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한국 코스피 지수가 올해 최대 8000까지 오를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빠르게 식고 있다. 미국과 이란 전쟁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어서다. 최근 이어진 코스피 급락이 예견된 일이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자 이번 하락장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4일 코스피는 전장 대비 12.06% 내린 5093.54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하락률은 역대 최대다. 종전 기록은 미국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9월 12일 기록한 12.02%였다. 같은 날 코스닥지수도 14% 급락하며 역대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급락장이 이어지면서 코스피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발동됐고 코스닥 매도 사이드카도 4개월 만에 발동됐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동시에 8% 넘게 하락하면서 두 시장의 거래를 20분간 중단시키는 '서킷브레이커'도 한때 작동했다. 서킷브레이커 발동 이후 코스피는 반등하는 듯했지만 하방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하락했다.
이날 코스피 폭락으로 지난 한 달간 상승분이 불과 이틀 만에 모두 반납됐다. 코스피는 지난달 27일 사상 최고치인 6347.41까지 치솟자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올해 목표치를 잇따라 상향 조정했다. 특히 노무라증권은 코스피가 최대 8000선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26만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스피 급등이 거품이라는 경고가 현실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JP모건 수석전략가로 활동했던 마르코 콜라노비치는 3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 “전쟁이 일어날 날짜를 말해줬고 코스피와 닛케이가 붕괴할 것이라고도 말했다"며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가능성과 월요일(2일) 미국 증시 반등을 믿지 말라고도 경고했었다"고 적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눈을 가리는 선택을 했다"고 지적했다.
콜라노비치는 지난달부터 '코스피 거품론'을 강하게 제기해 왔다. 그는 “코스피가 1000에서 2000으로 오르는 데만 40년이 걸렸다"며 “지금은 '블로오프 탑(blow-off top)'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블로오프 탑은 자산 가격이 과열된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급등한 뒤 급격히 꺾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영국 온라인 매체 디스럽션뱅킹은 이에 대해 “콜라노비치는 코스피의 블로오프 탑을 경고했고 결국 그의 전망이 적중했다"고 평가했다.
콜라노비치는 미국의 대이란 공습 가능성도 미리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이란에 합의를 위한 시한으로 10~15일을 제시한 것과 관련해 그는 “트럼프가 이란에 단순히 2주간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며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막았거나, 아니면 미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20일에도 “유가는 상승하고 있는데 동시에 이란과 협상이 순조롭다는 말이 나온다"며 “둘 중 하나는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했고, 26일에는 “공습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틀 뒤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P/연합)
문제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콜라노비치는 최근 “이란을 신속하고 결정적으로 격파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물러서지 않는다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UAE는 인구의 약 88%가 외국인 거주자이고 경제도 관광·금융·항공·해운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이번 사태가 글로벌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전쟁이 발발한 지난달 28일에도 이번 사태가 지난해보다 금융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한국과 일본 증시의 거품을 지목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즈의 아제이 라자드야크샤 글로벌 리서치 회장은 “시장은 이번 전쟁이 2025년 6월이나 2024년 4월, 2024년 10월처럼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위험을 반영하기 시작했다"며 “이번 상황은 이전과 상당히 다를 수 있으며 2~3주 뒤에도 여전히 같은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소시에테 제네랄의 라잣 아가르왈 전략가는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은 이미 한동안 한국 주식에 대한 익스포저를 줄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개인투자자 수요마저 사라지고 있다"며 “가파른 추가 하락의 문이 열렸다"고 분석했다.
미국 증시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한국시간 오후 4시 22분 기준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선물은 0.33%, S&P500 선물은 0.44%, 나스닥100 선물은 0.71% 각각 하락하는 등 뉴욕증시 3대 지수 선물은 1% 미만의 약세를 보였다.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전날에도 약 1% 하락 마감했다 .
블룸버그는 이에 대해 “미국은 순에너지 수출국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충격이 제한될 수 있다"면서도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인공지능(AI) 투자 속도를 늦출 경우 미국 증시 역시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시장이 지나치게 안일하다"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이 결국 경기 침체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콜라노비치는 월가에서 대표적인 증시 비관론자로 꼽혀온 인물로, 과거 정확한 시장 예측으로 언론 매체들로부터 '간달프'(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현명한 마법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특히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공포로 시장이 무너지던 시기 증시 반등을 정확히 예측해 명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부터 시장 흐름과 엇갈린 전망을 이어다가 결국 2024년 7월 JP모건에서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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