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미래 산업과 민생을 위한 국가전략, 원자력의 재정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6.16 10:58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6월 4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며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예고했다. 이 조치는 한국 에너지 정책의 구조와 우선순위를 새롭게 설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에너지 정책과 기후변화 대응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각 부처에 흩어진 권한을 통합하여 보다 일관되고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면,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목표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공존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TV 토론에서 원자력에 대한 회의적 입장을 언급한 바 있고, 이는 체코 원전 수주 계약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았다. 민주당 정부의 재집권이 문재인 정부 시절의 이른바 '탈원전' 기조를 부활시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2025년의 국제 에너지 환경과 국내 산업 생태계는 과거와 크게 다르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 그리고 AI 산업을 포함한 미래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가 맞물리는 오늘, 한국은 원자력이라는 무탄소 에너지원을 실용적 관점에서 재평가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첫째, 에너지 안보라는 고전적 명제가 다시 중심 의제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홍해 해상 운송의 불안정, 중동의 정세 불안은 에너지 수입국으로서 한국의 취약한 구조를 다시금 드러냈다. 천연가스 가격의 불안정과 선박 운송 리스크는 국내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자력은 탄소 배출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연중무휴로 안정적인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면서도 에너지 전환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대안 중 하나로 여겨진다.


둘째,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민생'과 '공공성'이라는 국정 철학은 원자력과 충돌하기보다는 오히려 상보적일 수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가계와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수급만으로는는 변동성 높은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원자력은 '기후위기 대응'과 '전기요금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에너지 자산이다.




셋째, 이재명 정부가 한국의 글로벌 AI 및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압도적인 전력 공급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미국의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은 AI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이미 원자력을 공공연히 지지하고 장기 전력 수급 계획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대전, 판교, 용인 등지의 데이터센터 수요는 급증하고 있으며,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AI 인프라에는 전력망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태양광과 풍력은 간헐성이 크고, 저장 기술은 여전히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제약이 크다. 특히 국토가 좁은 한국에서 대규모 재생에너지 개발에는 물리적 한계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와 같은 차세대 원전 기술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SMR은 설치 면적이 작고 안전성이 높아 산업단지나 도심 인근에도 배치 가능하며, 수소 생산 등과 연계되어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전력망의 부담을 분산하고,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기후에너지부가 공식 출범하게 된다면, 이 부처는 단순한 행정 통합기구를 넘어, 국가 에너지 전략의 '컨트롤타워'로 기능해야 한다. 원자력에 대한 재평가는 단순히 증설 또는 감축의 문제가 아니라, 그 역할을 재정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대형 발전소 중심의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SMR, 수소 연계형 원전, 산업단지 특화형 원전 등으로의 기술적 다변화와 공간적 분산이 필요하다.


더불어, 한국은 이미 원자력 수출국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체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한국형 원자로가 유럽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도 건설될 가능성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한국의 산업적 이익을 넘어 전략적 신뢰 자산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의 정치적 유산과 이념적 입장을 넘어서, 2025년의 현실과 미래의 가능성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원자력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기반이며, 기후와 안보, 산업이 교차하는 전략 자산이다. 에너지 안보, 산업 경쟁력,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용과 균형, 그리고 책임 있는 전환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민생을 지키고 미래를 준비하는 길일 것이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