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멕시코까지 자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제품에 최대 50%의 관세 폭탄을 예고하면서 우리 산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당장 반도체, 자동차, 가전 등 주요 품목 수출에 타격을 받을 상황은 아니지만 북미 지역에서 각종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악재라는 분석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멕시코는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을 대상으로 '전략 품목' 수입품 관세를 인상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한국·중국 등에 현재 0∼35%대로 책정된 품목별 관세율이 최대 50%까지 높아지는 게 골자다. 멕시코 상원은 지난 10일(현지시각) 본회의에서 일반수출입세법(LIGIE) 정부 개정안을 찬성 76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가결 처리했다. 정부가 주도한 법안이라 내년 1월부터 바로 시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구체적인 관세 품목과 관세율은 관보 공개 이후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자동차 부품, 철강 및 알루미늄, 플라스틱, 가전, 섬유 등이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멕시코 정부는 앞서 지난 9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치 관세를 차등해 부과하는 안을 발표했다. 당시 17개 전략 분야 1463개 품목을 선정했는데 해당 품목들이 포함됐었다. 멕시코 중앙은행과 경제부 자료 등을 보면 한국은 관련 자료가 발표된 1993년 이후 내내 멕시코를 상대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는 3분기까지 120억9800만 달러(약 17조8000억원) 가량 흑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산업계는 멕시코의 이같은 조치에 당장 피해를 입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멕시코가 이번에 관세 인상안을 통과시키면서 수입 중간재에 대해서는 관세감면제도를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멕시코가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국이긴 하지만 이들이 '전략품목'으로 지정할 만한 제품이 넘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자동차·가전 업체들은 멕시코를 미국 수출을 위한 생산기지로 활용되고 있는 상태다. 삼성전자는 케레타로, 티후아나 등에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등을 만들고 있다. 멕시코를 북미지역에 판매되는 가전·TV의 생산 허브로 삼고 있다. LG전자 역시 몬테레이, 레이노사, 멕시칼리 등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마련해둔 상태다. 가전, TV·디스플레이 등을 만들어 주로 미국으로 수출한다. 기아는 몬테레이에 연산 40만대 규모 공장을 건설해 운영 중이다. K3, K5 등 승용 모델을 주로 만든다. 한국 정부 역시 멕시코의 이번 조치가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멕시코는 완제품이 아니라 삼성·LG전자와 기아 등 공장에서 쓰일 중간재가 넘어가는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해당 법안은 지난 9월 처음 발의됐을 때와 비교해 조건히 상당히 완화됐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다. 산업통상부는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박정성 통상차관보 주재로 멕시코 관세 인상 관련 민관 합동 점검 회의를 개최했다. 간담회 참석한 기업들도 정부의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줬다고 전해진다. 현장에는 삼성전자, 현대차·기아, LG전자, 포스코 등이 참석했다. 한국무역협회, 한국철강협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등 기관도 함께했다. 일각에서는 멕시코의 이같은 행보가 오히려 우리 기업들 이익 개선에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멕시코가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면 현지에 생산기반을 마련한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관세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멕시코의 관세 인상안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관련 논의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협상하기 위한 카드 중 하나라고 해석한다. 삼성·LG전자 등은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주요 제품 라인을 미국으로 옮기는 방안 등을 조율해왔다. 다만 미국, 캐나다에 이어 북미 지역에서 계속해서 '관세 장벽'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악재다. 개별 기업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제품을 만들어 현지로 수출하는 업종들에는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멕시코는 2006년께부터 FTA 관련 협의를 이어왔으나 현재 동력을 상실한 채 교착 상태에 있다. 산업통상부는 “이번 간담회를 통해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업계 및 현지 공관 등과 협력해 이번 관세 인상 조치에 따른 영향 최소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헌우 기자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