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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항공대 서인원 교수 “항공사 옥죄는 ‘규제’는 결국 소비자 권리 저해”

[인터뷰] 항공대 서인원 교수 “항공사 옥죄는 '규제'는 결국 소비자 권리 저해" 국제 항공 여객 운송은 태생적으로 다수의 국경과 관할권을 횡단한다. 1929년 제정된 바르샤바 협약과 1999년 제정된 몬트리올 협약은 국경을 넘나드는 항공운송을 통일적으로 규율하며, 항공법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 규제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5월 바하마 나소에서 열린 제4차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민간 항공 법률 자문가 포럼(CALAF, Civil Aviation Legal Advisers Forum)을 관통한 최대 화두는 단연 '항공 승객 보호 규제의 파편화' 문제였다. 유럽연합(EU)의 통일 규정(EU 261)을 필두로 캐나다의 '항공 승객 보호 규정(APPR, Air Passenger Protection Regulations)' 등 이른바 '위하적(威嚇的, 위협해 억제하는) 규제' 성격을 띤 내국법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혼돈 속에서 서인원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정책대학원 전공 주임 교수의 비판적 관점이 주목받고 있다. 서 교수는 겉보기에 승객의 권리를 단숨에 향상해 줄 것 같은 위하적 규제가 실제로는 치명적인 모순을 품고 있다고 비판한다. 과도한 배상금을 피하기 위해 결함 징후 앞에서도 무리한 운항을 강행하게 만들어 항공업계 제1원칙인 '안전 최우선주의'를 흔들 여지도 없지 않다. 특히 서 교수가 가장 강하게 경고하는 대목은 '소비자 후생의 역설'이다. 불어난 규제 준수 비용은 결국 항공권 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대다수 선량한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고, 수익성이 낮은 지방 취약 노선을 단항시켜 종국에는 소비자의 선택권마저 앗아간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이러한 위하적 규제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착각해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위하적 규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강조하는 한국항공대학교 서인원 교수와 만나 국제 항공 사법의 딜레마와 대한민국 항공 정책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물었다. - 최근 바하마에서 열린 '제4차 CALAF'를 지켜봤다. 이번 포럼에서 가장 주목한 주제는 무엇인가. “총 9개 패널 중 사법학자인 내 이목을 가장 집중시킨 것은 패널 5의 '항공 승객 권리 입법의 거대한 물결과 글로벌 파급력 - 파편화에서 규범 조화로'라는 주제였다. 최근 유럽연합의 EU 261이나 캐나다의 APPR 등 항공 승객 보호 규제가 개별 내국법으로 제·개정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법이 찢어지고 파편화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로 인한 관할권 충돌·규제 중첩·역외 집행 한계 등의 혼란을 어떻게 국제적 규범 조화로 이끌어낼지가 핵심 논의 대상이었다." - 해당 포럼의 국제적 논의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전제 조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논의는 이미 주권국이 위하적 승객 보호 규제를 내국법으로 전면 도입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성립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위하적 규제를 전면 도입하지 않은 상태다. 국내 일부에서는 세계적 흐름이라 여기며 서둘러 제재를 도입해 기준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최신 입법례인 캐나다의 APPR이 노정한 모순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고 우리 실정에 맞는지 냉철하게 재검토하는 비판적 과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 심층 분석한 캐나다의 APPR은 기존의 국제 항공 협약과 어떤 본질적 차이가 있나. “1929년 바르샤바 협약이나 1999년 몬트리올 협약은 항공기 사고라는 비상적 상황에서 항공사 책임의 가능 최대한을 정했다. 반면 2018년 도입돼 개정을 거듭하는 캐나다 APPR은 지연이나 취소 같은 일상적인 항공편 차질 상황에서 항공 운송인이 져야 할 필요 최소한의 책임을 강제한다." - 그렇다면 APPR이 보호하고자 하는 핵심 법익과 승객을 돕는 구체적 장치는 무엇인가. “최우선 법익은 계획된 일정에 따른 운송의 완료 그 자체다. 이 목표와 상충하는 지연·취소이나 탑승 거부·타막(Tarmac) 지연 등의 발생 시 폭넓게 적용된다. APPR은 승객에 대한 권리 고지를 강력히 의무화해 탑승 수속 창구·키오스크·디지털 매체 등에 권리를 현출해야 한다. 특히 교통 약자를 배려해 장애인 요청 시 점자나 큰 활자체 문서로 제공하도록 세심하게 규정했다." -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승객을 위한 디테일한 좌석 배치 규정도 눈에 띈다. “아주 엄격하다. 항공사는 14세 미만 미성년자의 발달 단계를 고려해 성인 동승자와 인접하게 자리를 무상으로 배치해야 할 법정 의무가 있다. 만 5세 미만은 바로 옆 좌석, 6~11세는 동일 열, 12~13세는 앞뒤 열에 앉혀야 한다. 만석으로 배치가 불가한 상황이라면 탑승 수속부터 비행기 이륙 전까지 자리를 교체해 줄 자원자를 적극적으로 수소문해야만 한다." - 규모나 차질 원인에 따라 항공사에 책임을 묻는 기준은 어떻게 세분화돼 있나. “최근 2년 기준 매해 200만 명 이상 승객을 운송했는지 따져 대형과 소형 항공사를 엄격히 구분한다. 소형사가 대형사를 대리해 운항할 경우에도 실제 운송을 맡은 소형사는 대형항공사와 동일한 책임을 진다. 항공편 차질은 3가지로 일별한다. 첫째는 기상 악화·전쟁 등 '항공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둘째는 조종사가 안전 관리 시스템(SMS, Safety Management System) 등에 근거해 내린 '안전상 필요한 상황', 셋째는 초과 예약이나 기체 결함 등 '항공사가 통제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이다. 현행 제도는 이 세 번째 상황에 엄격한 배상 책임을 묻는다." - 초과 예약으로 인한 탑승 거부 발생 시 모든 피해 승객이 보호 대상이 되나. “아니다. APPR은 정상적 탑승객을 산정할 때 단순한 항공편 예약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예약 확인이 이뤄진 상태에서 예정된 탑승 시간에 유효한 서류를 항공기 탑승구에서 실제로 제시한 승객만이 정상적 탑승객으로 인정돼 권리를 보호받는다." - 표면적으로는 승객을 위한 제도 같은데 학자로서 강하게 비판하는 가장 큰 한계점은 무엇인가. “첫 번째 한계는 불명확성이다. 앞서 언급한 3가지 차질 상황이 현실에서 칼로 무 자르듯 일도양단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항공사들이 배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대다수의 차질을 상황 2(안전상 필요한 상황)로 포장해 규제를 회피하려는 딜레마가 발생했다." - 위하적 규제 방식이 항공의 최우선 가치인 '안전'과 상충한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항공 운송에서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는 생명과 직결된 안전이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피하기 위해 결함 징후 앞에서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며 무리한 정시 운항을 강행할 경제적 유혹을 받을 수 있다." - 기업을 옥죄는 엄청난 규제 준수 비용이 종국에는 '소비자 후생'을 해친다고 꼬집었다. “이것이 가장 궁극적인 문제이다. 민사상 계약 영역에 머물던 권리·의무 관계를 강력한 내국법 규제로 끌어들이면서 천문학적인 비용이 파생된다. 캐나다 산업계는 추정치의 10배 이상 비용이 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폭증한 규제 준수 비용은 영리 기업 내부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결국 항공권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수익성이 낮은 지방 노선은 위험을 감당하지 못해 아예 단산돼(운항 중지) 소비자 접근성 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 있다." - 전 세계적 흐름을 명분 삼아 우리나라도 서둘러 강력한 위하적 규제를 전면 도입해야 할까.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거듭 경고한다. 가장 두려운 결과는 항공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 파괴다. APPR은 차질 발생 시 식음료·데이터·숙박·대체 항공편 등을 항공사가 의무 제공토록 강제한다. 부가 서비스가 없는 저비용 항공사(LCC)나 대체편 여력이 부족한 신생 항공사에 위하적 규제를 부과하면 결국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생태계가 망가지고 소수 대형사만 살아남아 독과점 시장이 형성되면 그 막대한 피해는 오롯이 소비자가 떠안게 된다." - 제재를 가하는 위하적 규제가 지연이나 결항을 눈에 띄게 줄여주는 억지 효과는 증명됐나. “정량적 통계가 그러한 환상을 깬다. 캐나다 보다 훨씬 앞선 2004년에 선도적으로 강력한 규제인 EU 261를 도입한 유럽연합의 장기 통계를 분석해 보니 10년이 지난 후에도 60분 이상 지연이 3.9%, 취소가 1.5% 수준에 머물렀다. 위하적 규제가 실제 항공편 차질 억지에 유의미한 변화를 전혀 끌어내지 못했다." - 마지막으로 정책 당국과 입법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위하적 규제가 전 세계적 흐름이라 생각하고 이것을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검토 없이 국내에 도입되는 것은 매우 경계해야 한다. 계약으로 해결될 수 있으면 계약으로, 자율규제로 해결될 수 있으면 자율규제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 위하적 규제는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 신중히 도입되어야 한다. 항공사를 수범자로 하는 위하적 규제가 만병통치약이 될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후생을 저해하지 않을지 찬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ICAO 정규예산 분담금 7위, 항공운송량 8위를 자랑하는 전 세계적 항공강국이다. 다른 나라의 위하적 규제를 무비판적으로 계수하는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정책적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이슈&인사이트] AI 투자, 월가와 미 정부가 멈출 수 없는 이유

인공지능이 몰고 올 미래를 두고 두 가지 역사적 비유가 맞선다. 1차 산업혁명의 방직 기계는 생산성을 혁명적으로 끌어올렸지만 그 과실은 공장주에게 집중됐고 숙련공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반면 2차 산업혁명의 철도와 전기는 초기 투자 거품이 꺼진 뒤 운송비를 폭락시키고 모든 산업의 혈관이 되어 시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AI가 어느 길을 걸을지는 단순한 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배분의 정치경제학에 달려 있다. AI가 인플레이션을 잡고 금리를 낮추려면 기술이 소수 거대 기업의 전유물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체로 번져야 한다. 중소 제조업체의 공급망을 최적화하고 지역 병원의 행정 비용을 낮추고 항만 물류의 병목을 풀어내는 범용 기술로 진화할 때 비로소 경제 전체의 총공급이 확대되며 구조적 물가 하락 압력이 발생한다. 결정적 변수는 접근성이다. 오픈소스 생태계가 살아나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수요 예측 모델을 돌릴 수 있게 되면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소비자 가격 하락으로 스며든다. 반대로 몇몇 빅테크가 독점적 모델로 시장을 장악하면 생산성 증가분은 주주 배당에 갇히고 거시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진다. 그런데 지금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는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연준이 20여 년 만의 고금리로 긴축하는데도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연간 수백조 원을 AI 데이터센터에 쏟아붓는다. 본래 고금리는 장기 투자에 독이지만, 월가 은행권의 이해관계가 이 흐름을 떠받치고 있다. AI 생태계는 고금리 한파 속 거의 유일한 핫 마켓이다.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사모대출, 부동산 유동화 증권 발행, 스타트업 투자 자문까지 AI 벨류체인 전체가 은행들의 수수료와 이자 이익을 떠받치는 거대한 자금 회로로 작동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 붕괴 이후 벤처캐피털의 초기 자금이 마른 자리를 은행권 신용이 메우며 고금리에도 기술 인프라에 과잉 투자되는 기묘한 균형이 유지되는 이유다. 한국 반도체 산업도 여기에 깊숙이 얽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은 결국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속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HBM을 비롯한 AI용 반도체 수요는 빅테크의 CAPEX 사이클과 직결된다. 은행권이 AI 투자를 외면하지 못하는 것처럼, 한국 반도체 주식의 밸류에이션 또한 이 거대한 자금 회로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고금리 압박으로 하이퍼스케일러들이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선다면 그 충격은 반도체 라인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 강력한 플레이어인 미국 정부의 셈법도 맞물린다. 국가 부채는 34조 달러를 넘겼고 연간 이자 비용만 국방 예산을 추월했다. 이 빚더미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출구는 명목 성장률을 금리보다 높게 유지해 부채 비율을 희석시키는 길이다. AI는 '고성장-저물가'라는 방정식을 풀 유일한 열쇠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생산성 혁명이 완성될 때까지 이 실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데이터센터가 굶주리지 않도록 전력망 확충과 신규 원전 인허가를 밀어붙이고, 중소기업의 AI 도입에 세액공제를 확대해 기술 파급을 의도적으로 촉진하려 들 것이다. 결국 이 거대한 흐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월가 대형 은행들은 AI를 사실상 유일한 수익 파이프라인으로 삼아 고금리 시대의 돌파구를 찾고 있고, 미국 재무부는 천문학적 국가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AI 기반 생산성 향상 말고는 마땅한 시나리오가 없다. 은행의 이익 증대와 미국 정부의 부채 부담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가 AI 투자의 지속을 강제하는 셈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기술 버블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과 패권국의 재정이 한 방향으로 정렬된 정치경제학적 필연에 가깝다. AI 투자는 살아있다. bienns@ekn.kr

[EE칼럼] 한 나라, 두 재난 : 물폭탄과 불볕더위가 동시에…

“It never rains but it pours." 영어권에서 널리 쓰이는 이 격언을 직역하면 “비는 오기만 하면 퍼붓는다"는 뜻이다.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상황을 비유할 때 흔히 사용된다.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기후위기의 가혹한 속성을 이보다 더 날카롭게 관통하는 말도 드물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토 면적이 그리 넓지 않다. 고속열차를 타면 불과 몇 시간 만에 끝에서 끝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이 좁은 땅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같은 계절이면 전국이 비슷한 날씨를 공유하는 것을 당연한 상식으로 여겨왔다. 장마철에는 전국에 비가 내리고, 한여름에는 전국이 함께 달아오르는 식이었다. 그러나 가속화되는 기후변화는 우리가 수십 년간 신뢰해 온 이 자연스러운 상식을 완전히 깨뜨리고 있다. 이제는 같은 시각, 같은 나라 안에서 홍수와 가뭄이, 폭우와 폭염이 동시에 교차하는 기이한 시대가 도래했다. 대표적인 신호탄이 2022년 여름이었다. 당시 서울에는 시간당 141.5mm라는 기상관측 이래 최대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중부지방 전체가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다. 1942년 이후 80년간 깨지지 않았던 1시간 강수량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 반면 같은 시기 남부지방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광주와 전남 지역은 그해 내내 기상관측 사상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고 여름인 8월에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2022년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64%에 불과했고, 농업용 저수지 저수율은 평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나라의 절반은 물이 넘쳐 도시가 잠기는데, 다른 절반은 물이 없어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걱정해야 했던 것이다. 과거의 기상학적 상식으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대비였다. 이러한 현상은 이제 일회성 이변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지난 7월 중순에도 중부지방과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경북 북부에는 주민 300여 명이 긴급 대피할 정도로 물폭탄이 투하됐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순간 기상청이 발표한 특보 현황이다. 경상도와 충청도에는 호우특보가 발령된 반면, 불과 200km 남짓 떨어진 전남과 광주에는 폭염특보가 내려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물난리를 막으려 모래주머니를 쌓고, 다른 한쪽에서는 뙤약볕을 피해 무더위 쉼터로 향하는 모순적인 현실이 동시에 펼쳐진 셈이다. 이 두 사건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의 공간적 편차가 극대화되고, 상반된 극한기상이 한반도라는 좁은 틀 안에서 동시에 표출되는 '새로운 기후체제(New Climate Regime)'의 개막을 알리는 엄중한 경고다. 이제 “전국이 차차 흐려져 비가 오겠다"거나 “전국에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겠다"는 식의 평면적인 표현만으로는 현재의 역동적인 날씨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변화는 단순히 온도가 오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폭염과 집중호우의 빈도와 강도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커졌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장마의 모습, 강수 형태의 공식마저 무너졌다. 가을과 겨울은 짧아지고 여름은 비대하게 길어지고 있다. 지난 30년의 평균치인 '기후평년값'이 더 이상 현재의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며, 산불이 대형화·연중화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모든 변화 중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전선에서 위협하는 쌍두마차가 바로 폭염과 집중호우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국가 재난 대응체계가 여전히 '하나의 시점에 하나의 재난'을 처리하는 선형적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집중호우가 시작되면 모든 행정력과 관심은 홍수 방어에 쏠리고, 폭염이 이어지면 그제야 온열질환 대책에 집중한다. 그러나 기후재난은 더 이상 친절하게 순차적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이제는 중부지방의 배수펌프장 가동을 점검하는 동시에, 남부지방의 취약계층 냉방시설과 응급의료체계를 점검해야 하는 시대다. 서로 다른 형태의 재난이 한 화면에 동시에 잡히는 '복합재난'으로 진화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 방재의 패러다임도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첫째, 재난 대응 기조를 전국 단위의 동일 기상환경 관점에서 탈피하여, 지역별로 상이한 위험 요소를 실시간으로 분리·관리하는 다원적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 둘째, 정부와 지자체, 특히 중앙정부는 호우와 폭염을 별개의 매뉴얼이 아닌 '하나의 통합된 복합재난 시나리오' 안에서 설계해야 한다. 같은 날, 같은 행정망 안에서 홍수 통제와 가뭄·폭염 대책이 유기적으로 동시 가동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기상정보 역시 단순한 수치 예보를 넘어 특정 지역에 어떤 위험이 중첩되어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복합위험정보'로 진화해야 한다. 국민 또한 내 지역뿐만 아니라 타지에 있는 가족의 안전까지 입체적으로 살피는 인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과거의 경험적 데이터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기후변화의 속도에 맞춰 도시계획, 하천정비, 수자원 관리 정책의 설계기준을 전면 상향해야 하며, 재난대응 매뉴얼 역시 복합재난을 상정하고 재작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첨단 기상관측망과 수치예보 기술, 그리고 예보관 역량 강화에 대한 중장기적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생산된 고도 기상정보가 지자체와 국민에게 가장 신속하고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도달하는 전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단순한 질문을 보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폭탄과 불볕더위 중 무엇에 더 집중할 것인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기후위기는 이미 불편함의 영역을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되었고, 그 핵심은 여러 재난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하는 복합성이다. 어떤 시점에 폭우와 폭염 중 하나만 선택해 순차적으로 방어하겠다는 안일함은 통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이미 그 두 가지 거대한 재앙을 양손에 동시에 쥐고 싸워야 하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새로운 준비만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유일한 열쇠다.

[기자의 눈] CEO 임기까지 정하는 금융당국…지배구조 개선인가, 관치인가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의 장기 연임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개선안에는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CEO 후보 검증 절차 개선, 성과보수 체계 개편 방안도 담긴다. 금융사고 발생 시 임원의 성과급을 환수하는 클로백(Clawback) 제도와 임원의 개별 보수를 주주총회에서 심의하는 세이온페이(Say-on-pay) 도입, CEO 후보 검증 기간 확대와 이사회 심의 과정 공개 등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클로백, 세이온페이 도입, CEO 후보 검증 절차 개선 등은 금융회사의 책임경영을 높이는 측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 하지만 CEO의 연임 횟수까지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성격이 다른 문제다. 특정 인물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막고 이사회의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금융산업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필수 과제다. 금융당국도 그동안 금융사고 발생 시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고 승계 절차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꾸준히 강조해 왔다. 문제는 방법이다. CEO의 연임 여부는 경영 성과와 기업가치, 주주들의 평가가 종합적으로 반영되는 사안이다. 이사회가 후보를 검증하고 주주총회가 최종적으로 신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기업지배구조의 기본 원리다. 그럼에도 일정 횟수 이상 연임을 사전에 제한한다면 정부가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 자율성에 개입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번 개선안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장기 재임이 이어질 경우 견제 장치가 약화되고 조직이 폐쇄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장기 재임 자체를 문제로 보는 접근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중요한 것은 재임 기간이 아니라 성과와 견제 장치다. 글로벌 금융권에서도 CEO의 임기는 횟수가 아니라 능력과 성과로 평가받는다. 세계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CEO는 20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며 지속적인 성장과 기업가치 제고를 이끌어 왔다. 국내에서도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장기간 재임하며 그룹의 체질 개선과 실적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기 재임이 곧 지배구조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연임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CEO를 평가하고 주주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후보군 관리와 승계 절차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이사회의 책임성과 공시를 강화하는 것이 지배구조 개선의 본질이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은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가 돼야 한다. 절차와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높이지만 CEO의 임기까지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자칫 책임경영 강화보다 관치금융 논란을 키울 수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답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원칙과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이슈&인사이트] 월드컵 축구의 승자와 패자들

스페인이 아르헨티나를 꺾고 북중미 FIFA 월드컵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탄탄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무적함대다웠다. 다만, 심판의 편파적인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아르헨티나에게는 선수 한 명이 퇴장당한 것이 뼈아팠다. 또 다른 승자는 카보베르데다. 우승팀 스페인과 예선전에서 비겼고 32강전에서는 준우승팀 아르헨티나와 막상막하의 경기를 하였다. 인구 52만에 불과한 알려져 있지 않은 아프리카의 섬나라가 이번 대회 최고 히트 상품이라는 말이 나왔다. 최고의 패배자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 전화하여 레드카드를 받아 벨기에와의 16강전에 출전할 수 없는 선수를 출전토록 하였다. 규칙을 파괴하고 세계 질서를 흔들고 있는 트럼프가 FIFA 규정까지 무너뜨리자 세계인들이 화가 났고 벨기에를 응원하였다. 결국 출전 금지 유예를 받은 그 선수는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미국은 벨기에에 1대4로 대패하고 말았다. 트럼프 압박에 굴복한 FIFA 회장도 공동 패배자라 할 수 있는데. TV 화면에 비춰진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마에 '출전 금지 유예'라는 주홍글씨가 쓰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홍명보 감독은 우리 국민들이 볼 때 최고의 패배자다. 남아공에게 0대 1로 진 한국은 2위를 하다가 마지막 경기에서 4위 팀에게 패배하여 32강전 진출에 실패한 유일한 팀이 되었다. 세계 언론들도 졸전이라고 평가했고, 우리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였다. 경기에서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문제는 가슴 졸이며 응원하고 승리를 기원하였던 국민들의 희망을 사실상 '자의적으로' 꺾어 버렸다는 것이다.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출전하고 단기전 승부로 결판이 나는 경기에서는 핵심 선수의 역할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노르웨이는 골잡이 '홀란'의 활약으로 사상 최초로 8강에 진출했고, 영국은 '헤리 케인'의 활약으로 4강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역시 4강에 진출한 프랑스의 '음바페' 역할은 발군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메시' 활약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은 월드스타이자 우리나라 팀의 핵심인 손흥민 선수를 남아공전 선발에서 제외하였고, 심지어 그 사실을 당일 선수들에게 통보하였다. 손흥민 선수를 중심으로 플레이를 전개해 왔던 선수들이 받을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선수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로 공을 굴리기에 급급하였다. 선수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전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센터링을 제대로 올리지 못했는데, 찬스메이커인 이재성을 기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흥민 선수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이재성 선수를 배제한 것은 홍명보 감독의 감정과 아집이 작용하였다는 데서 문제가 심각하다. 홍 감독은 손흥민의 병역 특례를 조롱하는 취재진의 사담으로 인한 인터뷰 거부 사태에서 손흥민 선수와 이재성 선수가 끝내 인터뷰에 응하지 않자 불쾌하게 여겼다. 멕시코와의 2차전 직후 손흥민이 라커룸에서 선수들을 모아 놓고 한 발언이 길어지자 선수단 이동을 지시했다고 한다. 선수 고참이자 주장이 경기가 잘못되었을 때 문제점을 지적하고 잘 하도록 말하는 것은 당연한데, 감독이 끼어든 것이다. 홍명보는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최고 선수들을 배제하여 한국팀의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이후 반성 없는 태도로 인터뷰를 하고 귀국하더니 돌연 미국으로 출국해 버려 도피 행각이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자신의 자존심을 앞세우는 리더십은 일을 그르치고 희망과 꿈을 앗아간다는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다음 대회에서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이재성, 황희찬 등 황금세대가 다시 활약할 수 있다. 용장과 지장을 겸비한 훌륭한 감독을 선임하여 준비하기 바란다. ekn@ekn.kr

AI發 메모리 대란 속 韓 디스플레이, 살길은 ‘하이엔드’뿐

디스플레이 산업이 '성숙 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있다. AI발 메모리 대란이 스마트폰·TV용 패널 공급망을 흔들고, 8.6세대 RGB OLED와 잉크젯 프린팅(IJT) 등 차세대 기술을 둘러싼 한·중·대만의 신경전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중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인간에게 눈이 있는 한 디스플레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필수 인터페이스"라는 게 업계 원로의 진단이다. 디스플레이서치(DisplaySearch) 초기 멤버 출신으로 24년 넘게 이 업계를 지켜본 인물이 있다. 히타치(Hitachi) 세일즈·엔지니어, 대만 패널사 한스타(HannStar)를 거쳐 2002년부터 시장 분석에 전념해 온 데이비드 시에 옴디아 시니어 디렉터다. 그는 현재 옴디아에서 장비·신규 공장·OEM·ODM·소재를 아우르는 디스플레이 리서치 팀을 이끌며, 특히 중대형 OLED 시장을 가장 주목하고 있다. 3개 국어를 구사하며 한·중·일 시장을 두루 꿰고 있는 그에게서 AI 시대 메모리 이슈가 뒤흔드는 디스플레이 산업의 향방과 한국·대만의 서로 다른 생존 전략을 물었다. 다음은 데이비드 시에와의 일문일답. - AI발 메모리 공급 부족이 패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 제조사들이 수익성 높은 AI 서버용 HBM에 집중하면서 스마트폰·TV용 메모리가 뒷전으로 밀려나 전 세계적 숏티지가 발생했다. 애플을 포함한 세트 업체들이 중국 YMTC·CXMT 수급을 고려하게 된 배경이다.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절정에 달하는 2026년까지는 부족 현상이 이어지겠지만, 내년부터 중국 메모리사 참여가 본격화되면 2027년엔 완화될 것이다." - 그 여파로 OLED 침투 속도도 늦어지고 있나. “메모리 부족뿐 아니라 시장 성숙도 스마트폰 교체 주기를 2~3년에서 5년 이상으로 늦추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는 OLED와 LCD가 50대 50 구도다. 아이폰 프로 라인은 완전히 OLED로 전환됐지만, OLED가 LCD를 100%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 미국의 대중 첨단기술 제재 속에 한·중 패널 업체 간 주도권 싸움은 어떻게 전개될까. “디스플레이는 반도체만큼 제재가 엄격하지 않다. 군용 디스플레이는 대부분 LCD인데, 현재 글로벌 LCD 물량의 70~80%를 이미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애플이 최근 중국 메모리 수급을 타진한 것도 한국 견제보다는 단순 원가 절감 목적이다. 디스플레이에서도 유사하다. 애플은 엔트리 모델엔 BOE 패널을, 하이엔드 아이폰엔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패널을 쓴다. 한국은 하이엔드 시장을 독점하고 중국은 비(非)애플 그룹을 공략하는 분업 구도가 지속될 것이다." - 8.6세대 RGB OLED 오픈 마스크(FBM) 공정으로 생산성이 10% 오른다는데, 한·중 원가 경쟁력 판도를 바꿀까. “인건비·투자비 구조상 한국 패널사가 더 비싼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은 맥북 등 하이엔드를 겨냥해 8.6세대에 투자하고, 중국 BOE 등은 애플 외 브랜드를 노린다. 생산성이 높아지더라도 중국이 계속 추격해오는 만큼, 한국은 기술 장벽이 높은 하이엔드 시장으로 끊임없이 달아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 차이나스타(CSOT)의 잉크젯 프린팅(IJT) 기술은 '탠덤 구현 불가'라는 한계가 있는데, 결국 FMM/FPM 기반 탠덤으로 돌아올까. “현재 가장 하이엔드인 하이브리드·탠덤 OLED 시장은 삼성이 주도한다. CSOT의 IJT나 싱글 레이어 OLED는 삼성의 전통적 리지드 OLED 영역엔 위협이 될 수 있다. 다만 아이폰 폴더블을 시작으로 노트북도 향후 롤러블 형태로 진화할 텐데, 기술적 한계가 명확한 IJT보다 탠덤 구현이 가능한 FMM/FPM 공정이 하이엔드 폼팩터 시장을 계속 지배할 것이다." - OLED 패널사들의 조속한 흑자 전환 열쇠는. “삼성과 LG는 이미 고부가 시장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 중국 OLED 기업들은 팹 감가상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비보·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ODM의 저가 전략 탓에 단가를 올리기 어렵다. 결국 소비자가 인정하는 브랜드 가치와 기술 격차가 핵심이다. 한국 기업들은 노동비·GDP 상승에 맞춰 계속 기술 진입장벽을 높이고 하이엔드로 나아가야만 스케일을 무기로 삼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ROI를 확보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가장 큰 페인 포인트는. “'체질 개선과 전환'이다. 단순 가격이나 물량 스케일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 대만은 OLED 라인이 아예 없어 일찍이 차세대 기술인 마이크로 LED로 전환을 선택했다. 디스플레이는 흔히 성숙 산업이라 불리지만, 인간에게 눈이 존재하는 한 절대 사라질 수 없는 클래식한 필수 인터페이스다. 24년간 이 분야에 있으면서 느낀 건, 과거 SF 영화 속 투명·롤러블 디스플레이의 꿈이 10~20년 뒤엔 반드시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 삼성·SK하이닉스와 대만 TSMC를 비교한다면. “TSMC의 성장은 대만 GDP 성장률을 9%대로 끌어올릴 만큼 국가 경제를 견인했지만, 그만큼 부의 불평등도 심해졌다는 점은 한국과 대만의 공통점이다. 차이는 조직 문화에 있다. 한국은 대기업 간, 혹은 내부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이 격렬하지만, 대만은 SK하이닉스 같은 거대 그룹 생태계보다 중견·중소기업 중심이라 그런 싸움이 적다. TSMC는 '스퀴즈' 문화로 유명하지만 확실한 주식 분배로 높은 보상을 제공해 직원들이 버틴다. 실제 내 아들도 미시간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는데, 2년 전 TSMC 제안을 받았지만 삼성보다도 고압적인 삶을 견뎌야 한다는 걸 알기에 거절했다." -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대만 기업 문화의 차이는. “대만 기업의 모토는 '그들은 당신에게 최선을 제공하지만, 당신도 최선을 다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유사해 보이지만 TSMC의 핵심 정체성은 '모든 이를 위해 서비스한다'는 파운드리 정신에 있다. 삼성이나 하이닉스는 자사 브랜드를 위해 메모리를 만들지만, 대만 기업들은 애플·인텔 등 모든 글로벌 고객사와 호환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TSMC 내부에는 고객사별 디비전조차 나누지 않는다." -한국과 대만의 산업 생태계, 지정학적 환경 차이는. “대만은 전통적으로 ODM·OEM 수주 생산에 강하고, 최근엔 노트북·데스크톱 제조 경험을 바탕으로 AI 서버·데이터센터 장비 제조로 빠르게 체질을 바꾸고 있다. '우리는 모두를 위해 제조한다'는 상생 마인드다. 반면 삼성·LG는 독자 브랜드를 구축해 자사를 위해 공급하는 구조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유사한 체제·규모의 북한과 맞서며 압도적 경제·기술력을 보유했지만, 대만은 자신보다 거대한 중국과 대치하며 수십 년간 협상과 생존의 유연성을 키워왔다. 이 때문에 TSMC의 핵심 기술을 제외하면, 재료·부품 분야에서 한·대만 기업 간 기술 공유와 협력 가능성은 매우 높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신은서 인턴기자

이재명 정부의 과유불급

맹자는 '호연지기'를 기를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조장(助長)'을 꼽았다. 호연지기는 의로운 행위가 쌓여 저절로 이루어지는 결과물이지 억지로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싹이 잘 자라도록 돕겠다며 싹을 뽑아 들어 올린 송나라 사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묘조장'이라는 고사가 여기서 유래했다. 어디 호연지기뿐이냐. 국정을 운영할 때도 '알묘조장'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너무 빨리 성과를 내려는 조급증은 목표를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는다. 출범 2년째를 맞는 이재명 정부가 송나라 사람과 닮은 행태를 보이고 있어 걱정이다. 유능함을 과시하려는 '성과'에 집착해 이런저런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활성화를 명분으로 단일종목 상장지수펀드(ETF)를 일사천리로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상장 전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렇지 않아도 AI(인공지능) 반도체 종목의 변동 폭이 큰 상황에서 하루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도록 설계된 ETF를 도입하면 증시 변동성이 더 커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외국에도 비슷한 금융상품이 있고 국내로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점만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추진했던 상법 개정 등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 중 하나인 것처럼 홍보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은 곧바로 드러났다. 지난 5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 상장 이후 국내 증시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금융위기 때나 경험하던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하루가 멀다하고 발동되고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연일 급등락을 거듭하다 보니 증시가 아니라 도박판이 됐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는 코스피가 5천을 넘어 6천, 7천, 8천, 9천으로 수식 상승하자 여기에 고무돼 증시를 더 띄우려는 정부의 경솔하고 성급한 판단이 초래한 정책 실패다. 이재명 대통령은 뒤늦게 보완 대책을 지시했고 정부가 여러 방안을 내놓았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10조 원 이상 투자된 금융상품을 상장 폐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도 이를 인정했다. 투자 요건을 강화하는 등 보완책이 시행된다 해도 변동성이 얼마나 줄지 미지수다. 이재명 대통령이 시장이 정부를 이길 수 없다며 호기롭게 추진했던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난 1년 서울에서는 매매, 전세, 월세가 모두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달에도 아파트·연립주택·단독주택의 평균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1.03% 오르며 올해 들어 상승폭이 가장 컸다. 고가 주택의 가격 상승을 막으려고 대출을 묶고 규제 지역을 늘리자 풍선 효과로 중저가 아파트까지 들썩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23일 '부동산 대토론회'를 주재할 예정인데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할 뾰족한 해법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증시 활성화 정책도 그렇지만 부동산이야말로 쾌도난마식 묘책이 나올 수 없는 분야다. 한두 정책이나 대통령 한 마디에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대토론회에서 어떤 아이디어가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실효적 부동산 대책은 '공급' 외에는 없다. 임대와 분양 가릴 것없이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꾸준하고 일관성 있게 공급하는 게 최우선이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는 신뢰를 줘야 한다. 대출 규제와 세금은 보조수단일 뿐이다. 잠시 집값을 낮출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 해법은 될 수 없다. 어떤 정책도 '조장'하면 안 된다. 의욕이 넘쳐 너무 앞서가는 것도, 여론 눈치를 보며 좌고우면하는 것도 위험하다. 대규모 개혁이든 소소한 민생 정책이든 모자라거나 지나치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다. 조급하게 성과를 기대할 게 아니라 큰 산을 오르듯 한 걸음씩 옮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5년이 지나야 익는 열매는 5년이 지나야 먹을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따겠다고 물과 비료를 퍼부으면 뿌리가 썩는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과 부동산 규제 정책 실패와 이로 인해 하락하는 지지율이 보내는 경고를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이슈&인사이트] ‘3차 경고’는 없을 것이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보완수사권만 정리되면 나라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한 달 여다. 정치쪽은 물론이고 경제나 사회 이슈를 집어삼켜버리고 있다. 이 문제가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의 유일한 현안인 양 모든 에너지가 매몰되면서 국정운영 동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국민들 피로감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국정지지율은 49% 언저리에서 교착상태거나 하락세다(7/20. 에너지경제 발표 여론조사 : 국정지지율 48.4%. 민주당 43.1%-국힘 40.0%). 문제는 이 갈등이 야당과의 전선이 아니라, 범여권 내부의 대립과 분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 대표 선거까지 겹치면서 범여권은 친명-친청으로 양분돼 전쟁중이다. “전쟁 말고 경쟁을 하자"는 대통령의 호소 겸 가이드라인은 효과가 없다. 유시민 작가의 “이 대통령, 필패의 길로 가고 있다"는 일갈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당·정·청 간 유기적 소통은 실종됐고,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범여권은 리더십 공백 상태다. 보완수사권을 없앴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느냐는 실무적이고도 본원적 질문은 전면에서 사라지고, 양 측간에 서로 “네가 회색분자"라는 흑백 논리만 난무하면서 전형적인 권력투쟁 심화단계로 접어들어버렸다. 국민들이 이 정권에 권력을 위임할 때의 주문은 민생과 국가 미래 설계였다. 그러나 불과 1년 여 만에 이같은 주권자 명령은 희석되고 권력투쟁만 도드라지고 있다. 자연히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경기침체 등 서민 경제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정국 주도의 핵심인 집권 여당은 오로지 보완수사다.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법률전문가나 국민들이나 보완수사 존치 쪽이 높게 나온다. 그러나 이런 조사결과는 귓등에도 가닿지 않는 양상이다. 국민들의 답답함과 피로도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당정청의 아젠다 셋팅력이 약화된 채 '국민 따로 여권 따로'다. 과감하고 전면적인 국정기조 전환이 시급하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까지도 한 달 가까이 남은데다, 이런 상태라면 전대 이후로도 갈등이 수그러들리라는 예측은 어렵다. 이 나라가 민주당 전유물인가. 첫째, 범여권 내부 소통창구 단일화가 필요하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각 정파가 갈등을 더 이상 키워서는 안된다. 보완수사를 조정할 '여권 고위 당정협의체'를 가동해 이견을 수면 아래에서 조율해야 한다. 둘째, 보완수사권 문제는 순수한 '사법효율성과 국민편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여당 내 권력투쟁과 보완수사권은 함수 관계가 있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된다. 셋째, 이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 '민생·경제로의 아젠다 대전환'이다. 물가안정, 취약계층지원, 미래성장동력 확보 등 국민 삶과 직결된 정책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보완수사로 첨예 대립중인 정파들에서 “보완수사 폐지해서 문제가 생기면 언론에 알리라"거나 “피해자들이 직접 증거나 자구책을 찾으라"는 게 할 소린가. 이런 사람들이 보완수사 논란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게 확인된 순간의 절망감과 황당함이 바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부 갈등을 수습하고 국정 중심을 민생으로 돌려놓지 않는다면, 국민들 실망감과 '도로아미타불 체념'은 심판으로 이어질 것이다. “국민들이 일어나야 한다"는 유시민 작가의 진의가 뭔지는 명확치 않으나,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는 이미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일부 확인됐다. 계엄에 따른 보수의 자멸과 지리멸멸, 국회 의석 절대 다수가 현 여권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비판이 2차 경고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3차는 없을 것이다. bienns@ekn.co.kr

[기자의 눈] 석화 구조개편 ‘마지막 퍼즐’, 정부 역할에 달렸다

'K-석화 구조개편의 마지막 퍼즐' 울산 석유화학 산업단지를 끈질기게 따라 붙는 꼬리표다. 대산 산단의 '1호 프로젝트'가 지난 2월 정부의 승인을 받은데 이어, 여수 산단 재편안 역시 금주 내 정부 승인을 받게 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울산 산단의 꼬리표는 한층 몸집을 키우는 모양새다. 장관의 마감시한 예고는 입바람에 머물렀다. 앞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국내 석화업계 대표들을 불러다 “작은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정부와 기업이 2인 3각의 원팀으로 목표를 이뤄내자"고 독려하면서도 “내년 1분기에는 구조개편 최종안 제출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상 데드라인을 제시했다. 3분기에 진입하고도 3주를 더 보낸 오늘까지도 울산 산단의 구조개편 최종안 제출은 감감무소식이다. 물론 제출 지연이 업계만의 과오는 아니다. 울산 산단의 구조재편안 최종안 제출이 데드라인을 넘기기까지 정부는 적극적인 설계자로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보단 선언적 메시지를 띄우는데 집중했다. “구조재편을 기업 자율성에 의존해선 안된다"며 정부 역할 확대를 주문하는 업계 안팎의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예컨데, 울산 산단 구조재편의 최대 변수인 에쓰오일 샤힌프로젝트는 완공시 연간 180만톤(t) 규모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되는데, 이는 정부의 감축 목표인 최대 370만t을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생산능력이 낮은 대한유화(90만t)와 SK지오센트릭(66만t)의 논의 주도 명분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샤힌프로젝트에 9조원을 쏟은 에쓰오일 역시 앞장서 생산능력을 감축할 요인이 부족하다는 구조적 복합성을 내포하고 있다. 석화 구조개편이 지연되는 와중에도 업황은 지속적으로 악화한다. 업계 수익성을 가늠할 핵심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이미 손익분기점을 한참 밑돌며 손실 누적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저렴한 중국산 기초유분의 내수 침공도 본격화해 올 상반기 에틸렌만 11만t 이상 유입됐다. 이런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정부 구조재편에 동참한 산단·기업들의 손해만 확대되는 형국이다. 이처럼 석화 구조개편 골든타임을 지나 보내고 있는 지금, 결국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한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 확대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된다. 퍼즐 조각은 결코 입바람만으로 맞춰지지 않는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기자의 눈] 신상보다 헌옷 찾는 청년들…가격 거품 뺀 옷이 필요하다

“유행 중인 팔찌·반지 레이어링 템 사려고 왔어요. 총 세 개를 샀는데 3만원도 안 들었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 동묘 구제시장에서 만난 패션디자인학과 학도 20대 A씨는 번쩍이는 메탈 팔찌를 흔들어 보이더니 “(동묘가) 현금결제만 되는 건 별로지만 브랜드에서 비싼 돈주고 사서 호구되긴 싫다"고 말했다. 고물가 시대 속 동묘 시장과 같은 전통시장은 신상은 아니지만 알짜배기 중고 상품을 발견할 수 있는 채널로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번개장터·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도 활발히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기꺼이 오프라인으로 뛰어나온 배경에는 보물찾기처럼 직접 발견하는 경험까지 얻을 수 있어서다. 비교적 구매력이 약한 젊은 세대 특성상 벼룩시장에 눈을 돌리는 이유는 특히 “저렴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고등학생 박모(18) 씨가 여름날 땡볕에도 좌판 위 옷 무덤을 뒤적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이유였다. 그는 “용돈을 모아서 왔다"며 “한 장 당 최대 1만원선에서 맘에 드는 티셔츠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동묘 시장의 '극강의 가성비'에 알리·테무 등 C커머스, 다이소로 대표되는 '초저가 쇼핑' 수요까지 옮겨 붙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찌 보면 대형 유통 채널이나 패션 플랫폼, 대기업 패션 브랜드 입장에선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비싼 신상품 가격을 고려하면 차라리 중고 의류 여러 벌을 사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소비자 판단이 녹아들어 있어서다. 즉, 해당 채널·브랜드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동묘로 흘러들어 간다고 가정했을 때 대체 시장과의 경쟁도 불가피한 셈이다. 물론 유통·패션업계에서도 순환 소비를 명목으로 헌 상품을 매입해 되팔거나, 중고 의류 반납 시 포인트로 보상해주는 리세일 사업을 전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만, 빈티지 쇼핑 채널이 제공하는 브랜드 초월성·직접 발굴하는 재미까지 완벽하게 대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유통·패션업계는 빈티지를 소비하는 젊은 세대의 심리적 기저에 '감성적 선택'도 담겨 있지만, 무엇보다 '합리적 소비' 성향이 깔려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거품을 걷어낸 가격이다. 보다 폭넓은 가격 설계를 통해 저렴한 대안까지 제공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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