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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의원입법과 수권정당의 길

국회는 법을 만든다. 법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국회의원이 발의해서 법을 만드는 경우가 있고 행정부가 발의한 법을 국회에서 의결하는 정부입법의 방식이 있다. 법률안에 대하여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치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행정부가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전영향평가, 다른 부처와 의견조율, 규제심사 등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완성도가 높다. 반면 의원 입법은 국회의원 몇 명이 동의해주면 이 모든 과정이 수월하게 넘어간다. 언제부터인가 의원 입법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우선 비교적 간단한 법제정과정으로 인하여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용어의 정의가 불충분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거나, 행정적으로 이행하기 어려운 법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국회의원은 법안을 만들었다는 실적은 얻을 수 있으나 이후 이행에 어려움을 낳는다. 둘째로는 국회가 만들지 않아야 할 법안이 탄생한다. 어떤 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중요한 사항은 법으로 제정되지만 '어떻게 할 것이냐'하는 시행에 관한 사항은 정부의 시행령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행정부가 해야 할 것까지 법으로 만들어 놓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법을 의뢰한 누군가가 있는 것으로 의심이 되기도 한다. 세 번째로는 이미 있는 법안의 조항 한 두 개를 바꾸면 되는 사항을 독립법안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른바 법질서가 파괴된다. 관련한 법들이 모여있어도 어려운데 유사한 법안의 개수만 많아져서 옥신각신하게 된다. 예컨대 소위 '민식이법'은 도로교통법의 일부를 개정함으로써 만들 수 있는 것이지 별도의 법으로 만들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은 법안들이 난립하면서 국민은 그 모든 법을 다 읽어야 되는 상황도 생긴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당리당략 차원의 것들이 법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한시적으로 사용될 것들이고 법리에도 맞지 않은 것인데 전투적 목적으로 생성하는 것이다. 즉 국회가 정치로 해결할 것을 법으로 제정하는 것이다. 법질서가 어지러워짐은 당연하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이러한 의원 입법의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모 의원이 '선발주 금지법'이라는 것을 발의하려고 하였다. 물론 아직까지 발의되진 않았다. 반발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선발주라는 것은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때 허가를 받기 전이라도 미리 주문을 넣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건설일정에 차질이 없게 부품이 조달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법안을 준비했었던 국회의원은 이러한 선발주가 진행되면 안전규제자가 압박을 받게 되어 허가를 쉽게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안전규제자를 관리하면 될 일이지 사업자를 관리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이러한 선발주를 통해서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원전건설 경쟁력의 원천인데 바로 그 부분을 못하도록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법안은 행정부가 입법했다면 법제화의 첫단계도 통과하지 못할 사안이다. 고준위폐기물법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고준위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을 법제화함으로써 장차 고준위폐기물 처분을 위한 부지선정의 투명성과 주민과의 약속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 법률제정의 취지였다. 이 법이 있으면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이 필수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원전 계속운전을 저해하는 독소조항이 슬며시 삽입되었다. 원전 계속운전이 불만이라면 이에 대한 별도의 논의의 장을 만들어서 논의해야 하는데 고준위폐기물 법안을 만들면서 그것과 관련없는 조항을 슬쩍 끼워넣은 셈이 된 것이다. 매우 치졸한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원입법이 그 당이 수권정당이 되는데 도움이 되겠냐는 것이다. 대선후보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적 발전을 노래 부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발의되고 있는 법안은 여전히 탈원전 시대라면 적절한 법안인 것이다. 도무지 공약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수권정당이 돠고 싶다면 이에 버금가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표를 얻으려고 돈이나 뿌리는 포퓰리즘에 더 이상 속을 국민이 아니다. 트집 잡고, 끌어내리고, 국고를 나눠먹고, 평등이니 뭐니 하면서 사회적 생산성과 역동성을 파괴해서는 지지자의 박수는 받을지언정 수권정당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 정범진

[EE칼럼]롤러코스터 타는 봄철 날씨

계절적으로는 봄철이 분명한데, 요즘 외출할 때가 되면 가볍게 입어야할지 아니면 두껍게 입어야 할지 고민이 될 때가 많다. 포근해지는가 싶었던 날씨가 돌변하여 한겨울로 돌아가 버리는가 하면 바로 초여름으로 직행하는 등 종잡을 수 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지난 구정 연휴의 강한 한파 이래로 열흘이 멀다 않고 롤러코스터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그 탓에 중부지방에서는 만개를 앞둔 벚꽃이 강한 비바람에 낙화하면서 따스한 봄기운에 활짝 핀 벚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던 많은 이들은 아쉬움을 삼켜야했다. 특히 일주일 전 주말에 한반도로 유입된 강한 한기의 내습은 강풍과 함께 비와 눈을 동반함으로써 기상청 관측 사상 처음으로 4월 중순의 서울지방 적설을 기록하게 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양쯔강 이남에는 최악의 황사와 모래바람이 불어 닥쳤고 네이멍구 등 중국북부에는 때아닌 폭설과 시속 100km가 넘는 강풍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는 등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봄철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제트류 변동이 빚은 주기적 강수현상 일반적으로 봄철은 기온 등 날씨의 변화가 다른 계절에 비하여 큰데, 그 이유는 매년 이맘 때 한반도 상공을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제트류의 변동에서 찾을 수 있다. 제트류는 남북 간의 온도차에 의해서 중·고위도에 발생하는 강한 편서풍의 흐름인데 제트류가 흐르는 방향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는 각각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위치한다. 제트류는 일반적으로 뱀이 기어가듯이 남북으로 사행하기도 하는데, 파동 모양의 제트류가 봄철에 한반도 상공을 지날 때, 우리나라는 제트류의 남쪽과 북쪽에 번갈아 놓이게 되면서 따뜻한 날씨와 추운 날씨를 잇달아 경험하게 된다. 또한 따뜻한 공기와 찬 공기가 만나는 곳은 대기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비나 눈이 내리기도 하는데, 이에 따라 봄철에는 기온의 변동과 더불어 매우 주기적으로 강수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제트류 파동에서 구불구불하게 남쪽으로 휘어진 부분이 지나치게 늘어나다가 본류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면서 독립된 소용돌이로 분리된 후, 오랫동안 거의 제자리에서 맴도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소용돌이는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고립된 저기압으로 본류인 제트류로부터 분리된 저기압이란 의미로 분리저기압이라고 하며 떨어져 나왔다고 뜻에서 절리저기압이라고도 한다. 이 저기압은 원래 북쪽의 찬 공기로부터 분리되어 남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한랭저기압이라고도 한다. 한랭한 성질을 가진 분리저기압은 많은 경우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저기압의 상층에 위치한 매우 찬 공기가 하강기류를 유도하면서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이로 인해 급격한 대류활동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활발한 대류활동은 천둥과 번개 그리고 강풍 등을 동반한 요란한 강수를 유발시킨다. 지난 주 초에 때늦은 추위와 더불어 적설과 강풍 등 기상이변을 일으킨 주범이 바로 이 분리저기압이다. 심해지는 봄철 변화...원인은 온난화와 PDO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영역에 대한 지난 40년 동안의 봄철 기온의 변동을 조사한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 지역 기온의 일변동이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즉, 이 지역 봄철 기온의 일변화가 과거에 비하여 최근 들어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능성 있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 원인은 우리에게 익숙한 지구온난화이다. 지구의 온난화는 특히 저위도보다는 극지방의 기온을 더 높이는데 이로 인해 중위도 지방에서의 남북 간의 온도차이가 감소하여 제트류가 약해지면서 구불구불한 제트류 파동의 사행진폭이 커지기 때문에 분리저기압이 발생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북극지방의 기온 상승률은 전지구 평균기온 상승률의 4배에 달할 정도 매우 가파르다. 이에 따라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제트류가 한반도에 걸쳐 놓이는 봄철에 기온변동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북태평양의 중앙과 서쪽의 해면온도가 수십 년을 주기로 평년보다 높았다 낮았다를 반복하는 PDO(태평양십년진동)라는 현상이 있는데, 이 현상이 북태평양 기압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2000년대 들어와서 현재까지는 이 지역의 해면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인데 이러한 해면온도의 변화가 이 지역에 기압배치를 변화시켜 봄철 한반도의 기온 변동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기상위성을 활용하여 지구의 곳곳을 탐사하기 시작한 기간이 고작 PDO의 한 주기 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짧기 때문에 관측되는 봄철 기온변동의 증가 원인에 PDO가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를 바탕으로 볼 때 기후변화와 더불어 PDO와 같은 자연적 변동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인다. 에너지 전력망과 여러 산업에 부정적 영향 봄철의 이상 한파나 난동은 여러 산업 분야에 다양한 부정적 영향을 주지만 특히 기후변동에 민감한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개화기나 초기 과실형성기를 맞은 사과, 포도, 복숭아와 같은 과실수에게 이 시기의 이상 한파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혀 수확량 감소와 품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이른 봄의 이상 난동은 식물의 조기 발아나 개화를 유발할 수 있는데 그 후에 기온이 내려가면 싹이나 꽃이 죽어 작물에 큰 피해를 입히게 된다. 봄철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에너지 관점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난방과 냉방 사이의 급격한 전환은 에너지 전력망에 예측 불가능한 부하를 가할 수 있다. 예견된 온난화의 가속화...국가차원의 대응은 제트류 파동에서 남쪽으로 휘어진 부분이 본류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분리저기압이 되지만, 반대로 북쪽으로 휘어진 부분이 떨어져 북상을 하면 분리고기압이 된다. 분리고기압은 분리저기압과 반대로 이상 난동과 가뭄이나 대기오염의 원인이 된다. 문제는 구불구불한 제트류 파동에서 분리저기압이나 고기압이 떨어져 나갈지 여부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떨어져 나갈지 등을 최소한 몇 주 앞서서 예측하는 것은 지구유체의 비선형성과 카오스적 성질 때문에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과학적 근거에 의해 마련된 미래 기후변화 예측 시나리오에 의하면 지구온난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될 것이라 보며 이에 따라 봄철의 기온 변동은 앞으로도 더욱 심해지고 이상 기상현상도 더 빈번해질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개인과 사회 차원의 대비는 물론 국가 차원의 대응과 적응 정책의 적절한 수립과 집행이 필요하다.

[EE칼럼] 트럼프의 화석연료 회귀와 한국의 선택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25년 미국은 다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파리기후협약 탈퇴, 청정에너지 지원 자금 지급 철회, 미국산 석유·가스 개발 및 수출 확대 등,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 강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에 몰입하고 있는 와중에, G7 국가 중 최대 탄소 배출국인 미국이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상황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지형을 다시 흔들고 있다. 그 여파는 곧장 한국에도 미치고 있다. 미국은 무역 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한국에게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석유 수입 확대를 사실상 요구하고 있고, 한국산 자동차·철강에 대한 통상 압박도 강화되었다. 여기에 방위비 협상과 연계된 에너지 수입 요구는 외교와 경제가 맞물린 복합적 협상으로 한국을 몰아넣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 리더십보다는 에너지 자립과 화석연료 수출 중심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에너지 기업들은 한국,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을 마치 고정 수입처처럼 관리하고자 한다. 문제는 안보 측면에서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이 이 흐름에 타지 않을 수도 없지만, 마냥 끌려가기만 한다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은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6월 3일 조기 대선은 한국이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를 가릴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현재 양당의 경선이 진행 중인 가운데, 각 당의 주요 예비 후보들도 저마다의 에너지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공존'을 핵심으로 하는 에너지 믹스 전략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소형모듈원자로(SMR)와 같은 차세대 기술을 신 성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김동연 후보도 탄소중립을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보고 SMR 활용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기도지사로서 그는 재생에너지의 적극 활용은 물론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해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전기·냉난방비 등의 공동주택 관리비를 대폭 절감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국민의힘의 홍준표 후보 역시 SMR 상용화를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SMR 상용화를 서두름으로써 에너지 안보는 물론, 기후위기 대응, 나아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국민의힘의 한동훈 후보는 '성장하는 중산층 시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에너지 물가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한 후보는 전기·가스 요금과 관련해 “에너지 공급을 위해 안전하고 저렴한 전력원인 원전을 새로 건설하고 기존 원전은 계속 운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처럼 각 후보의 접근은 유사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을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 실제 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화석연료를 통한 에너지 수입 압박이 본격화될 경우, 정치적 의지와 외교 전략이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크게 표류할 수도 있다.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안보에만 국한 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곧 산업정책, 무역전략, 외교 노선, 세대 정의와도 연계되는 문제다. 다가오는 6월 대선은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제공한다. 정책의 지속 가능성, 사회적 공감대, 기술 혁신과 시장 유인책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대전환의 구상, 그리고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통합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임은정

[EE칼럼] 태양광 산업에 볕이 들려면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변화를 부정하며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있지만, 올해 미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은 기록적인 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태양광 산업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미 에너지정보국(EIA)은 2024년 미국 전력망에 48.6GW의 발전용량이 추가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중에서 태양광은 30GW가 설치되어 62%를 차지했다. 2025년에도 AI와 데이터센터 등의 영향으로 전년에 비해 약 30% 증가한 63GW의 발전용량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태양광은 32.5GW가 설치될 것으로 전망했다. 태양광 산업의 성장에 있어 가장 큰 위협요소는 공급망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2025년 경제성장 방향을 '전광리'와 AI로 잡았다. 전(電), 광(光), 리(리튬)는 각각 전기차, 태양광, 리튬 배터리를 의미한다. 태양광의 가치사슬은 폴리실리콘, 잉곳, 웨이퍼, 셀, 모듈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은 태양광 가치사슬 모든 분야에서 8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2024년 전 세계 상위 10위 태양광 모듈 공급업체는 모두 중국 기업이다. 중국의 태양광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스정룽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려 했던 스정룽은 행정 착오로 호주에 있는 뉴사우스웨일즈대학으로 진학한다. 여기에서 태양전지 연구의 전설적 존재인 마틴 그린 교수를 만난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2000년에 잠시 귀국한 그는 중국에 태양전지 회사를 차리겠다는 200쪽자리 계획서를 작성했다. 열 달 만에 우시 지방정부로부터 간신히 600만 달러를 받아내어 2001년에 선텍(Suntech)을 설립했다. 스정룽은 태양광의 장벽은 비용이라고 보고, 비싼 기계 대신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하여 비용을 줄였다. 유럽의 발전차액지원제도와 일본의 정부 보조금 덕택에 선텍은 발족한 지 불과 4년 만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다. 중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태양광 가치사슬 틈바구니 속에서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퍼스트솔라가 눈에 띈다. 2024년 모듈 공급량 기준으로 13위에 위치한다. 퍼스트솔라는 박막형 태양광 모듈 생산 기업으로 태양광 모듈 생산 기업 중 유일하게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미국에서 생산한다. 박막형 모듈은 중국이 독과점 중인 폴리실리콘 모듈의 가치사슬과 생산 방식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중국 기업을 거치지 않고서도 태양광 모듈을 생산할 수 있다. 박막형 태양전지는 효율이 낮고, 비용도 높은 편이기에 사장되어 가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효율 개선과 비용 절감을 통해 이제는 중국이 장악한 실리콘 태양전지와 견줄 정도가 되었다. 박막형 태양전지는 실리콘 웨이퍼 대신 유리나 금속기판 위에 반도체 박막을 증착하여 제조한다. 이 전지에 어떤 물질을 증착하느냐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는데, 퍼스트솔라의 박막형 태양전지는 카드뮴 텔루라이드를 태양광 흡수층으로 사용한다. 퍼스트솔라의 사례를 통해 우리 태양광 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중국과 차별화한 한 발 앞선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것이다. 태양전지의 차세대 혁신기술로 '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을 들 수 있다. 2024년 MIT는 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이 이르면 3년 안에 상용화돼 에너지 혁명을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1839년 러시아 우랄산맥에서 발견된 광물인데, 러시아의 광물학자 레브 페로브스키(Lev Perovski)의 이름을 딴 것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박막형의 한 종류이다. 탠덤셀이란 두 종류 이상의 태양전지 셀을 적층한 형태의 태양전지를 말한다. 실리콘 태양전지는 주로 적외선을 이용한다. 페로브스카이트는 가시광선을 광범위하게 흡수하며 적외선과 자외선도 일부 흡수한다. 따라서 기존 실리콘과 페로브스카이트를 결합한 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은 다양한 파장의 빛을 흡수할 수 있어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다. 실리콘 태양전지는 태양광을 전기로 변환시키는 효율이 최대 27%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론적 한계 효율도 30% 미만이다. 이에 비해 페로브스카이트 텐덤셀의 이론적 한계 효율은 44%에 달한다. 상용화는 퍼스트솔라가 앞서고 있는데, 한화큐셀도 따라가고 있다. 현대차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을 개발 중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투명하고 잘 구부러지기 때문에 선루프와 창문 등에 부착하면 자연광은 통과시키면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가시광선으로 충전이 되므로 지하주차장의 LED 조명으로도 충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본은 올해 수립한 제7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하고 공급망을 구축하여 지붕과 건물 벽면 등에 2040년까지 20GW를 설치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기업들의 선전을 기대한다. 박성우

[EE칼럼]전기요금구조와 체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

국제무역 질서가 요동치면서 에너지 시장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러-우 전쟁의 영향으로 3년 전 시작되었던 에너지 가격 급등이 이번에는 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변수가 많아 단기적 현상만으로 예단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뜬금없이 나타나는 외부적 충격은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된다. 그동안 차츰 안정을 찾아가던 에너지 시장과 가격이 또 다시 커다란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동은 국가 에너지소비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만, 전력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크고 복합적이다. 이미 경험한 바와 같이 2018년 이후 kWh당 60∼80원 내외에서 오르내리던 전력시장가격이 2022년 발발한 러-우 전쟁의 여파로 급등하기 시작하더니 그해 연말에는 kWh당 270원 수준까지 폭등하였다. 2023년 4월 이후 150원대로 하락한 후 최근 들어서는 110원대까지 낮아졌다. 2022년부터 급등한 국제유가로 인해 유발된 전력시장가격의 급등이 전기요금에 즉각 반영되지 않아 한전의 적자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한전 적자가 수년간 누적되어 2022년에는 영업적자만 33조 원에 이르렀고, 2021년∼2023년 3년간의 영업적자는 43조원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누적된 한전의 누적적자 또한 2023년에는 200조원에 이르러 심각한 경영상의 우려를 낳게 하였다. 이처럼 누적된 한전의 적자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결국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졌다, 2023년 이후에만 4차례 걸쳐 인상되었으며, 그 결과 한전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되었고 작년에는 약 8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발생하였다. 만약 지금과 같은 유가가 유지된다면 한전 흑자는 올해도 지속되겠지만, 속단하기는 어렵다. 한전의 적자나 흑자 여부는 한전의 구입비용과 판매요금간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 한전은 전력시장에서 전기를 구입하여 송배전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팔고 전기요금을 받는다. 이때 사는 비용이 높거나 파는 요금이 낮으면 적자고 반대면 흑자다. 물론 여기에는 전력시장의 효율성이나 요금구조 문제 등 들여다봐야 할 요인도 적지 않다. 문제는 한전의 구입비용과 전기요금 간에 발생하는 차이를 조정해줘야 하는데 그 시기와 조정폭을 아무도 알 수 없다는데 있다. 전기요금 조정이라는 정책적 불확실성 때문이다. 시장가격은 매시간 변동하고 구입비용 또한 정산과 조정절차를 거치더라도 단기간에 반영되는데 반해, 이를 전기요금으로 조정하기까지는 통상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유가연동제도 있지만 이 또한 제한된 역할에 그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는데는 소비자의 부담, 산업체의 영향 등 여러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들 잠시 뒤로 늦출 뿐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특히, 요금 인상 과정에서 용도별 수준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다 보니 정작 공급원가와는 역행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산업용 요금은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주택용의 60% 수준이었으나, 2020년 이후 급격히 오르기 시작하여 현재 대규모 산업용 요금은 kWh당 183원으로 업무용이나 주택용보다도 높다. 이러한 구조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산업용 요금의 급격한 인상이 역설적으로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산업체로 하여금 자가발전설비와 같은 분산형 전원의 확산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높아진 요금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라 하겠다. 앞으로 전력망 문제 등이 단 시일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역간 수급불균형을 줄이고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전이 적지 않은 영업흑자를 기록했던 때도 있다. 요금을 올리니 인상요인이 사라져 버려 예상치 않게 흑자가 되기도 한다. 2013년∼2017년 5년 동안에는 무려 35조 6천억원의 흑자를 기록하였다. 여기에 본사 매각대금 10조원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지금보다 절반 수준이었던 당시의 전력산업 매출액을 고려한다면 대규모 흑자이다. 당시 남은 돈은 이후 전력산업의 발전을 위해 남겨지지 못하고 각종 펀드조성, 보조금, 학교 설립, 전기 복지사업과 같은 용도로 소진되 버렸다. 원칙대로라면 구입비용의 감소폭 만큼 높아졌던 요금을 즉시 낮추어야 하지만, 한번 오른 요금을 낮추기란 쉽지 않다. 이제 만약 다시 흑자가 지속된다면 이번에는 어떻게할 것인지 정해진 규칙이 없으니 여전히 알 수 없다. 이처럼 흑자와 적자의 반복되는 현재의 후진적인 요금시스템을 언제까지 방치할것인가? 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기요금을 객관적 중립적으로 관리하는 선진국형의 '요금조정메커니즘'을 제안한바 있다. 이렇게 하면 주기적으로 요금 변동요인을 반영하게될 것이며, 대규모 전력소비자는 자신의 지불해야될 에너지비용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불확실한 요금체계를 지속하는 것은 실익이 없으며 소비자 후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 얘기가 나올 때 마다 등장하는 물가안정이나 민생과 같은 구호는 결과적으로 기형적인 요금구조로 이어졌을 뿐이다. 요금구조와 체제의 변화가 시급하다. 이창호

[EE칼럼]이제는 구조개혁이 답이다

우리 경제에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지속된 불황으로 국내 경기가 살아날 전망이 없는 와중에 방산과 조선이 선방을 하고 있지만 철강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트럼프가 시작한 관세전쟁은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답답한 모습은 계속되고 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표를 의식해 억누르기만 하던 에너지 가격규제의 모습은 2011년 9·15 순환정전이 발생했을 때와 거의 달라진 바 없다. 오히려 이런 가격규제로 한전과 가스공사와 같은 대표적인 에너지 공기업은 골병이 들었다. 한전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LNG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을 때에도 전기를 원가 이하로 팔아 적자가 43조원대에 이르렀다. 지난해 전기요금 인상으로 수익성을 조금 회복했으나, 이는 코끼리 비스킷에 지나지 않아 총부채는 오히려 205조를 넘어서서 역대 최고치에 달했다. 올해 안에 갚아야 할 빚만 64조원에 달한다. 유동성이 고갈되어서 100대 상장사들 가운데 단기 유동성 지표가 최하위에 머물렀다. 가스공사도 민수용 도시가스 요금 미수금이 14조원을 넘어섰고 총부채는 47조원에, 부채비율은 400%에 달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알래스카 가스관에 대한 투자를 요청하고 있지만 총 사업비 440억달러 짜리 거대한 인프라 건설에 가스공사가 이런 재무구조를 갖고 선뜻 참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고질적인 교차보조는 우리의 산업경쟁력을 깎아 먹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주택용과 일반용은 동결하고 대기업들이 사용하는 산업용(을) 전기요금을 10.2%,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갑) 전기요금은 5.2%를 인상하였다. 지난달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백악관에서 루이지애나주에 제철소를 짓겠다고 한 것은 kWh당 78원 정도로 국내 산업용 요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값싼 전기요금 때문이라고 한다. 표를 의식해 동결한 주택용과 일반용 전기요금 대신 올라간 산업용 전기요금은 이제 국내 주요 기업체를 해외로 내모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전력망을 건설하고 운영하며 이를 통해 전기를 판매하는 한전의 경쟁력도 의심스럽다. 전국 곳곳에서 전력망 건설이 늦어져서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불과 45km 떨어진 북당진-신탕정의 345kV급 송전선로가 12년 지각 끝에 21년이나 걸려 작년 말 개통되었다. 동해안에 건설된 3개의 석탄발전소와 1개의 원전이 송전선 건설이 늦어져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국 31곳의 송전 건설 현장 중 25곳이 지연 중이다. 최근 전력망 특별법이 입법화되었지만 과연 법 통과로 송전망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공기업 특성상 재량껏 주민들을 설득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에너지 산업은 경제개발기의 정부규제와 독점 공기업을 통한 운영을 이제 10대 선진국에 진입하려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다 큰 대학생을 아직도 유모차에 태워서 키우고 있는 셈이다. 이창용 총재는 낮아진 우리 경제의 경제성장률 전망의 이유로 구조조정을 안 하고 기존 산업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새로운 산업을 도입하지 않은 점을 뼈아프게 느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인 한계가 바로 우리 실력이라고 꼬집고 있다. 조동철 KDI 원장도 최근 여러 포럼에서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기는 외부가 아닌 내부 체력 저하라고 진단하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단기 처방이 아닌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장기적으로 하락세를 지속해 왔으며, 생산성 정체와 기술혁신 지체가 구조적으로 누적돼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런 상태에서 외부 충격이 오면 그 충격을 회복할 체력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두 경제학자의 지적처럼 에너지 분야에서도 이제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너무 문제가 커졌다. 이제는 구조개혁이 답이다. 조성봉

[EE칼럼] 혁신 기술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1865년 영국에서 제정된 기관차 법은 “자기 동력으로 주행하는 탈것(초기의 자동차를 일컫는다)은 시내에서는 시속 2마일(3.2킬로미터) 이내, 시외에서는 시속 3마일 이내로 주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시내에서는 사람이 걷는 것보다도 느리게 주행해야 한다는 것이니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법이다. 이 법이 붉은 깃발 법이라는 조롱조의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은 여기에 추가로 “붉은 깃발을 흔들며 자동차에 앞서 걷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이 생긴 공식적인 이유는 초기 자동차의 거대한 크기로 인해 도로가 파손될 수도 있고, 지나는 말들이 놀라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대중의 안전이 직접적으로 위협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면, 실제로는 발굽이 없는 자동차가 오히려 도로의 손상을 덜 일으킨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말을 보호하기 위해 차가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막상 당시의 주류 운송수단인 마차에게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이것은 기존 기술과 신기술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규제가 생긴 것이다. 처음 보는 자동차에 대한 대중의 공포심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로비를 했었거나 아니면 어떤 눈치를 보느라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법에서 정한 제한 속도는 1896년에 새 법이 제정되어 시속 14마일(23킬로미터)로 상향조정 될 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좋은 말을 유지하는 데에 점점 비용이 많이 들게 되고 자동차관련 기술은 계속 개발되어 경제성이 더 높아지게 되면서 서서히 자동차라는 새로운 탈것에 대한 사회 대중의 수용성이 올라가게 되고 붉은 깃발 법 같은 비현실적인 규제는 더 이상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동차 속도 규제와 제한에 대한 재미있는 사례는 미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자유주의가 팽배한 미국에서는 서부와 동부의 차이가 극명했다. 동부의 오래된 주인 코네티컷에서는 1901년에 영국과 비슷한 시속 12-15마일 제한속도를 도입했고 그 후로도 계속 제한 속도를 엄격하게 유지하는데 반해 몬태나, 네바다, 텍사스 같은 주에서는 제한 속도를 두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경향이 커서 지금도 제한속도가 동부에 비해 현저히 높다. 그리고 석유파동을 겪던 1970년대에 경제적인 이유로 전국적인 제한속도 시속 55마일을 도입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시행이후 교통사고 사망률이 백만 마일당 4.28명에서 2.73명으로 감소하는 추가적인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기에 1990년대에 각 주의 자율 규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회의 수용과 규제는 언제나 이렇게 변해 왔다. 때로는 근거 없는 공포심을 자극하여 규제가 생기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생기며, 그리고 어떤 때에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근거하여 생기기도 한다.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가 국가의 규칙에 반영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이용해서 특정 집단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공포심을 자극하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음해를 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바이오 신약, 인공지능, 로봇기술 같은 혁신 기술이 끊임없이 개발되는 현대에는 어떻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가 하는 것이 그 사회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되었기에 과학과 합리에 근거한 대중의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원자력 분야에서도 혁신 기술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한수원에서 유럽과 아시아 수출을 목표로 개발한 APR-1000에는 피동형 냉각장치가 부착되어 외부 전력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도 발전소의 안전이 보장되어 후쿠시마 사고 같은 일이 원천적으로 방지되도록 하는 신기술이 도입되었다. 펌프로 냉각수를 강제 주입하는 대신 증기를 응축시킨 물이 자연적으로 재순환하도록 하는 것인데, 강력한 펌프의 힘이 없이도 충분히 냉각이 확보되는지가 규제의 쟁점이 될 수가 있다. 만약에 “모든 원자로는 초당 1톤 이상의 냉각수 공급이 가능한 펌프를 적용하여야 한다"라는 식으로 규정이 되어 있고 규제기관이 이를 적용하겠다고 나선다면 펌프가 없는 이 혁신기술은 발붙일 자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과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펌프의 힘이 얼마나 센지가 아니고 원자로심의 잔열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냉각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냉각 성능이 충분한지, 필요한 시점에 냉각이 수행될 수 있도록 운전 규칙이 수립되어 있는지, 혹시 모를 대형 지진 등에 대비해서 어떤 대비를 하였는지 등을 규제 항목으로 삼는 것이 바른 규제이다. 최근 개발되고 있는 소형모듈원전이나 차세대원전에는 더 많은 혁신기술이 포함되게 된다. 그 달라진 정도가 매우 커서 기존의 규정집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부터 아예 발전소 범위 밖으로 대량 방사선 누출이 불가능하도록 한다면 그런 사건에 대비한 비상계획은 필요가 없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이상적인 설계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법률에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은 반경 20-30킬로미터로 한다"라고 아예 정해서 못을 박아 두고 있으니, 아무리 좋은 혁신 기술을 개발하여도 적용이 난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붉은 깃발 법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무분별한 규제는 혁신을 가로막고, 안전망 없는 혁신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 규제와 발전의 제대로 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버려야 할 것, 고쳐야 할 것, 더 강력히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분간해야 한다. 우리나라 규제기관이 그런 혜안이 있기를 기대한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EE칼럼] 우리나라에는 아직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없다.

지난 3월 18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지만 아직 확보하지 못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찾기 위한 첫걸음을 제대로 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 특별법은 처분장 부지 선정 절차, 처분장 유치 지역에 대한 지원, 전담 조직과 관리사업자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법 시행에 앞서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없다는 점이다. 처분장에 처분할 대상이 없는 것이다. 「원자력안전법」제2조제18호에 따르면,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폐기하기로 결정된 사용후핵연료만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분류된다. 특별법도 이 정의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원자력진흥위원회'가 폐기를 결정한 사용후핵연료는 단 한 다발도 없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또 다른 발생원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후 폐기물도 없다. 이제라도 처분 대상 폐기물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정책과 직결돼 있다. 여기에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단계에 따른 정부의 구체적 결정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원전에 보관 중인 것 이외에 현재 개발 중인 선진원자로에서 배출될 사용후핵연료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핵심 결정 중 하나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여부다. 재처리한다면, 국내에서 할 것인지 또는 해외에 위탁할 것인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향후 확보해야 할 기반 시설, 처분 대상 폐기물 형태와 처분 시점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직접 처분한다면, 사용후핵연료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분류하는 절차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범정부 차원의 사용후핵연료 정책은 마련돼 있지 않다. 지금까지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한 범정부 차원의 결정으로는 2004년 12월 17일 열린 제253차 '원자력위원회'(현 '원자력진흥위원회') 회의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침에 대해서는 국가 정책 방향, 국내외 기술개발 추이 등을 감안하여 중장기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하에서 추진한다"는 내용이 유일하다. 그 이후 범정부 차원의 사용후핵연료 정책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나설 때다. 「원자력안전법」 제35조제4항에 따르면, 두 부처 장관은 사용후핵연료의 처리․처분에 관한 사항을 원자력안전위원회 및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결정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당 위원회에 상정된 안건은 각 부처의 기술개발 계획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일례로 2021년 1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 연구개발 현황 및 방향'을, 2024년 2월 산업자원통상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R&D 로드맵'을 보고했지만, 이들은 각 부처 소관 업무에 대한 계획일 뿐, 범정부 차원의 통합적 정책이라 보기는 어렵다. 한편, 최근 국제 우라늄 시장 상황은 재처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원전 수요가 늘어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안한 국제 정세가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면서 우라늄 자원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UxC에 따르면, 2025년 1월 기준 우라늄 농축 서비스 가격은 SWU당 190달러로, 2022년의 약 56달러에 비해 3배 이상 상승했다. 문제는 가격만이 아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거라는 장기 전망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시장이 안정적이어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필요성과 경제성이 낮았지만, 지금은 자원 안보 차원에서 핵비확산을 전제로 재처리 여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용후핵연료 정책 결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미룰 문제도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준국산 에너지원인 원자력의 이용 확대는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선 안정적인 핵연료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용후핵연료 정책도 필요하다. 특별법 시행을 앞둔 지금이 바로 사용후핵연료 정책 수립의 적기다. 정책 공백이 장기화할수록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커지기 마련이다. 이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국가 에너지 주권 차원에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문주현

[EE칼럼] 멈춰진 진실: 대한민국의 123일과 AI의 교훈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2024년 12월초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뒤이은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 발의,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다다르는 123일 동안 대한민국은 극도의 혼란과 법적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대중의 불안과 추측이 난무하는 사회적 긴장과 금융 및 경제의 침체속에 정치적 분위기는 극도로 얼어 붙었다, 한국 현대사의 이 모호한 시기에, 하나의 질문이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사회 곳곳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멈추어 있다. 그럼에도 세상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I am stopped, but what shall happen around us?)" 한국이 민주주의 제도의 역할과 법적 해석을 둘러싼 내부 논쟁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글로벌 인공지능(AI)은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OpenAI가 다중모달 기능을 크게 개선한 언어모델을 발표했고, 유럽은 'AI법(AI Act)'을 제정하며 글로벌 규제를 선도했으며, 중국 등 여러 나라는 국가 차원의 AI 거버넌스 체계를 빠르게 구축해 나갔다. 이미 많은 국가들이 산업 자동화와 정책 수립에서 AI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며 혁신을 이어갔지만, 한국은 내부 논쟁과 사회적 양극화에 휩싸여 한발짝도 꼼짝 못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멈춰진 상황은 우리 사회가 가졌던 기존 제도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나아가 우리 모두가 진실을 회복하고 우리의 미래를 되찾기 위하여 시민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게 하였다. 모든 AI 연구자들이 알고 있듯이, 대형 언어모델은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일으킨다. 이 모델들은 사실과 다른 정보를 거침없이 자신있게 생성한다. 이는 모델이 의도적으로 사람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학습 데이터에 기반하여 개연성 높은 다음 단어들을 예측한 결과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 역시 스트레스 상황에서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이를 '기억의 혼동(confabulation)'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외상, 불확실성, 상충되는 정보에 직면했을 때, 심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형태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이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123일 동안 양극화된 해석들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어떤 이들은 탄핵 절차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또 다른 이들은 대통령직의 법적 근거 자체를 문제 삼았다. 소셜미디어는 이러한 긴장을 더욱 증폭시켰으며, 결국 헌법재판소는 판결을 내렸지만, 그 시점에는 이미 여론이 확고하게 양분된 상태였다. 객관적 사실(facts)은 감정적으로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narratives)들과 경쟁해야 했다. AI의 환각과 인간의 기억 혼동은 발생 원인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된 위험을 갖는다. 둘 다 진실 그 자체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AI 연구 공동체는 '환각' 현상을 줄이는 데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사회적 진실 관리 측면에서도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예컨대, 모델이 문제를 단계별로 사고하도록 유도하면 정확성과 일관성이 향상된다(Chain-of-Thought Prompting)든가, 검증된 외부 데이터베이스와 모델의 출력을 연결하면 사실 기반의 정보를 더욱 견고히 확보할 수 있다(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또한 모델이 지나친 확신을 피하고 불확실성을 명확히 표현하도록 훈련시키면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Calibration). 이외에도 극단적이고 의도적인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모델의 취약점을 찾아내고, 전체 시스템의 강인성을 개선할 수 있다(Adversarial Testing) 등이 그것이다. 이들 접근법은 단순한 기술적 기법을 넘어, 하나의 철학을 나타낸다. 즉, 지능의 목표는 단순히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추론'(verifiable reasoning)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기계의 오류가 설계를 통해 줄어들 수 있다면, 인간의 인지적 편향도 유사한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집단적 추론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설계를 통해 '시민적 기억(civic memory)'을 개선할 수 있다. AI 연구에서 얻은 영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원칙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공공기관은 의사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판결, 정책 변화, 제도 개편 등은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가능한 한 공개해야 하며(시민 사고의 연쇄 유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와 공개 증언, 연대표, 멀티미디어 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아야 한다(기억 검색 시스템 구축). 또한 교육을 통해 인식론적 겸손을 장려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만이 아니라 '얼마나 확신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다(확신 조절 교육). 나아가 공공 담론에서 대중의 서사를 구조적으로 검토하고 비판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조직된 반론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집단 레드 팀 운영). 이러한 원칙들은 추상적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적 인식 회복을 위한 실천적 설계도가 될 수 있다. 한국은 AI 기술을 선도할 역량이 충분하다. 그러나 진정한 선도국이 되기 위해서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공동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기반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비전을 제안한다. (1) 국가 기억 관측소 구축: AI를 활용해 허위 정보의 유통 경로와 집단 기억 왜곡을 추적하는 공공 플랫폼 마련 (2) 인지 건강 지표 도입: 경제적 사회적 지표와 함께 대중의 신뢰도, 믿음의 정확성, 사회적 양극화 정도 등을 정기적으로 측정하여 관리한다. (3) 대화형 시민 AI 시스템 운영: 국가의 사법·역사·행정 데이터에 기반한 대형 언어모델을 활용하여 시민 교육과 공공 담론을 강화한다. (4) 기억의 성찰을 위한 국가적 의례: 역사적 사건에 대해 비판적으로 참여 할 수 있도록 AI 도구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행사와 다중 관점의 디지털 플랫폼을 운영한다. 이러한 노력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 “기억"은 곧 국가 기반 시설(epistemic infrastructure)이다. 김한성

[EE칼럼] 기본에 투자 없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

우리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현대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제한된 재화를 많은 사람이 동시에 원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 예산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에서는 긴급성과 파급효과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서 일의 우선순위와 예산 투입의 규모를 정한다. 선정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정량화 지표를 사용하여 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중요하고 긴급하다고 평가되는 분야인 상위 1~3등에만 선택과 집중이라는 미명아래 넘치는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문제점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매년 반복되면 4등 이하는 수십년이 지나도 선정되지 못해 예산 배정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숫자로 평가되어 우리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정량화 지표를 믿는다고 치다. 그럼 4등을 하면 4년 뒤에 예산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매년 4등에 해당하는 예산을 받는 것이 공정한 것인가? 과연 어떻게 소중한 국가 예산을 할당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인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처럼 선택과 집중으로 1~3등에게만 예산과 관심을 주면 항상 일정한 비율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당장 급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분야는 10년이 지나도 예산과 관심은 받을 수 없다. 여기엔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획일주의도 한몫한다. 10가지 분야와 주제가 정해지면 1/N 나누어 배분하는 식이다.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배분하면 된다. 이렇다 보니 장기적으론 꼭 필요한 일이지만 매번 같은 중요도로 낮은 순위로 평가되는 분야는 수십 년이 지나도 관심과 지원을 받을 기회가 없을 수 있다. 이런 분야가 바로 국가 에너지자원 분야이다. 당장은 지원이나 관심이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 결과가 쌓이고 싸이면 훗날에 큰 문제가 되는 분야이다. 이런 평가 때문에 일의 본질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정치적인 곳에는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과학기술 연구 분야에까지 확장되어 있다. 과거보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권에 따라 각광받는 연구 분야가 다르고 이에 따라 연구비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연구과제 제목도 정권의 입맛에 맟춰 선호하는 주제어가 많다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녹색이라는 단어가,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라는 말이 들어가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신재생이라는 말이, 윤석열 정부에서는 원자력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10년 이상의 긴 기간이 필요한 연구분야에서 조차도 정권교체에 따라 연구 분야별로 부침이 있으니 씁쑬한 일이다. 그렇다 보니 모든 사람이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만 하지 끝맺을 줄 모르고, 시작한 것을 잘 가꾸어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 것에 인색하게 되는 현상이 고착화 되고 있다. 연구 분야와 유사하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한 지원이 필요한 분야가 인력양성과 에너지자원 분야이다. 국가의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는 에너지자원 문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민간기업은 손실에 오랜 기간 노출되면 기업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에 단기적인 이익에 초점을 맞춰 투자할 수밖에 없다. 잘 알려진 대로 석유가스 및 각종 광물을 포함한 자원가격은 15년 내외의 긴 가격변동 주기를 갖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자원빈국은 민간기업보다는 공기업을 내세워 에너지자원의 확보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와 그들의 차이점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한 보여주기식 성과와 인내심 부족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해외자원개발 실패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공기업의 실력도 외부 요인도 아닌 정부의 보여주기식 성과주의에 있다. 앞으로의 성패도 이런 유혹을 어떻게 없애느냐에 달려있다. 기본에 투자 없이는 국가의 밝은 미래는 없다. 신현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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