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사태 장기화로 아시아 기름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국은 최고가격제로 기름값을 의도적으로 낮춘 상태이나, 이로 인해 기름 소비가 줄지 않고, 정부가 정유사에 주는 손실보전금도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은 배럴당 휘발유(옥탄가 92론) 144.5달러, 경유(황함량 0.001%) 292.8달러, 등유 231.6달러이다. 한화로는 휘발유 1370원, 경유 2777원, 등유 2197원이다. 역대 가장 높은 싱가포르 거래가격은 2022년 6월 기록한 휘발유 156달러, 경유 186달러, 등유 174달러이다. 당시보다 휘발유 가격은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경유와 등유 가격은 훨씬 높게 형성돼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에너지 허브지역으로, 여기에서 거래되는 석유제품 가격은 아시아 각국 기름값의 기준이 된다. 한국 정유업계의 핵심 공급가격 기준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은 전쟁 이후 연일 폭등하고 있다. 전쟁 전인 2월 27일 휘발유는 배럴당 79.6달러, 경유는 92.9달러, 등유 93.6달러였으나 이후 144.5달러, 292.8달러, 231.6달러로 폭등해 상승률은 각각 81.5%, 215.2%, 147.4%이다. 경유 가격이 더 크게 오른 이유는 중(重)질유 성분이 많은 중동산 원유 특성상 정제과정에서 경유가 더 많이 생산되는데, 중동산 원유 공급 감소로 경유 수급이 더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을 한국 시장에 적용하면 휘발유는 국제가격에 유류세 698원과 부가세 10%를 적용하면 2275원, 경유는 국제가격에 유류세 436원과 부가세 10%를 적용하면 3534원 수준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정유사 공급가격 기준이므로 여기에 주유소 판매마진까지 적용하면 가격은 더 올라간다. 한국 기름값은 3월 13일부터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을 두는 석유 최고가격제가 적용돼 국제 수준보다 훨씬 낮게 형성되고 있다. 13일 적용된 1차 최고가격은 휘발유(보통) 1724원, 경유(자동차·선박유) 1713원, 등유(실내) 1320원이다. 27일부터 적용된 2차 최고가격은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이다. 최고가격제 영향으로 6일 11시 현재 전국 주유소 평균 기름값은 휘발유 1953원, 경유 1944원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오는 10일 적용되는 3차 가격은 2차보다는 오르겠지만, 큰 폭으로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선거가 두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부가 물가상승 억제에 더 큰 정책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고가격제로 기름값을 과도하게 억제하면 소비량이 줄지 않아 재고 소진이 빨라져 오히려 수급 위기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공공데이터 포털에 따르면 서울톨게이트부터 신갈JC까지 통행량은 3월 8일 8만4104대에서 4월 5일 9만2673대로 10.2%나 늘었다. 심지어 지난해 4월 5일 통행량(9만2579대)보다도 더 늘었다. 지난해 4월 5일은 토요일이었다. 전쟁 전 정부와 민간 비축유는 각각 1억배럴과 9000만배럴로, 지난해 국내 소비량 기준으로는 약 74일분이다. 현재 민간 비축유는 모두 소진됐고, 정부 비축유가 방출되고 있다. 또한 최고가격제로 인해 정부의 정유사 손실보전액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오피넷에 따르면 정유사의 3월 4째주 세전 공급가격은 휘발유 888.3원, 경유 1093.1원, 등유 1136.6원이다. 싱가포르의 3월 3째주 거래가격은 휘발유 1354.3원, 경유 1944.3원, 등유 1978.3원이다. 물리적 거래 소요시간을 감안해 약 일주일 간격으로 싱가포르 가격이 국내 시장에 반영된다. 이에 따르면 대략적인 정유사 손실액은 휘발유 460원, 경유 850원, 등유 840원으로 추정된다. 최근 국내 석유 소비가 전년 3,4월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가정하면 한달 기준 정유사 손실액은 대략 휘발유 6000억원, 경유 1조8100억원, 등유 1300억원으로, 총 2조5400억원이 된다. 시행이 두달째가 되면 이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중동 전쟁으로 인한 추가경정예산에서 정유사 손실보전액으로 5조원을 마련했다. 이는 석유사업법 23조 최고가격제 시행 및 사업자 손실보전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정부는 정유사가 공인회계법인의 심사를 거쳐 신청한 손실액에 대해 전문가로 구성된 '최고액 정산위원회'를 통해 검증 및 산정하는 방식으로 사후 정산한다. 이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는 '2026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손실액 산정의 출발점이 각 정유사의 자체 계산에 맡겨져 있다는 점 △산정 기준이 되는 원가의 범위, 정제마진 변동분의 분리 방법, 기존 재고 평가 기준 등이 법령에 명시돼 있지 않아 공인회계법인 심사 및 정산위원회 검증의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정산위원회의 산정 기준마저 부처 간 내부 협의로 결정되도록 위임함에 따라, 보전액 산정 과정의 객관성에 대한 제도적 담보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이러한 제도적 한계는 중동 사태가 장기화되어 최고가격제 시행 기간이 연장되고 손실보전 규모가 확대될수록 더욱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는 구체적 운영 방안을 조속히 확정해 국회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라살림연구소도 이번 추경에 관한 보고서에서 “에너지 공급가격을 낮추는 방식(최고가격제)은 단기적으로는 가격 부담을 완화할 수 있으나, 고유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에너지 소비 감소를 제약한다는 한계가 있다"며 “이번 고유가 대응 추경은 우선 순위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에너지 절약시설 설치 등 에너지 수요 대책 및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우선돼야 하고, 그다음은 에너지 취약계층 보호가 돼야 하며, 에너지 공급가격 인하는 제한적이고 보완적인 수단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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