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人실록] “AI 시대 게임산업, 우리 서사 담은 ‘크로스컬처텔링’ 필요”](http://www.ekn.kr/mnt/thum/202607/news-p.v1.20260728.0634a55e580c4ac8877324b5de661d19_T1.jpg)
'새 판'을 짜는 선구자.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은 국내 게임산업의 변화를 누구보다 일찍 읽고, 교육과 연구, 행정과 현장을 넘나들며 한국 게임산업의 좌표를 새로 써온 인물이다. 고교 국어 교사에서 스토리텔링 교수로,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그리고 한국게임정책학회장으로 이어진 그의 행보는 한국 게임사(史)에 '새 판을 짜는 선구자'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충분하다. 28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한국 게임이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음에도 지속 가능한 지식재산권(IP)이 부족했던 이유는 깊이 있는 '서사(敍事)'가 결여됐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팬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문화 원형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로 게임의 '새 판'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게임관련 제도와 관련해서는 “과거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굳어진 사전 검열형 규제 관성에서 벗어나 진흥 중심으로 정책의 축을 옮겨야 할 때"라며 “산업의 자율성을 대폭 넓히되, 사행성과 이용자 피해를 막을 정교한 법적 안전판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산업에 대한 믿음이 이끌어"…이재홍이 바꾼 한국 게임사 이재홍 회장의 삶은 경계를 넘나드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학창 시절 백일장 장원을 차지하며 소설가를 꿈꿨던 '문학 소년'은 집안 형편으로 전자공학을 선택했고, 문학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뒤 고교 국어 교사로 단상에 섰다. 이후 일본 도쿄대학교 유학길에서 접한 닌텐도 패미콤의 '슈퍼마리오'는 그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공주를 구하러 가는 그 단순한 게임 속에서 드라마틱한 서사 구조를 발견한 것이다. 귀국 후 대학에서 근무를 시작한 1996년은 국내 최초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가 막 출시된 시기였다. 여러 게임사가 설립되고, 대학에 게임 교육이 시작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게임의 시대가 왔다"고 확신했다. 유학파 출신의 대학교수. 안정적인 타이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게임에 대한 그의 확신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서울 강남의 게임학원 강사로 자원했다. 그는 컴퓨터학과 그래픽 중심으로만 짜여진 게임 교육에 인문학을 이식하기 시작했고, 2004년 '게임시나리오작법론'을 펴내면서 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그는 “게임 교육에 뛰어는 것은 게임산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며 “글로벌 게임 시장 점유율 4위라는 우리의 현재 위치를 생각하면, 게임은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원으로 손색이 없는 산업이고 그에 걸맞은 지원과 진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제 오랜 소신"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대학에서 '디지털스토리텔링'을 가르치던 그에게 다가온 또 한 번의 거대한 변화는 지난 2018년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을 때다. 당시 게임위는 '규제기관'으로서의 이미지가 매우 강했고, 등급 심의 결과에 반발해 업계가 제기한 행정소송이 끊이지 않아 조직 전반에 무력감과 피로감이 팽배했다. 그는 부임 직후 사무국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기관 설립 이후 최초로 '게임물관리연구소'를 개소했다. 업계를 규제하는 기구에서 벗어나, 산업을 연구하고 자율 생태계를 지원하는 연구·교육 기관으로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주무부처 및 산업계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오랜 기간 개발자들의 발목을 잡던 'PC 온라인 게임 성인 결제한도 50만원 폐지(2019년)', '청소년 및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수수료 면제', '아케이드 게임 전자결제 수단 허용' 등 굵직한 빗장을 차례로 풀어냈다. 그는 “임기 후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해 준비했던 몇몇 사업이 잘 진행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다"면서도 “'규제기관'이라는 낙인을 걷어내고 '생태관리기관'으로의 조직의 체질을 바꿔보려 했던 3년의 여정은 무엇보다 값진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 정년퇴직 후 시작된 2라운드…민·관·연 잇는 가교 지난해 숭실대학교에서 정년퇴직을 맞이하며 강단을 떠났지만,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학자이자 행정가로서 쌓아온 궤적은 자연스럽게 '한국게임정책학회장'이라는 중책으로 이어져 게임산업의 미래를 다시 한번 일구고 있다. 한국게임정책학회는 국가 핵심동력으로서의 게임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정부와 산업 간 소통을 위한 완충지대 마련이 필요하다는 학계·업계·정관계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난 2022년 후반에 설립됐다. 이 회장은 초대~2대 학회장을 역임하며 4차산업시대 게임정책의 융합 및 진화의 길을 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학회장은 “1기가 '정책'에 중심을 두었다면, 2기는 '학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남은 임기 동안 '신생 학회'라는 꼬리표를 떼고 제대로 된 학회 모습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이 학회장이 생각하는 우리 게임산업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력', '그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에 전달하는 유통력', 그리고 '창작자가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정책적 뒷받침'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게임산업 제도에 대해 “이용자 보호 법제화는 세계적인 수준"이라면서도 “'진흥'이라는 축에서는 미국의 자율성도, 중국의 화끈한 지원도 갖추지 못한 채 규제의 관성에 오래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국회가 논의 중인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 전부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20년 가까이 이어진 '사전 검열형 규제' 프레임에서 벗어나 진흥 중심으로 정책 축을 옮기는 방향 자체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다"면서 “다만 디지털게임과 아케이드·사행성 게임의 위험도가 근본적으로 다른 만큼, 규제 완화가 사행성 관리의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강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조직 개편 과정에서 게임위의 기존 인력의 전문성이 사장되지 않도록 하는 이행 계획을 법 통과 이전 단계에서부터 촘촘하게 설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생성형 인공지능(AI)과 플랫폼 다변화라는 격변기를 맞이한 우리 게임업계에 '오리지널 서사(IP)'라는 기본으로 돌아갈 것도 당부했다. 그가 강조하는 키워드는 우리 고유의 문화 원형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 '크로스컬처텔링'이다. 이 학회장은 “우리 게임산업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 수준에 올랐지만, 외형만 바꾼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구조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AI 시대가 올수록 방향키를 쥐는 것은 결국 인간 창작자의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게임산업의 다음 도약은 '더 센 규제 완화'나 '더 큰 시장 진출' 이전에, 우리 게임 안에 얼마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서사를 장착한 게임만이 유행을 넘어 세계인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IP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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