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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동네북’ 대한항공을 위한 변명

“창업 이념인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자 과업이라고 생각해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을 결정했습니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은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국가와 국민 여러분께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지난 2020년 11월 16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M&A를 전격 선언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까지 대한항공은 숱한 가시밭길을 헤쳐왔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3년 전 대한항공 관계자가 기자에게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자꾸 인심을 잃어가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듯 여론은 속칭 '땅콩 회항' 사태 이래로 악화일로를 걸어왔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불거진 보잉 777-300ER 기종 좌석 배열 변경 논란은 이의 정점을 보여준다. 기존 3-3-3 배열을 3-4-3으로 변경하면 승객 편의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게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독과점의 폐해를 차단하고자 한 정부 조치에 대한 낮은 이해도에 기인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 승인을 내주며 특정 노선의 연간 공급 좌석 수를 2019년 대비 90% 미만으로 줄이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요컨대 2019년 특정 노선에 양사가 공급하던 연간 좌석이 1만석이었다면 앞으로는 최소 9000석 이상을 의무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조건에서 정부의 '공급 좌석 수 유지'라는 지상 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가 바로 '밀도의 경제(Economy of Density)' 원칙에 입각한 좌석 수 증대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이 공급량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이제 와서 '닭장 좌석'을 운운하며 힐난하는 것은 경쟁 당국의 지침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선명한 자기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수송력 확대에 따라 예상되는 '수익성 개선'은 공정위 조치에 따른 결과일 뿐이어서 인과 관계를 착각한 것이다. 또 3-4-3 배열은 이미 캐세이퍼시픽·에어프랑스·에미레이트항공 등 유수의 항공사들이 채택한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은 만큼 더 많은 노선에 안정적으로 취항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경영진이 정부 규제와 시장 논리의 가운데에서 찾아낸 최적점을 '독점의 횡포'로 매도하는 것은 과도하다. 이연 수익(마일리지) 개편안 역시 마찬가지다. 신용 카드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은 1500원, 아시아나항공은 1000원을 결제해야 1마일씩 적립해준다. 때문에 3대 2(1대 0.66) 수준에서 결정하되, 탑승 실적분은 1대 1로 교환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스카이패스팀은 약 6개월에 걸친 연구와 컨설팅을 진행해 지난 12일 오전 중 제출했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마일리지 사용처가 기존 아시아나항공이 제공하던 것에 비해 부족했고, 통합 비율 등 구체적 설명이 미흡했다"며 당일 오후 수정·보완을 요청해 사실상 반려 처분을 내렸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내용 제대로 들여다 봤을 리 만무하다. 대한항공은 공정위 요청에 따라 지속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라며 “소비자 기대에 부합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경청하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했지만 피감 기업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은 경쟁 당국이 정권 교체에 맞춰 발 빠른 정무적 판단을 내린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또한 대한항공을 '독점'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비판을 위한 비판만 일삼는 일부 언론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근거 없는 비난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무지성 억까'는 지양해야 한다. 지금은 비난의 목소리를 낮추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미래를 위해 곧 출범할 '통합 대한항공'이 순항할 수 있도록 응원해줘야 할 때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이슈&인사이트] 2025년 대통령 선거 단상

벌써 2주가 지나간 이번 대선에는 사전투표 첫날부터 호들갑이었다. 첫날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2022년 대선의 사전투표율(36.93%)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그러나 사전투표 최종 투표율은 34.74%에 그치고 말았다. 이번에 사전투표율이 혹자가 말하듯이 투표용지 반출 등 선관위의 관리 부실 때문에 낮아졌다기보다는 원래 사전투표율이란 다른 나라와 비슷하게 전체 유권자의 약 3/1 정도면 최대치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사전투표의 지역별 투표율 차이도 호들갑의 대상이었다. 광주(52.12%), 전북(53.01%), 전남(56.50%)이 최고로 높은데 대구(25.63%), 경북(31.52%), 경남(31.71%)은 가장 낮은 축에 속하자 과도한 해석이 이어졌다. 그러나 호남의 사전투표율은 대대로 가장 높았고 영남의 투표율은 그렇지 않았다. 직장 등 때문에 인구이동이 활발한 세종의 사전투표율은 높으나 관광 등 때문에 인구이동성이 높은 제주는 그 반대의 경향이 있다. 이번에 사전투표율이 한풀 꺾이자 바로 전체 투표율에 대한 기대도 낮아졌다. 하지만 다른 조건이 같다고 한다면 2시간 연장된 보궐선거 투표시간 덕으로 3년 전보다 최종 투표율은 더 높아졌다. 1987년 민주화 직후 대선 투표율은 89.2%로 역대 최고인데 그 뒤에 세워진 81.9%(1992년)와 80.7%(1997년)라는 기록과 견줄만한 79.4%에 달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 가운데 하나는 투표율 총량은 대체로 일정하다는 사실이다. 사전투표율이 최고인 호남의 최종 투표율도 83% 내외인데 사전투표가 매우 저조했던 영남의 최종 투표율도 79% 근처까지 올라왔다. 사전투표제도에 대한 불신감이 강한 영남 지역 유권자는 본선거일 막판까지 대단하게 결집한 셈이다. 이는 역사 깊은 지역주의 선거의 재현으로 이어졌다. 즉 동쪽의 강원부터 경북, 대구, 경남, 울산, 부산에서는 김문수 후보가 석권했고 서쪽의 수도권, 충청권, 호남, 제주는 이재명 후보가 압도했다. 이렇게 지역적 표 결집은 이재명 후보가 49.42%의 표를 받았고 김문수 후보가 41.15%와 이준석 후보가 8.34%를 확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거의 양대 진영의 반반 싸움이 유지되었다. 부산, 울산, 경남에서 김문수와 이재명의 표차가 줄어들었다는 것 외에는 지역주의 투표 현상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서울에서도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이긴 지역은 전통적인 한강 벨트의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와 용산구였다. 3년 전 대선 때 한강을 낀 다른 지역까지 넓게 국민의힘의 지지가 확대되었던 것에 비하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용산구는 철옹성같이 국민의힘 우위로 남아 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터진 뒤 꼭 반년 뒤에 열린 대통령 선거이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선거정치를 지배해왔던 전통적 변수의 영향력은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혹이 하나 더 붙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2-30대는 남녀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벽과 차이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말이다. 20대 남성 사이에 이재명이 확보한 지지는 24.0%에 불과하고 이준석(37.2%)이 김문수(36.9%)보다도 인기가 더 높았다. 이와 정반대로 20대 여성의 과반수(58.1%)가 이재명을 지지하는데 김문수(25.3%)와 이준석(10.3%)의 지지는 훨씬 더 적다. 30대 여성 사이에도 이와 비슷하다. 다만 30대 남성 사이에 이재명(37.9%)의 지지와 김문수(34.5%)의 지지가 비슷하고 이준석(25.8%)의 인기도 없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2-30대가 과거와 다르게 전체적으로는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2-30대의 정치의식은 앞으로 '세대효과'로 굳어지리라 전망된다. 다시 말하자면 2-30대의 보수화와 성별 격차가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어도 대체로 유지될 것이라는 말이다. 마치 386세대가 20대 때와 비슷하게 지금 60줄에 편입되는데도, 과거 60대보다는 훨씬 다르게 민주당을 많이 지지하고 있는 것과 비슷할 게 예상된다. 탄핵 이후 대선이라 한국의 선거정치가 달라질 줄 기대했던 내가 무색해진다. 이준한

[EE칼럼] 학습하는 기계, 변화하는 교실: AI 교육의 빛과 그림자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2022년 11월말에 ChatGPT가 공개된 순간부터 전 세계 교육 현장은 큰 변화를 겪었다. 불과 5일 만에 100만 명이 가입했고, 2개월 만에 월 활성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했다. 그런데 이 숫자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교육 현장의 반응이었다. ChatGPT는 하루아침에 등장했지만 교육시스템은 수십 년간 축적된 관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뉴욕시 공립학교가 ChatGPT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가 6개월 후 허용으로 전환했다.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은 모든 과제에 AI 사용 여부 명시를 의무화하였고 이후 부분 허용에 이어 과제별 차별화로 전환했다. 일본은 2023년 7월 '학교에서의 생성AI 이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후 여러 차례수정을 거듭했다. 각 국 교육당국이 금지에서 조건부 허용까지 정책을 번복하면서 일관성을 잃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ChatGPT 공개 직후 한국 교육당국의 첫 반응은 “일단 지켜보자"는 소극적 관망이었다(1단계). 2023년 3월 교육부는 'ChatGPT 등 AI활용 대응 방안'을 발표했지만 내용 자체가 모순적이었다(2단계). “AI 활용을 적극 권장한다"하고 하면서 동시에 “학습자 주도성 훼손 우려"를 표명했고, “디지털 역량 강화 필수"라면서도 “무분별한 사용 경계"를 당부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교육부가 180도 다른 정책을 발표했다. 같은 해 9월에 '2027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과 함께 AI 디지털 교과서(AIDT, AI Digital Textbook) 도입을 공식화한 것이다(3단계). 하지만 ChatGPT 등장 이후 우리 교육 현장에서 벌어진 변화는 혁신이라기보다는 혼란에 가까웠다. 학생들의 과제 작성 패턴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교육 현장에서는 상당수 학생들이 AI를 활용하여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과제 생태계는 붕괴되었고, 교사들의 평가 방식은 무력화되었으며, 기술 격차는 새로운 교육 불평등을 낳았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계가 “AI를 교육에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라는 기술적 질문에만 몰두했다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AI시대에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교육의 본질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간 성장이다. AI가 이 본질을 강화할 것인지, 훼손할 것인지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핵심 딜레마다. 정부가 내놓은 대규모 AIDT 프로젝트는 준비되지 않은 채 새로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장에서는 AI 교육에 대한 체계적 연수를 받은 교사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AIDT의 “맞춤형 학습"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단순한 난이도 조절에 그치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혼란에도 AI교육 분야의 연구성과는 명확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MIT를 비롯한 주요 AI 연구기관들은 AI 교육 시스템이 진정으로 성공하기 위한 3가지 필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학습자를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이다. 현재 AIDT 시스템은 단순 정답률 분석에만 의존한다. 학습자의 학습 스타일, 인지 패턴, 동기 구조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사고 과정과 실수 패턴을 다층적으로 모델링해야 의미 있는 적응이 가능하다. 둘째, 즉각적인 반응 능력이다. 현재 교육용 AI는 사후 분석에 머물러 학습 과정의 인지 부하나 이해 어려움을 실시간 감지하지 못한다. 해외 연구는 “학습의 마이크로 모멘트를 놓치면 전체 학습 효과가 급감한다"고 경고한다. 셋째, 교사와의 협업 방식이다. AI가 교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증폭시켜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은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며, 둘이 함께 교육적 판단을 내리는"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이 세 조건을 한국의 AIDT 현실과 비교하면, 현장 혼란의 원인이 명확해진다. 우리는 기술 도입에만 집중하고 핵심 조건들을 간과했다. ChatGPT 등장 후 2년 반 기간의 시행착오와 AI 연구계의 통찰을 종합하면, 교육 현장 혼란을 해결할 명확한 방향이 보인다. 첫쨰, AI 교육 안전성 검증 시스템 우선 구축; 전국 일괄 확산을 즉시 중단하고, 권역별 10개 파일럿 스쿨에서 6개월간 집중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 ChatGPT 경험 교사들과 AI 연구진이 공동 참여하여 진정한 AI-인간 협력 교육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둘째, 과학적 기준에 부합되는 적응형 학습시스템 구축: 앞서 제시한 세 가지 핵심 조건을 만족하는 시스템으로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학습자 인지패턴의 다층적 분석, 실시간 모니터링, 교사-AI 협력 인터페이스를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아키텍처가 필요하다. 셋쨰, AI 시대 교육학 기반 교사역량 혁신: 기기 조작 중심 연수를 폐기하고, 'ChatGPT 시대 교육 철학' 중심의 체계적 연수를 설계해야 한다.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가 아니라 “AI 시대에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넷쨰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AI 교육 평등 보장: 농어촌과 저소득층을 위한 'AI 교육 바우처' 제도와 지역별 'AI 학습 멘토링 센터' 설치가 시급하다. AI 교육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해소하는 도구가 되도록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다섯쨰, 학습자 AI 리터러시와 데이터 주권 확립: 초등학교부터 '프롬프트 엔지니어링'(AI에게 효과적으로 질문하는 기법)과 'AI 비판적 사고'를 교육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학생들이 AI 답변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학습자 데이터 권리장전' 제정으로 학습 데이터의 투명한 관리를 보장해야 한다. AI는 교육을 구원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다. 현재 방향으로는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 AI 교육의 시행착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근본적 재설계에 나선다면, 한국 AI 교육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혁신 모델이 될 수 있다. 핵심은 “기술에 맞춰 교육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에 맞춰 기술을 설계하는 것"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의 조속한 시작과 체계적 재설계를 통해 새로운 AI 교육 표준을 하루빨리 확립해야 한다. 김한성

[기자의 눈] 물가 잡는 李 대통령, ‘당근과 채찍’ 정책 필요

최근 2차 비상경제점검TF 회의 도중 “라면 한 개 당 진짜 2000원이냐"고 묻는 이재명 대통령 발언에 식품업계가 바짝 '쫄아'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물가 문제가 국민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고 있다"며 “현황과 가능한 대책을 챙겨서 다음 회의 이전에라도 보고해 달라"고 신속 대응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의 라면 값 발언을 놓고 시장에서는 “식품업 현실을 너무 모른다"며 한 목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선후보 시절 유세 현장에서 이 대통령의 “커피 한 잔 원가 120원"이라고 언급한 내용이 어불성설이라 질타를 받았던 것만큼, 자영업에 이어 식품업 상황을 무시했다는 것이 주된 지적이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 원두 가격이 '정확히' 얼마이며, 라면 값이 '정말' 2000원인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장에 서민들이 체감하기에 전보다 먹거리 물가가 올라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졌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통계청의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6.27(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1.9% 올랐다. 연초부터 2%대를 유지하다 1%대로 상승폭이 떨어진 것은 위안이 된다. 다만, 물가 흐름을 따로 보면 체감물가 지표인 생활물가지수는 2.3%, 식품 가격은 3.3%, 가공식품도 4.1%로 다소 높게 뛰었다. 물론 식품업계도 이 대통령의 발언 하나만으로 엄살떠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다. 원재료값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 환율, 관세 등 복합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산돼 내수 침체가 심화되면서, 수익성 방어를 위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시장에서는 가격 인상을 멈추고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가격 인하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추측까지 제기되니,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2023년 윤석열 정부 당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가격 인하 요구로 라면 값이 줄인하 됐던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올해 '0%대 저성장' 전망치를 떠안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3주차다. 선결 과제로 먹거리 물가를 포함해 민생 경제 회복을 일사천리로 풀어 나가고 있지만, 추진력만큼 중요한 것이 내용성이다. 기업들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동시에, 기업과의 상생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이슈&인사이트] 이재명 정부의 내수진작을 위한 정책 방안

2025년 상반기 한국 경제는 여전히 민간소비 부진의 그림자 아래 놓여 있다. 최근 수출 경기의 일부 회복에도 불구하고, 내수 핵심인 민간소비는 높은 생활물가, 소득 정체 등으로 인해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024년 하반기 이후 소매판매 지표는 전월 대비, 전년 동월 대비 모두 감소세를 보였으며, 준내구재와 비내구재 소비 등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모습이다. 통계청 서비스업 동향 조사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0.1% 감소했다. 전월 대비로도 소매판매지수(계절조정)는 -0.9% 하락해 소비 위축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소비 부진은 단순한 경기 순환적 현상만이 아니라, 인구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에 따른 구조적 요인도 깊게 작용하고 있다. 은퇴 이후 길어진 노후에 대비한 저축 성향 강화로 민간소비의 GDP 대비 비중(소비성향)이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더욱이, 생활필수품, 식품, 외식 등 소비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소비자들은 필수 소비외에는 지출을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3월 기준 식품 가격은 전년동월대비 2.4~2.8% 상승했다. 동 기간중 소비자가 많이 이용하는 외식 품목인 치킨, 떡볶이, 김밥 등의 가격상승률은 5%를 훌쩍 넘었다. 이러한 시점에 최근 새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는 내수 부양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전례 없는 대규모와 빠른 속도의 내수진작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는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내수진작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본다. 첫째, 대규모 재정 투입 및 신속 집행이다. 정부는 대략 20조원 내외의 규모로 경기 보강 자금을 마련하고, 상반기에 예산의 70% 이상을 조기 집행함으로써, 내수 회복의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 다만, 재정 확대 정책이 물가상승을 초래할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행과의 긴밀한 정책 협의가 필요하다. 재정지출이 확대될 때, 한국은행은 필요시 기준금리 인상이나 시중 유동성 흡수를 위한 채권 매각 등으로 통화량을 조절해야 한다. 둘째, 소비 촉진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 올해 동안 한시적으로 소비에 대한 소득공제를 확대하고,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 직접적 소비 유인책을 시행해야 한다. 소비 쿠폰, 전통시장 등 특정 품목에 대한 추가 소득공제 및 할인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 또한, 지역사랑 상품권, 온누리상품권 등 지역화폐의 할인율을 상시적으로 적용하고, 월 충전한도를 한시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셋째. 서민·취약계층 지원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 농축 수산물 할인, 에너지·농식품 바우처 등 생계비 경감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생계급여 수급 가구를 중심으로 현행 월 18.7만원 한도의 농식품 바우처의 한시적 증액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에 대한 현금지원, 생계비 보조, 바우처 등 이전소득 증가는 소비지출 확대에 효과적이다. 넷째, 지역경제 및 관광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 지역 상권과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소비 진작 캠페인, 축제·이벤트 등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내 관광 및 방한 관광 인프라 확충을 통해 관광 소비를 늘리는 정책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체험 콘텐츠 확대, 외국인의 교통·입국 편의 제고, 온라인 예매 및 결제시스템 확충을 통한 소비 환경 개선, 테마 위주의 대규모 캠페인 강화 등 다양한 정책이 유기적으로 추진될 때 국내 관광 소비가 실질적으로 늘 수 있다. 다섯째,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매출 증대를 유도하는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내수 중심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판로개척, 마케팅 비용 지원 등 경쟁력 강화와 함께,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소상공인 대상 1:1 온·오프라인 무료 컨설팅과 함께 상권분석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여섯째, 중장기적으로 구조적 내수 기반 확충에 힘을 기울어야 한다. 인구 고령화, 고용 불안, 자산의 부동산 편중 등 구조적 요인 해소를 위해 퇴직 후 재고용 활성화, 금융자산 비율 확대 등 근본적 개혁도 병행되어야 한다. 신정부의 내수진작 정책은 단기적으로 침체된 소비심리와 경기 하강을 완화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인구구조 변화와 고용·소득 불안, 높은 가계부채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내수의 근본적 회복은 쉽지 않다. 결국, 새 정부는 단기적 경기부양책 마련과 함께 중장기적 내수 기반 확충을 위한 구조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서지용

[EE칼럼] 기후에너지부로의 헤쳐 모여...꼭 해야 하나?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 아래 요즘 '기후에너지부' 신설 논의가 한창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업무와 환경부의 기후대응 업무를 묶어서 이른바 기후 컨트롤타워를 출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부처를 통합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대선 공약으로는 유용했을 지 모르지만, 결국 장관 자리 하나만 늘리고 부작용만 남기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이 주장이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이미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공약으로 같은 구상을 내놨었고, 집권 후 당시 당국자들도 괜히 이 공약을 폐기한 것이 아니다. 그때 실현되지 못했던 일에는 분명 다 이유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는가 보다. 환경부 내의 기후 부서 외에도 생태계 보전, 오염 규제, 자원 관리 등 여러 부서가 존재하는데, 이들 업무가 서로 분리해야 할 만큼 이질적이지 않다. 기후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단순히 대기 문제로 국한되는 게 아니라 자원 관리나 생태계 보전 업무와도 이미 촘촘히 얽혀 있다. 산업부 역시 마찬가지다. 에너지 정책은 산업, 기술, 안보 등 여러 분야가 맞물려 돌아가는 종합적 사안이다. 그동안 산업부 아래에서 에너지 정책을 펼쳐왔기에 전력 수급부터 산업 경쟁력, 기술 개발, 지역 경제까지 입체적이고 균형 있게 고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처 간 조합은 시너지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상극인 조합도 있는데, 환경과 산업은 오히려 서로의 상극 성향을 살리는 편이 더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사실 부처의 통합은 시너지보다는 내부의 침묵과 한쪽 업무의 사장(死藏)이라는 함정을 품고 있다. 어차피 태생적으로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분야이니, 숨겨진 부서 내 조율보다는 드러난 충돌과 공개적인 견제가 더 건강하다는 이야기다. 억지로 이들을 한 부처로 합쳐 놓으면 필연적으로 충돌이 발생하고, 결국 한쪽이 완전히 납작 엎드리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예컨데, 기존 전력 시장의 기득권 구조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기후환경정책이 종속적으로 결정되거나, 반대로 재생에너지 확대나 감축 목표에만 매몰되어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무시하는 경우 모두 문제가 심각하다. 기후든 에너지든 각각의 전문성과 고유의 맥락이 있는 것인데, 모든 것을 한쪽의 논리와 틀로 억지로 끼워 맞추는 접근법은 명백히 균형감각을 상실한 일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강력한 컨트롤타워 아래서 한 목소리로 밀어붙여야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행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대체 무슨 성과, 어떤 성과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이견과 비판적 토론이 살아있어야 정책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법이다. 산업부와 환경부처럼 각자 역할이 명확히 다른 부처들이 분리되어 있어야 자연스러운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고, 정책이 제대로 조율될 수 있다. 환경부가 너무 규제 일변도로 치달으면 산업부가 제동을 걸고, 산업부가 환경을 소홀히 하면 환경부가 견제하는 구조가 훨씬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부처 간 충돌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말인가? 정치는 바로 이럴 때 존재의 이유를 증명한다. 환경부와 산업부가 각자의 본성대로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면서 특정 의제의 허와 실을 낱낱이 드러내게 하고, 이를 조율로 이끌어주는 것이 정치의 역할 아닌가. 현재도 의회나 국무조정 기능을 통해 얼마든지 범부처적 조율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관을 하나 더 만들고 간판을 새로 거는 것은 행정 효율성과는 무관한 보여주기 식 편의에 불과하다. 장관끼리 다투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정치적 조율 자체를 포기한다면 대통령이나 국회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공무원 입장에서도 현행 체제가 훨씬 낫다. 각 부처 태생의 존재 이유대로 계속 떠들고, 어떻게 조율하고 채택할지는 정치가 책임질 몫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사발령도 부처 내에서 이루어지니 후환 걱정도 없다. 오히려 용감히 싸운 공무원이 칭찬을 받을 일이다. 그런데 굳이 기후에너지부로 통합하여 모든 권한을 한데 몰아주면, 조직 내부에서도 자기 검열과 침묵이 확산되어 졸속 결정이 난무할 가능성이 커진다. 오늘은 기후 문제를 강하게 얘기하다가도 내일 인사 발령으로 전력시장 석탄과에 근무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감히 소신 발언을 하겠는가? 아무리 공무원이 영혼 없는 존재라지만, 이렇게까지 수시로 신념 갈아 끼우기를 강요한다면 결국 향후 인사상 불이익을 의식해 자기 목소리는 내지 않고 위만 바라보며 눈치 보는 조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건강한 내부 토론과 상호 견제는 사라지고, 내부 조율이라는 미명 아래 결국 윗선의 입맛에 맞는 '예스맨'들만 득세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나 같은 외부 전문가조차 기후에너지부가 설정한 '대세'에서 벗어난 주장을 감히 펼칠 수 있겠는가? 모두가 알아서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결국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기후에너지부'라는 간판이 정말 그렇게 절실한가? 없어서 못 하고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인가? 최근엔 신설 부서를 전라남도에 위치시킨다는 소문으로 시끄러우니, 도대체 '뭣이 중헌디'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새 부처 신설은 필연적으로 조직적 혼란과 비효율을 초래한다. 공무원들은 새 자리를 찾느라 이리저리 분주해지고, 몇 년은 조직 개편에 적응하느라 허송세월을 보낼 게 뻔하다. 우리는 이미 정부조직 개편 때마다 겪을 만큼 충분히 이런 진통을 겪어왔다. 진짜 필요한 것은 부처들의 의지와 협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정치권의 책임이지, 부처 간판 교체쇼는 이제 지겹고 식상하기만 하다. 유종민

[이슈&인사이트]돌고 돌며 진화하는 국제통상규범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한국유럽학회장 점차적 자유무역을 추구하던 국제사회의 주요국 통상규범들이 최근 들어서 보호주의적 색채를 가지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자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내 산업에 대한 규제에 적용하던 기준을 역외에 강하게 적용하려는 노력은 많았지만,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관세부과를 주요한 무기로 보다 노골적인 통상 규제를 강화하는 상황이다. 유럽은 통합된 역내시장에 적용되는 여러 기준을 강화하면서, 기술과 공정성 규제 등을 역외기업과 상품 등에도 적용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통상 규제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느려지는 경제발전과 불경기 상황을 타개하고자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조치를 명확하게 강화하는 중이다. 1990년대 출범한 WTO가 진정한 세계무역기구로서 국제사회의 통상환경을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법의 지배라는 '아름다운' 철학을 반영하였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국제사회에 팽배하였던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통제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부터 각국은 무수히 많은 자유무역협정(FTA) 또는 관세동맹(Customs Union)과 같은 특혜무역협정(Preferential Trade Agreement)을 체결하면서 지역경제공동체를 만들거나 국가 사이에 이전보다 자유로운 무역환경을 조성하였다. 이와 같이 국제사회는 자유로운 무역을 추구하고 통일된 경제 기준을 만들자는 의지를 더욱 강조할 것으로 보였다. 2024년 1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남미공동시장(MERCOSUR) 사무국은 양측이 1999년에 시작하여 25년을 소모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마무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EU는 유럽의 1위와 3위이자 세계 3위와 7위의 경제 대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속한 세계 3대 경제권으로, EFTA와 영국 등 비회원국과도 시장을 공유하며 유럽경제통합의 핵심이다. MERCOSUR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4개국으로 구성되어 매년 2조 2,00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는 남미 최대의 경제 공동체이다. 유럽의 EU 27개 회원국과 남미의 MERCOSUR 4개국 인구는 7억 명이고, 이들의 경제 규모는 전 세계 GDP의 25%를 차지하는 등 경제적 영향력이 매우 크다. 따라서 유럽과 남미 사이의 FTA는 대서양을 연결하는 경제적 교량을 구축하는 것이며, 환경과 인권 문제 등 양측이 민감하게 생각하던 논점을 무역과 경제라는 매개체로 합의하게 된 것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이 협상은 EU가 아마존 삼림 벌채 억제와 환경 보호에 관한 의무 조항 등 새로운 조건을 요구하면서 지체되었는데, 작년 리우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브라질이 강력한 환경 문제에 해결 의지를 보이며, 협상의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25년에는 관세율 인상을 주된 수단으로 하는 미국 정부의 무역 공격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그 대상에는 중국과 같은 오랜 미국의 무역 불균형 대상국만 포함된 것이 아니라, 캐나다와 멕시코 등 가까운 경제동맹국도 포함되었다. 물론 EU와 일본 그리고 한국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유예기간을 두고 협상을 벌이기도 하면서, 이러한 사태가 조금 시간을 벌면서 풀어나갈 가능성을 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이 전통적으로 추구하였던 '자유로운 무역'이라는 철학은 사라진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당분간 어떤 식으로든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은데, 이는 결국 1980년대 자유무역을 추구하며 진행되었던 우루과이라운드(UR) 이전의 보호무역주의 시대와 비슷해진다는 걱정이 많아진다. 한편, 한국은 최근 EU와 디지털무역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것은 한-EU FTA로 조성된 무역환경이 디지털로 대표되는 수단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양측이 조약으로 대응한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EU-MERCOSUR FTA, 미국의 무역 정책, 중국의 대응과 경제불황 등의 변수들이 국제무역환경과 국내의 산업에 주는 영향을 살펴봐야 하는데, 결국 국제통상규범이 돌고 돌면서 반복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논제가 첨가되면서 조금씩 진화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진화하는 국제통상규범을 보면, 진화의 과정에서 추가되는 새로운 논제가 보이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 과제를 가늠하게 한다. 김봉철

[기자의 눈] 발전공기업 재통합 등 산하기관도 대대적 개편 필요

이재명 정부에서 추진 중인 기후에너지부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영역과 환경부 전체 혹은 기후영역을 합치는 정부부처 신설안이다.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정부 부처의 통합과 함께 산하기관의 개편을 피할 수 없다. 산업부 에너지 산하기관에 어떻게 기후를 녹여낼지가 주요 과제다. 반대로 환경부 산하기관은 에너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기후에너지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재생에너지청' 신설이 거론된다. 재생에너지청은 한국에너지공단 산하 신재생에너지센터를 전신으로 삼을만하다. 센터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인허가, 전력시장 경쟁입찰,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시장 관리 업무 등을 하고 있다. 또한, 공공주도의 입지개발 및 입찰자 모집도 하려 하는데 재생에너지청으로 업무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에너지공단에서 신재생에너지센터를 분리하면, 에너지공단에는 산업·수송 에너지효율 관리, 집단에너지, 기후 관련 업무 등이 남는다.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에너지공단의 남은 부분을 현재 환경부 산하에서 온실가스감축 업무를 하는 한국환경공단과 합쳐 '에너지환경공단'을 만들 수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한국전력은 당연히 송전망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문제는 산하 발전공기업이다. 화력발전을 보유한 남동발전 등 5개 발전공기업은 에너지전환에 더욱 나서야 한다. 이에 5개 발전공기업을 통합해서 에너지전환을 한번에 추진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발전공기업 통합론이 더 구체적으로 제안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석유공사와 같이 화석연료를 다루는 거대한 공공기관에도 탈탄소 추진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들은 수소에너지 보급 및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개발의 선봉장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관 내 부서 개편이 따라와야 한다. 환경부 외청인 기상청이 기후에너지부 외청이 된다면 에너지 관련 업무가 강화될 수 있다. 기상청이 기상예보를 기반으로 태양광, 풍력 발전량 예측 사업의 주축이 되는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에너지 공기업으로 더욱 활약하길 요구받을 전망이다. 이미 확보한 대규모 수력발전 외 수열에너지, 수상태양광 등 물을 이용한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해야 할 과제가 커진다. 내년 수도권 생활폐기물 매립지 금지로 위기를 맞이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게는 기회다. 수도권매립지공사는 자원순환공사로 명칭 변경 후, 쓰레기 순환과정 전체를 다루는 방향으로 갈 듯하다. 쓰레기 자원이 난방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열에너지 분야의 탄소감축에 어떻게 기여할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협력도 기대해볼만 하다. 이 외에도 각종 에너지, 기후 관련 연구개발(R&D)·교육기관의 업무를 조율하는 과정도 거쳐야한다. 산하기관의 대대적인 개편은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그럼에도 기후에너지부에 진심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산하기관이 기후에너지부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면, 기후에너지부는 허울일 뿐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미래 산업과 민생을 위한 국가전략, 원자력의 재정의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6월 4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며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예고했다. 이 조치는 한국 에너지 정책의 구조와 우선순위를 새롭게 설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에너지 정책과 기후변화 대응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각 부처에 흩어진 권한을 통합하여 보다 일관되고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면,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목표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공존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TV 토론에서 원자력에 대한 회의적 입장을 언급한 바 있고, 이는 체코 원전 수주 계약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았다. 민주당 정부의 재집권이 문재인 정부 시절의 이른바 '탈원전' 기조를 부활시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2025년의 국제 에너지 환경과 국내 산업 생태계는 과거와 크게 다르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 그리고 AI 산업을 포함한 미래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가 맞물리는 오늘, 한국은 원자력이라는 무탄소 에너지원을 실용적 관점에서 재평가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첫째, 에너지 안보라는 고전적 명제가 다시 중심 의제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홍해 해상 운송의 불안정, 중동의 정세 불안은 에너지 수입국으로서 한국의 취약한 구조를 다시금 드러냈다. 천연가스 가격의 불안정과 선박 운송 리스크는 국내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자력은 탄소 배출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연중무휴로 안정적인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면서도 에너지 전환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대안 중 하나로 여겨진다. 둘째,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민생'과 '공공성'이라는 국정 철학은 원자력과 충돌하기보다는 오히려 상보적일 수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가계와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수급만으로는는 변동성 높은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원자력은 '기후위기 대응'과 '전기요금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에너지 자산이다. 셋째, 이재명 정부가 한국의 글로벌 AI 및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압도적인 전력 공급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미국의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은 AI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이미 원자력을 공공연히 지지하고 장기 전력 수급 계획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대전, 판교, 용인 등지의 데이터센터 수요는 급증하고 있으며,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AI 인프라에는 전력망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태양광과 풍력은 간헐성이 크고, 저장 기술은 여전히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제약이 크다. 특히 국토가 좁은 한국에서 대규모 재생에너지 개발에는 물리적 한계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와 같은 차세대 원전 기술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SMR은 설치 면적이 작고 안전성이 높아 산업단지나 도심 인근에도 배치 가능하며, 수소 생산 등과 연계되어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전력망의 부담을 분산하고,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기후에너지부가 공식 출범하게 된다면, 이 부처는 단순한 행정 통합기구를 넘어, 국가 에너지 전략의 '컨트롤타워'로 기능해야 한다. 원자력에 대한 재평가는 단순히 증설 또는 감축의 문제가 아니라, 그 역할을 재정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대형 발전소 중심의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SMR, 수소 연계형 원전, 산업단지 특화형 원전 등으로의 기술적 다변화와 공간적 분산이 필요하다. 더불어, 한국은 이미 원자력 수출국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체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한국형 원자로가 유럽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도 건설될 가능성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한국의 산업적 이익을 넘어 전략적 신뢰 자산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의 정치적 유산과 이념적 입장을 넘어서, 2025년의 현실과 미래의 가능성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원자력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기반이며, 기후와 안보, 산업이 교차하는 전략 자산이다. 에너지 안보, 산업 경쟁력,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용과 균형, 그리고 책임 있는 전환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민생을 지키고 미래를 준비하는 길일 것이다. 임은정

[데스크칼럼] 이재명의 탈석탄 vs 트럼프의 아름다운 석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대표적 실책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이다. 그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다른 선진국들보다 저렴하게 요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자력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4월 기준 원전의 발전 단가는 kWh당 80원인 반면, 가스발전 단가는 159원이다. 탈원전은 현실을 외면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서 환영받을 수 없었다. 이재명 정부는 탈원전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대선 전 “민주당이 더 이상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우파 에너지, 좌파 에너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전 세계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SMR(소형모듈원전)이라든지 MMR(10메가와트 이하 원자로), 더 나아가서 핵융합 에너지 등 미래 전략산업의 육성을 위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원전 실책으로 잃었던 민심을 만회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쩌면 이 대통령도 탈원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 탈석탄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10대 공약 중 기후 분야에서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폐쇄'를 약속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61기에 약 40GW 용량에 달하는 석탄발전이 있다. 2040년까지면 15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단순 계산하면 1년에 4기씩 석탄발전을 없애야 한다. 1기당 650MW 규모이므로 1년에 2600MW의 발전용량을 석탄에서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깝다. 이 대통령이 석탄발전을 없애겠다고 약속한 이유는 석탄의 환경오염 때문일 것이다. 석탄은 연소 과정에서 많은 배출물질을 발생시킨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천연가스의 3배이고,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그리고 먼지도 많이 발생시킨다. 우리나라 봄철마다 극심한 미세먼지가 생기는 것도 중국의 석탄발전에서 나오는 물질이 한반도로 유입되는 것이 주요 요인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석탄의 다른 면도 봐야 한다. 석탄은 에너지원으로서 아주 훌륭한 물질이다. 석탄의 열량은 석유, 천연가스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가공이 거의 필요없고, 유일한 고체물질이라서 운송도 매우 쉽고 저장도 쉽다. 무엇보다 매장량이 전 세계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고갈 걱정도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전국에 걸쳐 매장지가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8일 미국 내 석탄산업을 활성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석탄은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안전하고 강력한 에너지이다. 저렴하고 효율성이 뛰어나고 거의 파괴되지 않는다"며 “아름답고 깨끗한 석탄을 저렴한 미국 에너지로 계속 활용할 것"이라고 석탄을 치켜세웠다. 트럼프는 환경 파괴론자가 아니다. 현실주의자다. 앞으로 국가간 패권싸움은 얼마나 우수한 AI(인공지능)를 확보했느냐에서 나온다. AI는 데이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데이터센터 확보가 경쟁의 핵심이다. 데이터센터는 에너지 먹는 하마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 에너지 소비량을 감당하려면 충분한 석탄 공급이 필요하다는 게 트럼프의 의도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AI 전쟁에 뛰어들었다. 앞으로 막대한 에너지 소모가 예상된다. 그런 와중에 석탄발전을 폐쇄한다면 도대체 어떤 에너지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을까? 전국 모든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모든 산간과 해안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며,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해결하기 위해 화재 위험성이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전국에 구축해 놓으면, 과연 그것이 석탄발전을 대체한 깨끗한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신규 원전 수십 기를 추가 설치해야 하는데, 과연 어느 지역에 할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는 국가의 근간이다. 얼마나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느냐가 국가간 경쟁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석탄발전 패쇄 정책을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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