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14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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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해리스가 가져올 기회와 리스크

미 바이든 대통령이 차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이어받았다. 현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들의 지지에 힘입어 해리스 후보 지지율이 피격 후 급등했던 공화당 트럼프 후보를 앞지르는 여론 조사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물론 해리스의 지지율은 후보 수락 후 일시적으로 급등했다고도 볼 수 있으며, 미 대선까지 남은 기간이 길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해리스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검토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해리스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후 우리나라 기업들은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이다. 즉 해리스는 기본적으로 바이든의 경제정책을 이어갈 것이므로 극단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전망이다. 바이든 정부는 소위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하여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전기차 및 배터리, 태양광 등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은 예정된 보조금을 수령할 전망이며, 현대차, 기아 등 자동차 기업과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전기차 배터리 기업도 관련 보조금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유관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축소 내지 폐지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에 투자했거나 예정인 우리나라 기업들도 투자 속도를 조절하며 미 대선 결과에 주목하고 있었다. 반도체 및 친환경 부문에 대한 투자는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으로부터 부품이나 중간재를 가져가므로 한국의 대미국 수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해리스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장밋빛 전망만 있는가, 아니면 어떤 리스크에 직면하게 될 것인가.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미국의 동맹국인 우리나라는 동맹국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요구가 커질 수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 시기 동맹국을 직접적으로 압박하여 미국의 국익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반면 민주당 정부는 동맹국과 연합하여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으며, 역으로 중국이 우리나라에 미국 편에 서지 않도록 압박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해리스가 대통령이 된다면 바이든 시기에 시작된 리스크가 더 심화할 전망이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국과 연합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고자 하였으며, 동맹국에게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칩과 생산설비 수출 통제를 강화하였다. 바이든은 민주당 후보 사퇴 직전에 동맹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미국 기업의 대중국 통제 수준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같은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압박은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한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에 전기차나 배터리를 수출할 때 중국산 부품이나 원자재 비중을 대폭 줄이도록 요구할 전망이어서 우리나라의 대미국 수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음으로 해리스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상당 기간 국제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해리스가 대통령이 될 경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경우 즉시 '러-우' 전쟁을 종결시킬 것이라 하였지만 해리스는 바이든처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민주당은 미국 내 석유나 천연가스의 생산을 늘리는 것을 지양함으로써 국제 유가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낮다. '러-우' 전쟁 이후 국제 유가가 상승하였음에도 미국은 자국 석유 생산을 늘리지 않음으로써 높은 인플레이션을 감내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투자한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환경이 악화할 전망이다. 해리스는 대선 공약에서 트럼프가 낮춘 법인세율을 현행 21%에서 28%로 인상할 것이라고 하였다. 법인세율이 인상된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세부담이 증가하여 이윤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 투자하였거나 투자 예정인 우리나라 기업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또한, 해리스는 연방 최저 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였다. 최저 임금 인상은 기업으로서는 비용 인상을 의미하므로 법인세율 인상과 마찬가지로 이윤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된다. 해리스가 내세운 두 가지 공약이 모두 기업 친화적인 정책에 해당하지 않으며, 기업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구기보

[데스크 칼럼] 인공지능(AI) 이중성과 AI 민주주의

아마 올해 초에 있었던 일로 기억된다. 몇몇 지인들과 점심 자리에서 우연히 인공지능(AI) 관련 대화가 오갔다. 이야기의 주제는 생성형 AI '챗GPT'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생활 어느 영역까지 파고들 것인가를 희망과 우려의 시각으로 추측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이날 대화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AI를 사법부에 도입할 경우, 판사와 AI의 역할 규정을 둘러싼 이견이었다. 즉, AI를 주심 재판관으로 맡기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이날 참석자 4명 가운데 3명은 인간 판사의 법과 관습에 입각한 '인간다운 판결'을 지지했다. 반면에 나머지 1명은 인간 판사가 재판 관련 데이터를 지원하는 보조역할을 충실히 하면 AI 판사가 불편부당한 법리 해석으로 '법대로 판결'을 낼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우리 법조계에 'AI 판사 등장'이 현실화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AI 기술 또는 산업은 국가와 개인, 인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AI를 보는 인간의 시선은 희망과 우려가 혼재한다. 당장 제약바이오산업에서 난치병 치료에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치료의 난제(결점)들을 찾아내고 '불치 극복'의 새로운 기전 개발 소식이 들리면서 만성적 병마에 신음하는 환자뿐 아니라 무병장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AI 기술을 탑재한 자율주행차·항공·선박·드론 등 무인 모빌리티의 급성장, AI 로봇을 이용한 재난지역 구조작업, 심지어 현재의 심각한 이상기후 문제까지 AI가 일정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까지 나와 '착한 AI 만능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AI 개발자와 전문가 대부분은 '착한 AI' 효과가 가져다 줄 인류 유토피아를 선전하고 있다. 반대로 AI 기술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에서 무기체계에 적용돼 인간 살상을 거들고 있으며, 국가나 특정집단이 국민이나 구성원의 개인정보를 독점해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나쁜 AI'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렇듯 착한 AI든, 나쁜 AI든 AI 기술이 지닌 이중성 때문에 컴퓨터 공학자와 정치사회 전문가들은 AI 개발과 사용에 인간윤리 규칙 적용, 활용 절차와 결과 책임을 규정한 법적 장치 등을 제도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1대 국회에서 '인공지능 기본법'이 추진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회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그러나, 지난 5월 말 22대 국회에 들어서자마자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을 가장 먼저 대표발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8월 28일까지 여야 의원 합쳐 모두 8건의 AI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내용들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으로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설치해 3년, 5년 단위로 기본계획 수립·운영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또는 민관기구로 인공지능윤리위원회, 국가인공지능센터, 인공지능협회 등을 실무기구로 두자는 내용들이다. '착한 AI'를 장려·지원하고, '나쁜 AI'를 차단·제재하겠다는 입법 취지와 방향도 비슷하다. '사피엔스' 저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예루살렘히브리대학)는 AI사회가 데이터 권력에 기반한 '디지털 제국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정부나 특정 집단, 기업에 데이터 권력 독점을 막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치권 차원에서 인공지능법을 서둘러 제정하려 움직임을 바람직하다. 다만, 선진국에 뒤처진 국내 AI 기술을 앞당기려는 조바심 때문에 인공지능법을 공급자(개발기업)나 규제자(정부) 중심 위주로 밀어부쳐서는 안된다. 착한 AI의 최종 수혜자, 나쁜 AI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일반국민일 것이다. AI기술과 데이터 사용 정보를 일반국민과 공유하고, 효과를 분점하는 'AI 민주주의'가 나쁜 AI의 디스토피아 미래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 하라리 교수의 충고를 인공지능법을 준비하는 우리 정치권이 되새겨 보길 바란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기자수첩] ‘오이밭’에서 신발끈 고쳐 맨 정부

최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값이 멈출 줄 모르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8월 넷째 주(26일 기준)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전주보다 0.26% 오르며 23주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앞서 지난 7월 초 정부는 가계부채를 줄이고 수도권 집값 상승세에 제동을 걸기 위해 보다 강력한 대출규제인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그 계획을 이달로 미루면서 국민들에게 집값을 잡을 의지가 없다는 오해의 빌미를 제공했다. 대출규제에는 주택시세 대비 대출한도를 정하는 LTV(담보대출 인정비율)와 연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로 대출을 규제하는 DTI(총부채상환비율) 등이 있다. DSR은 대출을 실행하는 주택의 원리금(원금+이자)과 나머지 대출의 이자만으로 계산하는 DTI에 비해 더욱 강화된 규제로, 모든 대출을 원리금으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DTI 대비 대출한도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DSR을 한 번 더 압박하는 것이 스트레스 DSR이다. 가계부채 증가 및 수도권 집값 상승세를 막기 위한 수단이라면 2단계 스트레스 DSR 보다 더한 규제도 타당하다. 하지만 어차피 최대한도로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황에 이러한 규제를 2개월 가량 미룬 점은 국민들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일각에서는 이달부터 줄어드는 대출한도를 의식한 실수요자들의 불안감이 수도권 아파트시장을 자극해 집값 상승에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 정책은 절대 시장 수요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 만약 강한 신호로 분위기를 뒤집고 싶다면 시장의 예상을 뛰어 넘는 빠르고 강한 정책을 내야한다. 현재 시장에는 확실한 공급책과 불안심리를 잠재울 수 있는 강경한 대책이 필요하다.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번 대책이 오히려 구매욕구를 자극해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할지, 전고점에 도달한 집값이 단기급등에 부담을 느껴 한풀 꺾일지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또 다시 모호한 정책 스탠스를 취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부터 시장에선 “정부가 집 값을 잡을 생각이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이게 결국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의 상승세의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 확정된 공급 대책을 조기에 확정, 실행해 공급 측면에서의 불안 요인을 확실히 잠재워야 한다. 또 하반기 예상되는 금리 인하 기조 속에서도 명확한 신호를 보내 빚을 내 주택을 구매하는 '영끌족'을 최소화해야 한다. 김다니엘 기자 daniel1115@ekn.kr

[박원주의 내년 예산 분석] 2025 정부 예산안에 대한 기대와 우려

정부 경제운용계획이나 다양한 정책발표가 국민 앞에 희망과 개혁을 약속하는 '얼굴'이라고 한다면 다음해 예산안은 그 '속내'에 해당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약속이라도 예산안, 즉 돈표 안에 구체적 지출계획이 없다면 말장난에 그치게 된다. 지난 8월 27일 정부는 전년 대비 3.2% 증액된 677조4000억원의 세출 예산안을 발표했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각 정부 기관과 이해관계 집단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을 것이고 국세 수입 등 재정 여건도 몇년째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우선순위 조율을 위한 재정당국의 고민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장 예산내역서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 홍보자료만 나와 있는 상황에서 이번 예산안에 어떤 정책적 고민과 해법을 담았는지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다만, 재정의 역할이 경제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미래 성장을 준비하는 것이며, 정부가 약속한 개혁과제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지원도 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예산안에서 들여다 보아야 할 몇 가지 지점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첫 번째 이슈는 재정의 경기부양 여력이다. 당장 우리 자영업자, 중소기업과 서민경제는 심각한 내수 위축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 지난 7월 국세청은 작년 폐업신고를 한 사업자 수가 98만 6000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이중 48만여명이 사업 부진을 이유로 폐업했다. 돈이 안 벌려서 사업을 접은 것이다. 상당수는 은행 대출을 갚을 여력도 없는 처지일 것이다.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들이 이자율 인하의 시기를 저울질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부동산 가격 급등 우려로 금리 조절도 쉽지 않다. 어려운 시기에 경기를 부양할 책임이 온전하게 재정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년 대비 3.2% 증액된 예산안은 우려스럽다. 물가 상승까지 감안한다면 이 정도 예산 증액으로 재정이 내수시장을 부양할 힘은 없어 보인다. 물론 건전재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 재정은 개인의 가계부와는 다르다. 경기가 부진할 때 긴축 재정은 경제 활동을 위축시켜 조세 수입의 감소로 귀결된다. 결과적으로 건전재정의 길에서 더 멀어지는 것이다. 또한 정부 부채구조가 건전하다 해도 국민들과 공기업들이 빚더미위에 앉아 있다면 건전재정은 기만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2024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98.9%로 세계 4위 수준이며 최근 은행권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 정부가 할 일은 곳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서민 생계의 활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건전재정은 경기가 과열되는 시점에서 예산의 증가를 억제하고 세수를 충실하게 확보하면 될 일 아닌가? 두번째, 2년째 대규모 세수 결손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내년도 세제개편을 통해 금투세 폐지, 상속세 세율 인하 등 감세 정책을 펼치는 것도 지금의 경제 상황에 비추어 적절치 않아 보인다. 내년도 경제 전망이 불확실한 만큼 소비, 수입 증가, 기업경영 호전 등 재정 당국이 기대하는 세입증가 요인들이 시나리오대로 작동할지 확실치 않다. 내년도 세수가 정부추계치보다 부족한 사태가 재발하는 경우 긴축 편성된 세출 예산을 지탱할 재원마저 부족해질 우려가 있다. 세번째, 미래 성장동력의 준비에 대해서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우리 수출시장 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이 추격하기 어려운 차별적 기술격차를 만들고 유지해야 한다. 내년도 우리 정부의 R&D 예산 규모는 29조7000억원으로 올해에 비해 3조원 가량 늘어났다. 그러나 이는 재작년 29조원에 달했던 재정 지원 규모를 R&D 효율화를 명분으로 3조원가랑 줄였던 것을 원상 복구시킨 것에 그치는 수준이다. 내용적으로 인공지능, 반도체, 전략산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 육성에 더 큰 비중을 둔 점은 크게 평가해 줄 수 있지만 2년 전에 비해 교역환경이 더욱 악화된 지금 R&D예산 규모가 재작년 수준 복구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아쉽고 걱정스럽다. 네 번째,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서도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점이 있다. 내년도 중소기업부 정부예산안은 15조 3000억원 수준으로 올해에 비해 2.3% 늘어났다. 중소기업이 우리 경제의 근간이고 우리 국민들 대부분의 일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라도 지원 예산이 늘어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지원예산의 구성만 봐서는 대한민국의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별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시가 든다. 정부 지원 예산이 아무리 커도 중소기업 제 1의 고객은 바로 대기업이다. 대기업과의 동등하고 균형 잡힌 거래와 상생성장의 근간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중소기업 정책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에서 대중소기업간 동반-상생 성장을 위한 재정적 표현은 일부 밸류업 프로그램 말고는 보이질 않는다. 정부 중소기업 정책이 본래의 사명과 목적을 찾아가는 노력이 정부 예산안에 보다 충실하게 반영되기를 바란다. 다섯 번째, 정부가 천명한 각종 개혁시도가 재정을 통해 충실하게 지원되고 있는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일례로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핵심으로 한 의료개혁은 의료계의 지속된 반발로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고 국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응급실 방문도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지금은 아프면 안 된다'는 주변의 목소리도 흔치 않게 들린다. 정원 증원 결정 당시 가장 많은 우려가 있었던 부분은 당장 의과대학의 시설과 장비, 교수 요원의 양적, 질적 수준이 한꺼번에 2천명의 학생을 추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번 정부 예산안에서는 의료개혁 지원을 위해 총 2조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이중 4000억원을 전공의 수련비용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 지원만으로 당장 내년부터 2천명의 학생을 받아 충실하게 교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의대 정원의 숫자를 단계적으로 늘려가면서 이에 맞추어 교육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해 나갔다면 의료 개혁은 훨씬 더 수용성을 갖고 진행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업들의 미래 도전과제에 대해 정부가 할 일을 제 때 하고 있는지도 이번 예산안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민간 차원의 국제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인 RE100은 우리 수출기업들의 생산활동에 사용되는 전력 100%를 일정시점까지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여 거래가 불발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기업들도 RE100 요건을 맞추기 위하여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대부분 남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를 생산기반이 밀집된 수도권으로 끌고 올 수 있는 송전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수도권 기업들은 RE100 요건을 맞출 방법이 없어 미래 지속가능성이 현저하게 훼손되고 있다. 반면 지방자치단체의 장들은 남아나는 지역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소진하기 위해, 지역경제와 고용에 그다지 효과도 없으면서 전기만 어마어마하게 쓰는 외국계 데이터센터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서해안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풍력발전 사업의 경우도 연근해에서 육지로 전력을 끌어올 해저케이블 인프라가 없어서 사업 진척이 극도로 늦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의 출구가 제때 마련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앞으로 해외에 나가야만 조업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는 불문가지이다. 모두 한전의 송전 인프라 건설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벌어지는 일들이다. 시장에 돈이 없어서 송전 인프라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독점 송배전 사업자인 한전의 재무적 역량이 충분치 않아 새로운 투자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만약 민간의 송배전망 투자를 허용하고 이를 한전이 임대하여 영업할 수 있게 한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일이지만 한전 민영화에 대한 우려로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재정이 투자자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문제를 인지했다면 답을 찾는 노력이 어떤 형태로든 재정에 반영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2025년 정부 예산안은 이제 막 예산실 문턱을 넘어 국회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지금 재정을 통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가 우리 경제의 미래에 불가역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과거 국회 예산심의가 상당 부분 지역구 예산 확보를 위한 주변적 거래의 장이었다면 올해만큼은 국운을 결정하기 위한 진지하고 심도 있는 검토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원주

[윤석헌 칼럼] 금융의 공공성과 감독체계 개편

지난 23일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 김현정 의원 및 조국혁신당의 신장식 의원이 공동 주최한 '금융공공성 확보를 위한 금융감독 강화 방안' 토론회에 참가했다. 토론회는 금융의 공공성(모두를 위한 필수 사회서비스) 인식에서 출발하여 금융감독체계 개편 대안 제시로 마무리했다. 현대 금융은 국가가 마련하는 규제감독제도안에서의 예금, 대출, 투자, 보험 등 국민 '모두가 필요로 하는 필수 사회서비스'라는 점에서 공공성을 지닌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직접 담당하지 않고 민간에게 이양하는 과정에서 효율성 제고를 위해 상업성(이윤창출)을 허용한다. 결국 금융은 공공성과 상업성의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하게 되고, 따라서 양자간 견제와 균형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양자는 서로 조화되면 시너지 창출도 가능하나, 상충되면 비효율이 발생하거나 심지어 금융위기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다. 금융의 핵심적 중개기능 관련 공공성을 살펴보자. 첫째, 정부가 은행에 인가한 지급결제기능은 국가 금융경제시스템 작동에 필요한 필수 서비스로 금융공공성의 기반을 제공한다. 이를 무시하고 최근 티몬과 위메프사태 및 머지포인트사태에서는 이커머스기업들이 지급결제를 수익창출 수단으로 이용하려 시도함으로써 소비자 피해를 초래했다. 둘째, 은행 대출은 상업성과 공공성을 모두 지닌다. 은행의 일반대출은 대출신청자 신용도를 기준으로 우량고객을 선택하고 비우량고객은 배제하거나 또는 고객들 간 금리 차등화를 통해 상업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은행이 상업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경제∙사회적 대출 수요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예로, 코로나19 사태에서 취약계층 지원용 대출이나 4차 산업혁명 촉진을 위한 혁신기업 대출 등은 모두 국가 운영에 필수적이다. 은행 입장에선 상업성이 중요하겠지만 이들을 무시하면 국가 내지 사회의 부담이 증가한다. 결국 상업성과 공공성 간 균형이 필요하다. 셋째, 금융정보 업무에도 상업성과 공공성이 혼재한다. 예로, 어느 대출신청자의 부실확률이 5%로 파악됐다고 해서 이것만으로 우량, 불량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출신청자 그룹 전체가 0~5% 구간임을 알았다면, 그 때는 5%는 불량신청자로 분류된다. 그룹 전체 정보를 알게 됨으로써 개별정보 가치가 높아진 것인데, 은행이 인가시 허용받은 대로 대출신청자 개별정보를 모아 분포, 평균, 분산 등 유의미한 공공정보를 분석해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즉 개별정보를 모을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가 은행의 공공정보 창출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은 창출한 정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상업성 기준에 따르면 5% 불량신청자 대출은 거절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분포, 평균 등에 담긴 정보가치 상승이 공공성 덕분임을 감안하면 상업성과 공공성 기준의 균형잡힌 적용이 바람직해 보인다. 넷째, 시스템리스크를 관리∙통제하는 최종대부자기능과 예금자보험기능은 공공성을 지니는 국가위험관리 기능의 일부로 개별 금융사 위험관리의 기반을 제공한다. 이를 토대로 개별 금융사는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스템리스크를 정부, 중앙은행, 감독당국, 금융사들 간 분담 및 협력체계를 통해 관리할 수 있다. 이렇듯 정부와 사회로부터 다양한 공공성 혜택을 누리는 금융은 이를 사회와 고객에게 환원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환원은 금융의 또 다른 특성인 상업성으로 인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부가 금융산업진흥을 명분으로 금융사의 과도한 상업성 추구에 눈감은 결과, 금융소비자 피해는 줄지 않고 있다. 저축은행사태, 동양사태, DLF사태 및 사모펀드사태 등 2008년 금융위원회 출범 이후 이어지는 금융사고들이 이를 증거한다. 금년 상반기 홍콩ELS사태도 같은 맥락이었고, 지난 7월 티몬/위메프사태도 전자금융업 육성과 연관됐다. 한편 그간 금융산업진흥정책이 금융감독정책을 압도해왔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위 설치법 제1조(목적)에 제시된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찾기는 용이하지 않다. 금융은 상업성과 공공성 간에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금융감독의 강화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정책이 금융산업정책과 대등한 입장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금융위의 금융산업정책업무는 기획재정부로 보내고 금융감독정책업무는 금감원의 감독집행업무와 통합하여 효율화하는 게 금융산업 선진화의 첩경이다. 국회가 이런 방향으로 추진해 달라는 게 지난 23일 토론회 다수의 요구였다. 윤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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