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뗄 수 없는 존재다. 생수병과 음식 용기, 전자레인지용 식품 포장재, 샴푸와 화장품 용기까지 하루 24시간 대부분 플라스틱과 맞대고 산다. 플라스틱 과다 사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만 문제가 되는것은 아니다. 플라스틱 속에 들어 있는 프탈레이트, 비스페놀 같은 화학물질이 음식과 음료, 피부 접촉, 공기 흡입 등을 통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다는 점이다. 이들 물질은 대표적인 내분비계 교란물질, 즉 환경호르몬으로 분류된다. 심혈관 질환, 대사증후군, 염증 증가, 인슐린 저항성, 호르몬 교란 등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꾸준히 보고돼 왔다. 그렇다면 정말 일상 속 플라스틱 노출을 줄이면 이러한 화학물질의 체내 농도도 빠르게 낮아질 수 있을까. 최근 호주 서호주대학교 연구팀이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국제 의학 저널인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진은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플라스틱 관련 화학물질을 생활 습관 변화만으로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검증했다. 그 결과, 단 7일 동안 '저(低)플라스틱 생활'을 실천한 결과, 소변 속 비스페놀A(BPA) 농도가 최대 60% 가까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참가자 전원에게서 플라스틱 화학물질 검출 연구진은 논문에서 “플라스틱 관련 화학물질은 거의 모든 사람의 체내에서 검출되고 있고, 음식은 가장 중요한 조절 가능한 노출 경로"라고 설명했다 . 연구팀은 먼저 호주 성인 211명을 대상으로 관찰 코호트(동일 집단) 연구를 진행했다. 참가자의 평균 연령은 43.1세였고 여성 비율은 58.3%였다. 모두 특별한 질환이 없는 건강한 성인이었다. 연구진은 참가자의 소변과 콧구멍 안 세척 시료를 분석해 플라스틱 관련 화학물질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모든 참가자가 최소 6종 이상의 플라스틱 관련 화학물질을 매일 배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요 노출원으로는 고도로 가공된 식품, 플라스틱 포장 식품, 통조림과 캔 음료, 샴푸와 화장품, 스킨케어 제품, 플라스틱 조리기구 사용 등이 확인됐다. 플라스틱(에폭시)으로 내부가 코팅된 통조림 식품을 하나 더 섭취할 때마다 소변 내 BPA 농도는 평균 14.3%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 이후 연구진은 이들 중 60명을 선발해 본격적인 무작위 대조시험을 진행했다. 평균 연령은 47.6세, 여성 비율은 60%였고, 실험 기간 동안 탈락자는 한 명도 없었다 . 참가자를 총 5개 그룹으로 나누었고, 실험은 7일간 진행됐다. 첫번째 그룹은 저플라스틱 식단만 제공받았다. 두 번째 그룹은 저플라스틱 식단과 함께 유리·스테인리스·금속·나무 소재의 주방 도구만 사용했다. 세 번째 그룹은 평소 식단을 유지하되 샴푸·화장품·치약 등 개인 위생용품만 저플라스틱 제품으로 교체했다. 네 번째 그룹은 식단·주방도구·위생용품을 모두 저플라스틱 제품으로 바꿨다. 다섯 번째 그룹은 대조군으로 평소 생활을 그대로 유지했다 . 연구진은 실험 전과 실험 중, 종료 시점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소변 샘플을 채취해 프탈레이트와 비스페놀 농도를 정밀 측정했다. ◇'저플라스틱 식단'은 무엇이 달랐나 이번 연구의 핵심은 '저플라스틱 식단'이었다. 이는 단순히 플라스틱 용기를 쓰지 않는 수준이 아니었다. 연구진은 이를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 과정에서 플라스틱 접촉을 최소화한 식단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100명 이상의 농부와 식품 생산자가 참여했다. 우선 비닐 포장이 없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산지에서 직접 공급받았다. 플라스틱 포장이 된 식품은 최대한 배제했다. 통조림과 캔 음료는 완전히 제외했다. 연구진은 캔 내부 에폭시 코팅이 BPA 노출의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초가공식품도 제한했다. 패스트푸드·즉석식품·개별포장식품처럼 여러 단계의 가공과 포장을 거친 식품은 프탈레이트 노출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조리 환경도 바꿨다. 플라스틱 조리도구 대신 유리·스테인리스·금속 도구와 코팅되지 않은 나무 도구만 사용했다. 전자레인지 가열 역시 플라스틱 용기 대신 유리 용기로만 허용했다. 샴푸·바디워시·자외선차단제·립밤·면도기·치약 등 개인 위생용품도 저플라스틱 제품으로 교체했고, 메이크업 사용도 최소화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하루 총 칼로리 섭취량은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했다. 즉 '건강식 효과'가 아니라 플라스틱 노출 감소 자체의 영향을 보기 위한 설계였다. ◇단 7일 만에 BPA 59.7% 감소 결과는 뚜렷했다. 특히 저플라스틱 식단과 주방도구 교체를 함께 시행한 두 번째 그룹에서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났다. 소변 내 프탈레이트 대사체인 모노-n-부틸프탈레이트(MnBP)는 37.5% 감소했고, 모노벤질프탈레이트(MBzP)는 53.5%가 줄었다. BPA는 59.7%나 줄었다. 식단과 위생용품까지 모두 바꾼 네 번째 그룹에서는 MnBP가 44.1% 감소했고, 총 비스페놀 농도는 50.5% 줄어 종합적으로는 가장 큰 효과를 보였다. 반면 위생용품만 교체한 세 번째 그룹에서는 일부 프탈레이트만 감소했고, 비스페놀 변화는 크지 않았다. 연구진은 “식단 변화가 가장 강력한 개입 효과를 보였으며, 음식이 플라스틱 노출의 핵심 경로임을 확인했다"고 결론 내렸다 . 흥미로운 점은 체중·체성분·혈압·혈당·혈중지질·염증지표 등 주요 임상 바이오마커는 7일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번 실험이 다이어트나 체중 감량이 아니라, 체내 화학물질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단기간의 변화만으로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노출을 줄이면 염증 반응과 대사질환 위험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저플라스틱 습관 연구진은 완벽한 '플라스틱 프리' 생활보다 현실적인 노출 감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통조림과 캔 음료를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신선 식품이나 유리병 제품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BPA 노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초가공식품 섭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즉석식품, 패스트푸드, 개별 포장 식품은 프탈레이트 노출을 높인다. 전자레인지에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는 습관도 바꿔야 한다. 가열은 화학물질 이행을 촉진하기 때문에 반드시 유리 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주방에서는 플라스틱 조리도구와 보관용기를 유리, 스테인리스, 나무 제품으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 샴푸, 메이크업, 스킨케어 제품 역시 프탈레이트 노출과 밀접하다. 성분을 확인하고 사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연구진은 “완벽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줄이는 것만으로도 몸은 반응한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