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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 민주 “상법 개정 재발의”…재계부터 손본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6.06 15:00

주식시장TF “李대통령 경제민주화 공약” 조속처리 예고
집중투표제·이사충실의무 등 명시 지배구조 개편 불가피
“소수주주 보호”에 “지배주주 경영권 방어 취약” 우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여당이 상법 개정안을 재발의하며, 기업 지배구조 개편이 새 정부의 첫 경제 입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 등 핵심 조항을 포함한 이번 개정안은 국내 기업 이사회 구조에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수주주 보호라는 명분이 강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5일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주민·김남근 의원 등 민주당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TF는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상법 개정을 약속했다"며 “선거를 통해 확인된 민의를 반영해 상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강조한 경제민주화 공약의 핵심 과제를 제도화하는 작업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법안 내용이 상당 부분 복원됐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은 자본시장 신뢰 회복과 기업 투명성 제고를 위한 첫 단추"라며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예고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주주 측 이사 선임 본격화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집중투표제 의무화 △이사의 충실의무 명시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3% 룰 유지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명칭 변경 △전자주주총회 제도화 등이다. 법 시행 즉시 적용되는 구조로 설계된 만큼, 기업들은 정관 정비와 이사회 운영방식 재설계라는 부담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인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투표 방식의 근본을 흔드는 제도다.


기존에는 주주들이 각 이사 후보에게 지분 비율에 따라 의결권을 분산 행사하고, 최다 득표 순으로 이사를 선출했다. 그러나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보유한 의결권 전부를 특정 후보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한다.


이 방식은 소수주주가 지배구조 개입의 실마리를 갖게 해준다. 예컨대 전체 지분의 5%를 보유한 주주라도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회에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입성시킬 가능성이 생긴다.


기존에는 사실상 지배주주가 모든 이사를 임명하는 구조였다면, 집중투표제는 이사회 구성을 '경쟁의 장'으로 바꾸는 제도다.


현실은 아직 거리가 멀다. 지난 5월 말 기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고 보고한 코스피 상장사는 총 359개 중 단 15곳뿐이었다. 이들 보고서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공시가 의무화된 기업지배구조보고서로, 핵심지표 준수 여부가 명시된다.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를 공시한 15곳은 △KT △KT&G △광주신세계 △세진중공업 △한화오션 △SK스퀘어 △한국가스공사 △SBS △강원랜드 △POSCO △GKL △SK텔레콤 △한국전력공사 △한전기술 △지역난방공사 등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정관상 '배제하지 않았다'는 수준에 그치며, 실제 제도를 활용해 이사를 선임한 기업은 KT&G 한 곳뿐이다. 더욱이 KT&G조차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대표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정관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결국 집중투표제는 제도적 존재는 있으나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장식'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매년 열리는 정기주총이 경영권 분쟁의 장으로 바뀔 가능성도 제기된다.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국민연금이나 행동주의 펀드, 외국계 기관투자자 등이 결집해 특정 후보를 밀어낼 수 있다. 기존처럼 지배주주가 과반 이사 자리를 장악하기 어려워지고, 이사회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협의체로 바뀌게 된다.


이사회 구성에 예측불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기업들은 사외이사 후보 사전 조율, 위임장 확보, 우호지분 결집 등 경영권 방어 전략 수립에 나설 수밖에 없다. 상장사 정기주총은 그 자체로 '경영 이벤트'가 되는 셈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민사책임 현실화 우려

상법 개정의 핵심인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 부분도 재계가 우려하는 내용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는 상법상 이사의 기본 책무다. 기존 법령에서도 이사는 '회사에 대한 선관주의의무'를 부담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그 대상을 '회사 및 모든 주주'로 명확히 확장했다. 이는 법적 책임의 범위를 넓히는 조항이다.


실제 적용될 경우, 이사는 자신의 의사결정이 총수나 지배주주에게 유리하더라도 다른 주주에게 불리하다면 사후적으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기업을 위한 결정'이더라도 소수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는 평가가 내려지면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이사회 회의록, 이해상충 여부 사전 점검, 법무팀 검토 절차 강화 등 이사회 운영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사직 자체가 부담스러워지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입법화될 경우 상장사의 이사회 운영은 본질적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집중투표제가 시행되면, 사외이사 선임에서 기존처럼 대주주 중심으로 후보군을 구성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소수주주 추천 이사 진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사회 내 의견 구도도 다극화된다.


또 충실의무 조항에 따라 이사의 판단은 이후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사 개개인이 이익충돌 여부나 주주이익 침해 여부를 판단하며 법적 책임을 염두에 두고 의사결정에 나서야 한다. 경영판단의 위축, 이사회 전문성 저하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지배 주주의 '지분'보다 '이사회' 중심으로 권력 이동

이밖에 이번 개정안은 기업 운영에 실질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코로나19 이후 도입된 비대면 주총 환경을 제도적으로 정비한 '전자주주총회' 규정은 향후 기업의 IR 활동과 주주 참여 방식에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또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명칭 변경하는 조항은 단순 용어 변경을 넘어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를 제도적으로 강조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감시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성이 읽히는 대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기업 지배구조 개편의 방향은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낮을 경우 이사회를 통해서 경영권을 확보하거나 방어할 수 없는 구조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결국 경영 전략은 주주총회와 이사회 중심으로 이동하며, 실질 지배력 유지를 위한 법률·정관 정비, 사외이사 후보 전략, 공시·보고 체계 강화 등 전방위 재설계가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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