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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공공기관 통폐합...산업 전략 기회로 삼아야

정부는 3일 공공기관 109개 감축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 기능 개혁 추진 방향 (안)"을 발표했다. 감축이 현실화하면 전체 공공기관은 현재 524개에서 415개로 줄어든다. 이재명 정부가 보수 정권도 시도조차 하지 못한 대대적인 공공기관 통폐합에 나선 이유는 분명하다. 지역·부처 간 이해관계에 따라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기관들이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떨어트린다는 판단에서다. 서로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 경쟁적으로 신설되다 보니 정부 재정 부담만 늘어났다. 이번 발표의 최대 관심은 에너지 공기업 통폐합의 중심인 한국남동발전 포함 발전 5사 통합과 석유·가스공사 통합이다. 특히 에너지 공기업 개편안의 핵심은 흩어진 자원개발과 발전 기능을 각각 하나로 묶어 “규모의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발전사는 2001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쪼갰지만 25년 만에 통합 절차를 밟게 됐다. 정부의 “2024 탈석탄" 로드맵에 맞춰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 인적. 물적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별 발전사가 대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면 평균 부채 비율이 급증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따라서 정부는 연구개발비, 대형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묶어 투자 효율성을 높이려면 통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발전사 통합을 통해 재무구조로 투자 여력을 확보해 에너지 대전환과 탄소중립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또 하나의 이슈는 역대 정부에서 여러번 추진했으나 매번 무산된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통합이다. 정부는 두 공사를 합쳐 “에너지자원공사(가칭)"를 세우고 에너지 공급망 위기를 전략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탐사. 개발 역량과 구매력을 모아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글로벌 에너지기업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취지다. 전국 공공기관 재무구조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기재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542조 원이던 공공기관 부채는 2025년 769조 원으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공공기관 인건비 예산은 29조 6000억 원에서 37조 7,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더 이상 방치할 수준을 넘어섰다. 현재 시점에서 정부의 공공기관 통폐합은 단순한 기관 숫자 줄이기가 아니라 공공부문의 기능과 국가 전략을 다시 설계하는 구조 개혁으로 평가하는데 맞다. 현재 공공기관의 가장 큰 문제는 기관 수가 많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기능이 지나치게 잘게 쪼개져 있다. 특히 에너지·자원 분야에서는 한국전력을 포함 발전 5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그리고 각종 연구, 지원기관 등이 각각의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라는 큰 그림을 누가 책임지는가가 불분명한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번 개혁을 단순한 예산 절감이 아니라 국가 전략 기능 중심의 재편으로 추진한다면 상당한 의미와 성과를 낼 수 있다. 정부도 이번 109개 기관 감축을 전략적 구조 개혁, 유사·중복 기능 일원화, 자회사, 소규모 기관 통합의 세 유형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가장 큰 위험은 통폐합 숫자 경쟁이다. 즉 109개를 줄였다는 숫자가 개혁의 성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A 기관과 B 기관을 합쳐서 기관 숫자는 1개 줄였는데 본부는 그대로 있고, 인력도 그대로이고, 자회사도 그대로이고, 업무도 그대로이고, 임원 자리만 늘어난다면 그것은 통폐합이 아니라 간판을 바꾼 것과 불과하다. 따라서 성공 여부는 기관 몇 개를 없애느냐가 아니라 통합 이후 국가적 성과가 얼마나 커졌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특히 발전사 통합은 매우 중요한 시험대이다. 단순히 5개 발전사를 하나로 합치는 방식은 위험하다. 먼저 통합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 한국발전을 발전회사->종합에너지기업->글로벌 에너지기업으로 발전시키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LNG, 원전 연계, 재생에너지, ESS, SMR, 수소, 해외 발전사업, 핵심광물과 에너지자원까지 연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개 발전사를 합쳐 놓고 거대한 국내 발전회사 하나를 만드는데 그칠 수 있다. 그리고 자원.에너지 공기업 통합은 더 신중해야 한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를 하나의 에너지자원공사(가칭)로 통합하는 방안은 상당히 의미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직 통합보다 기능 통합이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해외 자원개발, 에너지안보, 핵심광물, 공급망, 트레이딩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일본처럼 자원은 부족하지만, 경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자원개발, 에너지, 핵심광물, 공급망을 분절해서 관리해서는 중국·미국·일본과 경쟁하기 어렵다. 따라서 에너지->자원개발->핵심광물->소재.배터리->전력->산업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공공기관 통폐합은 조직 개편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략을 다시 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bienns@ekn.kr

[EE칼럼] 에너지자원 공기업 통합의 성공 조건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통합하여 가칭 “에너지자원공사"를 설립하겠다는 정부의 공기업 통합안이 발표되었다. 단순히 공기업의 개수를 줄이는 것이 통합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길 바라며 진정한 통합으로 시너지 효과로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와 경제 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통합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중동산 에너지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하고 자원보유국의 자원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에너지자원 공급망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석유는 액체인 오일과 기체인 가스를 함께 이르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오일을 석유라 부르고 있다. 대부분의 메이저 석유회사는 석유와 가스를 함께 개발 생산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는 모두 같은 원리로 지하에서 만들어지고 함께 생산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석유가스산업은 석유가스를 개발 생산하는 상류부문과 생산된 원유를 정제하고 천연가스를 액화하여 판매하는 하류부문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메이저 회사는 상류와 하류 부문에 모두 투자하여 사업의 포트폴리오 구성하여 유가의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다. 즉, 고유가 시에는 석유생산으로 상류부문에서 수익을 내고 저유가 시에는 정유사업인 하류부문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니 100년 넘게 회사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와 따로 존재하고 있을까? 두 공기업 탄생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는 국내외 석유가스개발과 석유비축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한편, 한국가스공사는 천연가스의 국내 도입과 공급이 주요 업무이다. 즉, 석유공사는 석유산업의 상류만 담당하고 있고 가스공사는 가스사업의 하류 부문을 주요 업무로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두 회사의 현 업무 특성이 담겨 있다. 이 말은 석유공사는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높은 상류부문 사업만 추진하는 회사인 셈이다. 반면 가스공사는 천연가스를 국내로 도입하여 공급하는 하류부문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석유가스산업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상류-중류-하류의 수직적 일괄조업 형태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유가 변동과 같은 외부 환경 변화와 위기에 취약한 구조를 지닌 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석유공사가 하류부문의 정유공장을 갖고 있으면 원유의 생산과 도입 및 정제 분야에 걸친 일괄조업 형태를 갖추어 국내 석유제품 가격 안정에도 큰 기여를 하고 보다 안정적인 회사 운영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가스 공사가 과거에 추진했던 것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가스전 개발과 LNG 사업과 같은 상류부문에 투자했으면 지금과 같은 에너지 공급망 위기 시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문제를 해결하려다 미래를 망치기 쉬운 것이 에너지자원 분야이다. 정부에서 계획 중인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은 석유가스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당연히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통합 전 해결해야 할 선제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단지 공기업의 개수를 하나 줄이는 겉보기 성과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결해야 할 전제 조건은 3가지이다. 정부 예산으로 석유공사의 부실자산 처리, 국내외 석유가스 개발과 탄소중립 사업 지속적 추진, 국내 에너지 가격 정상화이다. 현재 수년째 자본 잠식에 빠져있는 석유공사의 부채를 해결하지 않으면 통합이 되더라도 재정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고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의 핵심인 석유가스개발은 추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가스공사의 13조가 넘는 미수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 가격의 정상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정권교체 시마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이 추진되다 좌초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전제 조건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정부의 예산 투입 없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니 통합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정부가 예산 투입 없는 통합을 추진하려면 그냥 여기서 멈춰라. 겉보기 통합은 국민에게 또 다른 짐이 될 뿐이다. bienns@ekn.kr

[EE칼럼] 글로벌 에너지 투자, 청정에너지 중심으로 재편

넷제로 목표를 모든 나라가 달성하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8도에 이를 전망이라는 UNEP 보고서가 발표된 가운데, 글로벌 에너지 투자 시장의 중심축이 화석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World Energy Investment 2026」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에너지 투자는 총 3조 4천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 가운데 청정에너지 투자는 2조 2천억 달러로 전체의 약 65%를 차지하며, 화석연료 투자(1조 2천억 달러)의 1.8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에너지 투자는 2015년 2조 7천억 달러에서 2020년 2조 2천억 달러까지 감소했으나,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과 에너지 안보 강화,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맞물리며 다시 가파른 증가세로 돌아서 2024년 3조 2천억 달러를 거쳐 2026년 사상 최대인 3조 4천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청정에너지 투자는 2015년 1조 2천억 달러에서 2020년까지 정체되다가 이후 급격히 성장해 2024년 처음으로 2조 달러를 넘어섰고, 2026년에는 2조 2천억 달러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화석연료 투자는 2015년 1조 4천억 달러에서 2020년 9천억 달러까지 줄었다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일부 반등했지만, 2026년에도 1조 2천억 달러 수준에 머물러 청정에너지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이는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등 청정에너지 관련 분야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에너지 투자의 핵심 경쟁이 단순한 발전설비 확대를 넘어 전력망과 저장장치, 에너지 효율,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 확보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변동성 전원을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전력망과 ESS 투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전력시장도 대세 전환의 임계점을 통과하고 있다. 2025년 신규 발전설비의 85.6%가 재생에너지로 채워졌다는 사실은, 추가 발전원의 거의 대부분이 태양광·풍력 중심으로 설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누적 발전설비 중 재생 용량 비중은 49.4%에 도달해 2026년 말에는 50%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재생발전량 점유율도 2024년 31.8%에서 2025년 33.8%로 늘었으며, 태양광은 단일 발전원 중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세로 2025년 발전량 기준 8.8%를 기록했다. Ember에 따르면 2026년 7월까지 재생 점유율은 35.7%(태양광 10.1%, 풍력 9.3%)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재생에너지 정책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2025년 6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이 국정 과제로 선정되었고, 같은 해 10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하여 관련 정책 추진 체계를 강화했다. 2026년 3월에는 재생에너지법 개정을 통해 신재생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분리하고, 이격거리 규제를 법제화하여 합리화했다. 2026년 5월에는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조기 달성과 2035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30% 이상 확보를 목표로 제시했다. 2026년 8월에는 RPS(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를 폐지하고 장기 고정가격 계약시장 중심으로 전환해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 안정성을 높이기로 했으며, 기후에너지환경부의 2027년도 예산은 전년 대비 18.3%(3조 9,737억 원) 증가한 25조 7,319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했다. 하지만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로 대기업과 데이터센터 개발사업자들이 축포를 쏘아 올릴 때, 어렵게 명맥을 이어온 국내 중소·중견 재생에너지기업들은 역대 최악의 경영난으로 도산 위기에 몰려 있고,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은 그나마 있던 지원제도인 RPS 폐지로 수익성이 악화될까 걱정하고 있다. 태양광 관련 협동조합들은 4~5년이 지나도 자립 기반을 잡지 못하거나 배당조차 하지 못하는 사례가 다수이며, 한전 접속용량 부족으로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정부의 야심찬 계획과 정책에도 불구하고 2026년 8월까지 신규 태양광 설치량은 2.38GW로 전년 동기(2.47GW)보다 오히려 줄었다. 중국 역시 2025년 6월 재생에너지 가격 시장화 개혁(136호 문건) 시행 이후 신규 태양광 설비가 1~7월 기준 61.3% 급감(2025 223GW, 2026년 86GW)했다. 신규 프로젝트는 경쟁입찰을 통해 가격이 결정되도록 함에 따라 수익 예측이 어려워지면서 개발업체의 투자 심리가 위축된 결과로 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관건은 정책의 방향이 아니라 그 방향이 현장 어디까지 미치느냐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재생에너지 정책이 진짜 성과로 이어지려면, 대형 프로젝트만이 아니라 현장의 중소·중견 기업과 태양광발전협동조합 등이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익 기반과 계통 접속 여건부터 함께 챙기는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

[EE칼럼] 목소리를 내는 유럽 기업, 침묵하는 한국 기업

지난달 아우디, BMW, ZF,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들은 독일 연립정부에 구조 개혁의 즉각 시행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바이에른 금속·전기 산업 노조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노조가 동참했다는 점이다. 노사가 한목소리로 정부를 압박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해 메르츠 정권 출범 이후 지속적인 경제침체 극복을 위한 구조개혁을 발표했고 독일기업들은 2028년까지 6,310억 유로를 투자하는 'made for germany' 이니셔티브를 출범하며 화답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기업들은 메르츠 정부에 구조개혁의 빠른 실행이 아니면 독일을 떠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할까. 2021년 9월 북해의 풍력이 멈추면서 시작된 유럽발 에너지 위기는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부족으로 모든 것의 비용을 빠르게 올리면서 기업을 압박했다. 그해 12월 철강, 비료, 시멘트 등 11개 유럽 에너지 집약기업 협회는 5배나 급등한 에너지 비용과 3배 이상 오른 탄소 가격으로 경쟁력과 수익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공장 폐쇄와 기업의 해외 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속한 대처를 요구했다. 그러나 유럽 정치권은 뚜렷한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줄이지 못한 채 2022년 러우 전쟁으로 인한 최악의 에너지 위기로 이어졌다. MWh당 평균 20~40유로 수준이던 도매전력가격은 최대 500배가 넘는 1만 1천 유로를 돌파했고 독일 경제성장률은 0%를 기록했다. 2024년 유럽기업들은 '앤트워프 선언'을 통해 높은 에너지 비용 해결과 탈산업화를 통한 탈탄소화는 유럽에 솔루션이 될 수 없다며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다시 한번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치권은 자신들이 만든 기후의제를 포기하지 못하며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자 유권자들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파와 극우 정당에 표를 몰아주며 기존 정당을 심판했다. 2026년 이란 전쟁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6,350억 유로 매출과 120만 명을 고용하던 유럽 석유화학 기업은 2022년 이후 9%의 생산시설이 폐쇄되었고 2만 명의 직접고용이 사라졌으며, 바스프는 에너지비용이 저렴한 중국 잔장 등으로 비즈니스 거점을 옮겼다. 1,300만 명을 고용하는 유럽 자동차산업 생산은 20%나 감소했고 초기 3천 명이던 폭스바겐 예상 구조조정 인력은 최대 15만 명으로 늘어났다. 니더작센 주지사는 일자리 보존을 위해 중국 자동차 조립이 필요하다 주장했으며, 스텔란티스 렌 공장은 중국 둥펑 자동차를 조립할 예정이다. 2008년 이후 1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진 독일 철강산업도 높은 에너지비용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발루렉 뒤셀도르프 공장은 브라질로 이전했다. 유럽의 기간산업이 뿌리부터 흔들리며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회불안으로 이어지며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뒤늦게 반응했다. 2035년 전기차 100% 목표를 포기했으며, 기업공급망 실사지침과 가장 강력한 기후의제 수단인 배출권 거래제(ETS)를 약화시켰다. 폴리티코는 그린딜에서 벗어나 산업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이후 유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했다. 반면 한국기업은 조용하다. 유럽기업처럼 앤트워프 선언같은 산업경쟁력 향상을 위한 성명 발표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기후의제와 글로벌 에너지위기에 아무 데미지가 없는가. 이미 중국의 2배, 미국의 1.5배나 높은 전기요금을 내고 있고 철강산업은 높은 전기요금으로 공장 가동중단과 폐쇄가 이어지고 있으며, 석유화학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에너지전환이 정쟁의 도구가 되면서 기업은 침묵과 조용한 탈출이 더 나은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은 제조업 인프라가 에너지 부족과 위기 탈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다. 현 정부도 에너지정책에 실용주의를 견지하는 분위기다. 한 번 떠나간 공장과 일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유럽은 이미 늦었지만, 한국은 아니다.

[EE칼럼] 산업용 전기요금 지역 차등 제도 시행에 대한 기대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정부가 지난 8월 26일에 전력 공급 시설이 집중된 영호남 등 남부 지역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10% 정도 낮추는 지역별 차등요금제 설계안을 발표하였다. 2024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으로 지역별 요금제에 대한 시동을 건지 2년 2개월 만에 구체적인 지역별 요금 체계가 제시된 것이다. 지역별 구분은 전력 계통을 고려하여 수도권 남부(서울 남부 및 경기 남부)와 수도권 북부(서울 북부, 경기 북부 및 인천), 중부권(강원 및 충청), 남부권(경상 및 전라) 등 4개 광역권으로 구분했으며, 여기에 균형성장 요소를 반영한 4개 권역을 다시 조합해 전국을 11개 지역으로 세분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는 송전망 건설 부담을 줄이고 지역 균형발전도 유도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를 위하여 비수도권 요금만 낮춘다고 한다. 수도권 남부는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남부권은 kWh당 13~18원, 중부권은 10~15원, 수도권 북부는 6~10원 낮아진다. 이렇게 되면 남부 지역의 제조업 시설은 연간 최대 1백억 원 이상 전기요금을 적게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인센티브로 기업의 지방 이전과 투자를 촉진하고 특히 반도체 등의 3대 메가프로젝트의 시행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위한 추가 부담은 약 2조 8천억원으로 추산하였다. 사실 서울에는 일부 재생에너지 시설을 제외하면 발전시설이 없어 사용 전력의 거의 전량을 중부 및 남부지역의 발전시설과 전력망에 의존하고 있으며 경기도 역시 상당량을 타 지자체의 발전시설에 기대고 있다. 수도권 중 인천은 그러나 수요보다 많은 발전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도권이 절반에 가까운 전기를 소비하고 있기에 오래전부터 전력 요금의 차등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산업 분류에서 전기는 수도, 가스와 함께 산업(industry)이 이니고 공공(utility)로 분류된다. 이들의 서비스는 가격(price)이 아닌 요금(fare)으로 매겨진다. 그런데 이미 수도 요금은 오래전부터 지역별로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상수도 요금의 경우 일단 상수도 시설이 광역상수도외 지방상수도 등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지방정부 별로 별도의 규정과 조례로 요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가스(도시가스)요금 역시 한국가스공사가 수입한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각 지역별 도시가스 회사에 의하여 별도로 관리되고 있다. 배관망 및 운송 비용의 차이 등을 고려한 것이다. 도시가스 요금의 경우 배관망이 잘 구축된 수도권이 지방보다 저렴하며 상대적으로 배관망이 적고 운송비용이 높은 강원도 영동 지역 및 제주, 충북 지역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전기요금은 각 지역별 전력 공급 시설과 수요량, 그리고 전력망 비용 등이 크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국 단일 요금 체계로 운영되어 왔다. 그것이 이번에 변경되는 것이다. 늦었지만 크게 환영할 만한 조치이다. 무엇보다 전력 인프라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영남과 호남 등 남부 지역에서는 곧바로 적극적인 환영을 표시하였다. 국가 전체적인 송전망 건설 부담을 근본적으로 덜고 국가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이다. 지역요금 차등 제도의 효과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수도권에서 인천은 발전시설이 상당히 많이 있음에도 서울과 경기에 묶여 있다는 점, 현재 제시된 최대 10% 수준의 인하 폭으로는 기업의 입지 선택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장기적인 예산 반영이 없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마침 (사)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가 8월에 발표한 국내 반도체 및 데이터 센터 재직자 8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력에 대한 혜택만으로는 기업의 입지 선택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우며, 그 조차도 30% 정도의 요금 차등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보고서는 추가적인 지원은 지역별 제도에서 더 나아가 실제로 지역에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에 맞추어 맞춤형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제도로 인하여 전력 분야의 비효율을 크게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더 많은 새로운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의 세밀한 추가 검토와 보완을 기대한다. bienns@ekn.kr

[EE칼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 찾기보다 먼저 할 일

집을 지을 때, 땅부터 덜컥 사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집을 지을지 설계도부터 그린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도 마찬가지다. 부지 찾기보다 먼저 정할 것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를 담은 기준처분시스템(이하 '처분시스템')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영구처분은 단순히 폐기물을 땅속에 묻는 일이 아니다. 폐기물을 어떤 형태로 만들어 어떤 용기에 담을지, 어떤 완충재로 감쌀지, 어떤 암반을 천연방벽으로 삼을지, 각 방벽이 오랜 세월 어떤 안전기능을 맡을지를 하나의 체계로 설계하는 일이다. 처분시스템은 처분시설의 설계도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지질환경이 필요한지, 무엇을 연구·실증해야 하는지, 장기 안전성을 어떻게 입증할지를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따라서 처분시스템을 먼저 정립하고 그 성능을 실증하면서, 이에 적합한 지질 조건을 갖춘 부지를 찾아야 한다. 동시에 부지조사 결과를 반영해 처분시스템을 구체화해야 한다. 결국 처분시스템이 부지 선정을 이끌고, 부지가 그 시스템을 검증·보완하는 순환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 작업을 해왔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수십 년간 처분기술을 연구해 왔고, 최근에는 관리사업자로 지정된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태백에 지하연구시설 건설이 추진되고, 영구처분시설 부지 선정도 곧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제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껏 연구해 온 처분시스템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은 “안전하게 처분하겠다"는 원론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채택한 처분 원칙과 개념, 공학적·천연 방벽의 구성, 그리고 장기 안전성 입증 방법이다. 이는 단순한 정보공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향후 건설할 지하연구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의 기술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출발점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이를 잘 보여준다. 두 나라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해 'KBS-3' 개념을 오랫동안 발전시켜 왔다. 사용후핵연료를 구리와 주철로 만든 이중 용기에 넣고 벤토나이트로 감싼 뒤 안정된 암반에 묻는 다중방벽 방식이다. 오랜 연구개발과 현장 실험으로 각 방벽의 성능과 부지 특성을 검증하고, 이를 종합해 처분시스템의 장기 안전성을 평가해 왔다. 핀란드는 이미 올킬루오토섬에 온칼로 처분시설을 짓고 운영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2026년 8월 핀란드 안전규제기관 STUK는 이 시설이 안전요건을 충족한다고 평가했다. 스웨덴도 KBS-3를 기반으로 포르스마르크에 처분시설을 건설 중이다. 두 나라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처분시스템의 기본 개념과 안전요건을 먼저 확립하고, 그 개념을 검증할 수 있는 지질 조건을 갖춘 부지를 찾되, 부지조사 결과에 따라 처분시스템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그동안 쌓아 온 처분시스템 연구성과를 공개해야 한다. 물론 모든 자료를 공개할 필요는 없다. 기술적·법적으로 공개가 제한돼야 할 사유가 있다면 제외하면 된다. 그러나 처분의 기본원칙과 개념, 처분시스템의 구성, 각 방벽의 안전기능, 설계의 기본방향, 장기 안전성 입증전략, 지하연구시설에서 검증할 핵심 과제만큼은 공개해야 한다. 공개는 오히려 연구의 완성도를 높인다. 외부 전문가가 검토하고 다른 연구자가 문제를 제기하며 빈 곳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특정 지역에 짓지만, 그 안전의 책임은 지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초장기 안전성을 전제로 하는 국가적 사업이다. 그래서 부지 선정 과정에서 지역주민에게 “이곳이 안전하다"고 설명하려면, 먼저 무엇을 어떻게 처분할지부터 제시해야 한다. 현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5조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와 시설의 부지 선정·건설·운영 등 주요 사항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부지 선정이 처분시스템 확립보다 앞서면, 부지 특성에 맞춰 처분개념을 뒤늦게 조정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처분시스템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는다면 지역주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바로잡으려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의 첫 단추는 부지가 아니다. 우리가 선택한 처분시스템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검증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지하연구시설의 연구 방향이 분명해지고, 부지 선정의 기술적 기준도 또렷해진다. 그간 연구한 처분시스템을 이제 국민 앞에 내놓을 때다. 문주현

[EE칼럼] 원자력 르네상스, 사람을 준비해야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최근 세계 곳곳에서 “원자력 르네상스"가 회자된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저탄소 전력원으로서의 가치, 전쟁과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에너지 안보에 대한 경각심에 더해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의 급속한 확산에 따른 가파른 전력수요 증가가 원자력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끌어올렸다.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거나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국가가 늘고 있으며,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비롯한 차세대 원자로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나 이러한 원자력 르네상스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과 자본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원전을 설계하고 건설하며, 운영하고 규제할 사람이 필요하다. 주요 원전 운영국들은 이미 이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의 조사에 따르면 원자력발전 관련 제조업체의 63%가 인력 채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월 결정한 「7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자력의 최대 활용을 기조로 정한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 관련 전공자가 감소하면서 인력의 고령화와 기술 전승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하다. 국내 원자력 산업 인력은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지만, 원자력 전공 입학생은 2024년 709명에서 지난해 654명으로 감소하는 등 대학의 인력 공급 기반은 오히려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과 신규 원전, 혁신형 SMR 개발, 원전 해체와 사용후핵연료 관리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인력 수요가 늘고 있다. 여기에 체코 두코바니 사업을 시작으로 해외 원전 수출이 확대된다면 필요한 인력의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문제는 숫자 너머에도 있다. 원자력은 사람을 뽑는다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원전의 설계와 제작, 건설, 시운전, 운영, 정비에서부터 규제와 핵안보, 안전조치, 방사선 방호, 핵연료와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오랜 교육과 경험을 쌓은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특히 원전 건설이 오랫동안 중단됐던 국가에서는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다음 세대로 어떻게 이전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된다. 따라서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인력 문제 역시 한 국가의 문제로만 접근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원자력 공급망을 공유하고 높은 수준의 안전·비확산 기준을 함께 유지하는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인력 수급에 관한 정보를 보다 체계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 어느 국가에서 어떤 분야의 인력이 언제 얼마나 필요한지, 어느 분야에서 부족이 예상되는지를 미리 파악한다면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의 교육 프로그램을 보다 장기적으로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특정 프로젝트에서 전문인력이 일시적으로 부족할 경우 국가 간 교육과 파견, 공동훈련 등을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협력은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원전을 직접 설계하고 건설하며 장기간 운영해 온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여기에 해외 원전 건설 경험까지 가지고 있으며 원자력 안전규제와 비확산 분야에서도 상당한 경험을 축적해 왔다. 앞으로 원전 수출 경쟁에서도 이러한 경험과 인적 자산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처음으로 원전을 도입하는 신규 진입국의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원전 건설을 결정하는 것만으로 원전 운영이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할 기술자뿐 아니라 독립적으로 이를 감독할 규제기관과 전문인력, 비상대응 체계, 핵안보와 비확산 역량, 그리고 다음 세대의 인력을 길러낼 대학과 교육기관까지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와 인력은 원자로처럼 완제품으로 수입할 수도, 단기간에 만들어 낼 수도 없다. 따라서 운영자 교육, 규제 역량 강화, 대학과 연구기관의 인력 양성, 정비와 안전문화 교육까지 포함하는 장기적인 인적 역량 구축 프로그램이 한국 원전 수출 패키지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는 수입국의 원자력 안전을 높이는 동시에 공급국과 수입국 사이에 수십 년간 지속되는 신뢰와 협력 관계를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원자력 르네상스가 현실이 될수록 가장 희소한 자원은 연료보다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원자로는 수출할 수 있지만 경험은 하루아침에 수출할 수 없다. 지금부터 국내 인력의 양성과 기술 전승을 준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 인력 협력체계를 구축하며, 신규 진입국의 인적 역량 구축까지 원전 수출 전략에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다가오는 원전 르네상스에서 한국이 원자로뿐 아니라 상대국의 원자력 인력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bienns@ekn.kr

[EE칼럼] 물에너지, 기술 목록을 넘어 정책 패키지로

가뭄이 오면 발전소의 냉각수와 수력발전량이 줄고, 폭염이 오면 전력수요와 상수도 처리·이송에 필요한 전기가 함께 늘어난다.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단지는 전력뿐 아니라 대규모 용수와 냉각, 폐열·하·폐수 처리능력까지 요구한다. 이제 물 문제와 에너지 문제를 따로 풀 수 없는 이유다. 이런 배경에서 국제적으로 확산한 개념이 물-에너지 넥서스(WEN)다. 유엔(UN), 유럽연합(EU),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은 물과 에너지의 상호의존성을 하나의 체계로 보고 정책, 투자, 규제와 인프라 계획을 함께 논의해 왔다. 넥서스는 유행어가 아니라 한 부문의 선택이 다른 부문의 비용과 위험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조정의 틀이다. WEN은 물이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워터 포 에너지(water for energy)'만을 뜻하지 않는다. 물을 취수·이송·정수·재이용하고 하·폐수를 처리하는 데 에너지가 드는 '에너지 포 워터(energy for water)'까지 함께 봐야 한다. 양수발전, 수상태양광, 수열, 조력발전처럼 물과 에너지가 한 사업에 등장한다고 자동으로 넥서스가 되는 것도 아니다. 두 방향의 영향이 입지, 규모, 운영과 투자 결정에 실제로 반영돼야 한다. 한국은 WEN을 정책에 적용할 필요성이 특히 크다. 국토와 산업이 밀집돼 있고, 하나의 댐이 용수공급·홍수조절·수질·생태·발전을 동시에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국가물관리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각자 수립·운영되고 두 계획의 연결은 아직 약하다. 기후변화, 인구, 산업구조, 전력·용수 수요 같은 기본 전제와 시나리오부터 맞추지 않으면 가뭄과 폭염 때 계획 간 충돌이 커질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물과 전력 계획이 공동 시나리오와 데이터를 사용하고, 대규모 산업입지와 공공투자 단계에서 물·전력·열 영향을 함께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가 물관리, 전력 수급, 산업입지, 집단에너지와 지역개발을 연계하는 종합계획 체계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새 계획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법정계획을 공통 기준과 조정 절차로 묶는 작업이다. 여기서 WEN과 물에너지 산업정책은 구분하되 연결해야 한다. WEN은 사업을 평가하고 조정하는 의사결정 원칙이고, 물에너지 산업은 그 원칙 아래 양수발전·수상태양광·수열·조력과 수처리 에너지 회수 같은 기술과 서비스를 묶어 육성하는 정책 패키지다. 개별 기술만 나열해서는 산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동 목표, 시장, 지원수단과 담당 체계가 있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성장이 이를 보여준다.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에너지는 기술적으로 서로 긴밀한 하나의 산업이 아니다. 그러나 법률이 이들을 '재생에너지'로 묶고, 보급목표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 예산, 인허가와 연구개발을 결합하면서 하나의 시장과 산업군이 형성됐다. 기술적 유사성보다 제도적 기반이 산업 확대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물에너지에도 같은 제도화가 필요하다. 가칭 '물에너지 기본법' 또는 '물에너지 산업 진흥법'을 마련해 산업의 범위와 정책목표를 정하고, 국가 기본계획, 부처 간 조정체계, 통계·산업분류, 연구개발과 실종, 공공구매·금융지원, 전문인력 양성, 지자체 사업의 근거를 담아야 한다. 법적 지위가 있어야 안정적인 예산과 시장 창출, 지역사업의 지속성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법은 사업 확대만을 위한 진흥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통 시나리오에 따른 물·에너지 통합 검토, 유역과 전력망 단위의 누적영향, 독립적인 자료 검증, 주민과 이용자의 참여, 성과가 예상과 다를 때 운영을 조정·중단·복원하는 규칙도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물에너지'가 선호 사업을 포장하는 이름이 아니라 국제적 WEN 원칙을 실현하는 산업정책이 된다. 올해 국내에서 본격화된 물에너지 논의도 이제 개별 사업 발굴을 넘어 법제화와 종합계획으로 이어져야 한다. 물에너지 포럼 역시 기술 소개와 협력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기본법 제정, 부처 간 계획 연계, 예산과 시장제도 마련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가 그랬듯 산업은 기술의 목록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물과 에너지를 함께 보는 국제적 시각을 국내의 법과 계획으로 바꿀 때 비로소 물에너지 산업이 만들어진다. bienns@ekn.kr

[EE칼럼] 발전기를 끌 것인가, 암호화폐 채굴기를 켤 것인가

올해부터 호남권을 시작으로 재생에너지 출력제어에도 보상이 붙는다. 발전을 멈추라고 해놓고 손실은 나 몰라라 하던 관행에 비하면 분명한 진일보다. 그런데 한 발 물러서서 보면 그림이 묘하다. 우리 전력시장에는 이미 지어놓기만 하면 나가는 용량요금(CP)이 있고, 급전 지시로 돌리지 못한 발전기에 얹어주는 제약비발전 정산금이 있다. 여기에 출력제어 보상까지 더해졌으니, 공급 쪽에는 돌려도 주고 못 돌려도 주는 보상이 세 겹으로 깔린 셈이다. 근데 정작 전기를 쓰는 쪽, 즉 부하를 줄여주는 값에는 여전히 인색하다. 발전기를 끄는 일은 생각보다 비싸고 굼뜨다. 석탄이나 가스 같은 기력 설비는 출력을 내리는 데 수십 분이 걸리고, 급하게 세웠다 올리는 과정에서 설비 수명이 깎인다. 원전 감발에 따라 설비에 엄청난 무리가 간다는 무시무시한 의견도 많다. 인버터로 즉시 감발이 가능한 태양광은 사정이 다르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그 순간 당연히 만들어졌을 전기가 영영 사라진다는 점이다.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전기에 국민이 값을 치르는 구조인 것이다. 언제까지 만들지 못한 전기에 돈을 물어줄 것인가? 사업자들은 계속 우는 소리를 할거고, 다양한 발전원들을 챙겨줘야 하는 정부는 이들 전원들이 계속 영업을 확장할 수 있게 해줘야하기 때문에 결국엔 이런 용량요금+제약비발전정산금+출력제어보상 같은 파퓰리즘에 기반한 정책에밖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도 각종 전원 편을 갈라 영역 지키기만을 하고 있으니, 막상 돈을 내는 국민들은 눈가린 장님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부하를 끄면 어떻게 되나. 발전기는 그대로 돌고, 만들어진 전기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전기를 먹고 있던 소비처가 잠시 빠져줄 뿐이고, 그 몫은 폭염 속 에어컨과 병원, 냉동창고로 흘러간다. 같은 돈을 쓰더라도 한쪽은 허공에 지불하는 것이고, 다른 쪽은 배분을 조정한 대가다. 계통 입장에서 공급을 조절하는 것보다 수요를 조절하는 편이 훨씬 싸고 빠르다는 건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우리 제도는 여태 공급 쪽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래서 수요를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 부하가 중요한 것이고, 그동안 남는 전기로 수전해 수소를 만들어 축적하던지 열로 만들던지 전기차를 충전하던지 양수나 배터리 충전을 하던지 등등 소위 섹터커플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경제성 부족으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암호화폐 채굴(mining)은 그 경제성에 비해서 아직 주목을 못받는거 같다. 일전에 한 세미나 자리에서 본 주제를 꺼냈는데, 전기가 안그래도 부족한데 비트코인 같은 “투기자산"을 생산하기 위해 또 전기를 낭비하자는 것이냐며 비판도 받은 바 있다. 그래서 필자도 이 소재를 꺼내기가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러나 계통이 보는 것은 그 부하가 무엇을 위해 전기를 쓰느냐가 아니라, 신호를 보냈을 때 몇 초 만에 사라져 주느냐다. 채굴장은 결국 컴퓨터 더미다. 수백 MW를 수 초에서 수 분 안에 0으로 내릴 수 있고, 껐다 켜도 망가지지 않으며, 계통에 여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지을 수 있다. 단 요즘 각광받는 AI 데이터센터와 헷갈리면 안되는 것이, 데이터센터는 오히려 경직성 부하로서 서비스 약정상 24시간 켜져 있어야 한다. 실제로 텍사스에서도 채굴장이 데이터센터로 갈아타면서 계통의 비상 제동장치가 줄어든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국내 사정은 다르다. 암호화폐 채굴은 여태 제도의 회색지대에 놓여 있어, 수요자원으로 시장에 등록될 길 자체가 열려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채굴이 쓸모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제도가 아직 그 소중한 쓸모를 담을 그릇을 만들지 않았다는 뜻일 뿐이다. 딱히 기술적인 문제가 존재한다기 보다는 제도적인 인허가의 문제일 뿐인거 같은데 말이다. 이러한 방식이 통할 수만 있다면, 맞지도 않을 주기적인 전력수급기본계획 같은 것을 계속 만들어 전원별 칸막이를 치면서 개별 전원의 성장을 정부가 주도하기보다는, 유연성 부하를 넓게 인정해줘서 발전원 신설도 사업자에게 완전히 맡길 수 있다. 전기가 남아돌면 뭐 어떤가? 사업자들이 알아서 남는 전기 이용해 수소를 축적하든 비트코인 채굴시키면 되지 않은가. 즉 구조적으로 수용량의 상한이 올라가는 것이다. 잉여를 흡수할 수요가 있으면 출력제어 걱정이 줄고, 출력제어 걱정이 줄면 재생에너지를 수요보다 훨씬 많이 짓는 초과건설(overbuilding)도 합리적인 투자가 된다. 수용량이 경직적으로 딱 정해져 있으니 “전력 부족한데 2배 비싼 신재생 쓰느라…멀쩡한 원전 쉬게 했다." 류의 비판도 계속 나오는게 아닌가. 언제쯤 우리는 제약발전으로 전기가 얼마나 덜 만들어졌는지, 넉넉잡은 예비율에 생산비가 얼마나 새는지를 해마다 세어보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전력이란 상품만 유독 시장경제의 예외가 되니, 정부는 항상 발전사업자 각각의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보며, 이 집은 적자가 나겠구나 저 집은 못 버티겠구나 일일이 헤아려 줘야 한다. 시장을 열어놓고 정작 그 안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받쳐주는 일을, 우리는 꽤 오랫동안 또 너무도 당연하게 정책이라고 부르고 있다. bienns@ekn.kr

[김성우 시평] 에너지 전환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이달 3일 재정경제부가 '2026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부동산 세제의 개편안에 대해 언론이 하루가 멀게 다루었고, 집을 가진 사람이나 갖고 싶은 사람에게는 집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세제개편안이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6년 세제개편안에는 부동산 이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대상이 있는데, 이는 에너지전환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이다. 특히 법인세제 부문은 녹색전환 및 경제안보 차원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산업의 국내 생산기반을 확충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바, 기존에도 전략산업으로 다루어져 온 반도체·이차전지·AI 등에 태양광·풍력·원자력 등 에너지가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글로벌 지정학적 공급망 리스크가 반복되면서 국내에 에너지 생산 기반을 확보하려는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세제개편 방향의 배경이다. 에너지전환에 대한 세제개편안은 크게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신설되는 국내생산세액공제의 주요 대상이 에너지전환 품목이라는 점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녹색전환 추진이 시급하고, 보호무역 확산 등으로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 중 국내 생산기반이 취약한 품목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내생산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또한, 기존 통합투자세액공제는 시설투자(CapEx)에 대한 지원에 집중되어 있어 생산운영비(OpEx)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산업에는 지원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문제의식도 반영되어, 생산량에 기초하여 세액공제하는 새로운 지원 체계가 마련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원 대상은 중요성·유망성·필요성의 기준에 따라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이차전지, 반도체, 핵심소재, AI로봇부품의 6개가 선정되었고, 구체적인 적격품목은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에서 규정될 예정이다. 적용요건으로 내국인(거주자 또는 내국법인)이 적격품목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고 직접 판매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참고로 통합투자세액공제 적용 시설 생산분과 수도권과밀억제권역 생산분은 국내생산세액공제가 적용배제되지만, 2026년 12월 31일 이전에 통합투자세액공제를 적용받은 납세자는 이를 취소하고 국내생산세액공제로 전환 신청할 수 있다. 둘째는 국가전략기술 중 '수소' 분야가 '미래형 에너지' 분야로 확대 개편된다는 점이다. 국가전략기술 및 관련 시설에 대한 통합투자 세액공제율은 일반기술 및 신성장·원천기술보다 높게 설정되어 있다. 기존 국가전략기술은 반도체, 이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 수소, 미래형 운송 및 이동수단, 바이오의약품, 인공지능의 8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 개편안은 '수소' 분야를 소형모듈원전(SMR, Small Modular Reactor)과 같은 '미래형 에너지' 분야로 확대 개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글로벌 초격차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3대 메가프로젝트 이행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안정적 에너지원 확보가 긴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이차전지와 같은 에너지전환 품목을 생산하거나 SMR 등 미래형에너지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이라면 신설되는 국내생산세액공제과 확대되는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개편의 적용 가능성과 요건을 미리 숙지할 필요가 있다. 2025년 세제개편 역시 경제 대도약 지원을 위한 과제로 미래 전략 산업에 대한 지원 강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 핵심 수단으로써 국가전략기술과 신성장·원천기술의 범위를 확대했고 여기에 에너지전환 기술이 추가된 바 있는데, 올해는 중동사태까지 더해져 에너지전환에 대한 지원이 더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세제개편안은 통상 7월 발표 후 9월 국무회의를 거쳐 정기국회에 제출되고 12월 본회의 의결로 확정되면 다음해 1월 1일 시행된다. 이에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일부 변경될 수 있으며, 세부 내용은 하위법령(시행령·시행규칙)에서 정해질 예정이다. 따라서, 기업은 향후 국회 본건 개정안 심사 경과 및 시행령 등 하위 규정 제정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고, 수준 높은 세제혜택에 상응하는 엄격한 요건 입증과 사후 검증에도 미리 대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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