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인공지능(AI)이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한다. 챗GPT가 등장하기 전에 몸값이 높았던 컴퓨터공학과 출신 개발자는 물론 변호사와 회계사 같은 전문직 일거리도 AI가 대체하고 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은행도 지난 18일 발표한 '청년 고용 위축, AI 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이런 내용을 담았다. 최근 4년간 청년 일자리가 28만5000개가 줄었는데 이 가운데 26만8000개(94%)가 AI 고노출 업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 일자리를 줄인 주범은 AI가 아니다. 보고서도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청년 고용 부진을 곧바로 AI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경력직 중심 채용 등이 함께 작용했을 수 있다. 현재의 변화는 AI만의 직접적인 효과라기보다 기존 채용·업무 방식 변화를 AI가 가속화 한 결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마디로 청년 일자리 감소의 주 요인은 AI가 아니라 기업 채용 방식 변화 등 다른 곳에 있다는 이야기다. 옳은 분석이다. 리더스인덱스가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500대 기업의 고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도 이를 말해 준다. 이에 따르면 신규 채용에서 30세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56%에서 지난해 51%로 쪼그라들었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해야 하는 등 기업마다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 일자리' 측면에서만 보면 경력직 위주 채용은 일종의 직무 유기라고 볼 수 있다. 공고해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청년 취업을 가로막는 벽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벌어지다 보니 청년들은 인턴도 대기업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문제는 중소기업에 청년 일자리가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고용 문제를 이야기할 때 '9988'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이들이 고용의 88%를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이 무색해졌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고용 비중도 급격하게 줄고 있다. 대기업은 신규 채용을 꺼리고 청년은 연봉과 복지 수준이 대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중소기업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구직난과 구인난이 동시에 벌어지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이달 8일 청년들과 현장 전문가를 불러 일자리 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기업의 경력직 위주의 채용 방식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인한 청년 취업난의 심각성에 공감하며 곧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일 경험'을 폭넓게 인정해 주는 시스템을 구축해 청년이 첫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하지만 청년 일자리는 이 정도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기업이 경력직보다 신입 직원을 더 많이 채용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당장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깨지 못하더라도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예컨대 기업들이 경력직을 채용하면 그것에 비례해 청년 신입사원을 뽑게 해야 한다. 인센티브를 줄지 규제할지는 정책 효과를 시뮬레이션해 보고 결정하면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세금을 투입해 좁혀야 한다. 대기업 연봉을 억지로 줄일 수 없다면 중소기업 신입사원의 수입을 정부가 보전해 주는 방식은 어떨까. 중소기업에 취업해도 대기업 연봉의 80% 정도 받을 수 있도록 세금으로 지원하는 파격적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너무나 절실하기에 재원 마련에서도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초과 세수를 활용하든,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대응기금'에서 끌어오든 방법을 찾아보자. 청년이 첫 직장을 잡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 엄청난 후유증이 생긴다. 단지 일자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늘어나는 고립 청년, 자살과 범죄의 증가 등 사회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언제까지 경험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편의점과 배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들을 방치할 셈인가.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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