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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기후 규제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독일 연방내각은 독일 연료배출권거래법(Brennstoffemissionshandelsgesetz·BEHG) 개정안을 의결하고, 2027년에도 이산화탄소 1톤당 55~65유로의 가격구간(Price Corridor)을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행법대로라면 2027년부터 독일의 국가 탄소가격이 기존 EU 배출권거래제(EU ETS1) 가격과 연계될 예정이었다. 독일은 이를 한 해 더 안정적인 가격구간 안에 두기로 한 것이다. 아직 의회 입법 절차는 남아 있다. 한편 EU 건물·도로교통 배출권거래제(Emissions Trading System 2·ETS2)는 2028년부터 본격 가동된다. 기존 EU ETS와 별도의 시장으로, 건물·도로교통과 일부 추가 부문의 연료배출을 대상으로 한다. 독일의 선택은 이런 과도기에 기업과 가계에 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한 해 더 제공하려는 조치로 읽을 수 있다. 이를 기후정책의 후퇴라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 독일이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원칙을 포기한 것도, 기존 EU ETS를 완화한 것도 아니다. BEHG는 주로 난방과 도로교통에 사용되는 연료의 배출을 다루는 독일의 국가 제도다. 철강·발전 등 기존 EU ETS나 수입제품의 탄소비용을 조정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는 구별된다. 핵심은 탄소가격 신호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격 충격과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데 있다. ◇ 가격표보다 중요한 '시장 설계' 독일의 선택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55~65유로라는 숫자보다 시장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정부안은 한 계정이 경매에서 확보할 수 있는 최대 입찰물량을 기존 50%에서 20%로 낮추고, 2026년 배출권을 2027년 의무이행에 사용하는 이월도 제한한다. 독일 에너지·수도산업협회(BDEW)는 이러한 조치가 과도한 청약을 줄이고 기업이 경매 참여에 동원해야 하는 자금과 금융비용을 낮추며 차익거래 유인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가격 안정 논의와 별개로 독일의 에너지 전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재생에너지 기업 젤레스트라(Zelestra)는 지난 2월 독일 북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Mecklenburg-Vorpommern)의 27.5MWdc 규모 클레베노우(Klevenow) 태양광 발전사업 건설 상황을 공개했다. 당시 회사는 연간 약 2만8700MWh의 전력 생산과 30MWh 규모 배터리저장장치(BESS) 개발 계획을 제시했다. 이 사업을 이번 BEHG 개정의 결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가격 충격을 관리하는 것과 탈탄소 투자를 지속하는 것이 서로 모순되는 선택은 아니라는 점은 보여준다. ◇ K-ETS 4기가 풀어야 할 '가격의 질' 독일의 선택은 제4기(2026~2030)에 들어선 한국 배출권거래제(K-ETS)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 8월 14일 한국거래소에서 2025년 할당배출권(Korean Allowance Unit 2025·KAU25) 종가는 톤당 2만7650원을 기록했다. 정부가 2025년 11월 약 1만원 수준이라고 평가했던 때와 비교하면 상당한 상승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가격의 높고 낮음만이 아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탄소가격을 얼마나 더 올릴 것인가"가 아니라 “기업이 5년, 10년 뒤 탄소비용을 가늠하고 설비교체와 에너지효율, 재생에너지와 저탄소 기술에 투자할 수 있을 만큼 가격 신호를 신뢰할 수 있는가"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은 감축 유인을 약화시키지만, 급격한 가격 변동 역시 장기투자를 어렵게 한다. 이것이 탄소가격의 '수준(Level)'만큼 '질(Quality)'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이 제4기 배출권시장에서 한국형 시장안정화예비분(Korean Market Stability Reserve·K-MSR)을 도입한 것도 이런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정부는 공급 과잉 때 경매를 줄여 공급량을 조절하고, 공급 부족 때는 예비분을 추가 공급하는 방식을 기본 방향으로 제시했다. 다만 2026년에도 세부적인 설계와 운영기준을 논의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관건은 제도를 얼마나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가에 있다. K-MSR이 정부가 상황에 따라 임의로 가격을 움직이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급 조정의 기준과 절차를 사전에 명확히 하고 시장 참여자가 대응을 예측할 수 있는 '규칙 기반의 안정화 장치'로 운영해야 한다. ◇ 더 센 가격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가격 그렇다고 유럽 시장의 탄소비용 신호가 약해진 것은 아니다. 2026년 2분기 CBAM 인증서 가격은 톤당 75.28유로로 공표됐다. 실제 한국 수출기업의 부담은 제품의 내재배출량과 EU의 무상할당 조정, 한국에서 실제 지불한 탄소가격의 공제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유럽이 탄소비용을 무역과 투자 판단에 반영하는 방향을 거둔 것은 아니다. 기후정책의 성패는 가장 높은 탄소가격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감축 신호는 분명하게 주되 기업과 가계가 준비할 시간을 제공하고, 시장 참여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전환 경로를 만드는 데 있다. 앞선 CSRD의 조정에서 보았듯 탄소시장 역시 강도만을 겨루기보다 예측 가능성과 실효성을 함께 높이는 '실용적 재설계'가 필요하다. 탄소가격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더 센 가격이 아니라, 더 신뢰할 수 있는 가격이다. * 이창언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 창업컨설팅학과 교수 / 우석대 일반대학원 ESG·공공정책학과 주임 교수 / 우석대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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