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해양방위산업의 명운을 가를 7조8000억 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을 목전에 두고 한화그룹이 예비역 해군대장의 '우회 영입'을 시도했다가 철회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문제는 기업 본연의 행위인 인재 영입 자체가 아니라 평생 바다를 지킨 제독을 방산과는 무관한 계열사 저축은행의 임원으로 영입하려 했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이번 한화의 우회 영입 시도가 현행 공직자윤리법의 취업 제한 규정을 무력화하려는 '꼼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적하며 관련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달 초 방산업계에 기이한 소문이 돌았다. 지난해 9월 전역한 양용모 전 해군참모총장이 한화그룹의 영입 제안을 받고 검토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양 전 총장이 제안받은 직함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오션 등 한화그룹의 방산 계열사가 아닌 제2금융권인 한화저축은행의 임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통상적인 기업 인사의 상식을 벗어난 제안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해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잠수함 사령관과 합동참모본부 군사지원본부장을 거쳐 해군참모총장까지 지낸 '작전통'이 맡을 금융회사 업무 연계성이 거의 희박하기 때문이다. 방산업계는 이를 두고 방산 계열사로 직행할 경우 걸리는 '취업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한 우회로라고 입을 모은다. 한화그룹이 양 전 총장의 '우회 영입' 방법을 설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행 공직자윤리법의 구조적 허점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는 퇴직공직자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와 '업무 관련성'이 있는 사(私)기업체에 3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해당 업무 관련성은 철저히 '소속기관 대 취업 대상 법인' 간의 관계만 따진다. 해군참모총장은 해군 전력 증강을 책임지므로 한화오션(조선)과는 업무 관련도가 높다. 하지만 한화저축은행은 금융업을 영위하므로 해군본부와 표면적인 업무 연관성이 '제로(0)'에 가깝다.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는 기계적인 직무 관련성을 따지기 때문에 군 장성이 금융사에 취업하는 것을 막을 법적 명분이 약하다. 국내 대기업 계열사들은 각각 독립법인이나 실제로는 그룹 총수와 지주회사 등 컨트롤 타워의 지휘 아래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한화저축은행 고문으로 채용되더라도 그룹 차원에서는 양 전 총장을 '대관 로비스트'나 '방산 자문역'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급여는 저축은행에서 나가지만 그가 행사하는 영향력의 수혜는 방산 계열사인 한화오션이 입는 구조로 읽힌다. 현행법은 이러한 '제3자 효과'나 '계열사 간 장벽 없는 인적 교류'를 전혀 규제하지 못하는 '허점'을 안고 있다. 때문에 이른바 '세탁 취업'도 가능하다. 업무 연관성이 없는 계열사인 저축은행에서 3년의 취업 제한 기간을 보낸 후 제한이 풀리면 본래 목적지인 방산 계열사로 소속을 옮기는 방식이다. 이번 시도는 이러한 '징검다리 취업'의 전형적인 초기 단계로 해석된다. 한화그룹이 이처럼 우회영입의 무리수를 뒀던 배경에는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수년동안 몇차례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친 KDDX사업은 선체부터 이지스 체계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 프로젝트로,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확보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투입 예산만 7조8000억원에 이른다. 방위사업청은 올해 말까지 KDDX 상세 설계와 선도함 건조 계약을 체결하겠다는 목표이다. 오는 6월 방위사업청의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을 앞둔 KDDX 사업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양자대결 구도를 보이고 있다. 한화오션은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유출 전력을 집중 공략하며 경쟁 입찰을 이끌어냈지만 기본 설계 수행 경험이나 기술 점수 면에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직전 해군참모총장 영입은 수주전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결정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견해다. 양 전 총장이 재임 시절 KDDX 사업의 적기 전력화를 강조하며 양사에 직접 서신을 보냈을 만큼 사업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한화의 군장성 출신인사 우회영입이 무산됐지만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관련 계열사로 가면 법에 저촉되기에 저축은행으로 데려가려 한 것인데, 한화그룹이 이를 몰랐을 리 만무하다"며 “군의 명예를 생각했을 때 4성 제독 출신이 본래의 목적을 위해 저축은행으로 소속을 옮기려 했다는 점은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한화그룹은 '모르쇠'와 '방어'로 일관하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인사는 공식 발령이 나야 알 수 있는 것"이라며 “실제 성사되지 않은 건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군 펀드를 운용할 것도 아닌데 저축은행이 왜 그런 분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며 영입 시도의 논리적 모순을 스스로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화저축은행으로 향하려던 해군 제독의 발걸음은 멈췄지만 수조 원대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법망의 허점을 파고드는 이와 같은 시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기업집단의 특성을 반영해 '계열사 우회취업'을 통합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비슷한 사례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어 K-방산의 외형적 성장 이면에 감춰진 '전관예우'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한 엄격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 전 총장은 한 일간지의 취재가 시작되자 “회사에서 제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규정과 법리를 검토한 끝에 수락하지 않기로 했다"며 영입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법리를 검토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영입 논의가 구체적인 단계까지 진행됐음을 시사한다. 에너지경제신문 취재진도 양 전 총장의 입장을 듣고자 전화 통화 및 문자 메시지를 시도했으나 답변을 얻지 못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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