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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어때] “하루 종일도 운전하겠다”…2.7톤에 숨겨진 극강의 편안함 ‘볼보 EX90’

처음 마주하면 확실히 크다. 전장 5040㎜, 전폭 1965㎜, 휠베이스 2985㎜에 공차중량은 2.7톤. 5m가 넘는 차를 운전하다 보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주차장에서는 차폭을 가늠하고, 좁은 길에서는 벽과의 거리를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속도를 낼 때도 괜히 가속 페달을 한번 더 꾹 세게 밟게 되고, 브레이크를 밟을 때도 한박자 더 빠르게 발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볼보가 올여름 처음 선보인 순수 전기 플래그십 SUV EX90은 이런 선입견과 다른 주행감을 보여준다. 차체 크기를 설명하는 숫자보다 기억에 남는 건 '이렇게 큰 차가 맞나' 싶을 만큼 매끄러운 움직임과 편안함이다. 지난 9월, 볼보 EX90과 함께 서울과 강릉을 오갔다. ◇ 680마력 치고 나가도...완벽한 2.7톤 차체 제어 운전석에 앉으면 넓고 높은 시야 너머로 길게 뻗은 보닛과 앞쪽 오버행이 눈에 들어온다. 차체 길이에 비해 앞뒤 바퀴 사이 거리가 짧아 앞부분이 길게 이어지는 비례가 묵직하고 든든한 인상을 준다. 그에 비해 실내는 간결하고 미니멀하다.14.5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물리 버튼을 최소화했다. 별도의 시동 버튼도 없다. 운전석에 앉아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선택하면 곧바로 주행을 시작할 수 있다. 여기에 세로형 디스플레이는 내비게이션을 띄웠을 때 특히 편리하다. 경로가 한눈에 들어오니 화면을 확인하려고 시선을 크게 옮기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된다. 고속도로에서 내비게이션을 확인할 때도 시선 이동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안정적이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부터 편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경사로에서 잠시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자 차가 뒤로 밀리지 않고 앞으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볼보는 EX90에 '크립 모드'를 적용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차가 서서히 움직이는 기능이다. 내연기관차에서 브레이크를 놓았을 때 차가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것과 비슷한 감각 덕분에 경사로에서도 이질감 없이 차를 다룰 수 있었다. 서스펜션은 가장 단단한 설정과 가장 부드러운 설정 사이의 중간 단계로 맞췄다. EX90 울트라에는 두 개의 공기실을 갖춘 에어 서스펜션과 4C 액티브 섀시가 적용됐다. 주행 속도와 차체 움직임에 따라 네 바퀴의 댐퍼 감쇠력을 조절해 급가속 때 차체 앞부분이 들리거나 코너링 때 차체가 바깥쪽으로 기우는 움직임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실제 주행에서도 가속페달을 밟자 차체가 매끄럽게 속도를 높였다. 가속하는 동안 차체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거나 노면에서 들뜨는 듯한 느낌 없이 그저 경쾌했다. EX90은 최고출력 680마력, 최대토크 81.1㎏·m를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2초다. 넉넉한 가속 성능에 안정적인 서스펜션이 함께 어우러지니 2.7톤이 넘는 차체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 가속·감속 알아서…페달조작 없는 장거리 주행 장거리 주행에서 체감되는 편안함은 주행보조 기능에서 나온다. EX90에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파일럿 어시스트를 비롯해 차선 유지 보조, 충돌 방지·완화, 사각지대 경보 및 조향 어시스트 등이 적용된다. 실제로 고속도로를 오가는 동안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직접 조작한 시간은 채 30분이 되지 않았다. 불안함에 파일럿 어시스트를 끄고 직접 운전하는 일이 한번도 없었을만큼 안정적이었다. 감속과 가속이 부드러우면서도 반응은 굉장히 민감하다. 여러 주행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지만, 움직임이 거칠거나 급작스럽지 않다. 시속 120㎞로 최고 속도를 설정하고 달리던 중 앞차와 가까워지자 차가 스스로 속도를 줄였다. 이후 차선을 변경해 앞차와의 거리가 벌어지자 곧바로 다시 설정 속도까지 빠르게 가속했다. 마치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았다 떼는 것처럼 앞차와의 거리에 따라 감속과 가속이 효율적으로 이뤄졌다. 운전자 감시 기능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주행 중 눈이 건조해 여러 차례 눈을 깜빡였더니 졸림 신호가 감지됐다는 경고가 나타났다.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완전히 떼자 경고음과 함께 계기판에도 알림이 떴다. 손가락이 스티어링 휠에 닿아 있을 때와 완전히 손을 뗐을 때의 반응 차이도 분명했다. 볼보는 EX90에 5개의 카메라와 5개의 레이더, 12개의 초음파 센서로 구성된 센서 세트를 적용했다.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은 눈과 머리의 움직임 등을 감지해 운전자의 상태를 파악한다. 운전자의 반응이 없을 경우 경고를 강화하고 차량을 차선 안에 안전하게 정차시키는 기능도 갖췄다. ◇ 3열 접으니 라운지로…25개 스피커의 재발견 패밀리카로서의 진가는 차크닉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강릉에 다다라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EX90의 트렁크 공간은 3열을 모두 사용할 경우 324ℓ지만, 2·3열을 접으면 6인승 기준 최대 2082ℓ, 7인승 기준 2135ℓ까지 늘어난다. 실제로 2열은 그대로 두고 3열만 접었는데도 평균 키의 성인 여성 한 명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나왔다. 문을 모두 닫아도 머리 위로 넓게 펼쳐진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를 통해 푸른 하늘이 보이니 답답함이 없다. 넉넉한 실내 공간에 개방감까지 더해져 마치 작은 라운지 같았다. 여기 분위기를 완성하는 건 보워스앤윌킨스(Bowers & Wilkins) 오디오 시스템이다. EX90의 울트라 트림에는 25개 스피커와 1610W 출력의 오디오 시스템이 들어간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며 애비로드 스튜디오와 협업해 개발한 사운드 모드도 갖췄다. 정차 중에만 체험할 수 있는 보워스앤윌킨스 익스피리언스 앱의 익스피리언스 메뉴 역시 인상적이다. 1분 동안 고음질 음악을 들려주며 오디오 시스템의 성능을 체험하도록 구성된 콘텐츠로, 음악에 맞춘 영상이 함께 재생되며 시청각적인 몰입감도 더한다. 화면에 영상이 펼쳐지는 동안 음악이 재생되자 실내 곳곳에 배치된 스피커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소리를 전달했다. 서로 다른 악기가 서로 다른 수십개의 위치에서 들리며 어우러지니 마치 오케스트라 공연같은 입체감이 느껴졌다. 주행 중 애플 뮤직의 돌비 애트모스로 음악을 들었을 때도 인상적이었던 사운드가 정차 중에는 주변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더욱 온전히 다가왔다.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총 254km를 달린 뒤 측정된 전비는 100㎞당 17.7㎾h로, 고속도로 정체 구간과 여러 경유지를 거쳤음에도 공인 전비를 웃돌았다. 국내 인증 기준 전비는 트윈 모터 퍼포먼스 울트라 기준 3.8㎞/㎾h(26.3㎾h/100㎞), 1회 충전 주행거리는 448㎞다. EX90의 가격은 트윈 모터 플러스 7인승 1억620만원부터 시작한다. 트윈 모터 울트라는 7인승 1억1620만원, 6인승 1억1820만원이며, 트윈 모터 퍼포먼스 울트라는 7인승 1억2120만원, 6인승 1억2320만원이다. 박서현 기자 shine@ekn.kr

[김한성의 AI시대] AI가 사람을 평가할 때,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김한성 ㈜투비유니콘 가치설계자(CPO) 올해 6월 고용노동부는 구직자의 취업 가능성을 분석하고 필요한 역량과 직업훈련을 안내하는 인공지능(AI) 서비스를 공개했다. 구직자가 원하는 직종에서 취업할 확률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막막한 취업 준비에 유용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다만 화면에 나타난 확률이 낮다면 어떨까. 그것은 보완해야 할 점을 알려주는 정보일까, 아니면 내 미래의 한계를 말해주는 숫자일까. 정부의 서비스는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제도가 아니지만, 이 작은 질문은 AI가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의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 그보다 한 달 앞선 5월 교황 레오 14세는 '위대한 인간성(Magnifica Humanitas)'이라는 회칙을 발표했다. 1891년 레오 13세가 산업혁명 속 노동자의 권리를 다룬 '새로운 사태'를 발표한 지 135년 만이다. 기계와 자본 앞에서 노동자의 존엄성을 물었던 역사가 이제 AI와 알고리즘 앞에서 인간의 가치를 다시 묻고 있다. 종교 문서의 언어로 시작된 물음이지만, 그 답은 채용과 교육,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의 삶과 맞닿아 있다. 회칙은 AI가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무엇을 측정하고 무시하며 최적화할지 정하는 순간, 설계자의 선택과 가치가 이미 들어가기 때문이다. 가령 채용 시스템이 경력의 연속성을 높게 평가한다면 육아나 가족 돌봄으로 일을 쉬었던 사람이 불리해질 수 있다. 잦은 이직을 감점한다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온 경험이 약점으로 읽힐지도 모른다. 이는 실제 특정 시스템에서 확인된 차별이 아니라, 무엇을 능력의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이다. AI는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일정한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과 정당하게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 과거 채용 기록으로 만든 모델이 기존에 선호하던 경력과 학력을 다시 추천할 수 있다. 모델이 과거 결과를 잘 맞혔다 해도 그 과거의 기준까지 공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더구나 낮은 취업 확률을 이유로 교육이나 면접 기회를 줄인다면,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는 예측이 오히려 그 가능성을 좁히는 결정으로 바뀐다. 숫자가 무엇을 설명하는지뿐 아니라 그 숫자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이 문제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조사한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응답한 396곳 가운데 86곳은 채용에 AI를 활용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AI 사용 사실을 구직자에게 사전에 알린다는 기업은 그 86곳의 57%였다. 취업 준비생은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열심히 준비하면서도, 자신을 판단하는 과정에 AI가 쓰이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결과가 객관적으로 보이는 만큼 그 기준을 묻기는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 물론 AI를 쓰지 않는다고 공정한 채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선입견을 갖고 판단하며, 같은 지원자를 서로 다르게 평가한다. AI는 누락된 역량을 발견하고 일관성을 높이며 차별적 표현을 가려내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서비스 중에는 구인공고의 성별·연령 차별과 법 위반 가능성을 점검하는 기능도 있다. 따라서 쟁점은 사람과 AI 가운데 누가 더 공정한가를 가리는 경쟁이 아니다. 어떤 평가 기준이 업무와 관련 있는지, 불이익을 받는 사람은 없는지, 그 결과를 누가 검토하고 고칠 것인지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회칙이 말하는 인간 존엄성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존엄성은 시험 점수가 높거나 생산성이 뛰어나서 얻는 보상이 아니다. 일의 능력을 평가할 필요는 있지만, 그 평가가 사람의 전체 가치를 뜻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돌봄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실패한 뒤 배우며, 지금의 기록에 담기지 않은 가능성도 지닌다. AI가 인간보다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된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기계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이 아니라, 성과와 점수로 다 설명되지 않는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다. 한국의 제도도 이런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 시행된 인공지능기본법은 국민의 권익과 존엄성 보호를 목적으로 명시한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정보를 처리해 이루어진 완전히 자동화된 결정에 관해 설명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권리나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법이 정한 조건에서 거부할 권리도 인정한다. 물론 모든 AI 추천이나 평가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법에 적힌 권리가 실제 생활에서 작동하려면, 당사자가 판단의 이유를 이해하고 필요한 경우 다시 검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은 AI 평가 항목을 정할 때 효율만큼 정당성을 따져야 한다. 공공기관은 알고리즘의 결론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이 질문하고 이의를 제기할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빠른 답을 얻는 방법과 함께 그 답이 어떤 기준에서 나왔는지 살피는 힘을 길러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평가받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절차 역시 정교해져야 한다. 앞으로 AI는 사람의 능력과 선택을 더 정밀하게 예측할 것이다. 그러나 예측이 정교해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결과를 무조건 믿는 태도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쓰는지 따져 묻는 능력이다. AI가 인간을 얼마나 닮았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AI를 운영하는 사회가 인간을 얼마나 존중하는가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기술 속에 감춰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묻고 고칠 수 있어야 할 사회적 약속이다. bienns@ekn.kr

[인터뷰] “소버린 AI 성공은 중국뿐…한국, 독파모 올인 위험하다”

“소버린 AI로 성공할 수 있는 나라는 단 하나예요. 중국 하나예요." 정부가 독자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문형남 한국AI교육협회 회장 겸 숙명여대 한류국제대학 교수의 평가는 냉정했다. 거대한 내수시장과 자체 기술 생태계를 갖춘 중국과 한국은 여건이 다른 만큼 독자 모델 개발에만 집중하기보다 해외 기술도 함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지난 15일 본지와 만나 “독파모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신중하게 봤다"며 “소버린 AI만 추진하기보다 글로벌 AI와 병행하거나 융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독자 기술 개발의 포기가 아니다. 국산 AI를 개발하되 해외의 앞선 모델도 활용해 실패 위험을 줄이고, 한국이 강점을 가진 산업에서 실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체 모델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누가 사용하고 비용을 지불할 것인지까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국산 AI 확보가 곧 AI 주권은 아냐" -학계에서는 독파모 사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나 역시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을 신중하게 봤다. 상당한 재원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 소버린 AI로 성공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 하나라고 본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시장도 크다. 딥시크 같은 경쟁력 있는 모델도 나왔다. 한국은 중국과 여건이 다르다." 문 교수가 중국을 주목하는 이유는 기술력뿐 아니라 시장 규모 때문이다. 자체 AI 모델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사용할 기업과 이용자가 충분해야 지속적인 개선과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독자 모델 개발 이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방안까지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독자 AI 개발과 해외 기술 활용을 어떻게 병행해야 하나. “소버린 AI만 하지 말고 두 가지를 다 하거나 융합하자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하이브리드 AI'를 주장했다. 국산 모델을 개발하면서 글로벌 AI도 함께 쓰자는 얘기다. 한쪽에만 집중하기보다 여러 선택지를 확보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독자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만으로 AI 주권을 확보할 수 있나. “독자 개발은 필요하다. 다만 그 필요성이 모든 투자 방식의 타당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산 모델을 확보하는 것과 AI 주권을 확보하는 것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데이터와 핵심 업무를 통제하고, 필요할 때 기술과 공급자를 선택하거나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해외 모델을 활용하더라도 이런 조건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 “국산 AI 개발이 끝 아니다…돈 낼 고객 있나" -독파모 사업의 성과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나. “실제 업무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작동하는지, 사용 비용과 보안 수준은 어떤지 따져야 한다. 개발자들이 얼마나 활용하는지도 중요하다. 기술 개발 자체도 성과지만 실제로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고객이 있는지도 봐야 한다. 유료 고객과 수출 실적 등 사업화 성과까지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 AI 모델 개발에는 대규모 연산 장비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개발을 마친 뒤에도 운영과 성능 개선에 비용이 들어간다. 경쟁 모델과 비교해 성능이나 비용 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고객을 확보하기 어렵다. 기술 개발 성과와 시장에서의 성공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문 교수의 설명이다. -오픈AI와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에 AI 기술과 자본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기업에도 기회가 있나. “대규모 자본과 연산 자원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소수 기업으로 힘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소수 기업이 AI 시장 전체를 독점한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공개 가중치 모델이나 산업별 전문 서비스처럼 다른 경쟁 경로도 있다. 특히 제조와 금융, 공공 등 전문 데이터와 현장 이해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업무 수행 능력과 보안, 비용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한국 기업도 고객의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고 경제적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경쟁할 수 있다." ◇ “범용 AI 정면승부보다 제조·에너지 공략" -한국이 특히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산업은 어디인가. “범용 AI 모델을 개발하려면 막대한 자본과 연산 자원이 필요하다.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분야에 주목해야 한다. 제조업과 에너지,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배터리 산업에는 오랫동안 축적한 기술과 데이터가 있다. 이를 AI와 결합하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이 가능한가. “제조 현장에서는 불량률을 낮추고 설비 고장을 예측하는 데 AI를 활용할 수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전력 수요 예측이나 데이터센터의 전력·냉각 효율 개선이 가능하다. 한류 콘텐츠의 제작과 해외 유통에도 기회가 있다. 다만 실제 고객이 비용을 지불할 만큼 성능과 경제성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AI 산업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사업화 역량이다. 좋은 기술을 개발하고 시범사업에 성공하더라도 실제 현장에 정착하기까지는 어려움이 있다. 고객이 지속적으로 사용할 이유가 있어야 하고, 기업도 운영 비용을 감당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연구 성과를 시장 성과로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이 AI 투자에서 우선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독자 기술을 개발하는 일과 이를 활용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국내 기술과 해외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을 선택하느냐보다 그 기술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다. 해외 고객이 비용을 지불할 만큼 성능과 경제성을 입증하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이수진 인턴기자

“환율보다 고운임”…HMM·팬오션, 3Q 실적 기대감↑

국내 주요 해운기업들이 올해 3분기 급격히 하락한 원·달러 환율에도 불구하고 호실적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 시기 강세가 지속됐던 고운임 효과가 실적 부담을 상쇄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1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3분기 HMM의 연결기준 영업실적 컨센서스는 매출 3조7323억원과 영업이익 7443억원으로 제시됐다. 각각 전년 동기보다 37.9%·150.7% 증가한 수치다.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243.3% 급증한 1조428억원으로 추정됐다. 팬오션의 실적 기대치도 높다. 회사의 3분기 영업실적 컨센서스는 매출 1조8520억원과 영업이익 1880억원으로 이 기간 45.9%·50.1% 성장할 것으로 점쳐졌다. 당기순이익 역시 161.7% 오른 1516억원을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이 같은 국내 해운업계의 3분기 호실적 전망은 해당 분기에 원·달러 환율이 200원(달러 당) 가까이 하락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통상 해운업계는 매출의 상당 부분이 달러로 발생하는 사업 특성상,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원화 환산 매출과 이익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3분기 환율은 지난 7월 초 달러당 1552원 수준에서 9월 말 1358원까지 3개월간 12.5% 감소율을 보였다. 이처럼 단기간 급격히 하락한 원달러 환율에도 불구하고 해운업계의 호실적 전망이 짙어지는 배경에는 같은 기간 강세를 이어간 해상운임이 자리하는 모양새다. 중동발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주요 항만의 물류 적체 등으로 선본 공급이 제한된 가운데, 운임 상승 효과가 환율 하락에 따른 수익성 부담을 상당 부분 상쇄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컨테이너선 운임의 경우, 글로벌 운임의 핵심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기준 지난 7월 말 3205포인트에서 8월 말 3509포인트까지 상승했다. 이후 9월 중순에는 3600포인트를 넘어서며 강세를 지속했다. 올 3분기 평균 SCFI는 3407포인트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30%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컨테이너선 운임 강세는 해당 선종을 주력으로 영위하는 HMM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시장에선 HMM이 기존 실적 컨센서스를 크게 웃도는 이른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14일 발간한 리포트를 통해 HMM의 3분기 영업이익을 1조42억원으로 추산했다. 기존 시장 컨센서스(7443억원) 대비 34.9% 높은 수치다. 하나증권도 15일 HMM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을 1조600억원으로 전망했다. 팬오션 역시 벌크선 운임 강세에 따른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글로벌 건화물선 운임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지난 7월 월평균 2791포인트에서 8월 2942포인트, 9월 3483포인트로 상승했다. 7월과 9월을 비교하면 약 24.8%의 상승률을 기록한 셈이다. 철광석과 석탄, 곡물 등 원자재 운송을 주력으로 하는 팬오션은 벌크선 운임 상승에 따른 수혜가 기대된다. 여기에 최근 사업영역을 확대한 유조선 부문 역시 실적 개선에 힘을 보탤 전망이다. 팬오션은 지난 6월부터 SK해운에서 인수한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10척을 순차적으로 인도받고 있다. 해당 선박에 딸린 장기운송계약도 함께 승계한 만큼, 기존 벌크선 중심의 수익구조에 유조선 사업의 이익 기여가 더해지는 모양새다. 다만 이 같은 고운임 효과가 올 4분기 이후까지 지속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중동정세 완화 및 통항·항만물류 차질이 완화함에 따라 그간 강세를 보였던 시황이 약세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불확실성이다. 내년 신조선 투입 본격화로 선복 수급여견이 개선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당장 컨테이너선은 올해부터 오는 2029년까지 총 1414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규모에 달하는 선복이 글로벌 해운 시장에 순차적으로 신규 투입될 예정이다. 벌크(건화물선) 역시 올해 운임 상승을 주도한 케이프사이즈 선박을 중심으로 오는 2028년을 전후해 신조선 인도를 본격화한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내년부터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선복 공급이 본격화하고, 타 선종 역시 점진적으로 수급 여건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며 “중동 정세를 비롯해 외부 요건에 따른 운임 변동 가능성이 높은 만큼 내년 이후는 개별 업체의 전략보다 시장 상황이 실적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현장] 토마토 알아보는 냉장고, 문자 보내는 차창…삼성·LG의 AI 신기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데려다 줘." 머리에 쓴 기기에 말을 걸자 눈앞에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나타났다.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손을 움직이자 건물이 가까워졌다.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누르니 오페라하우스 주변 풍경이 펼쳐졌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XR' 체험 공간에서다. 오후 1시 40분 기준 18팀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된 예상 대기 시간만 95분이었다. 16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전자전(KES 2026)'에서는 인공지능(AI)이 가전과 자동차, 공장으로 들어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냉장고는 토마토를 알아보고, 로봇은 안전모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아냈다. 자동차 창문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메시지를 보내는 화면으로 바뀌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선보인 미래 기술을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했다. 올해로 57회를 맞은 한국전자전에는 국내외 기업과 기관 500여곳이 참가했다. AI 전환(AX)과 로봇, 모빌리티 등 6개 분야에서 신기술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약 869㎡, LG전자는 902㎡ 규모의 전시관을 마련해 AI 기술이 적용된 제품과 솔루션을 공개했다. ◇ 토마토 넣자 '입고 완료'…냉장고가 재료 기억 삼성전자 전시관에 놓인 '비스포크 AI 패밀리허브' 냉장고. 시연 담당자가 모형 토마토 하나를 집어 넣고 문을 닫았다. 잠시 뒤 화면에 토마토 1개가 추가됐다는 안내가 나타났다. 냉장고 문을 다시 열지 않아도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냉장고에는 AI 비전 기술과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가 적용됐다. 내부 카메라가 식재료를 촬영하면 AI가 종류와 수량을 파악해 목록에 등록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00만장 이상의 식재료 사진을 학습해 다양한 식재료를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등록된 식재료는 냉장고 화면이나 스마트싱스 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오래 보관한 식재료는 알림도 받을 수 있다. 다만 신선도까지 판단하지는 못한다. 한 관람객이 “식재료의 상태도 알 수 있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상태까지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보관 기간은 확인할 수 있다"고 답했다.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AI 스팀 울트라'는 음성 명령을 알아들었다. “하이 빅스비, 로봇청소기 청소해 줘"라고 말하면 청소를 시작하고, 원하는 시간에 작동하도록 예약할 수도 있다. 전면 카메라와 적외선 LED로 바닥에 놓인 물체와 액체를 구분하는 기능도 소개됐다. 관람객들은 바닥에 놓인 매트를 직접 눌러보며 어린이용 매트도 알아볼 수 있는지 물었다. 삼성전자는 이 밖에도 일체형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와 초고화질 마이크로 RGB 디스플레이 등을 전시했다. 갤럭시 헤리티지존에서는 2019년 첫 폴더블폰 출시 이후 7년간 이어진 갤럭시 폴더블 시리즈의 변화를 소개했다. ◇ 안전모 안 쓰니 빨간불…공장 순찰하는 LG 로봇 LG전자는 전시관을 '일상 레이어'와 '산업 레이어'로 나눠 꾸몄다. 일상 레이어에는 AI 가전과 홈 로봇을, 산업 레이어에는 스마트팩토리와 데이터센터 등 기업간거래(B2B) 기술을 배치했다. 전시관 입구에서는 로봇 '클로이드(CLOiD)'가 두 손을 흔들었다. “반갑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얼굴 디스플레이에 윙크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하트 모양을 띄우기도 했다. 관람객들이 로봇 앞에서 손을 내밀자 하이파이브 동작으로 호응했다. 일부는 클로이드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전시관 안쪽에서는 산업용 로봇 '모마(MoMa)'가 공장 순찰에 나섰다. 카메라가 안전모를 쓰지 않은 사람을 포착하자 로봇에 달린 경광등이 빨갛게 켜졌다. 뒤편 대형 화면에는 위험이 감지된 위치가 빨간색 박스로 표시됐다. 연기가 발생한 상황도 감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운반용 모마는 물건을 옮기면서 불량 여부를 확인했다. 시연 담당자가 조이스틱을 움직이자 로봇이 앞에 놓인 물건을 집어 들었다. 집게에 달린 카메라가 제품 라벨을 촬영하면 AI가 이를 분석해 불량 여부를 구분했다. 30분마다 진행된 시연에는 약 15명의 관람객이 모였다. 로봇이 움직이는 동안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거나 관계자에게 작동 원리를 묻는 모습이 이어졌다. 한 관람객은 “모마가 귀여워서 보러 왔다"고 말했다. ◇ 차창에 하트 그리자 메시지 전송…수어도 문자로 LG전자의 차량용 AI 솔루션 체험 공간에서는 자동차 뒷좌석 창문이 터치스크린으로 바뀌었다. 창문에 표시된 노래 목록에서 한 곡을 손가락으로 누른 채 앞좌석 방향으로 밀었다. 그러자 차량 내부 상단 화면에서 음악이 재생됐다. 이번에는 창문에 하트를 그렸다. 전송 버튼을 누르자 할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연출됐다. 곧이어 할아버지의 영상 답장도 화면에 나타났다. 창문은 수어를 문자로 바꾸는 화면으로도 쓰였다. 가상의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청각장애인 직원이 수어로 말을 건네는 상황이 펼쳐졌다. AI가 직원의 손동작을 인식하자 창문에 문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탑승자가 보내는 인사도 화면을 통해 전달됐다. LG전자 관계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창문에 화면을 띄울 수 있는 디스플레이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운전석에서도 화면을 직접 조작하지 않고 기능을 이용할 수 있었다. 운전자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자 시선 위치가 앞유리 디스플레이에 표시됐다. 고개 움직임으로 음악을 바꾸는 기능도 선보였다. 앞유리에는 배터리 잔량과 목적지까지의 경로, 신호등의 남은 시간 등이 표시됐다. 관람객들은 신기술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실제 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할지 따져봤다. 회사원 이재상(46)씨는 삼성전자 '비스포크 AI 콤보'의 옷감 인식 기능을 가장 인상적인 기술로 꼽았다. 그는 “옷감에 맞춰 옷이 상하지 않도록 세탁해 준다면 아무 고민 없이 세탁물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비스포크 AI 패밀리허브' 냉장고에 대해서는 “이게 정말 필요한 기능인가는 잘 모르겠다"며 “요리를 제안하거나 먼저 넣은 식재료부터 소비하도록 알려주면 더 유용할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에 이어 전시장을 찾은 한 대학생(21)은 LG전자의 차량용 AI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창문이 디스플레이가 돼 외부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면서도 “상용화되더라도 가격 때문에 새 차를 구매하기에는 부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이수진 인턴기자

“유럽차 안방까지 넘본다”…파리 모터쇼 뒤덮은 중국차 공세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안방 시장에서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입지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전기차에 이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까지 공략 범위를 넓히면서 중국과 유럽 완성차 업체들 간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1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해 파리 모터쇼에 참가한 중국 자동차 브랜드는 20곳으로 집계됐다. 2024년 행사 당시 9곳에서 크게 늘어난 규모다. BYD와 체리 등 기존 진출 업체에 아이토와 아바타 등 신규 브랜드까지 합류했다. 중국 업체들은 이번 모터쇼에서 유럽 시장을 겨냥한 신차와 다양한 차종을 선보이며 현지 완성차 업체들과 경쟁에 나섰다. 중국 브랜드의 유럽 시장점유율도 상승세다. 로이터통신은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슈미트 오토모티브 리서치의 자료를 인용해 유럽 18개국 신차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이 2025년 2분기 5.7%에서 2026년 2분기 10.7%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중국 업체들이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으로 제품군을 넓히면서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특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 상승이 두드러진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서유럽 PHEV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2024년 2분기 2.2%에서 2026년 2분기 26% 이상으로 높아졌다. EU가 2024년 중국산 순수전기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 이후 중국 업체들은 내연기관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으로 제품군을 넓혔다. PHEV는 외부 충전과 내연기관을 함께 활용할 수 있어 충전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유럽 일부 지역에서도 선택지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BYD는 이번 파리 모터쇼에서 순수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라인업을 나눠 선보였다. 순수전기차는 돌핀 서프(DOLPHIN SURF), 아토 3 에보(ATTO 3 EVO), 씰(SEAL), 씰리언 7(SEALION 7) 등으로 구성하고, PHEV는 아토 2 DM-i(ATTO 2 DM-i), 씰리언 5 DM-i(SEALION 5 DM-i), 씰 U DM-i(SEAL U DM-i) 등을 전시했다. 유럽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돌핀 G DM-i(DOLPHIN G DM-i)도 함께 내보이며 PHEV 라인업을 강조했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유럽 진출 확대는 자국 시장의 수요 둔화와 치열한 가격 경쟁에 대응하려는 움직임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지난 9월 중국 내 승용차 판매는 163만대로 전년 동월보다 28.1% 감소했다. 반면 같은 달 자동차 수출은 92만3000대로 전년 동월 대비 73.2% 증가했다. 내수 판매가 12개월 연속 감소한 반면 수출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로이터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자국 시장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유럽 등 해외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유럽 완성차 업체들도 신차 출시와 전기차 생산 확대를 통해 대응에 나섰다. 유럽 내 점유율 1위인 폭스바겐은 이번 파리 모터쇼에서 순수전기 SUV 신형 ID. 티구안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고 ID. 폴로, ID. 크로스, ID.3 네오 등 전기차를 함께 선보였다. 2만5000유로부터 시작하는 전기차를 내세워 가격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전략도 제시했다. 스텔란티스도 이번 파리 모터쇼에서 유럽 브랜드를 중심으로 신차 6종을 선보이고 콘셉트카 9종을 공개했다. 르노그룹 역시 프랑스 내 전기차 생산량을 향후 12개월 동안 최소 50% 늘릴 수 있다며 생산 확대 가능성을 언급했다. 동시에 중국 업체들의 유럽 진출은 현지 생산기지 확보로도 확대되고 있다. BYD는 헝가리 세게드에 유럽 첫 승용차 공장을 건설 중이며, 2026년 4분기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창안자동차는 2027년 유럽에서 첫 차량 생산을 시작하고, 현지 생산 규모를 2028년 연간 18만대, 2030년 35만대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샤오펑도 오스트리아에서 현지 업체 마그나와 위탁생산을 진행 중이며, 유럽 내 추가 생산 거점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완성차 수출을 넘어 현지 생산과 공급망 구축에 나서면서 EU의 관세와 역내 생산·조달 요건도 중국 업체들의 사업 전략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유럽 공략이 단순한 판매 확대를 넘어 현지 생산과 제품군 다변화를 통한 시장 안착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기차 가격 경쟁력에 더해 하이브리드 등으로 선택지를 넓히고 현지 생산기지를 확보하면 유럽 소비자와 규제 환경에 대응할 여지도 커진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완성차 업체들 역시 신차 출시와 전기차 생산 확대에 나서고 있어, 유럽 시장의 경쟁은 가격과 제품뿐 아니라 생산 거점과 공급망 확보를 둘러싼 경쟁으로 확대될 전망"이라며 “중국 업체들의 유럽 내 판매 확대가 현지 생산과 고용, 부품 조달 등으로 이어질 경우 유럽 자동차 산업의 공급망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박서현 기자 shine@ekn.kr

매출보다 생존…본죽 24년이 보여준 외식업의 조건

“메뉴를 무작정 늘리기보다 핵심 경쟁력을 지키고, 가격 경쟁에 매달리기보다 고객이 체감하는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이게 브랜드 장기 생존의 필수 조건이죠." 가맹점 수 기준 한식 프랜차이즈 업계 1위 '본죽&비빔밥'의 운영사 본아이에프의 이재의 컨세션본부장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파크원타워에서 열린 '제1회 티오더 사장님클럽'에서 '본죽'의 장수 비결을 이같이 소개했다. 이 본부장은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외식업에서 매출 확대뿐 아니라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식 업종 1위 프랜차이즈 '본죽&비빔밥', 폐점률 1% 본아이에프는 본죽, 본죽&비빔밥, 본도시락, 본설렁탕, 본우리반상 등 8개 브랜드를 운영하는 한식 중심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창업자인 김철호 회장은 외환위기로 사업 실패를 겪은 뒤 음식점 창업컨설팅 사업을 하다 지난 2002년 본인이 직접 '본죽'을 창업했다. 지난해 본아이에프의 연결기준 매출은 전년대비 11.7% 늘어난 5365억원으로, 본아이에프 산하 가맹점 수는 2200개에 달한다. 대표 브랜드인 '본죽&비빔밥'의 가맹점 수는 지난해 기준 1150곳으로, 우리나라 외식업종의 한식 부문 중 가맹점이 가장 많다. 본아이에프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과는 가맹점 폐업률과 장기 운영 매장 비중에서도 드러난다. 본아이에프에 따르면 '본죽&비빔밥'의 폐점률은 1%대 수준이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5년 가맹사업 현황 통계'에서 2024년 기준 한식 업종의 폐점률이 21.0%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전체 매장 중 10년 이상 존속한 매장도 65%, 최근 5년간 자녀에게 가업으로 매장을 물려준 사례도 30건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 핵심 메뉴 지키고 고객 가치 높이고…장수 전략은 '차별화' 본아이에프가 강조하는 외식업의 장수 비결은 '매출'이 아닌 '지속가능성'이다. 특히 최근에는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외식업에 대한 고객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상품과 매장에 관한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는 만큼, 일시적인 이벤트만으로는 고객의 신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본부장은 “예전에는 눈속임으로 고객들을 잠깐 속일 수 있었다면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라며 “모든 정보들이 오픈돼 있기 때문에 결코 방심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성비만으로는 부족하고 가격 이상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며 “고객이 해당 가격과 메뉴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아이에프가 강조하는 생존 전략은 무조건적인 가격 인하보다 고객이 체감하는 가치를 높이는 데 있다. 본죽은 죽이라는 핵심 메뉴를 유지하면서 일부 매장을 '본죽&비빔밥'으로 전환해 상품군을 넓혔다. 기존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고객의 선택지를 늘린 것이다. 이 본부장은 본죽이 경쟁 브랜드보다 약 1.5배 많은 양을 제공하며, 이를 두세 끼로 나눠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차별화 요소로 제시했다. 이 본부장은 “코스트코나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본죽 제품이나 본죽과 관련된 장조림을 팔아도 본죽 가맹점의 매출은 떨어지지 않고, 본죽 매장 옆에 '한솥도시락'이 저가 도시락을 판매해도 본도시락 매출은 떨어지지 않는다"며 “중요한 것은 우리 브랜드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수요를 미리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도 장수 브랜드의 조건으로 꼽았다. 이 본부장은 “계절에 따라 수요가 달라지는 메뉴는 최소 2~3개월 앞서 준비해야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며 “수요가 정점에 이른 뒤 대응하기보다 소비 시기를 예측해 상품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임희진 인턴기자

“더 이상 못 버텨”…장거리·프리미엄 날개 펴는 K-LCC, ‘재무 체력’이 승부처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 업계가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협동체 기종으로 일본·동남아 등 단거리 노선을 촘촘하게 오가며 박리다매로 수익을 내던 전통적인 LCC 공식이 한계에 부딪히면서다. 주요 LCC와 신생 항공사들은 앞다퉈 유럽과 미주 등 장거리 노선에 깃발을 꽂고 비즈니스급 좌석과 선택형 프리미엄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탈(脫)저가·장거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공격적인 중대형 기단 확대에 따른 막대한 리스·정비 비용과 수천 퍼센트에 달하는 부채 비율 등 재무 구조 개선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으로 지적된다. ◇ 단거리 출혈 경쟁 탈피…파라타항공 'LA 진출 시동'·트리니티항공 'SSC 전환' 국내 LCC들이 일제히 사업 모델 고도화에 나선 배경에는 단거리 시장의 구조적 포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미 국제선 시장에서 국적 LCC의 여객 점유율은 올 상반기 기준 36.9%(1864만 명)에 달해 대형항공사(FSC)의 점유율(31.9%·1613만 명)을 추월한 상태다. 단거리 노선 내 출혈 경쟁이 격화되자 항공사들은 단가가 높은 중장거리 노선 개척과 서비스 차별화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미주·유럽 등 장거리 영토 확장이다. 후발 주자인 파라타항공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지점을 설립하고 초대 지점장으로 브라이언 김을 선임하며 미주 시장 진출을 위한 현지 기반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내년 5월 LA 노선 취항을 목표로 현지 운항·영업 체계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파라타항공은 이번 지점 설립을 통해 △공항 운영 △지상 조업 △현지 영업·마케팅 △유관 기관·여행업계와의 네트워크 구축 등 취항 준비의 완성도를 높여 나갈 계획이다. 김 지점장은 아시아나항공을 거쳐 2022년부터 에어프레미아의 초대 LA 지점장으로 근무하며 신규 취항 초기 운항·지상 조업 체계 구축부터 영업·마케팅, 사업 개발, 조직·재무 관리 등 현지 사업 전반을 총괄한 20년 이상 경력의 미주 항공 전문가다. 그는 “그동안 미주 항공 시장에서 쌓아온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파라타항공이 미국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현지 기반을 탄탄히 구축하겠다"며 “운항 준비뿐 아니라 현지 고객과 파트너들에게 회사를 알리고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파라타항공 관계자 역시 “LA지점 설립과 지점장 선임은 LA 취항을 위한 준비가 현지 조직과 사업 기반 구축 단계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안전하고 안정적인 운항을 최우선으로 필요한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기존 LCC의 장거리·프리미엄 피벗도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최대 주주가 소노인터내셔널로 변경된 뒤 올해 3월 티웨이항공에서 사명을 바꾼 트리니티항공이 대표적이다. 트리니티항공은 2022년 시드니 취항에 이어 2024년 자그레브·로마·파리·바르셀로나·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주요 거점과 2025년 7월 캐나다 밴쿠버에 잇달아 취항하며 국내 LCC 중 유일하게 유럽과 미주 노선을 동시에 운항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나아가 트리니티항공은 올해 하반기부터 기존의 LCC 모델에서 탈피해 고객 수요와 노선 특성에 맞춰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SSC(Selective Service Carrier)' 모델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단거리 노선은 운임 경쟁력과 운영 효율성에 집중하는 반면, 중장거리 노선에서는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 터미널 전용 라운지 개설과 기내 엔터테인먼트(IFE)·와이파이(IFC) 도입 외에도 모회사인 소노트리니티그룹의 국내외 호텔·리조트와 연계한 통합 로열티 프로그램을 결합해 프리미엄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제주항공과 진에어 등 타 LCC들 역시 프리미엄 좌석 운영과 차세대 고효율 기재 도입을 통해 중거리 노선 확장과 수익 다변화에 힘을 쏟고 있다. ◇ '반기 매출 1조' 외형 성장의 그늘…치솟는 유류비·리스료에 적자 눈덩이 문제는 장거리와 프리미엄 시장 진입에 따르는 막대한 '입장료'다. 장거리 노선을 띄우기 위해서는 중대형 광동체 도입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필수적이다. 이는 단일 소형기 운영으로 비용을 극한까지 낮추던 기존 LCC의 원가 구조를 뒤흔들고 있다. 실제로 올해 반기 보고서에 나타난 재무 지표는 외형 성장과 수익성 악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풍요 속 빈곤'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트리니티항공은 올해 6월 말 기준 A330-200 6대와 A330-300 5대, 보잉 777-300ER 2대 등 중대형기 13대를 포함해 총 47대의 항공기를 리스로 운용하고 있다. 중장거리 노선 확대에 힘입어 국제선 여객 1인당 평균 좌석 판매 단가는 2024년 17만9631원에서 2025년 19만7783원, 올해 상반기에는 22만3688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중대형기 하부 화물칸(벨리 카고)을 활용한 화물 운송 수입 역시 지난해 전년 대비 255% 급증한 666억 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 236억 원의 두 배에 육박하는 468억 원을 달성했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1조818억 원으로 전년 동기 8245억 원 대비 31.2% 급증하며 반기 매출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손익 계산서의 성적표는 정반대다. 트리니티항공은 지난해 연간 2655억 원의 영업손실과 3383억 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연결 기준 영업손실 1628억 원, 당기 순손실 2281억 원을 내며 영업손실 1138억 원·순손실 1228억 원을 냈던 전년 동기 대비 적자 폭이 오히려 크게 확대됐다. 영업 활동 현금 흐름 또한 지난해 상반기 943억 원 유입에서 올해 상반기 26억 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수익성을 갉아먹은 주범은 급증한 고정비와 대외 변수다. 올해 상반기 트리니티항공의 연료비는 국제 항공유 도입 단가가 갤런당 2.56달러(2025년)에서 3.59달러로 치솟은 영향 등으로 전년 동기 3061억 원 대비 52.7% 급증한 4675억 원에 달했다. 공격적인 기재 도입에 따라 상반기 임차료는 1649억 원으로 전년 동기 1166억 원보다 41.4% 늘었고, 사용권 자산 감가상각비도 672억 원에서 889억 원으로 불어났다. 여기에 리스 부채 이자 비용 371억 원과 외화 환산 손실 496억 원 등 금융 비용이 상반기에 1109억 원 발생하며 재무 부담을 가중시켰다. 올해 6월 말 기준 달러화(USD) 표시 부채는 1조5498억 원으로 달러화 자산 6269억 원의 2.5배에 달해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세후 이익과 자본 이 약 800억 원씩 줄어드는 취약한 외환 노출 구조를 안고 있다. ◇ 부채 비율 2312%·결손금 6270억…내실 경영이 생존 관건 누적된 적자와 리스 부채 증가로 재무 건전성 지표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6월 말 기준 트리니티항공의 연결 부채 총계는 2조 924억 원으로 2조 원을 넘어선 반면, 자본 총계는 905억 원에 머물러 부채 비율이 2311.66%에 달한다. 재무 상태표상 유동·비유동 리스 부채가 8239억 원에 이르고, 47대의 리스 항공기를 반납할 때 원상 복구해야 하는 총 충당 부채 규모도 7112억 원에 육박한다. 미처리 결손금은 지난해 말 4029억 원에서 반기 만에 6270억 원으로 불어났고 한국신용평가 기준 신용 등급 역시 원리금 상환 불확실성이 내포된 투기 등급인 'BB-(안정적)'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지난해 말 3498.63%에 달했던 부채 비율을 2300%대로 낮춘 것도 영업 이익 창출이 아닌 대규모 외부 자본 수혈에 기댄 결과다. 트리니티항공은 지난해 10월 액면가를 500원에서 100원으로 낮추는 무상 감자를 단행한 것을 비롯, 지난해 하반기 두 차례의 제3자 배정 유상 증자(총 2100억 원)와 영구채 성격을 지닌 900억 원 규모의 신종 자본 증권 발행으로 급한 불을 껐다. 올해 상반기에도 3월 주주 배정 유상 증자 733억 원과 6월 말 제3자 배정 유상 증자 800억 원, 최대 주주 소노인터내셔널을 대상으로 한 1100억 원 규모의 신종 자본 증권 추가 발행을 통해 자본을 확충했다. 하지만 누적 2000억 원에 달하는 신종 자본 증권은 발행 2년 후부터 금리가 연 3.0%포인트(p) 가산되고 이후 6개월마다 0.5%p씩 금리가 뛰는 스텝 업 조항이 붙어 있어 제때 상환하지 못할 경우 막대한 이자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향후 예정된 대규모 투자와 안전 인프라 구축 과제도 만만치 않다. 트리니티항공은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해 차세대 중대형기인 A330-900 도입과 연관된 예비 엔진·부품 투자를 진행하는 동시에 총 사업비 1365억 원을 투입해 2029년 12월 준공 목표로 인천국제공항 첨단복합항공단지 내 자체 정비 시설(격납고 H2)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최근 3년간 유압 계통 결함 정비 매뉴얼 미준수(과징금 16억500만 원), 부품 정비 능력 범위 밖 부품 사용(과징금 12억 원), 엔진 배기 가스 분출구 균열 점검 주기 미준수(과징금 8억 원) 등 항공안전법 위반으로 국토교통부로부터 잇달아 수십억 원대의 과징금 제재를 받은 바 있어, 장거리 노선 안착을 위한 정비 신뢰도 회복과 안전 투자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트리니티항공의 사례로 살펴볼 수 있듯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K-LCC의 장거리·프리미엄 전환이 일시적 외형 확장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재무 체질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유상 증자와 영구채 발행 등 재무적 수혈로 시간을 버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중장거리 노선의 탑승률과 수율을 조기에 안정시켜 실질적인 영업 현금 흐름을 창출하고 고금리 리스·차입 구조를 개선하는 항공사가 치열한 하늘길 재편 전쟁에서 최종 승자가 될 전망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한화오션, ‘고공 농성’ 노조 주장에…“교섭과 불법행위 대응은 별개”

한화오션이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고공농성을 둘러싸고 성과급 차별과 임금 삭감, 산재 은폐, 교섭 거부 등 노조 측 주장을 반박했다. 회사는 원·하청 동일 성과급 지급률 적용과 협력사 단가 인상 등을 근거로 처우 개선을 추진해 왔다며 교섭은 이어가되 생산 시설 점거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1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난 15일 두 번째 교섭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달 30일 시작된 크레인 등 생산 시설 점거와 고공 농성은 계속되고 있다. 하청지회는 성과급·임금·현장 노동 환경 등을 문제 삼고 있고 회사는 노조의 주장이 그동안의 상생 조치와 교섭 경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한화오션이 반박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성과급 지급 실적이다. 회사에 따르면 올해 초 사내 협력사 노동자에게 원청 직원과 같은 성과급 지급률을 적용해 약 1만 명에게 총 890억 원이 지급되도록 했다. 올해 1월 '원하청 상생 협력 선포식'에서 발표한 방침을 이행한 것으로 성과급 차별이 여전하다는 노조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임금 문제에 대해서는 협력사에 지급하는 단가를 지속적으로 올려 왔다고 밝혔다. 2023년 한화오션 출범 이후 연평균 인상률이 약 5%로 노조가 제시하는 물가 상승률을 웃돈다는 것이다. 다만 협력사 단가 인상률과 개별 노동자의 실제 임금 인상률은 서로 다른 지표인 만큼 이를 노동자 임금이 같은 비율로 올랐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다. 지난해 10월 취하한 470억 원 규모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도 주요 쟁점으로 거론했다. 해당 소송은 대우조선해양 시절인 2022년 하청지회 파업과 관련해 제기됐다. 한화오션은 소송 취하와 함께 마련한 회사·하청지회·이용우 국회의원 간 합의에 “향후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이후 다시 생산 시설 점거가 발생한 것이 당시 합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노동 환경을 둘러싼 주장에도 반박했다. 노조가 시간·생산 통제로 비판한 현장 관리 활동에 대해 회사는 정해진 근무 시간을 지키도록 하는 캠페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점심 시간이나 휴식 시간이 시작되기 전 작업장을 벗어나 식당에 줄을 서는 등의 관행을 개선하려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노조가 '줄 세우기 체벌'로 지적한 사안 역시 특정 노동자를 처벌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회사에 따르면 해당 활동은 지난 6월 11∼12일 발판 지원팀 주관으로 여러 장소에서 협력사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기초 안전 수칙 준수 캠페인이다. 협력사 대표들이 공동으로 합의해 안전 의식을 높이기 위해 시행했다는 설명이다. 산재 은폐 의혹과 관련해서는 도장 협력업체 한 곳이 산재 2건을 누락한 사실을 파악한 뒤 조사에 착수했으며, 자체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해당 업체에 대한 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화오션은 산재 발생 자체를 이유로 협력사에 불이익을 주지 않지만 은폐가 확인되면 최대 계약 해지까지 가능한 제재 방침을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섭 문제는 하청지회와의 협상 의사와 위탁 급식 업체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회사 입장이다. 한화오션은 지난 3월 10일 하청지회의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했고 이후 시정 신청과 조정 신청 등 관련 절차에서도 교섭 의사를 밝혀 왔다고 설명했다. 이후 웰리브지회의 교섭 요구 공고 누락 문제가 노동위원회 절차로 이어졌고 노동위원회가 웰리브지회에 대한 한화오션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법적 다툼이 본격화했다. 회사는 해당 판단에 대해 법원의 확인이 필요하다며 지난 7월 20일 집행 정지를 신청하고 행정 소송도 제기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배포한 입장문에서는 웰리브지회를 제외한 하청지회 단독 교섭에는 즉시 응할 수 있지만 하청지회가 공동교섭을 요구해 협의가 진척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웰리브지회에 대해서는 법원이 교섭 의무를 인정하면 그 판단을 존중해 후속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지난 15일 두 번째 교섭이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생산 시설 점거를 둘러싼 대립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회사는 가동 중인 크레인 점거가 정당한 쟁의 행위의 범위를 벗어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대형 구조물과 중장비가 상시 움직이는 조선소에서 고공 농성이 이어지면 참여자와 동료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정상적인 사업장 운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화오션은 협력사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상생 노력은 계속하되 시설 점거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는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하청지회는 생산 시설 점거를 중단하고 교섭 테이블에서 쟁점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이어갈 때"라고 말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한화 탠덤 셀, 중국 태양광 우위 넘을 기술…생산세액공제 확대해야”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 기술을 먼저 개발하면 실리콘 기반 태양광 셀 시장에서 중국이 이미 차지한 우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태양광 시장에서 중국 측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국내생산세액공제라는 지원책은 산업 경쟁력 강화와 국가 에너지 안보, 재생에너지 해외 의존 구조를 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16일 에너지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유재열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한국사업부장(전무)은 전날 오후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에서 열린 '2026 솔루션 아카데미'에서 이 같이 말했다. 한화큐셀은 지난 7일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보고회에서 2028년까지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 상용화와 양산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은 기존 실리콘 셀 위에 반투명으로 만든 페로브스카이트 셀을 적층하는 방식으로 발전 효율을 끌어올리는 차세대 태양광 기술이다. 실리콘과 페로브스카이트가 각각 짧은 파장과 긴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원리를 이용했다.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목표와 재생에너지를 위한 전력망 개편, 규제 개선 등을 내놓으며 재생에너지 보급에 힘을 주고 있다. K-GX 계획을 계기로 태양광을 주요 경제안보품목과 국내생산세액공제 품목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태양광 셀∙모듈 시장에서 중국이라는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도 태양광 셀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은 지난해 3.9%로 바닥을 친 반면, 중국 제품은 95%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올해는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태양광 업계에서 나온다. 태양광 모듈도 지난해 점유율이 30%대로 떨어졌다. 중국이 중앙정부, 지방정부 가릴 것 없이 태양광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생산 능력을 전 세계 수요의 2배 수준으로 키운 결과다. 유 전무는 “태양광 밸류체인에서 앞단에 있는 폴리실리콘과 잉곳, 웨이퍼가 생산능력 확보 경쟁인 반면, 셀은 가장 기술 집약적이기 때문에 밸류체인 중 부가가치가 가장 커지는 단계이기 때문에 셀만큼은 국내 제조를 유지해야 한다"며 “국내생산세액공제는 산업성장 뿐만 아니라 자국 공급망 구축하고, 에너지 안보 구축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국내생산세액공제를 미국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수준으로 시행해야 효과가 클 것이라고 류 전무는 봤다. 이익에 대한 세금 공제를 넘어 직접 보조금을 지급해야 이익을 못 본 태양광 기업들까지 혜택을 볼 수 있고, 공제세액(택스 크레딧)을 제 3자에 양도할 수 있게 하면 즉각적인 수혜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추진 중인 국내생산세액공제는 직접 보조금이 빠져 있고, 공제 한도를 투자금액의 50% 이내로 설정했다. 유 전무는 “테양광 산업은 초기 설비투자 비용(CAPEX)과 재료비∙인건비 등 운영비용(OPEX) 모두 많이 들기 때문에 사업 투자 후 영업이익을 실현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 긴 시간을 메울 방안인 국내생산세액공제에 직접 보조금 지급도 포함할 수 있도록 산업계가 정부에 건의 중"이라고 말했다. 한화큐셀은 제조 역량과 직접구매계약(PPA)가상발전소(VPP) 사업을 연계해 태양광 가치사슬 전반에서 선순환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다. 향후 VPP 제도가 국내에 도입되는 것을 전제로 2030년 시장에 진출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유 전무는 “통상 20년동안 이뤄지는 발전 사업에서 한화큐셀은 모듈 공급부터 시공, 운영 및 관리까지 할 수 있고, 한화큐셀의 중개사업을 통해 PPA나 VPP 같은 방식으로 매전 행위(전력 판매)까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화솔루션은 불순물 유입을 차단하는 '폐쇄된 파이프라인'을 경쟁력을 내세워 초고압 케이블과 해저케이블,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 등 고부가 전선 소재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와이어∙케이블 사업부문을 신설하고, 가교 폴리에틸렌(XLPE) 절연체와 내∙외부 반도전, 자켓 등 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전선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최소 전압 245kV의 전류를 견디고 먼 거리를 송전하는 전선은 불순물이 없고 표면이 매끄러우며 끊어지지 않는 소재를 요구한다. 불순물이 섞이거나 표면에서 툭 튀어나온 부분이 발생하면 해당 부분에 전류가 흐르면서 원래보다 더 많은 열이 발생해 손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특히 전압이 높을수록 빈번하게 발생하므로 소재의 품질이 매우 중요하다. 박지환 한화솔루션 와이어∙케이블 사업부문 프로는 “범용 소재와 달리 케이블 소재 시장은 케이블 설치 과정이 까다로운 데다 25~40년동안 유지돼야 하기 때문에 보수적이다"라며 “소재를 개발한 이후에는 생산부터 성능 테스트, 제3자 인증 획득 이후 고객사의 레퍼런스 확인과 최종 채택까지 거치므로 상업화 적용까지 최소 1~2년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화솔루션은 원료 공급 단계부터 최종 제품 생산까지 모든 과정에서 외부 접촉이 막힌 파이프라인 통해 공급하는 '폐쇄형 체계'를 갖춰 이물질 유입 가능성을 차단했고, 생산 과정에서 24시간동안 온라인으로 품질 검사를 수행한다"며 “전선 제조사들이 절연체와 반도전, 자켓 소재를 따로 조달하면 품질 문제 원인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케이블 사양이 초고압으로 높을수록 패키지 공급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한화솔루션은 올해 글로벌 초고압케이블(SEHV)용 XLPE 판매량이 전년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는 325kV급 SEHV XLPE 등을 포함한 초고압 소재 판매량이 전년 대비 약 3배가량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에는 중국 초고압 케이블 제조사인 칭다오 한허(Qingdao Hanhe), 터비엔전공(TBEA)과 각각 협력해 500킬로볼트(kV)급 초고압교류송전(HVAC) 케이블용 XLPE 절연 및 반도전 소재 패키지에 대한 기술 검증(Type Test)을 완료했다. 검증은 중국 SECRI 계열 인증기관인 TICW가 초고압 송전 환경에서 요구되는 절연 성능과 장기 신뢰성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해당 제품은 국제 공인 기관인 KEMA의 인증 확보도 추진 중이다. 아울러 한화솔루션은 최근 도체 운전온도(전선 내부 전류 흘렸을 때 온도) 섭씨 90도 수준까지 개발해 고객사 테스트 인증 과정을 거치고 있다. 아울러 PCR을 50% 함유한 친환경 rPE 자켓을 개발해 상업화 단계로 나아갔고, XLPE∙반도전 폐기물을 케이블 소재로 재활용하는 탈가교 기술을 개발해 이를 적용한 자켓 소재(8450DX)를 내년까지 개발한다는 목표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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