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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기후위기 시대, 실용적 기후정치를 바란다.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25년 7월, 세계 곳곳이 기후 재난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텍사스와 중국 충칭에서는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도시 기능이 마비됐고, 인도 북부와 유럽 남부는 5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전력 공급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상기후는 더 이상 '기후위기'라는 미래형 담론 속에 존재하는 위협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체감되는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시점에, 세계 주요국에서는 오히려 기후정치가 후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재집권 이후, 파리협정 재탈퇴, 화석연료 규제 완화, 미국 환경보호국(EPA: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구조개편, 기후손실·피해기금(Loss and Damage Fund) 기여 중단 등 강력한 반기후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환경 규제뿐만 아니라, ESG 투자 및 정보공시에 대한 제도적 후퇴도 진행되며, 연방정부 차원에서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은 급속히 무력화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가장 선도 주자였던 유럽연합(EU) 역시 일정 부분 정책 후퇴가 감지된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우파 정당의 약진과 농민 시위, 산업계 반발 등을 계기로 기존의 EU 그린딜(Green Deal) 정책은 후속 입법과 집행에서 제동이 걸렸다. 탈산림 규제(EUDR: EU Deforestation Regulation) 유예,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CSRD: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완화, 자동차 배출 기준 이행 시점 연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예외 확대 등 규제 완화 움직임이 잇따랐다. 친환경 농약 규제와 생물다양성 복원 법안도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물론 EU는 여전히 강력한 배출권거래제(ETS: Emission Trading System)를 유지하고 있으며, 2050년 탄소중립 목표도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여건 변화로 인해 실제 규제 수준은 약화되고 있고, 산업계와 금융시장에서는 기후 규범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ESG 투자자들은 과도한 공시 부담과 고금리 환경 속에서 점차 자본 흐름을 재조정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기후정치의 '종말'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주(州) 정부나 연방 법원이 연방정부의 규제 후퇴를 견제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한국과 여러 사정이 비슷한 일본은 2025년 상반기에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오히려 상향 조정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3년 대비 60% 감축이라는 높은 수치를 제시했는데, 그 수단으로 재생에너지는 물론 원자력 발전, 수소·암모니아 발전, 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 기술(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 등 녹색전환(GX: Green Transformation)의 관점에서 다양한 감축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결국 탄소감축과 산업경쟁력 제고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이중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전환의 시기, 한국 같은 중견국은 어떤 전략을 취할 수 있을까? 신정부는 '기후에너지부' 출범과 함께 정책 통합을 예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의 행보는 명확한 산업전략과 사회적 설득 모두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을 적정하게 믹스하면서 가는 게 장차 한국의 에너지 방향"이라고 말하며, 탈원전 정책으로의 회귀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는 선을 긋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원자력 확대, 수소와 LNG 활용, 전기요금 조정 등은 여전히 정치적 대립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며, 기업 부담과 민생 불안은 정책 조율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추상적 수사보다, 실용적 기후정치의 재구성이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은 유지하되, 감축 수단과 기술 투자 방향은 한국의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일본처럼 목표는 높이더라도, 수단은 산업 정책까지 아우르며 전략적으로 구성해야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정치의 후퇴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일 수 있다. 글로벌 규범과 국내 산업전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 그것이 신정부 기후정치의 핵심 경쟁력이 되기를 요구한다. 임은정

[EE칼럼] 원전 수소는 철기문명의 디딤돌이다

인류는 3천 년 전 철기 시대를 열어젖힌 이후, 세계사는 지금까지 사실상 철기 시대의 연속이다. 철의 시대를 개막한 히타이트 제국, 코크스 제철 방식으로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영국 등 문명 전환기에는 항상 철이 있었다. 제철 기술에 앞선 국가는 번영했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실제로 청동기에 머무르고 있던 잉카제국이 철제무기로 무장한 스페인에게 힘없이 무너진 역사적 경험도 있다. 오늘날 현대 문명도 여전히 철강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는 약 19억 톤의 철강을 소비하고 있다. 전체 금속 소비의 95%에 해당하는 압도적 물량이다. 철강 생산이 문명의 지속 가능성과 맞닿아 있는 이유다. 철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는 코크스 제철 방식의 발견이다. 철은 산화철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환원 과정을 거쳐야 생산된다. 1000도 이상의 고온이 필요한 공정이다. 처음에는 목탄을 사용했으나 목재 공급이 걸림돌이었다. 산림이 빠르게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영국 의회는 16세기 수목 벌채를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하기도 했다. 제철산업 더 나아가 문명 발전의 위기였다. 구리 제조업자였던 아브라함 다비는 1709년 오늘날 코크스라 불리는 점결탄을 용광로에 넣어 철을 녹이는데 성공했다.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사용되는 코크스 제철 방식의 탄생이다. 코크스 방식은 연료비 절감, 고온유지, 규모의 경제 등의 이유로 철강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1700년대 초반 2,500톤 정도에 불과하던 영국의 철강 생산량이 1850년에는 약 1,000배가 증가한 250만 톤으로 급증했다. 화학적으로 탄소 덩어리인 코크스는 당연히 제철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제철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비중은 7%에 이르고 있다. 단일 산업으로 최대 규모다. 당연히 금세기 최대 의제인 탄소중립과 충돌한다. 탄소중립은 단순 선언을 넘어 실존하는 무역 규제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140개 이상의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했으며, 유럽연합은 2026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시행한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6개 업종이 첫 시험대에 오른다. 이들 산업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은 이제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이다. 한국은 세계 6위의 철강 대국이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곧 한국 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는 배경이다.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제철 기술은 수소환원제철이 유일하다. 이산화탄소 배출의 원인이 되는 코크스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시험 생산설비에서는 이미 검증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규모 생산설비의 상업 생산에는 본격적으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대량의 수소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물 분해인데, 저온 전기분해와 고온 전기분해 방식이 있다. 전자는 전기만을 사용하는 반면, 후자는 열과 전기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어서, 고온의 열을 값싸게 얻을 수 있다면, 훨씬 경제적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여기에 한국 철강산업의 활로가 있다. 원전과 철강 산업의 결합이다. 원전에서 24시간 생산되는 전기와 열을 활용해 얻는 소위 핑크수소를 제철 환원제로 사용하면, 수소환원제철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3시간 남짓 전기만을 생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소위 그린 수소보다 훨씬 경제성이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세계는 이미 수소환원제철 경쟁력 확보 경쟁을 시작했다. 스웨덴의 HYBRIT 프로젝트는 수력과 원전을 기반으로 생산된 수소를 활용하는 수소환원제철 방식을 2026년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프랑스 EDF도 자국 원전을 활용해 2030년까지 1GW 규모의 청정 수소 생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국도 뒤처지지 않았다. 포스코는 일찌감치 독자적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 기술을 개발했고, 현대제철은 하이큐브라는 독자적 수소환원제철 기술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수소 확보는 난항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원전 수소만이 답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재생에너지 중심의 수소경제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어서 안타깝다. 철은 현대 문명의 근간이다. 수소는 미래의 에너지다. 원자력은 탄소중립 시대에 철기 문명을 이어갈 디딤돌이다. 박주헌

[EE칼럼] 에너지 없는 국가에는 내일은 없다

개인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거나 국가의 산업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에너지와 자원이다. 인류의 문명과 산업 발전과 변화에 따라 필요한 에너지자원의 종류와 양은 변하고 있다. 에너지원을 살펴보면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석탄의 사용이 증가하였다. 그 뒤를 이어서 대표적인 내연기관인 자동차의 등장으로 석유가 에너지원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의 지속적인 인구 증가와 산업 규모의 팽창은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였고 우리는 대부분 손쉽고 익숙한 화석연료로 공급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지구의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인간의 삶을 더욱 편하게 하는 전기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전기는 석탄, 가스, 원자력 등과 같은 1차 에너지원을 사용하여 만들어 우리가 필요한 장비나 장치에 사용되기 때문에 2차 에너지원이라 부른다. 향후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전환 시대의 핵심은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현재 20% 수준인 전기화 비율이 2050년엔 45% 수준으로 높인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계획이다. 확대일로에 있는 자동화 시대, 인공지능 시대, 빅데이터 시대는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필요로 할 것이다. 사람들이 한시라도 손에서 떼지 못하는 스마트 폰에도 60가지 이상이 광물이 사용되고 있고, 대표적인 이동 수단인 자동차에도 석유나 전기 충전이 필요하다. 에너지 한국은 전기의 시대를 대비한 충분한 준비와 계획은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의 에너지와 자원 현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2024년 기준으로 1차 에너지원은 석유(39%), 석탄(22%), 천연가스(20%) 등 화석연료가 80%를 넘고, 저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13%), 재생에너지(5%)는 20% 미만을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94% 에너지원을 해외에 의존하니 공급망 확보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국가의 에너지와 자원은 하나의 에너지원이 일회성으로 한 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에너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의 책임하에 꾸준한 안정적 확보가 필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토가 좁기 때문에 부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자원도 빈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미래 시대를 준비하는 제대로 된 국가라면 국내외 에너지와 자원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한번 시도해 보고 실패했다고 이번 정부에서 손을 놓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러다 보니 40년이 넘는 자원개발 역사에서 배운 것이 있어도 축적이 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버렸다. 그동안 우리는 일을 잘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스템만 만드는 것 같다. 에너지와 자원개발은 성공하고 완성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 또한 불확실성이 크고 성공 확률이 낮은 대표적인 사업이다. 이런 분야에서 필요한 과학과 도전 정신이 사라지고 있으니, 자원개발의 성공은 점점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지난 45년 동안 자원개발이 잘 추진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계획이 없어서도 실력이 없어서도 아닌, 자원개발의 정치적 이용에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탈정치가 필요한 것처럼 에너지자원의 탈정치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국가 차원의 에너지자원 확보를 정권의 정치적 활용도에 따라 냉온탕만 오가다 보니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도 불가능하고 성과도 기대할 수 없다. 한 국가의 에너지와 자원확보는 국가 산업 발달 단계에 따라 다양성과 변화가 있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이어달리기와도 같다. 내가 맡은 임기만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국가의 장기적인 계획에서 각 정부의 주어진 임기에서 주어진 책무를 잘 이해하고 추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현실의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하면서도 긴 안목으로 장기적인 국가 차원의 에너지자원 확보 정책이 추진되길 기대해 본다. 신현돈

[EE칼럼] 미국에 부는 원자력 바람

2023년 12월 두바이에서 개최된 유엔 COP28 기후변화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22개 국가 장관들이 2050년까지 전세계 원자력 발전용량의 3배 확대를 위한 선언문에 서명한 큰 뉴스가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초일류 IT대기업들이 원자력 에너지에 직접적인 투자를 강화한다는 기사도 신문 지상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사실 더 충격적인 소식은 작년 9월에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텐리, BNP파리바 등 대형 은행들이 원자력에 자금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는 워낙 고가의 시설이라 건설에 엄청난 자금을 소요하는데, 단순히 기술적으로 복잡한 것도 문제이지만 정치적 이슈까지 결부되게 되면 공기가 지연되거나 추가 비용이 소요되는 일이 발생한다. 한 예로, 미국 조지아주에 웨스팅하우스사가 건설하였던 AP1000 발전소 2기의 가격이 처음에는 140억달러(한화로 약 19조원)로 추정되었으나, 공기지연 등으로 인해 최종적으로는 2배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공기가 지연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추가되고 이를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동안 미국에서는 이런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려는 은행이 없어 일반 전력회사들이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을 시도하기가 어려웠었다.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와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인데, 지난 9월 주요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원자력 프로젝트에의 자금 공급을 선언한 것이다. 여기에 몇가지 요소가 더해지면서 미국에서는 원자력을 둘러싼 정치 경제 상황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먼저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지난 5월 23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원자력 발전량을 4배로 늘이겠다고 공언하면서 일련의 행정명령을 동시에 발표하였다. 간단히 요약하면, 신형 원자로 기술 개발과정에서 에너지부가 각종 실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국방부의 원자력 사용을 활성화해서 2028년까지 실제 발전을 개시하고, 비과학적이거나 지나친 규제를 줄여 인허가과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AI데이터 센터에 활용되는 에너지부 원자력 시설을 국방 시설로 지정하고, 2030년까지 5GW의 전력추가 생산과 10대의 신규 대형 원자력발전을 위한 융자를 실시하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급진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원자력에너지 지원 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각 주 정부들도 앞 다투어 원자력을 지원하는 법률과 제도를 만들고 있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특성상 연방정부가 상위 정책을 시행한다고 해도 각 주에서 이에 맞는 제도를 만들지 않으면 실제 실행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수 있는데, 이러한 주정부 차원에서의 변화는 원자력에너지를 채택하는 큰 원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 중앙/지방 정부 및 정치권 전반에 걸쳐 적극적으로 원자력을 활용하기 위한 흐름이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표적인 친원자력 주인 텍사스에서 3억5천만 달러의 원자력개발기금을 신설하는 법안을 상하원에서 통과 시켰고, 그 동안 원자력 신규 건설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대표적인 민주당 텃밭인 뉴욕에서도 원자력 마스터 플랜을 수립하면서 주지사가 신규 선진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두가지 모두 이번 6월에 일어난 일이다. 콜로라도, 워싱턴 등 여러 주에서 원자력 에너지를 클린에너지 옵션으로 채택하고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주에서 법령을 개정하여 신규 원자력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각 주정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대형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공장을 그 지역에 수용하기 위해서는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안정적인 에너지원 마련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고, 최근의 전력 부족사태로 치솟은 전기요금으로 인한 민원에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 또한 중요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련의 원자력에너지 지원책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을 살펴보면,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미국의 오랜 전통과 더불어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 원자력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국가 안보의 측면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그리고 중국이 집중 견제를 받기 전이었던 시기에는 이 두 나라가 세계 원자력 신규 건설 시장을 거의 차지하고 있었고, 미국, 프랑스, 우리나라 정도가 서방세계에서 원자력 플랜트 건설 기술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장경제 측면에서 보면, 미국 대형 IT업계에서는 비즈니스 연속성과 확장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탄소배출을 피하기 위해 원자력에너지 활용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 가고 있다. 메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Open AI, 엔비디아 같은 거대기업이 원자력을 택하고 있는데, 지난 3월에 개최된 S&P Global의 CERAWeek 컨퍼런스에서 이들 기업들은 '전세계의 원자력에너지 이용을 2050년까지 최소한 3배'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에 서명하였다. 이것은 시장이 원자력을 배제한 RE100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는다는 매우 중요한 신호탄이다. 심지어 구글이 최근 발표한 것에 따르면 어떤 원전을 지을지도 특정하지 않은 채로 선부지확보를 통해 600MW급 원자력 에너지 시설을 3곳에 설치하겠다고 한다. 지금 미국에서는 원자력 바람이 이렇게 거세다. 필자가 재직 중인 대학에서 원자력전공을 택한 올해 입학생이 70%가 늘어났다 한다. 서방세계 원자력 강국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이 바람이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본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EE칼럼] 중앙계약시장, 양수발전에도 문을 열어야

“해상풍력으로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까?" 제21대 대선 1차 TV토론에서 이재명·이준석 후보는 이 질문을 두고 날카롭게 맞붙었다. 쟁점은 전력공급의 '안정성'이었다. 이준석 후보는 “해상풍력은 태풍 등 기상 변수에 취약하다"라고 지적했고, 이에 이재명 후보는 “ESS(Energy Storage System)를 활용하면 간헐성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라고 맞받았다.이때 언급된 ESS는 필요할 때 전력을 공급해 주는 '에너지저장장치'다. 방전 시간에 따라 4시간 미만의 '단주기형'과 4시간 이상의 '장주기형'으로 나뉘는데, 데이터센터처럼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한 시설에는 장주기형 ESS가 필수다. 현재 이 기능을 수행하는 대표 기술이 양수발전과 BESS(배터리 ESS)다. 이중 양수발전은 밤에 물을 끌어 올리고, 낮에 흘려보내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본래는 심야 시간대 원자력발전의 출력을 흡수해 낮 시간대 피크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야간 충전-주간 방전' 구조였다. 그러나 전력시장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양수발전은 전력 계통의 실시간 변동에 대응하는 유연한 자원으로 역할이 전환되고 있다. 최근에는 태양광이 과잉 공급되는 낮 시간대에 물을 끌어 올리고, 수요가 몰리는 저녁 시간대에 발전하는 '주간 양수-야간 발전' 패턴이 일반화되고 있다. 양수발전의 시스템적 중요성은 커졌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했다. 재생에너지 확산으로 전력도매가격(SMP)의 시간대별 변동 폭이 줄면서, 최대부하와 경부하 시간대 간 가격 차도 축소되었다. 그 결과, 양수발전이 전통적으로 의존해 온 '차익거래' 수익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정부는 최근 전력시장 운영규칙을 개정해, 양수 동력 정산 기준을 실적 시간대의 최저 시장가격(MP)으로 조정하고, 용량요금 산정 시 인정 시간을 기존 6.7시간에서 16시간으로 확대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낮은 설비 이용률과 효율 손실, 보조 서비스 정산금의 한계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발전공기업들은 양수발전 사업을 유지하고, 일부는 신규 사업도 추진 중이다. 수익이 나지 않음에도 이러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양수발전은 단순한 수익성을 넘어 전력 계통의 안정성과 재생에너지 수용 확대에 필수적인 기반 시설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 낮 시간대, 예비력을 확보하고,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의 출력 변동을 흡수할 수 있는 대규모 유연성 자원은 사실상 양수발전이 유일하다. 공기업들은 이와 같은 공익적 기능을 고려해 책임을 감수하며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양수발전은 공공 인프라로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지금의 양수발전은 '수익은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자원으로서, 공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8년까지 총 6.95GW 규모의 신규 양수발전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공기업만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민간 참여가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호주, 미국, 일본, 스페인 등은 장기 전력구매계약(PPA), 용량시장, 운영보조금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민자 양수발전 사업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수익성 부족이라는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민간이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장 논리만으로는 투자를 유도하기 어렵기에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특히 양수발전 역시 BESS처럼 중앙계약시장 방식의 보상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재처럼 전력도매가격(SMP)에만 의존하는 시장 구조로는 양수발전이 수행하는 공공적 기능에 걸맞은 보상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장주기형 BESS를 대상으로 중앙계약시장을 운영 중이다. 이 시장은 입찰을 통해 계약가격을 정하고, 최대 15년간 예측할 수 있는 수익을 보장하는 구조다. 양수발전에도 이와 유사한 장기 계약이나 성능 기반의 보상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양수발전이 BESS에 비해 받는 제도적 비대칭을 해소하고, 민간 투자를 유도하며, 국가 전력 계통의 유연성을 지속 가능하게 뒷받침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김재경

[EE칼럼] 새정부의 “핵심광물 확보 전략” 성공 조건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희토류 등 핵심 전략광물 54종의 공급 위험도가 높게 조사됐다. 특히 이 광물들의 중국 의존도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 위험도는 공급 차질 가능성과 무역 의존도, 경제적 취약 등 크게 3가지 요소가 종합된 것이다. USGS는 54종의 공급 위험도 광물 중 36종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였으며 이 중 24종의 주요 생산국이 중국이다. USGS는 고위험군 광물의 중국 의존도가 66%에 이른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의 중국산 광물 의존도는 나타난 수치보다 더욱 심각하다. 미국은 국방의 핵심인 F-35 전투기 한 대 제작에 희토류 약 400Kg이 필요하다. 최신 이지스 구축함에는 희토류 2,400Kg과 구리·철 등 각종 광물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금속광물 수입액은 약 33조 원이다. 여기에 원유와 가스, 유연탄 등 에너지 수입액 약 226조 원을 더 하면 에너지 및 광물 총 수입액은 약 260조 원으로 국가 전체 수입액의 29.6%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액은 세계 5위 수준이고 광물 수입은 세계 10위권이다.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 때 해외 자원개발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2007년 유연탄·우라늄·철·구리·아연·니켈 등 6대 전략광물의 자주개발률이 18.5%에서 2010년 27%로 급상승했으며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리튬·희토류 등 핵심광물의 자급률도 8.5%를 달성했다. 자주개발률은 자원의 수급 구조가 유사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사용했던 용어로 전체 수입량 대비 우리 기업이 통제 권한을 갖고 있는 지분 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6대 전략광물의 경우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를 앞세워 자주개발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구리 확보를 위해 미주지역에 대규모 구리 광산을 다수 보유한 캐나다 캡스톤사와 파웨스트 마이닝사의 지분을 인수했으며 이를 통해 미주지역을 관통하는 구리 벨트(캐나다-캡스톤, 미국-로즈몬트, 멕시코-볼레오, 파나마-꼬브레파나마, 페루-마르코나, 볼리비아-꼬로꼬로, 칠레-산토도밍고) 등 생산 1곳과 개발 4곳, 조사 2곳 등 총 7개 사업을 확보했다. 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의 필수 원료인 희소금속을 집중 확보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2009년 10월 “희소금속 산업 종합 대책"과 2010년 10월 “희소금속 안정적 확보 방안"을 통해 체계적으로 희소금속 확보에 나섰으며 그 결과 이차전지의 핵심 원료인 리튬 확보를 위해 칠레-아르헨티나-볼리비아 등 “리튬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남미 3개국에서 국내 수요의 약 6배 규모에 달하는 물량을 확보했다. 2014년부터 칠레 엔엑스우노 광산에서 연간 4만 톤, 아르헨티나 살데비다 광산에서 연간 1만 2천 톤을 생산하여 반입키로 했다. 볼리비아는 2009년 8월부터 포스코와 광물공사가 공동으로 진출해 연구개발부터 리튬 사업화로 이어지는 구체적 실행 단계까지 이어졌었다. 한편 희토류는 중국의 수출 제한 및 무기화에 대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잔드콥스드리프트 탐사사업에 진출하여 개발 지역을 다변화하고 중국 포두영신 개발사업을 통해 희토 영구자석 1,500톤을 확보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자원개발 생태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23년 2월 핵심광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핵심광물 확보 전략“을 수립했다. 핵심광물 공급 리스크 및 국내 경제적 영향에 대한 분석을 통해 경제 안보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한 33종의 핵심광물을 선정했다. 이 중에서도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공급망 안정화에 필요한 10대 핵심광물(리튬·니켈·코발트·망간·흑연·네오디뮴·디스프로슘·터븀·세륨·란탄)을 우선 관리키로 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10대 핵심광물에 대해 특정국 의존도를 50%대로 낮추고 재자원화를 20%대로 확대키로 했다. 중요한 것은 산업부가 추진키로 한 "핵심광물 확보 전략“이 새 정부에서도 꾸준히 추진되어야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해외 자원개발 성장 속도와 성과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았다. 치밀한 전략, 과감한 투자, 폭넓은 외교 등이 한국이 자원 빈국에서 자립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튼튼한 초석이었다. 새 정부는 과거 정부의 해외 자원개발 경험을 거울삼아 이미 수립된 정책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자원산업 육성 정책을 실천해 주길 바란다. 강천구

[EE칼럼]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바야흐로 AI와 데이터센터의 시대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국가가 이 미래산업에 사활을 걸고 달려들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인공지능 세계 3강 진입을 목표로 다양한 공약을 제시했으며 대통령실에 AI미래기획수석을 신설하는 등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와 동시에 세계는 자신들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은 에너지 위기 이후 급등한 에너지 비용이 가져온 제조업 위기 돌파를 위해 다양한 에너지 비용 완화 인센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엔 보조금과 같은 직접적 인센티브를 비롯해 기후의제 완화 같은 제도적 걸림돌 제거 등이 포함된다. 프랑스와 독일은 정상들이 직접 공급망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며 유럽의 그린워싱 방지법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철회되었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자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동맹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관세 폭탄을 투하하고 있으며 '드릴 베이비 드릴'로 대표되는 에너지 공급 확대는 물론이고 저렴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모든 에너지원의 개발'을 표방하고 있다. AI와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한다. 미국 텍사스 주는 현재 85기가와트의 전력공급 능력을 6년 후 150기가와트로 늘려야 할 수 있는데 이 추가 공급의 50%가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예정이다. 워싱턴 소재 에너지 리서치 유닛(ERU)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가 베트남을 제외한 아세안 국가 전력 수요의 2%에서 최대 3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는 이와 같은 대규모 신규 부하를 경험한 적이 없다. 제조업 부활에도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미국 알루미늄 협회에 따르면 알루미늄 1톤을 만드는 데 14,821킬로와트시의 전력이 필요하다. 연간 생산 능력이 75만 톤인 현대식 제련소에는 보스턴 크기 도시보다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미국 에너지 정보국은 2030년까지 3,100만 메가와트시, 2035년까지 4,800만 메가와트시의 에너지 부족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센추리 알루미늄은 2022년 켄터키주 호즈빌 소재 제련소를 “치솟는" 에너지 비용을 이유로 가동 중단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몰락을 불러왔던 미국 제련소 평균 전력비용은 2024년 메가와트시 당 33달러였다. 공급을 시급히 확충하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이는 어려운 미션이다. 원전의 경우 완공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걸리는 반면 데이터센터는 2~3년에 불과하다. 브릿지 연료로 각광받는 천연가스 발전소의 경우는 밀려드는 주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데 가스터빈 대기시간에만 5년이 걸리고 지난 10개월 동안 가격은 50% 이상 상승했다. 인건비도 상승하면서 발전소 건설 비용만 3배 가까이 올랐다. 빠른 공급 확대도 어렵지만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저렴한 전기가 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남는 건 선택이다. 미국 알루미늄 협회는 제련소가 메가와트시당 약 40달러 비용으로 장기 전력 계약을 요구했지만, 빅테크 기업은 메가와트시당 100달러 이상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빅테크의 프리미엄 지불과 송전 용량 제한은 미국 전력 가격을 꾸준히 상승시킬 것으로 우드 매킨지와 CRU는 예측하고 있다. 선택의 결과가 전력요금 상승이라면 제조업 부활은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미래 핵심 산업을 포기하는 건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2023, 2024년 산업용 전력 판매량은 각각 전년 대비 1.9%, 1.5% 뒷걸음질 쳤고 1990년대에 20%를 웃돌던 일자리 중 제조업 취업자 비중은 15.5%로 감소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 요금은 중국과 경쟁이 버겁다는 미국보다 60% 이상 비싸다. 제조업 경쟁력을 지키면서도 미래 먹거리인 AI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함께 저렴한 조달이 핵심이다. 현 정부엔 둘 중 하나라는 선택지는 없다. 제조업과 미래산업에 모두 성과를 거두기 위한 안정적이면서 저렴한 에너지 공급 전략은 당장의 대안인 기존 발전소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EE칼럼] 기후대응 모범국으로...재생에너지로 가는 길

서유럽의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는 지난 5월 재생에너지 설치를 지원하기 위한 51개 조치를 발표했다.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재생에너지 설치를 가속하기 위한 이번 조치는 주로 옥상 태양광, 농촌형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30kW 이하의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설치하는 경우 지방 자치 단체의 승인이나 허가를 거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일반개발계획(PAG) 외부 녹지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경우 건축 허가 신청서 제출 의무도 사라졌다. 공공 건축물, 고속도로, 주차장, 유휴부지에는 태양광 설치가 가속화될 것이며, 기존 태양광에 설치되는 에너지저장장치에는 정부 보조금이 적용된다. 30kW에서 200kW 재생에너지는 입찰을 통해 정부 지원을 제공하고 농촌형 태양광은 정부가 적극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세르주 윌메스(Serge Wilmes) 환경·기후·생물다양성부 장관은 “이번 조치는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고, 기후 약속을 존중하며, 모두의 삶의 질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포괄적인 접근 방식의 일부이며, 생물 다양성, 기후 및 삶의 질은 본질적으로 분리할 수 없고 각 요소는 다른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강조했다. 룩셈부르크는 국가 에너지 및 기후 계획(PNEC)에 따라 2030년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 37% 점유율(2023년 11.8%)을 달성하고, 2050년까지 기후 중립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룩셈부르크의 총 재생에너지 용량은 861MW이며, 이 중 523MW는 태양광이고,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점유율은 90.4%다. 지난 5월 14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이 REPowerEU를 시행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REPowerEU는 러시아 화석연료 의존을 빠르게 줄이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여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을 45%(법적 구속력이 있는 목표는 최소 42.5%)까지 높이며,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성을 높여 에너지 공급 안정성과 기후 목표 달성을 동시에 추구했다. 2022년 45%에 이르던 러시아산 가스 수입 비중은 2024년 18%까지 감소한 데 이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러시아산 가스 중단 2단계 로드맵'을 제시하며 2027년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원유, 가스) 및 우라늄 수입 전면 금지를 공식 발표했고, EU 회원국들의 기후 목표 달성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새로운 국가 지원 규칙을 채택했다. 회원국들은 기후 목표를 상향하고 주차장 및 주택 태양광 의무화 등을 확대하고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EU의 2021년 재생발전량 점유율은 37.5%에서 2024년 47.5%로 급증했고 풍력 발전 점유율 17.5%는 수력 점유율 13.2%와 가스 점유율 15.7%를 넘어섰고 태양광 발전 점유율 11.0%도 석탄 점유율 9.8%를, 태양광과 풍력 발전 점유율 28.6%도 핵발전 점유율 23.6%를 크게 앞섰다. 재생 발전설비 신규 건설은 태양광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2024년 말 기준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은 304GW, 풍력 231GW로 발전원 기준 1.2위를 차지하고 있고, 2024년 신규 건설된 용량도 태양광이 58GW로 두 번째로 많이 건설된 풍력 12GW에 4.6배가 된다. 태양광 발전은 2025년 목표 320GW를 약 30GW 이상 초과할 것이며, 2030년 목표 600GW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2025년 6월 4일 출범한 새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 중립을 강조하며 친환경 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을 공약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기후위기 대응도, 에너지 전환도 '국민이 하는 것 즉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생에너지 전환 시급성과 효용성을 국민이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2024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성적표를 보면, 재생발전량 점유율은 몇 년째 OECD 꼴찌이자 세계 평균의 1/3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아시아 평균 29%, 아프리카 평균 24%에도 크게 뒤지고 있다. 최소한 지금의 3배 이상은 되어야 세계 평균 정도가 된다. 우리나라는 누적 탄소 배출량과 연도별 탄소 배출량에서 각각 세계 10위 국가다. 탄소는 많이 배출하면서 재생에너지는 세계 꼴찌 수준인 대표적인 기후 악당 국가, 기후 불량 국가다. 다행히 이번 '국민주권 정부'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성을 인지하고 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을 추진키로 하였으니 빠르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여 세계 평균을 넘어서고, 기후위기 대응 모범 국가가 되어가는 달라진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EE칼럼] 에너지 전환의 시대, 한국은 어느 길 위에 서 있는가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IAEE 부회장 6월 15일부터 18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제46회 국제학술대회는 유럽에서 열리는 여느 에너지 분야 학술대회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협약 부문의 성과와 진전에 대한 기조 발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학술대회가 진행되면서 유럽 국가의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사뭇 다른 의견이 제기되었다. 유럽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기후변화 및 ESG 규제들이 너무 강하고 급하며 충분한 조정과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하였으며 국가별로 프랑스, 독일, 영국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였다. 참가한 한국 학자들은 프랑스는 원자력이 충분하여, 그리고 영국은 EU를 탈퇴한 것이 이유일 것이라고 논의하였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발표하고 추진 중인 산업 정책 및 에너지 정책이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원인임에 의견을 같이하였다. IAEE(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Energy Economics)는 에너지경제학 분야의 세계 최대 학술단체이다. 미국에 본부가 있으며 80여 개국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국제학술대회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학술적인 발표뿐만 아니라 에너지기업과 정책 분석기관, 그리고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종합적인 행사로 개최되고 있다. 한국의 참여도 활발한 편이다. 2013년 6월에 제34회 국제학술대회를 한국에 유치한 바 있다. IPCC의 의장을 역임한 이회성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학회장을 맡은 바 있으며, 박희천, 강승진, 장영호, 허은녕 교수 등이 IAEE 학회의 부회장 및 이사회(council) 멤버로 활동하였다. 올해부터 강승진 교수가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한 한국 학자들을 놀라게 한 또 하나의 이슈는 주요 국가들이 공통으로 지정학 이슈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는 것이다. 최근 전쟁들과 여러 국가에서 진행 중인 선거들로 인하여 지정학과 더불어 빈곤, 복지, 접근성, 기후변화적응 등 사회적인 문제들의 중요도가 크게 상승하였다는 지적이다. 특히 에너지기업 대표들이 그러하여 지정학적 이슈가 에너지기업의 경영에서 주요 이슈로 주목받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유럽 석학들의 발제 내용의 변화에 더하여 유럽 여러 국가에서 에너지 정책의 목표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음도 감지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영국 정부가 6월 23일에 발표한'신산업전략 (Modern Industrial Strategy)'을 들 수 있다. 영국 정부는 이 전략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산업 혁신을 도모하기 위한 중장기 정책 로드맵이라고 발표하면서, 청정에너지, 첨단 제조, 디지털·AI 기술, 생명과학, 국방, 금융서비스, 비즈니스 서비스, 창조산업을 8개 핵심 투자 분야로 제시하면서 향후 10년간 이들 분야에 전략적 투자를 집중하고 우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였다. 영국 정부는 이번 장기 산업 전략의 실행을 위해 향후 5년간 총 20억 파운드(약 3조 7300억원)이상의 공공 지출을 투입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영국 정부가 이번 발표 자료에서 '수십 년간 이어온 기존 접근 방식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라고 반성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 간의 과도한 규제와 행정 부담을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이에 따라 이제는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강화 계획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정책 전환이 추진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에너지 분야의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발표한 계획에는 특히 전력 가격을 여러 지원책을 통해 2027년부터 최대 25%까지 낮추는 목표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미국, 중국이 이미 발표한 산업 정책 목표와 궤를 같이하는 변화임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낮은 에너지 가격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다. 새로운 정부를 맞아 우리나라 역시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크게 낮아진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의 강화를 기반으로 하는 장기 정책 논의를 듣지 못하고 있음이 못내 아쉽다. 다시 한번 에너지가 국제적이고 지정학적이고 사회적인 이슈이며, 우리나라는 여전히 90% 이상의 에너지와 전략 광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임을 그저 외면하고 살아왔음을 반성하게 한 국제학술대회였다. 허은녕

[EE칼럼]주민 참여 재생에너지사업 활성화해야

우리나라에서 지역사회의 경제적 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큰 부분은 교육비와 의료비다. 2022년 가구당 의료비 지출은 297만원이고, 2023년 미혼 자녀를 둔 세대의 교육비 지출은 755만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교육과 의료는 지역사회 내에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대처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에너지 비용은 어떠할까? 2023년 4인 가구 전기요금과 가스요금만을 집계하면 약 150만원 정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난다.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은 가스 비용이 40퍼센트 이상 비싸므로 겨울철 난방비용이 도시 지역의 두 배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농촌지역의 에너지 소비는 60년 전만해도 거의 자립을 하는 수준이었다. 농가의 취사와 난방에는 인근 산에서 채취한 나무나 짚 등 농업 부산물을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마을 주변의 산들은 모두 민둥산이 되어버렸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화석연료의 공급 기반이 갖추어지고 농촌에도 구공탄과 석유의 사용이 권장되었다. 벌목은 허가를 받아야 하고 산림은 엄격하게 보호되었다. 자연히 농촌 지역의 에너지 공급도 해외에 의존하게 되었다. 자립 에너지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고 난 뒤였다. 유가의 급등으로 경제적 혼란을 겪은 각국은 수입하지 않는 에너지를 찾아 나섰다. 풍력발전과 태양광 발전에 대한 연구와 보급이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당시 산업화의 도정에 있던 우리나라는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고 에너지원의 수입도 늘어났다. 그에 따라 에너지 자립도는 점차 하락했다. 1차 석유파동이 있던 1973년 54%였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난 1979년에는 73%로 높아졌고 1997년 98.3%까지 올라갔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80%에 이른 1987년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을 제정하였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어떻게든 자립에너지를 찾아야 했지만 마땅한 에너지원을 찾지 못해 성과는 지지부진하였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풍력발전과 태양광 발전에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풍력발전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부터이고 태양광 발전이 본격적으로 주택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 스위스와 독일에서였다. 1992년 리우 환경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면서 풍력과 태양광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더욱 힘을 받아 확산되었다. 태양광과 풍력은 이제까지 화석연료와 그것으로 만든 전력의 소비자였던 사람들을 에너지 생산자로 탈바꿈시켜 주었다. 프로슈머가 된 태양광발전 설치 가구는 자가 소비용 전력을 청정 에너지로 생산할 뿐만 아니라 가계의 새로운 소득원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지역사회에는 공동체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에 참여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각 지역에서 크게는 도시 단위, 작게는 마을 단위로 구성된 에너지 협동조합은 공공시설이나 공유시설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하여 그 수익을 조합원에게 배분하고 일부는 지역사회 복지를 위해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완공한 여주시 구양리 햇빛두레발전소와 올해 1차사업을 마친 영광군 월평마을의 영농형 태양광 사례는 지역주민들이 참여하여 태양광 발전 시설을 공동체 자산화하고 혜택을 지역사회로 환원하는 좋은 사례이다. 구양리는 70여 가구, 150여 명의 주민이 전원 참여하여 '구양리 햇빛두레발전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마을회관, 창고, 체육시설 등에 약 1MW의 태양광 발전설비를 갖추었다. 현재 발전소의 수익은 마을버스 운영과 경로당 무료급식, 마을행사 지원 등에 사용하며, 앞으로 4~5MW로 발전용량이 확대되면 주민들에게 '햇빛연금'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월평마을은 28가구가 '월평햇빛발전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염해 간척지에 영농형 태양광 약 1MW를 설치하여 토지소유주와 경작자, 마을 주민이 함께 햇빛연금을 나누는데 가구당 연간 142만원 정도 지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3단계까지 3MW를 설치하면 연금도 늘어날 것이다. 현재 전국 1,404개 읍·면 가운데 499곳은 농촌소멸 위험 지역, 227곳은 고위험 지역으로 절반 이상이 공동체 해체의 상황에 몰리고 있다.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농촌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에너지 정책의 정상화 작업에 들어선 새 정부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키워나갈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환경을 조성해 주길 기대한다. 신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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