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여파가 국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4월부터 물가 상승세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도 한국 물가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 조정하고 나섰다. 3일 국가데이터처의 3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 지수는 118.8(2020년=100)으로 1년 전보다 2.2%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11월 2.4%에서 12월 2.3%, 지난 1월 2%로 내려온 뒤 2월까지 같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난달 0.2%p 높아졌다. 에너지 위기 여파로 석유류 가격이 9.9% 급등하며 물가 상승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2월 말 시작된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 상승 영향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두바이유의 배럴당 월평균 가격은 2월 68.4달러에서 3월 128.5달러로 87.9% 급등했다. 상세 지표를 보면, 경유(17%), 등유(10.5%), 휘발유(8%) 등 주요 유종 가격이 일제히 상승하며 전체 물가를 0.39%포인트 끌어올렸다. 석유류 물가 상승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였던 2022년 10월(10.3%) 이후 3년 5개월 만에 최고치다. 데이터처는 또 유류할증료 상향 조정으로 국제 항공료가 오르면 소비자 물가 전반을 추가로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2주마다 조정되는 석유 최고가격제로 지난달 27일부터 유종 가격이 210원씩 인상됐는데, 추가로 인상될 가능성도 있다. 통상 국제 유가 변동은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된다. 유가 상승에 직접 영향을 받는 공업제품 물가도 상승했다. 공업제품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달 118.8을 기록, 1985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이전 최고 기록은 지난해 12월의 117.30이었다. 1년 전과 비교한 상승률은 2.7%로, 2023년 10월(3.6%) 이후 2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내구재(2%), 섬유제품(2.2%) 등 항목의 상승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농산물 가격은 하락하며 전체 물가 상승세를 억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산물이 5.6% 하락하며 전체 소비자물가를 0.25%p 낮췄다. 봄철 생산량 증가 영향으로 채소류 물가가 13.5% 급락했다. 반면 축산물과 수산물은 각각 6.2%, 4.4% 올랐다. 가공식품은 작년 동월보다 1.6% 상승했다. 전월(2.1%)보다 상승 폭이 낮아지며 2024년 11월(1.3%) 이후 1년 4개월 만에 상승률이 가장 낮았다. 출고가가 인하되며 설탕(-3.1%)이 하락 전환했고, 밀가루도 2.3% 떨어졌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중심으로 체감 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2.3% 상승했다. 신선식품지수는 6.6% 하락했다. 정부는 국제유가 변동성이 물가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고 우려하고 있다. 앞서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지난 2일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4월 이후 소비자물가는 국제유가의 큰 폭 상승 영향으로 오름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물가 상승 압력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충격의 주요국 파급효과' 보고서에서 중동전쟁이 끝나더라도 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인 배럴당 63달러로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KIEP가 제시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전쟁이 조기에 종료될 경우 에너지 시설 피해 복구 지연으로 유가가 전쟁 이전보다 43% 높은 배럴당 90달러 가량 추산됐다. 이란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전쟁이 장기화되면 세계 원유 생산량이 10% 감소해 유가는 전쟁 이전보다 86% 오른 배럴당 117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송하윤 KIEP 국제거시팀 부연구위원은 “수입 에너지 비용 증가를 통해 한국을 비롯한 에너지 순수입국의 물가·경상수지에 상당한 압력을 야기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요 국제기구들도 중동사태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 한국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올려잡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2.7%로 0.9%p 올렸다. 국제통화기금(IMF)도 4월 발표 예정인 세계 경제 전망에서 중동 전쟁과 고유가 국면을 반영해 물가를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주요 IB들도 국내 물가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주요 IB 8곳이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지난 2월 말 평균 2%에서 3월 말 2.4%로 0.4%p 높아졌다. 한국은행 전망치(2.2%)보다 0.2%p 높다. HSBC(2.1%→2.3%), 골드만삭스(1.9%→2.4%), 노무라(2.1%→2.4%), 바클리(1.9%→2.5%), JP모건(1.7%→2.6%), 씨티(1.9%→2.6%) 등이 각각 상향 조정했다. JP모건은 지난 2일 보고서에서 “중동발 에너지 가격 충격이 아직 데이터에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중동 상황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5∼9월에는 3%를 웃돌 것으로 예상한다. 그 이후의 전망은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원승일 기자 won@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