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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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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호] 한전 독점에, 요금은 정치가 결정…전력 시스템의 한계가 왔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1.02 06:32

AI·분산에너지 시대, ‘중앙집중형 전력 거버넌스’ 개편 필요성
국내 전력시장, 경쟁은 없고 사실상 정치권·정부 통제로 운영
“더 이상 한 기관 독점할 수 있는 구조 아냐, 역할 재정의 시점”
기후에너지부, 신년 최우선 과제로 ‘전력 거버넌스 개혁’ 추진

한국전력의 전남 나주 본사.

▲한국전력 전남 나주 본사. 한국전력

한국 전력 시스템이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진단이 에너지 업계 전반에서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확산, 재생에너지 급증, 분산형 전원 확대 등 전력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제도와 거버넌스는 여전히 중앙집중형 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핵심 문제로 꼽히는 것은 한국전력공사를 중심으로 한 독점적 구조다. 한전은 전력 도매·소매 시장과 송·배전망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발전시장에서도 5개 발전 자회사를 통해 전체 설비의 약 60%를 점유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발전경쟁 체제가 도입됐지만 실질적인 경쟁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민간 발전사와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늘고 있음에도 계통 접속과 급전·정산 구조는 여전히 한전 중심 체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전력 거래를 관장하는 전력거래소와 전기사업 인허가 및 제도 운영을 심의하는 전기위원회 역시 한전 출신 또는 한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시장은 있으나 경쟁이 부족한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수천개 재생에너지 동시 계통 연결, AI기반 분산 운영 필요

전기요금 체계 역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전력 원가와 연료 가격 변동이 존재함에도 전기요금은 사실상 정치적 판단에 좌우돼 왔다. 요금 인상은 번번이 지연됐고 그 부담은 한전의 부채로 전가되는 구조가 반복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연료비가 급등했을 때도 요금 반영은 제한적으로 이뤄졌고, 그 결과 한전은 200조원의 대규모 적자를 떠안았다.


에너지 수입 구조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소비의 약 94%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연간 에너지 수입액은 230조원 안팎에 달한다. 화석연료 가격 변동이 그대로 국가 경제와 전기요금, 한전 재무에 충격을 주는 구조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요금을 억누른다고 비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부채나 재정 부담으로 전가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전력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을 요구하고, 재생에너지는 수천 개의 소규모 발전원이 동시에 계통에 연결되는 분산형 구조를 만든다. 수요와 공급이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환경에서 중앙집중형 계획·통제 모델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AI 기반 전력 수요 관리, 분산형 전원 운영, 실시간 가격 신호 반영을 위해서는 전력 시스템 거버넌스의 전면적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주요업무 추진계획

▲기후에너지환경부 주요업무 추진계획. 기후에너지환경부

'한전 밖 전력' 요구 커진다…PPA 확대 목소리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산업계와 국회가 주최한 각종 세미나에서도 반복됐다. 세미나에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 구분 없이 기업이 다양한 전원을 직접 선택해 전력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전력구매계약(PPA)을 확대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PPA는 발전사업자와 수요기업이 직접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PPA는 시장 기반 전력 거래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전환 축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전 중심의 중앙집중형 공급 구조에서는 PPA가 사실상 제한적이었던 만큼 계통 이용요금 체계 개편과 직접 PPA 활성화를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야 정치권 역시 PPA 확대와 가격 경쟁력 확보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전력 거버넌스 개편을 주요 정책 과제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5 전력산업 세미나'에서는 AI 시대 전력 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고, 전기요금 구조와 전략 전환 필요성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이 이미 킬로와트시(kWh)당 180원 수준까지 상승한 상황에서 AI 데이터센터와 같은 대규모 전력 소비 산업을 감당하려면 kWh당 100원 이하의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AI 산업은 전력 비용에 극도로 민감한 구조"라며 “해체 비용과 사용후핵연료 비용까지 포함하더라도 100원 이하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전원은 현실적으로 원자력"이라고 강조하며 원자력 전용 PPA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전우영 서울과학기술대 인문사회교양학부 교수는 AI 데이터센터 확산이 기존 전력 수급 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순간적으로 대규모 전력을 소비했다가 급격히 수요가 줄어드는 패턴을 반복한다"며 “재생에너지와 데이터센터가 결합될 경우 전력 계통 안정성에 상당한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력산업 세마나 다음날 열린 '새만금 RE100 산단' 세미나에서도 기업 유치의 관건으로 재생에너지 PPA 물량 확보와 가격 경쟁력이 집중 거론됐다. 기업 유치를 위해 현 전기요금보다 저렴한 PPA를 공급할 수 있다면 PPA 제도를 적극적으로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앞으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폐지에 따라 현물시장에서 거래되던 최대 7기가와트(GW)의 대규모 재생에너지 물량이 PPA 물량으로 풀릴 수 있는 것도 변수다.


만약 RPS 폐지 이후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로의 전환 과정에서 PPA 전력판매가격이 높게 측정된다면 7GW의 재생에너지 물량이 한전을 대량으로 이탈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기요금이 kWh당 180원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전력이 180원 이하로 풀린다면 구매를 마다할 이유가 줄어들 수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도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의 가격이 PPA보다 낮다면, PPA를 더 선호할 수 있다.


대통령도 짚은 한전 부채…전력 인프라 투자 시험대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후부(기상청)·원안위 업무보고에서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관련 업무보고를 경청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부(기상청)·원안위 업무보고에서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관련 업무보고를 경청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이러한 구조적 문제 속에서 정부의 국정 과제인 에너지고속도로와 재생에너지 보급 인프라를 감당해야 할 한전은 재무 상황에서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 기업들의 직접 전력 조달 확대와 한전 이탈이 가속화될 경우 한전의 재무 구조는 물론 국가 전력 인프라 투자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에너지고속도로를 비롯한 대규모 송전망 구축 사업은 장기적 수요 예측과 안정적인 투자 재원이 전제돼야 하는데 전력 판매 기반이 약화될 경우 사업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7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에게 “빚이 이렇게 많은데 신규 투자가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전력 수요 증가가 예고된 상황에서 한전의 과도한 부채가 송·배전망 확충과 계통 투자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동철 사장은 “지금의 전기요금 체계 안에서는 근본적인 누적 적자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요금 구조의 현실화를 강조했지만 대통령은 “기업들이 원가보다 비싸게 전기를 사고 있다고 아우성인데, 한전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력을 사겠다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지적하며 요금 인상에 대한 산업계 부담을 짚었다.


결국 전기요금, 한전 부채, 송전망 투자, 에너지 전환은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적 문제로 얽혀 있다. 전력은 산업 경쟁력의 기반이자 국가 안보 자산이다. AI와 분산에너지라는 구조적 변화 앞에서 한국 전력 시스템은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에너지고속도로 개념도. 기후에너지환경부

▲에너지고속도로 개념도.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후부, 내년 RPS 폐지 및 지역별 요금제 추진

정부는 내년도 업무보고를 통해 재생에너지 비용 구조를 낮추고 전력 시장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편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는 올해 상반기부터 경쟁 입찰 방식으로 전환되고 계획 입지 도입과 인허가 간소화, 보증·융자 확대를 통해 사업 비용 절감을 추진할 계획이다. 경쟁 입찰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오는 2030년까지 해상풍력은 kWh당 250원 이하, 육상풍력은 150원 이하, 태양광은 100원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력망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도 병행된다. 출력 감소에 사전 참여하는 조건으로 보상을 제공하는 '재생에너지 준중앙제도'는 올해 3월 도입된다. 히트펌프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양방향 충전(V2G) 등 수요 유연성 자원은 제주 지역 실증사업을 거쳐 올해 하반기부터 정규 자원으로 시장 참여가 확대될 예정이다.


아울러 산업용 전기요금의 계시별 요금 체계 개편을 통해 재생에너지 출력이 집중되는 시간대의 수요 분산을 유도하고 송전 거리 등을 고려한 지역별 전기요금 도입은 내년 하반기 검토에 착수한다. 전기위원회에는 요금 결정 권한을 단계적으로 부여하고 전력감독원 신설을 통해 내년 상반기부터 시장 공정성과 전력망 안정성에 대한 상시 감독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전기요금 체계와 전력 거버넌스를 동시에 손대는 구조 개편인 만큼 정책 추진 속도와 이해관계 조정이 향후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AI와 재생에너지 시대의 전력 시스템은 더 이상 한 기관이 독점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한전의 역할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변화한 환경에 맞게 역할을 재정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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