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이미지

장하은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장하은 기자 입니다.
  • 자본시장부
  • lamen910@ekn.kr
[아듀2025_증시] 코스피·코스닥, 연초比 ‘76·37% ↑’…‘글로벌 최고’

2025년 국내 증시는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30일을 기점으로 유의미한 기록을 남겼다. 코스피는 4214.17, 코스닥은 925.47로 거래를 마쳤다. 연초 대비 각각 75.6%, 36.5% 상승한 것이다. 올 하반기 코스피는 연중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돌파했고, 코스닥 역시 시가총액 500조원을 넘어섰다. 단기 반등이 아닌 구조적 상승 흐름이었다는 점에서 2025년 증시는 이전과 다른 국면을 열었다는 평가다. 연초 국내 증시는 순탄치 않았다. 정치적 불안정성과 미국 상호관세 우려가 겹치며 코스피지수는 4월9일 2293까지 밀리며 연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6월 정권 교체 이후 정책 불확실성이 완화되자 분위기가 빠르게 반전됐다. 주주가치 제고와 불공정거래 근절을 핵심으로 한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이 본격화되며 투자심리가 회복됐고, 반도체 업황 개선이 맞물리며 상승세로 전환됐다. 10월27일에는 코스피가 전 거래일 대비 2.57% 오른 4042.83에 마감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장중·종가 기준 모두 4000선을 넘어섰다. 6월 3000선을 회복한 이후 불과 다섯 달 만에 1000포인트를 추가로 끌어올린 셈이다. 연말 종가(4214.17) 기준으로 보면, 연초 대비 연말 상승률이 20개국(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성과를 기록했다. 이같은 코스피 상승에 힘입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3000조원을 돌파하며 시장 규모 자체가 한 단계 확장됐다. 수급을 보면 코스피 시장에서 연간 기준으로 외국인은 9조, 개인은 19조7000억원을 순매도했다. 반면 기관은 18조2000억원, 기타법인은 10조5000억원을 순매수했다. 상승 국면만 놓고 보면 외국인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외국인은 5월부터 10월까지(8월 제외) 19조5000억원을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연간 기준 수치는 순매도였지만, 핵심 구간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이 방향성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코스닥은 성격이 달랐다. 개인이 9조1000억원을 순매수하며 상승을 주도했고,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3조1000억원, 7000억원을 순매도했다. 2025년 코스피 상승은 상법 개정 등 제도 개선, 실적 모멘텀, 대외 환경 안정세가 맞물린 구조적 리레이팅으로 요약된다. 정부는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회와 임원진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 확대했고, 최대주주의 감사위원 선임 의결권을 3%로 제한했다. 독립이사 요건 강화, 전자주주총회 확대, 누적투표제와 감사 선임 분리 의무화 등도 포함됐다. 그동안 논란이 컸던 계열사 합병이나 분할, 오너 중심 의사결정 구조에 제도적 제동이 걸리면서 시장 신뢰가 회복됐다. 법안 통과 직후 코스피가 하루 만에 2% 넘게 급등했고, 글로벌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집중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가 부각됐다. 여기에 반도체 초호황과 조선·방산·원전(조방원) 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실질적인 상승 동력으로 작용했다. 글로벌 금리 인하 기조 속에서 유동성 환경이 개선된 점도 지수 레벨 상향을 뒷받침했다. 실제로 2025년 코스피 전 업종이 상승한 가운데 기계·장비, 전기·전자, 전기·가스, 증권 업종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코스닥은 활성화 정책 기대와 AI발 반도체 업황 호조가 투자심리를 끌어올렸다. 하반기 들어 거래대금이 빠르게 회복되며 4분기 일평균 거래대금은 12조7000억원으로 연평균 대비 51.2% 증가했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2025년 증시는 상반기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 변수, 하반기에는 AI 투자 랠리가 지배했다고 볼 수 있다. iM증권은 2026년을 여는 질문으로 이 두 축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제시한다. 내년 트럼프 리더십은 지난 10년간 이어진 정치 리더십 이후의 질서를 준비하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AI 투자 역시 미국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기대를 받지만 수익화 지연과 비용 증가, 자산 버블, 전력 부족 등 구조적 과제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AI 관련 산업과 비관련 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크레딧 리스크와 인플레이션 재점화 가능성, 연준의 정책 선택이 시험대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제에서 AI 관련 산업과 그렇지 않은 산업 간 양극화가 점차 심해지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산업 간 양극화가 언제까지 유지 가능할 것인지, AI 투자 열기에서 소외된 부문이나 AI 투자 관련 부문의 크레딧 리스크 부각, 인플레이션 재발 가능성과 연준의 선택 등이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AK인터렉티브 실사주 ‘거상’ 조성용의 계열사 ‘만’ 대 1 감자

온라인 게임 '거상'을 유통 중인 AK인터렉티브의 계열사가 1만 대 1 감자를 단행하려 한다. 임시주총에서 안건이 통과된다면 9999주 이하를 갖고 있는 소액주주들은 더 이상 회사의 주주가 아니게 된다. 그룹의 실사주인 조성용 회장은 주가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바 있으며 과거 주주배정 유상증자 후 6개월 뒤 회사가 상장폐지된 전력이 있다 보니, 소액주주들의 '거듭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K인터렉티브 자회사 캐킷은 3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본점 6층 회의실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 예정이다. 부의 안건은 감자의 건으로 결손금 보전 목적이다. 캐킷은 지난해 말 기준 자본 잠식 중이며 3년 연속 영업손실이 이어지고 있어 감자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문제는 비율이다. 감자 비율이 무려 1만 대 1에 달한다. 이 경우, 9999주를 갖고 있어도 0주가 되어 주주로서 쫓겨나게 된다. 감자 전 주식수가 132만1887주인 점을 고려한다면 0.7%의 지분을 갖는 주주들이 사실상 쫓겨나는 것이다. 만약 1만주를 갖고 있다면 1주, 100만주를 갖고 있으면 100주로 줄어들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지분 비율은 변하지 않으나 실제로는 다르다. 단주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어려워 회생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통상 25대 1 이상은 거의 하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 100대 1 감자도 하지만 이 정도 대규모 감자를 한다면 최대주주의 희생을 동반한 차등감자가 동반된다. 캐킷은 정반대다. 0.7% 이하의 소액주주들의 지분율이 0%로 수렴함에 따라 대주주의 지분율은 높아지게 된다. 국내 최대 소수주주 연대 플랫폼 액트의 이상목 대표는 “임시주총 안건(주식병합을 통한 자본감소)은 표면적으로는 '결손금 보전'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인 목적은 1만 대 1이라는 극단적인 비율로 소액주주를 강제로 축출(Squeeze-out)하여 지배주주 1인(또는 극소수) 회사로 만들기 위한 시도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해당 안건은 기존 상법 제도를 우회한 안건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우리 상법 360조의 24에는 9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지배주주가 소수주주를 내보낼 수 있는 제도(Cash-Out)를 두고 있다. 강행규정이다. 1만 대 1 감자는 소액주주들을 내쫓는다는 점에서 지배주주의 매도청구권 조항과 유사한 효과가 나타난다. 상법의 관련 조항은 '적절한' 보상을 전제로 한다. 주주와 원만한 협의를 유도하고 있으며 이것조차 어려울 경우 법원에서 결정을 내린다. 1만 대 1 감자라면 적절한 보상은 사실상 없다. 9999주를 갖고 있다면 대가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1만 9999주(약 1.4%)를 갖고 있다면 점심값 정도인 1만625원을 지급하면 된다. 이 대표는 “회사는 정당한 가격 산정 절차와 반대주주의 매수청구권 행사가 보장되는 위 절차를 밟지 않고, '결손금 보전 감자'라는 우회로를 택했다"면서 “소수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강행규정을 회피하기 위한 탈법적 수단이므로 그 결의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캐킷은 온라인 게임 '거상'으로 유명한 AK인터렉티브 그룹의 계열사이다. 그리고, AK인터렉티브의 실사주는 조성용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말 기준 98%를 보유한 김 모씨는 조 회장의 배우자이다. 조 회장은 과거 조이토토를 상장폐지시킨 전력이 있다. 계열사 간 금융거래가 주요 원인이었다. 당시 조이토토는 자회사인 조이온을 비롯해 계열사와 수차례 금융거래가 있었으나 증빙 자료가 미비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감사했던 우리회계법인은 “회사는 사용제한 되어 있는 예금계좌에 대한 세부적인 내역을 제시하지 아니하여 정상적인 감사절차를 수행하지 못했으며 회사의 회계처리를 신뢰할 수 없었다"면서 “대표이사로부터 감사과정에서 이루어진 경영자의 진술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경영자확인서도 제시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상장폐지가 되기 6개월 전, 회계상의 이슈가 있던 가운데 조 회장은 당시 107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한다. 1주당 3주가 배정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유상증자였다. 실제로 94.2%의 청약이 이뤄졌고, 조이토토 유증에 참여해 신주 인수한 주주들은 5개월도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이 된 주식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그는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하며 실형을 받았으며 재판 과정에서 주가조작 혐의를 받기도 했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자본시장 거래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대주주의 경영권프리미엄 이외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의 이해상충 상황은 해소할 필요가 있다"면서 “적어도 회사의 갑작스러운 가치이전으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현상은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2026 투자노트-➃2차전지] ‘갑갑함’이 현실로…ESS ‘구원투수론’ 함정

2025년 글로벌 증시는 인공지능(AI) 등 제한된 업종과 테마에 수급이 집중되며 큰 변동성을 겪었다. 2026년에는 산업별 여건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일부 산업은 회복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반면, 어떤 산업은 업황 부담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AI 부터 반도체, 자동차 등 각 섹터가 맞이할 다음 국면과 이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을 조망한다. [편집자주] 2025년 2차전지 산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다. 전기차(EV) 수요 회복은 예상보다 더디고, 정책 변수는 좀처럼 완화되지 않고 있다. 1년 전인 2024년 말, 2차전지 시장을 지배했던 평가는 한 단어로 요약됐다. '갑갑하다'는 진단이었다. 당시 신용평가사와 증권사들은 업황의 턴어라운드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안타깝게도 당시의 우려는 상당 부분 현실이 됐다. 기대를 모았던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성장을 이어가고는 있다. 하지만 산업 전반의 체력을 되살릴 만큼의 파급력은 아니다. 2026년을 앞둔 현시점에서도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신중한 시각을 유지하는 이유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 2차전지 TOP10 지수는 연초 고점(1월 20일)인 3137.04에서 지난 26일 3148.66으로 0.4% 오르는 데 그쳤다. 1년 내내 사실상 정체 상태에 머문 셈이다. 해당 지수에는 LG에너지솔루션, POSCO홀딩스, LG화학, 삼성SDI, 포스코퓨처엠, SK이노베이션,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 SKC, 에코프로머티 등이 편입돼 있다. 2차전지 산업은 이제 막연한 기대를 넘어 냉혹한 검증의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는 2026년 산업 전망을 '비우호적'으로,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규정했다. 2차전지는 핵심 시장인 미국은 트럼프 정부 재집권 이후 친환경 정책 후퇴가 가시화되며 수요 감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 하반기 세액공제 종료 방침이 발표된 직후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이 전월 대비 54% 급감한 사례는 시장이 직면한 정책적 불확실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럽 시장이 규제 강화와 보조금 재개로 완만한 회복세를 꾀하고 있으나,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파상공세를 극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단순한 외형 확장보다는 실제 가동률과 수익성이 주가를 결정짓는 기준이 될 것이라는 것이 2차전지를 바라보는 증권가의 중론이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얼마나 많이 파는가'에서 '정책적 격변기 속에서 수익을 낼 체력이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전기차 수요의 빈자리를 채워줄 것으로 기대되는 ESS 시장 역시 산업 전체를 견인하기엔 아직 체급이 부족하다. 한신평에 따르면 전체 배터리 수요에서 ESS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 수준에 불과하다. 전기차 시장의 거대한 수요 공백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이다. 더욱이 현재 미국 ESS 시장은 국내 기업들의 즉각적인 수혜를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산 배터리가 장악하고 있어서다. 신평사와 증권가는 내년을 실질적인 반전의 기점으로 지목한다. 미국이 중국산 ESS 배터리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48.4%까지 대폭 인상하고, 국내 업체들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맞물려야 비로소 유의미한 반사이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ESS는 당장의 구원투수라기보다, 이후를 기약하는 '중장기 완충재'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셈이다. 한국투자증권은 그나마 기대를 받는 미국 ESS 시장의 성장 속도 자체도 둔화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에 주목했다. 2025년 미국 배터리 ESS 신규 발전용량은 17GW로 예상되는데, 이는 연초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제시한 전망치(19.6GW)보다 13% 낮은 수준이다. 지난 11월 새로 집계한 데이터를 보면 내년 예상 규모는 23.7GW로 예상되는데, 진행단계로 볼 때 실제 규모는 20.4GW로 추정된다. 성장률로 보면 20%에 그치게 되는 것으로 ESS 배터리 셀 수요 증가율도 둔화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내년에도 국내 배터리 셀 업체들의 실적 반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EV용 배터리 수요의 급격한 둔화와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ESS 성장, 중국 업체와의 경쟁 심화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실적 개선 시점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최문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ESS가 EV 부진을 만회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며 “주가 측면에서도 추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황 부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누적된 재무적 하중이다. 대규모 투자가 일단락됐음에도 기업들의 신용도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가동률 저하로 현금 창출력이 떨어지면서다. 한신평은 영업손실 장기화와 차입금 부담 가중이 신용등급 하향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미래 기술 투자를 위축시켜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는 악순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김영훈 한신평 수석연구원은 “주력 시장인 미국의 수요 역성장 우려와 신규 공장 고정비 부담으로 배터리 셀 업체의 부진한 실적이 지속될 것"이라며 “소재 업체는 업황 둔화로 낮은 가동률이 이어지는 가운데,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등 수익 보완 요소가 부재해 실적 회복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ESS 성과, 신규 수요처 발굴, 이차전지 외 사업 부문의 실적 보완 수준 등 수익성 방어 전략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주간증시] 코스피 ‘환율 안정’ 타고 반도체 랠리…FOMC·CES 이벤트가 변수

12월 마지막 주이자 2026년 첫 거래일을 앞둔 이번주 국내 증시는 연말 수급과 연초 이벤트가 맞물리는 변곡점에 섰다. 지난주 환율 안정과 외국인 수급 복귀, 반도체 업종의 주도력은 분명해졌지만, 그 흐름이 연초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6일 코스피는 전장 대비 21.06포인트 상승한 4129.68로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4130선에서 출발해 오전 장중 한때 4140선을 웃돌았지만, 개인 매도 물량이 출회되며 상승 폭이 일부 축소됐다. 수급 측면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수가 지수 하단을 지지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1조7000억원대, 기관은 3000억원대 순매수를 기록하며 상승 흐름을 주도했다. 반면 개인은 2조원 넘는 순매도를 보이며 차익 실현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최근 국내 증시는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반등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26일의 경우 삼성전자는 11만70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SK하이닉스 역시 동반 강세를 보였다. 다만 지수 상승 폭에 비해 상승 종목 수는 제한적이었다. 반도체 업종을 제외하면 코스피 전반의 체감 온도는 여전히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말 랠리라기보다는 '업종 편중형 반등'에 가깝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시장 환경은 연말로 갈수록 복합적으로 얽히고 있다. 미국에서는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며 경기 연착륙 기대를 자극하고 있다. 반면 소비 지표 둔화 신호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는 여전히 시장의 경계 변수다. 여기에 연방정부 예산안 논의, 오는 31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일본은행(BOJ) 금융정책회의까지 겹치며 정책 이벤트 리스크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연말 증시의 가장 큰 변화는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1480원대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지난 26일 1440원대 후반까지 내려왔고, 장중에는 1440원선을 하회하기도 했다. 정부와 당국의 시장 안정의지, 연말 달러 수요 완화가 맞물리며 환율 변동성 자체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환율 안정은 외국인 수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환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위험 비용'이다. 변동성이 낮아질수록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접근 장벽은 낮아진다. 최근 환율 하락의 경우 급격한 스파이크가 아닌 방향성을 동반한 조정 국면으로, 외국인 입장에서는 환율 변동성 부담이 완화된 흐름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최근 외국인 자금은 다시 국내 증시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코스피 현물 기준으로 4거래일 연속 순매수가 이어졌고, K200 선물 시장에서도 매수 흐름이 지속됐다. 당분간 원화가 약세(환율 상승)로 가기보다는, 최소한 급격히 약해지기는 어려운 환경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원화 강세 흐름은 중장기적인 외국인 순매수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다. 정해창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 재개 소식과 함께 연초 결제 수요가 유입되고, 정부 정책에 따른 2026년 해외 이전자본의 환류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며 “정부의 강한 의지를 감안하면 당분간 원화 약세 전망이 힘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지수 전체가 아니라 반도체로 집중되는 분위기다. 전기전자 업종으로만 1조원 넘는 외국인 순매수가 유입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외국인 수급의 중심에 섰다. 이는 환율 안정이 '전면적 위험 선호 회복'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실적 가시성이 높은 대형 수출주에 한정된 선택적 복귀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글로벌 반도체 업황 기대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론을 비롯한 메모리 업체 주가가 강세를 보이며 HBM 가격 인상 기대가 재점화됐다. 메모리 업황이 바닥을 통과하고 있다는 신호가 쌓이면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대한 기대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연초 예정된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잠정 실적 발표를 앞두고, 선제적 포지셔닝 성격의 매수도 유입되는 모습이다. 문제는 반도체 강세가 곧바로 지수 전반의 추세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코스닥 시장은 여전히 외국인 매도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차전지, 로봇 등 중소형 성장주는 연말 차익 실현 압력이 이어지고 있고, 거래대금 역시 눈에 띄게 줄었다는 평가다. 연말 랠리가 대형주 중심으로만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내부의 온도 차는 여전히 크다. 연말과 연초를 가르는 또 하나의 변수는 '실적 시즌'이 될 전망이다. 오는 1월부터 본격화되는 금융 업종 실적 발표를 시작으로, 미국과 한국 모두 기업 실적에 대한 시장의 시선이 다시 실적으로 돌아간다. 1월 초 예정된 'CES 2026' 역시 단기 모멘텀으로는 유효하지만, 방향성을 결정짓는 변수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모빌리티 등 기술 트렌드가 다시 한번 부각될 수는 있지만,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기술 비전보다 실질적인 수익성과 실적 연결성이다. 이상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연초 증시는 냉탕과 온탕 사이를 오갈 것"이라며 “월초는 차기 연준 의장 조기 지명 여부, 월말은 FOMC, BOJ 금정위에서의 현 경기 상황 관련 코멘트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CES, JP 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와 같은 산업 이벤트도 존재하나 단기 모멘텀에 불과할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2026 투자노트-➂자동차] “관세는 상수, 성장은 변수”…수익성 승부수는 ‘로봇’

2025년 글로벌 증시는 인공지능(AI) 등 제한된 업종과 테마에 수급이 집중되며 큰 변동성을 겪었다. 2026년에는 산업별 여건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일부 산업은 회복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반면, 어떤 산업은 업황 부담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AI 부터 반도체, 자동차 등 각 섹터가 맞이할 다음 국면과 이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을 조망한다. [편집자주] 2026년을 앞둔 자동차 산업은 다시 한 번 구조적 시험대에 올라섰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전기차(EV) 성장 조정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관세 부담까지 상수로 자리 잡으면서 업황 환경은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 외형 성장보다 수익성 방어 능력이 성과를 좌우하는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자동차 산업은 로봇을 차세대 전략 축으로 끌어들이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자동차: 보편화된 관세 부담, 수익성 방어능력이 관건'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영업 환경이 구조적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관세 부담이 일시적 변수가 아니라 보편화된 비용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핵심 리스크로 지목했다. 현재 완성차 업체들은 관세를 전제로 가격 정책과 생산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관세 인상 가능성이 불확실성 요인에 가까웠다. 관세 부담을 판매가에 전가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완성차와 부품사 모두 수익성 압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신평은 관세율이 15% 수준으로 낮아졌어도, 판가 인상에는 시차가 불가피하고 일부 차종에서는 인센티브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한 물량 방어 전략까지 감안하면,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저하를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한신평은 현대차그룹의 관세 관련 비용을 2025년 약 7조3000억원, 2026년 약 5조8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비용 부담이 점진적으로 완화되더라도, 관세가 구조적 비용 요인으로 작용하는 한 수익성 방어 부담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자동차 산업의 핵심 변수는 관세 환경 변화 자체보다, 이를 흡수할 수 있는 가격 결정력과 원가 구조 개선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신평은 EV 시장 성장 둔화 역시 부담 요인으로 꼽았다.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선제적으로 투자한 설비와 연구개발 비용이 아직 충분한 수익으로 회수되지 못한 상황에서, EV 수요 조정은 고정비 부담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이제는 자동차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판매 증가 여부가 아니다. 관세·원가·환율 등 복합 비용 압박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지, 즉 수익성 방어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완성차 상위 업체와 그렇지 못한 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김응관 한신평 선임연구원은 “주요 시장인 미국의 구매환경 저하로 글로벌 완성차 판매 성장세는 둔화될 것"이라며 “글로벌 경기변동, 각국의 보호무역 기조 강화, 판매보조금 관련 정책 변화 등에 따라 추가적인 수요변동성이 내재돼 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전통적인 자동차 사업 환경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자동차 산업이 로봇을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미국이 로봇 산업을 국가 전략 사업으로 육성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산업 전반에도 구조적 변화가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행정부 내에서 로봇 공학과 첨단 제조업을 제조업 재건의 핵심 축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로봇 업체 최고경영자(CEO)들과 연이어 접촉하며, 2026년을 목표로 로봇 산업 촉진을 위한 행정명령을 트럼프 행정부가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로봇공학과 첨단 제조업을 미국 제조업 재건의 핵심 축으로 인식하는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 교통부 역시 로봇공학 전담 태스크포스(TFT) 출범을 검토하는 등, 행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 가능성이 점차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이 같은 기대는 시장에서도 반영됐다. 실제 관련 사실이 알려진 이달 초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 중인 테슬라를 비롯해, 국내에서는 현대차·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HL만도 등 자동차 섹터 내 로봇 연관 종목들이 강세를 보였다. 자동차 산업이 로봇 산업의 직접적인 수혜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로봇 산업은 구동계·센서·제어기 등 자동차 부품과 기술 기반을 상당 부분 공유하는 양산 산업이다. 이에 따라 정책 기대가 로봇 제조사에 국한되지 않고, 완성차와 주요 부품사를 포함한 자동차 섹터 전반으로 확산되며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중국이 공장 자동화와 로봇 공급망에서 이미 주도권을 확보한 상황에서, 미국과 주요국이 이를 전략적으로 견제하려는 움직임은 자동차 산업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로봇 산업이 확대될수록, 대규모 제조 경험과 공급망을 보유한 자동차 산업의 전략적 가치도 함께 부각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장문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로봇 공급망 구축에 EV 밸류체인이 원가 경쟁력 확보와 양산 가능성 강화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는 점과 로봇 산업이 자동차 등 제조 지능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동차 산업의 전략적 편승이 기대된다"며 “국내 자동차 공급망을 통한 생태계 구축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략적 선택을 뒷받침하는 것은 현대차그룹의 투자 규모다. 현대차그룹은 2026~2030년 국내에 125조원을 투자하며, 이 가운데 약 40%인 50조원 안팎을 AI·로봇 등 미래 신사업에 배정할 계획이다. 투자 대상은 AI,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전동화, 로보틱스, 수소 등 미래 전략 사업 전반에 걸쳐 있다. 스몰캡 전문 독립 리서치 기업 그로쓰리서치는 현대차그룹의 로봇 투자가 자동차 제조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기 위한 중장기 자본 배분 전략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단순한 신사업 발굴 차원이 아니라는 진단이다. 완성차 산업이 성숙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판매 대수 확대만으로는 중장기 성장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러한 선택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로봇을 실제 적용 가능한 산업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드문 사례로 꼽힌다. 로봇 기술을 연구개발 단계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대규모 양산 경험과 글로벌 공급망, 제조 공정에 대한 이해도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서다. 현대차그룹이 로봇 투자와 함께 AI 데이터센터, 로봇 공장, 피지컬 AI 검증 센터 구축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이는 개별 기술 단위의 투자가 아니라, 데이터 축적과 반복 학습을 전제로 한 제조 생태계 전반의 고도화를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로봇을 외부 성장 옵션으로 두기보다, 완성차 사업의 비용 구조와 생산 방식을 바꾸는 내부 전략의 일부로 흡수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AI·로봇 대규모 투자의 목적은 피지컬 AI"라며 “생산가능인구 감소, 노사 갈등, 생산 효율성 제고, 제조원가 절감, 신성장동력 모색 등 복합적인 요인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동차 제조사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며 “두 영역을 함께 추진하는 방식이 구조적인 이점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특징주] 코아스, 이화전기 지분 정리 ‘경영권 분쟁 종료’…↑

관계사 지분 정리에 나선 코아스가 26일 장초반 강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23분 현재 코아스는 전 거래일 대비 5.87% 뛴 3880원에 거래되고 있다. 코아스는 이날 보유 중이던 이화전기 주식을 양도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이화그룹과 체결한 경영권 분쟁 종결 및 전략적 협력 합의의 실효적 이행이다. 주식 양도와 관련해 회사 측은 양사 모두에게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아스 관계자는 “그간 이화전기 및 이트론 지분 보유와 관련해 시장의 다양한 우려에 직면해 온 것이 사실이나, 이번 지분 양도를 통해 양사 간 분쟁이 실질적으로 종결되며 지분 보유에 따른 리스크 요인이 상당 부분 정리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관계사 지분 정리를 계기로 재무구조와 회계 투명성이 한층 개선돼 안정적인 경영 환경을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2026 투자노트-➁반도체] 메모리는 확장, 양극화는 심화…투자 옥석 가려야

2025년 글로벌 증시는 인공지능(AI) 등 제한된 업종과 테마에 수급이 집중되며 큰 변동성을 겪었다. 2026년에는 산업별 여건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일부 산업은 회복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반면, 어떤 산업은 업황 부담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AI 부터 반도체, 자동차 등 각 섹터가 맞이할 다음 국면과 이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을 조망한다. [편집자주] 반도체 산업은 2026년 또 한 번의 분기점에 서게 될 전망이다. 업황 전반은 긴 조정 국면을 지나 개선 흐름으로 돌아섰지만, 산업 내부의 온도차는 오히려 더 뚜렷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 가운데 메모리반도체는 전체 업황의 방향성을 가늠할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2023년은 수요 급감과 재고 누적이 겹치며 DRAM과 NAND 가격이 급락한 시기였다. 주요 메모리 업체들은 대규모 감산에 나섰고, 업계 전반이 역사적 불황을 겪었다. 2024년 들어 가격 반등과 재고 정상화가 진행됐지만, 이는 전년 손실을 만회하는 단계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025년에 들어서며 흐름은 달라졌다. 수급 정상화가 가시화되고, DRAM과 NAND 가격 회복이 본격화되면서 실적 개선의 체감도가 높아졌다. 특히 공급 측에서 과거와 같은 공격적인 증설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업황 반등의 지속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은 구체적인 투자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2026년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의 설비투자(CAPEX)가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는 무차별적인 증설이 아니라 공정 전환과 고부가 제품 중심의 선별적 투자에 가깝다는 진단이다. 미래에셋증권이 예상한 2026년 DRAM CAPEX는 약 660억달러(98조원)로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신규 웨이퍼 투입에 따른 실질 공급 증가는 한 자릿수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NAND 역시 CAPEX 증가율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며, 공급 부담은 과거 대비 크게 완화된 구조다. 물량 중심의 증설 경쟁이 아닌, 수익성 개선을 전제로 한 질적 성장 국면으로 업황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메모리 업황 확장의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2026년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실적이 수급 개선과 가격 반등 효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구간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DRAM 가격 상승과 고부가 제품 중심의 믹스 개선이 동시에 나타나며, 메모리 부문의 수익성이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 역시 HBM을 중심으로 한 고부가 DRAM 비중 확대에 힘입어 높은 이익률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됐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업황 반등 국면에서 차별화된 수익 구조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SK하이닉스가 업황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김정훈 한신평 수석연구원은 “견조한 AI 수요 및 엔비디아에 대한 HBM4 공급 협의 완료 등 AI 제품 경쟁력을 기반으로 매우 우수한 영업 실적 달성이 예상된다"며 “영업 현금창출 확대 전망과 설비투자 규모를 매출액의 30% 중반 수준으로 유지하는 투자 정책을 감안할 시, 재무 부담 완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업황 개선이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 전반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기업평가는 메모리 업황 확장 국면에서 오히려 국내 반도체 산업 내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한기평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구조적 열위에 놓여 있다. 후공정 외주생산(OSAT), 기판, 장비 업체들은 소수 대기업 고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글로벌 고객 기반과 전략적 협업 구조도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메모리 업황 회복의 수혜가 밸류체인 전반으로 확산되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또한 국내 업체들은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 여력에서도 글로벌 선도 기업 대비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한기평은 특히 기판과 OSAT 부문에서 R&D 투자 비중이 글로벌 평균을 하회하며, 이는 중장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메모리 업황이 확장 국면으로 이동할수록 이러한 양극화는 오히려 더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대형 메모리 업체들은 기술 전환과 제품 고도화를 통해 수익성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반면 밸류체인 하단에 위치한 기업들은 제한된 고객 기반과 투자 여력으로 회복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일례로 종합 OSAT 기업인 하나마이크론은 중장기 사업 안정성 측면에서 큰 도전에 직면했다. 최근 차세대 반도체 공정이 전환되면서 주요 전방 고객사들이 패키징 기술을 내재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마이크론의 향후 입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기술 격차 확대에 따른 고객사 이탈 위험도 현실화될 우려가 있다. 하나마이크론의 최근 3개년 평균 R&D 비중은 매출액 대비 약 3% 수준으로 글로벌 주요 OSAT 평균을 하회하고 있다. 여기에 2021년 말 2804억원이었던 순차입금은 지난해 말 9858억원으로 3배 이상 폭증해 부담이 확대됐다. 베트남 공장 증설 등 연평균 3000억원을 상회하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집행하면서다. 하나마이크론의 영업현금창출력은 메모리 수요 확대로 개선되는 추세다. 다만 최근 급격히 가중된 재무 부담은 향후 첨단 패키징 기술 개발과 글로벌 생산 기반 확장을 위한 투자 여력을 지속적으로 제한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네패스는 매출의 약 80%가 삼성전자에 집중된 거래 구조를 보유하고 있다. 주요 생산 거점 역시 국내에 한정돼 있어 글로벌 고객 기반 확대에 제약이 있다. 삼성전자의 첨단 패키징 기술 내재화 기조는 AI 관련 포트폴리오 확장 측면에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주력 고객의 내재화가 심화될 경우 고부가 패키징 물량 확보와 신규 AI 제품 수주가 제한될 수 있어서다. 과거 FO-PLP 설비 투자 이후 공정 안정화 지연과 거래처 이탈로 영업현금창출력도 약화됐다. 이에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정기평가에서 기술경쟁력 항목을 BBB에서 BB로 하향 조정하고, 신용등급을 BBB-(부정적)에서 BB+(안정적)로 낮췄다. 기판 업체 이수페타시스는 고다층기판(MLB)에 집중된 단일 제품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이 구조적 리스크로 지목된다. AI 서버향 수요가 고성장 초기 국면에 있는 만큼 단기 성장성은 유효하다. 하지만 AI 인프라 투자 기조가 둔화되거나 경쟁사들의 신규 진입과 공급능력 확대가 본격화될 경우 실적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주요 매출처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네트워크 장비업체에 집중돼 있다. 이는 AI 서버 투자 피크아웃이나 네트워크 장비 세대교체 지연 시 매출의 단기 변동 폭이 커질 수 있어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박원우 한기평 선임연구원은 “OSAT·기판·장비 기업들은 AI 반도체 중심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높아진 기술 난이도, 수율 요구, 제품믹스 고도화에 대응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안정적인 R&D 투자 및 중장기적 CAPEX 집행 여력, 글로벌 고객사와의 조기 공동개발 구조를 확보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액트 젬백스 주주연대 “1조원 자금 조달 찬성…‘투명한 소통’과 ‘책임 있는 로드맵’ 전제”

소액주주 연대 플랫폼 'Act(액트)'를 중심으로 결집한 젬백스앤카엘(이하 젬백스) 주주들이 회사의 대규모 자금 조달 계획에 지지를 보내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투명한 소통과 사회적 책무 이행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액트 젬백스 주주연대(이하 주주연대)는 23일 열리는 젬백스 제28기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회사 경영진에게 '사채 발행 한도 1조원 증액' 안건에 대한 찬성 의사와 함께 주주들의 요구사항을 담은 주주서한에 대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고 22일 밝혔다. 젬백스는 이번 임시주총에서 정관 변경(제19조, 제20조)을 통해 전환사채(CB) 및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한도를 기존 2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안건을 다룬다. 통상적으로 대규모 자금 조달 한도 증액은 주주가치 희석 우려로 인해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사기 쉽지만, 주주연대는 이를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적인 실탄 확보'로 규정하고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주주연대는 이번 찬성이 맹목적인 신뢰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서한을 통해 “주주들이 부여하는 1조원이라는 '자금 조달의 선택권'은 단순한 재무적 수단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전제 조건으로는 ▲임상 진행 상황 ▲자금 조달의 목적과 구조 ▲중장기 전략 등을 가감 없이 공유하는 '투명하고 정기적인 소통'을 내걸었다. 특히 주주연대는 바이오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주주연대는 “GV1001은 단순한 파이프라인을 넘어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희망"이라며, 조속한 상업화를 위한 책임 있는 로드맵을 마련해 줄 것을 경영진에게 주문했다. 주주연대 관계자는 “이번 주주서한은 회사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금력을 지원하되, 그 과정에서 소액주주를 배제하지 말고 동반자로 인정하라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이상목 액트 대표는 “소액주주연대가 젬백스에 제시한 비전이 실현될 때까지 액트는 든든한 지원군이자 책임 있는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젬백스 23일 오전 9시 대전상공회의소에서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2026투자노트-①AI] 성장 스토리→숫자…ROI 증명의 시간

2025년 글로벌 증시는 인공지능(AI) 등 제한된 업종과 테마에 수급이 집중되며 큰 변동성을 겪었다. 2026년에는 산업별 여건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일부 산업은 회복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반면, 어떤 산업은 업황 부담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AI 부터 반도체, 자동차 등 각 섹터가 맞이할 다음 국면과 이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을 조망한다. [편집자주] 글로벌 주식시장에서 AI를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연초만 하더라도 AI 투자가 확대된다는 사실 자체가 밸류에이션을 지탱하는 논리로 작용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의 질문은 한 단계 앞서 있다. AI 투자가 지속되느냐가 아니라, 그 투자가 언제부터 의미 있는 현금흐름으로 전환될 수 있느냐다. 최근 오라클과 브로드컴 실적 발표 이후 나타난 글로벌 주가 조정은 AI 수요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보기는 어렵다. 두 기업 모두 AI 관련 매출 성장세는 유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라클의 지난 9~11월 총매출은 161억달러(한화 약 24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성장의 중심에는 클라우드 부문이 있었다. 클라우드 매출은 80억달러(12조원)로 34% 늘었고, 클라우드 인프라(IaaS) 매출도 68% 급증했다. 브로드컴의 지난 4분기 매출도 180억1500(27조원)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했다. 역시 AI 관련 부문이 실적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같은 기간 AI 반도체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74% 성장하며 전체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 글로벌 주가 조정은 총자본수익률(투자수익률·ROI)의 실현 시점이 예상보다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기인했다. 이제 시장은 막연한 성장 스토리보다 ROI가 가시화되는 '속도'를 재검증하는 국면에 진입했다. AI 수요의 상징이 엔비디아라면, 오라클과 브로드컴은 그 투자가 실제 집행되는 실무 구조를 대변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설비투자 추이는 국내 반도체와 장비·소재 기업들의 실적 경로를 결정짓는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라클과 브로드컴 실적 이후 시장이 보인 반응은 AI 수요 자체에 대한 전면 부정이 아니라, ROI 실현 시점이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신호에 대한 재평가"라며 “AI 투자가 과도하다는 판단이라기보다는 투자 회수의 시간표를 다시 쓰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투자 확대만으로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는 단계는 지났다는 평가다. AI 사업이 기존의 고마진 칩·IP 중심 구조에서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시스템 통합 등 인프라 구축형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단기 수익성이 불가피하게 희석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노 연구원은 “브로드컴의 경우 AI 매출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고객 맞춤형 설계와 네트워크, 고급 패키징 등 레벨 통합이 늘어나면서 단기적으로 마진 희석이 불가피한 구조"라며 “이는 수요 둔화 신호라기보다 AI 사업 구조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AI 투자의 성격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AI는 더 이상 선택적 기술 도입이 아니라, 기업과 국가의 구조를 전제로 다시 짜는 필수 인프라에 가깝다는 인식이다. 투자 중단이나 회귀는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초래한다는 분석이다. 한 번 도입되면 업무 프로세스와 IT 인프라, 인력 구조까지 AI 중심으로 재편되기 때문이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AI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사회·경제 시스템 재설계를 동반하는 필수 인프라 성격"이라며 “기업에 AI가 도입되면 업무 프로세스와 IT 인프라, 인력 구조까지 AI 전제로 재편되기 때문에 과거 방식으로 되돌리는 것은 비용이 과도하게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때문에 AI 투자는 한 번 시작되면 후퇴가 어려운 비가역적 투자"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중국은 AI를 성장 전략이자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세제 정책을 통해 데이터센터와 AI 설비 투자를 촉진하고 있고, 중국 역시 제조 자동화와 로봇 도입을 통해 AI 활용 범위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단기 수익성과 무관하게 투자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속도다. 생성형 AI와 물리적 AI 모두 초기에는 비용이 먼저 발생하고, 생산성 개선은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구조를 가진다. 기술 확산이 일정 임계점을 넘은 이후에야 생산성과 수익성 기여가 본격화되는 만큼, 투자 효과가 실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시장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한국 주식시장은 또 다른 변수에 노출돼 있다. 한국은 AI 투자 사이클에서 최종 수혜자가 아니라 중간재 공급자에 가깝다. 글로벌 빅테크의 투자 결정은 반도체 출하량과 가동률, 실적에 직결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투자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은 외국인 수급과 변동성을 통해 더 크게 증폭된다. 노 연구원은 “한국 주식시장은 AI 단일 변수로 움직이기보다 달러, 금리, 변동성을 매개로 증폭되는 구조"라며 “미국에서 AI 투자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글로벌 자금은 할인율을 재평가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은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외국인 베타(시장 전체 가격변동이 개별 증권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화) 축소 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투자 논쟁과는 별개로, AI 확산의 방향 자체는 이미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내년을 기점으로 AI가 소프트웨어 중심의 초기 상업화 국면을 넘어, 산업 전반으로 스며드는 구조적 확산 단계에 진입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단기적인 투자 속도 조절과는 무관하게, AI가 실제 산업 공정과 실물 경제에 결합되는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운 방향이라는 판단이다. 대신증권은 내년 1월6일부터 9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예정인 'CES 2026'을 계기로 AI 상업화 경로가 보다 선명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에이전틱 AI가 사무·서비스 영역의 자동화를 고도화하는 동시에, 로보틱스·모빌리티·제조 자동화로 대표되는 피지컬 AI가 본격적인 산업 적용 단계로 확장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기술 논쟁을 넘어 실질적인 생산성 개선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제조업과 물류, 건설, 헬스케어 등 노동 집약적 산업에서 AI 적용이 확대되면서다. 정해창 대신증권 연구원은 “2026년은 각국의 AI 규제 프레임워크 확립과 AI 생태계 성장으로 AI를 접목한 더 많은 서비스와 제품들이 상용화될 것"이라며 “어플리케이션의 확장으로 더 높은 성장 잠재력과 시장성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코스닥 울리는 금융-㊦]SC로위 ‘韓 부동산 타깃’, 신한·키움도 합세…집값 안정화에 ‘찬물’

홍콩계 투자사 SC Lowy(이하 SC로위)는 수년 전, 국내 코스닥 기업을 자금 조달의 '도관'으로 활용한 거래 구조로 '기존의 금융 제도를 형해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신한캐피탈, 키움투자자산운용 등 국내 대형 금융사들과 손잡고 부동산을 중심으로 다시 광폭 행보에 나서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논란의 중심에 섰던 SC로위와 협업에 나선 국내 대형 금융사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곱지만은 않다. [편집자주] 코스닥 기업들을 울렸던 SC로위가 최근 한국 금융시장 내 활동 반경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특히 국내 대형 금융사들과의 협업을 앞세워 보폭을 넓히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협업 자체보다 '이 자금이 결국 어디로 흘러가느냐'에 시선을 두고 있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C로위는 현재 신한캐피탈과 함께 1000억원 규모의 한국 전용 대출 펀드(론펀드)를 조성 중이다. 국내 기업과 다양한 산업을 대상으로 한 중금리 담보대출을 강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신한캐피탈 관계자는 해당 펀드 투자 방향에 대해 “국내기업, 부동산, 구조화 등 크레딧 투자를 주요 목적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금융과 구조화 금융을 포괄하는 크레딧 투자라는 설명이지만, 부동산 역시 주요 투자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서 올해 2월 키움투자자산운용 역시 SC로위와 '부동산·기업금융 투자 협력'을 골자로 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당시 키움투자자산운용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채권(NPL), 기업금융 전반을 아우르는 협업이라고 밝혔다. SC로위의 이런 행보를 바라보는 시장의 관심은 '파트너십'이 아니라 '자금의 최종 목적지'에 있다. SC로위의 최근 투자 행보를 종합하면, 기업금융보다 부동산 크레딧으로 자금이 쏠릴 가능성이 있다. SC로위는 지난 7월 서울 강남 고급 아파트 단지 개발 사업과 관련해 2억5000만 달러(약 3500억원) 규모의 재고금융 거래를 완료했다. 단일 딜로도 국내 부동산 금융 시장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규모다. SC로위의 한국 부동산 시장에 대한 베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SC로위는 국내 부동산 자산을 주요 투자 대상으로 하는 사모 크레딧 펀드를 조성했다. 해당 펀드에는 중동 최대 국부펀드 가운데 하나인 아부다비투자청(ADIA)의 100% 자회사가 출자자로 참여했다. 국내 시행사와 시공사, 금융사를 대상으로 맞춤형 부동산 크레딧 금융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요 전략은 수도권 등 핵심 지역의 주거용·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선순위 담보대출이다. 당시 SC로위 관계자는 “한국 사모 크레딧 전략은 한국 부동산 시장에 혁신적인 자금조달 솔루션을 선사한다"며 “이 펀드는 한국 부동산 섹터에서의 늘어나는 사모 크레딧 수요에 대응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을 놓고 시장에서는 “SC로위가 한국을 부동산 크레딧 시장으로 본격 공략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부동산 침체는 '저점 투자' 시점으로 읽힌다. 문제는 여기에 국내 대형 금융사들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계 운용사의 투자 판단은 수익 극대화가 최우선일 수 있지만, 국내 금융사는 책임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SC로위야 '돈 넣고 돈 벌면 그만인' 외국계 운용사지만, 국내 대표 금융그룹은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국내 금융사 자금은 단순한 투자 자금이 아니라, 가계·기업 금융과 맞닿아 있는 공적 성격의 자금이라는 점에서다. 이런 자금이 부동산 크레딧으로 집중될 경우, 현 정부가 추진 중인 부동산 시장 안정화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는 가계부채 관리와 주택 가격 안정화를 위해 각종 규제와 정책을 동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권 투자금이 부동산으로 유입될 경우, 정책 효과를 상쇄하거나 가격을 왜곡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특히 고급 주거시설이나 대규모 개발 사업에 대한 크레딧 공급이 확대되면, 자산 가격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 공공성 논란도 제기된다. 자금이 부동산 크레딧으로 쏠릴 경우, 금융사는 기업들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매개체가 되는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셈이다. 또한 담보 가치에 기대 자금을 회수하는 쪽으로 흐름이 굳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금융 자금은 기업 경쟁력 강화나 산업 고도화로 이어지기보다, 기존 자산 가격을 떠받치는 역할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SC로위의 과거 이력 역시 이런 시선을 강화하는 요인이다. 본지의 보도에서 살펴본 것처럼, SC로위는 과거 코스닥 상장 기업들과의 거래에서 위험을 기업에만 전가하고, 자신은 확정 수익만 회수한 구조로 논란을 빚었다. 시장에서는 “과거 기업금융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구조가, 형태만 바꿔 부동산 금융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물론 신한캐피탈과 키움투자자산운용 모두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금융 거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자금이 어디로, 어떤 구조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금융의 역할과 파급력은 전혀 달라진다. 캐피탈과 자산운용사가 은행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인허가와 자본시장 규제, 금융 시스템에 대한 공적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영위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특히 대형 금융그룹 계열사인 경우, 사실상 '공적 신뢰를 등에 업은 민간 금융'이라는 성격을 가진다. 이는 자금 운용의 방향에 대해 시장과 정책 당국의 시선이 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이유로 꼽힌다. 한 사모펀드 고위 관계자는 “SC로위가 조성하는 자금이 기업의 유동성에 활력을 불어 넣어는 역할을 얼마나 할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데, 여러 특성을 보면 부동산 자금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IMF때 론스타처럼 외국계 자본은 한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든 수익을 내고 빠져나가는 것이 목적일 수 있다"며 “그들에게 금융의 공공성을 요구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국내 대형 금융그룹 계열사들이 같은 구조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국내 금융사가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을 곱게 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