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변 핵심 재건축 시장에서 '무혈입성'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 대형 건설사 간 수주전이 벌어지던 압구정에서도 단독 입찰이 이어지며,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서울에서도 '되는 사업장'만 들어가는 선별 수주가 일반화됐다"며 “경쟁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경쟁할 유인이 사라진 시장"이라고 보고 있다. 14일 에너지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0일 시공사 입찰을 마감한 주요 사업지의 결과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사비 5조5000억원 규모의 압구정3구역은 현대건설 단독 참여로 유찰됐고, 목동6단지(약 1조2000억원) 역시 DL이앤씨 단독 응찰로 마감됐다. 반면 압구정5구역(1조4960억원)과 반포19·25차(4434억원)만 경쟁 입찰이 성사됐다. 총 8조7000억원 규모 '빅4' 사업지 가운데 절반만 경쟁이 붙은 셈이다. 특히 압구정 3구역(5.5조 원)과 목동 6단지(평당 950만 원)가 보여준 결과는 시장에 충격을 더하고 있다. 단일 사업비로는 역대 최대 수준이거나, 강남권에 육박하는 높은 공사비를 제안했음에도 건설사들이 본입찰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공사비 산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정치·구조적 불확실성'이 수익성을 압도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이 같은 흐름은 제도적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현행 도시정비사업 체계에서는 입찰 참여 업체가 2곳 미만일 경우 유찰되며, 두 차례 유찰 시 조합은 단독 응찰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경쟁이 성사되지 않으면 특정 건설사가 사실상 시공권을 확보하는 구조다. 압구정3구역 역시 재입찰에서도 경쟁사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단독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목동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나타났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14개 단지 가운데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목동6단지는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단독 응찰로 유찰됐다. 공사비는 1조2129억원(3.3㎡당 약 950만원), 입찰보증금은 700억원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2차 입찰에서도 경쟁이 형성되지 않을 경우 수의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쟁이 붙지 않은 배경은 사업지별로 다르다. 압구정은 내부 구조에서 원인이 나온다. 특히 최대어인 압구정3구역은 구현대 각 차수와 대림빌라트, 상가가 혼재된 복합 단지로, 평형과 층수, 지분 체계가 제각각이다. 이로 인해 분담금과 권리가액, 상가 배분 등을 둘러싼 이해관계 충돌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3구역 한 조합원은 “단지 내 조건이 제각각이라 전체 조합원의 이해를 맞추는 설계 자체가 쉽지 않다"며 “평형이 단순했던 반포 1·2·4주구보다도 합의 과정이 훨씬 까다로운 구조"라고 말했다. 압구정 재건축 수주 구도는 이미 상당 부분 윤곽이 드러난 상태다. 2구역은 후속 인허가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현대건설이 지난해 9월 선점했고, 최대 사업지인 3구역 역시 단독 입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삼성물산이 책임준공 확약서를 제시한 4구역도 사실상 단독 구도가 굳어지는 분위기다. 결국 현재 압구정에서는 5구역만이 유일하게 경쟁 입찰이 성사된 상태다. 다만 이마저도 과거와 같은 과열 양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건설사들의 '선택과 집중' 전략 속에 전반적으로 '저강도 수주전' 기조가 이어지고 있으며, 각 구역 시공사는 오는 5월 총회를 통해 순차적으로 확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목동6단지의 단독 입찰은 압구정과는 다른 맥락으로 해석된다. 목동 재건축은 14개 단지, 약 30조원 규모로 사업이 순차 추진되는 만큼 대형 건설사들이 초기 단지에서 무리하게 경쟁하기보다 전체 물량을 고려한 전략적 접근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목동은 구조적 문제라기보다 경쟁을 아낀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목동 재건축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수주 경쟁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삼성물산, DL이앤씨, 현대건설, GS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은 전담 조직을 꾸리고 영업 인력을 재배치하며 14개 단지(약 4만7000가구) 시공권 확보에 나선 상태다. 다만 단지별 입찰 일정이 분산된 데다 공사비 부담이 큰 만큼, 과거와 같은 전면적 출혈 경쟁보다는 선별 수주 전략이 우세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첫 입찰에 나선 목동6단지는 단독 응찰로 유찰되며 이러한 흐름을 보여줬고, 향후에는 일부 핵심 단지를 중심으로 제한적인 경쟁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목동은 전체 사업 규모가 큰 만큼 모든 단지에 동시에 뛰어들기보다, 상징성과 수익성이 확보된 곳을 중심으로 선점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일부 사업장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정비사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실제로 올해 주요 정비사업장에서 대형 건설사 간 경쟁은 극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부산 사직4구역, 송파한양2차, 금호21구역 등도 단독 입찰로 시공권이 확정됐다. 최근 대치쌍용1차 재건축과 신길역세권 재개발 등 주요 사업장도 모두 단독 입찰을 통해 시공사가 선정됐다. 건설사들의 태도 변화도 뚜렷한 셈이다. 공사비 상승과 금융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수주 자체가 고위험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비 대출과 입찰보증금 등 초기 비용만 수백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분양가 규제까지 겹치며 수익성 예측이 어려워졌다. 업계에서는 “단가가 높아도 갈등이 많은 사업지는 결국 지연 비용과 금융비용으로 수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요즘은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예 참여하지 않는다"며 “과거처럼 브랜드 홍보를 위한 출혈 수주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 압구정 재건축 시장은 '속도 경쟁'이 아니라 '선점 경쟁' 국면으로 전환됐다는 평가다. 사업을 먼저 확정짓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정치 일정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압구정3·4·5구역을 비롯한 주요 재건축 조합들은 6월 지방선거 이전 시공사 선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선거 이후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을 고려해, 현재 환경에서 사업을 확정하려는 움직임"이라며 “시공사를 먼저 정해두면 이후 인허가 과정에서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끌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지금은 공사비보다 정책 리스크를 더 크게 보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