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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전력시장 지역 차등요금제, 소매 경쟁 없이는 허상이다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전력산업에 지역별 차등요금제 (LMP, Locational Marginal Pricing)도입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정작 법 통과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전은 LMP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법 시행을 앞두고 1년 간 하위 규정조차 마련되지 않아 제도가 표류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왔을 정도다. 독점기업 입장에서 자신에게 비용 부담만 지우는 정책에 저항하고 미온적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긴 하다. 사실 소매 전력시장의 경쟁화 없이 지역별 차등요금제라는 반쪽짜리 정책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한국전력이 모든 전력을 독점 판매하는 구조에서는 지역별, 시간대별로 미세 조정된 가격 신호가 불가능하다. LMP가 본래 목적으로 삼는 송전 혼잡지역 발전설비 회피, 효율적 입지선택, 계통관리 비용 절감 등은 가격 신호가 명확하고 세부적일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소매부분의 독점 판매 구조에서 그런 세부적 신호가 전달될 리 없다. 도매시장에서의 발전사업자도 미미한 가격 차등성만 보고 입지를 정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시장의 신호가 흐릿한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전 김동철 사장도 “LMP는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라며 정부 방침에 호응하는 발언을 내놓았지만 이러한 말과 계획은 행정수사(修辭)에 불과했다. 올 상반기로 예고됐던 도매 단계 LMP는 기약 없이 밀려났고, 구체적인 시장 시스템 개편이나 시뮬레이션 결과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실제 준비는 지지부진하며, KBS 등 언론에서는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와 수도권 반발 여론으로 LMP 도입이 미뤄지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과거에도 송전비용을 지역별로 약간 차등화하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끝내 흐지부지된 바 있다. 2013년에 발표된 에너지경제연구원 송전요금 차등안에서는 전국을 4개 권역으로 구분해 송전망 이용률에 따라 다른 요금을 부과하도록 했지만, 이조차 시장에 적용되지 못한 채 이론상 방안으로만 남았다. 독점체제에 익숙해진 관성과 정치논리가 개입되면, 어떠한 아이디어도 현실 장벽 앞에 좌초되고 만다. 지금 한전도 겉으로는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론 울며 겨자먹기 식일 것이다. 최근 보도를 보면 산업부가 분산에너지 특구에서 발전사업자와 소비자가 직접 전력을 거래(PPA)하도록 허용하려던 계획도 지연되고 있다. 당초 특구 내 무제한 PPA를 허가해 지역 자체적으로 전력 거래를 활성화하려 했으나, 중간에 “한전 상황을 고려"한다며 결정이 늦춰진 바 있다. 수도권 vs 비수도권의 이분법적 LMP를 시행한다고 해도, 고작 그 정도 반쪽 적용으로는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 애초에 지역별 차등요금제를 도입하려는 진짜 목적은 보다 정교한 가격 신호를 시장에 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를 두 덩이(수도권/비수도권)로 잘라 도매가격만 구분해본들,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비수도권이라 해도 지역별 발전원 구조와 수요 특성이 천차만별인데 일괄적으로 같은 SMP를 적용하면 내부 비효율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전과 석탄이 밀집한 동남권(경북·부산·울산 일대)과 태양광·풍력이 많은 서남권(전남·전북)은 공급 특성이 크게 다른데, 이 둘을 뭉뚱그려 동일 가격을 매긴다면 제대로 된 입지 신호가 나오지 않는다. 또 수도권이라 해도 경기 북부와 서울 도심의 전력사정은 다를진대 한덩어리로 처리해 버리면 미세한 계통 혼잡 비용이나 손실 비용을 반영하기 어렵다. 결국 현재 논의되는 3개 권역 LMP(수도권·비수도권·제주) 방식은 시작일 뿐, 궁극적으로는 노드별(발전기별) 가격차등에 근접해가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의미가 반감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반쪽짜리 LMP를 도입한다면 해봤던데 별거 없다는 식의 자조감만 들게 하고, 정책 취지는 사라진 채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만인 결과로 끝날 수 있다. 결국 지역별 전기요금제의 성공은 시장 원리로 돌아갈 용기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나 공기업이 행정 편의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면서 여기저기 민원을 무마하려 든다면 모든 제도는 시작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다. 어디까지나 정교한 시장 가격으로서 작동해야지,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관치 요금제가 되어선 안 된다. 즉 사실상 전력 소매판매 경쟁 시장을 전제로 해야만 의미를 지닌다. 독점이 지배하는 구도에서는 아무리 그럴듯한 메커니즘도 유령처럼 겉돌 뿐이다. 다양한 소매업체가 지역의 발전 및 전력 소비 패턴과 지역적 여건에 맞는 전력상품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지역별 차등요금이 실제 소비자의 행동 변화로 이어지고, 발전사업자 역시 입지선정과 투자를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선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형식적인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유종민

[증권가 레이더] ‘홈플러스 체납’ 책임이 NH투자증권?…논리 비약이 부른 오해

고려아연이 MBK파트너스를 향해 날선 비난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NH투자증권으로 불똥이 튀었다. 일각에서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으로 인한 농축산업계 피해를 NH투자증권의 MBK 차입매수(LBO) 자금 지원과 연결 짓고 있어서다. 지난달 한국농축산연합회는 성명서를 내고 “유가공 조합·업체의 경우 홈플러스로부터 40억~100억원의 납품 대금을 정산 받지 못하고 있다"며 “홈플러스의 대금 정산이 계속 지연되면서 일선 농협, 영농조합, 유가공조합 등 농축산물을 유통해야 하는 농축산업계는 큰 충격에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축산업계가 피해가 부각되자 MBK에 차입매수 자금을 지원한 NH투자증권에도 책임이 있다는 게 고려아연을 비롯한 일부의 주장이다. 농민들의 자금을 기반으로 한 NH투자증권이 사모펀드의 주요 자금원으로 등장한 점은 실망스럽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이 내용만 보면 마치 NH투자증권이 홈플러스의 대금 체납 사태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해석된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업계에선 홈플러스 사태와 NH투자증권의 차입매수 지원을 동일선상에 두고 보는 것은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NH투자증권의 MBK 자금 지원과 홈플러스 사태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홈플러스의 대금 체납 사태는 경영 부실에서 비롯된 사안일 뿐 증권사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증권사는 공개매수 과정에서 브릿지론을 제공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한다. 차입금은 브릿지론으로 주식 공개매수 등에서 활용되는 것으로 일반적인 차입 형태다. 이번 NH투자증권의 MBK 차입매수 지원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투업계에서는 NH투자증권이 이번 사태에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고려아연이 MBK와의 경영권 분쟁의 일환으로 NH투자증권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고려아연 입장에서도 과도한 여론전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불확실한 정보를 언론에 제공하면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기자의 눈] ‘대립’에서 ‘대화’로…주총장의 바뀐 공기

“주주들은 회사의 적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난달 시가총액 2조원 규모 코스피 상장사의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주주제안 안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회사를 믿고 투자한 소액주주들을 본인들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상장사들을 향해 진심을 전달한 것이다. 올해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렸다. 지난해 주총 시즌과 비교해보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 몇몇 상장사의 주총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소액주주들과 이사회가 치열하게 대립했다. 고성이 오가는 건 물론이고 물리적 충돌도 발생해 수십명의 경호 인력과 주주들이 대치하는 경우도 잦았다. 반면 올해 주총장의 공기는 달랐다. 이사회와 소액주주들이 치열하게 대립하기보다는 서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주주환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상장사들은 주주제안을 안건으로 상정하면서 주주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고 소액주주들 역시 사측을 공격하기보단 좀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움직였다. 액트 등 의결권 플랫폼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주주연대 활동이 자리를 잡으면서 주총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행동주의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주주연대의 힘도 커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주들 사이에서 낯선 존재였던 액트가 이제는 주주행동의 상징이 됐으니 말이다. 그 결과 방만경영을 일삼은 경영진을 주주들이 직접 해임시킨 사례도 등장했고 집중투표제 도입 등으로 주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했다. 시장이 발전하면서 주주들의 요구도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 전통적인 주주환원 방식에서 이사 선임 등 경영 개입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주주들은 물론 상장사들도 주주환원과 주주 권익 보호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도 주주들을 배척하는 기업들도 많다. 많은 기업들이 회사의 성장 저해 가능성, 소송 남발 우려 등을 이유로 상법 개정에 극구 반대표를 던지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올해 주총 현장에 불었던 변화의 바람이 일시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상장사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주주를 동반자로 여길 때 비로소 진정한 밸류업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이슈&인사이트] 국민연금 당면과제는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정치 기반 구축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2025년 3월20일 18년 만의 국민연금 모수 개혁안에 합의했다. 연금 개혁 관련 국민연금 중 모수개혁 합의문의 요지는 연금 보험료율은 기존 9%에서 13%(…26년부터 매년 0.5%씩 8년간)로, 소득대체율은 기존 40%에서 43%(…26년부터)로 인상하는 것이다. 이 합의안에 대해서 여야가 서로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한 것처럼 생색을 낸다. 겉으로 보면 국민의 미래세대를 위해서 여야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지만 30·40대 여야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이번 모수 조정안을 요약하면 당장의 보험금 혜택을 인상하고 후세대의 보험료율을 올리겠다는 것"이라며 “강화된 혜택은 기성세대부터 누리면서 부담은 다시 미래세대의 몫이 됐다"고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국민연금 개혁의 본질 문제를 외면한 채 추계의 통계적 오차범위에 있는 오십보백보의 개혁안을 갖고 별것이나 하는 듯이 시간을 끌어왔다는 주장이다. 개혁의 본질은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의 수익률 제고다. 국민연금공단은 2022년 수익률 –8.22%로 79.6조 원의 적자를 실현했다. 2023년에는 수익률 13.59%, 수익금 126.7조 원에 이어 2024년 기금 적립금 1,213조 원, 수익금 160조 원, 수익률 15%를 기록했다. 1988년 창립 이래 2024년까지 연간 평균 수익률이 6.82%다. 여기서 개혁의 본질을 발견한다. 대체 소득대체율 43%냐 44%냐라고 1%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 연간 평균 투자 수익률 1%를 어떻게 올릴 것인가를 본질적으로 논의할 때다. 2024년의 수익금 160조 원은 그해 지급액 40조 원의 4년분이다. 평균 투자 수익률이 1% 올라갈 때 기금 소진 시점은 5년 정도 연장된다. 개혁의 기본 방향은 첫째 기금운용에 대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지배구조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자산규모 기준 해외 5대 연기금(일본 GPIF, 캐나다 CPPIB, 미국 CalPERS, 네덜란드 ABP 등을 대상으로 지배구조와 의결권 행사 방식을 조사한 결과,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 소속인 경우는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둘째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의 전문성 문제다. 해외의 경우 기업·학계 출신 전문가들이 맡는다. 반면 한국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에 소속돼 있고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역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보면 임기를 다 채운 수장은 30% 내외다. 1988년 창립 이래 36년 동안 18명의 이사장이 취임하여 평균 재임 기간 2년이다. 이는 정권 교체 시마다 임기를 조기 마감한 결과다. 출신별로 보면 관료·정치인·군 출신이 대부분이다. 셋째가 기금운용 베테랑인 실장급 운용역들의 공백에 대한 우려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기금운영본부의 서울 이전이 필수적이다. 대체투자 전문가 등 관련 인재를 위한 적절한 인센티브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넷째가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포함한 투자 기법의 과학화다. 작년에 작고한 미 버클리대 수학박사인 사이먼의 르네상스테크놀로지는 이공학박사 등 퀀트들로 창립했다. 당사의 메달리언 펀드는 1988~2018년의 30년간 평균 수익률 39%를 달성했다. 국민연금은 일본 공적연금펀드, 노르웨이 국부펀드에 이어 기금 규모가 1,200조 원에 이르는 세계 3대 연기금이다. 이 기금이 고갈될 경우, 근로자는 월 소득의 1/4을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의 실패는 다음 세대에 대한 악몽이다. 본질적인 국민연금의 개혁을 위한 첫 단추는 국민연금이 미래 한국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한 국민 합의다. 최우선, 최소한의 과제는 “정치적 당리당략을 초월하여 국민연금 이사장만은 탁월한 전문가를 임명하고 임기를 보장하겠다"라는 여야 합의 선언이다. 윤덕균

[이슈&인사이트]국제화에서 지역전문가 육성과 특수외국어교육의 의미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한국유럽학회장 오늘날 한국은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2023년을 기준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전체 인구의 5%에 육박하는 250만 명을 넘어섰고,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의 외국인 유입이 혼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해당 국가와 다양한 형태의 전략적 협력이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신흥국들과의 교역을 확대하고 있는데, 이제 한국의 경제 협력은 유럽과 디지털 무역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면서도 남미 또는 아프리카 국가와는 자원을 개발하는 등 다면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대내외적 변화는 한국이 특정 국가나 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다자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를 낳는다. 한국의 대외관계가 다양한 국가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국가들과의 협력과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진정한 국제화는 사회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하여 부드럽고 조화롭게 대응하는 것이며, 그 전제는 사회 구성원의 포용력과 외국어 이해력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외국과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언어 교육은 주로 미국이나 일부 유럽 그리고 영어를 비롯한 몇몇 언어에 집중되었던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한국의 다면적 글로벌 협력 시대에 베트남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힌디어 등 다양한 언어 교육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다언어 구사 능력이 국제적인 맥락에서 중요한 역량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물론 간편한 통번역 서비스가 일상화되는 상황이지만, 특정 지역이나 외국어에 관한 전문 지식은 결정적인 순간에 전문가에게 의존해야 한다. 비록 그런 전문가가 극소수라고 하더라도, 극소수 전문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 예상하지 못하게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 사회는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위한 나름의 노력도 해왔다. 예를 들어 2016년 국회는 '특수외국어교육진흥법'이라는 법률을 제정하였고, 정부는 희소성이 높은 언어 교육을 활성화하고 언어 생태계의 균형을 도모하면서, 일반 대중들의 접근성도 열어주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이 추진되며, 표준 교육과정 구축과 산학 연계 인재 양성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특수외국어교육진흥법과 그에 따른 지원 사업은, 일반적으로는 한국에서 사용 빈도가 낮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언어라도 전략적인 이유에서 교육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언어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해당 전문가 육성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수외국어교육진흥법과 관련 정책은 희소가치를 지닌 언어를 학습하고 연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제공한다.한국 사회에서 절실하게 관련 전문가를 필요로 할 결정적 순간에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초 환경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국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이 국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특수한 언어와 해당 문화의 다양성 및 고유성을 보존하는 역할에 참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라오스어 또는 관련 전문가의 관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고려할 부분이다. 관련 국가와의 다면적 협력에 기반이 되는 지역 전문 지식과 언어는,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다. 특수외국어 관련 지역과의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는 외교망 확충, 공공기관과 기업 대상의 외국어 교육 확대, 전문 인재 양성을 지원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진흥 사업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도 연계되어 다양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포용과 국제 협력을 촉진할 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청년 실업 문제를 완화하는 등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지원하게 된다. 아울러 국가 경쟁력 강화와 지속 가능한 사회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봉철

[EE칼럼]태양광 산업의 발전에 필요한 것은

대개의 산업 분야에는 규모의 경제가 작용한다. 규모의 경제는 투입규모를 키워 생산량을 증가시킴에 따라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개별 기업들은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몸집을 불리고 몇몇 산업 분야에서는 소수의 기업에 의한 독과점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현대 산업사회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사회가 되었고 이를 위해 중앙집중형 관리체제가 발달해 왔다. 그러나 모든 산업 분야가 대량 생산과 관리 체제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산업 분야는 자연이나 사회 환경의 제약에 의해 다수의 소생산자가 참여하는 산업 생태계를 이루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벼농사가 대표적이다. 벼농사는 무논에서 짓는다. 호남평야의 대농이나 서산간척지의 현대농장 같은 경우는 기업 경영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1만평방미터 이하의 소농이 경작하였다. 각지에 산재하는 무논을 대규모로 경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주식인 쌀을 생산하는 벼농사는 자가 소비도 중요하다. 따라서 벼농사는 다수의 소생산자가 참여하는 산업 생태계가 유지되어 왔으며 정부는 소생산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소농을 보호하는 대표적인 정책이 쌀 수매 제도이다. 일제 강점기에 시작한 쌀 수매제도는 당초 부족한 쌀 수급을 위한 강제 공출이었지만 1970년대 이후 개량 품종에 의해 쌀 생산량이 늘어나고 수입이 강요되면서 생산비를 밑도는 쌀 가격을 보전하여 쌀 생산 농가를 보호하는 정책으로 운영되어 왔다. 농가의 입장에서도 수시로 변하는 시장 가격에 휘둘리지 않고 정부나 농협에서 일괄 구매해주는 방식이 가장 간편하면서도 유익한 제도였다. 현재 식생활의 변화와 쌀 생산량의 증대로 제도의 변화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일단 다수의 소생산자가 참여하는 산업에서 소생산자를 보호하는 제도로는 생산비를 보전하는 가격으로 정부나 공적 기관에서 일괄 구매하는 방식이 매우 효과적이고 유용하였다는 점을 기억하고 가자. 현재 산업 분야 중 다수의 소생산자를 참여시켜야 하는 곳이 바로 태양광 발전이다. 태양에너지는 모든 곳에 골고루 주어진다. 위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낮 시간 동안 지표면 1평방센티미터에 1분 당 1칼로리 정도의 태양에너지가 도달한다고 한다. 태양광 발전은 이렇게 지구에 주어진 태양에너지를 바로 전기에너지로 변환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태양광 발전이 확대되려면 보다 많은 소생산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모든 건물의 지붕과 옥상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야 하며 여유 공간을 가진 사람들은 작은 발전소를 세울 수 있다. 이렇게 생산한 전기는 자가소비도 하고 보다 많은 전기를 생산할 경우 한전에 판매할 수도 있다. 3~5kW 용량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집에서 쓰는 전기는 충당할 수 있다. 20~30kW 용량 이상의 태양광 설비를 할 수 있다면 발전사업자가 되어 한전에 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 대규모 토지가 있는 경우, 예를 들어 간척지나 유휴 염전 등에는 MW급의 대형 발전소도 설치할 수 있다. 새만금 간척지에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 단지가 들어서고 있으며, 전남 신안군이나 경북 봉화군의 경우 기획 단지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분양하거나 협동조합으로 참여하게 하여 주민 소득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태양광 발전 산업은 다수의 소생산자들이 참여하는 산업 생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소생산자들의 참여를 용이하게 하고 그리드 패리티에 도달하기 전에는 생산비를 보전해주는 것이 긴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2003년 기준가격의무매입제(FIT)를 도입하였다가 2012년 부터는 의무공급제(RPS)로 변경하여 재생에너지의 보급을 촉진해 왔다. FIT는 쌀 수매 제도와 같은 방식이다. 정부에서 규모에 따라 기준가격을 정해 한전에서 일괄 구매하는 것이므로 소생산자들이 참여하기에는 가장 편리한 방식이다. 그런데 RPS는 생산한 재생에너지 발전량에 따라 한국에너지공단에서 발급해준 인증서(REC)를 판매하여 생산자 스스로 수익을 내야 하는 방식이다. 이 인증서를 현물시장이나 계약시장에서 판매해야 하니 전업 발전사업자가 아니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에서는 이번에 RPS 제도를 폐지하고 지원 정책을 조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 태양광 발전의 균등화발전비용(LCOE)도 많이 낮아져 대규모 발전사업의 경우 프리미엄 가격 또는 차액지원 등의 형태로 입찰제를 실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규모 태양광의 확대는 이런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소생산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고 생산비가 보장되는 방식의 지원 정책이 아니라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3배 확대하겠다고 한 국제사회에서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산업 생태계에 대한 정부 당국의 균형 잡힌 시각이 절실한 까닭이다. 신동한

[기자의 눈] 재계 ‘민간 외교관’ 뛰는데 정치권은 ‘불구경’

“향후 4년간 미국에 210억달러 가량을 추가 투자하려 합니다." 지난달 25일(이하 현지시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백악관에서 한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대차가 미국에서 철강·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고 거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백악관에서 대미 투자를 발표한 기업인은 손정의 소트프뱅크 회장과 웨이저자 TSMC 회장 뿐이다. 우리나라 '민간 외교관'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같은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중국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제공상계 대표 회견'에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40여명을 초청했는데 이 회장이 포함된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관세전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중국은 조심스럽게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샤오미, BYD 등 현지 대표 기업 리더들과 회동하며 파트너십도 도모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소속 기업인들은 지난 2월 미국 워싱턴 D.C.를 찾아 '대미 통상 민간 아웃리치' 활동을 전개했다. 최태원 회장은 백악관 및 상·하원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한미 양국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 대응법을 모색하기 위한 경제단체들의 세미나·강연도 계속 열리고 있다. 민간 외교관이 이처럼 바쁜 것은 한국 경제가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내수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데 '무역 전쟁'에 휘말릴 위기다. 환율은 치솟고 금융 시장도 불안하다. 각국이 관세 장벽을 세워 수출까지 줄어들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직전 전망치보다 0.7% 포인트 내린 1.5%로 잡았다. 일부 해외 경제 분석 기관에서는 우리나라 성장률이 0%대에 머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권은 강건너 불구경 중이다. 12·3 계엄사태 이후 행정부 외교라인은 사실상 멈춰 섰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민감 국가' 명단에 포함시킨 사실을 두 달 동안 몰랐을 정도다. 국회는 민생과 경제는 저버린 채 '표심 잡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연초부터 추가경정예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정치 논리만 앞세우다 적기를 놓쳤다. 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한 이후에도 여야는 추경을 흥정 대상으로 보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일갈한 게 1995년이다. 30년이 지났다. 우리 기업들은 1류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치는 어떠한가? 대통령 탄핵 사태라도 빨리 수습되길 바랄 뿐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E칼럼] 국내 원전산업 확충의 절차적 타당성

지금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은 지난 12월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선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단이다. 조만간 그 판단이 마무리될 것이다.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재판도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관련자들에 대한 파면, 원래 지위로의 복귀(원복; 原復), 제도 개편 등 여러 조치가 예상된다.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저촉 범위가 그 내용과 범주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국내외 관련 전문가들이나 언론은 대통령과 고위 당국자들에 대한 탄핵 조치와 후행 조치들의 파급효과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특히 대외 교섭력 저하가 걱정스럽다. 국내정치 혼미가 지속 되어 외교 교섭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을 적지않다. 미국의 한국 민감국가 지정, 자동차·철강 관세 부과와 무차별적인 상호관세 부과 가능성 등이 대표적 후과(後果)의 사례이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민감국가' 지정은 공식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다만 미국 에너지부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조치라고 확인했다.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 은 국가안보와 공급망 보호를 목적으로 특정 국가와의 기술 및 에너지 협력을 제한하는 정책이다. 특히, 첨단 기술, 반도체, 에너지, 원자력, 방산 등 전략산업 관련 분야에서 미국 기업과 연구기관들이 '민감'국가들과 협력할 때 추가적인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미국 관련 연구기관 및 기업과 협력할 때 추가적인 승인 절차가 필요해지는 등 실질적인 제한이 발생할 수 있다. 여기다 우리 정부가 이런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논란을 더 키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식수준을 초월하는 위험요인들이 최근 원자력 부문을 중심으로 빈번하게 발생하여 걱정이다. 그 첫 번째 사례로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그동안 공들여 온 유럽의 네덜란드 신규 원전사업 수주 포기일 것이다. 최근 마무리한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지재권) 분쟁 협상 때문이란 의견도 많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비밀이지만, 최종 계약단계인 체코 원전사업 이후에는 유럽 수주는 웨스팅하우스가 주도하고, 한국은 중동·동남아 등 수주에 집중하는 식으로 합의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 경우 한국 기업만으로 구성된 원전 수출 '팀 코리아' 추진에 구조적 장애가 생긴 셈이다. 한수원이 유럽 원전 수주 중단 선언을 한 건 지난해 말 스웨덴과 지난 2월 슬로베니아에 이어 벌써 세 번째이다. 이제 우리 원전산업의 대외경쟁력을 냉정히 평가하고 효율적 대책강구가 시급하다. 솔직히 우리는 민감한 원전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통제하는 능력은 아예 없거나 제한적이다. 그 대신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자재 제작, 조달, 건설 부문과 완공 후 유지·보수 분야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60년대 이후 원자재와 원천기술 수입- 효율적 가공조립 – 적기적소 납품을 통한 글로벌 공급체인 내에서 대체 불가한 위치 선점이라는 우리 성장정책의 요체는 원전부문에도 적용된다. 이에 따라 미국의 상류 부문(원천기술 개발 및 통제, 해외시장 개척, 금융, 핵연료 조달) 경쟁력에 의존하는 호혜적 보완관계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왔다. 우리 정부는 여러 지원과 통제수단을 통해 지속적인 원전 건설과 '예산 범위 내 적기 완공'이라는 우리 고유 원전 경쟁력 확보에 성공하였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전체 발전량의 40% 정도를 원전에 우선 배정했다. 연구개발(R&D) 투자도 비교적 충분했고 미국 스리마일, 일본 후쿠시마 등 원전 사고의 악영향의 국내 파급을 차단하였다. 원전기기 및 부품산업에 대한 전략적 지원도 계속했다. 이에 따라 세계 최고 수준의 기기 조립 및 시공능력 확보가 가능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이 그 첫 번째 산물이다. 건설단가는 중국보다 낮고 선진 경쟁국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러나 장기 특혜 성장은 항상 비효율을 동반한다. 원전 '마피아'라는 비난이 아직 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도 무조건 원전 확대와 지원확충만을 요구하고 있다. 원전사업 특성상 단임 정부 임기 내에 대폭적 비중 상승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이에 장기전원개발계획 등을 통한 속칭 '알박기'를 계속 시도한다. 또 다른 정치이념 창출을 시도하는 셈이다. 원전 수출의 관건은 미래 원전기술 확보와 원활한 금융조달 능력이다. 그런데 이 두 부문은 우리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UAE 원전 수출은 지급보증능력 부족으로 최종계약이 5년쯤 지연됐다. 우리 대신 UAE 재무부가 자국 원전회사에 지급보증했다. 물론 공짜가 아니었다. 그러니 수출 이득은 거의 반 토막 나고 장기 운전·보수 수익도 불명확하였다. 따라서 향후 원전 수출 위험은 상상외로 커질 수 있다. '남지 않는' 원전 수출일 수도 있다. 특히 원가 개념이 우리와 다른 사회주의 원전수출국(러시아, 중국)과의 경쟁이 걱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료, 자동화, 시스템설계 전문성을 보완하는 것이 시급하다. 일부나마 정치화한 기존 인력 참여에는 신중해야 한다. 한·미 원전동맹 내실화 수단의 재점검은 당연하다. 여기서 우리는 국내 에너지시스템에서 원전과 신재생전력 간의 갈등 고조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상호 모순적인 내용을 가진 '에너지3법'의 지난달 국회 통과이다. '에너지3법'이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특별법),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특별법),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해상풍력특별법)이다. 특히 '해상풍력법'은 우리 전원 구성의 2대 발전원인 원전과 풍력 간의 이해 상충을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원 간의 경쟁상황은 2038년까지 적용되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도 알 수 있다. 인공지능(AI)이 촉발한 산업 변화로 2030년 우리 전력수요는 2023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한다. 이에 따른 발전원 구성은 원전 31.8%, 석탄 17.4%, LNG 25.1%, 신재생 21.6%, 수소/암모니아 2.4%이다. 이런 구성의 특징은 무(無)탄소 신규발전이다. 2038년 발전량 중 무탄소 비중이 70%에 달한다. 특히 태양광·풍력은 '30년까지 '22년 23GW 대비 3배 이상인 72GW 수준에 달할 것이다. 이에 반해 신규 대형원전은 4.2GW(3기) 수준 증설에 그친다. 이러한 무탄소 설비 우선적 고려는 건설비가 6조 원 이상 더 들고 전기 요금은 매년 3,835억원 늘어날 것이라고 국회 사무처(전력수급기본계획 전략환경영향평가서)는 분석하였다. 우리 원전산업의 구조 조정기가 도래한 것인가? 원전부문 인력의 창의적 지적능력이 소진된 것인가? 다만 우리 국리민복에 부응하는 원전산업 구조조정의 절차적 타당성을 점검하고 국민을 설득할 인재가 나타나기를 빈다. 알박기와 자화자찬은 이제 지겹다. . 최기련

[기자의 눈] 급격한 전력시장 변화 바람, 부작용 최소화해야

전력산업이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탄소중립 정책과 재생에너지 확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거진 국제연료비 급증과 이에 따른 한전의 적자 심화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지속되었고, 정부는 두 해 연속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제조업을 비롯한 대규모 산업 고객들은 비용을 절감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전력직접거래라는 방법을 통해 한전을 이탈하려 하고 있다. 지난 28일 전기위원회에서 전력직접거래를 위한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제 다수의 대규모 제조 기업들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도매시장에서 직접 전력거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기에 막을 방법은 없다. 제조업 중심인 한국에서 기업들이 전기요금 인하 방법을 찾는 것은 필연적이다. 산업용 전기소비가 전체의 절반 이상인 만큼 전력산업 개방 요구도 계속돼 왔다. 하지만 앞으로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뿐만 아니라, 기존 소비자들의 권익 침해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산업부에서 올린 개정안에는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조만간 시행될 송전제약 PPA(전력구매계약) 고시로 인해 송전제약 지역에서는 용량과 관계없이 직접거래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여기에 발전사들도 한전을 거치지 않는 구역전기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상반기 분산에너지특별구역 지정까지 더해지면 산업용 전기 고객들의 이탈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산업용 고객들이 새로운 조치들을 통해 한전에서 이탈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지만, 전력당국이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산업용 고객의 대규모 이탈로 인해 한전의 적자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결국 요금 정상화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산업용 전기를 제외한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 다변화 문제도 얽혀 있어 향후 시장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 산업용 전력 소비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한전의 지속 가능한 운영 방안을 고민해야 하며, 일반 소비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균형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력시장 선진화는 단순한 직거래 활성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안보,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안정성 등 다양한 요소들과 맞물려 있는 복잡한 문제다. 전력당국은 급격한 변화가 초래할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이슈&인사이트] 이웃을 거지로 만들고 있는 무역정책

국제무역학에서는 관세에 대해 혹평하는 이론이 주를 이룬다. 대표적으로 관세전쟁의 결과는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는 이웃궁핍화 전략(Beggar-thy-neighbor)이 대표적이다. 이웃궁핍화란 경제정책이나 무역정책을 통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높이는 대신 다른 국가의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는 전략을 뜻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정책은 관세부과, 자국 통화가치 평가절하 등의 보호무역정책을 들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이 발발하자 각국이 자국 경제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통화가치의 경쟁적 평가절하와 관세인상 정책을 사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정책이 확산되었으며 이는 결국 국제무역 축소와 세계경제 침체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대통령이 추진 중인 관세정책은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등에 25%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에 부과된 타국의 관세 수준에 따라 보복성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그의 메시지는 무역갈등을 넘어 무역전쟁으로 확산될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관세정책은 과거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준 이웃궁핍화 정책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이는 주식시장 뿐만 아니라 경기전망에도 여실히 반영되고 있다. 과거 그랬듯이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선언한 대로 실행되어 버린다면 결국 각국의 보복관세와 무역축소, 글로벌 경기침체라는 악순환을 초래하는 경로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트럼프식 보호무역이 지속될 경우 글로벌 무역은 급격히 위축될 것이며 생산비용 상승과 소비자 가격 인상, 기업들의 투자 위축이 연쇄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 3월 발표된 미국의 소비자심리지수에서 향후 5~10년간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이 40년만에 4%를 상회하게 된데에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지속되면 글로벌 경제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고 앞다투어 경고하고 있다. 특히 세계 각국이 대응 관세로 맞서기 시작하면 무역 전쟁이 현실화되고, 이는 결국 글로벌 경기침체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흔들리는 세계경제 속에서도 미국경제는 안전할 것인가? 단기적으로 일부 산업은 관세 덕분에 성장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물가 상승과 주요 수출산업 타격,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관세의 부담은 미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작용하여 소비를 위축시키고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될 것이다. 미연준조차 미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경고하며 통화정책의 조정을 시사하는 상황이다. 아틀란타 연방준비은행이 매일 발표하는 GDPnow는 연일 –3~4% 성장전망을 내놓고 있다. 결국 관세정책의 득보다 실이 더 클 가능성이 높으며 미국경제도 예외 없이 글로벌 경제의 부진에 따라 경기침체나 둔화의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경제 역시 이러한 국제적 갈등과 무역긴장 속에서 선의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GDP 대비 수출의존도가 약 40%에 달하는 고도의 개방경제 국가로서, 글로벌 경기 위축은 곧바로 한국의 주요 수출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의 수요감소를 초래한다. 특히 미국의 고율 자동차 관세는 현대차, 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최근 현대차의 대규모 미국 투자계획 발표는 관세폭탄의 위험을 어떻게든 피하려는 노력이라고 본다. 또한, 트럼프 1기에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다시 한국의 수출 감소와 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악의 순환고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은 자국경제 보호라는 명목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세계 각국이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 속에서 이미 증명된 바 있으며, 다시 한번 국제적 협력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하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처한 상황에서 산업의 체질을 고도화하는 구조개선과 동시에 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하는 것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무역분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장기적 방안이 될 수 있겠다. 또한 이러한 분위기에서 주요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외교적 노력의 중요성도 크게 부각될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러했듯이 우리나라는 강대국들의 분쟁 속에서도 살아남는 모습이 되길 바란다. 문득 영화 인터스텔라 속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세계의 종말이 우리의 종말이 될 수는 없다."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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