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절 연휴가 끝나면서 재계의 하반기 경영 시계도 다시 빨라질 전망이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투자 경쟁부터 미국 사업 확대, 로보틱스, 방산·조선 수주, 사업구조 재편까지 굵직한 경영 과제를 다시 마주하게 됐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특히 올해는 지난 수년간 발표한 미래사업 투자가 구상에서 실행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하반기의 의미가 남다르다. 삼성과 SK는 AI·반도체, 현대자동차는 로보틱스, LG는 전 계열사의 AI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SK와 HD현대 등은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에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실제 연휴 직전인 지난 14일 방한한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 겸 테라파워 창업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기선 HD현대 회장을 잇달아 만나 SMR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 이재용, AI 시대 주도권은 결국 '반도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받아든 가장 큰 숙제는 AI와 반도체다. 글로벌 AI 투자 경쟁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확대되면서 삼성전자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메모리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 하반기 핵심 과제로 꼽힌다. 그룹 차원에서도 AI를 개별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하는 수준을 넘어 제조와 연구개발, 업무 방식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AI 시대 최대 수혜 산업 중 하나인 반도체에서 삼성전자가 확실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 최태원, AI·반도체 넘어 SMR까지…재산분할도 변수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는 연휴 직전 두 개의 굵직한 일이 동시에 발생했다. 최 회장은 지난 14일 빌 게이츠 이사장과 만나 차세대 원전 사업 협력에 속도를 냈다. 이날 SK이노베이션과 테라파워는 '글로벌 공동사업 추진계약을 위한 주요 조건 합의서'를 체결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테라파워의 SMR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랐다. 이번 합의로 지분투자에서 시작한 관계가 실제 글로벌 공동사업 단계로 한발 더 들어간 셈이다.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 공급이 글로벌 산업계의 과제로 떠오르면서 반도체·AI뿐 아니라 에너지까지 보유한 SK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연결할 여지도 커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9년째 이어진 이혼소송도 다시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다. 최 회장은 같은 날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지급하라는 파기환송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상고했다. 재상고 결과에 따라 1조원에 육박하는 재산분할 부담과 자금 마련 문제가 하반기 변수로 남게 됐다. ◇ 정의선, 자동차 넘어 '피지컬 AI 기업'으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자동차 제조사의 경계를 넘어 로보틱스와 피지컬 AI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제조시설에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투입하고 2030년까지 연간 최대 3만대를 생산한다는 구상이다. 2028년까지 총 260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도 실행해야 한다. 자동차 판매·생산 확대와 동시에 AI·로봇이라는 새로운 산업으로의 전환을 이끌어야 하는 셈이다. ◇ 구광모, 'AI 전환' 이제 성과로 보여줘야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하반기 화두 역시 AI다. 구 회장은 독자 AI 모델 고도화와 그룹 전 사업 영역의 AI 전환 가속화를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LG전자 등 주요 계열사에서도 생성형 AI를 실제 업무와 제조 현장에 적용하는 작업이 빨라지고 있다. 배터리와 전장, AI 등 미래사업에 투자를 집중해온 LG로서는 이제 AI 투자를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사업으로 연결하고 전자·배터리·전장 등 계열사 간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다. ◇ 신동빈, “혁신하라"…롯데는 본업 경쟁력 회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하반기 과제는 다른 그룹과 조금 다르다. 신 회장은 지난달 15일 '2026 하반기 VCM'에서 선택과 집중, 지속적인 혁신과 함께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삼성·SK 등이 AI와 반도체 투자 확대에 나선다면 롯데는 유통·화학 등 기존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되살리는 동시에 AI를 활용한 사업 혁신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 김동관, '승계' 넘어 성적으로 증명할 때 한화그룹에서는 이달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김동관 수석부회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김 수석부회장은 방산·해양·우주항공·에너지 사업을 이끌고 있다. 방산과 조선의 글로벌 확장을 지속하는 동시에 에너지와 우주항공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것이 과제다. 이번 승진으로 권한과 책임이 한층 커진 만큼 올 하반기는 '후계자'라는 평가를 넘어 그룹 핵심 사업의 성적으로 경영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 정기선, 조선 다음은 원전…빌 게이츠와 SMR 동맹 정기선 HD현대 회장의 하반기 승부처는 조선·방산에 원전까지 더해졌다. 정 회장은 지난 14일 서울에서 빌 게이츠 이사장,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와 만나 차세대 나트륨 원자로 상용화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 이후 7개월 만의 게이츠 이사장과의 만남이다. 역할 분담도 구체화됐다. 테라파워가 나트륨 원자로 기술을 제공하고 HD현대가 주기기 제조, 현대건설이 EPC(설계·조달·시공)를 담당한다. HD현대는 향후 원자로 용기를 연간 2~3기 공급할 수 있는 생산체계 구축도 추진한다. HD현대는 2022년 테라파워에 3000만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2024년 원자로 용기를 수주했고 올해 5월 핵심 설비 제작·공급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투자에서 실제 기자재 공급망 진입으로 협력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미 조선 협력을 실제 수주와 투자로 연결하면서 SMR을 새로운 사업 축으로 키울 수 있느냐가 정 회장의 하반기 경영을 가를 전망이다. ◇ AI·반도체에서 전력·SMR까지…남은 넉 달에 달렸다 연휴 직전 빌 게이츠와 최태원·정기선 회장의 연쇄 회동은 올해 재계의 하반기 승부처가 어디까지 넓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AI 경쟁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를 넘어 이를 가동할 전력 확보로 확대되고 있다. 그룹별로 삼성은 반도체 경쟁력 회복, SK는 AI·반도체와 에너지의 결합, 현대차는 피지컬 AI, LG는 전사적 AI 전환, 롯데는 본업 경쟁력 회복이 당면 과제다. 한화와 HD현대에는 방산·조선 호황을 글로벌 사업으로 확장하는 숙제가 놓여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광복절 연휴 이후 추석과 연말 인사,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까지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며 “남은 넉 달 동안 총수들이 미래사업의 청사진을 얼마나 실제 투자와 수주, 실적으로 연결하느냐가 올해와 내년 한국 경제의 방향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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