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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원화 스테이블코인, 해볼만하지 않을까?

일상적인 거래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다양한 덕목 중에는 “안정성"이 있다. 극단적인 예로 식당 밥값이 하루는 만원이었다가 다음날 만오천원이었다가, 또 하루가 지나니 8천원이 되어있다면 밥맛이 뚝 떨어질 지경이다. 물론 대부분의 원재료를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식당의 경우 음식값을 달러로 매기는 특이한 식당이 있기는 하다. 이는 예외로 하자. 일각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면 유통의 범위 측면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비해 경쟁력이 없어, 금방 소멸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물론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원화는 한국을 떠나는 순간 내재가치가 영(零)으로 수렴하는 명목화폐 또는 법화인 것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원화의 그림자와 동일하므로 그 가치도 해외에서는 인정받기 어렵다. 이는 우리가 부정하고 싶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쟁력은 국제화에 있지 않다. 앞서 예시를 들었듯이, 가격의 안정 측면에서 국내에서 유통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이 있다면 그것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외에는 없다. 한 예로 일부 우려와 같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는 유일한 스테이블코인이며 이를 활용하여 경제활동을 하려고 한다면, 재화와 서비스 가격을 달러로 표기해야만 한다. 이를 구매하고자 하는 국내 소비자는 이내 계산이 복잡해진다. 휴대폰을 꺼내서 현재 환율을 학인하고 이내 재화와 서비스 가격을 원화로 다시 계산해야 한다. 이는 곧 매회 거래의 불편함을 감수해야할 뿐만 아니라 거래의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온라인에서나 가게에서 자동으로 계산하여 공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의 변동성에 따라 원화표시 가격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이와 같이 가격변동이 나타나는 경우, 소위 “위험을 기피하는" 소비자는 소비를 꺼리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을 자주 변경하여 판매자 수익의 안정을 꾀하는 것보다, 오랫동안 같은 가격을 유지함으로써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 더 낫다는 논의에 기반한다. 가격을 달러화로 책정하게 되면 원화표기 가격이 계속 변하게 될 것이고, 원화로 가격을 책정할 경우에는 달러화 가격이 계속 변하게 될 것이다. 어느 쪽도 우리나라 소비자에게는 달갑지 않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거래를 한다고 가정하였을 때 소비자는 달러표기 가격도 안정화되기 바랄 것이다. 한편, 이 물건 또는 서비스 가격이 익숙할 원화 단위로 얼마인지 가늠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므로, 원화표기 가격도 안정화되길 바랄 것이다. 이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유통의 딜레마라고 볼 수있다. 우리가 미달러화를 도입하거나 달러화 가치에 원화를 고정시키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 경제로 전화하지 않는 이상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거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시장이 열려있음을 의미한다. 해외에서 개발된 시스템을 국내에 정착시키는 것과 우리가 개발한 시스템을 확장해가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들여와 정착시키는 것이 해외송금 등에서 일견 나아보일 수는 있을 것이나, 우리의 토양에서 태생한 시스템이 성장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리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시장이 비록 국내에 대부분 한정되어있고 달러에 비해 잠재력과 경쟁력이 약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규모가 비교적 작은 우리나라도 이 자리에서 5천년을 버텼고, 원화가 아직 국제통화는 아니나 요동치는 국제금융시장과 외환시장에서도 아직 살아남았다. 오히려 원화 스테이블코인 플랫폼을 어느나라보다 선진화하고 효율적으로 발전시킬 경우, 원화의 국제화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이루어질 기회를 잡을 지도 모른다. 불안보다는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추진해볼만 하다. 김수현

[EE칼럼] 중국이 수소마저 우리를 추월하게 둘 건가?

수출경쟁력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한때는 노동생산성이나 부존자원 같은 공급 요인이 핵심이었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연구 이후 시장의 크기가 더 중요한 변수로 부상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환경에서는 내수시장이 큰 나라일수록 생산이 빠르게 늘고, 그 힘이 수출 우위로 이어진다. 이른바 '자국 시장효과(Home Market Effect)'다. 이 원리는 중국의 기후산업 성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태양광, 풍력, 전기차, 배터리 등 어느 분야를 보더라도 중국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태양광 제조의 80% 이상, 풍력 부품의 50~70%, 전기차 배터리의 75~85%가 중국산이다. 거대한 내수시장과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가 결합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한 결과다. 이제 중국은 태양광·풍력·전기차를 넘어 수소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수소에너지산업 발전 중장기계획(2021~2035)' 아래 수전해 효율 향상과 그린수소 확대를 추진하며, 지방정부는 500건이 넘는 지원정책으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CNPC 등 국유기업은 대규모 그린수소 단지를 조성하고, 허베이–탕산을 잇는 약 1,000km 규모의 세계 최대급 수소 파이프라인 설계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지원 속에 중국은 이미 수전해 투자와 제조 능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24년 기준 600여 개의 그린수소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며, 가동 설비만으로도 연간 약 12만5천 톤을 생산한다. 양성자 교환막(PEM)과 음이온 교환막(AEM) 기술은 초기 상업 운전 단계에 진입하는 등 질적 도약 중이며, 설치비는 해외의 절반 수준으로 낮다. IEA는 중국이 2030년 전후로 그린수소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은 수소 모빌리티에서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2020년 베이징·상하이·광둥에서 시작한 시범사업을 2022년 50개 이상 도시로 확대하고, 사업자들에게 성과 기반 보조금과 금융 크레딧을 제공 중이다. 광둥성은 광저우–잔장(435km) 구간에 '수소 고속도로'를 조성해 냉장 트럭 물류망을 시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35년까지 수소차 100만 대 보급을 목표로 삼았으며, 트럭과 버스 등 2024년 기준 전 세계 수소 상용차의 약 95%가 중국에 집중됐다. 이로 인해 도로 운송용 수소의 75%가 중국에서 소비됐고, 한국의 비중은 약 15%에 그쳤다. 반면 한국은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내세워 세계 선도국을 자처했지만, 추진력과 성과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24년 수소 승용차 판매는 3,000대 미만으로 2022년 대비 75% 감소했다. 수소 버스는 2025년 상반기 기준 약 1,200대 수준으로 중국의 압도적 물량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국내 수소 상용 트럭은 보조금 기준 15대에 불과하다. 장거리 물류와 군수 등 배터리 전기화가 어려운 분야의 탈탄소화를 이끌 핵심 수단이 지금 뒤처지고 있다. 이런 복합적 상황 속에서 한국 수소경제의 앞길은 한층 불투명해졌다. 10월 17일 전력거래소가 '2025년 청정수소발전시장(CHPS) 경쟁입찰'을 돌연 취소하면서 발전용 수소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석탄+암모니아 혼소가 포함된 입찰이 2044년까지 석탄발전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음이 취소 사유로 추정된다. 새 공고에서는 암모니아 혼소 방식을 전면 배제하고 LNG+수소 혼소, 수소 전소만 제한적으로 허용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도 발전용 연료전지 입찰 물량이 여전히 미공고인 점도 우려를 키운다. 만일 발전용 연료전지와 석탄+암모니아 혼소가 정책 지원 대상에서 실제 배제된다면, 고비용의 수소 전소나 LNG+수소 혼소만으로는 향후 5년 내 시장이 열리기 어렵다. 100% 수소 연소 터빈은 실증에는 성공했지만, 상용화는 아직 초기 단계다. 혼소 역시 비용 부담이 커 지난해 민간 투자자들이 입찰을 포기했다. 정부의 우왕좌왕한 태도까지 겹치며 시장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결국, 향후 5년간 한국이 선택할 길은 수소 모빌리티와 수송 분야의 집중 육성뿐이다. 발전용 수소 시장이 단기간에 열리기 어렵다면, 상용 트럭과 버스 등 교통 부문에서라도 수소경제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 중국이 '자국 시장효과'를 기반으로 기후산업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이 분야마저 뒤처진다면, 한국의 '퍼스트 무버' 비전은 공허한 구호로 남을 것이다. 김재경

[기자의 눈] 경기북부 태양광, 수도권 전력 불균형 해소 대안

'경기북부 에너지고속도로'로 불리는 군사접경지역에 태양광 발전단지를 조성하자는 아이디어가 제기됐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파주을)은 지난 14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기후에너지환경부 국정감사에서 김성환 장관에게 이같은 의견을 제안했다. 활용되지 못한 군사접경지역을 공공이 주도적으로 개발하자는 구상은 업계에서 이재명 정부의 분산형 에너지 정책을 보완할 새로운 대안으로 평가된다. 전국 태양광 설비의 3분의 1이 호남권에 집중된 편중 구조를 완화하고, 지역 간 기상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도 검토 가치가 있다는 분석이다. 호남은 해양성, 경기북부는 대륙성 기후로 여름철 장마와 겨울철 폭설 패턴이 달라 발전량 변동 폭이 다를 수 있다. 특정 지역에 태양광이 몰리면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동시에 급락해 계통 불안이 발생하지만, 경기북부로 일부 분산하면 계통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민간이 개발하기 어려운 군사접경지역을 공공이 주도해 계통·규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부족한 재생에너지 입지를 새로 발굴함으로써 공공과 민간의 과도한 경쟁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수도권에도 발전소는 많다. 다만 소비량이 압도적으로 많아 자급률이 낮을 뿐이다. 수도권 발전의 대부분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공간 대비 전력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설비 위주다. 전력거래소의 2024년도 발전설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수도권(서울·인천·경기)에서 운영 중인 발전설비 총용량은 3만6257메가와트(MW)로, 이 중 화력발전이 87%(3만1572MW)를 차지한다. 전국 화력발전의 약 40%가 수도권에 위치하지만 전체 전력자립률은 65% 수준에 그친다. 수도권 내 대형 공장과 데이터센터, 교통 인프라 등 고밀도 수요처가 집중된 데 비해 화력발전 외 다른 발전원이 들어서기에는 입지가 턱없이 부족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까지 더해지며 수도권 전력 불균형은 심화되고 있다. 이때 경기북부 태양광이 확대된다면, 수도권의 발전량 부족과 화력발전 편중을 완화하고 전국 단위의 계통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주말 낮 시간에는 북쪽과 남쪽 모두에서 태양광 전력 과잉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수도권 주거지의 높은 난방·온수 등 열 수요가 경기북부 태양광 전력을 흡수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산업용 열은 1000℃(도) 이상의 고열이지만, 난방용 열은 약 100도 수준으로 전기에서 열로의 전환 장벽이 낮다. 핀란드 북부 도시 바사(Vaasa)는 유럽에서도 드문 300MW급 대형 전기보일러를 가동해, 약 7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의 한 달 열수요를 충당한다. 핀란드에서는 전기가 남을 때 '마이너스 전력가격'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때 전기보일러가 에너지저장장치(ESS)처럼 작동해 잉여 전력을 열 형태로 저장한다. 수도권 역시 LNG열병합발전소에 전기보일러를 결합하면 유사한 집단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전력시장 개편이 이뤄지지 않아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렵다. 지금은 구상 단계에 불과하더라도, 전력시장 개편이 현실화된다면 경기북부 태양광은 단순한 입지 확충을 넘어 열·전기 융합형 분산전력 모델로 구체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부동산 시장은 정치권의 싸움터가 아니다

부동산 시장이 서울을 중심으로 다시 들썩이고 있다. 10·15 부동산 대책으로 거래량이 일시적으로 줄며 숨 고르기 양상을 보이지만, 이는 단기적인 안정일 뿐이다. 장기적으로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선 충분한 공급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서울시와 정부간 협력이 필수다. 그러나 지난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선 여야간, 정부·서울시간 협력 방안 모색은 커녕 정치적 공방과 책임 전가만 난무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오세훈 시장이 2021년 취임한 후 5년 동안 무엇을 했냐고 추궁했다. 말로는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대규모 공급을 약속했으면지만 실제 공급 실적은 저조했다며 책임을 물은 것이다. 특히 지난 3월 강남 3구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취소했다가 부동산 가격 상승세의 불씨를 제공했다는 점을 집중 지적했다. 여당 의원들은 “윤 정부가 280만 호 공급을 약속했지만 실제 공급은 절반 수준에 그쳤다"며 “공급절벽이 심화되는 동안 강남 집값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의원은 “잠실·삼성·청담 지역 토지거래허가제 해제가 강남 집값 불쏘시개가 됐다"며 오세훈 시장을 질타했다.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 소속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정비구역을 대거 해제한 것이 공급 절벽의 원인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또 정부가 10·15 대책을 세우면서 서울시와 협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 한 국민의힘 의원은 오 시장에게 “정부의 세 번째 부동산 대책에 서울시 의견이 반영됐나"라고 묻자, 오 시장은 “없다. 다만 신중히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달했다"고 답했다. 이후 국민의힘 의원이 “찬성이냐 반대냐" 재차 묻자 “반대"라고 답했다. 이같은 야당 의원-오 시장간 문답은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부동산 정책을 두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보다 서로 다른 목표와 계산법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동산 대책이라는 최대의 현안에 대해 여야가 민생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오 시장이 이날 국감에서 국토부 장관과 협의를 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만남도 실질적 해법을 찾는 자리가 될지, 또 다른 신경전으로 끝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부동산 시장은 여야의 싸움터가 아니다. 시장의 불안은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라 '누가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 대책이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이슈&인사이트] 성장-소비 선순환에 올라가는 자산 시장…그러나 무너지면?

미국 주식은 AI 산업 붐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상승하고 있다. 초창기 AI 산업을 이끈 엔비디아의 주가가 지금은 잠시 주춤거리지만 구글, 애플, AMD 등 빅테크 기업들이 양호한 실적과 전망으로 소위 순환매 장세를 이끌면서 시장 상승의 건전성을 더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다음 주 연준회의(FOMC)에서 최소 25bp 금리인하가 예상되면서 유동성 추가 공급이 예견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미국 정부 셧다운도 다음 주까지 해결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가장 문제가 되었던 관세정책은 관세부과의 타겟이었던 중국과의 협상이 잘 진행되면서 이번 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기간동안 두 정상간의 회담에서 양국 간 무역 협정을 방해하고 있는 희토류, 대두, 펜타닐 3대 문제가 해소되면서 미-중간 무역 협정이 타결될 거라는 희망이 시장에 팽배해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코스피 역시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파죽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반도체가 2017년 이후 다시 한 번 붐을 일으킬 거라는 전망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대만의 ADATA 천리바이 회장은 “D램, 낸드플래시, 하드디스크(HDD)까지 4대 주요 메모리 제품이 동시에 부족한 건 30년 업력 사상 처음 겪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AI 고정 수요가 과거 3~4년 주기의 메모리 경기 순환을 완전히 깨뜨리고 있고 이번 호황기는 최소 2026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산을 중단한다고 예고한 DDR4 16Gb(기가바이트) 현물 가격은 석 달 새 약 44%나 올랐고, 1년 전과 비교하면 4배(413%) 넘게 뛰었다. DDR5 16G 제품 역시 1년 만에 약 83% 비싸졌다. 특히 DDR4 칩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구하려는 고객이 줄을 서고 있는 상태다. 지금 자산 시장이 오르는 이유는 미국의 성장, 특히 AI 산업에 대한 기대를 머금고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성장이 흔들리더라도 연준의 금리 인하가 나와 유동성의 힘으로 자산 가격이 올라갈 수 있기에 돈이 자산시장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올라버린 자산 가격으로 소비를 늘리니 소득 하위층의 소비가 줄고 있음에도 전체 소비가 양호하게 버텨주고 있다. 자산 가격의 상승이 성장을 견인하는 모습이다. 성장으로 자산 가격이 오르고 올라버린 자산 가격이 소비 성장을 자극하니 또 자산 가격이 오르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만약 주식 시장을 비롯한 자산 시장 전반이 어떤 충격을 받아 무너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주가가 하락하면 소득 상위층의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가뜩이나 소득 하위층의 소비는 초토화 되어있는데 상위층의 소비까지 줄어들면 전반적인 소비 위축의 민감도가 높아져 자산 가격이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거다. 그렇다면 어떤 리스크가 자산 가격의 하락을 만들 수 있을까? 예상 외의 인플레이션, 국가 부채의 문제, 은행권의 신용 위험,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우려, 미중간의 갈등,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금융관련 규제 등. 하지만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시장은 J.P Morgan의 다이먼 회장과 무디스 수석연구원 마크 잔디 등 유명 비관론자들의 말을 무시하고 버블을 키워 가고 있다. 상승론자들은 반도체의 슈퍼 사이클이 돌아왔기에 앞으로 최소 2년간 자산 시장 상승은 이어질 거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가격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용기 있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항상 욕심과 두려움의 경계에 서 있다. 재무투자론 1장에 나오는 영원한 딜레마 두려움(Fear)과 욕심(Greed) 사이에서 투자자의 고민은 계속 이어질 거다. 최용

[EE칼럼]한반도, 기후의 뉴노멀 속으로…폭염·한파·폭우가 일상이 되다

한반도의 기후가 격랑에 휩싸인 듯 요동치고 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의 기후를 비교적 온화하고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설명했지만, 이제 그런 교과서적인 표현은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지난 한 해만 돌아보더라도 폭염과 한파, 폭우와 가뭄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고, 이처럼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잦아지면서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곧 기후위기의 '뉴노멀(new normal)'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변화의 이면에는 자연이 우리에게 던지는 무겁고도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다. 기후는 더 이상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온난화의 가속 페달을 밟은 상태에 들어선 것이다. 기후과학자들이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평균기온이 1.5℃를 초과하면, 이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 해도 지구시스템이 본래 상태로 회복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즉, 1.5℃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기후위기의 임계점(tipping point)이다. 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지구는 통제 불가능한 '기후 폭주(runaway climate change)'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북방지역의 영구동토층이 녹기 시작하면 그 안에 갇혀 있던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 온난화를 가속화한다. 아마존 열대우림도 더 이상 탄소 흡수원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오히려 탄소 배출원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후 시스템을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몰고 간다. 1.5℃ 상승은 생태계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어 폭염, 홍수, 가뭄, 산불 등으로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수많은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하며, 결국 생물다양성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붕괴될 수 있다. 반면 온난화를 1.5℃ 이내로 억제한다면 지구시스템의 내부 복원력이 작동해 기후 폭주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도 남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2023년 기록적인 고온 현상에 이어 2024년에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이미 1.55℃를 기록하며 임계점인 1.5℃를 넘어섰다. 2025년 현재도 이 추세는 계속되고 있으며, 8월 말 평균 상승폭은 약 1.44℃, 특히 1월에는 1.64℃까지 치솟았다. 이러한 속도는 IPCC가 제시한 여러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 가운데 가장 비관적인 경로인 RCP8.5나 SSP5-8.5보다도 앞서가고 있다. RCP8.5는 현재 수준의 배출이 지속될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이고, SSP5-8.5는 화석연료 남용을 기반으로 한 미래를 상정한 시나리오다. 지금의 현실은 이들 '최악의 시나리오'조차 뛰어넘는 수준으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앞으로 전 세계는 폭염, 산불, 홍수, 가뭄, 한파와 같은 이상기후를 더욱 빈번하고도 강렬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겪는 기후재난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이미 기후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체계(climate regime)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심지어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무책임한 태도이자, 기후과학의 기본조차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주장에 불과하다. 지구온난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측은 수많은 연구와 데이터를 토대로 마련된 것이며, 그에 따라 제시되는 '적응'과 '완화'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실행해야 할 과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이자, 더 이상 미룰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윤리적 책무가 되었다. 특히 오늘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행동은 다음 세대의 삶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기후위기를 늦추고 완화하는 노력은 단지 현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에게 최소한의 안전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책임 있는 선택이다. 결국 기후위기 대응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세대 간 정의와 인류 공동체의 윤리를 시험하는 시대적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기자의 눈] 프랜차이즈 상장 흑역사 뒤집으려면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의 기업공개(IPO)는 정말 득보다 실이 많은 걸까. 요즘 프랜차이즈 상장사들의 소식을 보면 영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국내에서 순수 프랜차이즈 사업으로만 상장한 기업은 상장폐지 절차를 밟고 있는 선샤인푸드(구 디딤이앤에프)를 제외하고 '더본코리아'와 '교촌에프앤비' 정도다. 공교롭게도 두 기업은 가맹점주들과의 갈등 심화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 기업의 최근 주가 흐름은 회복세라지만, 여전히 공모가에 한참 못 미친다. 한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잘나가던 프랜차이즈 기업이라도 상장하고 나면 더 이상 점주 이익을 대변하긴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상장했다가 다시 비상장사로 돌아가는 기업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토종 버거 프랜차이즈 기업인 맘스터치는 지난 2016년 스팩 합병 방식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가 2022년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당시 맘스터치는 가맹사업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았고, 이를 주도한 일부 가맹점주에게 가맹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등 갈등이 극에 달했다. 물론 비상장사로 돌아간 맘스터치는 지난해 초 공정위 과징금 처분 이후 가맹점주와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의 대표 프랜차이즈인 모스버거의 운영사 모스푸드서비스는 지난 1988년 일본 도쿄거래소에 상장했다. 주가 변동폭은 매우 낮은 그룹에 속하지만, 지난 30년 간 무배당 기록은 없다. 모스버거는 전세계 1700개가 넘는 매장을 갖고 있는데 이중 80%가 가맹점이다. 모스버거에는 공영회(共栄会)라는 일종의 상생협의체가 있는데, 가맹점주는 공영회를 통해 신제품이나 프로모션 등을 본사와 함께 결정한다. 본사는 유통마진 대신 매출 기준 로열티 약 4~6%를 부과한다. 독특한 상생 모델 덕분에 일본 모스버거 점주 교체율은 연평균 2~3% 이하 수준이다. 나명석 신임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장은 취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최우선 과제로 '신뢰 회복'을 꼽았다. 일부 업계의 잘못된 관행들을 인정하고, 우리 프랜차이즈산업의 세계화에 힘을 싣겠다는 계획이다. 나 협회장의 바람대로 우리 프랜차이즈들이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K-푸드를 알리는 선봉장에 서기를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점주와 주주도 함께 웃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창조적 파괴’ 사라진 한국 경제…이유는?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필리프 아기옹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와 피터 하윗 브라운대 명예교수는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혁신 원리를 수리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제시했다. 아기옹-하윗 모형이 그것인데 핵심 메시지는 최적의 경쟁 환경에서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모형에 따르면 기업이 시장을 독점해 경쟁할 필요가 없거나 과도한 경쟁으로 혁신에 성공해도 초과 이윤을 장담할 수 없을 때는 공격적인 혁신에 나서지 않는다. 양 극단의 중간 지대에서 창조적 파괴의 동인을 얻는다. 가로축을 경쟁 정도, 세로축을 혁신 활동으로 놓고 봤을 때 역 U자의 비선형의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는 상식적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이 시장을 독점 또는 과점하고 있으면 굳이 혁신할 이유가 없다. 수익성이 떨어지면 공급을 줄여 가격을 높이면 그만이다. 경쟁이 심해도 공격적 혁신을 꺼리게 된다. 기업이 '창조적 파괴'를 목표로 신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려는 목적은 이윤 증대에 있다. 막대한 자금을 날릴 위험이 큰 데도 연구개발(R&D)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독보적인 기술로 미래 시장을 독점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너도나도 창조적 파괴를 기대하며 신기술에 투자하는 상황이다. 혁신 기술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면 기업들의 이윤 증대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R&D 투자를 줄이면서 혁신 활동은 역 U자의 하강 구간에 접어든다. 아기옹-하윗 모형은 한국 경제에서 창조적 파괴 수준의 혁신이 왜 어려운지 설명해 준다. 창조적 파괴가 이루어지려면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경제력이 대기업과 특정 산업에 집중된 상태라 경쟁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대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경제를 주도 하는 산업도 반도체와 자동차 등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적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 한두 곳의 실적이 추락하면 경제 전체가 휘청한다. 이처럼 한국 경제는 소수의 지배적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과점하는 구조가 고착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강자가 출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대기업도 혁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R&D 투자는 다른 세계적인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지만 대기업의 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동반하지 않는다.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창조적 파괴보다는 시장 지배력을 방어하고 유지하기 위한 '점진적 혁신'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범위를 국가 차원으로 넓혀도 그렇다.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R&D에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으나 이것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도 1970년대 산업화 초기에는 많은 혁신이 이루어졌다. 기업들은 신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해 시장 지배력을 높이려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창조적 파괴가 일어났다. 그때는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알 수 없는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아기옹-하윗 모형의 역 U자의 상위 구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기업들은 지금과 달리 창조적 파괴 수준의 혁신에 도전했고, 이는 대한민국이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이 됐다. 하윗 교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인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경제가 혁신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확고한 반독점 정책을 가지는 게 매우 중요하다. 혁신은 젊은 층에서 더 쉽게 일어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의 흐름이 개별 국가의 (고령화) 인구통계 변수에 의해 제한되지 않도록 다른 곳에서 오는 아이디어에 개방적이어야 한다." 소수 대기업이 아닌 청년 기업가들이 창조적 파괴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경쟁적 시장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석학들의 충고가 던지는 정책적 함의는 자명하다. 자본과 네트워크, 인재가 소수 대기업에 쏠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경쟁력과 매력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청년들이 대기업 입사에만 매달리지 않고 스타트업과 벤처를 설립해 창조적인 신사업에 도전할 수 있다. 대기업의 기술 탈취을 막고 모험 자본이 될성부른 신생 기업에 투자될 수 있도록 벤처산업 생태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미국처럼 인수합병(M&A) 시장을 활성화해 창업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대기업에 인재와 자원을 더 쏠리게 할 섣부른 규제 완화는 금물이다. 규제를 풀더라도 혁신을 유도할 경쟁 환경 조성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규제되지 않는 독점은 혁신을 방해한다." 하윗 교수의 이 말에서 '창조적 파괴'가 사라진 한국 경제를 구할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EE칼럼]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발언

현 정부가 원전산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는 원자력계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여러 차례 말 바꾸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과정에서는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는 기회있을 때마다 '실용주의'를 강조한 바 있다. 영광지역의 지방선거에서는 한빛원전의 계속운전이 실용적 선택임을 강조한 바 있으며 공약에서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조화'도 강조된 바 있다. 또 원자력이 아니면 성립되기 어려운 AI(인공지능) 산업의 발전 등을 공약했다. 따라서 원자력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정책, 실용적인 정책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지난 4개월 동안의 행보는 다시 탈원전정책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원전2기와 SMR 건설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들어서 처리해야 한다는 유보적 입장을 발표했다. 또 원전이 위험한 것은 사실이고 안전이 담보되어야 신규원전을 건설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신규원전 부지가 없기 때문에 원전건설이 어렵다는 주장도 한 바 있다. 또 신규원전 건설은 제12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였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도 원전건설에 15년이 필요한데 전력은 그보다 빨리 필요하기 때문에 원전건설이 어렵다는 얘기도 있었고 더불어민주당의 다수의 힘으로 에너지 부문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떼어내어 환경부로 보낸 것도 큰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발언들이 우려스러운 것은 아마추어적이라는 것이다. 에너지 부문을 총괄하는 장관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대해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정권에서 수립되었던지 현존하는 국가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미 공청회와 국회심의라는 과정을 통해서 국민의 의견을 들어서 수립된 제11차 전력수급계획에 대해서 국민의 의견을 다시 묻겠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주장이다. 물론 제12차 전기본에서 어떤 전원이 더 들어가고 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제12차 전기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제11차 전기본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현행 장관의 태도여야 한다. 물론 존중한다고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획에 따라서 이행을 하는 것까지가 존중이다. 신규 원전 부지가 없어서 원전건설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제11차 전기본에서 계획되어 있다면 그 부지를 확보해야할 책임이 있는 것이 장관이다. 본인이 장관인지 국회의원인지 헤깔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원자력 시설의 안전성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도 문제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위험하다고 느끼면 위험하다고 말해도 그만이다. 그러나 정부의 각료 그리고 특정 부처를 담당하고 있는 수장의 입장에서는 타 부처의 업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원전의 안전성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서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타 부처의 공무원은 자기 입장을 주장하면 안된다. 개인적 자리에서는 괜찮겠지만 공적 자리에서는 그런 주장은 안하는 것이 상식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판단하는 안전도 마찬가지이다. '원전의 건설과 운영으로 인하여 대중의 건강과 환경에 부당한 위험을 부과하지 않는다.' 이것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US NRC)의 안전철학이다. 즉 부당한 위험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당한 위험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그 정당한 위험은 사회구성원이 공감할 수준의 위험이어야 한다. 원전으로 인한 위험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위험총량의 1/1000 수준이하로 유지된다. 또 이 위험은 모든 위험이 아니라 대중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위험이다. 그 외의 사업상의 위험이나 종사자의 위험 역시 규제의 범위가 아니다. 국가는 국민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만을 고려하면 되는 것이다. 공인 특히 정부부처를 관장하는 장관은 타부처의 업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소관하는 것이므로 안전성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본인이 소관하는 제11차 전기본에 대해서 적어도 다음 계획이 수립될 때까지 존중해야 한다. 제12차 전기본에 대해서도 전기본 수립위원회가 미래의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필요한 전원공급계획을 수립하기도 전에 개인적 취향을 제시할 필요도 없다. 본인이 소관해야 할 원전 신규부지 마련에 대해 남의 일처럼 얘기해서도 안된다. 환경운동가는 아마추어여도 그만이지만 장관은 프로페셔널이어야 한다. 정범진

[기자의 눈] 친환경차 보급 확대, 전기차 외 선택지도 있다

우리나라 도로 위 '공기 질'이 점점 개선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동차 등록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EV)는 총 82만2081대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시점(63만5847대)과 비교해 30% 가량 증가한 수치다. 하이브리드차(HEV) 누적 등록 대수(237만5009대) 역시 전년 대비 30% 가까이 늘었다. 경유차(876만8995대)는 작년보다 5% 넘게 줄었다. 국내에 등록된 자동차 중 EV·HEV 비중은 지난 2015년 0.9%에 불과했다. 올해 8월 기준으로는 12.1%까지 올랐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제조사들도 적극적으로 신모델을 개발한 결과다. 문제는 정부의 친환경차 보급 정책이 지나치게 'EV 위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조금, 인프라 투자, 세제 혜택 등 대부분 측면에서 그렇다. H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구매 보조금은 없애면서 EV 지원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상용 부문에서는 혈세로 마련한 재원 중 상당수가 외국 기업에게 흘러간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EV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해야 하는 게 사실이다. 다만 이는 '탄소배출이 적은 전기'를 사용할 때 얘기다. 아직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EV도 탄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배출가스도 상당하다. HEV와 PHEV는 기존 내연기관 기술과 전기구동을 혼합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특히 장거리 운전이 많은 지역,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 겨울철 배터리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기후 등에서는 이들이 EV보다 친환경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주요국도 친환경차 '황금 비율'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양한 정책을 도입·폐기하고 실험적인 시도도 하고 있지만 한국처럼 'EV에 올인'한 경우는 드물다. 일본은 HEV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PHEV를 'EV 시대 교두보'로 여기며 관련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는 PHEV가 EV보다 대세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했다. 미국 역시 일부 주에서 PHEV에 EV에 버금가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산업의 관점에서도 기술의 전면 교체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EV에만 초점을 둘 경우 기존 내연기관 기반 부품업체·중소 협력사가 급격히 몰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HEV와 PHEV가 EV와 함께 육성될 경우에는 이같은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다. 정부는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송부문 토론회를 여는 등 앞으로 친환경차 보급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아예 제한하는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에 혈세를 과감하게 투입하는 이유는 '탄소 저감'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목적은 분명하지만 그 수단이 EV 뿐이라는 답은 아직 못 찾았다. 중장기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EV=친환경'이라는 단순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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