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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작은 지진이 중요한 이유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작은 지진을 미소지진이라고 부른다. 미소지진은 규모 1 이하의 작은 지진으로, 지진계에만 기록될 수 있는 미세한 진동을 일으킨다. 아무런 피해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도 끌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대다수의 지진은 이름조차 붙지 않은 단층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지진을 일으키는 단층은 대부분 지표에 드러나지 않은 채, 지하 깊은 곳에 숨어 있으며, 큰 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많은 단층들이 지하에 숨죽인 채 하루하루 조용히 응력을 축적해 가고 있다. 느리지만 꾸준히 쌓이고 있는 이 응력은 언젠가 한계에 도달하면 지진을 통해 방출된다. 따라서 큰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이 단층들을 확인하는 것이 지진재해를 줄이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소지진은 이 지하단층을 찾는 중요한 열쇠다. 평소에는 지나치기 쉬운 미소지진이 땅속에 감춰진 단층의 모양과 크기를 식별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진은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랜 기간 축적된 응력이 점진적인 단층면을 부수며, 폭발적으로 방출된 결과이다. 따라서 미소지진은 활성단층을 따라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모든 미소지진을 큰 지진을 일으키는 활성단층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소지진의 시공간적 집중 양상은 활성단층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큰 지진의 임박 가능성을 알려주는 온도계 역할을 한다. 단층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는지,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는지, 혹은 응력이 특정 위치에 집중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이에 따라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미소지진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안드레아스 단층대에서는 수많은 미소지진을 분석해 단층면의 기하학적 구조와 세부 분절 구조가 밝혀지기도 했다. 단층면이 단순한 하나의 면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작은 단층면이 복합적으로 얽혀 이루어진 구조라는 사실도 새롭게 확인되었다. 이러한 작은 단층면들은 미소지진을 반복하며 점차 약해지고, 결국 여러 단층면이 하나의 거대한 파괴면으로 연결되면서, 큰 지진이 발생한다. 이렇듯 미소지진이 단층의 자세와 크기를 알려주기는 하지만, 이 정보가 곧바로 지진 예측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지진의 발생 시점과 위치를 정확히 지목하는 단기 지진예측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큰 지진 전에 나타나는 미소지진 활동을 통해 지진 재해를 줄인 사례는 많다. 1975년 규모 7.3의 중국 하이청 지진 때에는 대지진 이전에 급증한 작은 지진 활동을 통해 주민 대피가 이루어져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 미소지진이 주는 의미를 소홀히 해 지진피해가 커진 사례도 있다. 2009년 규모 6.3의 이탈리아 라퀼라 지진 때에는 작은 지진들이 집중적으로 발생했지만,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 그렇다고 매번 뚜렷한 전조 현상이 관측되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규모 9.0 동일본 대지진과 2016년 규모 5.8 경주지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들 경우에서도 미소지진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단층 주변에 설치된 지진계가 부족해 작은 지진들이 충분히 관측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미소지진의 지진재해를 줄이기 위해 미소지진 탐지가 무엇보다 중요해 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포항지진 이후에는 지열발전 과정과 연관된 촉발지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미소지진 관측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효과적인 미소지진 관측을 위해서는 단층대 주변의 촘촘한 지진관측망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반도처럼 오랜 기간 응력을 축적한 채 지하에 숨어 있으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단층이 많은 환경에서는 특정 지역만 선별해 지진계를 설치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전국에 걸쳐 조밀한 지진관측망을 구축하고, 단층이 만들어내는 작은 움직임을 꾸준히 기록해야 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고밀도 관측망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잡음에 묻혀 탐지되지 못했던 미소지진까지 효과적으로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상청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이 다양한 지진관측망을 운영하고 있으며, 밀집 관측망도 점차 확대하며, 효과적인 실시간 미소지진 탐지가 가능해지고 있다. 미소지진은 인간이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지구 내부의 복잡한 움직임을 읽어내는 정교한 암호와 같다. 이 암호를 얼마나 정확히 해독하느냐가 미래 지진 재해를 줄이는 핵심 열쇠가 되고 있다. 한반도 지하 단층의 비밀이 풀릴 날도 머지 않았다.

[EE칼럼] 워런 버핏과 영월 텅스텐광산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20년전(2006년) 대한중석 소유의 영월 상동광산에 투자를 검토한 바 있다. 상동광산은 국내 대표적 텅스텐 광산이다. 우리나라에서 텅스텐 광물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08년 경북 칠곡군 약목 근처로 전해져 오고 있다 이 후 1921년 충남 청양과 충북 대화에서도 확인됐다 그러나 뭐니해도 우리나라 최대 텅스텐 광산은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에 있는 상동광산으로 1916년에 발견됐다. 텅스텐은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전쟁 물자로 관심을 끌었다. 1915년 조선총독부는 조선광업령을 제정해 종래의 광업법을 대체했는데 이때 법정광물로 텅스텐이 지정되어 광물 통계로 잡히기 시작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나 텅스텐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가격도 내려가 국내 텅스텐 개발은 1929년까지 거의 휴면 상태였다. 이후 국제 정세의 긴장이 고조되고 군비 확대 경쟁이 치열해지자 다시 텅스텐에 관심이 높아졌고 생산량도 증대 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이 후 일본은 조선광업진흥주식회사를 설립해 전시 물자의 하나인 특수 광물 개발에 주력하게 된다 UN통계에 따르면 1944년 남한에서 7402톤의 텅스텐을 생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50년 6.25전쟁으로 남한의 텅스텐 생산은 멈췄지만 1952년 미국에서 비축 물량을 늘리기로 결정하면서 다시 텅스텐 광산개발이 시작됐다. 당시 상동광산은 매장량과 생산 규모에서 단일 광산으로는 세계 최고였다. 세계 텅스텐 생산량의 약 10%를 차지했다. 텅스텐을 주 생산물로 삼았던 상동광산은 이 외에도 몰리브덴, 금, 은, 비스므스 등을 텅스텐 채굴 과정에서 부산물로 회수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0년초 정부는 공기업 형태로 대한중석광업주식회사를 설립해 강원도 영월군 상동은 광산개발을, 경북 대구 달성에는 텅스텐 가공공장을 세워 운영했다. 국영기업으로 운영되던 대한중석은 중국의 덤핑 판매로 국제 가격이 하락하고 수익이 악화되자 민간인 거평그룹에 넘겨졌다. 거평그룹은 경북 달성에 공장을 세워 초경합 가공 생산을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필요한 원료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을 사용했다. 1998년 외환위기에 거평그룹은 부도가 났고 달성공장은 국제 입찰을 통해 워런 버핏 소유 버크셔 헤서웨이(IMC그룹)에 인수돼 지금의 대구텍으로 명칭이 바꿔게 됐다. 이 후 텅스텐 가격 경쟁력에서 악화되자 2005년 캐나다 탐사전문업체인 울프 마이닝에 넘어 갔고 울프 마이닝은 2015년 지금의 운영사인 알몬티 인더스트리즈에 매각됐다. 알몬티는 2011년 설립된 캐나다에 본사를 둔 팅스텐관련 금속광산 개발 및 탐사 중심의 광업회사이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세계 텅스텐 매장량의 52%, 생산량의 82%가 중국이다. 때문에 중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나라는 텅스텐 정광을 주로 일본, 르완다, 중국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동광산 이외에도 경북 봉화군 옥방광산, 대구 달성구 달성광산, 충북 제원군 월악광산, 충남 청양군 청양광산 등이 있는데 대부분 폐광 또는 휴광 상태이다. 현재까지 상동광산이 국내 최대 매장량(약 1억 300만톤)을 갖고 있다. 워런 버핏의 대구텍은 텡스텐 원료 확보를 위해 상동광산 재개발사업에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알몬티는 상동광산 인수 후 10년간 약 1800억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해 시추와 탐광 그리고 선광장을 만들었다. 필자가 한국광물자원공사 개발지원본부장 시절(2009년 4월~2012년 8월) 대구텍과 고려아연으로부터 상동광산 투자 요청을 받았으나 경제성이 나오지 않아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 때 워린 버핏의 대구텍은 투자를 하지 않았고, 고려아연은 투자를 진행했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 보통 재개발 광산의 생산과 판매는 5년 정도가 소요되는데 상동광산은 10년이 넘고 있다. 문제는 텅스텐 가격이다. 광물 가격은 변동성이 심하다. 텡스텐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핵심광물이지만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조달 받을 수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텅스텐의 주요 생산국은 중국(63,000톤)이 1위이며 2위 베트남(3,500톤), 3위 러시아(2,000톤), 4위 북한(1,700톤), 5위 볼리비아(1,500톤) 등이다. 다만 자원안보면에서 국내에 텅스텐 광산이 있다는 것은 수급 측면에서 좋다. 어떤 사업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광산개발은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사업이다. 국내에는 텅스텐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금속광물이 매장돼 있다. 이명박 정부때 국내 금속광산 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용화 철광산에서 발견된 니오븀이다. 니오븀은 고급 철강재 생산에 필요한 희소금속으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내 금속 광산 재개발에도 경제성을 전제로 주목 할 필요가 있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차라리 이혼할까요?”… 부동산 세금이 묻는 잔인한 질문

“차라리 이혼하고 다시 혼인신고 할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부동산 업계 소식통은 기자에게 지금 시장의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전했다. 결혼 전 각각 집 한 채를 갖고 있던 맞벌이 부부가 아이 출산 이후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다 '일시적 3주택' 문제에 걸렸다는 이야기였다. 한 채는 처분 예정이지만 실거주 중이라 당장 팔 수 없고, 새 집을 먼저 사는 순간 취득세 부담이 급증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부부는 “차라리 이혼 후 다시 혼인신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을 털어놨다. 물론 실제로 세금 때문에 이혼하는 사례가 일반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위장이혼은 법적·윤리적 문제도 크다. 다만 중요한 건 이런 고민 자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세무 상담 현장에서는 “세금 때문에 혼인신고를 미룬다", “명의를 나눈다", “양도세 때문에 서류상 이혼까지 고민한다"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평범한 시민 대화 속에서 가족의 해체가 '현실적 절세 시나리오'로 회자되는 이 기괴한 풍경이 지금 대한민국의 민낯인 셈이다. 강남에서만 30년 넘게 활동한 한 세무사 겸 변호사는 최근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 축소 논란과 관련해 “양도소득세는 원칙적으로 실질소득에 대한 과세여야 한다"며 “물가 상승으로 인한 명목 차익까지 과세하게 되면 국민 입장에서는 사실상 재산이 줄어드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할수록 시장에서는 증여·명의 분산·혼인신고 유예 같은 우회 전략이 늘어난다"며 “지금은 일부 사례에 불과하겠지만 규제가 계속 누적되면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한 형태의 이혼 증가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이재명 정부는 실수요자 보호와 투기 억제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현행 세제가 투기 목적의 다주택 보유와 생애주기형 이동 수요를 충분히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혼 전 각각 집 한 채를 보유했던 부부가 출산 이후 더 넓은 집으로 이동하려는 상황까지 동일한 규제 틀에 묶이면 시장은 결국 '정상 거래'보다 '규제 회피'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부동산 정책은 숫자로 설계된다. 몇 채를 보유했는지, 세율이 몇 퍼센트인지, 취득세와 양도세가 얼마인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시민의 삶은 숫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더 넓은 집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흐름이다. 제도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때 정책은 시장을 넘어 가족의 선택까지 흔들기 시작한다. 정부가 진짜 실수요자 보호를 원한다면 이제는 단순한 징벌적 다주택 규제를 넘어 정상적인 갈아타기와 생애주기형 이동 수요까지 고려한 정교한 세제 설계에 답해야 한다. 정책이 국민에게 “차라리 이혼해야 하나"라는 질문부터 던지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이슈&인사이트] 쿠팡과 ISDS 분쟁

# 2025년 11월 18일. 론스타와 우리 정부 사이의 4천억 규모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13년 만에 최종 승소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ISDS 취소위원회가 “2022년 8월 30일 자 중재 판정에서 인정했던 정부의 론스타에 대한 배상금 원금 2억 1,650만 달러 및 이에 대한 이자 지급 의무를 모두 취소"한 것이다. 우리 정부의 소송비용(약 73억 원)까지 되돌려받게 되었다. 2003년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 3,834억 원에 사들였는데 2012년에 하나금융지주에게 3조 9,157억 원에 되팔아 폭리를 취했다. 그런데도 론스타는 우리 정부가 개입해서 더 비싸게 팔 기회를 날렸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22년 8월 ICSID는 우리 정부에게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4.6%(2억 1,65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는데 양측이 취소를 신청한 바 있다. # 2026년 2월 23일. 우리 정부가 엘리엇매니지먼트에게 손해배상금을 포함해 약 1,600억 원을 지급하라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정이 최종적으로 뒤집혔다. 2018년 7월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때 우리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하는 등 압박해 총 7억 7,000만 달러(약 1조 1,117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주주였는데 정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공단을 동원해 삼성물산에게 불리한 비율로 합병을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2023년 7월 정부는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PCA의 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엘리엇의 입장과 달리 국민연금공단은 국가기관이 아니기에 한·미 FTA에서 규정한 ISDS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이 제기한 중재 판정에 대해 PCA가 판단할 권한 자체가 없기에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도 효력이 없다는 논리였다. 영국 법원의 중재판정 취소 인용률이 불과 3%에 그친다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승소가 아닐 수 없다. # 2026년 3월 14일. 우리 정부가 스위스의 글로벌 승강기 업체 쉰들러와 애초 약 5천억 원에서 시작해 약 3천2백억 원 규모로 줄어든 ISDS에서 승소했다. PCA의 중재판정부가 쉰들러의 모든 청구를 기각하면서 우리 정부는 소송에 들어간 비용(약 96억 원)까지 돌려받게 되었다. 2018년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인 쉰들러는 우리 정부에게 약 5천억 원 규모 ISDS를 제기했다. 쉰들러는 2013년부터 2년간 진행된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이 오너 일가의 경영권 강화 차원에서 이루어졌는데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 이 일을 안 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재판정부는 당국이 “자의적이거나 차별적이지 않은 합법적인 권한 범위 내에서 충분한 조사와 심사를 수행"했다고 보았다. # 2026년 4월 24일은 쿠팡 측 미국 투자사 그린옥스와 알티미터 등이 1월 22일 한국 정부에 ISDS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뒤 90일의 냉각기간이 종료된 날이다. 중재의향서란 청구인이 중재를 제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상대 국가에 보내는 서면이다. 의향서를 제출하면 양측은 의무로 90일간의 협상 기간을 갖는다. 청구인은 의향서에서 한국 정부가 과도한 조사와 제재를 남발해 투자자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미 다른 세 건의 ISDS 분쟁에서 모두 이겼다. 실무 담당자는 “한국의 행정, 입법, 규제가 폐쇄적이거나 차별적이지 않고 합리적이며 공정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 큰 자산이라고 했다. 만약 쿠팡이 이번에 진짜로 ISDS를 제기한다면 어떤 결정이 나올까 기다려진다. bienns@ekn.co.kr

[EE칼럼] 친환경 철강 전환의 나침반, ‘페로 패리티’ 시장을 설계하자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란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발전 원가가 LNG나 석탄 등 기존 화석연료 발전 비용과 같아지는 시점을 의미한다. 이를 측정하는 핵심 지표가 바로 균등화발전단가(LCOE)다. LCOE는 발전원의 건설부터 운영, 유지보수, 폐기까지 생애주기 동안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뒤 예상 발전량으로 나눈 값으로, 금융 투자자들이 예측 가능한 재무 구조를 설계할 수 있게 해준다. 변동성과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투자 조건이 마련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그리드 패리티 메커니즘을 철강 산업에도 적극적으로 차용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친환경 철강'의 가격이 전통적인 '고탄소 철강'보다 낮아지거나 같아지는 변곡점을 의미하는 '페로 패리티(Ferro Parity)' 개념의 도입이다. 이를 위해서는 친환경 철강에 필요한 설비 투자, 에너지 비용, 원료 비용 등을 철강의 최종 생산량으로 나눠 '균등화철강원가(LCOS, Levelized Cost of Steel)'를 계산하면 된다. 페로 패리티는 단순히 친환경 철강이 기존 고로 제품보다 저렴해지는 순간을 막연히 기다리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저탄소 철강이 시장에서 실질적인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탄소 비용, 조달 제도, 녹색 인증, 선구매 계약, 공공 수요 의무화 등을 유기적으로 도입해 친환경 철강의 시장 내 경쟁력을 적극적으로 담보하라는 의미에 가깝다. 정부와 산업계가 친환경 철강 시장을 새롭게 설계하는 지점에서 일종의 '마켓 디자인(Market Design)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페로 패리티 기반의 정책 수립은 세 가지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첫째,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까지 패리티를 달성하겠다는 목표 일정을 가시화할 수 있다. 단순히 친환경 철강을 언제까지 '생산'하겠다는 공급자 중심의 계획을 넘어, 언제까지 '시장'을 형성하겠다는 수요 중심의 로드맵이 가능해진다. 둘째, 이처럼 가시적이고 명확한 일정을 제시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자극하고, 이를 통해 대규모 민간 투자를 유인할 수 있다. 셋째,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이거나 준비 중인 친환경 철강을 위한 각종 제도와 긴밀하게 연계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특히 패리티 달성을 위해 배출권거래제를 매개로 하는 탄소차액계약(CCfD)과 기후대응기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올해 6월 시행을 앞둔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에는 저탄소 철강 기술 등에 관한 지원(제11조), 저탄소 철강의 인증(제17조), 저탄소 철강 제품의 수요 창출(제22조), 재생철자원의 공급망 강화(제26조) 등 LCOS에 직접 반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K-GX 금융 체계 역시 이러한 제도적 기반 위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다만 철강 산업의 특성상 LCOS 산정과 페로 패리티 로드맵은 현실 여건을 감안해 두 단계로 나누어 접근해야 한다. 철강 탈탄소의 궁극적 지향점인 수소환원제철은 자체 기술력보다 경제성이 담보된 수소 가격이 성패를 가른다. 재생에너지만으로 그린수소를 대량 조달하는 것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에 현 시점에서는 원자력 기반의 핑크수소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핑크수소 분야 역시 또한 전력 시장의 경직된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따라서 수소환원제철을 고려할 때에는 이러한 인프라적 제약 요인을 냉정하게 반영하여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페로 패리티 일정을 수립해야 한다. 반면, 현재의 기술과 원료로 즉시 실행 가능한 브릿지(Bridge) 기술은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에 따라 조기에 페로 패리티 일정을 구체화할 수 있다. 신전기로(ESF) 도입 확대, 고로 저탄소화 공정 개선, 전로 내 철스크랩(고철) 투입 비율 확대 등이 이에 해당한다. 궁극의 기술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인 브릿지 기술부터 페로 패리티를 적용해 시장을 다지고, 이를 바탕으로 수소환원제철로 이행하는 2단계 전략이 필요하다. 제조업의 쌀로도 불리는 철강 부문의 탄소중립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이제는 단순히 기술 개발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페로 패리티'와 LCOS라는 정교한 경제적 틀을 통해 친환경 철강이 시장에서 스스로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선제적으로 설계해야 할 때다. bienns@ekn.kr

삼성전자 파업 피해 100조로 끝날까

삼성전자 노조는 파업 피해액 100조 원이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노조를 겁박하려는 목적에 피해액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경제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 삼성전자를 추격하는 경쟁국들의 기민한 움직임 등을 생각하면 100조 원은 오히려 과소 책정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18일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초정밀 미세장비에 해당하는 반도체 시설의 경우 설비가 한번 손상되면 수리를 거쳐 재가동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므로 쟁의행위 기간 중이라 해도 시설 손상 방지를 위한 작업은 평상시와 같은 정도로 수행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내에서 채권자(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할 때 시설 손상 및 원료·제품의 변질 내지 부패로 인한 생산 차질은 자동차·가전·정보통신 등 관련 산업의 생산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손해나 위험은 사후적인 금전 배상 등을 통해 회복될 수 없는 현저한 손해 내지 급박한 위험에 해당한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 17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를 봐도 파업으로 인해 반도체 생산이 중단됐을 때 그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있다. 담화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은 단 하루만 정지돼도 최대 1조 원에 달하는 직접적인 손실이 발생한다. 법원 설명대로 잠시만 멈춰도 수개월의 생산 마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매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매출 비중이 12.5%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수출의 22.8%, 전체 시가총액의 26%를 차지한다. 삼성전자 주주는 460만 명이고 임직원은 12만 명, 협력사는 1700개가 넘는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사실은 김 총리 지적대로 파업으로 인해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전쟁에서 어렵게 확보한 전략적 우위를 경쟁국들에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피해액이 100조 원을 넘어 수백조 원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금액으로 추산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적 손실이 심각할 수 있다. 불과 7만 여명에 불과한 고소득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느라 희생하기에는 국가적 손실이 너무 크다. 정부가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을 뻔히 알면서 파업을 막기 위한 긴급조정권 발동을 시사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현행 헌법상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보장되지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공복리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파업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의지를 거듭 밝힌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대다수 국민이 파업을 반대하고 있고,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에 이어 법원도 파업의 위법성을 일부 인정한 만큼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2차 사후 조성 회의를 통해 노사가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합의점을 찾지 못해도 파업은 유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노조가 공언한 대로 오는 21일 파업에 들어가면 국가적 손실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법원이 인용한 위법성을 피해 연성 파업을 한다고 해도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커질 게 분명하다. 파업은 회사와 주주, 협력사만 치명상을 입는 게 아니다. 가장 큰 타격은 노조가 받게 될 것이다. 파업으로 영업이익이 줄면 노조가 요구한 만큼 성과급을 받을 수 없다. 이런 경우를 두고 '소탐대실'이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도 파업을 강행한다면 이솝우화의 '욕심 많은 개'와 호리병 안에 든 먹이를 포기하지 못해 사냥감이 되는 원숭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우화와 다른 점은 본인만 당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다. 헌법상 국민의 기본 권리인 노동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 전체를 몰보로 하는 파업은 단순 파업이 아니라 민폐일 뿐이다. 삼성전자 노조를 보며 가스통을 들고 모두 죽자고 위협하는 조폭이 연상되는 것은 나만의 과도한 상상일까.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기자의 눈] 기름 파는 정유사에 AI가 필요한 이유

“항로와 물류비, 실시간 원유 가격 변화부터 상압증류 공정의 도입 유종, 석유제품 생산 비율 같은 내용을 빅데이터로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원유시장과 관련한 구축해 놓은 빅데이터를 AI에 적용해 트레이딩 최적화 방안을 도출하겠다는 거죠. 석유제품 품질이 크게 다르지 않아 얼마나 제조원가를 낮추고 수익성을 높이느냐가 정유사의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AI)이 틀린 정보를 준다고 툴툴대며 'AI 흥선대원군' 노릇을 해온 기자를 향해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자기 회사의 AI 이용 방식을 이 같이 설명했다. 주요 산업군 중 AI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정유사들은 사실 누구보다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일정관리를 AI에 맡기거나 업무 관련 정보를 빠르게 찾아 정리하는 단편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원유 확보 안정성과 시장 대비 낮은 도입 가격 등 정유사들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 두 가지를 사례로 꼽았다. 정유업계 관계자가 강조한 AI 전환(AX)의 핵심은 빅데이터였다.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등장한지 20년이 지나 뒤늦은 얘기처럼 들릴 지도 모르지만, 사실 AI에 투입할 정보가 잘 정제돼 있어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AI가 보여주는 화려한 퍼포먼스에 취하는 대신 AI가 정보 환각현상(할루시네이션)을 최소화하며 정밀한 검토를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AI는 판단을 기계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떠먹여줘야 제기능을 다할 수 있다. AI가 사람인 척하는 티가 나서 독자·시청자에게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 여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할루시네이션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은 AI가 모르는 정보를 지어내 사용자에게 혼란을 일으킬 때가 있다. 어투와 수식어, 문장구조가 영어식으로 돼 있는 한국어 문장이나 AI 색깔 톤이 묘하게 드러나는 그림만 불쾌한 골짜기의 원인이 아니다. 산업계나 언론계나 직종에 관계없이 종사자들이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닌 진정한 AX를 성취하려면 '정확한 정보 모으기'에 더 많은 힘을 써야 할 때다. 테슬라가 로봇 품질을 높이기 위해 비슷한 신장과 체구를 가진 사람 여럿을 고용해 움직임 관련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과 같은 습득원리다. AI를 잘 활용하고 싶다면 기업들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운용하는 'AX 통찰 시스템'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나무호 피격과 파병 압박, 외교에는 여야가 없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미국과 이란의 분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로 원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유가를 비롯한 각종 유류 관련 제품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 HMM 소속 나무호 피격 사건이다. 전자의 경우 6월 중·하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 나무호 문제는 현재 우리 정치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나무호가 피격당했을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선박이 공격당했다며 우리에게 파병을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피격 여부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리고 피격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피격 사실을 발표했다. 그런데도 아직 공격 주체는 '확인 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미상의 비행 물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마치 '미확인 비행 물체(UFO)'를 연상하게 만든다. 선박 내부에서 '미상의 비행 물체'의 엔진이 발견됐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면 공격 주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교에서 신중함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과거 이 대통령의 SNS 발언 사례를 돌이켜 보면 이러한 신중함의 필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인을 건들면 패가망신한다'는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고, 이스라엘의 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 제기 역시 좀 더 신중한 표현과 방식을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있다. 대통령의 이스라엘 인권 문제 지적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이런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과거 사례가 반면교사의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나무호 피격과 관련해 정부는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보는 이들은, 공격 당사자로 지목되는 측에 강한 어조로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공감할 수는 있으나, 공격 주체가 이란이라고 단정하고 강하게 항의할 경우에는, 자칫 트럼프 대통령의 파병 요구에 호응해야 하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일각에서는 파병이 왜 안 되느냐는 주장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선박 26척이 억류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파병한다면, 해당 해역에 있는 우리 선박들과 186명에 달하는 우리 선원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현 정부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이를 수긍하기는 어렵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정부의 모호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이 다수 존재한다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즉, 우리 선박이 피해를 입었음에도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투표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당인 국민의힘은 총력을 기울여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당은 현 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의 태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특정 국가의 이름이 거론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적 불만은 불만대로 고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파병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여당을 비롯한 여권 전체는 해당 문제를 두고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야당이 기억해야 할 점은 외교에는 여야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야당도 해당 문제와 관련하여 정부·여당에 대한 지나친 공세는 자제해야 한다. 야당이 유념해야 할 점은, 자신들의 과도한 공세로 인해 호르무즈에 있는 우리 국민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역풍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bienns@ekn.kr

[EE칼럼] 태양광은 전력 공급자원보다 수요자원에 가깝다

마트나 커피숍에서는 현금 대신 포인트를 지급한다. 소비자는 뭔가 보상받는 기분이 들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 증가에 더 유리하다. 현금을 돌려주면 소비가 끝나지만, 포인트로 지급하면 고객은 다시 매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포인트를 아끼기보다 그 매장을 더 자주 이용하게 된다. “포인트도 있는데 하나 더 사자"라는 심리도 작동한다. 최근 자가용 태양광 상계거래 구조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 상당수 자가용 태양광 사용자는 낮 시간 남는 전력을 계통으로 보내지만 이를 즉시 현금화하기보다 이후 전기요금 차감 형태로 상계받는다. 전기를 생산해 판매했지만 결국 다시 미래 전력 소비 안에서만 사용하도록 유도되는 구조다. 더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부가가치세 문제까지 등장한다는 점이다. 상계거래 구조에서도 사용자가 생산한 전력을 판매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부가세는 부과된다. 즉 거래는 '판매'로 계산되지만 정작 수익은 현금처럼 자유롭게 활용하기보다 미래 전기요금 차감 안에 머무는 구조다. 포인트는 현금처럼 자유롭게 사용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판매 거래로 간주돼 별도 세금이 부과되지는 않는다. 반면 자가용 태양광은 판매 거래로 계산돼 세금은 발생하면서도 경제적 활용은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물론 전력망 안정성과 정산 효율 측면에서 일정한 이유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구조에서는 수요자가 중앙 전력망 의존도를 실제로 줄이는 방향보다 다시 계통 안에서 소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유도될 가능성이 크다. 이 구조는 현재 재생에너지 정책이 여전히 태양광을 중앙집중형 발전소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최근 봄철 한낮 전력시장에서 태양광 발전 비중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숫자를 기존 화력발전소와 같은 관점으로만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 오히려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게 된다. 실제 전력망 관점에서 태양광은 기존 중앙집중형 발전소와는 다른 계통 효과를 가진다. 특히 산업단지, 공장, 건물, 데이터센터처럼 수요지 인근에 설치된 태양광은 장거리 송전을 위한 발전소라기보다 전력망이 감당해야 할 부하 자체를 줄이는 자원에 가깝다. 예를 들어 공장이 낮 시간 10MW의 전력을 사용할 예정인데 자체 태양광으로 4MW를 충당한다면, 계통 입장에서는 4MW 발전소가 새로 생긴 것이라기보다 4MW의 수요가 사라진 것에 더 가깝다. 송전 부담도 줄고 지역 계통 부하도 감소한다. 반면 산을 깎아 계통 말단에 대규모로 설치된 태양광은 자연 훼손 문제뿐 아니라 송전망 부담과 출력제어 문제까지 함께 증가시킬 수 있다. 낮 시간 발전량이 급증하면 계통은 과잉 공급을 감당해야 하고, 해가 지면 다시 대규모 전력을 빠르게 투입해야 한다. 이른바 덕커브(Duck Curve) 현상이다. 결국 송전망 증설, 예비력 확보, 출력제어 비용은 공공 계통이 부담하게 된다. 문제는 현재 정책 구조가 이런 계통 부담을 충분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전기요금은 단순 발전원가뿐 아니라 송전망 유지와 계통 안정화 비용까지 얼마나 반영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이것은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확대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 중앙 전력망 의존 비용이 현실적으로 반영될수록 산업단지와 기업들은 자체 소비를 늘리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어떤 기업은 ESS를 설치할 것이고, 어떤 공장은 열병합 발전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사업장은 전력 사용 시간 자체를 조정하는 수요관리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또 어떤 곳은 공정 효율 개선이 가장 저렴한 탄소감축 수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특정 기술의 승패를 미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가장 낮은 비용으로 전력망 부담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가를 경쟁하게 만드는 구조에 있을 것이다. 재생에너지 시대의 핵심은 단순 발전량 경쟁이 아니라 중앙 전력망 부담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에 가까워지고 있다. 태양광 역시 기존 발전소의 대체재보다 분산형 수요자원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bienns@ekn.kr

[데스크 칼럼] ‘선거’에서 이기는 법

이번 6·3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 이름을 올린 후보는 모두 7829명이다. 평균 경쟁률은 1.8대 1. 숫자만 놓고 보면 싱거워 보인다. 실제로 기초단체장 3명과 지방의원 510명 등 513명은 무투표 당선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광역단체장과 재보선 경쟁률은 3.4대 1. 단 한 사람만 살아남는 구조인 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다. 마치 시리즈 '오징어게임'을 연상케 한다. 후보들에겐 하루하루가 생존 경쟁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선거를 두고 “전쟁"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은 절박함은 선거판을 더욱 뜨겁게 달군다. 후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는 21일부터 선거 전날인 다음 달 2일까지 13일뿐이다. 한 번이라도 더 새벽 시장을 돌고, 출근길에 고개를 숙이고, 밤늦게까지 지역 곳곳을 훑는다. 선거는 결국 사람을 만나 마음을 얻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선거의 본질은 국민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경쟁이어야 한다. 현실의 선거판은 늘 정책보다 감정이 먼저 앞서기 마련이다. 이번 선거 역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네거티브 공방이 전면에 등장했다. 서울시장 선거가 대표적이다.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무능 심판론'을 내세우고 있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부동산 실정론'으로 맞받고 있다. 양당 지도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내란 청산'을 외치며 지지층을 자극하고 있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심판'이라는 프레임으로 보수층 결집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전통적인 보수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대구·경북과 부울경 지역이 이번 선거 최대 승부처로 떠올랐다. 격전지로 꼽히는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만 봐도 후보들마다 '철새', '손털기', '강남 도련님' 같은 꼬리표가 붙어 있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언어는 거칠어지고, 민생은 뒤로 밀린다. 유권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작 국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폭등한 집값에 좌절하는 청년들, 고물가에 신음하는 서민들, 생존의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정치권은 삶의 문제보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선거라는 게임의 룰은 단순하다. 가장 많은 표를 얻는 사람이 이긴다. 선거는 상대를 탈락시키는 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영리하다. 누가 더 자극적인 말을 하는지보다 누가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를 본다. 청년의 불안, 자영업자의 한숨을 읽고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는 후보에게 표심이 움직인다. 선거운동 기간 13일은 짧다. 하지만 민심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충분하다. 상대를 향한 설전보다 국민의 삶에 대한 고민이 더 많이 보이는 선거. 그 비전을 보여주는 후보만이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 진짜 승리의 조건은 유권자의 삶을 정확히 읽어내는 데 있다. 유권자가 원하는 것은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바꿀 해법이다. 선거에서 최종 승자는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인 후보다. 오유신 기자 new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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