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제도가 미국에서 유럽으로 확산된 것처럼, 투명한 목표 설정과 경영 전략을 통해 10년~20년 뒤에도 회사가 성공할 수 있는 가치를 유지하겠습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고려아연 지배구조를 전면 개혁해 훼손된 주주 가치를 회복하겠다는 방안을 밝혔다. 경영권 분쟁 중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취임 후 무분별한 투자 남발로 회사 가치를 훼손했다는 것이 주 근거다. 10일 MBK파트너스는 서울 롯데호텔에서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회복 방안'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연사로 나선 김광일 부회장은 “최윤범 회장이 취임한 후 약 3년간 기업 지배구조가 나빠지며 주주 가치가 떨어졌다"며 “훌륭한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갖춘 회사임에도 지배구조 문제로 인해 주가와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고 운을 뗐다. MBK가 근거로 제시한 것은 총주주수익률(TSR)이다. 보통 주주환원율을 평가할 때 배당 수익률을 주로 보지만, TSR의 경우 배당에 더해 주가 상승률까지 함께 반영돼 주주 가치를 더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MBK에 따르면 2021년말 32%에 달했던 고려아연의 TSR은 최 회장이 취임한 후 1년이 지난 2023년 말 -5%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200 인덱스(22%)는 물론 MSCI 동종산업 인덱스(13%)에 비해서도 현저히 저조하다. MBK가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및 주주가치 개선을 처음 언급했을 때만 해도 시장에서는 이를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고려아연이 현금보유량이나 사업 실적, 부채비율 등 재무적으로 탄탄하다는 인식이 있어서다. 하지만 이날 TSR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한 셈이다. 이에 대해 김 부회장은 “지난 3년간 잘못된 투자와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이 기업 가치를 훼손했고, 약3조3000억원의의 손실을 초래했다"며 “정상적인 지배구조를 통해 이를 바로잡아 기업 본질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의 독단 경영에 의한 투자 남발이 회사 자금을 지속적으로 누수시켰다는 의견이다. 최 회장 개인 친분이 있는 사모펀드 출자, 본업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투자, 제대로 된 검증이 있었는지 의심되는 일부 신사업 투자 등으로 인해 회사 자본이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원아시아파트너스의 경우 설립된 지 4개월밖에에 되지 않은 시점에 고려아연의 자금 5669억원이 투자됐다. 이 사모펀드는 투자된 재원을 SM 시세조종에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며,지창배 대표가 구속되기도 했다. MBK의 주장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6개 원아시아 펀드의 사실상 유일한 출자자며, 이사회 결의도 거치지 않았다. 5820억원을 투여한 외국 자원재활용업체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타 재벌 일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정석기업 투자, 친인척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휩싸인 씨에스디자인 인테리어 설비 용역 등도 지배구조 개선 근거 사례로 꼽혔다. 김 부회장은 “후진적 지배구조에 의해 투자된 규모만 1조2000억원"이라며 “투자가 효율적으로 집행됐다면 고려아연의 주주가치는 2조5000억원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사회가 감독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사적 이해관계와 무분별한 의사결정으로 인해 주주 가치가 훼손됐고,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이 저해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MBK는 오는 1월 23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에 진입하고 최 회장과 분리된 전문 경영인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이사회에는 MBK파트너스와 영풍그룹뿐만 아니라, 2대 주주인 최윤범 회장 측도 참여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또 내부거래위원회와 투자심의위원회를 신설해 선진적인 시스템으로 탈바꿈시킨다. 주주환원 방안으로는 먼저 10분의 1 주식 액면분할을 통한 거래 유동성 증대 방안이 꼽혔다. 최근 불거진 최 회장 측의 유상증자 논란을 정면으로 꼬집은 것이다. MBK에 따르면 주식 액면분할로도 충분히 유통 주식 수를 크게 늘릴 수 있으며 오히려 거래 유동성이 활발하게 늘어나는 순기능이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주주 환원책의 실제 이행을 위한 '보유 자사주의 전량 소각' △현금 배당을 예측 가능하고 투명하게 실시하기 위한 '배당정책 공시 정례화' 등도 제안됐다. 주주 참여 방안으로는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를 소수주주가 추천한 후보 중 선임토록 하는 근거 규정 마련 △ 주주권익보호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최 회장의 자사주 소각 공약을 빨리 이행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자사주 전량 소각은 이사회에서 이미 결의됐으며, 이를 즉시 실행하는 것이 주주 가치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부회장은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회사 가치를 높이고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영권 분쟁에서 이기더라도 고려아연의 사업에 대해 잘 아는 현 경영진은 그대로 두고, 이들이 주요 주주의 간섭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사모펀드의 단기 엑싯 문제 등을 부정적으로 언급한 바 있어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성우창 기자 su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