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데스크 칼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언제부터 패시브 ETF(상장지수펀드), 이런 거에 목을 맸습니까? 자본시장이 비겁해졌어요." 한국 자본시장을 개척해 온 증권업계 구루가 소주 한 잔을 앞에 놓고 한탄했다. 자산운용에 한 획을 그은 뒤 최근 은퇴해 누구보다 업계를 훤히 꿰뚫고 있을터다. 너도 나도 패시브 ETF를 선보이는 2025년, 그는 무엇을 아쉬워했을까. 공모펀드나 ETF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목받았다. 미국 채권 시장이 흔들린 여파가 한국으로 이연했다. 위기를 겪으며 개인은 본인 정보력이 기관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다. '당신만 알고 있어' 따위 정보에 현혹돼 개별 종목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거듭하고 난 뒤다. 백전백패하느니 증권 전문가가 운용하는 펀드에 올라타자는 심리가 확산했다. 전문가가 운용하니 잘될 거란 기대감이 컸다. 돈 좀 벌어보려 매분 내가 가진 주가가 오르나 내리나 노심초사하며 눈알 빠지게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지 않아도 됐다. 대신 펀드매니저가 바빠졌다. 애널리스트를 통해 업황과 기업을 조사·분석하고, 밤을 새워 투자 전략을 수립, 타이밍에 맞춰 종목을 편/출입했다. 정보와 전략이 중요했고 펀드매니저간 경쟁도 치열했다. 매일 수익률로 평가받았다. 밤에도 여의도 증권가 사무실엔 불이 꺼지지 않았다. 2020년대 들어 액티브 ETF가 부상했다. 매니저는 펀드액의 30%내(상관계수 0.7 규제)에서 직접 주식이나 기타 자산을 선택하고 거래했다. 지수추종의 대세추종성, 매니저의 전략적 수익추구성, ETF의 투명성과 저렴한 보수 등 장점이란 장점은 모두 모았다. 지난해 초 펀드 매니저에게 굴욕적인 통계가 나왔다. 주식형 액티브펀드의 10년 누적수익률이 인덱스펀드의 절반에 그쳤다는 거다. 밤을 새워 정보를 모으고 전략을 짜고 종목을 골라 사고 팔지 않아도 수익률이 배 이상 많이 나왔다. 펀드매니저는 '당신, 일을 왜 했어'란 핀잔을 들었다. 그래 그런지 요즘 자산운용업계는 패시브 ETF가 대세다. 업체 설명만 듣고 있으면, 세상 이렇게 앉아서 돈을 버는 상품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상세 설명서를 받아 상세히 뜯어봤다. 읽어본 결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패시브 ETF는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팔기만 하면 된다. 펀드 매니저는 아무 것도 안해도 되고, 설정 이후 아무 것도 할 수도 없다. 여의도 증권가 사무실에 불이 꺼졌다. 자산운용사에 워라밸이 찾아왔다. 달리 말해보자. '투자할 줄 모르는 바보입니다만, 돈만 벌어드리겠습니다'라는 자세만 견지하면 된다. 그것이 자본시장과 증권맨의 존재이유인가? 투자로 돈을 버는 것은 결과다. 자본시장의 목적은 세상의 가치를 키워낼 기업을 골라내 육성하는 일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기업을 찾아내고 투자해 성장을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수익과 가치를 이뤄내는 게 자산운용업계의 본업이다. '투자업'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만 쫒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불모의 시장에서 신산업을 키워낸 펀드 매니저는 존경 받게 마련이다. 구루는 이를 한탄한 게 아닐까.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데스크칼럼] 자원전쟁의 시작, 공급망 확보가 우선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 비중은 2023년 35.7%로, OECD 평균 28%보다 높은 수준이다. 수입까지 고려하면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89%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을 보면 반도체, 자동차, 선박, 디스플레이, 핸드폰, 석유화학 등이다. 정부와 기업들은 수출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기술력 향상, 연구개발 확대, 핵심인재 양성, 설비 자동화 등에 힘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수출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력에 매번 빠트리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원재료 공급망 확보이다. 가만 생각해보자. 반도체, 자동차, 선박, 디스플레이 등은 무엇으로 만드는가. 모두 광물로 만든다. 철광석, 알루미늄, 구리, 연, 아연 등 산업광물부터 규소, 비소, 인듐, 코발트, 티타늄, 희토류 등 핵심광물까지 모두 광물로 점철돼 있다. 우리나라는 금속광물 수요의 90%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매장량도 별로 없지만, 환경피해 우려 때문에 있던 광산들도 모두 문을 닫으면서 거의 전량을 수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원부국들이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자원무기화에 매우 취약하다. 현재 세계 경제시장에는 자원무기화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관세 폭탄을 부과하고 반도체 수출까지 막자, 중국 정부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희토류 수출 통제에 나섰다. 희토류는 첨단, IT, 군수산업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광물이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45%, 생산량의 70%, 제련품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사실상 중국 없이는 희토류 수급이 불가능할 정도다. 희토류는 지각 내 매장량은 풍부하지만 함량이 200ppm(0.02%)에 불과해 생산 시 엄청난 환경피해가 발생하고, 이를 정제하는 과정에 유독물질인 황산이 대량 사용돼 선진국에서는 거의 생산이 불가능한 광물로 평가된다. 중국은 오히려 이러한 점을 이용해 희토류를 전략무기화하고 있다.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열도 영토 분쟁 때 일본에 중국 선원이 구속되자 희토류 수출을 금지시켜 곧바로 풀려나게 했다. 희토류 수출 통제는 미국한테도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미국도 인정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중국의 희토류 등 핵심광물 수출통제에 따른 미국 내 영향을 조사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소개하며 “(희토류는) 군사 인프라, 에너지 인프라, 그리고 첨단 국방시스템 및 기술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다. 또한 방위산업 기반의 핵심 구성 요소이며, 제트 엔진, 미사일 유도 시스템, 첨단 컴퓨팅, 레이더 시스템, 첨단 광학, 보안 통신 장비와 같은 응용 분야에 필수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가 미국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음을 고백한 셈이다. 이번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는 미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동맹 및 무역 관계를 고려하면 우회수출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도 충분히 타깃이 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약 60일분의 희토류를 비축하고 있을 뿐 그외에 별다른 대응방법을 갖추고 있지 않다. 비축량이 모두 소모되면 첨단산업 생산은 중단될 것이고, 수출 역시 줄게 되면서 국내 경제는 치명적 피해를 입게 된다. 원재료 공급망 리스크가 백척간두인 상황인데도 정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공급망 리스크를 최일선에서 체크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할 자원공공기관 수장에 비전문가인 언론인이 임명됐다. 그는 해당 기관의 비상임이사를 지낸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전문가로 인정된다는 것이 해당 기관의 설명이다. 그 논리라면 그는 이전에 카지노 공기업, 케이블방송사, 금융사에서도 비상임이사를 지낸 바 있는데 그럼 그는 관광, 방송, 금융 전문가도 되는 셈이다. 누가 이를 인정하겠는가. 지금이라도 바로 세워야 한다. 첨단산업을 발전시키고 수출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면 그 첫단계로 우선 원재료 공급망부터 확고히 다져야 한다. 적임자를 임명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