 설득에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탄소비용 없이는 당장 그리드패리트(재생에너지발전 비용과 화력발전 비용이 동일해지는 상황) 달성이 불가능하다. 기후경제를 주장하고 싶다면 탄소비용을 어떻게 부과할지 고민해야 한다. 탄소비용은 탄소세나 탄소배출권 제도로 실현 가능하다. 현재 배출권 제도는 흉내만 내고 있다. 국내 배출권 가격은 톤당 1만원 정도로 유럽의 10분의 1 수준이다. 기후경제가 힘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조기 대선에서 기후경제를 강조하는 대선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다. 이 후보는 10대 공약 중 기후위기 대응 공약에 배출권 유상할당 비중 확대를 포함했다. 탄소세 혹은 배출권에 대해 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지만, 모든 산업이 온실가스 감축을 하도록 탄소세를 도입하거나 배출권 할당량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농어촌공사 신임사장에 김인중 전 농식품부 차관

한국농어촌공사는 제12대 신임 사장에 김인중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임명됐다고 14일 밝혔다. 신임 김인중 사장은 충북 진천 출신으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행정고시 제37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재정담당관, 새만금개발청 개발사업국장, 농촌정책국장, 식품산업정책실장, 차관보 등을 거쳐 지난 2022년 5월부터 1년 3개월간 농식품부 차관을 역임하는 등 30년 가까이 농업·농촌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 농정전문가로 꼽힌다. 특히, 농어촌공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식량정책과 농촌정책 분야에서 전문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2017~2019년 식량정책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큰 폭으로 하락했던 쌀값을 안정시켰으며, 현재 농업직불제의 근간이 되는 공익형 직불제 도입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차관보와 차관 시절에는 지속가능한 농촌 발전을 위해 농촌공간계획제도를 도입하는 '농촌공간재구조화법'을 제정하고 농촌공간정비사업을 신규사업으로 개발·추진했다. 김인중 사장은 15일 전남 나주 농어촌공사 본사에서 취임식을 갖고 공식업무를 시작한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이슈&인사이트]트럼프의 관세 전쟁과 세계의 선거

#2025년 5월 3일 토요일. 호주 총선에서 집권 노동당의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하원 의석 150석 가운데 85석 이상을 확보하면서 승리를 선언했다. 두 달 전만 해도 야당인 자유당과 국민당 연합에게 패색이 짙었으나 극적으로 선거의 운명을 뒤집었다. 이번 총선에서 자유당과 국민당 연합의 대표 피터 더튼 자유당 당수는 트럼프 미 대통령과 같이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를 설치해 공공부문 인력을 대폭 감축하겠다고 공약했다. 자신을 부자로 만들고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것으로 믿었던 유권자가 트럼프와 머스크의 대량 해고에 따라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으면서 트럼프를 괜히 뽑았다고 후회하는 사이, 호주에서도 유권자의 마음이 동요했다. 자유당 당수는 지지율만 떨어진 게 아니라 자신의 지역구도 잃고 선거에서 패배했다. # 4월 28일 월요일. 호주와 같은 영연방국가이자 미국과 국경을 마주한 캐나다의 총선에서 집권 자유당이 과반에 3석 부족한 169석을 차지하면서, 144석을 얻은 보수당을 이겼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2015년부터 10년 동안 캐나다를 이끌어오면서 지지율도 떨어졌고 정치적 피로감에 입지도 크게 흔들렸다. 코로나19 시절 트뤼도는 대규모 재정지출로 경제를 지탱했으나 그 여파로 물가는 나빠졌고 금리도 올랐다. 유권자는 높은 생활비와 주택 가격에 시름을 겪었다. 연초까지만 해도 보수당에 20% 포인트 이상 낮은 지지율로 패색이 짙었는데 결국 자유당은 대역전에 성공했다. 트럼프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편입시키겠다고 했고 25%라는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했다. 또 트럼프는 트뤼도 총리를 주지사라고 부르면서 캐나다인의 자존심을 긁었다. 이에 자유당은 영국의 중앙은행 총재까지 역임한 전문가인 마크 카니를 얼굴로 선거를 치러 승리했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차기 총리를 넘겨보던 피에르 포일리에브르 보수당 당수는 20년간 지켜온 자신의 지역구에서 패배해 의원직마저 잃었다. 포일리에브르는 '캐나다 우선'(Canada First)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그는 트럼프를 연상시킬 정도로 인기영합주의적인 정책을 공약했다. # 5월 4일 일요일. 원래 11월로 예정되었으나 조기에 치러진 싱가포르의 총선에서는 집권 인민행동당이 압승했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 초대 총리가 만든 인민행동당은 1965년 독립 이후 모든 총선에서 승리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선거의 관심은 누가 이기느냐보다는 인민행동당이 얼마나 이기느냐였다. 지난해 5월 싱가포르의 새 지도자가 된 로런스 웡 총리는 취임 뒤 첫 선거에 승리함으로써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리콴유의 장남인 리셴룽 전 총리가 코로나19를 이유로 2020년으로 약속된 퇴진 시기를 2024년까지 늦췄고 그 뒤에도 정계 은퇴 대신 초대 총리와 같이 선임장관직을 유지하자 비판을 받았다. 교통부 장관은 뇌물을 받다가 걸렸고 고위 관료 둘은 국유 주택을 사적으로 유용했으며 국회의장은 의원하고 불륜 스캔들을 일으키는 등 유권자의 마음이 많이 돌아선 상황이었다. 선거 결과는 인민행동당이 전체 97석 중 87석을 차지하는 승리로 끝났다. 2020년 총선에서는 93석 중 83석을 차지했는데 이번에 선거구 개편으로 늘어난 의석수 4석만큼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의 여파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싱가포르 유권자는 안정 추구 심리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웡 총리는 선거 과정에서 미중 사이의 관세 전쟁에 따른 경제 위기를 강조하며 안정적인 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 2025년 6월 3일. 한국도 조기 대선이다. 한미 관세 협상을 앞두고 “미국이 원조, 기술 이전, 투자, 안전 보장을 제공해줬다"라고 하면서 “우리의 산업 역량과 금융 발전, 우리 문화, 성장, 부유함은 미국한테 도움을 크게 받은 덕"이라고 주장한 자를 후보로 옹립하려 했던 당이 있다. “미국의 행동을 맞서야 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양쪽에 윈윈이 되는 해법"을 찾겠다고 했다. 벌써 두 번째인 조기 대선에서 한국의 유권자는 어떤 정당을 선택할까. 이준한

[EE칼럼] 익숙해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의 소중함

“연로하신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에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도시락이 아니라 어머니가 건강하게 살아계신 것에 행복해야 합니다." 최근 퇴근길에 우연히 시청한 유튜브에서 들은 대화다. 늘 함께 있어 그 소중함을 잊고 있던 것들에 대해 감사해야 함을 가르쳐준 죽비였다. 우리는 오랜 기간 값싼 전기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나를 새삼 깨닫는다.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이 급격히 올랐다. 2010년까지만 해도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택용 전기요금의 60% 수준에 불과했으나, 2020년 이후 급상승했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83원으로, 주택용보다 비싸졌다. 전기요금 인상은 '그리드플래이션(Gridflation)'을 유발한다. 이는 전기요금 등 에너지 요금 상승이 다른 상품들의 가격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는 현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3.6%로, 2023년 12월 이후 가장 많이 올랐고, 외식 물가도 2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리드플래이션'은 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높은 에너지 비용은 기업의 운영 경비를 증가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지난 3월 연간 1조 원 이상의 전기요금을 내던 현대제철이 제철소를 미국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산업용 전기 요금이 10% 상승하면, 설비투자는 1.41% 감소하고 GDP는 0.18% 줄어든다"고 분석한 바 있다.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 값싼 발전원 중 하나인 원전을 자체 설계‧건설‧운영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선이 다가오면서 탈원전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이를 위한 전력망 확충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실제 그렇게 됐을 때, 대다수 국민과 기업이 얼마나 큰 부담을 져야 하는지를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우리가 값싼 전기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원전이다. 1978년부터 이어온 원전 건설 덕분에 품질 좋은 전기를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원전 공급망을 구축했고 우수한 인력을 양성했다. 이들은 국내 원전을 설계‧건설‧운영하는 것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원전을 개발해 냈다. 그 결과, 연구로와 상용 원전을 수출하는 성과도 거뒀다. 지난달에는 미국에 차세대연구로 설계를 수출하였다. 66년 전 우리나라에 연구로를 공급하고 기술을 전수했던, 원전 기술의 종주국 미국에 역수출하는 쾌거였다. 그러나 원전 산업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지나치게 늘고 있다. 일부는 우리 원전 산업을 폄훼하고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들의 주장대로 원전 산업이 붕괴한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3월 서울에서 열린 한-영 청정에너지 워크숍에서 만난 영국 원자력 전문가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재 영국은 원자력 전공 교수 인력이 부족해 대학별로 독립적인 원자력공학과를 운영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에 대학별로 분산된 교수진을 모아 온라인 과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기대만큼 인력 양성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1956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칼더홀(Calder Hall) 원전을 운영한 세계 최고의 원자력 기술 강국 중 하나였다. 그런데 시즈웰 B 원전 운영을 시작한 1995년부터 힝클리 포인트 C 원전 건설을 시작한 2017년까지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원전산업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했다. 결국 힝클리 포인트 C 원전 건설은 프랑스 기업에 맡겨야 했고, 원자력 전공을 가르칠 교수조차 찾기 어렵게 됐다. 정치의 과도한 개입으로 원전산업 생태계를 붕괴시킨다면. 우리나라도 결국 영국과 같은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이제부터라도 정치권은 원전 문제를 단순히 '줄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활성화하여 국가 전력 공급에 더욱 기여하게 할 것인지', '세계 원전 시장에 어떻게 더 많이 진출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원전 산업이 살아야, 우리가 지금까지 누려온 값싼 고품질 전기의 혜택을 미래에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주현

[기자의눈] 전세사기특별법, 피해자 ‘0’ 될 때까지

“조금 저렴하다는 이유로 전셋집을 고르지 말고,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경매 등으로 이 집을 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드는 집일 때 계약해야 한다. 그런 집이 전세 문의도 줄을 이어서 보증금 반환 지연 등 문제가 생기지 않고, 만약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해결이 수월하다." 최근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단 소속 관계자를 만났을 때 들은 조언이다. 부모님 품을 떠나 집을 구하려는 20~30세대에게 전세사기 피해는 남의 일이 아니다. 주위의 누구에게 물어봐도 피해 사례 한두 건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이러한 공포는 주거 선택의 기준마저 바꾸고 있다. 전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젊은 세대들은 훨씬 더 부담이 큰 월세를 찾고 있다. 초기 보증금 부담이 없는 대신 매달 상당한 액수의 현금을 지출해야 하지만 전세 사기를 당할 가능성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최근엔 언론이나 대중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듯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올해 들어서도 1월 957명, 2월 1258명, 3월 873명 등 매달 피해자가 1000명 안팎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과 달리 정치권과 정부의 대응이 안일하다는 것이다. 최근 개정된 전세사기 특별법은 오는 31일까지 최초 계약을 체결한 세입자만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정부는 전세사기 특별법의 원래 취지가 '일시적 구제'에 있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지금 추세로는 6월부터도 매달 1000여 명씩 발생할 피해자는 공식적으로 전세사기 특별법에 따른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들에게도 구조적인 방지책이 마련될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또 솜방망이 처벌조차 개선되지 않았다. 미추홀구 일대에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을 일으켰던 남모 씨는 세입자 수백 명을 상대로 수백억 원대 보증금을 편취했음에도 고작 징역 15년만을 받았다. 심지어 공범들은 무죄나 집행유예 판결이 나왔을 정도이다. 처벌이 약할 경우 전세사기는 범죄의 리스크보다 수익이 크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전셋집에 거주하려던 이들 가운데는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초년생들도 많다. 그런 만큼 그들이 들고 나온 보증금은 사실상 전 재산에 가깝다. 사회에서 뗀 첫걸음이 빚과 주거 불안정의 구렁텅이로 변하지 않도록, 피해 인정 기간이 확대돼 전세사기 피해자가 '0'이 되는 그날까지 정부 지원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신연수 칼럼] 소프트 파워의 시대는 끝났나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개념을 정립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지난 주 별세했다. 강압이나 물질적 보상을 통해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는 능력이 '하드 파워'라면, 매력이나 설득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소프트 파워다. 미국이란 나라가 냉전 이후 세계 원 톱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물론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 덕분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와 문화, 외교적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3선 출마를 거절함으로써 민주적 정권교체 전통을 확립한 것이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한 사례는 수많은 책과 영화를 통해 세계인들의 머릿속에 미국의 문화와 가치를 새겨 넣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연합(UN) 설립을 주도하며 지금의 국제질서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랬던 미국이 스스로 소프트 파워를 파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멋대로 다른 나라를 협박하고 불안하게 한다. 미국의 가치관을 세계에 퍼뜨리는 하버드, 스탠퍼드 같은 명문 대학들에 대한 지원을 끊고, 다양성과 포용성 정책을 폐기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해외 원조를 중단하고, 담당 부처인 국제개발처 직원들을 해고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단기적인 시야로 국익을 챙기다가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국익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국력이 무척 커졌지만 국제사회에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2030년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추월하리라는데, 미국은 소프트 파워조차 버리고 무엇으로 중국을 이기려고 하는지 의아하다. 소프트 파워의 결핍은 국제 정치 뿐 아니라 국내 정치에서도 두드러진다. 국내 정치야말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프트 파워의 경연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거대 양당이 벌인 행태는 실망스러웠다. 자기네 대장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대법원장 탄핵을 외치는 민주당에는 독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삼권분립이라는 것이 이제 막을 내려야 될 시대가 아닌가"라며 아예 대놓고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말까지 한다. 다수당의 힘을 내세워 장관들과 검사들을 줄줄이 탄핵한데 이어 법관들도 탄핵할 참이다.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으로서 입법권을 장악한데 이어 행정권, 사법권까지 갖는다면 브레이크 없는 독주 체제가 될까 걱정이다. 이재명 후보는 “복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비명횡사' 공천으로 '뒤끝 작렬'을 보여준 바 있다. 반대파를 포용하기보다 확실한 보복으로 모두 엎드리게 만든 노골적인 '하드 파워'였다. 국민의힘도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게 없다. 김문수 후보는 경선에서 단일화를 외쳤지만 당선된 뒤에는 공식 후보라는 '권력'을 믿고 약속을 저버렸다. 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뽑은 대선 후보를 한밤중에 날치기로 바꾸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일화를 관철하려 했다. 무엇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이야말로 소프트 파워를 무시한 전형적인 사례다. 윤 전 대통령은 3년 전 대선 때 야당과의 협치, 국민 통합을 외치며 당선되었다. 그러나 집권한 뒤에는 소통하고 설득하기보다 야당과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갔고, 결국 군사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대착오적인 계엄령까지 선포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는 저서 에서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민주주의의 탈선을 막는 가드레일 역할을 한다고 했다. 정치적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고, 주어진 권력을 행사할 때 자제심을 발휘하는 관행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라는 것이다. 관용과 절제의 미덕을 저버리고 극단적 대립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엊그제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한 대선 후보들은 모두 계파를 초월한 화합과 국민 통합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권력을 쥐게 되면 소통과 타협보다 제도적 강제력을 앞세울까 걱정이다. 어느 후보가 약속을 잘 지킬지 눈 밝은 유권자들이 승리하는 대선이 되길 바란다. 나이 교수는 떠났지만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EE칼럼] 대선 공약의 불편한 진실: 폐플라스틱은 ‘도시 유전(油田)’인데, 왜 금맥을 끊나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플라스틱 제로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국가 차원의 탈(脫)플라스틱 로드맵 수립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다회용 용기 보급을 확대하며, 궁극적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제로(0)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플라스틱 제로' 정책은 기후위기 대응과 환경 선진국 도약을 위한 친환경 공약의 하나로 등장했다. 하지만, 공약 의도와 달리, 해당 정책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진정한 친환경 정책은 경제성과 사용자 편의성을 모두 고려할 때 지속가능 해진다. 환경을 생각한 정책이라도 소비자와 산업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용을 수반하거나 대체물의 환경효과가 불투명하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현실을 도외시하는 이상적이고 강경한 탈레반 식의 환경 우선주의가 얼마나 일반 국민들의 원망을 들었는지 경험하지 않았는가. 이러니 심지어 정치 이념화되면서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보수층 유권자 전체가 묻지마 반대 식으로 친환경정책 자체에 등을 돌리게 되는 계기를 낳았다. 그러니 결국엔 집권하더라도 환경부 장관은 전문성이 없더라도 경제적 균형감각이 있는 외부 수혈만 있는 게 아닌가. 국가 통수권자 입장에서 표 깎아먹는 환경 탈레반을 부처 장관으로 임명하기엔 당연히 마음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국무회의에서도 다른 장관들과는 달리 항상 분위기와 겉도는 보고만 할테고 안 봐도 뻔하다. 아무튼 본 사안과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플라스틱을 대체할 대안 소재의 실효성이다. 예를 들어 일회용 플라스틱을 특수 코팅 종이로 대체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이러한 코팅지 역시 친환경적이지 않을 수 있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 코팅 처리된 종이는 표면에 얇은 플라스틱 층(비닐류)을 입혀 방수성을 확보한 것으로, 재활용 공정에서 일반 종이와 함께 처리하기 어렵다. 실제 제지업계에 따르면 “종이류는 물에 젖으면 잘 녹아내리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종이에는 비닐 성분이 함유된 것"이라고 한다. 즉,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종이는 물에 잘 풀어지지 않아 종이를 재활용하기 위한 해리 공정(물에 불려 섬유질을 분리하는 단계)을 방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코팅지 대부분은 일반 종이처럼 재활용되지 못하고 선별 과정에서 걸러져 소각 처리되고 만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가정에서 배출되는 종이 폐기물 중 재활용이 불가능한 코팅지 등 혼합물의 비중이 약 6%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따라서 아예 재활용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플라스틱 제로' 정책 발표는 의외의 곳에서 즉각적인 파급 효과를 낳기도 했다. 공약 발표 직후 증권시장에서는 관련 업종으로 분류되는 일부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실제로 2025년 4월 공약 공개 당일 세림B&G, 삼륭물산, 진영, 한국팩키지 등의 이른바 '탈플라스틱' 관련주들이 나란히 상한가를 기록했고, 에코플라스틱과 코오롱ENP 등도 15~22%대 급등을 보였다. 이들 기업은 생분해성 수지로 만든 필름을 생산하거나 플라스틱을 대체할 종이 카톤팩 등을 제조하는 업체들로 분류되어 테마주로 부각된 것이다.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 기대감에 기업과 투자자가 반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 열기와 달리 정작 해당 정책의 환경적 타당성에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코팅 종이 용기나 생분해 플라스틱 같은 대안 제품이 생산·폐기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이나 탄소발자국 면에서 기존 플라스틱보다 반드시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친환경 정책의 목표와 시장 기대 사이의 괴리가 드러난 셈인데, 이는 공약의 현실성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이는 과거 환경부에서 추진했다가 미운오리 새끼가 되었던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금지 → 종이 빨대 전환' 사업을 떠올리게 한다. 종이 빨대는 생산·매립·소각 전 과정에서 플라스틱 빨대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5.5배 높고, 독성물질 배출도 더 많다 결론 나서, 정부 발표에 맞춰 설비 투자와 생산 준비를 해온 종이 빨대 제조사만 낭패를 본 사례가 생생하다. 한편 정책이 간과한 현실 중 하나는 기존 플라스틱 폐기물의 가치 재평가이다. 최근 폐플라스틱이 단순한 환경오염원이 아니라 유용한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기술의 발전이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열분해유 기술이란 폐플라스틱을 무산소 고온 환경에서 가열해 유증기를 만들고, 이를 응축하여 합성 오일을 추출하는 공정이다. 이렇게 얻은 열분해유는 성상에 따라 산업용 중유(벙커C유 등)나 경유로 활용되며, 추가 정제를 거치면 나프타 등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열분해유 기술은 흔히 '도시유전' 사업으로 불릴 정도이다. 실제로 폐플라스틱 1톤으로 약 0.7톤의 열분해유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는 석유 수입을 대체하고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 양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경제성의 급격한 개선이다. 과거에는 생산 단가와 기술 제약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열분해유가, 최근 들어 국제 유가 상승과 기술 효율 향상을 배경으로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초기엔 판매단가가 낮아 수익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정부의 지원과 탄소중립 정책 연계로 경제성이 확보되고 있다. 환경부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석유 대체 원료로 활용할 경우 탄소 배출 저감 실적으로 인정하는 방법론을 국내 최초로 승인하였는데, 이에 따라 기업들은 열분해유 사용 시 탄소배출권 혜택을 얻거나 재활용 의무 이행 실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보조금, 세제 혜택 등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면서 열분해유 산업의 경제적 채산성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 즉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한 열분해유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플라스틱 자체에 대한 인식도 '없애야 할 폐기물'에서 '돈이 되는 자원'으로 바뀌고 있다. 플라스틱의 자원화 가치가 부각되면서, 폐플라스틱을 둘러싼 산업계의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시멘트업계와 재활용업계 간의 폐자원 확보 경쟁이다. 시멘트 공장이 폐플라스틱을 연료로 대량 소비하면서, 정작 재활용 업계에는 플라스틱 원료 공급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재활용·소각업계는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마저 SRF로 몰려 시멘트 공장에서 태워지고 있다"며 시멘트 업계를 그린워싱이라고 비판하고, 시멘트 업계는 “석탄 대신 폐기물을 연료로 쓰는 것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순환경제"라고 반박하는 등 갈등도 표출되고 있다. 다시 말해, 폐플라스틱 확보 경쟁은 이제 소규모 재활용 업체와 시멘트 공장 간의 다툼을 넘어 정유·석유화학 대기업까지 참여하는 전방위적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것은 플라스틱이 완전히 퇴출되기는 커녕 오히려 산업적 수요를 촉발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플라스틱 저감 역시 일방적인 사용 금지나 단순한 대체에 머물 경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대신 플라스틱의 순환경제를 구축하고, 신기술 투자로 폐플라스틱을 자원화하며, 소비자에게 편리한 재사용 시스템을 마련하는 접근이 실효성을 가질 것이다. 결국 환경 정책은 이상과 현실의 균형 위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지속가능성은 그 균형을 맞출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유력 대선 후보의 공약이 이러한 방향으로 보완되어 실행된다면, 비현실적이라는 우려를 넘어 실질적인 친환경 전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유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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