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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희토류 전쟁, 한국은 엉뚱한 대책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마무리됐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중국, 일본 등 21개국 정상들이 모여 경제 협력을 약속했다. 우리나라도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세계적으로 봤을 때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미국과 중국의 관세협상 타결이었을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대중국 관세를 100% 이상으로 높이겠다며 으르렁댔다. 그러나 경주에서 타결된 미중 관세협상 결과를 보면 전혀 딴판이다. 미국이 최종적으로 매긴 대중국 관세는 20%에 불과하다. 처음에 주장했던 100%는 고사하고 한국, 일본 등 최혜국에 매긴 15% 관세와도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미중 관세협상은 중국의 완승이란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시진핑 주석에 대해 “미국의 눈을 깜짝하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평가했다. 세계 각국이 모두 미국에 쩔쩔 맬때 중국은 단 하나의 카드로 미국에 맞섰다. 바로 희토류 수출 통제다. 희토류(Rare-earth element)는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우는 핵심광물이다. 반도체, 우주항공, 군수, 첨단전자제품, 재생에너지, 석유화학 등 안 쓰이는 곳이 없다. 이렇게 귀한데, 거의 전량이 중국에서 밖에 생산되지 않고 있다. 희토류는 지구상에 부존량은 풍부하지만 지각 내 함유량이 매우 적어 상업적 생산량을 얻으려면 엄청난 면적의 땅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추출, 분리 과정에서 독성이 매우 강한 황산 물질을 대량 사용해야 해 환경오염도 심각하게 발생한다. 중국이 희토류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를 받은 적은 없지만, 대중국 수입의존도가 워낙 높아 항시 불리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한국, 미국, 일본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위협에 대처하는 방법이 매우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희토류 확보를 위해 자국 내 희토류 광산 개발 및 생산을 장려하고, 나아가 정부가 개발사의 지분을 사들이도록 지시했다. 정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미국은 일본, 호주와 희토류 동맹까지 맺었다. 미국과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으로 호주에서 희토류를 생산해 자급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 동맹에서 일본을 눈여겨 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미국과 호주 간의 협력인데, 일본이 끼어 있다. 이것은 희토류 개발과 생산에서 일본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일본은 2010년 중국과의 센카쿠열도 분쟁 이후 희토류 확보를 위해 칼을 갈았다. 비록 자국에서 희토류 생산은 못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기 위해 매장량 확보와 함께 정제련 기술까지 고도화했다. 일본이 동맹에 끼게 된 배경이다. 그 핵심 역할을 일본의 자원개발 공공기관인 조그멕(JOGMEC)이 맡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전혀 엉뚱한 대책을 세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10월 중순 범정부 희토류 TF를 구성하고 희토류 확보에 나섰다. 정부 전략의 핵심은 재자원화다. 희토류가 들어간 폐제품을 리사이클링을 통해 희토류 등 핵심광물을 추출해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10대 전략 핵심광물 재자원화율 20%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리사이클링만으론 국내 수요를 충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경제성도 맞추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국내외 광산을 통해 확보하는 것을 우선으로하고, 리사이클링은 부차적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희토류 확보 전략이 리사이클링으로 간 것은 상당히 잘못됐고, 실책이다. 자원개발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미국과 일본이 그랬듯 희토류 확보는 공공기관밖에 할 수 없다. 우리도 자원 공기업이 확보할 수 있도록 해외진출 족쇄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데스크 칼럼] 콜마 분쟁, 사회 이목도 생각할 때다

콜마그룹 경영권 분쟁 사태가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오빠 윤상현 콜마홀딩스 부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여동생 윤여원 콜마비앤에이치 대표는 오는 29일 예정된 콜마홀딩스 임시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진출하려 했다가 최근 사내이사 후보직을 전격 자진사퇴했다. 콜마홀딩스는 이날 임시주총에서 윤 대표와 부친 윤동한 콜마그룹 회장 등 10명의 윤 대표측 인사를 대거 사내·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돼 있었다. 그러나 윤 대표가 이사후보 6명과 함께 자진사퇴함으로써 이날 안건은 윤 회장 등 3명의 이사후보 선임 안건만 남게 됐다. 콜마그룹 경영권 분쟁 사태는 지난해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한미약품그룹은 지난해 초 상속세 납부 및 OCI그룹과의 통합 여부를 두고 그룹 경영을 주도하고 있던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 모녀에 장남 임종윤 사장이 반발하며 오너가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여기에 차남 임종훈 사장이 형 임종윤 사장측에 서며 모녀-형제 갈등은 상호 형사고발까지 불사하며 극에 달했다. 이후 장남 임종윤 사장이 모친 및 여동생과 전격 화해하고 차남 임종훈 사장도 형 뜻을 따르면서 오너가 분쟁은 마치 '칼로 물베기'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봉합됐지만, 지난해 1년 내내 한미약품그룹은 극심한 내홍과 그룹 이미지 훼손을 면치 못했다. 이번 콜마그룹 경영권 분쟁은 여동생 윤 대표가 오빠 윤 부회장의 콜마비앤에이치 이사진 재편 시도에 반발해 시작됐다. 부친 윤 회장은 당초 남매간 갈등을 원치 않았지만 결국 딸 윤 대표의 편에 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빠 윤 부회장은 지난달 콜마비앤에이치 임시주총에서 승리하고도 최근 이사회에서 윤 대표의 대표이사직을 유지시켜 주는 '포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윤 부회장 자신도 콜마비앤에이치 각자대표로 합류했고 윤 대표의 역할을 대외 사회공헌활동으로 국한시켜 사실상 여동생을 경영권에서 배제시키긴 했지만, 자신은 내년 3월까지만 대표직을 수행할 것이라 약속하고 이승화 신임 각자대표 중심의 전문경영인체제 구축을 추진하는 것은 그룹 경영권 욕심에 분쟁을 일으켰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실제로 최근 반년 동안 이어진 콜마그룹 분쟁에서 윤 부회장은 윤 대표측과 달리 상대편인 부친과 여동생에 대한 공격적인 언론활동 또는 법적대응을 극히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오는 29일 예정된 콜마홀딩스 임시주총도 분쟁 상대방인 여동생과 부친이 자신측 인사를 대거 이사회에 진입시키기 위해 소집을 요구했지만 윤 부회장은 임시주총 소집을 그대로 승인했다. 이번 윤 대표의 콜마홀딩스 이사후보 자진사퇴는 내심이야 어떻든 이러한 오빠의 포용적 행보에 화답하는 모양새로 비춰진다. 이제 딸 편에 섰던 창업주 윤동한 회장의 결단이 주목되는 이유다. 경영권 분쟁의 마지막 관건으로 불리는 윤 회장의 주식반환 청구소송은 화해 또는 소 취하가 없으면 앞으로 1~2년, 길면 2~3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콜마그룹이 K-뷰티의 글로벌 도약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하면 오너일가의 화해 및 콜마그룹의 조기 안정이 절실하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데스크 칼럼] 이커머스 정산주기 단축, ‘선의의 규제’가 초래할 역풍

이커머스 정산주기 단축 규제가 소상공인 보호를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제가 오히려 유통 생태계 전반에 구조적 충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직매입 중심의 유통 생태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산 기간을 일률적으로 60일에서 20일로 줄이면, 중소 납품업체 생존율 급락·독과점 심화·소비자 후생 감소 등 부작용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한국벤처창업학회가 여의도 FKI타워에서 개최한 '정산주기 단축 규제의 경제적 영향' 토론회에서 발표된 실증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정산주기 단축은 보호 대상인 중소 납품업체에 정작 더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 유병준 교수 연구에 따르면 정산주기를 60일에서 20일로 단축할 경우, 발주량 감소로 인해 플랫폼 파트너업체 생존율은 1년 뒤 평균 74% 수준으로 추락하며, 자금력이 취약한 하위 50% 플랫폼에서는 생존율이 48%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이로 인한 입점·납품업체 피해액은 연간 최대 2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산업 구조적 부작용도 심각하다. 대형 납품업체와 소상공인 간 격차를 나타내는 시장 양극화 지수는 약 2.4배 확대되고, 이커머스 시장 집중도를 나타내는 HHI(독점화 지수)는 16.45% 상승해 독과점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직매입형 플랫폼은 정산 압박이 매입량 축소로 직결되며, 총거래액(GMV) 감소 폭이 중개형 대비 13.9%p 더 크게 나타났다. 그 결과 직매입형 피해액은 약 7.7조 원으로, 중개형의 1.9조 원 대비 4배 이상 심각한 수준이다. 업계는 정산주기 단축이 “선의의 규제가 오히려 고비용 구조를 낳아 중소기업을 더 먼저 퇴출시키는 역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직매입 거래는 판매 여부와 관계없이 납품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중소업체가 선호해왔으나, 정산 기간 단축은 유통업체의 현금흐름 부담을 키워 결국 매입 축소 → 납품 감소 → 재고 리스크 중소업체 전가라는 악순환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률적 규제보다 정산주기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천대 전성민 교수는 “운전자본 여력과 플랫폼 모델에 따라 정산주기를 차별화하지 않을 경우, 시장의 '롱테일'을 자르는 결과가 된다"며 “직매입·중개 모델별 차등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논의가 자칫 소비자에게도 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상품 다양성 축소와 서비스 품질 저하로 소비자 후생은 약 8% 감소, 누적 손실액은 최대 1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전문가들은 규제 도입 취지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획일적 정산 규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과잉 처방"이라며 정책 설계의 정교함을 주문했다. “정산의 공정성"이 아니라 “정산의 적정성"이 핵심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상공인을 위한 규제라지만, 그 규제가 시장을 위축시키고 더 큰 문제만 발생시킨다면, 그 규제는 소상공인을 타깃으로 삼는 것과 진배없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데스크칼럼] 산업재해, 정부·기업만으로 근절되지 않다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 “후진적 산업재해 공화국 반드시 벗어나야"(이재명 대통령), “산업재해 예방은 국가의 제1책무…범정부적 역량을 집중해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대통령과 주무장관의 강도 높은 비판과 해결 의지 발언에도 불구하고 산업현장에서 인명사상 재해사고가 멈추지 않고 있다. 바로 얼마 전인 지난 17일 KG스틸 인천공장에서 추락한 중량물에 맞은 하청업체 노동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같은 날 한화오션 경남 거제사업장에서 철제 구조물 설치 작업 중 구조물이 넘어져 60대 노동자가 머리를 다쳐 병원에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앞서 지난 3일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철거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가 아래로 떨어져 추락사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대통령이 언급한 '후진적 산업재해 공화국'이라는 지적이 단순히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강조하려 수사적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산업재해 공화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건설업의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고사망자 수를 의미하는 통계지표)은 2023년 기준 1.59로 OECD 10대 경제권 평균(0.78)의 2배 이상이며,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건설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138명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6.15% 더 늘어났다. 이같은 산업재해 발생 건수와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 3년 동안 사망자 수는 일부 줄었지만(2021년 683명→2023년 598명), 재해자 수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2021년 12만2713명→13만 6796명). 이런 현실은 우리나라의 산업안전 관리체계의 근본적 재설계라는 구조적 해법 수준을 못지 않게 산업현장 주체들의 안전인식도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산업현장이 '위험'과 '익숙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비유하곤 한다. 즉, 산업현장의 위험은 언제, 어디서든 상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구조적, 제도적 대책들이 그동안 끊임없이 강구되고 구현돼 왔다. 그러나, 이같은 구조적, 제도적 대책의 실효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산업현장의 익숙함이다. 익숙함에는 작업공사의 비용 효율화만 앞세운 불합리한 원하청거래, 산업안전 관리감독의 무사안일주의, 현장작업자의 안전수칙 경시문화 등이 다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앞의 두 가지 익숙함은 재해 사고 발생 시 원인과 책임을 물어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지만, 산업현장 종사자의 안전 불감증은 딱히 사회적 지탄은 받을지언정 법적 제재에서 벗어나 있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산업현장 노동자들의 산업안전 인식은 '후진적'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많은 노동자들이 안전수칙을 '형식적인 절차'로 인식하거나, '일의 속도'와 '성과'에 밀려 안전을 후순위로 두는 경향성을 강했다. 조사에서 약 40%의 노동자가 “작업 중 위험을 느껴도 보고하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35%는 “보호구 착용이 불편하거나 귀찮다"고 여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재해의 인과관계에서 정부의 감독 소홀, 기업의 안전조치 불이행은 즉각 제재와 개선의 효과로 이어지는 성격인 반면, 노동자의 안전 불감증은 개인의 인식 문제로 치부되면서 '산업안전 문화 정착'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아무리 산업재해 예방의 제도와 안전장비가 선진적일지라도 집행자나 수용자의 실제 운용이 선진적이지 않다면 '산업재해 후진국'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제도 선진화 못지 않게 인식의 선진화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데스크 칼럼] 백척간두의 대한민국號

백척간두, 정말 벼랑 끝 위기다. 2025년 10월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다. 국제 정세는 3차 세계대전 직전의 분위기다. 국내도 어느때보다 심각한 정치 양극화, 경기 불황 등으로 사분오열돼 있다. 자칫 초강대국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하거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어느때 보다도 높다. 가장 당면한 현안인 한미 관세협상부터 잘 처리해야 한다. 3500억 달러의 현금을 선불로 달라는 미국의 요구는 당연히 부당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똘똘 뭉쳐 있다. 지난 1~2일 에너지경제신문이 리얼미터와 실시한 여론조사 등 대부분의 조사에서 80% 안팎이 “부당하다"는 일치된 인식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협상해서 어떤 결과물을 얻어내냐다.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반도의 장기적인 안정과 평화, 경제적 번영 유지 등 '실질적인 국익'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역대 정부들은 모두 말로는 국익과 실용외교를 내세워 왔지만 각자의 이념·가치에 따라 휘둘려 왔다. 특히나 한미 관세협상은 복잡하다. 다른 나라처럼 단순한 경제 협상이 아니다. 북핵의 위협에서 미국의 핵 억지력을 제공받아야 한다. 또 미국은 이미 이달 말 발표될 안보전략에서 고립주의를 심화시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최대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전시작전권 회복·강력한 자주국방을 강조하고 내년 국방 예산을 대폭 늘린 것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진영 내 반대에도 한미 자유무역(FTA) 협정·이라크 파병을 단행해 장기적으로 큰 이득을 본 것을 되짚어 보자. 협상 과정 관리도 필요하다. 양국간 갈등이 불필요하고 거칠게 노출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손해다. 또 될 수 있는 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APEC)에서 한미 정상이 만나 해법을 도출할 수도 있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다. 미국 내에서도 물가 상승 압박, 불법적 이민 단속과 군대 파견 등으로 내전에 준하는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다가올 중간 선거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이다. '자신감'을 갖자. 우리나라는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이루고 미·중 패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를 지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다. 과거처럼 미국이 기침만 해도 몸살을 앓던 시절은 지났다. 무엇보다 국론 분열은 금물이다. 외적 앞에 나라가 똘똘 뭉치지 못하면 아픈 역사가 반복된다. 그런데도 야당은 한미 관세협상을 정치 공세에 이용하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일 한 유튜브의 '전언'을 근거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암살당한 찰리 커크로부터 우리 정부의 종교탄압 소식을 듣고 '관세를 15%에서 300%로 올려야겠다'라고 발언했다는 기사를 보았다"고 전한 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조선 말기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청나라에 군대 파견을 요청한 황사영 백서 사건이 떠오른다. 송 원내대표가 애국자라면 가짜뉴스를 전해 매국적 행동을 한 사람들을 꾸짖었어야 했다. 정부·여당도 잘하는 것은 없다. 김현지 대통령실 부속실장 논란 등 불필요한 갈등을 부추기고 내란청산·개혁 완수만 내세운다. 야당과 대화를 통해 힘을 모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봉수 기자 bskim2019@ekn.kr

[데스크칼럼] ‘신뢰’라는 가장 값비싼 보안

총체적 난국이자 점입가경이다. SK텔레콤, KT, 롯데카드에서 잇따라 발생한 해킹사고 말이다. 통신사와 카드사를 가리지 않고 대규모 정보 유출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국민 불안은 커지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은 피해 규모에서 드러난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 전체 가입자의 90%에 해당하는 2324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고, KT도 고객 정보를 악용한 무단 소액결제 사고가 발생했다. 이동통신 1·2위 사업자가 동시에 보안망을 뚫린 셈이다. 통신사 정보는 단순 인적사항을 넘어 본인인증과 통신내역까지 직결되는 만큼 파급력이 훨씬 크다. 그러나 피해 공지는 늦었고 초기 발표와 실제 피해 규모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고객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롯데카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해킹으로 297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고 이 가운데 28만명은 카드번호, 비밀번호, CVC번호 등이 포함돼 직접적인 부정사용 위험에 노출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유출 정보량이다. 지난 1일 관계기관에 보고한 1.7기가바이트의 100배가 넘는 200기가바이트 분량으로 최종 확인됐다. 문제는 사고 이후 기업들의 대응 태도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범죄에 악용된 정황은 없다" “실질적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논리로 책임을 가볍게 만들고, 각종 서비스 혜택을 피해 보상인 양 내놓는다.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장기적·잠재적 피해를 동반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악용될지 알 수 없는 정보가 이미 외부로 나간 상태인데 일회성 혜택으로 피해가 보전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보유출 피해고객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지금 당장은 피해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유출된 개인정보가 수년간 다크웹을 돌며 범죄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불안은 장기간 지속되는데 기업들은 미봉책에 그친 보상으로 책임을 털어내려 한다. 이는 피해자 보호보다 기업 이미지 관리가 우선이라는 인식을 준다. 사이버 침해사고가 급증할 때마다 기업들은 수천억원대 IT·보안 투자를 해왔다고 강조한다. 롯데카드의 최대주주 MBK파트너스도 “2020년부터 2025년까지 5921억원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통신사들 역시 보안 인력 확충을 내세웠다. 그러나 결과가 연이은 대규모 해킹이라면 투자 액수만 내세운 해명은 공허할 뿐이다. 보안 투자가 '필요 비용'이 아니라 '가치 창출과 직결되는 핵심 투자'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정부와 당국의 역할도 가볍지 않다. 징벌적 과징금 강화, 정보보호 투자 의무화 등 제도적 장치가 논의되는 이유다. 기업의 자율에만 맡겨서는 반복되는 대형 사고를 막기 어렵다. 규제 강화가 부담이라는 불만이 나오지만 신뢰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기도 하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불량 애니콜 15만대를 쌓아두고 불태웠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는 현수막이 함께 내걸렸다. 금융사와 통신사에 있어 소비자 신뢰와 고객 보호는 곧 회사의 인격이자 자존심이다. 30년 사이 기업 환경과 시장 규모가 크게 달라졌지만 정작 고객 보호라는 기본 책무는 제자리걸음 아닌가. 이익만을 기업의 핵심 가치로 여긴다면 장기적 신뢰와 기업의 지속 가능성도 그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데스크칼럼] BIFF 30년…생애 주기 거친 영화업, ‘근본부터 성장’ 방안은?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30주년을 맞았다. 30주년이니 꼭 30년 전 일이다. 영화감독이라는 분들이 부산 지역 대학신문 기자들을 불렀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만든 박광수 감독과 '101번째 프로포즈'를 만든 오석근 감독이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한쪽에 제대로 차려져 있지도 않은 사무실로 불렀다. 부산 지역 대학신문 기자 열댓 명이 둘러앉았고, 본인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유명 감독과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감독들은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에게 구구절절 절실하게 호소했다. 당시엔 'PIFF'였다. 부산 표기를 'Pusan'으로 하던 때여서 그랬다. 오 감독은 “피프가 한국 영화를 세계에 전달하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고 “자원봉사를 할 학생들이 없다. 대학신문에서 도와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기억한다. 박 감독은 대학신문 기자들 손을 하나하나 잡으며 홍보 기사를 부탁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전방 산업이 되는 극장은 죄다 영세한 실정이었다. 창발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감독과 배우가 만든 영화는 쏟아지는데 보러 갈 극장이 너무 적었다. 영화의 재원이 되는 펀드를 포함해 후방 산업도 형성되지 못했다. 영화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산재한 영화관을 하나로 묶어 전방 산업을 형성하려는 한국 영화 산업계의 대형 마케팅 이벤트였다. 당시만 해도 영화제는 칸이나 베를린 같은 곳에서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대학신문 기자라도 불러 홍보해야 했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5년 만에 대박을 터트렸다. 영화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멀티플렉스가 날로 늘어나고 영화마다, 감독마다 뭉칫돈으로 펀딩을 받았다. 할리우드와 견줘도 손색없는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 기술도 한국에서 개발됐다. 2010년 국제신문 영화담당 기자로 다시 PIFF를 찾았다. 배우와 감독은 해운대 뒷골목 어묵집과 포장마차에서 저마다 기자를 불러 만나 영화산업의 활황을 자축했다. 만취한 한 유명 배우는 “황금사자든 아카데미든 우리가 다 휩쓸 거야. 두고 봐"라고 했다. 그는 이유를 “투자금 단위가 달라졌어. 찍기만 하면 돈이 되잖아"라고 설명했다. CGV가 멀티플렉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때였다. CJ는 영화의 전후방 산업을 모두 차지하고, 영화산업을 '사실상 수직계열화'했다. 영화인은 CGV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산업은 영화관을 중심으로 독점에 빠졌다. 천만영화든, 쪽박영화든 내용과 관계없이 CJ가 정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고 또 15년이 흘렀다. 영원할 것 같던 영화업의 전방산업이 교체됐다. 영화관을 OTT와 대형 TV가 대체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영화관을 찾기보다 휴대전화나 홈시어터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OTT 업체가 투자를 늘리면서 '영화업'은 '단회 영상콘텐츠업'으로 바뀌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BIFF를 찾아 영화를 관람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영화 제작 생태계가 나빠지고 있다는데, 정부도 영화 산업이 근본부터 충분히 성장할 수 있게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영화분야 예산을 전년 대비 배 가까이 늘렸다. 영화 산업은 생애주기를 한 차례 겪었다. 투자자에게 매칭펀드 재원을 주거나, 감독에게 제작비를 지원하거나, 배우 생계비를 보조해 주는 것만으로는 산업의 근본을 변화시킬 수 없다. 대통령이 영화 산업의 '근본부터 성장'에는 이유가 있을터, 그 방안에 산업 구조적 변화가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데스크칼럼] 대통령의 선택적 실용주의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 성향을 소개할 때 '실용주의'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실용주의는 어떤 이념이나 이론의 진리를 그 실제 효용성이나 결과에 따라 판단하는 철학적 관점으로, 쉽게 말해 실제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로 사안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에너지산업은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많은 풍파를 겪었다. 문재인 정부는 뜬금없이 '탈원전'을 선언해 원전업계의 원성을 샀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태양광 수사를 벌이면서 재생에너지업계가 탄압 아닌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에 거는 에너지업계의 기대는 컸다. 실용주의를 표방한다기에 정치적 편견 없는 에너지 정책이 나오길 예상하고 기대했다. 그런데 지난 11일 이 대통령의 100일 맞이 기자회견에서 나온 그의 에너지 인식은 에너지업계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요 발언들을 보자. “원전은 기본적으로 맹점이 있다. (준공하는 데) 최하 15년이 걸린다. 지을 데도 없다. 딱 한군데 있는데, 지으려다 만 곳이다. 소형모듈원전(SMR)은 아직 기술개발이 안 됐다." “태양광과 풍력은 1~2년 밖에 안 걸린다. 당장 데이터센터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무슨(어떻게) 원전을 짓겠나. 신속하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로 가야 한다." “화력발전은 탄소제로, NDC(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때문에 추가로 건설할 수 없다." “원전도 있는 건 써야 한다. 가동기한 지난 것도 안전 담보되면 연장해서 써야 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섞어 쓰는 에너지믹스는 변한 거 없다." “11차 전기본 수립 때 원전 2기와 SMR 신규로 한다고 했을 때 하라고 했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그래서 통과시켰다. 부지 있고, 안전성 확보되면 (신규 건설) 할 수 있겠지만,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사실인 것도 있지만, 사실이 아닌 것도 많다. 에너지산업을 조금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아는 것들이다. 우선 원전 건설기간을 보면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고리 1호기는 공사기간이 73개월 걸렸지만, 가장 최근에 지어진 신한울 1호기(2022년 12월 준공)는 153개월, 신한울 2호기(2023년 9월 준공)는 162개월 걸렸다. 공기가 처음보다 2배 이상 길어지긴 했지만, 이 대통령이 말한 최하 15년, 즉 180개월보다는 적게 걸렸다. 이 대통령은 원전 건설기간을 부풀려 말한 셈이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사업은 건설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태양광 발전의 경우 1MW 이하부터 수백MW까지 규모가 매우 다양하다. 당연히 소규모일수록 공기는 짧고, 대규모일수록 공기는 길어진다. 대부분 소규모이기 때문에 건설기간이 짧게 보일 뿐이다. 원전의 1기 용량은 1.2GW이다. 이 규모로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다면 아마 원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 수년의 공기가 소요될 것이다. 이 대통령이 말한 재생에너지 건설기간은 소규모에 해당하므로 원전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화력발전에는 석탄과 가스가 있다. 석탄발전은 퇴출되는 추세이나, 가스발전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최근 유럽연합(EU) 법원은 친환경 에너지를 규정하는 그린 택소노미(Taxonomy)에서 천연가스를 친환경으로 인정했다. 천연가스는 석탄보다 탄소 배출이 적어 궁극의 무탄소에너지 시대로 넘어가는 가교역할로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EU법원은 인정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가스발전까지 통틀어 더 이상 화력발전이 설 곳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에너지 인식은 선택적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재생에너지로 답을 정해 놓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에너지에 대해서는 일부러 또는 누군가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습득해 효용성을 축소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국민이 보는 기자회견에서 사실인 것처럼 말했다. 절대 그것은 실용주의라고 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의 에너지 인식은 참모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받아서 생겼을 수가 있고, 원래 그랬던 것인데 실용주의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감춰왔을 수도 있다. 전자라면 그나마 희망이 있지만, 후자라면...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데스크 칼럼] ‘농가 보호’ 명분에 소비자는 고물가 ‘속앓이’

최근 한 유튜버가 판매에 나선 '990원 소금빵'이 이슈화되며 국내의 비싼 빵값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내 빵 가격이 해외 주요국보다 높을 뿐 아니라 국내 다른 식료품보다 가격 상승 속도가 높다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제빵업체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빵의 주원료인 밀 국제 가격이 하락세인데 국내 빵 가격은 오히려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제빵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으로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고, 국내 제빵업계가 독과점 구조로 고착돼 있어 독과점 기업들이 높은 가격을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국내 비싼 빵가격을 제빵업체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SPC삼립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8%, 파리크라상은 1.5%, CJ푸드빌은 6.1% 수준이다. 다른 업종에 비해 영업이익률이 낮은 편에 속하는 식품업계의 평균치 약 5%보다 높다고 보기 어렵다. 제빵업은 다른 식품 제조업에 비해 노동집약적 업종으로,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상이다. 한 번 오르면 내리기 어려운 대표적 고정비인 인건비의 비중이 식품 제조업 평균 8%대의 3배인 셈이다.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프랜차이즈 사업 방식상 가맹점 지원 등 판매관리비 비중도 다른 식품 제조업에 비해 높다. 국내 제빵업계가 소수 대기업의 독과점 구조로 이뤄져 있지만 이는 기존 대기업이 진입장벽을 쳐서 신규 진입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마진율이 워낙 낮다보니 대기업이 진입할 매력을 못느껴 소수의 대기업과 다수의 영세업체만 남은 구조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처럼 제빵업계의 낮은 이익구조는 경영 비효율성 등 기업 탓이 있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빵 원가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원재료인 밀가루, 우유, 계란, 설탕의 가격이 경직된 구조라는 점이 주된 이유다. 특히 우유는 다른 농산물과 달리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가 아니라 사료비 등 원유 생산비 변동에 맞춰 정부와 농가단체가 매년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생산비 연동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와 올해 국내 원유가격은 동결 또는 인하되긴 했지만 미국 등 국제 원유가격에 비하면 여전히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계란은 우유와 달리 법적으로는 시장경제원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지만, 실제 유통과정에서는 '생산자단체 희망가격 제도'를 통해 생산자들이 사료비 등 생산비를 반영해 산출해 제시하는 가격이 큰 영향력을 가진다. 올해 국내 계란 가격은 지난해보다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이러한 가격 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영세한 구조인 국내 낙농가와 산란계농가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제도로, 국내 영세농가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정책이다. 그러나 최근 '쌀값 폭등' 사태까지 넓혀 살펴보면 정부의 농가 보호를 위한 농산물 가격 보전 정책이 과연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취약한 국내 농가 보호를 위한 정책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것이 소비자나 기업에게 고통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보다 정교하게 운용되길 바란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데스크칼럼] ‘노인을 위한’ 정부는 없나

정년 나이인 만 60세를 넘겼다. 정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몸과 마음의 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정규직 급여를 받는다는 것에 스스로에게, 또한 우리 사회에 늘 고마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멀지 않은 시점에 정규직에서 물러난 이후 어떻게 노후생활을 건강하게, 소박하게 영위해 나갈까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 시행하거나 사라지는 노인 복지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 자신의 모습도 종종 발견한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시내 서점에서 숱한 서적들 가운데 책 한 권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라는 제목의 책으로, 표지를 둘러싼 띠지의 광고 문구 중 '현명하게 나이 드는 법', '자신의 나이를 잘 사용할 줄 안다면 즐거움이 가득 찰 것이다'는 내용이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다. 72세에 이 책을 집필했다는 스위스 태생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이 나이에도 무엇을 하고,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바라는지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노년기의 자유'라고 갈파했다. 또한, 자신을 65세에서 84세 사이인 제3의 인생기에 속하는 '젊은 노인'이라고 정의했고, 70대가 인생에서 정서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시기라고 말했다. 아직 책장의 절반도 넘기지 못한 수준이지만, 책을 언급한 이유는 간단하다. 올해부터 초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20% 이상를 차지한 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의 젊은 노인들 가운데 스스로 '가장 만족스럽다'고 여기는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정신적, 신체적 만족도를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발표 2023년 기준 40.4%(66세 이상), 우리나라 국가통계연구원 지속가능발전목표(SDG) 보고서(2025년 3월)의 2023년 기준 39.8%로 조사될 정도로 매우 심각하다. OECD 38개 회원국 노인빈곤율 순위 1위, 세계 평균 노인빈곤율(16.1%)보다 약 2.5배 높다. 그렇다보니 정년 이후에도 안정된 노후를 즐기지 못하고 저임금 단순직의 일터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의 노인 경제활동 참가율이 2023년 37.3%로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지난주 '먹사니즘'을 표방한 이재명 정부가 처음으로 편성한 2026년도 정부 예산안이 공개됐다. 하지만, 고령층 복지 예산을 찾아본 결과 '곁다리식' 시혜성으로 와 닿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기껏해야 노인 일자리를 올해 110만개에서 5만 4000개 더 늘리는데 2004억원, 신규 예산인 어르신 스포츠강좌 프로그램 지원 75억원 증액한 내용이 눈에 뛸 정도였다. 5년 뒤인 2030년에는 국내 노인 인구 비중이 약 25%에 육박할 전망이다. 전체 인구에서 4명 중 1명이 노인인 셈이다. 출생률 저하, 인구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노인 인구의 노동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정책입안 과정이나 사회 통념에서 여전히 '나이 듦'의 잣대로 노인 문제를 사회적 비용 요소로 고려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저출산에 치중돼 있는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에서 고령화 정책기구를 분리해 별도기구로 신설해야 한다. 더이상 노인 정책을 시혜성 시각이 아닌 생산성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책에서 피력한 '노인세대의 유연성과 창의성'에 새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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