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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석화 구조조정, ‘무임승차 불용’은 구호뿐인가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올해 3분기 성적표가 속속 공개되고 있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은 44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반면, 대한유화는 448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중동전쟁에 따른 일시적 호황이 잦아들면서 같은 업황 속에서도 기업별 수익성은 엇갈렸다. 실적만큼이나 엇갈리는 것이 구조조정 속도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는 대산 사업재편을 통해 연간 110만톤(t) 규모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줄이기로 했다. 여수에서도 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 등이 여천NCC 2·3공장 가동 중단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울산의 에쓰오일·SK지오센트릭·대한유화 간 사업재편 논의는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온도차가 구조조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해 공급과잉을 완화하면 그에 따른 시황 개선 효과는 경쟁사에도 돌아간다. 반대로 감축 규모가 충분하지 않고 공급과잉 해소 효과가 미미하다면, 먼저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만 비용을 떠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기업들의 자발적인 구조조정 참여를 저해할 수 있는 셈이다. 가장 먼저 사업재편에 나선 기업들조차 수혜를 쉬이 예단할 수 없다는 점은 이 같은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실적발표에서 “국내에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상황으로, 수급 환경이 향후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현 시점에는 어느 시점에 정상적인 공급 수요 상황으로 돌아설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에 선제적으로 호응한 기업조차 그 효과가 언제 나타날지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선발대가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사이 후발대는 실익을 가늠할 무형의 이익(시간)을 누리는 꼴이 됐다. 정부는 석유화학 구조조정에 무임승차하려는 기업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대산과 여수의 사업재편이 구체화하는 동안 울산에서는 여전히 기업 간 이해관계 조율이 과제로 남아 있다. 구조조정 참여 여부에 따른 부담과 혜택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경고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업별 설비 경쟁력과 경영 여건이 다른 만큼 일률적인 감축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제적으로 결단한 기업이 비용과 불확실성을 떠안고, 관망하는 기업이 시간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방치해서도 안 된다. 정부가 증명해야 할 것은 구조조정의 당위성이 아니다. 먼저 움직이는 기업이 불리하지 않도록 만드는 정책의 실행력이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이슈&인사이트] 821조 예산을 읽는 국민계정의 문법

11월 2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821조 원의 2027년도 예산안을 설명했다. 올해 본예산 728조 원에서 또 한 번 크게 늘어난 숫자다. 이런 수치를 마주할 때 우리는 흔히 “나라 곳간이 비는 것 아니냐"는 걱정부터 하지만, 정작 그 돈이 경제 전체의 어디로 흘러 무엇과 연결되는지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은 거시경제학이 오래전부터 써온 가장 기본적인 문법, 바로 국민계정(national accounts)의 눈으로 이 예산을 읽어보고자 한다. 출발점은 단순한 상식 하나다. 한 나라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보다 더 많이 쓰면, 그 차액은 어디선가 빌려올 수밖에 없다. 가계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다. 거시경제학은 이 '쓴 것'을 흡수(absorption)라고 부른다. 소비와 투자를 모두 합한, 한 나라가 한 해에 실제로 흡수한 자원의 총량이다. 그리고 이 흡수가 국민소득을 넘어서는 그만큼이 바로 경상수지 적자로 나타난다. 식으로 쓰면 '경상수지 적자 = 국내흡수 − 국민소득'이라는 한 줄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뜻은 명료하다. 경상수지란 결국 우리가 번 것보다 많이 썼는가, 적게 썼는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큰 폭의 경상흑자를 내고 있다는 말은,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바꾸면, 우리가 버는 것보다 덜 쓰고 그 차액을 해외에 빌려주고 있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예산 이야기와 만난다. 국민계정 항등식은 경제를 민간과 정부로 나누어 다시 쓸 수 있다. 그러면 '민간투자 = 민간저축 + 정부수지 + 경상수지 적자'라는 관계가 드러난다. 이 식이 품은 메시지는 묵직하다. 정부의 수지가 나빠지는 것, 즉 정부가 저축보다 더 많이 쓰는 것은 공짜로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셋 중 하나로 상쇄되어야 한다. 민간의 투자가 줄어들거나, 민간의 저축이 늘거나, 아니면 경상수지 흑자가 줄고 적자가 커지거나다. 이것은 어떤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회계적으로 반드시 성립하는 항등식이다. 821조라는 확장예산이 던지는 진짜 질문은 “재정이 건전한가"라는 추상적 물음이 아니라, “그 적자의 청구서를 민간투자가 받을 것인가, 민간저축이 받을 것인가, 아니면 경상수지가 받을 것인가"라는 구체적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다행히 지금 우리 경제에는 그 청구서를 받아낼 완충판이 있다. 반도체가 이끄는 사상 최대의 수출과 그로 인한 대규모 경상흑자다. 민간이 버는 것보다 훨씬 덜 쓰며 쌓아 올린 이 거대한 저축이, 정부의 확장재정을 떠받치는 바닥이 되어주고 있다. 앞의 항등식으로 말하면, 늘어난 정부지출이 아직은 두터운 민간저축과 경상흑자에 흡수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역대 최대 예산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경상수지의 변화를 읽을 때는 그것이 '흡수'가 늘어서인지 '소득'이 줄어서인지를 반드시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경상흑자는 소득, 즉 반도체 수출이 워낙 크게 늘어난 데서 온다. 이것은 바람직한 흑자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소득의 원천이 지나치게 한 곳에 쏠려 있다는 데 있다. 만약 반도체 경기가 꺾여 수출이라는 소득이 얇아지는데, 흡수 쪽에서는 민간소비와 정부지출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항등식은 냉정하게 작동한다. 소득이 줄어든 만큼 경상흑자가 쪼그라들고, 그래도 재정적자가 계속 벌어진다면 그 간극은 결국 경상수지 적자로, 혹은 민간투자의 위축으로 메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득의 완충판은 영원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의 흑자가 두터울 때 재정의 씀씀이가 어떤 성격인지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중요한 것이다. 같은 재정적자라도 그 돈이 미래의 소득을 키우는 투자에 쓰였는가, 아니면 당장의 소비를 늘리는 데 쓰였는가에 따라 항등식이 주는 함의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미래의 생산능력을, 또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투자라면, 지금의 적자는 내일의 더 큰 소득으로 돌아와 스스로 청구서를 갚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당장의 소비를 메우는 지출이라면, 그것은 민간저축을 당겨쓰거나 경상흑자를 깎아내는 순수한 비용으로만 남게 된다. 821조 원을 평가하는 올바른 자리는 '총액이 크다, 작다'의 다툼이 아니라, 바로 이 '성격'을 따지는 자리여야 한다. 국민계정은 뭔가 화려한 이론이 아니다. 번 만큼 쓰고, 덜 쓰면 남고, 더 쓰면 빌린다는, 가계부의 상식을 나라 단위로 옮겨놓은 회계의 문법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이 문법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역대 최대의 예산과 역대 최대의 경상흑자가 하나의 항등식 안에서 서로를 나란히 마주 보고 있다. 흑자라는 완충판이 두터운 지금, “늘어난 정부의 씀씀이는 내일의 소득을 키우는 투자인가, 아니면 오늘의 소비를 당겨쓰는 순수한 비용인가"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될 것이다. 그 답에 따라 지금의 현재 역대급 재정흑자가 미래의 축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아니면 어려운 시기를 더욱 어렵게 하는 청구서로 돌아올지가 달려있다. bienns@ekn.kr

[EE칼럼] 남북관계 경색, 지역 단위 기후협력으로 길을 찾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이란 전쟁과 사우디아라비아·후티 간 무력충돌이 국제사회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지역 분쟁이 주변국과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얽히며 확전 위험을 높이는 상황이다. 에너지 시설과 수송로에 대한 공격은 주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세계경제에도 충격을 전한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한반도의 긴장을 낮추기 위한 노력은 더욱 절실하다. 남북과 북미 관계가 국제적 대립에 휩쓸리지 않도록 협력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같은 민족으로서 한반도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함께 살아갈 조건을 마련하는 것은 남과 북의 책임이다. 외부 여건의 변화만 기다리기보다 당사자가 먼저 가능성을 찾고 제안하는 주도성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협력 방식도 돌아볼 때다.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2020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정치·군사적 갈등이 경제협력과 대화의 통로를 함께 닫아버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양한 민간 교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협력의 기대는 큰 합의와 상징적인 사업에 집중됐다. 큰 합의를 추구하면서도 주민 생활에서 편익을 확인하고 관계를 이어갈 기반을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 기후·에너지 문제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남북 관계 개선과 탄소중립은 모두 당위와 높은 목표만으로 국민 지지를 지속하기는 어렵다. 겨울철 난방과 연료 부담, 식수와 주거환경처럼 주민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과제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유엔의 과거 북한 지원 자료에도 농촌의 에너지 자립을 위한 태양광과 바이오가스, 태양열 온수 등의 활용 경험이 제시돼 있다. 난방 개선은 효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분야다. 남쪽에서는 에너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단열·창호·바닥공사와 보일러 교체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북쪽의 주택과 연료 사정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다. 성과도 설치 대수에 그치지 않고 주민이 얼마나 따뜻하게 지내는지, 연료 부담이 줄었는지, 고장에 대응할 수 있는지로 확인해야 한다. 바이오매스 난방은 남북이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협력 분야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청정개발체제에서도 재생 가능한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난방의 온실가스 감축 방법론을 마련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목재 연료와 고효율 보일러를 결합하는 방식뿐 아니라 히트펌프와 태양광, 에너지자립형 분산 전원 시스템도 지역의 기후와 전력 공급 여건에 맞춰 활용할 수 있다. 기술 도입과 함께 연료·설비 관리, 공동시설의 운영과 비용 분담 등 주민 수용성 과제도 풀어야 한다. 이는 남쪽에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남과 북의 경제 구조와 발전 수준 차이는 사업의 어려움을 높이지만 서로 다른 필요와 역량을 연결할 여지도 제공한다. 현지에서 쉽게 수리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기술을 조정하고 운영 경험을 나눈다면 양쪽 주민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다. 기업에도 제품과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기회가 된다. 그 과정에서 얻은 해법은 남쪽의 에너지 취약가구와 농산어촌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의 관심 있는 기초지자체가 참여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자체의 주거복지·에너지 사업 경험에 기업의 기술과 시민사회의 관계망을 연결할 수 있다. 이를 구체화하려면 남북 지자체 간 직접 교류 채널도 단계적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지역별 수요를 확인하고 사업을 함께 설계하며 운영 경험을 나누는 창구다. 이러한 관계가 축적돼야 일회성 지원을 넘어 지속적인 협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제재와 법규 검토는 실행을 위한 준비에 포함돼야 한다. 기후협력이라고 자동 허용되지는 않지만 인도적 사업의 개별 제재 면제 통로는 존재한다. 경기도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추진한 북한 개풍양묘장 복구·개선사업에서는 산림 복원과 주민 식량안보를 위한 태양광·배터리 등의 반입에 유엔 제재 면제가 승인됐다. 제재 아래에서도 협력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기후협력이 안보 갈등을 단번에 풀 수는 없다. 그러나 주민의 필요를 함께 확인하고 해결 방법을 협의하는 과정은 대화의 접점이 될 수 있다. 지방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실행 가능한 사업과 교류 방식을 함께 찾아볼 때다. 주민이 체감하는 효과를 지속하는 경험에서 신뢰를 쌓고, 한반도의 미래를 열어갈 길을 지역의 협력에서부터 찾아보자. bienns@ekn.kr

HD현대, 2026년도 임원인사 단행…77명 승진·선임

HD현대가 부사장과 전무로 각각 7·23명 승진, 상무로 47명을 신규 선임하는 2026년도 임원인사를 실시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인사는 지난달 7일 발표한 사장단 인사에 이은 후속 임원인사로, 조직 안정과 사업 연속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 핵심인재를 발탁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게 HD현대 측 설명이다. 특히 회사의 글로벌 사업 확대 전략에 따라 해외사업 운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과 실행력을 갖춘 핵심인재를 중용했다고 회사는 밝혔다. 기존 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전환(AX)·디지털 전환(DX) 분야 시너지를 창출하고, AI 기반 사업 혁신과 HD현대의 DX를 이끌 인재도 발탁됐다. HD현대는 이번 임원인사에 이어 이달 중 전 계열사 사장단이 참여하는 '2027년 경영계획 전략회의'를 개최하고 내년도 사업계획과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다음은 임원인사 명단. ◇ HD한국조선해양 ▶ 부사장 승진 ▲이상혁 ▲임대준 ▶ 전무 승진 ▲김경두 ▲이동주 ▲한범우 ▶상무 선임 ▲곽상윤 ▲곽상혁 ▲권오석 ▲신원근 ▲최범호 ◇ HD현대중공업 ▶ 부사장 승진 ▲설귀훈 ▲이철헌 ▶ 전무 승진 ▲박종원 ▲이원섭 ▲정우만 ▲최정진 ▲하점수 ▶상무 선임 ▲강창민 ▲권민재 ▲김준호 ▲박임배 ▲박필용 ▲손동식 ▲손은종 ▲오훈규 ▲우동현 ▲이동환 ▲이임훈 ▲최주열 ▲표정호 ▲유정택(전문위원) ▲윤욱현(전문위원) ◇ HD현대삼호 ▶ 전무 승진 ▲박서린 ▶상무 선임 ▲기학연 ▲박종호 ▲홍석한(전문위원) ◇ HD현대마린솔루션 ▶ 전무 승진 ▲정창인 ▶상무 선임 ▲윤종근 ◇ HD현대마린엔진 ▶ 전무 승진 ▲여인표 ◇ HD현대사이트솔루션 ▶상무 선임 ▲김윤기 ◇ HD건설기계 ▶ 부사장 승진 ▲임형택 ▶ 전무 승진 ▲김무승 ▲문형철 ▲심성우 ▶상무 선임 ▲김도윤 ▲송상학 ▲안정환 ▲전성관 ◇ HD현대오일뱅크 ▶ 부사장 승진 ▲조진현 ▶ 전무 승진 ▲박상조, 박진혁, 서석현, 이경직, 최찬호 ▶상무 선임 ▲김준형 ▲김태영 ▲신주성 ▲이경원 ▲이윤경 ▲이현도 ▲전평배 ▲조우태 ▲허성대 ◇ HD현대일렉트릭 ▶ 부사장 승진 ▲양재철 ▶ 전무 승진 ▲김주석 ▲정계환 ▶상무 선임 ▲강종성 ▲강화구 ▲김선길 ▲김지홍 ◇ HD현대로보틱스 ▶상무 선임 ▲최재환 ▲황재화 ◇ HD현대에너지솔루션 ▶상무 선임 ▲김면수 ◇ AMC사이언스 ▶ 전무 승진 ▲부지홍 ◇ 씨마크서비스 ▶ 전무 승진 ▲이성호 ◇ HD현대 ▶상무 선임 ▲김은진, 최상현 박주성 기자 wn107@ekn.kr

[이슈&인사이트] 반도체의 두 얼굴

지난달 26일 코스피는 5,469로 마감했다. 코스피 5,500선이 무너진 것은 지난 4월 이후 여섯 달 만이다. 6월과 7월 한때 9,100선을 넘보며 “만스피"라는 말이 돌던 지수를 떠올리면, 올 한 해 인공지능과 반도체가 쌓아 올린 탑이 불과 몇 달 만에 크게 흔들린 셈이다. 그런데 같은 날 외환시장의 풍경은 정반대였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323원으로, 주요 교역국 통화와 비교할 때 우리 원화의 가치는 약 2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불과 넉 달 전 1,600원에 육박하여 필자가 우려하던 바로 그 환율이다. 이제 그림이 바뀌어 한쪽에서는 주가가 급락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원화가 초강세를 보이는 상전벽해가 불과 넉 달 만에 펼쳐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상식에 따르면 주가와 원화 가치는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주가가 무너지면 외국인이 자금을 회수하고, 그 과정에서 원화를 팔아 달러로 바꾸니 원/달러 환율은 오르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은 지난 26일 하루에만 7천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그런데도 원화 강세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올해 들어 주가지수와 원화 가치라는 두 지표의 방향이 계속 엇갈리는 기묘한 현상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 답은 이미 우리가 아는 단어에 있다. 반도체다. 지금 증시를 끌어내리는 힘도, 원화 가치를 떠받치는 힘도 모두 같은 요소에서 나온다. 먼저 환율을 보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앞세운 반도체 수출은 여전히 사상 최대 수준을 이어가고, 그렇게 벌어들인 달러가 경상수지 흑자로 쌓인다. 수출 대기업들이 이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고, 매파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한국은행이 그 흐름에 더욱 힘을 보태는 형국이다. 그런데 바로 그 반도체가 증시에서는 정반대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쓴 인공지능 투자 열풍의 수익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면서다. 미국에서는 거대 인공지능 기업의 매출 규모를 둘러싼 논란과 데이터센터 업체의 신용위기, 빅테크의 투자 부담이 잇따라 불거졌다. 여기에 중국 메모리 기업이 차세대 제품 양산 계획을 내놓으며 공급과잉 공포가 시장 전반에 번졌다. 인공지능이라는 날개를 달고 가장 높이 날아오르던 반도체주가, 그 꿈이 흔들리며 가장 깊이 추락한 것이다. 한국경제의 입장에서는 반도체가 정말 든든한 보험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것은 안도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할 일이 아닌가 싶다. 바로 그 반도체가 흔들리는 순간 주가는 추락하고, 원화 가치마저 동시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시장의 우려로 남아 있는 반도체 공급과잉이 현실화하면 수출 단가가 하락하고, 이를 선반영해 온 증시의 회복은 더욱 더뎌질 수 있다. 동시에 원화 가치를 떠받치던 경상수지 흑자도 줄어들게 된다. 지금까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던 두 시장이, 그때는 나란히 아래를 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두려움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화려한 성적표 위에서 짙어지고 있다. 바로 이번 주, SK하이닉스는 28일 3분기 영업이익 83조 원대를, 삼성전자는 29일 107조 원대를 발표하며 나란히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전대미문의 실적이다. 그러나 시장이 바라보는 곳은 이 빛나는 지난 성적표가 아니라, 그 이익을 떠받친 메모리 가격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가라는 물음인 듯하다. 사상 최대 실적에 증시는 다시 크게 반등했지만, 이것이 추세적인 회복의 시작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물론 이는 며칠 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원화의 강세는 튼튼한 경제구조의 증거라기보다, 소수의 반도체 품목에 과도하게 기댄 우리 경제의 민낯일 수 있다. 여기에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드는 국제유가와 20여 년 만의 고점에 올라선 미국 국채금리까지 더해지면, 에너지를 수입하고 반도체를 수출하는 우리 경제에 그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울 수 있다. 주가가 부진한데 원화만 홀로 빛나는 지금, 많은 이들이 원화 강세에서 위안을 찾기 쉽다. 그러나 필자는 그 빛이 반도체라는 하나의 횃불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뒤에 드리운 그림자까지 함께 살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조용히 생각하게 된다. 주가와 원화 가치가 다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될 때, 부디 함께 웃는 얼굴이기를 바랄 뿐이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올리브영 강세, 차별화에 달렸다

분홍색 매장 바로 옆 분홍색 점포. 지난 1일 서울 홍대 상권을 거닐다 발견한 풍경이다. 앞서 9월 문을 연 코랄빛 외관의 '무신사 뷰티 홍대'에서 걸어서 1분도 채 안 되는 곳에 핫핑크색 올리브영 매장이 연내 개장을 목표로 준비 작업에 한창이었다. 주목할 점은 두드러지는 상징색이 분홍 계열로 겹친다는 것이다. 무신사는 2024년부터 주황색·분홍색의 중간색 격인 코랄 색상을 주요 오프라인 공간·행사에 적용해 왔다. 올리브영은 1999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1호점을 개점한 당시부터 올리브그린색과 코랄색을 대표색으로 사용해왔다. 일각에서는 위치상 바로 옆 건물인 데다, 같은 계열·고채도 디자인으로 시선을 끌면서 견제성 출점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리브영은 지난달 16일 개점한 홍대L7점을 포함해 이미 홍대 상권에서 점포 9곳을 운영하고 있다. 홍대타운점 등 다층 구조의 대규모 타운형 매장까지 갖추고 있지만 해당 상권 점포 가운데, 이번 점포와 같이 아예 외관 전체가 분홍색 계열로 꾸며진 건물은 없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스킨케어 중심인 기존 매장들과 달리 이곳은 색조 특화 점포로 가장 어울리는 핑크 색상을 골랐다"며 “매장 입지 등 상권 특성 등을 고려해 외관부터 눈에 띄어야 하다보니 강렬한 핫핑크색을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업체는 또 다른 핵심 관광상권인 서울 성수동에서도 주도권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중 무신사 뷰티는 기존 무신사 스탠다드 성수점이 위치한 연무장길에 '무신사 뷰티 성수점'을 연다. 올리브영은 지도상 해당 매장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위치한 맞은편 코너 건물에 들어설 예정으로,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업계는 랄라블라·롭스 등 헬스앤뷰티(H&B) 업계 경쟁사가 사라진 뒤 올리브영이 강세를 보이던 가운데 가운데, 무신사 뷰티가 대안 채널로 급부상했다고 설명한다. 매장 수 기준 단순 규모 비교로는 올리브영의 접근성이 우세하다. 전국 1360곳의 점포를 보유한 올리브영과 달리 무신사는 이제 막 뷰티 특화 매장을 넓히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1600여곳의 거점을 갖춘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가 올리브영에게 더 위협적일 것이다. 다만, 올리브영도 안심할 순 없다. 가장 유행에 민감한 품목을 취급하는 만큼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지가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무신사·다이소 등 후발주자들도 약국 연계형 공간·5000원 이하 저가 화장품 등 올리브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E칼럼] 손님이 하나뿐인 시장의 탄소 가격

시장가격을 믿을 수 있는 건 사고파는 사람이 여럿이고, 그들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값을 매긴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도 마찬가지여서, 이 가격은 우리 경제가 온실가스 한 톤을 줄이는 데 대략 얼마가 드는지를 시장이 알려 주는 일종의 신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발전 5사를 하나로 합친 '한국발전'을 내년 10월 출범시키기로 하면서, 바로 이 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 경쟁을 시키겠다며 다섯으로 나눈 지 25년 만에 다시 하나로 묶는 것이니, 재생에너지 전환을 한 주체가 책임지고 끌고 가겠다는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그 회사가 배출권 시장에서 차지할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 것 같다. 시점도 공교롭다. 올해 시작된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에는 발전회사들이 정부 경매에서 사야 하는 배출권 비율이 해마다 늘어나 2030년에는 절반에 이르는데, 경매 물량이 본격적으로 커지는 바로 그 무렵에 가장 큰 손님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셈이다. 원래부터 파는 쪽은 정부 하나였으니, 이제는 파는 쪽도 사는 쪽도 사실상 하나 (즉 쌍방독점, Dual Monopoly)인 경매장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매장에서 가격이 어떻게 정해질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나가 된 회사로서는 굳이 높은 값을 써낼 이유가 줄어들고, 정부가 정해 둔 최저 낙찰가 근처에서 응찰하는 편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경매 가격은 감축에 드는 실제 비용이 아니라 한 회사의 입찰 전략으로 정해지게 된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 최저 낙찰가가 거래소 가격을 기준으로 정해진다는 점인데, 통합 회사는 거래소에서도 가장 큰 거래 주체이니 경매 가격과 거래소 가격이 서로를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맞물릴 여지도 없지 않다. 거래소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지금은 석탄 비중이나 가동률이 서로 다른 다섯 발전사 사이의 거래가 적지 않은 거래량을 만들어 내는데, 통합이 되면 이 거래는 한 회사 안의 장부 정리로 바뀐다. 거래가 줄어든 시장에서는 가격이 실제 수급과 무관하게 한쪽으로 쏠리기도 쉬워진다. 철강이나 석유화학 기업들이 감축으로 남긴 배출권을 팔려 해도 가장 큰 매수자가 하나뿐이라면 받을 수 있는 값은 낮아지기 쉽다. 배출권 값이 낮아지면 당장 발전 비용 면에서는 나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가격이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이 감축 투자를 할지 말지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데 있다. 가격이 낮다는 것이 감축이 그만큼 쉬워졌다는 뜻은 아닌데도, 시장은 그렇게 읽게 된다. 그 가격이 감축의 실제 비용이 아니라 시장 구조 때문에 낮게 형성된 것이라면 기업들은 해야 할 투자를 미루게 되고, 그렇지 않아도 주요국보다 낮다는 평가를 받아 온 우리 탄소 가격은 신호로서의 의미를 더 잃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발전 5사가 경매 물량 대부분을 사들이니 통합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고, 수요독점이 곧바로 가격 붕괴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근거도 아직은 없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역시 통합 회사가 재생에너지 전환을 맡은 만큼 지배적 사업자로 볼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전력시장에서는 그런 판단이 가능하더라도, 배출권 시장에서 통합 회사가 사실상 유일한 큰손이 되고 가격에 하락 요인이 하나 더해진다는 점까지 부인하기는 어렵다. 특별법에 기업결합 심사를 면제하는 근거까지 검토되고 있는 만큼, 이 문제는 더더욱 통합 이전에 따로 짚어야 한다. 우선 한 회사가 경매 물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가져가지 못하게 한 지금의 낙찰 한도부터 정리가 필요하다. 한도를 그대로 두면 통합 회사가 필요한 물량을 사지 못해 의무를 지키기 어려워지고, 반대로 한도를 풀면 수요독점을 제도가 인정해 주는 꼴이 되니, 어느 쪽이든 통합 전에 방향을 정해 두어야 한다. 최저 낙찰가를 거래소 가격이 아니라 미리 공표한 경로에 묶거나, 경매 참여자를 넓혀 사는 쪽을 다양하게 만드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정산절차를 어떻게 만드는가가 중요해지겠지만, 가격을 한 회사의 손에 맡겨 두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탄소 가격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에너지 전환도 제 속도를 내기 어려운 만큼, 그 가격을 지키는 일까지 통합 설계의 일부가 되었으면 한다. bienns@ekn.kr

퇴직연금 독주 비결은?…정효영 미래에셋證 본부장 “저축에서 투자로 판 바뀌었다” [인터뷰]

“퇴직연금은 어떤 상품에 투자하느냐만큼 가입 이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미래에셋증권은 상품을 갖추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 상황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정효영 미래에셋증권 연금지원본부장은 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퇴직연금 시장의 가장 큰 변화로 '저축에서 투자로의 전환'을 꼽았다.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금융회사의 경쟁력도 상품 판매에서 장기적인 자산관리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다. 올해 3분기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49조9000억원으로 증권업계 1위다. 2위 삼성증권(27조7000억원)보다 22조2000억원 많다. 특히 DC에서는 은행과 보험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 1위, IRP에서는 증권업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이처럼 앞서 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투자 중심의 연금 운용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 미래에셋증권의 전체 연금자산에서 상장지수펀드(ETF)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말 37%에서 올해 9월 말 57.6%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ETF 투자금액은 15조7100억원에서 43조8700억원으로 약 2.8배 늘었다. 정 본부장은 “상품을 다양하게 갖추는 데 그치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직접 관리하고 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한 것이 차별화된 강점"이라며 “시장 변동성이 커지더라도 고객이 장기적인 투자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자산배분 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세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감독원 공시 기준 올해 3분기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42조1000억원으로 2023년 같은 기간(349조9000억원)보다 약 55%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도 2024년 14.3%, 지난해 14.9%, 올해 18.0%로 높아졌다. 그는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DC와 IRP의 성장"이라며 “최근 3년간 늘어난 퇴직연금 적립금의 약 84%가 두 제도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DB 적립금이 최근 3년간 16% 증가하는 동안 DC는 78%, IRP는 130% 늘었다. 전체 적립금에서 DC·IRP가 차지하는 비중도 45.6%에서 59.2%로 확대됐다. 정 본부장은 이러한 변화를 고객의 인식 전환과 연결 지었다. 예·적금 중심의 운용에서 벗어나 노후자금을 적극적으로 불리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증권사로 연금자산이 이동하는 배경으로 수익률과 비용 경쟁력을 지목했다. 그는 “지난해 증권업권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9.79%로 은행(5.27%)과 생명보험(4.53%), 손해보험(3.81%)을 앞섰다"며 “수익률 비교공시가 의무화되면서 운용 성과가 금융회사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총비용부담률 역시 증권업권은 0.335%로 은행(0.451%)보다 낮았다. 장기간 자산을 운용하는 퇴직연금의 특성상 비용 차이도 가입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미래에셋증권은 글로벌 자산배분을 중심으로 이러한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매달 자산배분위원회를 열어 시장 상황에 맞는 연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디폴트옵션위원회를 통해 관련 상품을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정 본부장은 “글로벌 자산배분을 기반으로 꾸준히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업계 최대 규모의 연금 전담 인력과 다양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통해 가입부터 은퇴설계까지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투자 성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지난달 23일 기준 자사 DC·IRP 전체 고객을 분석한 결과, 모든 연령대에서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이 원리금보장형을 웃돌았다.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연령층은 40대였다. 실적배당형 비중이 78.37%로 가장 높았고, 50대(76.44%)와 30대(72.61%)가 뒤를 이었다. 60대와 70대 이상도 각각 70.87%, 72.35%를 기록했다. 정 본부장은 “40대는 경제력이 가장 크고 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시기"라며 “20대 이하의 실적배당형 비중은 58.36%로 상대적으로 낮지만 연금을 시작하는 단계이고 고객 모수도 크지 않아 투자에 소극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령대에 따라 적절한 운용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30대는 노후 종자돈을 마련하는 시기이므로 성장형 자산을 활용하고, 시장 조정기에는 분할매수로 대응할 수 있다"며 “나이가 들수록 성장형 자산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는 자산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50~60대는 적립과 인출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시기다. 은퇴 이후에도 일정 부분 성장형 자산을 유지하면서 이자와 배당을 지급하는 인컴형 자산을 조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정 본부장은 “미국 지수를 핵심 자산으로 두고 다른 국가의 주식과 채권을 조합해 위험을 관리하는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며 “직접 자산배분을 하는 가입자는 최소 분기에 한 번 포트폴리오를 점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미래에셋증권은 퇴직연금 적립금 확대뿐 아니라 은퇴 이후 인출 단계까지 관리하는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2022년 업계 최초로 도입한 로보어드바이저를 비롯해 모델포트폴리오(MP) 구독서비스, 일임형 서비스인 로보랩 등을 운영 중이다. 은퇴 고객에게는 '연금 인출 가이드'와 세금까지 계산하는 연금수령 시뮬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 본부장은 “퇴직연금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수령하도록 하려면 가입자가 은퇴 이후 현금흐름을 미리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어야 한다"며 “연금 수령 가능 연령에 도달한 고객을 대상으로 안내와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도적 개선 과제로는 중도인출에 대한 세제 개선과 디폴트옵션 단순화, 실질적인 가입자 교육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퇴직연금을 중도에 인출하거나 해지할 때 세제상 불이익이 크지 않아 노후자산이 중간에 소진될 가능성이 있다"며 “장기투자가 지속될 수 있도록 세제 혜택과 불이익을 함께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에 대해서도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해야 작동하는 구조이고 선택지도 많다"며 “직접 투자할지 전문가에게 맡길지라는 큰 틀의 선택만 하도록 제도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도입이 논의되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정 본부장은 “기금형 제도 역시 자산배분을 통해 퇴직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자는 취지인 만큼 미래에셋증권이 추구해 온 전략과 맞닿아 있다"며 “지난 20년간 계약형 제도에서 쌓아 온 자산배분 전문성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금형 제도에서도 가입자에게 좋은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데스크 칼럼] 기술만으로 이길 수 없다

최고의 기술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다. 국내 산업계가 차세대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시장 경쟁력까지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연구실에서 성능이 입증된 기술을 양산과 매출, 시장 점유율로 연결하는 과정은 또 다른 과제다.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는 이미 막대하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연구개발에 투입한 비용은 37조7548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정부의 2026년 연구개발(R&D) 예산도 35조3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기업과 정부 모두 기술 확보에 이례적인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렇게 개발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로도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나노미터(㎚) 공정을 앞세웠지만, 올해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9%로 대만 TSMC의 72.5%와 큰 격차를 보였다. 지난 9월 퀄컴과의 차세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위탁생산 협의에서도 수율과 가격, 설계 최적화가 주요 변수로 꼽혔다. 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시장 지위를 바꾸기는 어렵다. 수율과 생산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고객사가 요구하는 가격과 품질을 맞춰야 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주항공청과 함께 2029년까지 4500파운드급 민·군 겸용 무인기용 터보팬 엔진을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독자 엔진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항공 분야의 기술 자립을 위한 중요한 단계다. 다만 개발 이후에는 성능 검증과 양산 체계 구축이 남는다. 장시간 작동 신뢰성과 내구성을 검증하고, 핵심 소재·부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며, 반복 생산이 가능한 공정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도 기술 개발 이후의 사업화 장벽을 줄이기 위한 지원책을 확대하고 있다. 산업통상부의 2026년 10대 메가프로젝트 기술산업화 사업은 기술이전을 바탕으로 후속 연구개발(R&D), 시제품 제작, 실증·검증, 인증, 양산과 수출을 패키지로 지원한다. 이를 위해 기술 보유기관과 사업화 기업, 최종 수요기관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도록 해 개발 단계부터 실제 구매와 적용을 염두에 두도록 설계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를 연결하는 정책도 마련됐다. 산업부는 지난 8월 정부와 앵커기업이 5년간 5조원을 공동 투자하는 '산업생태계 함께성장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26년 정부 1500억원과 민간 3500억원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정부 1조8000억원, 앵커기업 2조8000억원을 투자한다. 앵커기업과 협력업체의 공동 기술개발, 실증, 구매 확약을 지원해 기술력 있는 기업이 실제 공급망에 진입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기술과 정책의 존재보다 실제 성과다. 기술 개발이 경쟁력 확보의 출발점이라면 정책은 그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컨대 기술 실증을 마친 기업이 양산 설비 투자와 고객사 확보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까지 살펴 지원 체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 성공 건수나 특허, 시제품 제작 실적에 매몰되지 않고, 실제 구매 계약과 반복 발주, 양산 수율 개선, 매출과 수출로 이어졌는지를 성과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세계 최초, 최고의 기술을 확보하는 것과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다르다. 결국 기술 우위를 실제 생산 물량과 수익으로 바꾸는 역량이 시장을 지배한다. 오유신 기자 news@ekn.kr

[기자의눈] ‘저PBR’ 꼬리표, 어떻게 뗄 것인가

2일부터 증권사 앱에서 151개 종목 옆에 '저PBR' 꼬리표가 붙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본시장 체질개선 방안'에 따라 오래 저평가된 기업이 스스로 주가를 끌어올리도록 압박하려는 취지다. 주가가 회사의 장부상 재산가치에도 못 미치는 상태가 오래 이어진 기업이 대상이다. 이마트, 롯데쇼핑, 현대제철처럼 익숙한 이름도 있다. 꼬리표를 떼려면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할 일은 왜 싸게 평가받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가장 흔한 이유는 돈을 잘 못 버는 것이다. 계획을 낸 62곳 가운데 절반은 최근 3년 동안 주주 돈 100원으로 1년에 3원도 벌지 못했다. 이 수익률(ROE)이 충분한지는 주주가 기대하는 수익률, 즉 자기자본비용(COE)과 견줘야 알 수 있다. 시험 점수만으로는 합격 여부를 알 수 없고 합격선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주주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보통 연 8~10%를 기대한다. ROE가 이에 못 미치면 시장은 회사 재산을 장부가치보다 낮게 쳐준다. 그런데 이 합격선을 계산해 밝힌 곳은 17곳뿐이었다. 합격선을 밝히지 않으면 목표가 충분한지 주주가 판단할 수 없다. 밝힌 17곳 중에서도 13곳은 목표 ROE를 COE보다 낮게 잡았다. 첫째 방향은 ROE를 COE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은 정리하고, 쓰지 않는 부동산이나 투자자산은 팔아 돈이 되는 사업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 둘째, 그럴 자신이 없다면 번 돈을 주주에게 돌려줘야 한다. 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를 사서 소각하는 방식이다.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에 따라 회사가 사들인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1년 안에 소각해야 한다. 다만 임직원 보상 등의 목적이면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 계속 보유할 수 있다. 예외 조항에 기대기보다 소각 일정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주주 신뢰를 얻는 길이다. 광주신세계는 2024년 약속한 자사주 전량 소각을 올해 4월 마쳤다. 셋째, 이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에 계획을 낸 기업 열 곳 중 네 곳꼴로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 최근 만난 한 거버넌스 전문가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은 이사회가 주도하고, 이사회 심의·결의를 거쳐 공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대주주 지분이 높은 기업일수록 소액주주 입장에서 계획을 점검할 이사회의 역할이 크다. 끝으로 진행 상황을 꾸준히 알려야 한다. 계획을 지키지 않아도 제재는 없다. 그렇다고 약속을 흐지부지 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 명단 발표는 내년 5월이고, 내년 3월 주주총회부터는 감사위원을 뽑을 때 대주주 의결권이 크게 제한된다. 꼬리표를 떼는 방법은 결국 하나다. 시장이 기업을 다시 평가할 근거를 실적과 주주환원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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