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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앞에 갈린 노조…삼성은 쪼개지고 하이닉스는 손잡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대 반도체 기업이 성과급을 둘러싸고 정반대의 노사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는 부문 간 성과급 격차에 위원장 비위 논란까지 겹치며 '노노(勞勞) 갈등' 끝에 사실상 분리 수순을 밟고 있는 반면, SK하이닉스 노사는 근소한 표 차로 부결된 첫 합의안을 손질해 다시 한 테이블로 뭉치는 모양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가 내홍 끝에 반도체(DS) 전용 노조로 재편되는 수순에 들어섰다. 초기업노조는 오는 16일부터 22일까지 모바일 전자투표 방식으로 '2026년 5차 총회'를 진행하며, 노조 가입 자격을 DS 부문 소속으로 한정하는 규약 변경안을 표결에 부친다. 안건이 통과되면 완제품(DX) 부문 조합원들은 탈퇴 처리돼 초기업노조는 사실상 DS 전용 노조가 된다. 발단은 올 상반기 임금협상에서 DS 부문 직원들은 수억원대 성과급 주식 보상을 받을 길이 열린 반면, DX 부문 추가 보상은 600만원 안팎에 그치면서 한 노조가 두 부문을 함께 대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진 데 있다. 초기업노조 조합원의 99%가 DS 소속이어서 규약 개정안 가결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최승호 위원장의 장인 운영 업체와의 집회 물품 수의계약 논란까지 겹쳐 노조 내부 갈등은 더 격화됐다. 최 위원장 측은 DX 소속인 이송이 부위원장과 이원일 광주지회장이 규약 변경을 막기 위해 자신을 끌어내리려 했다는 카카오톡 대화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번 총회에서 두 사람에 대한 불신임 안건도 함께 전자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반면 DX부문 간부들은 조합원 배제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 내부에서도 해당 제보를 공익 제보로 봐야 한다는 이견이 나오는 등 균열이 표면화하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최 위원장이 언급한 사전 동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고, 동행노조도 법적 조치 검토를 밝혔다. 초기업노조는 내년 임단협에서 동행노조 등과 공동교섭을 꾸리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각 노조가 별도 요구안으로 개별 교섭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음 달 6일 열릴 별도 조합원 총회에서는 성과급 분배 전사 기준 통합 요구안과 시스템LSI·파운드리 사업부 적자 패널티 개선 요구안도 표결에 부쳐진다. SK하이닉스 노사는 25표 차로 부결됐던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수정해 15~16일 다시 조합원 총투표에 부친다. 지난달 25일 첫 투표에서는 반대 7535표(50.08%), 찬성 7510표(49.92%)로 갈려 투표자의 0.2%도 안 되는 표 차로 부결됐다. 수정안의 핵심은 성과급인 초과이익분배금(PS) 지급 방식이다. 기존 안은 현금 40%·자사주 60% 비율이었으나, 이번 수정안은 현금과 주식 비중을 각각 50%로 조정했다. 구성원이 원하면 주식 지급 비율을 50%에서 최대 100%까지 10%포인트 단위로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재량도 넓혔다. 지난해 실적 기준으로 내년·내후년에 나눠 지급될 예정이던 이연분 20%도 앞당겨 지급하기로 했고, 주택 대출 추가 지원 대상에는 한부모 가정도 새로 포함했다. 성과급 총액 등 큰 틀은 유지하면서 첫 투표에서 반발이 컸던 지급 방식만 집중적으로 손질한 것이 특징이다. 첫 투표 당시 기술사무직 노조는 66.2% 찬성률로 가결됐던 반면 생산직 노조에서만 근소한 차로 부결됐다. 이에 따라 이번 재투표에서는 현금 비중 확대와 자사주 선택권 확대가 기존 반대표를 얼마나 돌려세울지가 관건이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이 26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하면 1인당 성과급은 약 7억3000만원, 이 중 현금 지급분은 약 3억6500만원 수준으로 계산된다. 총투표는 15~16일 진행되며, 이 기간 잠정합의안이 가결되면 노사는 추석 연휴(9월 25~27일) 전에 임단협을 마무리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마주한 갈등의 층위 자체가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이미 합의된 지급 방식을 두고 현금·주식 비율이라는 조건을 조정하는 단계인 반면, 삼성전자는 부문 간 보상 격차라는 구조적 문제에 노조 지도부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갈등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이견이 표 차이로 드러난 만큼 조정 여지가 있지만, 삼성전자는 DS·DX 간 성과 배분 틀을 새로 짜야 하는 문제인 만큼 봉합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며 “두 회사의 임단협 결과가 다른 반도체·대기업 노사 협상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정유·화학 넘어 ‘AI 전력회사’로…최태원, SK이노베이션 재설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의 핵심 에너지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의 사업구조 전환 방향을 직접 제시했다. 석유·화학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중심으로 성장한 SK이노베이션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전력과 운영 기술을 함께 제공하는 'AI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정유·화학 공장에 AI를 적용해 생산성과 안전성을 높이고, 그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과 운영 경험을 다른 제조기업에 판매하는 AI 전환(AX) 사업도 추진한다. 화석연료 수요 감소와 정유·화학산업의 구조적 불확실성에 대응해 AI 시대의 전력 수요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지난 11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 울산포럼'에서 기자들과 만나 “SK이노베이션은 AI 에너지 및 데이터센터 전력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환 중이며 AX 컨설팅 업체로 변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AI 투자 열풍을 지속하려면 실제 수익을 내고 이를 다시 투자할 수 있는 사업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정유사에서 'AI 데이터센터 전력 해결사'로 14일 업계에선 최 회장이 언급한 전환은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정유·화학, LNG·발전·배터리·재생에너지 자산을 결합해 AI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을 통합 제공하는 방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2024년 SK E&S를 흡수합병하면서 기존 석유·화학과 배터리 외에 LNG 도입·저장·발전, 도시가스, 재생에너지와 수소사업까지 확보했다. 회사의 올해 1분기 매출 구성은 석유사업 62%, SK이노베이션 E&S 발전 사업 15%, 화학 10%, 배터리 7% 등이다. 여전히 석유·화학 비중이 높지만 LNG와 전력, 배터리까지 한 회사에 들어오면서 AI 데이터센터용 전력사업을 추진할 기반이 마련됐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전력 사용량이 크고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LNG발전을 안정적인 전원으로 활용하면서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하면 안정성과 탄소 감축 요구를 함께 대응할 수 있다. SK온이 생산하는 ESS용 배터리와 SK이노베이션이 미국 테라파워와 추진하는 소형모듈원전(SMR)도 중장기 전력 포트폴리오에 포함될 수 있다. LNG 냉열을 데이터센터 냉각에 활용하거나 AI로 전력 수요와 발전량을 예측해 전력 거래까지 대행하는 사업도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중점 추진 과제로 대형 전력 수요처에 차별화된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데이터센터 전력관리시스템(DCMS)을 비롯해 서버 냉각과 ESS, 전력거래 솔루션, AI 기반 전력 트레이딩 소프트웨어 등이 구체적인 사업 후보로 제시됐다. 과거에는 정유공장에서 석유제품을 생산하고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각각 판매했다면, 앞으로는 데이터센터의 입지와 전력원 구성, 냉각·저장설비, 전력 운영을 하나의 상품으로 묶어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을 추진할 당시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에너지 문제를 풀 수 있는 회사가 되면 큰 시너지가 날 것"이라며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전기를 솔루션화하면 상당한 사업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울산에서의 발언은 이 구상을 본격적인 사업으로 옮기는 행보로 풀이된다. ◇ 울산CLX에서 검증한 AX, 외부 판매도 구상 또 다른 축은 울산CLX의 AI 전환 경험을 외부에 판매하는 방안이다. SK이노베이션은 울산CLX에 AI가 공정과 설비를 24시간 감시·분석하고 현장 엔지니어가 결과를 검토해 대응하는 '듀얼 브레인'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AI를 활용해 화재나 폭발 등 설비 이상을 사전에 발견하고 공정 운영과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는 방식이다. SK이노베이션이 정유·화학 공장을 운영하며 축적한 데이터와 AI 적용 경험을 표준화해 철강·발전·배터리 등 다른 기업의 에너지 사용과 생산공정을 진단하고 AI 운영 시스템 구축과 유지·관리까지 담당하는 사업모델이다. 기존 제품 판매보다 반복적인 서비스 매출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SK그룹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함께 울산에 최대 1GW 규모의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약 7조원이 투입되며 2027년 하반기 가동이 목표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SK하이닉스, SK AX 등 그룹 계열사들이 참여한다. 울산을 시작으로 영남권에 2GW 이상의 AI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중장기적으로 전국의 AI 인프라를 15GW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SK이노베이션의 LNG발전과 재생에너지·ESS 사업의 내부 수요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석유로 번 돈 AI 전력에 투자…수익화가 관건 이번 전환은 화석연료 수요 감소와 정유·화학산업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효과도 있다. 호르무즈 사태에 장기화에 따른 원유 수급 불안과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는 정유사업의 비용 상승분을 국내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중국발 공급과잉과 수요 둔화가 겹친 석유화학사업 역시 구조조정 압력을 받고 있다. 전기차 캐즘으로 인한 SK온의 재무 부담도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신사업인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선행투자가 필요하다. 발전소와 송전망, ESS, 냉각설비까지 갖추려면 투자비가 크게 늘어난다. 이에 당분간은 석유·화학 사업을 곧바로 대체하기보다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낮추면서 LNG·전력과 AI 솔루션 매출을 키우는 과정이 될 전망이다. 한 AI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 에너지 솔루션을 실제 계약과 매출로 연결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 제조 현장에서 검증한 AX 기술까지 외부에 판매할 수 있어야 SK이노베이션의 전환도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포스코그룹, ‘2026 기후산업국제박람회’서 수소환원제철·K-GX 비전 대거 공개

포스코그룹이 글로벌 탈탄소 시대를 이끌 그룹 차원의 혁신 기술과 K-GX(그린 전환) 생태계 비전을 대중에 공개한다. 포스코그룹은 오는 9월 16일부터 18일까지 부산 벡스코(BEXCO)에서 개최되는 '2026 기후산업국제박람회'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국제에너지기구(IEA), 세계은행 등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박람회는 '기후테크가 만드는 거대한 변화, 탈탄소 세상을 향한 도약'을 주제로 열린다. 올해로 6회째 참가하는 포스코그룹은 'POSCO, 탈탄소 철강으로 K-GX 생태계를 열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포스코홀딩스, 포스코,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이앤씨 등 4개 계열사가 함께하는 통합 전시관을 조성한다. 전시 공간은 △탈탄소 혁신기술 △핵심소재 △무탄소에너지 △K-GX 생태계 등 4개 주제 존(Zone)으로 구획된다. '탈탄소 혁신기술 존'에서는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포스코형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렉스(HyREX)' 공정 모형을 최초 및 중점 전시한다. 포스코는 2028년 포항제철소 내 연산 30만 톤 규모의 하이렉스 실증설비를 준공하고 2030년까지 상용화 기술을 완성할 계획이다. '핵심소재 존'에서는 ESS,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신모빌리티 등 첨단산업의 AX·GX 전환에 필수적인 고성능 철강 소재들을 선보이며, '무탄소에너지 존'에서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의 해상풍력·태양광 사업과 포스코이앤씨의 원전·SMR(소형모듈원전)·고온가스로 EPC(설계·시공·조달) 역량을 융합한 시너지 성과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의 핵심인 'K-GX 생태계 존'에서는 동남권 일대를 하이렉스 실증설비와 연계해 국가 차원의 탈탄소 산업 클러스터로 구축하는 대규모 민관 협력 모델을 제시한다. 동남권은 풍부한 원전 전력을 바탕으로 무탄소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수급하고 수전해 청정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정부의 탈탄소 정책 지원을 발판 삼아 하이렉스 상용 기술을 조기에 확립할 것"이라며 “동남권 클러스터를 K-GX 산업 생태계의 대표 성공 모델로 정착시켜 대한민국 제조업의 글로벌 탈탄소 경쟁력을 격상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HS효성에너지솔루션코리아, 울산에 1조 2천억 투자… 실리콘 음극재 공장 신설

HS효성에너지솔루션코리아㈜가 울산에 1조 2000억 원 규모의 대대적인 투자를 집행하고 차세대 배터리 핵심 소재인 실리콘 음극재 생산 거점 구축에 나선다. HS효성에너지솔루션코리아는 14일 울산시청에서 이기수 대표와 김상욱 울산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실리콘 음극재 생산공장 신설을 위한 투자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에 따라 HS효성에너지솔루션코리아는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내에 오는 2030년까지 총 1조 2000억 원을 투입해 실리콘 음극재 대량생산 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사업은 총 3단계로 추진되며, 우선 1단계로 3000억 원을 투자해 2028년 1분기까지 연간 5000톤 규모의 제1공장(MPK-1)을 완공한다는 목표다.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흑연 음극재 대비 에너지 밀도가 높고 급속 충전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어, 전기차 주행거리 연장과 충전시간 단축을 이끌 핵심 소재로 평가받는다. HS효성에너지솔루션코리아는 공장 신설 및 가동 시 울산 시민을 우선 채용해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방침이다. 울산시 역시 이번 투자가 안정적으로 이뤄지도록 인·허가 등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이기수 HS효성에너지솔루션코리아 대표는 “이번 투자를 통해 차세대 배터리 소재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글로벌 공급망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다"며 “그룹의 발상지인 울산을 첫 투자지로 선정한 만큼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첨단 생산기지로 키워나가겠다"고 전했다. 김상욱 울산시장은 “울산이 이차전지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선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미래 이차전지 소재산업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HS효성에너지솔루션코리아는 HS효성그룹이 실리콘 음극재 사업 진출을 위해 벨기에 유미코아(Umicore)사와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HS효성그룹 계열분리 이후 처음 추진하는 대형 신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7조 자산가’ 권혁빈…실패서 시작된 스마일게이트 신화

국내 이혼소송 역사상 역대 최고의 재산분할 액수가 나오면서 권혁빈 스마일게이트그룹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 겸 희망스튜디오 이사장의 이름 앞에 '7조원대 자산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 그의 경제적 성공이 처음부터 예정돼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첫 창업은 실패했고, 야심차게 내놓은 게임은 국내 시장에서 흥행에 실패했다. 그때마다 그는 도망치기보다 재도전을 택했다. 유학 대신 재창업, 국내시장 대신 해외시장을 노린 승부수가 제대로 먹힌 것이다. 단돈 5000만원으로 시작한 게임사 스마일게이트가 20여년 만에 7조원대 지분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이다. ◇ 삼성전자 입사 대신 창업…유학 대신 재창업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9일 이혼·재산분할 사건에서 권 이사장이 보유한 스마일게이트 주식 가치를 약 7조1049억원으로 평가했다. 현금과 기타 재산을 합친 전체 순재산은 약 7조3375억원으로 산정됐다. 다만 이 금액은 현금성 자산이 아니라, 비상장회사인 스마일게이트 지분에 대한 평가액이 대부분이다. 권 이사장의 재산 형성 과정은 스마일게이트의 성장사와 겹친다. 작은 게임 개발사로 출발한 회사가 크로스파이어와 로스트아크를 앞세워 글로벌 게임기업으로 성장했고, 권 이사장은 그 지분을 대부분 보유한 창업자로서 기업가치 상승을 공유했다. 권 이사장은 대한민국에 외환위기(IMF)가 불어닥친 1999년 대학 졸업 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연구소 입사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직장인이 되는 대신 직접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권 이사장은 이때의 자신의 결정을 '반항심'이라 설명한다. 권 이사장은 과거 한 창업 관련 행사에서 당시 일화를 소개하며 “어려운 시기에 졸업 전 입사가 확정됐으니 기뻐할 법 했지만, 그 상황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며 “망해가는 대한민국에서 단지 회사 입사가 확정됐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나, 싶은 '반항심'에서 창업가의 길을 꿈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권 이사장의 첫 회사는 교육용 소프트웨어 개발사 포씨소프트였다. 하지만 첫 사업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술력은 인정받았지만,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은 투자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창업 3년 만에 회사를 넘기고 실업자가 됐다. 첫 창업 실패 후 그는 미국 유학길을 고민했지만, 결국 재창업을 택하게 됐다. 당시 그의 재창업에는 부인 이모씨의 격려도 큰몫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2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탄생한 회사가 오늘날의 스마일게이트다. ◇ '크로스파이어'로 대박…한국판 디즈니 꿈꾼다 스마일게이트가 창업 초기부터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사업 초반에는 몇 년 동안 월급 한푼 가져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스마일게이트의 위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창업 4년 만에 선보인 총쏘기게임(FPS) '크로스파이어'부터였다. 국내에서는 경쟁작에 밀려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해당 게임은 2008년 중국 시장에서 '초대박'을 터뜨리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권 이사장은 과거 한 행사에서 “스마일게이트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리기까지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시작조차 안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권 이사장이 그리는 스마일게이트의 미래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게임회사가 아니다. 게임을 넘어 사랑받는 지식재산권(IP)을 만드는 '한국판 디즈니'가 그의 구상이다. 권 이사장은 “창업을 통해 큰돈을 벌 생각만 했다면 진작 엑시트(exit)를 했을 것"이라며 “스마일게이트를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 창의 교육도 권 이사장이 관심을 쏟는 분야다. 청년 창업가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어린이의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창의 인재 발굴에 힘쓰겠다는 전략이다. 만일 이번 이혼소송 1심 결과가 확정된다면 권혁빈 이사장의 단독 주주 체제로 이어져온 스마일게이트의 지배 구조에도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된다. 권 이사장이 창업 이후 지켜온 철학이 새로운 지배 구조 아래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KAIST, 롯데그룹과 산학협력 거점 마련…지속가능한 미래 일군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등 인류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산학협력 거점이 KAIST에 문을 열었다. 13일 KAIST는 롯데그룹과 함께 대전 본원에 산학협력 연구 거점 '롯데 X 카이스트 연구개발 센터(LOTTE x KAIST R&D CENTER)'를 준공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열린 준공식에는 배충식 카이스트 총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해 KAIST와 롯데그룹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센터는 지하 1층, 지상 6층, 연면적 약 4298㎡(약 1300평) 규모다. 롯데그룹이 지원한 건축기부금 100억원과 KAIST 생명화학공학과의 자체 기금 등으로 조성됐다. 센터에는 롯데와 KAIST 연구진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협업 연구공간과 함께 연구자 간 소통과 교류를 위한 '신동빈홀'도 마련됐다. 센터는 미래기술의 기초·원천연구부터 실험, 시제품 제작, 기술사업화까지 연구개발 전 과정을 아우르는 산학협력형 연구 거점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중점 연구 분야는 △바이오 지속가능성(Bio-Sustainability) △탄소중립 에너지·소재·공정(Carbon-Neutral Energy, Materials and Processes) △첨단 식품·헬스케어(Advanced Food and Healthcare) 등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R&D센터가 학교와 기업의 경계를 넘어 더 큰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는 산학협력의 거점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며 “교수진과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롯데가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배충식 KAIST 총장은 “오늘의 준공은 건물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협력의 시작"이라며 “KAIST의 연구 역량과 롯데의 산업·사업화 역량을 결합해 연구실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산업 현장의 실제 가치로 연결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과 지속가능한 미래의 해법을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쓰던 앱에서 바로 쓴다”…KT ‘모두의 AI’ 서비스 연결

KT가 별도 AI 서비스를 찾아갈 필요 없이 평소 쓰던 앱과 웹에서 바로 이용하는 '모두의 AI'를 선보인다. 다음, 무신사, 직방, EBS 등 6000만개 이상의 서비스 접점을 연결해 검색과 추천은 물론 구매와 공공서비스 신청까지 AI가 이어주는 구조다. KT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모두의 AI' 사업을 위한 대국민 AI 서비스 전략을 공개했다고 13일 밝혔다. KT 컨소시엄에는 업스테이지, 솔트룩스, 다음, 무신사, 직방, EBS, 매스프레소, BC카드 등이 참여한다. KT는 이들 기업이 보유한 서비스와 AI 기술을 결합해 공공, 교육, 금융, 쇼핑 등 일상 영역으로 AI 활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핵심 전략은 '이음인사이드'다. 별도의 '모두의 AI' 앱을 구축하는 동시에 컨소시엄 참여 기업의 기존 앱과 웹, KT 지니TV 등에 AI 기능을 적용한다. 이용자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지 않고 기존에 쓰던 서비스 안에서 같은 AI 경험을 이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진형 KT AX사업본부장 상무는 지난 11일 열린 온라인 설명회에서 “다음으로 승부를 보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음의 검색 정보와 내부 정보, 생태계 서비스 정보 등을 활용해 새로운 AI 모드로 바꾸는 형태의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 검색에서 구매까지…공공서비스는 신청도 지원 KT가 기존 생성형 AI와 차별화한 지점은 검색 이후의 '실행'이다. AI가 질문에 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용자의 상황과 실제 서비스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교와 추천, 구매와 신청까지 이어주는 구조다. 예컨대 이용자가 쇼핑 플랫폼에서 창문형 에어컨을 찾으며 자신의 집에 설치할 수 있는 제품을 물으면 실제 상품 정보를 토대로 적합한 제품을 비교하고 구매까지 연결한다. 직방에서는 관심 아파트의 실거래가와 매물 정보를 분석해 시세보다 저렴한 매물을 찾아주는 식이다. 공공서비스도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이용자의 연령과 거주지역 등을 바탕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먼저 알려주고 대화형으로 절차를 안내한다. 향후 발급과 신청까지 AI가 처리하도록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실제 신청까지 연결하려면 정부의 API 개방이 필요하다. 이 상무는 “정부에서 개방한 서비스는 에이전트화할 수 있지만 개방되지 않은 서비스는 중간에 멈추고 다른 정부 앱으로 이동해 처리해야 한다"며 “최종 신청까지 가능한 다양한 서비스를 어떻게 개방할지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화 기능도 강화한다. 이용자의 과거 검색과 문의 내용을 기억해 관심사를 파악하고 필요한 정보를 먼저 제안하는 '메모리 기반 개인화'를 적용한다.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이용자에게 관련 매물을 추천하고 농업인에게 농업과 기상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 국산 AI 5종 결집…질문 따라 최적 모델 선택 모두의 AI의 두뇌 역할은 KT의 AI 운영 플랫폼 '토큰팩토리'가 맡는다. 하나의 AI 모델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국산 AI 모델 가운데 질문과 서비스에 적합한 모델을 골라 사용하는 구조다. 토큰팩토리에는 업스테이지의 솔라(Solar), 모티프테크놀로지스의 모티프(Motif), 솔트룩스의 룩시아(LUXIA), NC AI의 바르코(VARCO), KT의 믿음(Mi:dm) 등 국산 AI 모델 5종이 결합된다. 리벨리온의 NPU와 래블업, 베슬AI의 인프라 운영 기술도 활용한다. KT는 AI 연산 과정도 최적화했다. 프롬프트를 처리하는 '프리필(Prefill)'과 답변을 생성하는 '디코드(Decode)' 단계를 분리해 각각 적합한 연산 자원을 배치한다. 이를 통해 분당 토큰 처리량(TPM)을 31% 높이고 프롬프트 압축 기술로 입력 토큰은 최대 80%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상무는 GPU 활용 효율과 관련해 “정부에서 GPU 100장을 지원받는다고 하면 저희 효율성으로는 121장 정도의 효율이 있다"고 설명했다. ◇ 자체 GPU까지 준비…트래픽 몰리면 '폴백' 대규모 이용자 유입에 대비한 GPU 운용 전략도 마련했다. KT는 정부에서 지원받는 GPU 외에 자체 GPU를 추가로 확보했다. 이용자가 몰려 정부 지원분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경우 KT가 보유한 GPU를 투입하는 '폴백' 체계를 가동한다. 이 상무는 “GPU 배정량과 AI 모델뿐 아니라 전체 성능은 별개가 아니고 완전히 상관관계가 있다"며 “기술적으로 20% 정도의 버퍼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예상보다 많은 트래픽이 몰릴 경우 이용량을 일시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이 상무는 추가 확보한 자원까지 소진되면 글로벌 AI 서비스처럼 '스로틀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로틀링은 이용자가 몰릴 때 서비스 안정을 위해 처리 속도나 이용량을 제한하는 조치다. KT는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수익모델도 검토한다. 당장은 일반 이용자에게 직접 이용료를 받기보다 컨소시엄 생태계 안에서 수익을 공유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부동산이나 쇼핑 등 제휴 서비스에서 AI 추천이 실제 거래로 이어지면 참여 기업 간 크레딧이나 토큰 크레딧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향후 정부 정책 등에 따라 별도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상무는 “현재 국민에게 비용을 받는 수익모델은 크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KT는 컨소시엄 외부로도 생태계를 넓힐 계획이다. 금융과 호텔, 음식점 예약, 콘텐츠 등 여러 분야에서 추가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들과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신규 기업에도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를 제공하고 자체 연동이 어려운 사업자에는 KT가 기술 지원에 나선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AI 접근성도 높인다. KT는 연간 약 15만명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IT서포터즈를 활용해 노년층과 다문화 가정 등의 AI 이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진형 상무는 “이음인사이드를 통한 개방형 AI 생태계 조성으로 국민의 일상을 함께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서비스 접점을 통해 디지털 소외계층까지 포용하는 대국민 AI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며 “국내 최고 수준의 멀티모델과 KT 역량이 응축된 토큰팩토리를 바탕으로 빠르고 정확하며 안정적인 최적의 AI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현장] “5년이면 따라잡아”…현대차, 자율주행 ‘진짜 실력’ 베일 벗었다

자세히 보면 다르다. 얼핏 보면 평범한 아이오닉 6 차량이지만, 투명한 운전석 창문 너머로 사람은 없다. 사이드미러 자리에는 거울 대신 카메라 화면이 달렸다. 스티어링휠 뒤편에는 방향지시등 레버도, 와이퍼를 조작하는 레버도 없이 그저 매끈하다. 번호판 아래로는 검은색 센서로 보이는 장치가 자리하고, 룸미러 앞에는 블랙박스라기엔 조금 큰 카메라 장치가 보인다. 차량 측면으로 다가가 A필러 쪽을 살피자, 그제야 '자율주행 연구를 위한 외부 촬영중'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눈에 들어온다. 주행영상에서도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은 없었다. 스티어링휠이 혼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복잡한 강남 한복판을 누볐다. 차들이 꽉 막힌 4차선 도로에서 차선 변경도 막힘 없었다. 현재 차선에 차량이 몰리면 옆차선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왔고, 직진하다가 옆차선 차가 가까이 붙으면 살짝 거리를 벌렸다. 양쪽에 주정차 차량이 일렬로 늘어선 비좁은 골목에서도 문제는 없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 앞에서는 재빠르게 멈췄고, 양방향 통로에서 큰 트럭이 다가와도 한쪽으로 비켜서며 천천히 간격을 유지했다. 운전자였다면 '너 진짜 운전 잘한다'라는 칭찬이 나올 법 했다. 지난 11일 현대자동차는 판교 포티투닷 본사에서 '자율주행 미디어 데이'를 열고 아트리아AI가 탑재된 SDV 테스트베드 차량과 실제 자율주행 영상을 공개했다. ◇ “5년 내 경쟁사 데이터 추월"…자율주행 '데이터 플라이휠' 가동 나서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 경쟁의 승부처로 꼽은 것은 결국 데이터다. 단순히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이를 얼마나 빠르게 AI 학습과 검증으로 연결하고 다시 차량에 적용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판단이다. 정성균 포티투닷 아트리아 GL은 “좋은 AI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과 다양한 상황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데이터 수집부터 분석·학습·검증·배포를 반복하는 '데이터 플라이휠'을 설명했다. 현재 포티투닷은 40여대의 데이터 수집 차량을 주야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차량 한 대당 매주 약 80시간의 주행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에는 이면도로, 도로공사 구간, 악천후, 급격한 차선 변경 등 실제 도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엣지 케이스가 담긴다. 현대차그룹이 데이터 규모를 빠르게 키울 수 있다고 자신하는 배경에는 완성차 제조 역량이 있다. 정 GL은 “현대차그룹에서 자율주행 시스템의 공격적 양산을 시작하면 5년 이내에 경쟁사들이 그동안 누적한 데이터량을 추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박민우 현대차·기아 AVP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도 이날 자율주행 시장을 두고 “더 이상 특정 기능의 우열을 가리는 경쟁이 아니다"라며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얼마나 빠르게 학습하며, 그 결과를 얼마나 신속하게 실제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 “많이 모은다고 될 일 아냐"…AI가 어려워하는 데이터만 골라낸다 다만 현대차그룹이 데이터 플라이휠에서 강조한 것은 '양'만이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데이터 플라이휠의 핵심 요소로 규모·품질·효율·운영을 꼽았다. 데이터 플라이휠은 네 요소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곱해지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어느 하나라도 0에 가까워지면 나머지가 아무리 커도 전체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반적인 주행 데이터에는 반복적인 상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정 GL은 직진 차로를 정속 주행하는 데이터가 전체 수집 데이터의 절반 이상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반면 자율주행 성능을 높이려면 AI가 어려워하는 엣지 케이스를 찾아내 집중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하드 이그잼플 마이닝(Hard Example Mining)'을 활용한다. AI 모델이 판단하기 어려워하는 상황을 자동으로 선별해 학습에 우선 반영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실제 주행과 검증 과정에서 새롭게 확보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학습시키는 '컨티뉴어스 트레이닝(Continuous Training)'을 결합한다. 가상 검증도 병행한다. 실제 주행 데이터를 3차원 환경으로 재구성한 뒤 실제 도로에서 반복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상황을 가상으로 만들어 검증하는 방식이다. 실제 주행 데이터를 가상공간에 재현해 다양한 엣지 케이스를 반복 검증하고, 새로운 학습 결과가 기존 성능을 떨어뜨리지 않는지도 계속 확인한다. ◇ “성공해도 실패해도 기록한다"…AI가 스스로 약점 찾는 SER 데이터 확보 방식도 진화시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중 발생하는 중요 상황을 기록하는 스페셜 이벤트 리코더(SER)를 개발했다. 운전자가 직접 기록을 요청하는 경우뿐 아니라 급가속·급제동이나 불안정한 차간거리 같은 특정 상황을 시스템이 감지했을 때, 혹은 운전자나 시스템이 자율주행을 해제했을 때 관련 데이터를 자동으로 저장한다. SER은 이벤트 발생 전후 각 15초의 데이터를 기록한다. 차량 센서 데이터뿐 아니라 차량 내부 신호와 Atria AI의 중간 처리 결과까지 함께 저장하고, 무선 통신을 통해 서버로 전송한 뒤 이슈 분석과 모델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가공과 어노테이션까지 자동화한다. 자율주행이 성공한 경우에도 데이터를 남긴다. 차선 변경 자체에는 성공했더라도 운전자가 '위화감'을 느낄 만한 상황이었다면 해당 장면을 다시 분석해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활용한다. 앞으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AI가 스스로 자신의 취약점을 찾아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기능도 검토할 계획이다. 사람이 일일이 “이 상황을 학습해"라고 지정하지 않아도 Atria AI가 자신의 인지·판단 과정을 모니터링해 취약하다고 판단한 상황의 데이터를 자동으로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 엔비디아로 먼저 양산하고 Atria AI로 내재화…2028~2029년 승부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전략은 '투 트랙'이다. 검증된 외부 기술을 활용해 양산 시점을 앞당기는 동시에 자체 AI를 개발해 장기적으로 핵심 기술을 내재화한다. 첫 번째 트랙은 엔비디아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의 차량용 AI 컴퓨팅 플랫폼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기존 SDV 차량 아키텍처에 통합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8년 상반기 엔비디아 솔루션 기반 레벨2+ 자율주행 기능을 적용한 첫 SDV 양산차를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이 과정에서 특히 공을 들이는 부분이 센서 체계 표준화다. 현재 현대차·기아와 포티투닷, 모셔널은 서로 다른 센서와 개발 이력을 갖고 있어 차량마다 수집되는 데이터의 형태가 다르다. 센서 구성을 일정한 기준으로 맞추면 서로 다른 차량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 '드라이브 하이페리온 10'을 중심으로 센서 체계를 단계적으로 표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룹 내 차량에서 확보되는 데이터를 일관된 형태로 축적·활용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같은 센서 생태계를 사용하는 외부 파트너의 데이터까지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두 번째 트랙은 포티투닷과 현대차·기아 AVP본부가 공동 개발하는 Atria AI다. 포티투닷이 핵심 AI 모델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AVP본부는 실제 양산차에 필요한 안정성과 품질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두 조직은 개발 환경과 업무 프로세스를 통합해 사실상 하나의 팀처럼 하나의 주행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9년 하반기 Atria AI 기반 레벨2++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양산차에서 확보한 실차 데이터를 다시 학습에 활용해 자율주행 기술을 레벨4까지 단계적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 Atria AI 다음은 VLA…자율주행 넘어 'Physical AI'로 현대차그룹이 바라보는 자율주행의 최종 지향점은 차량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날 포티투닷은 VLA(Vision-Language-Action) 기반 차세대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도 착수했다고 밝혔다. VLA는 시각 정보와 언어 기반 추론을 차량의 행동 생성으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기존 E2E 방식이 센서 입력을 차량의 행동으로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면, VLA는 언어 기반 추론을 더해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포티투닷은 현재 시뮬레이션을 통해 VLA 모델을 검증하고 있으며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실차 테스트를 포함한 전체 개발 프로세스를 가동할 예정이다. 박민우 사장은 이날 “자동차 산업이 AI 산업으로 재편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며 “소프트웨어와 AI를 직접 개발하는 역량과 글로벌 차량 규모로 이를 구현하는 역량을 결합해 차별화된 자율주행 경쟁력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기술을 실제 도로에서 검증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연말부터 국토교통부와 함께 광주에서 Atria AI 기반 SDV 페이스카를 활용해 레벨4 기술 요소를 실차에서 검증하고, 여기서 확보한 다양한 주행 시나리오와 돌발 상황 데이터를 다시 데이터 플라이휠에 투입할 계획이다. 박서현 기자 shine@ekn.kr

EU, 中 저가 공세에 ‘세이프가드’ 만지작…K-석화 수출길 좁아지나

유럽연합(EU)이 석유화학 제품의 수입 물량을 직접 제한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카드를 꺼내 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발(發) 저가 물량 공세로 역내 수급 불균형이 심화한 데 따른 조치다. EU의 보호무역 강화 기조와 중국산 제품의 아시아권 밀어내기 수출 확대로 국내 업계의 업황 부진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외신과 업계 등에 따르면, EU는 최근 중국산 저가 물량의 유입 확대로 역내 수급 불균형 우려가 커지며 일부 석화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지난 10일(현지시간)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등 EU 3대 경제국의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향후 수주 내 광범위한 세이프가드 도입 요청서가 제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역내 중국산 제품의 유입이 확대되며 EU 토종 업계의 업황이 급속도로 악화한 영향이다. 석화의 경우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와 에폭시 수지, 유리섬유 등 제품이 세이프가드 요청 대상에 오를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이프가드는 일정 쿼터를 초과하는 물량에 관세부과 등을 통해 수입을 억제하는 조치다. EU의 경우, 회원국 요청을 통해 세이프가드 도입이 안건에 오르게 되면 회원국 표결로 도입 여부를 확정한다. EU 회원국 가운데 15개 이상 국가가 도입을 찬성하고, 찬성 국가가 EU 전체 인구의 65% 이상을 대표하는 '가중다수결' 요건을 충족하면 도입 안건이 가결되는 방식이다. 세이프가드 조치를 도입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면, 해당 조치는 EU와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교역상대국에도 적용된다. 당초 도입 원인이 중국의 저가 공세였을지라도 수입제한 조치의 영향이 한국 등 다른 국가까지 광범위하게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PET와 에폭시 수지는 한국이 매년 수조원대 수출 실적을 기록하는 주요 석화 제품군이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국산 PET 수출실적은 지난 2024년과 지난해 각각 10억3693만달러(1조4000억원)·8억9185만달러(1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1~7월) 역시 5억3963만달러(7300억원)를 기록해 연간 수출액 1조원 달성을 앞둔 상태다. 에폭시 수지 수출액 규모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24년과 지난해 각각 수출액 8억1605만달러(1조1000억원)·8억5863만달러(1조1500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올해 5억7528만달러(7700억원) 수출실적을 보이고 있다. 국산 제품의 EU향(向) 수출 비중도 적지 않다. 올해 국산 PET와 에폭시 수지의 유럽 수출실적은 각각 9294만달러(1200억원)·1억4659만달러(2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이는 올해 전세계 수출액 가운데 17.2%(PET)·25.5%(에폭시 수지) 비중을 차지하는 규모로, EU 세이프가드의 직접 영향권에 들 수 있다. EU의 세이프가드가 현실화할 경우 국내 업계의 실제 영향은 이 같은 규모 이상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과 EU 등 주요 시장의 보호무역 강화로 공급이 제한된 중국산 저가 물량이 아시아 등 제3국에 떠밀리는 이른바 '밀어내기 수출' 현상이 심화하며 국내 업계의 가격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PET 기준 EU를 제외한 한국의 수출규모 상위 5개국 중에선 △베트남(1억2239만달러, 22.7%) △중국(8992만달러, 16.7%) △일본(5228만달러, 9.7%) △인도네시아(1049만달러, 1.9%) 등 아시아 국가가 대거 포함돼있다. 에폭시 수지 역시 △중국(8981만달러, 15.6%) △일본(2765만달러, 4.8%) △인도(2471만달러, 4.3%) △베트남(2224만달러, 3.9%) 등 아시아권 수출 비중이 적지 않다. 업계는 EU의 세이프가드 조치가 검토 단계에 있는 만큼, 우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대응 방안을 강구해나간다는 계획이다. 한 석화기업 관계자는 “진행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조치가 있다면 적극 나설 것"이라며 “실제 세이프가드가 시행될 경우 생산을 탄력 조정하거나 기존 고객사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협단체 역시 국내 산업계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응전략을 적극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세이프가드 특성상 한국을 포함한 여타 교역국의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국내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협회는 향후 EU의 관련 동향과 조사 진행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한편, 업계와 긴밀히 소통해 국내 기업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응전략 마련을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청년공감] “뽑을 때 도파민 터진다”… 서브컬처 게임 ‘가챠’ 열풍의 그늘

최근 서브컬처 게임의 인기가 뜨겁다. 서브컬처 게임은 특정 마니아층(오타쿠)이 선호하는 화풍과 감성을 바탕으로 캐릭터 수집, 스토리 등을 내세운 게임 장르를 뜻한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원신', '명조', '승리의 여신: 니케', '붕괴: 스타레일' 등이 있다. 실제로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순위(지난 5월 25일 기준)를 보면 △명조(7위) △원신(11위) △승리의 여신: 니케(12위) △붕괴: 스타레일(30위) △이환(32위) 등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높은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서브컬처 게임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게임 내 시스템이 유사해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가챠(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이다. 가챠는 무작위로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캡슐 뽑기처럼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인기를 끌고 있는 서브컬처 게임 대부분이 이 가챠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희귀 등급의 캐릭터나 아이템을 극히 희박한 확률로 설정해 운이 좋으면 한 번에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해진 천장(일정 횟수)을 채워야만 얻을 수 있다. 가챠 시스템은 게임사에는 높은 수익을, 이용자에게는 희귀 요소 획득에 따른 만족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높은 과금 부담과 비합리적인 재화 가격에 대한 이용자들의 지적도 적지 않다. 대학생 권모 씨(20)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돈을 안 쓰고 진행이 힘들다"면서도 “딱 하나 좋은 점은 원하는 것을 뽑았을 때 도파민이 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 씨(20)는 “확률 요소를 뚫고 원하는 캐릭터나 아이템을 얻었을 때 성취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며 “다만 대부분의 서브컬처 게임이 전용 재화를 통해 뽑기가 진행되는데 재화 가격이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가챠와 함께 서브컬처 게임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는 단연 '캐릭터 수집'이다. 게임 속 다양한 캐릭터를 모으는 이 콘텐츠는 이용자에게 확실한 수집 동기를 부여하고, 가챠를 이용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용자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매력적인 디자인과 서사, 유저와의 상호작용 요소가 필수적이다. 재수생 김모 씨(20)는 “수집형 게임은 캐릭터 하나하나를 얻었을 때의 만족감으로 유지된다"며 “이 캐릭터를 뽑아서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만족감이 떨어지며 회의감이 든다"고 짚었다. 대학생 박모 씨(여·23)도 “예쁜 캐릭터와 독창적인 캐릭터성이 필수"라며 “사이버 피규어를 수집하는 재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매력적인 캐릭터와 몰입도 높은 스토리는 이용자에게 단순한 수집을 넘어 재미와 힐링을 선사한다. 대학생 이모 씨(23)는 “캐릭터 수집 그 자체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이자 대표적인 재미"라고 전했다. 유튜브 이용자 A씨는 관련 영상 댓글을 통해 “롤(LoL·리그 오브 레전드)을 하다가 몇 판 지면 스트레스를 받지만, 원신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다양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 더 오래 플레이하게 된다"고 적었다. 또 다른 유튜브 이용자 B씨는 “스토리가 좋지 않으면 게임에 남아있을 동기가 사라져 결국 접게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서브컬처 게임 시장에서 가챠와 캐릭터 수집은 떼어놓을 수 없는 핵심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매력적인 캐릭터와 몰입도 높은 스토리, 유기적인 상호작용이 더해지며 이용자들의 높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교근 기자·채민지 강원대 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학생 shin1948@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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