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심 해킹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SKT가 위약금 면제 여부에 대해서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회와 고객들은 이번 유심 해킹 사태의 유책이 명백하게 SKT에 있는 만큼 약관에 따라 위약금 없이 계약을 철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SKT 측은 이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진행한 SKT 유심 해킹 사고와 관련 청문회에서 유영상 SKT 대표와 류정환 부사장은 위약금 면제에 대한 질의에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을 전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 등 여러 의원들은 “SKT 약관에도 회사의 귀책이 있다면 위약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며 답변을 재차 요구했지만, SKT 측은 입장을 끝내 바꾸지 않았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는 하지만 위약금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입장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회사에 타격을 크게 입힐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동통신 계약에서 위약금은 고객이 약정 기간을 채우지 않고 중도 해지할 경우 통신사가 받는 계약상 수익 항목이다. 고객은 단말기 할인이나 요금 할인 등 혜택을 받는 대신 일정 기간 계약을 유지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간 받은 혜택을 통신사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 그 금액이 위약금이다. SKT 이용약관 제44조 1항 4호는 '회사의 귀책사유로 인해 계약이 해지될 경우 위약금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킹으로 인해 고객들이 통신서비스 이용에 불안을 느끼고 해지에 나설 경우, 이는 SKT 귀책에 따른 해지로 볼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러나 SKT는 위약금 면제만은 쉽게 약속하지 못하는 중이다. 고객 이탈 자체도 큰 타격이지만, 위약금까지 포기할 경우 손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SKT 전체 무선 가입자 수 약 2300만명을 기준으로 위약금 미수 손실을 시나리오별로 추산한 결과, 이탈률이 1%에 불과해도 평균 위약금을 10만원으로 가정하면 230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다. 이는 전체 가입자 수의 1%인 약 23만명이 해지했을 때, 고객 1인당 평균 위약금 10만원이 회수되지 않는다는 단순 산식(23만 명 × 10만원)에 따른 결과다. 같은 방식으로 위약금을 20만원 또는 30만원으로 가정하면 손실 규모는 각각 460억원, 690억원으로 확대된다. 단 1%의 이탈률도 통신사에 수백억 원의 예정 수익 손실이 생긴다. 이탈률이 올라도 손실은 더 커진다. 이탈율이 3%로 높아질 경우 손실액은 위약금에 따라 각각 690억원(위약금 10만원), 1380억원(위약금 20만원), 2070억원(위약금 30만원)으로 뛴다. 5% 이탈 시에는 최대 3450억원, 10%로 확대될 경우 최대 6900억원까지 손실이 불어날 수 있다. 이탈률이 25%에 이르면 잠재적 수익 손실 규모는 1조7250억원, 50%까지 치솟을 경우 최대 3조4500억원에 이를 수 있다. 고객 한 명당 평균 위약금이 누적되면서 단기 손익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통신사가 고객 유치를 위해 사전에 제공한 단말기 보조금이나 요금 할인 혜택을 계약 기간 내에 회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회계적으로 위약금은 고객의 약정 불이행 시 발생할 수 있는 계약상 수익 항목으로, 실제로는 단말기 보조금 등 선투자 비용을 보전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고객이 이를 중도 해지하면서 위약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해당 수익은 실현되지 않으며 자산에서 제거되거나 대손상각 등의 회계 처리가 이뤄질 수 있다. 그 결과 손익계산서상 수익 감소 또는 비용 증가의 형태로 손실이 반영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며칠간 SKT에서 경쟁사로 이동한 고객 수는 수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이 지속될 경우 수백만 명 단위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T가 위약금을 포기하기 어려운 배경에는 이런 수치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이를 포기하면 고정비 손실이 발생하고,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 계약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약금 청구를 강행할 경우 여론 악화와 함께 고객 이탈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심지어 지난해 단통법 개정으로 경쟁 이동통신사의 위약금 대납도 가능한 상황이다. 한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약관에 따라 위약금 면제 조치를 진행하는게 맞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