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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청문회서 산업재해 은폐·개인정보 유출 의혹 집중 제기

쿠팡을 둘러싼 산업재해 은폐 의혹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논란을 놓고 국회가 30일 연석 청문회를 열어 쿠팡 측의 책임을 집중 추궁했다. 이날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질의에서 “2020년 이후 쿠팡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가 노동조합이 확인한 것만 30명에 달한다"며 “쿠팡에서 반복돼 온 죽음의 행진을 이제는 멈춰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의원들은 쿠팡의 물류·배송 현장에서 과도한 노동 강도가 지속돼 왔으며, 산업재해 발생 이후에도 회사 차원의 책임 있는 조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산재 인정 과정과 내부 보고 체계, 사후 조치 전반에 대해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전날 쿠팡이 발표한 개인정보 유출 관련 고객 보상안에 대해서도 비판이 집중됐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상 수준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판촉에 불과한 방식의 보상으로 또다시 국민 공분을 사고 있다"며 “경영진이 국회에 나와 책임 있는 조치와 재발 방지 대책을 밝혀야 하는데 국회 밖에서 소나기 피하듯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영배 의원도 “쿠팡이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 같은 태도는 청문회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홍배 의원은 “미국 기업이라고 해서 미국 정부의 압력이 있다고 해서 위법 행위를 넘어갈 수는 없다"며 “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문회 소속 의원들은 이날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한 새로운 의혹도 제기했다. 의원들은 쿠팡 전직 직원이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쿠팡 측에 보낸 경고 메일을 확보했다며 해당 메일에 담긴 내용은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라며 발표한 '3300만 개 고객 정보 접근', '3000개 계정만 저장'이라는 주장과 완전히 배치된다고 밝혔다. 이어 쿠팡이 밝힌 유출 규모와 실제 외부 유출 정보 간 차이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며 청문회를 통해 유출된 정보의 정확한 범위와 쿠팡의 발표가 사실인지 여부를 하나하나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남근 의원은 “피의자가 스스로 조사해 유출 규모를 발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책임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야 입장차도 부각됐다. 이번 청문회에는 국민의힘이 불참 입장을 밝히면서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기획재정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정무위원회 소속 범여권 의원들은 사보임을 통해 청문회에 참석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연석 청문회는 반대하면서 국정조사만 주장하는 태도는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며 “쿠팡 사태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책임 있는 참여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해롤드 로저스 임시대표의 통역 방식을 둘러싼 신경전도 벌어졌다.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기존 통역 과정에서 핵심적인 질의가 윤색돼 전달됐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국회가 준비한 동시통역기 사용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로저스 대표는 개인 통역사 사용을 주장하며 동시통역기 착용을 거부했으나, 노종면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증인은 국회의 결정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며 “국회가 정한 동시통역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논쟁 끝에 로저스 대표는 동시통역기를 착용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개최된 이날 청문회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정무위원회 등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했다. 청문회에는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를 비롯한 쿠팡 관계자들이 증인 및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김연숙 기자 youns@ekn.kr

李 대통령, 내달 4~7일 중국 국빈 방문...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

이재명 대통령이 내년 1월 4~7일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이후 9년 만의 한국 대통령 중국 국빈 방문이다. 청와대는 30일 “이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따라 방문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4~6일 베이징에서 시 주석과 정상회담 및 국빈 만찬 등 공식 일정을 소화하고, 6~7일에는 상하이로 이동한다. 이번 방문은 지난달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계기 회담 이후 두 달여 만에 이뤄지는 양 정상의 두 번째 만남이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 정상은 두 달여 만에 다시 만나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전면적 복원 흐름을 공고히 하고, 공급망·투자·디지털 경제·초국가 범죄 대응·환경 등 민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구체적 성과를 거양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상하이에서는 역사적 현장 방문과 함께 미래 산업 협력 강화에 방점을 찍는다. 강 대변인은 “상하이에서는 2026년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이자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고, 앞으로 한중 간 미래 협력을 선도할 벤처 스타트업 분야에서 양국 기업의 파트너십을 촉진하기 위한 일정도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말썽꾸러기 쿠팡의 ‘역설’…국회 문턱 못 넘던 ‘온플법’ 급물살 탄다

외국계 자본인 국내 최대 온라인 쇼밍몰 쿠팡의 고객정보유출 사태가 국회 문 턱을 넘지 못하던 온라인 플랫폼 규제 3법의 처리 전망을 밝게하고 있다. 30일 국회 등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부터 올 연말까지 국회에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을 겨냥한 핵심 규제 법안 세 건이 연이어 제출됐다. 작년 7월 발의된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안, 같은 해 10월 제출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 이달 9일 국회에 접수된 음식배달플랫폼 서비스 이용료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모두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고,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에서 계류 중이다. 세 법안 모두 플랫폼 시장의 불공정 구조와 독과점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플랫폼 독점 구조를 사전 규율하고, 이미 형성된 거래 관계에서의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장치 마련이 목적이다. 아울러 가장 민감 영역으로 볼 수 있는 배달 플랫폼 수수료에 대한 직접 규제로 단계가 이어진다. 다만, 접근 방식과 규제 강도는 서로 다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법안은 단연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법이 꼽힌다. 이 법안은 발행주식 평균 시가총액 15조 원 이상, 연평균 매출 3조 원 이상, 월평균 이용자 수 1000만 명 이상 또는 이용사업자 수 5만 개 이상이라는 정량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충족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했다. 이후 공정위가 시장조사를 거쳐 '시장지배적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하고, 이들 사업자가 제공하는 시장지배적 플랫폼 서비스를 목록화해 관리하는 한편, 자사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 제한·타 결제수단 홍보제한 등 전형적인 남용 행위를 사전 금지한다. 핵심은 사후 제재가 아니라 이처럼 '사전 규율'에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EU가 시행 중인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내 논의 과정에서는 '한국 플랫폼 생태계에 과도한 규제 틀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황승기 국회 정무위원회 전문위원도 법안 발의 당시 검토보고서를 통해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의 제정은 온라인 플랫폼의 확산,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 규제에 관한 인식,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 규제에 따른 순기능과 역기능, 해외 입법 동향 등 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플랫폼 기업들 또한 혁신 저해와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고,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도 “시장 변화가 빠른 플랫폼 산업에 경직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신중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기에 임시중지명령, 과징금, 동의의결 등 강력한 권한이 공정위에 집중되는 구조에 대해 '행정부 권한 비대화'라는 정치적 부담까지 작용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추가적인 입법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황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온라인 플랫폼은 변화와 혁신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분야로서 불필요한 규제가 늘어날 경우 기업의 창의력과 혁신 동력이 훼손돼 오히려 소비자 후생 증진에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 역시 플랫폼 독과점 문제에 입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원칙적 입장은 밝혔지만, 별도의 정부안을 내놓지 못한 채 국회 논의에만 의존하는 상황이 이어져 왔다. 상대적으로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법안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는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쿠팡 알고리즘 논란 등 구체적 사례가 입법 배경으로 제시되고 있다. 작년 쿠팡이 알고리즘의 검색순위를 조작하거나 그 기준을 불투명하게 운영해 입점 소상공인과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로 과징금 처분을 받은 사건이 법안 발의를 촉발시켰다. 이 법안은 판매대금을 구매확정일 또는 결제일로부터 10일 이내 지급하도록 하고, 일정 비율의 금액을 신탁하거나 보증보험으로 보호하도록 규정했다. 중개수수료율의 차별 금지, 영세 사업자 우대수수료 적용, 이용사업자 단체 구성과 거래조건 협의권 보장 등도 담겼다. 플랫폼과 입점 사업자 간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판매대금 정산 지연과 거래 조건의 불투명성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공감대는 비교적 넓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이 법안 역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수수료 상한과 우대수수료율의 구체적 기준을 대통령령과 공정위 고시에 위임한 점을 두고 '행정 재량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정산 보호를 위한 신탁·보험 의무가 중소 플랫폼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가장 최근 국회 발의된 음식배달플랫폼 서비스 이용료 법안은 정치적으로 가장 부담이 큰 법안으로 평가된다. 이 법안은 영세·소규모 이용사업자에 대한 우대 수수료율 의무화, 무료배달 마케팅 비용의 점주 전가 금지, 배달 방식과 배달비 분담 수준에 대한 선택권 보장 등을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수수료 직접 규제에 해당한다. 입법 취지는 분명하다. 자율규제와 상생 협약이 실질적인 부담 완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판단, 카드 수수료 인하라는 과거 입법 사례가 근거로 제시됐다. 무엇보다 음식배달플랫폼 사업자의 수수료 폭리와 무료배달비용 전가에 대한 규제는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배달 플랫폼 수수료는 소비자 가격, 라이더 보수, 플랫폼 수익 구조와 직결된다. 정부와 여당이 물가 안정과 자영업 대책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일 법안으로 결론을 내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연숙 기자 youns@ekn.kr

국힘 당무위 “당게 사건은 한동훈 소행…윤리위 송부”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이른바 '당원 게시판 의혹'을 조사한 결과, 문제 계정 상당수가 한동훈 전 대표의 가족 명의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당무감사위는 조사 결과를 중앙윤리위원회에 송부하기로 하며 징계 절차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당무감사위는 30일 “본 위원회는 2024년 11월 제기된 '당원 게시판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당 기강 확립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조사를 실시했다"며 “조사 결과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동일하며, 전체 게시글의 87.6%가 단 2개의 IP에서 작성된 여론 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어 “해당 계정들은 당원 게시판 운영 정책을 심각하게 위반했으며, 언론 보도 이후 관련자들의 탈당과 게시글 대규모 삭제가 이뤄졌다"며 “디지털 패턴 분석을 통해 한 전 대표에게 적어도 관리 책임이 있음을 확인해 당헌·당규에 따라 중앙윤리위원회에 조사 결과를 송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은 “동일 휴대전화 번호, 주소지, IP, 동시 탈당 등의 사실에 비춰보면 한 전 대표 및 그 가족 명의의 계정은 '동명이인'이 아닌 실제 가족 관계에 있는 동일 그룹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이 당원 게시판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당내 인사를 비방하고, 비정상적으로 여론을 조작한 행위는 당원 규정과 윤리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해당 행위이자 게시판 관리 업무를 마비시킨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한 전 대표의 책임론도 제기했다. 그는 “당시 당대표로서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음에도 본인 및 가족이 연루된 의혹에 대한 해명 없이 조사마저 회피함으로써 당의 신뢰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다만, 한 전 대표가 현직 당직자가 아닌 점을 고려해 징계 권고는 의결하지 않고, 중앙윤리위원회에 최종 판단을 요청했다. 당무감사위 측은 “징계 여부 및 수준은 일반 당원에 대한 징계권을 가진 윤리위가 직접 심의·의결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중앙윤리위가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게 될 전망이다. 장동혁 대표가 지난달 여상원 전 윤리위원장 사퇴 이후 공석이 된 위원장직을 아직 임명하지 않아 향후 절차 진행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여 전 위원장은 친한(친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징계 문제를 두고 지도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윤리위원장 인선 방향에 따라 한 전 대표에 대한 중징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코레일 개혁]① 만성적자 왜 바뀌지 않나…‘방만경영의 민낯’

연말을 맞은 12월 한 달간 국민들은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총파업 예고로 혼란스러웠다. 이달 11일과 23일 철도노조는 연이어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가 파업 당일 예고했던 파업 시간 직전에 파업을 유보했다. 노조가 파업을 실행하지 않으면서 우려됐던 교통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달에 노조가 약 열흘 간격으로 전국 단위 규모의 철도 파업을 연달아 예고하면서 국민들은 출근길 걱정에 애를 태워야 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두 차례 대규모 철도 파업 예고의 배경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성과급 지급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코레일이 흑자를 낸 가장 최근 시기는 2015년이 마지막이다. 이 해 코레일은 당기순이익 5776억원을 거뒀다. 하지만 그 이후로 코레일은 현재까지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코레일은 9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코레일은 2016년 당기순손실 2044억원 적자를 낸 데 이어 2017년(-8623억원), 2018년(-1393억원), 2019년(-853억원)까지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타격으로 인해 2020년(-1조2381억원)과 2021년(-1조1081억원)엔 손실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엔데믹 이후인 2022년(-3104억원)과 2023년(-5425억원)엔 이전 해보다 적자 폭을 줄였지만 여전히 수천억원대 순손실을 입었다. 작년에도 코레일은 적자 5167억원을 기록하면서 부진한 실적을 기록 중이다. 코레일이 이처럼 만성적자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방만한 사업비 지출 구조 때문이다. 코레일은 사업비로 최근 5년간 3조원에서 5조원 규모를 지출했다. 코레일 사업비는 시설 개량 사업 및 철도 차량 구입 등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이다. 2020년 3조97억원이었던 코레일 사업비는 2021년 3조5308억원으로 껑충 뛰더니 2022년엔 4조2957억원으로 4조원 선을 돌파했다. 2023년 사업비 지출 규모는 4조7899억원으로 5조원을 넘봤고, 작년에도 코레일은 사업비로 4조9023억원을 지출하면서 5조원 가까운 사업비를 썼다. 대국민 교통 수단의 큰 축을 이루는 철도 서비스 품질의 향상을 위해 코레일이 열차를 구입하고 시설을 개량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업무다. 그러나 코레일이 지난 5년간 3조원에서 거의 5조원까지 사업비를 대폭 늘려 지출하는 동안 국민이 체감하는 철도 서비스 만족도의 향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KTX 지연율은 2023년 20.89%로 열차 다섯 대 중 한 대 꼴로 지연됐고, 2024년에도 지연율 22%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선 지난 8월 경부선 청도군 철도 사고로 지연율이 더욱 상승해 10월 경부선 기준 KTX 지연율이 36.7%로 더욱 급증했다. 작년에만 5조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시설 개선과 열차 구입에 쓴 코레일이 철도 서비스의 가장 기본인 정시 운행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코레일 성과급이 공기업 평균 수준을 하회하긴 하지만 코레일은 10년 연속 수천억원씩 적자를 내면서 이미 부실 공기업 낙인이 찍힌 상황이다. 철도노조가 대국민 교통 서비스를 볼모로 한달에 열흘 간격으로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전국적인 대규모 열차 파업을 예고하고 결국 원하는 방향으로 성과급을 받아내는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눈초리는 차갑다. 경영진의 방만한 사업 관리도 큰 문제다. 특히 최근 열차 구입 및 시설 개량을 명목으로 코레일이 한 해 수조원씩 비용을 지출했지만 제때 납품을 받지 못하는 등 엉터리로 관리한 사실이 드러나 전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실제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와 이달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철도 차량 납품 계약을 맺은 열차 제작업체 '다원시스'로부터 코레일이 제 때 열차를 수령받지 못했음에도 선급금을 회사 측에 4000억원이나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코레일은 다원시스와 2019년 6720억원 규모의 ITX-마음 358칸 납품 계약을 체결했지만 현재까지 수령한 차량은 일과 6720억원 규모의 ITX-마음 358칸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절반 이상인 210칸 규모의 차량 납품이 현재까지도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코레일은 납품 부실을 일으킨 다원시스와의 계약을 해지하기는 커녕 ITX-마음 116칸을 추가로 계약했다. '한 푼 한 푼' 소중하게 쓰여야 할 사업비를 사실상 부실 업체에 그대로 가져다 바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코레일이 자사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철도 관련 업무를 다수의 자회사를 만들어 분사시킨 것도 방만 경영의 대표 사례다. 사장 등 임원 자리를 최대한 늘려 자사 또는 국토부 출신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는 용도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액의 인건비 낭비는 물론 비효율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코레일은 현재 코레일유통과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관광개발, 코레일로지스, 코레일테크 등 5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코레일유통은 과거 철도 내 편의점, 가판기, 먹거리 등을 판매하던 홍익회를 전신으로 하는 회사다. 현재도 코레일유통은 역내 편의점인 스토리웨이와 역내 가판기를 관리하고 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역내 매표 서비스와 주차장을 관리하는 회사다. 코레일관광개발은 코레일과 연계한 여행상품 판매 및 열차 내 승무원들이 소속돼 있는 조직으로 대고객 승무 서비스를 관리한다. 코레일로지스는 열차와 관련한 물류서비스를 관장한다. 코레일테크는 철도차량 정비 및 청소, 철도선로 유지관리 등 철도 관련 기술적인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업무는 코레일이 2004년 공기업으로 전환되기 이전 정부 기관이었던 철도청이었던 시절에 대부분 담당했던 업무들이다. 당시 경영 효율화를 위해 철도 서비스 일부를 쪼개 자회사를 만들고 이 업무들을 맡겼지만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오히려 이런 문어발식 자회사 경영이 코레일의 방만 경영을 부채질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코레일의 이러한 자회사 경영에 대해 “이렇게 (열차 관련) 서비스들이 많이 쪼개진 것이 효율적인가. 경쟁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서비스별로 자회사들을) 분리해 놓으면 관리 비용만 더 늘어난 것이 아닌가"라며 지적하기도 했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김범석 또 불출석…쿠팡 청문회서 ‘국정조사’ 요구 확산

국회가 사상 최음으로 6개 상임위원회가 총출동하는 연석 청문회를 열고 온라인 쇼핑업에 쿠팡의 개인정보유출 문제와 최근 발표된 보상방안 등을 다뤘다. 그러나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가 불출석한 가운데 부실한 질의와 응답이 이어져 큰 성화는 없었다. 이에 여야 의원들이 국정조사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더 강경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국회는 30일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번 청문회는 국회법 제63조에 따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주도로 정무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등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연석회의 형태로 진행됐다. 이날 청문회에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비롯해 쿠팡 전·현직 임원 13명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김 의장과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 핵심 증인들은 “다른 일이 있다"는 등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출석하지 않았다. 여야 의원들은 김 의장 등 주요 경영진의 불출석을 강하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은 “김범석 의장은 오늘도 출석하지 않았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추가 출석 요구는 물론 필요하다면 고발을 포함한 모든 법적 조치를 단호히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이용우 의원도 “불출석 사유서 하나로 국회 출석을 반복적으로 회피하는 것은 대한민국과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국민 앞에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청문회 대신 국정조사를 추진해야 하며, 주관 상임위 역시 과방위가 아닌 정무위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이유로 이날 청문회에 불참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현정 의원은 “국정조사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연석 청문회에는 불참하는 태도에서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며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쿠팡이 최근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출 정보 3000건'이라고 발표하고, 전날 1인당 5만 원 상당의 쿠폰 지급을 포함한 보상안에 대해 '생색내기'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우영 민주당 의원은 “현금이 아닌 쿠폰 지급은 공정거래법상 끼워팔기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는 “쿠팡의 자체 조사라고 하지만 정부 지시에 따라 한 달 이상 성실히 조사에 협조했다"고 설명했다. 추가 보상 계획에 대한 질의에는 “총 1조7000억 원 규모의 보상안으로,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무위·기재위·외통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사보임 절차를 거쳐 과방위원 자격으로 청문회에 참여했다. 해당 상임위들은 모두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연숙 기자 youns@ekn.kr

이혜훈, 李 정부 ‘깐깐한 곳간지기’ or ‘제2의 홍남기’?

확장재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재명 정부가 첫 예산사령탑으로 '건전재정론자' 이혜훈 전 의원을 선택했다. 예산 편성 권한을 둘러싼 정부 조직 개편과 맞물려 재정경제부와의 힘겨루기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새 정부 재정 운용의 첫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지나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다 문재인 정부의 정권재창출 기회를 '삭제'해버렸다는 평가를 받는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의 전철을 밟을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내년 초로 예상되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 후보자는 지난 29일 첫 출근길에서 “우리 경제가 단기적으로 퍼펙트스톰 상태에 있다"며 “고물가·고환율의 이중고 속에서 국민의 생활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불필요한 지출을 과감히 줄이고 민생과 성장에 투자해야 한다"며 “세금이 미래를 위한 투자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는 대표적 재정건전론자로 꼽힌다. 특히 나랏빚을 늘려 예산을 확대하는 방식에는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는 200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시절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본의 장기 불황 원인으로 실패한 재정정책을 지목한 바 있다. 이 후보자는 “막대한 재정지출이 경제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는 구조 개혁을 뒤로 미루게 하는 걸림돌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과 어느 정도 수준에서 '재정 코드'를 맞출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확장재정론을 주창하는 이 대통령과도 대척점에서 맞선 일이 잦아서다. 이 후보자는 이 대통령의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인 2020년 3월 방송에서 “재난기본소득은 헛돈 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3월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서 “돈이 돌아야 경제가 산다"며 '소비 승수 효과'를 언급하자 “반쪽짜리 얘기"라고 일축했다. 대선 공약이던 '25만원 민생지원금' 정책을 두고 “포퓰리즘의 대표적 행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근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 완화 행보 속에서 이 후보자가 강경한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주목된다. 이 후보자는 과거 SOC 사업 타당성 평가 시 중장기 재정전망을 핵심 기준으로 삼아온 인물로, 불필요한 사업과 재정 누수를 걸러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예타 대상 총사업비·국비 기준을 각각 현행 500억·300억원에서 1000억·500억원으로 상향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 후보자가 확장재정 기조 속에서도 예산 총량 관리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현행 바텀업 방식의 예산 편성 관행을 바로잡고, 분야별 총액을 먼저 정한 뒤 세부사업을 배분하는 탑다운 방식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본지 통화에서 “총지출 규모는 국민적 합의로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효율적 배분은 장관의 전문성으로 수행해야 한다"며 “이 후보자가 현 정부와 재정 철학이 다른 만큼 예산 총량을 임의로 결정하도록 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복지·SOC 등 분야별 총액을 먼저 확정하지 않으면 특정 지역 사업이 누적돼 전체 지출이 불어나는 구조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재명 정부는 기존 기획재정부를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재정경제부와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예산처로 분리한다. 기획예산처는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로 흡수된 이후 18년 만에 부활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기재부의 '예산 갑질'을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기획처 분리를 추진했다. 기존 조직은 구윤철 부총리가 총괄하는 재정경제부가 되고, 현재 기재부 내 예산실과 미래전략국, 재정정책국, 재정관리국이 기획예산처로 이관된다. 핵심 역할은 '국가 예산 편성'이다. 다음 달 2일 공식 출범한다.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와 '힘겨루기' 양상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산 배분 권한이 이동하면서 두 부처 간 미묘한 힘겨루기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돈 너무 풀렸다’는 우려에 선 긋기…통화량 증가율 장기 평균 밑돌아

우리나라 통화량 증가 속도가 최근 2년 가까이 장기 평균을 밑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통화 통계 기준을 손질한 결과, 시중 유동성이 과도하게 풀린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30일 '통화 및 유동성 통계 개편 결과'를 통해 새로운 기준으로 산출한 광의 통화량(M2) 잔액이 올해 10월 기준 4056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기존 기준으로 산출한 잔액(4466조3000억원)보다 9.2% 줄어든 규모다. 이에 따라 M2 증가율도 전년 동기 대비 5.2%로 낮아졌다. 종전 기준에서는 8.7% 증가로 나타났으나 통화성 판단 기준을 조정하면서 증가율이 크게 하향 조정됐다. 한은은 새 기준으로 본 M2 증가율이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는 장기 평균을 웃돌았지만, 2023년 1월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평균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화량 비율 역시 장기 추세선 아래로 내려온 상태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GDP 대비 M2 비율은 154%로 장기 추세치인 157%보다 3%포인트 낮았다. 유동성 지표 전반에서도 증가세는 둔화된 모습이다. 10월 기준 금융기관 유동성(Lf) 잔액은 6011조4000억원으로 기존 기준 대비 0.2% 감소했고, 광의 유동성(L) 잔액은 7597조1000억원으로 0.7% 증가했다. 이에 따라 Lf 증가율은 7.1%, L 증가율은 6.9%로 각각 낮아졌다. 이번 통계 개편은 통화성 판단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가격 변동성이 크고 단기 성격이 강한 만기 2년 미만 수익증권은 M2에서 제외하고 금융기관 유동성으로 분류했다. 반면 통화 기능이 있다고 판단한 초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발행어음과 발행어음형 CMA는 새롭게 M2에 포함했다. 이와 함께 투자펀드 분류 체계를 세분화하고 외국환평형기금의 소속을 중앙은행에서 중앙정부로 조정하는 등 경제 주체별 분류도 재정비했다. 퇴직 관련 신탁과 공무원, 군인, 사학연금 역시 통계상 다른 부문으로 옮겨 반영했다. 통화 및 유동성 통계 개편은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시중에 과도한 유동성이 공급돼 환율과 자산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다만 한국은행은 이번 작업이 단기적 논란과는 무관하게 국제 기준에 맞춰 장기간 준비해온 제도 정비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은행 금융통계팀은 국제통화기금(IMF)의 통화금융통계 매뉴얼 개정에 맞춰 수년 전부터 개편을 추진해 왔으며, 국가통계발전계획에 따라 2025년 완료를 목표로 일정이 확정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화 지표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커진 점을 고려해 향후 1년간은 신·구 기준 통계를 병행해 발표할 계획이다. 한국은행은 미국 등 주요 선진국도 M2에서 수익증권을 제외하고 있는 만큼, 이번 개편으로 통화 통계의 국제 비교 가능성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김병헌의 체인지] 고환율 정부 대책 변명만 남았다

서울 외환시장의 숫자는 바뀌지만 풍경은 달라지지 않는다.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높은 구간에서 출발했고, 정부 설명도 익숙했다. 글로벌 달러 강세, 미·중 갈등, 중동 불안, 무역수지 변동성, 그리고 개인의 해외 투자 증가 등… 고환율의 원인 목록은 길다. 문제는 이 많은 이유가 정부의 정책으로 연결되는 순간, 늘 같은 결론으로 수렴한다. '달러가 새는 구멍부터 막자'로 귀결된다. 맞는 말이지만 방법은 산으로 간다. 구멍으로 자주 지목되는 대상이 서학개미라는 지점이 상징적이다. 개인 투자자가 해외 주식을 사들이며 환율을 끌어올렸다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정부는 다른 이유들도 덧붙이긴 한다. 미국과의 금리 차, 수입 물가 상승, 지정학적 리스크, 반도체 경기 회복 지연…. 이 모든 요인을 나열한다.결국 손대는 곳은 늘 개인의 선택에 대해서다. 가장 통제하기 쉬운 변수이기 때문이다. 현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증권사 영업점에서 만나는 개인 투자자들은 “달러를 벌려고 미국 주식을 샀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장기 투자할 만한 종목이 잘 안 보인다"고 말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책은 계속 빗나간다. 환율은 단기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중장기 신뢰의 가격이다. 정부가 말하는 고환율의 또 다른 원인은 금리 차다. 미국의 고금리가 달러를 끌어 당긴다는 설명이다. 맞다. 하지만 금리 차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같은 금리 환경에서도 통화 가치가 덜 흔들리는 나라는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장에 대한 신뢰다. 지난 10년간 S&P 500이 보여준 성과는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숫자로 증명했다. 반면 코스피는 장기 투자자에게 신뢰를 주는 데 실패했다. 무역수지 역시 자주 거론된다. 수출이 주춤하니 환율이 오른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출 부진의 이유를 들여다보면 다시 구조 문제로 돌아온다. 산업의 세대교체가 더디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부족하다. 반도체 한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경기 사이클에 환율이 과도하게 흔들린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수치는 반복된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빠지지 않는다. 글로벌 불안은 달러를 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같은 충격을 받아도 어떤 나라는 덜 흔들리고, 어떤 나라는 크게 흔들린다. 차이는 체력이다. 자본시장의 깊이, 기업의 경쟁력, 제도의 예측 가능성이 환율 방어력을 좌우한다. 이 체력을 키우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개인의 해외 투자를 막는다고 생기지는 않는다. 일본은 엔저 국면에서도 개인의 해외 투자를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NISA(개인 투자 비과세 계좌) 제도를 확대해 미국 주식을 포함한 글로벌 자산 투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 해외에서 벌어온 수익이 결국 국내 소비와 투자로 돌아온다는 판단이었다. 환율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고, 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한국은 반대다. 고환율이 나타나면 개인의 손부터 본다. 해외 주식을 팔면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식의 정책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처방은 숫자를 잠시 움직일 수는 있어도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다. 구조가 그대로라면 자금은 다시 빠져나간다. 시장은 기억력이 길다. 결국 문제는 한국 증시의 구조다. 기업이 커질수록 규제가 늘어나고, 중소기업이 중견이 되는 순간 부담이 급증한다. 신산업은 허용보다 금지가 먼저다. 이런 환경에서 장기 성장 스토리는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투자자는 해외로 눈을 돌린다. 서학개미의 출발점이다. 이 상태에서 코스피 5000을 말하는 건 현실 인식과 거리가 멀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숫자는 따라오지 않는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환율을 잡고 싶다면 달러를 막을 게 아니라, '원화의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외국인과 국내 자본 모두에게 굳이 달러 대신 원화를 들고 있어야 할 근거를 말한다. 다시 묻는다. 고환율의 이유를 이렇게 많이 알고 있으면서, 왜 해법은 늘 같은가. 서학개미는 원인이 아니다. 정부가 나열한 고환율의 이유들 역시 원인이 아닌 결과가 대부분이다. 원인은 하나다. 성장과 신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제 구조다. 2026년 새해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환율 대책이 아니라, 구조개혁부터다.

[이슈&인사이트] 환율 불안 시대 스테이블코인의 도전

과거에는 화폐가 물건 또는 서비스 등을 주고받으면서 이에 따른 가치 교환을 위한 수단이었다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스마트 머니(smart money)이자 국경을 초월하여 데이터와 가치를 동시에 전송하는 핵심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세계는 국책은행이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와 민간 기업 주도의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두 종류의 첨단 암호화폐를 중심으로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미국 달러와 같은 법정 통화에 1:1로 연동,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여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한 암호화폐를 지칭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가격이 급등락하는 다른 암호 자산과 달리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목표다. 예를 들어 최초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는 1 USDT가 항상 미화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어디로든 직접 빠르게 전송할 수 있어 속도가 느리고 많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은행 대신 효율적인 해외 송금·결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때문에 마약 밀매, 해킹, 테러 자금 조달, 자금세탁 등 국제 불법 자금 거래에 사용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 거래 확산은 다양한 암호 자산 간 거래를 원활하게 하고 안정된 투자 환경을 조성해 시장의 유동성을 높여 주식시장에 못지않은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한다. 이를 주도하는 게 미국 달러(USD) 표시 스테이블코인이다. 현재 국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0% 이상이 달러 기반으로 운용되며,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이에 미국은 '스테이블 코인법'을 입법하며 주도권 강화에 나섰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향후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세계 여러 국가의 통화를 잠식하여 이들의 통화 주권을 위협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기축통화국 아닌 한국에 더 치명적이다. 특히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외 자금 결제 및 송금 시장을 잠식할 경우, 원화의 입지는 급격히 축소되고 위기 시 급속한 자본 유출을 통제하지 못해 심각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원화 가치가 급격히 절하되면서 과거 IMF 사태와 같은 외환위기 우려가 부상하고 있다. 만약 원화 가치가 계속 추락하면 기업과 개인의 환전 욕구가 확대될 것이고, 금액 제한이 없고 빠른 구매가 가능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환전 수요가 쏠린다면 환율 통제가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이 원화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면 과거 IMF보다 더한 외환위기가 초래될 것이다. 국내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이런 위험을 인지하고 있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디지털 화폐와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현재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다. 디지털 통화의 국제적 확산은 단순한 금융 기술의 발전을 넘어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안보 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한국의 통화 정책과 경제 주권을 위협한다. 보유, 증여, 송금 등의 제한을 받지 않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대안 없이 방치한다면 국내 금융 시장에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수 있다. 유사시 발생할 수 있는 빠른 대규모 자본 유출은 대한민국이 당면한 범국가적인 차원의 실존적 위협이다. 이는 금융, 기술, 안보가 융합된 복합 위기가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한국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위상과 위력에 대항하기 쉽지 않더라도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원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등 자체적인 디지털 통화 역량을 확보하여 급변하는 국제 자본과 금융시장의 도전에 대응해야 할 때이다.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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