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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세계 1위 운용수익률 국민연금, 이제 지배구조 혁명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2025년 231조 원의 운용 수익을 올려 기금 설치 이래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올해는 2개월 동안 120조 원을 달성했다. 231조 원의 수익은 5년분의 연금 재원에 해당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1월 23일 코스피 5천 선 돌파를 기점으로 “국민연금 고갈 우려나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은 이제 내려놓아도 되는 상황"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2,180만 명의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기금 고갈의 위험에서 해방했다는 측면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전 국민의 박수와 하이닉스에 준하는 포상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하이닉스의 2026년 성과급은 영업이익 47조 원의 역대급 실적에 대한 보상이다. 기본급의 약 2,965%로, 연봉 1억 원 기준 성과급만 약 1억 4,820만 원 수준이다. 여기서 공공기관인 국민연금에 대한 하이닉스급 포상은 불가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더구나 국민연금의 실적은 코스피가 2025년 76% 급등한 데 이어 올해도 23% 상승하며 랠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연간 운용 수익 18%는 일본 GPIF(12.3%), 노르웨이 GPFG(15.1%), 캐나다 CPPIB(7.7%) 등 글로벌 자산운용의 강자 중 1위 수준이다. 또한 외생변수만을 따진다면 하이닉스의 실적도 반도체 경기의 수퍼사이클에 의존한 바 크다고 폄하할 수 있다. 2026년 국민연금의 직원 수는 7,200명 전후로 운용 수익은 231조 원이다. 반면 하이닉스의 3만 3천 명의 직원이 거둔 영업이익은 47조 원이다. 인당 이익으로 비교하면 국민연금은 302억 원/인 인 데 반해서 하이닉스는 14억 원/인이다. 국민연금의 가성비는 하이닉스의 20배다. 국민연금에 대한 획기적 보상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 국정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연금 운용 수익이 1% 올라가면 기금 소진 기간이 15년 연장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도 운용수익률을 연 6.5%로 높이면 기금 소진 시점은 2057년에서 2090년으로 늦춰질 것으로 추산한다. 여기서 현 정권의 최우선 정책과제가 도출된다. 장기 기금수익률 7% 달성의 정책과제다. 최우선 정책 과제는 국민연금이 미래 한국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한 국민 합의다. 그를 바탕으로 정치적 당리당략을 초월하여 국민연금 이사장만은 탁월한 전문가를 임명하고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여야 합의선언이다. 1988년 창립 이래 38년 동안 18명의 이사장이 취임하여 평균 재임 기간 2년이다. 역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중 임기를 채운 수장은 30% 내외다. 이는 정권 교체 시마다 임기를 조기 마감한 결과다. 출신별로 보면 관료·정치인·군 출신이 대부분이다. 실용 국정의 기본 방향은 첫째 기금운용에 대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지배구조다. 자산규모 기준 해외 5대 연기금 중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 소속인 경우는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둘째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의 전문성 문제다. 해외의 경우 기업·학계 출신 전문가들이 맡는다. 반면 한국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에 소속돼 있고 정은경 장관과 같이 의사 출신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셋째가 기금운용 베테랑인 실장급 운용역들의 공백에 대한 우려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특별한 대책으로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이 필수적이다. 운용역에 대한 과감한 자율과 인센티브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넷째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포함한 투자 기법의 과학화다. 다섯째,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포트폴리오에 대한 전면적 개편이다. 예를 들면 선진국 지향적 안전 투자에서 적절한 위험을 감수하는 개발 도상국 투자의 수익 모델로 전향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는다고 국민연금의 흑자 기조가 보일 때 2,180만 명의 연금 가입자와 그 가족 그리고 국민에게서 연금 고갈의 스트레스에서 해방하는 과감한 혁명적 실용 국정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bienns@ekn.kr

[미-이란 전쟁] 스마트폰·TV 석권 중동시장 ‘불안’…속타는 K-가전·전자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양측간 확전 의지로 이어지면서 중동지역 위기감이 시시각각 고조되자 국내 가전·전자업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미-이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세계 에너지 수송의 '동맥'으로 불리는 호르무즈해협은 물론 중동 일대 영공까지 막혀 주요 수출품의 해상·항공 운송 차질, 중동 소비시장의 수요 위축 등 '이중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탓이다. 4일 가전·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란 정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선언에 따른 파급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이스라엘의 공습에 대응해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하고 통과 선박에 공격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호르무즈 봉쇄는 곧바로 국제 원유 수송의 길목을 차단하는 것으로 곧바로 원유 수급 차질 및 유가 급등을 의미한다. 동시에 유가 상승→선박 연료비 및 항공유 가격 상승→ 해상·항공 운임 인상의 공식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피해 다른 우회항로를 이용할 경우 해상운임이 기존 대비 최대 50~80% 크게 오르고, 육로 운송 및 통관 절차 증가로 운송 기간도 3~5일가량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직격탄이 예상되는 피해 품목은 해상 컨테이너 운송 비중이 높은 가전으로 꼽힌다. TV, 냉장고, 세탁기 등 대형가전은 대부분 선박을 통해 수출된다. 우회항로가 장기화될 경우 물류 지연과 비용 증가가 불가피해 가전 수출기업에 수익 악화 부담을 높인다. 국내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물류비 상승 가능성을 주시하며 관련 회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장기 봉쇄에 대비해 대체 물류경로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항공운송 비중이 높은 스마트폰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물량의 상당수는 항공운송을 통해 이동하는데다 중동이 유럽·아프리카·미주로 향하는 주요 항공화물노선의 물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두바이 국제공항과 하마드 국제공항은 대표적인 화물환적 허브로, 이들 공항을 통해 화물이 통합·재분배된 뒤 유럽, 아프리카, 미국 동부 등으로 이송된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등 중앙아시아 경유 노선이나 동아시아·북미 우회 노선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운송비 상승과 재고 운영 부담 증가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폐쇄 발표는 유가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운송비 증가로 직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이미 부담이 가중된 스마트폰 공급망에 추가 압박 요인으로 작용해 이윤 구조와 가격 전략, 재고 계획 전반에 점진적 부담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쟁에 따른 중동현지 소비 위축도 걱정거리다. 중동은 단순판매시장을 넘어 국내 가전·전자 기업들의 전략적 거점으로 평가된다. 프리미엄 TV와 대형 냉장고, 고가 스마트폰 수요가 집중된 시장이기 때문이다. 삼성·LG전자는 중동에서 프리미엄 제품 중심의 매출 구조를 구축해 왔으며, 생활가전과 TV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특히, 중동은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시장점유율 1위로 군림하고 있는 핵심 수출지역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튀르키예를 제외한 중동 시장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출하량 기준 점유율 36%를 차지했다. 전작인 '갤럭시 S25' 시리즈의 최상위 올트라 모델의 경우, 중동 판매량이 전년 대비 7% 증가하며 현지 프리미엄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이런 삼성전자를 애타게 하는 점은 최근 신모델 '갤럭시 S26' 시리즈를 야심차게 공개하고 글로벌 사전예약에 돌입한 '초기판매 국면'에 미-이란 전쟁 발발로 중동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는 것이다. 기대를 모으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수요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중동 일대 소비 심리 위축으로 고가 모델 중심의 초기 판매 모멘텀을 약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중동을 포함한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주요 매출 기반이기도 하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두 회사의 전체 매출에서 해당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9%로 적지 않다. 따라서, 미-이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물류비용 상승과 수요 둔화의 '복합 위기'가 삼성·LG전자 실적에 실질적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기업들은 전쟁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며 대응책을 마련하는 단계이지만, 확전이 현실화될 경우 프리미엄시장을 기반으로 한 수익 구조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이란 전쟁이 단기 변수에 그치길 기대하고 있지만, 장기화될 경우 수출시장의 소비 심리 위축은 불가피하다. 물류비 상승과 수요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이통3사 사외이사 물갈이…관료 보내고, AI·재무 전문가 들인다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통신 3사의 이사회 지형도가 바뀐다. 과거 이사회의 한 축을 담당했던 부처 장관 및 대학 총장 출신 고위급 인사들이 퇴진하고, 그 빈자리를 AI 규제, 글로벌 자본, 실무형 테크 전문가들로 채운다. 업계는 이통사들이 거시적인 사회 담론보다는 당면한 규제 리스크 방어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에 즉각 투입 가능한 '실전형 전문가' 위주로 이사회 재편에 나선 것으로 평가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이번 주총에서 이사회 구성의 무게중심을 '사회적 가치'에서 '실리'로 옮겼다. 그동안 이사회를 이끌며 SK텔레콤의 ESG 경영을 강조했던 김용학 의장(전 연세대 총장)과 딥러닝 기술 전문가인 김준모 이사(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임기 만료로 물러난다. 새로운 사외이사 후보들의 면면은 회사가 직면한 과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행시 37회 출신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친 국내 대표적인 데이터·AI 법제 전문가다. 현재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AI 기본법과 망 사용료 이슈 등 국회와 정부발 규제 리스크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임태섭 전 골드만삭스 한국 공동대표는 글로벌 자본 시장의 흐름을 읽는 금융 전문가다. 외국인 투자자의 시각을 대변하고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전략을 자문할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SK텔레콤은 기존 사외이사 중 오혜연(KAIST 전산학부 교수) 이사를 재선임해 AI 기술 자문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이로써 3월 주총 이후 SK텔레콤 사외이사는 신규 선임된 이성엽, 임태섭 이사와 기존의 오혜연, 노미경(글로벌 리스크 전문가), 김창보(전 서울고등법원장) 이사 등 총 5인 체제(사내이사 제외)를 갖추게 된다. KT는 '주인 없는 회사'의 취약점으로 지적받던 관료 의존도를 낮추는 데 주력했다. 최양희 이사회 의장(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안영균 이사(전 한국공인회계사회 부회장)가 퇴진하면서 관료 및 유관기관 출신 색채가 옅어졌다. 특히 회계 전문가인 안 이사의 후임을 회계사로 채우지 않았다. 대신 KT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글로벌 빅테크 CEO 출신인 권명숙 전 인텔코리아 사장을 영입한다. 권 후보자는 인텔에서 30년 넘게 재직하며 영업, 마케팅, 지사장 등을 거친 글로벌 비즈니스맨이다. 김영한 숭실대 교수(전자정보공학) 역시 미래 네트워크 기술에 정통한 인물로, KT의 본업인 통신 경쟁력 강화와 AI 인프라 구축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KT는 윤종수(전 환경부 차관) 이사를 재선임했다. 이와함께 기존의 김용헌(전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곽우영(전 현대차 부사장), 이승훈(KCGI 파트너), 김성철(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이사는 임기를 이어간다. 총 7명으로 구성된 KT 사외이사진은 '관료 출신'이 대폭 줄고 '글로벌·기술' 전문성이 강화된 형태로 재편됐다. SK텔레콤과 KT가 변화를 택했다면, LG유플러스는 '안정'과 '관리'를 택했다. 임기가 만료된 윤성수 이사(고려대 교수·회계학)의 후임으로 또다시 회계 전문가인 송민섭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를 선임했다. 송 교수는 한국회계학회 부회장을 역임한 회계·재무통이다. 경쟁사들이 법률가나 글로벌 경영인을 영입하며 전선을 확대하는 동안, LG유플러스는 감사위원의 전문성을 보강하며 내부 통제와 재무 건전성 제고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LG유플러스는 벤처·ESG 전문가인 엄윤미 이사를 재선임했다. 이에 따라 주총 이후 LG유플러스 사외이사진은 신규 선임된 송민섭 이사와 기존의 김종우(한양대 경영대 교수·데이터), 남형두(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지식재산), 엄윤미 이사 등 4인 체제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번 주총을 통해 이통 3사 이사회는 명망가 중심의 구성에서 탈피해, 각 사가 처한 가장 시급한 과제인 규제, 글로벌 확장, 재무 안정을 해결할 수 있는 실무 전문가 그룹으로 성격이 뚜렷하게 변화했다. AI 시대로의 전환기, 이들 '실전형 이사회'가 어떤 경영 성과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특집] 김남일 경북문화관광공사 사장, “포스트-APEC 경북 관광, ‘NEXT 전략’으로 산업 전환 시동”

'포스트-APEC' 선언한 경북 관광… 이벤트 넘어 산업으로 전환 체류형 관광·디지털 전환·글로벌 시장 재편… 경북 관광 구조개편 시험대 데이터 기반 관광 정책 본격화…지역 경제와 청년 일자리 연결 목표 2025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경북 관광 정책이 행사 중심에서 산업 구조 전환 단계로 들어섰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NEXT 전략'을 통해 AI·데이터 기반 관광 행정, 체류형 경험 관광 확대, 국제회의(MICE) 거점 육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보문단지 야간관광 조성과 APEC 기념관 구축, 중동 관광시장 공략 등도 핵심 사업이다. 김남일 경북문화관광공사 사장의 취임 2주년 맞아 도약기에 들어선 경북관광의 미래를 알아본다. 경주=에너지경제신문 손중모기자 2025 APEC 정상회의는 경북 관광에 단순한 국제행사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대형 이벤트 유치 성공이라는 성과보다 더 주목되는 지점은 지역 관광 정책의 방향이 '행사 중심'에서 '산업 구조 전환'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APEC 이후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규정하고 '포스트-APEC' 관광 전략을 본격화했다. 올해 슬로건 'NEXT, 새로운 성장과 가치 창조의 시작'에는 국제행사 성과를 장기 관광 자산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취임 2주년을 맞은 김남일 경북문화관광공사 사장은 최근 에너지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PEC은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라 경북 관광의 체질을 바꾼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이 성과를 미래 관광 자산으로 확장해 경북을 세계 관광 표준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제행사를 치러낸 경험과 인프라, 글로벌 네트워크를 지속 가능한 관광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는 판단이다. 경북 관광이 지금 맞이한 변화는 단순한 관광 정책 수정이 아니라 지역 산업 전략 재편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는 관광'의 한계… 체류시간이 경쟁력 된다 그동안 경북 관광은 풍부한 문화유산에도 불구하고 '경유형 관광지'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방문객 수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숙박과 소비로 이어지는 체류형 구조는 취약했다. 관광객이 머무르지 않으면 지역 경제 파급 효과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방 관광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다. APEC 정상회의는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국제행사를 통해 숙박, 교통, 행사 운영, 도시 이미지 관리 등 관광 산업 전반의 운영 역량이 동시에 검증됐기 때문이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이를 'APEC 레거시'로 정의하고 관광 산업 고도화 전략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 ◆ 'NEXT' 전략… 관광 행정의 패러다임 전환 공사가 제시한 'NEXT' 전략은 관광 정책을 산업 관점에서 재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첫 번째 축은 미래 성장(New Growth)이다. 관광 정책에 AI와 데이터 분석을 본격 도입해 수요 예측 중심 행정으로 전환한다. 카드 소비 데이터, 이동통신 정보, SNS 반응 등을 분석해 관광객 행동을 정밀하게 파악한다. 두 번째는 내실 강화(ESG & Excellence)다. 국제행사 대응 체계를 일회성이 아닌 상시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세 번째는 경험 중심(eXperience) 전략이다. 관광객 체류 시간을 늘릴 콘텐츠 개발이 핵심이다. 단순 관람형 관광에서 경험형 관광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마지막은 관광 유산(Tourism Legacy) 전략이다. APEC 성과를 국제회의와 글로벌 교류 플랫폼으로 확장해 경북을 MICE 관광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 APEC 기념관… '기억' 아닌 '산업 인프라' 경주엑스포대공원에 조성 중인 APEC 정상회의장 기념관은 이러한 전략의 상징적 사업이다. 약 38억 원이 투입되는 이 시설은 단순 전시 공간이 아니라 국제 교류와 교육 기능을 결합한 플랫폼으로 계획됐다. 정상회의장을 원형 재현하고 외교 성과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한다. 오는 10월에는 정상회의 1주년을 기념한 메모리얼 주간이 운영된다. 야간 행사와 문화 프로그램을 연계해 관광 콘텐츠로 재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국제행사를 '기념시설'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지속적 관광 수요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 PATA 총회… APEC 이후 첫 평가 무대 올해 5월 경주와 포항에서 열리는 PATA 연차총회는 포스트-APEC 전략의 실질적 시험대로 평가된다. 30개국 관광 정책 결정자와 업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제회의로, 경북에서는 47년 만에 개최된다. 이번 행사는 경북이 단발성 국제행사 개최지를 넘어 지속 가능한 글로벌 관광 네트워크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 중동 시장 공략… 관광의 질적 전환 시도 경북문화관광공사는 양적 관광 확대 대신 고부가 시장 공략으로 방향을 잡았다. 핵심 타깃은 중동 관광객이다. 아랍권 관광객은 장기 체류와 높은 소비 수준이 특징이다. 공사는 무슬림 친화 관광 코스와 프라이빗 문화 체험 상품 개발을 추진하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경주의 서역 교류 역사와 신라 문화 스토리를 결합한 '신 실크로드 관광'도 주요 전략으로 제시됐다. 이는 관광객 숫자 경쟁에서 벗어나 소비 규모 중심 관광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보문단지 재생… 야간경제 활성화 실험 보문관광단지는 APEC 이후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공간이다. 공사는 약 9.5km 구간의 나이트트레일을 조성해 야간 관광 동선을 구축한다. 낮 중심 관광 구조를 밤까지 확장해 체류시간을 늘리는 전략이다. 또 스카이워크 조성을 통해 기존 호수 산책 중심 관광을 입체형 공간 경험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는 관광 인프라 개선을 넘어 지역 야간경제 활성화 실험으로 평가된다. ◆데이터 관광 시대… 정책 결정 방식 변화 경북 관광 정책은 데이터 기반 행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AI 분석을 통해 관광객 이동 경로와 소비 패턴을 파악하고 이를 22개 시·군과 공유한다. 지역별 관광 상품 기획 역시 데이터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재설계된다. 관광 정책이 경험과 직관 중심에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관광의 최종 목표는 지역 경제 공사는 관광 산업 확장의 궁극적 목표를 지역 경제 환류 구조 구축으로 설정했다. 관광기업지원센터, 관광 아카데미, 청년 인턴 사업 등을 통해 관광 산업이 창업과 고용으로 연결되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관광객 증가가 지역민 소득과 청년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포스트-APEC, 성공 여부는 지금부터 APEC 정상회의는 끝났지만 경북 관광의 진짜 시험은 이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행사 성과를 장기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체류형 관광 전환이 실제 지역 경제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향후 성패를 가를 변수다. 경북문화관광공사가 제시한 'NEXT' 전략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국제행사를 치른 지역이 글로벌 관광 산업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포스트-APEC 시대, 경북 관광은 지금 그 가능성을 시험받고 있다. 김남일 경북문화관광공사 사장은 “APEC은 끝난 행사가 아니라 경북 관광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고, 지역 경제에 어떤 가치를 남기느냐"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북 관광은 문화유산 중심 방문형 관광에서 체류형·경험형 관광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들어섰다"며 “데이터 기반 정책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 관광을 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김 사장은 또 “관광의 성과가 지역민 소득과 청년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관광객 증가가 지역 경제 활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공사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포스트-APEC 시대는 경북 관광의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며 “국제행사를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경북을 세계 관광 시장과 연결되는 글로벌 교류 거점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손중모 기자 jmson220@ekn.kr

與 정을호, 금배지 떼고 靑으로…김준환 전 국정원 차장 비례 승계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의 비례대표 의원직은 김준환 전 국가정보원 차장이 승계하게 된다. 4일 여권에 따르면 정 의원은 국회의원직 사퇴 절차를 밟은 뒤 이르면 이날부터 청와대에서 정무비서관 업무를 시작한다. 5일부터 3월 임시국회가 시작되는 만큼 사직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이날 의원직을 내려놓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출마를 위해 사임한 김병욱 전 정무비서관의 후임으로 정 의원을 내정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현역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내려놓고 청와대 참모 등 정무직으로 이동한 사례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 임광현 국세청장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달 18일 홍익표 정무수석이 임명된 데 이어 정 의원이 정무비서관으로 합류하면서 청와대 2기 정무라인도 윤곽을 갖추게 됐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의 중앙대 후배다. 지난해 6·3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배우자실 비서실장을 맡아 김혜경 여사를 밀착 보좌했다. 대학 졸업 이후 참여연대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당직자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이후 그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창당준비위원장과 사무총장을 맡았다. 비례대표 후보 14번으로 공천을 받아 당의 득표율 26.7%에 힘입어 국회에 입성했다. 이해찬 대표 시절에는 당대표비서실 국장을 지냈고,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총무조정국장을 맡아 당시 사무총장이던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와 함께 당 운영을 담당했다. 정 의원의 사퇴로 공석이 되는 비례대표 의원직은 더불어민주연합 비례 순번 18번인 김준환 전 국가정보원 차장이 승계한다. 김 전 차장은 행정고시 34회 출신으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 줄곧 정보 분야에서 활동한 '정보통'으로 꼽힌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 개혁 작업에 참여했으며,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정원 2차장과 3차장을 지냈다. 이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상임감사를 맡았고,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인재 영입으로 정치권에 합류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달걀이라도 맞고 싶다”…선거철 보수의 ‘광주 참배 정치’

보수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호남 확장'을 강조하며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지만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 속에 참배가 무산되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보여주기식 정치'라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포함한 당 쇄신 없이는 호남 지지율 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수 정당의 호남 접근 방식은 사실상 '선거철 루틴'처럼 반복돼왔다. 선거가 다가오면 지도부가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지만, 지역 민심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보수 정치인들이 호남에 '달걀 테러'를 맞으러 오는 것 아니냐는 호남 시민들의 불신이 되풀이되는 이유다. 결국 '광주 방문–시민 반발–낮은 득표율'이라는 연결고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달걀을 던지지 맙시다. 자작극에 말려들지 맙시다'라는 팻말을 든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다. 2021년 당시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5·18묘지에 참배하기 위해 광주를 찾았지만, 해당 팻말을 든 시민단체와 일부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가로막혀 추모탑 입구에서 묵념만 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같은 해에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이던 김기현 의원 역시 광주를 찾았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선거 때만 되면 호남의 표를 얻겠다고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냐"는 항의가 이어졌고, 한동안 시민과 경찰 간 대치 상황이 이어지며 참배 일정도 지연됐다. 지난해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당일 5·18 민주묘지를 방문했다가 일부 시민단체가 “내란 주범"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한 전 총리는 “저도 호남 사람이다. 뭉쳐야 한다. 우리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큰 소리로 호소했으나 결국 참배에 실패했다. 거듭된 실패에도 국민의힘은 매번 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5·18 민주묘지 참배를 시도했지만, 시민단체의 격렬한 항의에 부딪혀 일정이 사실상 무산됐다. 이날 참배를 막아선 시민의 손에 장 대표의 옷 단추가 떨어지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광주 방문에도 불구하고 호남 민심의 벽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2월 26일부터 27일까지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실시한 2월 4주차 주간 여론조사(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광주·전라도 정당 지지율은 16.2%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인 75.7%과는 대비되는 수치다. 일각에서는 '보여주기식 정치'가 아닌 근본적인 원인부터 성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선거 때만 반복되는 보수 정치인의 5·18 민주묘지 방문은 전형적인 보여주기식의 정치"라며 “표를 위해서 잠시 고개 숙이는 것일 뿐 진정성이나 역사적 인식의 변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국민의힘이 '보여주기식 정치'만 반복한다면 6.3 지방선거에서 호남 지역에서는 승산이 전혀 없을 것"이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감싸고 있는 장동혁 대표가 있는 한 어렵다"고 했다. 이어 “중도 확장성이 있는 인물을 대안으로 내세워야 호남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고, 더 나아가 수도권에서도 중도층이 움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尹 때는 없던 풍경…李 대통령 따라 장관들도 줄줄이 X

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직접 정책 메시지를 전달하는 '디지털 국정'에 속도를 내면서 장관들의 SNS 활동도 빠르게 늘고 있다. 각각의 SNS 활용 스타일은 '동행형', '현장·민생형', '저활동형' 등 3가지로 나뉜다. 4일 장관들의 X 계정 운영 현황을 전수 분석한 결과, 공석인 해양수산부를 제외한 이재명 정부 장관 18명 전원이 개인 X 계정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통령이 X 활용을 본격화한 지난 1월 23일 이후 장관들의 계정 개설이 잇따른 점이 눈에 띈다. 실제 최근 계정을 만든 5명의 장관은 모두 올해 2월 X에 가입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X에 첫 글을 올리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송미령입니다. X에서도 새로 인사드립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산불·가축전염병·농업재해 대응 상황을 점검한 사실을 소개하며 산림청 재난상황실과 방역 및 농업재해 상황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장관들의 X 활동 가운데 대통령 메시지를 적극 공유하며 정책 홍보로 연결하는 '동행형' 사례로는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최 장관은 2026년 2월 X 계정을 개설한 뒤 약 한 달 사이 게시물 30여 건 이상을 올리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계정 개설 첫 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서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을 더 널리 알리고 더 나은 정책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자 소통의 창을 더 활짝 열게 됐다"고 밝히며 SNS 소통 의지를 강조했다. 게시물 구성도 대통령 메시지와 부처 정책을 연결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국가관광전략회의 관련 게시글이 주요 사례로 꼽힌다. 최 장관은 지난달 25일 회의 직후 X에 “국가관광전략회의에 대통령님이 직접 참석하신 건 오늘이 처음"이라며 “관광은 우리 경제의 주력 산업이자 수출 핵심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대한민국 관광산업의 대도약과 대전환을 가속화하겠다"고 강조하며 회의 현장 사진을 함께 올렸다. 이 게시물에는 대통령이 관광 정책을 논의하는 회의 장면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 3000만 시대 열어야…지역관광 활성화 중요"라는 메시지가 담긴 사진이 포함됐다. 최 장관은 또 대통령 게시물을 직접 재게시(repost)하는 방식으로 정책 메시지를 확산하기도 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대통령의 산업 정책 메시지를 공유하면서 관련 정책을 홍보하는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김 장관은 지난달 11일 X에서 AI 반도체 기업 퓨리오사AI를 방문해 'AI 반도체 성장전략 간담회'를 연 사실을 소개하며 “대통령님께서 강조하신 차량용·AI 반도체 경쟁력 강화 추진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반도체는 기술 패권 시대의 게임 체인저이자 AI 혁신의 핵심 기반"이라며 “M.A.X 성공의 퍼즐이자 기회는 열려 있다. 속도로 승부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다음날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테크 도약 대한민국' 발언을 언급하며 “거창한 구호보다 작은 실천이 쌓여 변화를 만든다"며 “티끌 같은 성과를 쌓아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겠다"고 적었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역시 대통령이 참석한 정책 회의 내용을 소개하며 이를 부처 정책 홍보로 연결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한 장관은 지난달 2일 X에 “창업 중심 사회, '모두의 창업'으로 시작합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대통령과 함께 개최한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 소식을 공유했다. 한 장관은 “대통령께서 오늘은 창업 중심 사회를 여는 첫날이라고 말씀하셨다"며 창업 인재 발굴 프로젝트인 '모두의 창업' 정책을 소개했다. 해당 게시물에서는 전국 5000명의 창업 인재 발굴 프로그램, 100개 창업기관과 500명의 선배 창업가 멘토링, 창업 경연을 통한 우수 스타트업 지원 등 세부 정책 내용도 설명됐다. 이 대통령이 장관들의 게시물을 직접 인용하며 격려하는 사례도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배경훈 과학기술부총리가 설 명절을 맞아 전통시장을 방문한 영상을 게시하자 이를 재게시하며 “배 부총리님, 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장관들의 X 운영 방식 가운데 대통령 콘텐츠보다는 현장 방문과 정책 집행 상황을 중심으로 게시물을 구성하는 '현장·민생형' 사례로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김 장관의 X 계정은 2010년 개설돼 현재까지 1800건이 넘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최근 게시물은 부처 현장 점검과 정책 현장 설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지난달 16일 인천 부평구 굴포천 일대에서 도시 하수관로를 점검한 뒤 “하수관로는 사용하고 버린 더러운 물을 하수처리장까지 운반해주는 도시의 혈관이자 빗물을 하천까지 이송하는 배수시설"이라며 도시 인프라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어 “전국 땅속에 거미줄처럼 17만4000km에 달하는 하수관로가 깔려 있다"고 소개하며 노후 관로 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다른 게시물에서는 전남 나주 전력거래소 방문 현장을 소개했다. 김 장관은 동절기 전력 수급 상황을 점검하며 “연일 이어지는 맹추위로 최대 전력 수요가 겨울 최대치인 90GW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그는 “15GW 이상의 예비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철저한 대응 체계를 유지하겠다"며 전력 수급 관리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계정은 개설했지만 게시물이 많지 않은 '저활동형' 장관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두 장관 모두 2026년 2월 X 계정을 새로 개설했지만 게시물 수는 각각 5건, 3건에 그쳤다. 김영훈 장관의 경우 게시물 대부분이 노동 정책 메시지를 담은 영상 콘텐츠 공유에 집중돼 있다. 그는 “임금체불은 절도입니다.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라는 글과 함께 임금체불 신고 방법을 설명하는 영상을 게시하는 등 노동권 보호 메시지를 강조했다. 또 “출산율 0.8, 우린 아직 배가 고픕니다"라는 글과 함께 '육아기 10시 출근제'를 소개하는 영상 콘텐츠를 공유하기도 했다. 정은경 장관의 경우 지난달 X에 “1형 당뇨병 환우와 함께 영화 '슈가'를 관람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환자들과 만난 현장 영상을 공유했다. 또 응급환자 이송체계 개선 시범사업 추진을 소개하는 게시글에서 “골든타임을 지키는 변화가 지역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설명하며 관련 영상 링크를 공유했다. 활동이 사실상 없는 장관도 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올해 2월 X 계정을 개설했지만 현재까지 게시물이 한 건도 없는 상태다. 또 안규백 장관은 2012년 X 계정을 개설해 총 600건 이상의 게시물을 올렸지만 최근에는 게시 활동이 거의 없는 상태로 확인됐다. 최진봉 교수는 이재명 정부에서 장관들의 SNS 활동이 늘어난 배경으로 대통령의 직접 소통 방식을 꼽았다. 그는 “대통령이 SNS를 통해 정책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언론 보도 과정에서 메시지가 다르게 해석되거나 전달되지 않는 상황을 줄이기 위한 측면도 있다"며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는 흐름 속에서 장관들도 부처 정책과 활동을 SNS를 통해 국민에게 직접 알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SNS는 정책 추진 과정과 부처 활동을 국민에게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통로라는 점에서 장관들에게도 중요한 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이재명 정부의 SNS 소통 방식이 이전 정부와 비교해 정책 중심 성격이 강하다는 점도 차별점으로 지적했다. 최 교수는 “과거 정부의 SNS가 성과 홍보나 이미지 관리 성격이 강했다면 이재명 정부의 SNS는 정책과 업무 관련 메시지가 중심을 이루는 경향이 있다"며 “대통령이 부동산이나 주가 등 주요 정책 이슈에 대해 직접 메시지를 내고 강한 정책 의지를 드러내는 방식은 시장과 국민에게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정책 방향과 의지를 SNS를 통해 직접 설명하는 방식이 정책 신뢰도를 높이고 메시지 전달 속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주류 언론을 거치지 않고 시민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SNS를 적극 활용해 온 정치인"이라며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정책 메시지와 국정 방향을 SNS로 직접 전달하면서 장관들과 참모진의 SNS 활동도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는 방향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일방적인 홍보 수단이 될지, 국민 의견을 실제 정책에 반영하는 통로로 작동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부처 정책은 내부 실·국 간 의견 정리와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조율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장관이 조율되지 않은 메시지를 SNS로 먼저 공개하면 정책 혼선이 생길 수 있다"며 “부처 내부 논의와 국무조정실 등을 통한 협의 과정을 거친 뒤 절제된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2% 성장률 장담 못한다”...환율 1500원 쇼크, 韓경제 ‘이중 압박’

미국의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으로 중동 정세 긴장이 고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이란 전쟁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글로벌 자금이 달러 중심으로 이동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추가로 올라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경제성장률 2.0% 달성도 사실상 힘겨울 것으로 전망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보다 10.1원 오른 1476.2원을 기록했다. 환율은 이날 오전 0시 5분께 달러당 1506.5원까지 치솟았다.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이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698.37포인트(12.06%) 하락한 5093.54로 마감했다. 이날 개장 직후 코스피200 선물이 급락해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이틀 연속 발동되기도 했다. 이란 분쟁 확대로 중동 지역 에너지 수송에 차질이 생기고,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유가도 3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3일(현지시간)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81.4달러로 전장보다 3.66달러(4.71%) 올랐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3.33달러(4.67%) 오른 배럴당 74.5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금융시장도 출렁였다. 유럽 가스 거래 중심지인 네덜란드 TTF 거래소에서 3일(현지시간) 천연가스 선물(4월물) 가격은 장중 MWh(메가와트시)당 63.75유로까지 치솟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전(31.96유로)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뛰었다. 특히 시장에서는 전쟁이 장기화하면 금융시장 불안을 넘어 우리나라 실물경제 전반에도 연쇄적인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한국은행은 올해 반도체 경기 호조, 세계 경제의 양호한 성장 흐름으로 수출과 설비투자 증가세가 당초 예상치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는 점을 들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2.0%로 상향 조정했다. 소비 측면에서도 양호한 기업 실적으로 소득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으면 2.0%대 성장률에도 하방 압력이 강해져 최악의 경우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중동 사태가 지속되면 수출이 줄어들고, 국제유가가 뛰면 물가가 올라 소비, 투자를 제약해 성장률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며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 2.0%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지만, 하반기 들어 반도체 수출이 생각보다 늘지 않으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내수를 진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경로에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우리 경제에 변수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중동 위기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이 커지면서 연준을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추가 금리 인하를 중단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허준영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번 사태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이 커져 금리를 얼마나 인하할지 변수가 생겼다"며 “연준이 금리 인하 경로를 수정하면, 최근에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상승세를 타던 코스피에도 제동이 걸린다"고 진단했다. 그는 “증시 활황은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나, 경제 주체들에게 소비심리 개선 등을 이끄는 부분이 있다"며 “그러나 (전쟁 여파로) 우리나라 증시, 내수, 반도체 중심의 설비투자 등 모든 부분에서 성장 시나리오가 어긋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허 교수는 “정부는 환율 모니터링을 강화해 적극 대응하고, 원유 및 LNG 수급에 대비해 (유가 급등에 따른)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선거비 ‘절반’ 보전도 힘든 호남…국힘 “개혁신당과 합쳐야 산다”

국민의힘이 호남에서 지지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개혁신당과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 세미나'에서 박은식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보수 진영의 단일화는 생존의 문제"라고 밝혔다. 이번 세미나는 '보수는 호남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를 주제로 보수 정당이 호남 지역에서 겪고 있는 현실적인 한계와 극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발표에 나선 박 전 위원은 광주 출신 내과 전문의로 2023년 12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된 뒤, 다음 해 총선에서 광주 동남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박 전 위원은 이날 “보수 진영이 호남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지지율이 10%가 넘어야 한다"며 “그 답은 최소 3%에서 많게는 8%까지 지지율을 가져가는 이준석 대표와 개혁신당"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근거로 지난 총선 결과를 제시했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제 지역구 득표율은 8.6%였고 개혁신당 장도국 후보의 득표율은 1.6%였다"며 “합당했다면 10%를 넘어 선거비용 절반을 보전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당하지 않으면 선거비 보전이 어렵기 때문에, 호남에선 보수 정당 후보의 출마 자체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도 했다. 또 “지난 대선도 마찬가지"라며 “이준석 대표와 김문수 전 대선후보가 단일화했다면 이재명 대통령을 이길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보수 정당의 호남 지지 기반 확대 방안으로 ▲보수의 역사적 상징 인물 발굴 ▲정책에서는 보수 가치 유지 ▲비례대표 국회의원 3명 배정 ▲5·18 북한군 개입설·부정선거론·계엄 옹호 금지 등을 제안했다. 이어 김기현 의원은 “우리 당이 친호남이 아니라 '핵호남'이 돼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다가갔지만, 아직도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며 “호남의 발전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 혁신이라는 생각이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최근에는 보수진영의 텃밭인 대구 경북에서조차 지방선거에서 이변이 나올 수 있다는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호남에서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보도는 나오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 전 위원이 제안한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의 통합과 관련해선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김한성의 AI시대] AI 시대의 진짜 경쟁은 기준이다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AI는 이제 법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2026년 1월 22일 시행된 AI 기본법을 두고 일부에서는 “또 하나의 규제"라고 말한다.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번 법의 취지를 그렇게만 보는 것은 좁은 해석이다. AI 기본법은 산업을 묶기 위한 족쇄가 아니라, AI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한 기준 설정에 가깝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법이라기보다, 어떻게 책임 있게 활용할 것인가를 제도적으로 규정하는 법이다. AI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금융권에서는 대출 심사와 신용평가에 AI가 활용되고, 병원에서는 영상 판독과 진단 보조에 AI가 쓰인다. 기업은 채용 과정에서 AI를 활용하고, 공공기관은 민원 분석과 행정 의사결정에 AI를 도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AI의 판단은 개인의 취업 기회, 대출 가능 여부, 치료 방향과 직결된다. 이런 영역에서 오류나 편향이 발생하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 AI 기본법은 바로 이 지점을 제도적으로 정리했다. 금융·의료·교육·공공행정 등 고영향 영역에서 활용되는 AI에 대해 안전성과 책임성을 법적 요구사항으로 명시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는 산업을 위축시키려는 조치가 아니라, AI가 핵심 영역으로 더 넓게 확장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신뢰가 없으면 확장도 없다. 신뢰는 선언으로 생기지 않는다. 구조와 기준을 통해 형성된다. 기업 입장에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리스크 관리 체계의 정비다. AI 시스템이 어떤 데이터를 사용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결과를 도출했는지 내부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의 출처와 가공 과정은 추적 가능해야 하며, 알고리즘의 판단 기준 역시 설명 가능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와 대응 절차가 명확해야 한다. 이러한 체계는 단순한 법 준수 장치가 아니라 기업의 신뢰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예를 들어 금융기관이 AI 기반 대출 심사 시스템을 운영한다고 가정해 보자. 특정 집단에 불리한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기술적 오류를 넘어 차별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이때 데이터 구조와 학습 과정을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설명 가능성과 추적 가능성은 사후 방어 수단이 아니라 사전 신뢰 구축의 기반이다. 이러한 변화는 대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스타트업, 중견기업, 공공기관, 의료기관 등 AI를 활용하는 모든 조직이 대상이다. AI는 더 이상 특정 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산업의 기반 기술이 되었기 때문이다. 준비 수준이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결국 이 법은 세 가지 층위에서 작동한다. 기업 내부의 관리 체계, 국가 차원의 기준 형성, 그리고 국제 표준 경쟁이다. 국제 환경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AI Act를 통해 위험 등급에 따라 규율 체계를 세분화했고, 미국은 안보 관점에서 첨단 AI 기술을 관리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가장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설계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준이 사실상의 국제 표준이 된다. 결국 표준을 만드는 쪽이 시장의 규칙을 정한다. 이 맥락에서 AI안전연구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 기관은 단순히 AI 안전 관련 동향을 소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국내외 규범을 분석해 기업이 참고할 수 있는 판단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국내 기업의 모범 사례를 체계적으로 축적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사례를 국제 논의에 제시해 한국의 경험이 글로벌 표준 형성에 반영되도록 연결해야 한다. 이는 일종의 '신뢰 인프라' 구축 작업이다. 금융에서 중앙은행이 통화의 신뢰를 관리하듯, AI안전연구소는 AI 안전의 기준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는 않지만, 기준을 설계하고 시장에 신호를 보낸다. 그 기준이 산업 전반에 내재화될 때, 한국은 외부 표준을 따르는 나라가 아니라 기준 형성에 참여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결국 AI 기본법은 규제가 아니라 전략이다. 명확한 기준은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투자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기준의 축적은 표준의 형성으로 이어지고, 표준은 시장 접근성을 높인다. 신뢰가 확보되면 AI는 공공 영역과 글로벌 시장에서 더 넓게 활용될 수 있다. 한국이 AI를 잘 만드는 나라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AI를 잘 활용하고 책임 있게 운영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그 차이는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기준의 수준에 있다. 더 큰 모델을 만드는 능력보다 더 책임 있는 구조 안에서 기술을 운용하는 능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AI 기본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법의 존재가 아니라 실행이다. 기업과 기관이 기준을 어떻게 내재화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AI 생태계는 도약할 수도, 정체될 수도 있다. AI 시대의 핵심 경쟁 요소는 성능이 아니라 신뢰다. 신뢰를 제도화하는 국가만이 AI 시대의 장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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